미국이야말로 기소된 테러국가다.(미국 언어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노엄 촘스키 교수)오만한 나라 미국2002100947 사회과학부 김송이탈냉전 시대에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과연 9*11은 왜 일어났는가?왜 미국인은 죽어야만 했는가?9*11테러의 진범은 누구인가?미국은 우리의 우방국인가? 적대국인가?9ㆍ11 테러가 미국에 무제한의 사냥면허를 준 것은 아니다. (뉴욕타임스 사설)왜 9*11은 일어나야만 했는가? 왜 미국의 민간 여객기는 하나의 핵폭탄만큼 무서운 존재가 되어 자본주의의 모체라 할 수 있는 세계 무역 센터를 들이받아야 했는가? 미국의 군사적 심장부인 펜타곤은 왜 공격받아야만 했는가?작년 9월 11일 우리는 텔레비전 앞에서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세계 무역 센터의 붕괴를 바라보았다. 전 세계인은 경악했고 미국인은 분노했다. 곧이어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오사마 빈 라덴을 범인으로 지목한 미국은 그를 양도하지 않은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최첨단 무기를 갖추고 세계 여러 나라를 등에 업은 미국. 그리고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막대기를 들고라도 싸우러 나갈 것이라던 가난한 그러나 강한 의지의 국민을 가진 아프간. 결국 미국은 승리했고 무수한 아프간 난민은 죽었다. 왜 그들은 죽어야 했는가? 왜 그들은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주었고 늙은 노인에서 어린 아이까지 미국의 거대한 무기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작은 막대기를 들고라도 그들은 목숨 바쳐 싸우겠다 했는가?9*11테러는 오랜 시간동안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선두를 지키고 있던 거대한 미국이라는 제국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러한 철갑 성으로의 도전. 왜! 누가! 무엇 때문에 미국인은 죽어야 했나? 왜 테러범들은 자신의 몸을 던져 망가뜨리고 싶을 만큼 미국을 증오했나? 두 명의 무고한 여중생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하는 한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그리고 미국의 추악함을 바라보는 것이 역겨운 미국인이 아닌 입장에서 나는 목숨을 내놓는 테러범들과 아프간의 난민들을 이해할 수 있다 했고 냉전 해체 뒤에 쌓여가던 무기 의 재고를 정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걸프전은 대외적인 명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막대한 전비가 미국으로 흘러들어 갔고 침체돼있던 미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또한 이와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미국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이라크 공습이다. 이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보유하고 있는 대량 파괴무기로부터 세계를 구하려는 명분에서이다. 하지만 세계는 미국이 이라크 공습을 하려는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이라크의 엄청난 원유 매장량 개방에 따른 효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원유 소비 국으로 거의 모든 원유를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공급하고 있는데 만약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원유공급에 문제가 생긴다면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제2의 원유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라크의 방대한 원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UN의 제재조치로 극히 일부만을 수출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원유 생산을 시작한다면 미국의 공격에 의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할 이라크의 미래 정부는 석유부문을 가능한 신속하게 확대하려고 할 것이고 이는 더 낮은 가격에 더 많은 양의 원유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국은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원유의 생산 확대로 인해 세계 자본가의 이목이 모두 이라크로 집중됨으로써 이라크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면 경제적 이득도 볼 수 있기에 미국은 이라크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다.