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공동화와 대응방안에 대한 연구산업공동화의 정의원래 도시경제학에서 사용된 ‘공동화(空洞化,hollowing-out)’라는 용어는 도시가 성숙단계에 진입하면서 인구와 산업이 주변부로 이동하고 중심부가 비게 되는 현상을 가리켰다. 한 산업을 구성하고 있는 경제 주체들, 즉 개인이나 기업들이 코스트가 싼 다른 지역, 다른 국가로 이주함으로써 원래의 지역에는 산업이 점차적으로 소