이러한 이라크 공습과 더불어 미국의 대외정책과 미국 국익의 연관성은 특히 부시 행정부에서 두드러지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 앞서 우리는 미국의 정치 체제를 이해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정치 체제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양당 구조로 되어있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이고 클링턴 전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인데 두 당의 성격이나 정책, 특히 외교정책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두 당은 모두 국익을 우선시 하고 우방국과의 관계 강화라는 동일의 외교적 목표를 가지고 있지강력한 힘의 미국 이미지를 통해 극복하려 하는 것이다.셋째, 미국의 군사적 헤게모니 장악이다. 탈냉전 이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모여야 할 이유를 잃었다. 소련은 경제를 개방했고 많은 공산국 역시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세계는 하나로 뭉칠 필요도 이유도 사라진 것이다. 또한 지역 연합이 발달하며 미국의 일방주위에 대응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우위를 위태롭게 하고 세계적인 군비축소와 평화의 분위기를 만들어 나간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은 MD체제를 구축해 미국의 패권주의를 새로이 정립함으로써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더욱 확실히 하려는 것이다.이런 이유들이 부시 행정부에게 MD체제를 강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MD체제의 형성은 미국이 원하면 실행하는 것이지만 ABM협정과 대치되기에 세계적 이목을 끈다. 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은 냉전시대에서부터 무기의 양을 제한하면서 세계 평화에 기여해왔다. 그러나 MD를 추진하려는 부시 대통령에게는 걸림돌이 됐다. 취임 초기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협약의 탈퇴 선언과 더불어 일방적으로 ABM협정 탈퇴를 선언한 미국은 세계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세계의 경찰국가 노릇을 하겠다던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분명히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것임이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나라들이 반대한다 하더라도 미국이 하겠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현재도 막강한 힘을 가진 미국은 역시 MD의 구축이후에는 더 큰 임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만을 보는 눈에서 벗어나 전 세계를 위하는 길을 걸어야할 것이다. 9*11같은 테러도 막지 못한 미국에게 지금 탄도탄 요격 미사일의 건설은 결코 중요한일이 아닐 것이다.두 번째 예로 NATO를 들 수 있다. 세계 제 2차대전 이후인 1949년에 출범한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는 소련군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유럽의 10개국에 의해 창설되었다. 창설 당시 나토의 목적은 소련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고 독일의 재무장을 억제하르며 불량국가로 분류했다. 이러한 미 정부의 태도는 실제로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방침일 수 있지만 여전히 식량이 부족해 걱정이고 조금씩 경제를 개방해 세계 속으로 나가보려는 북한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또한 이런 정책은 한반도에 불고있는 화해무드와 대치된다. 이전에도 여러 번 그랬지만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때문에 김대통령의 6*15공동선언을 통해 그리고 여러 세계적 행사를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것이다. 그들은 전쟁을 즐기는 것인가? 그들은 사람 죽는 것이 좋은 것일까? 그들에게 동포끼리 총을 겨누는 모습은 즐거운 코미디 같을까? 아닐 것이다. 그들도 인간인 이상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더구나 한 민족이, 한 겨레가 그런 다는 것은 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타국인의 목숨이 아니라 다른 민족의 평화적 통일이 아니라 돈이다. 그로 인해 창출할 수 있는 군산 복합체의 어마어마한 이득이다. 우리나라의 지난 전투기 구입과 관련해 부시 대통령의 한국 방문 등 미국 정계의 인사들은 보잉사의 F-15K를 위해 한국과 접촉을 했다. 결국 4개회사의 제품을 비교해 본 결과 단연 프랑스의 라팔이 선두였음에도 결국 미 보잉사의 F-15K를 구입했다. 이는 판로가 거의 사라져 단종이 예상되었던 제품이었지만 우리는 10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을 들여 이를 구입했다. 미국은 확실히 경제적인 문제를 정치와 연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군산 복합체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 군수업체는 미국 공화당의 표밭이요, 정치자금 공급원이라고 한다. 이런 공화당의 부시와 군수업체의 관계 때문에 군수시장의 호황은 공화당의 득표수와 직결되어 있고, 공화당의 정치자금과도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부시는 자기나라인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자기가 속해 있는 공화당과 군수산업체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한반도에 전쟁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 국민은 전혀 원하고 있하려는 미국 내 극우파 세력의 소행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결국 FBI는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했으나 이를 이용해 더욱 빈라덴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는 등의 효과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미국 내에서 일부 세력에 의해 다른 테러단들이 일으킨 것처럼 유도하는 사건이었다.이처럼 미국 군부가 자국 시민과 군대를 상대로 테러를 벌여 전쟁 구실을 만든다는 발상을 했던 것은 노스우드가 처음이 아니다. 그 시점은 18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2월15일 쿠바 거주 미국 시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아바나 항에 정박해 있던 미국 전투함 ‘메인’이 폭파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쿠바를 점령하고 있던 스페인은 국제재판소나 중립국과 사건을 공동 조사하자고 미국에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제안을 거부하고 단독으로 조사했다. 그 후 함선이 외부로부터 받은 공격으로 폭파되었다고 발표하고 함선을 바다 쪽으로 끌어내 외부에서 조사하지 못하게 했다. 미국은 조사 발표 하루만에 스페인에 쿠바 개입을 포기하라고 최후 통첩을 보냈고, 언론은 스페인의 테러에 보복하라고 선동했다. 4월10일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요구한 모든 조건에 따르겠다’는 전문을 받았지만 바로 다음날 선전포고를 하고 23만 명을 동원해 쿠바 봉쇄 작전을 벌였다. 미국 역사가들조차도 미국이 쿠바의 독립운동을 분쇄하기 위해 스페인의 항복 선언도 무시하고 무력을 투입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스페인 전쟁 13년 후 1911년 진실이 밝혀졌다. 함선 메인이 인양된 후 선박업자들이 몇 달 동안 조사한 결과 함선이 내부에서 폭파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외부 공격 설을 뒤집는 이 조사 결과를 미국 해군은 폭파 사건 후 90년 만에 인정했다. 미국이 전쟁을 일으켜 쿠바를 장악하려고 함선 폭파 사건을 꾸몄고, 여기에 쿠바의 산업에서의 이득을 노린 미국 은행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스페인 전쟁은 단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으로 패권을 확대하는 전초전이었다.21세기 전쟁의 막을 열었다 볼 수 있는 아프가니스다.
황석영 & 조세희자신의 온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 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를 외치며 죽어간 전태일이 1970년대 노동운동의 물꼬를 텄다면, 황석영의 객지는 이전까지 전개되던 이데올로기적 문학이나 전후 문학에서 벗어나 노동문학의 물꼬를 텄다 할 수 있다. 또한 이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역시 민중의 저항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1970년대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처럼 황석영의 객지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저항적 성격을 가지는데는 당시의 시대적 영향이 크다. 소설가임무는 어찌되었든 동시대의 초상과 풍경을 충실하게 그리는 것인데 1970년대에는 한층 그 공식이 널리 통용되었고,1) 두 작품은 이런 점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시대상은 어떠했고 두 작품은 이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으며, 이런 70년대를 대표하며 아직도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지고 있는 객지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1. 1970년대1970년 10월에 있었던 유신 선포로 인한 사실상의 독재 정치는 1970년대의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암흑과 공포의 정치를 안겨준다. 이 유신체제는 세 가지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탱되는데 반공주의*권위주의*성장주의가 그것이다.2) 이러한 시대 하에서 일반 시민들은 첫째로 절망감과 소외감등으로 얼룩진 정치를 만나게 되고 둘째로 그 부산물, 또는 안전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고속 경제성장, 근대화와 산업화의 열기, 대중문화의 급팽창 등이 급속하게 밀려오는 것을 만나게 된다.3) 이중 고속 경제 성장을 이룸에 있어 기본적인 자본이 필요하게 되고 다른 선진국들은 식민지를 통한, 즉 시장개척을 통해 이미 확보한 자본을 얻기 위해 정부는 저임금, 저곡가 정책을 실시했다. 이는 싼 임금으로 생산비를 절약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대식 쌀의 가격을 낮추어 노동자들의 최소 생계를 유지시켜 노동력을 착취하겠다는 방식이었다. 이는 결국 농촌을 몰락시키는 역할을 하게되고 도시점차로 시간을 보내면서 하나둘씩 해고해 나갈 것이었다. 차츰차츰 작업량을 늘리고 작업장을 줄여 가면 남는 인부가 많게 될 테니 열흘도 못 가서 감원할 구실이 생길 거였다. 따라서 인상되었던 노임은 차츰 낮추며 도급을 계속 시키면 인부들이 모르는 사이에 전과 같이 만들 수가 있을 게 뻔했다. 한편 감원시키고, 날마다 공사장을 찾아드는 EM내기들을 한편 채용해 나가면 어항에 물 갈아넣는 것처럼 인부들은 모두 새사람으로 바뀔 것이었다......-----------------------------1)유종호, 『한국현대문학 50년』, 믿음사, 1995, p.1522)하정일, 『분단자본주의 시대의 민족문학사론』, 소명출판, 2002, p.2413)유종호, 『한국현대문학 50년』, 믿음사, 1995, p.151때문에 저임금, 저곡가 정책은 도시와 농촌, 그리고 농민과 노동자의 수탈을 통해 경제가 성장해 가는 것이니 이 과정에서 민중의 저항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겠다. 1970년대가 자본주의의 엄청난 발전을 이룰 수 있었으면서 동시에 민중운동의 성장기이기도 한 것은 이러한 점 때문이다.4) 결국 근대화를 추진함에 있어 가장 반 근대적인 요소를 동원한 격인 것이다. 이 시기의 사회적 초상들을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당시 소설에 포함된 유형을 몇 가지 살펴보면, 첫째로는 생존에 필요한 요건마저 제대로 갖추지 못할 정도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 노동자들, 둘째로는 근대화 사업화 도시화에 휩쓸려 하루아침에 터전을 상실한 이들, 셋째로 적응력을 갖추지 못해 몰락의 길을 걷고 마는 정직하고 소박한 시민들, 넷째로 한국전쟁과 같은 과거의 외상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한 이들이다. 이들 중 객지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첫 번째 갈래의 모범으로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들에 대해서 살펴보자.2.객지객지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임시로 머물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장소인 서해안 간척지의 현장이다. 간척지의 현장은 70년대 사회의 산업화 과정을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단면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하루의 노동은 곧바로 하루의 삶을 의미한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는 하루 벌어 그 하루마저 먹지 못하고 빚을 지는 사람도 많다. 그들의 삶은 고되고 억울하다.객지의 이야기 전체 흐름은 마지막 파업에 집중된다. 노동자들에겐 단지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심한 육체노동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무미건조한 노동 가운에 여러 번의 파업이 있었으나 그 파업은 회사의 떡밥들에 의해 매번 실패로 돌아간다. 처음 이야기의 시작도 파업의 실패였고 마지막 부분 역시 그것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끝난다.그렇다면 왜 그들은 파업을 해야했나?그것은 파업 이야말로 자본과 노동관계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야만적인 노동의 착취, 자본과 관의 결탁, 감독을 이용한 노동관리 등의 평소에는 감춰져 있던 것들이 파업을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특히 객지의 내용 중 노동을 착취하는데 있어서의 비유는 생생하다. 법적 임금에 미달하는 노임, 전표 할인을 통한 착취, 열악한 작업환경, 초과노동으로 인한 수당에 있어서의 착취, 깡패를 동원한 억압과 폭력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그들은 착취를 당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 수단은 파업 이외에는 없는 것이다. 결국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저항하는 유일한 길인 파업은 자본주의의 허구성을 낱낱이 밝히는 장이자 자본에 대한 최후의 저항 수단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5)----------------------------4)하정일, 『분단자본주의 시대의 민족문학사론』, 소명출판, 2002, p.2425)하정일, 『분단자본주의 시대의 민족문학사론』, 소명출판, 2002, p.252그러나 파업은 실패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노동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파업을 했다. 그들은 네 가지 조건을 내걸었고 소장은 각서까지 써주며 그 조건을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열흘이 지나면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알고 있는 이가 대위와 동혁이다. 그래서 대 라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파업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음을 보자.좌우간 한 판 벌일 수 있다면 나는 개피를 봐도 좋소. 대위가 들뜬 음성으로 말했다.우리는 이 대위의 말에서 그 의미를 잠깐 찾을 수 있다. 노동자들의 분노는 터질 만큼 깊이 쌓였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자본주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은 파업뿐이다. 파업이라는 저항을 통해 노동자는 역사의 객체에서 주체로 거듭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확인하게 된다.6)대위와 동혁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대위는 이미 파업의 실패를 경험했다. 때문에 파업이 성공했을 경우 달콤한 열매를 얻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실패했을 그에 비해 훨씬 쓰디쓴 열매가 뒤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파업에 집착하는 대위는 노동자로서 자신이 저항하는 것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길이란 것을, 즉 자신의 주체성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는 동시에 어려움 속에서도 자본과의 싸움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동혁 역시 파업을 통해 당당한 주체로 거듭났다고 볼 수 있다. 파업 이전에 동혁은 스스로 파업을 일으키고 추진해 나가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그 과정을 거치며 앞장서서 모든 일을 스스로 벌이고 감당할 수 있게 되고,우리는 서명을 받으며, 시작할 때부터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한꺼번에 해고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또 다른 인부들이 오겠지만 최소한 인계를 하고 떠날 여유는 있을 겁니다.어쩌면 자네들은 혜택을 못받게 될지도 모를 텐데? 돈이 생겨, 술이 생기는가, 도대체 뭘 바라구 이런 빗을 벌이나? 덮어놓고 불평불만을 터뜨려 보자는 식이로군.우리가 못받으면, 뒤에 오는 사람 중 누군가 개선된 노동 조건의 혜택을 받게 될 거요.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젠 이미 마음을 내일로 활짝 열고 있었으므로 자기에게 맞서올 어떠한 조건에 대해서도 자유로이 응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동혁은 노동자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면 언젠틀이나 이데올로기 속에 가두려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남겨둔다. 곧 혁명을 통한 최종적 승리인 소망의 성취가 아니라 소망을 향한 끊임없는 저항을 의미하는 것이다.-----------------------6)하정일, 『분단자본주의 시대의 민족문학사론』, 소명출판, 2002, p.2533.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장이난장이네 가족은 낙원구 행복동에 산다. 낙원구 행복동에서 그들 다섯 식구는 천국을 생각한다. 난장이 아빠가 평생동안 한 일은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 건물 유리 닦기, 펌프 설치, 수도 고치기이다. 이는 단지 육체 노동이고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곧 난장이란 주인공들의 아빠를 말하는 것 뿐 아니라 단순한 육체 이외의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산업 사회의 소외된 서민들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난장이'가 대변하는 대변되는 힘없고 가난한 자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고통을 받게 되고, 기존 체제로부터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난장이는 달나라를 꿈꾼다. 달로 상징된 나라는 주인공들이 실현코자 하는 이상세계이다. 따라서 지구탈출이라는 주인공들의 꿈은 단순히 현실을 버리고 환상이나 관념의 공간에 도피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보다는, 그들의 이상세계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달나라그렇다면 달나라를 지상에 실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자본가와 노동자가 동등해지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가진 자는 못 가진 자의 고통을 실감할 수 없고, 못 가진 자는 가진 자의 안락을 단지 꿈꿀 수밖에 없다. 안락과 고통 사이에는 절대적인 단절이 있는 것이다. 그 단절은 가진 자의 공간과 못 가진 자의 공간 사이에 있는 공간적 단절로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집을 철거당한 주인공 난쟁이 일가는 거리로 내쫓기는데, 그 거리 저편에는 가진 자들의 공간인 깨끗한 주택가가 있는 것이다. 난장이는 지상에 이상세계를 실현하기를 포기했다. 그는 죽음을 택함으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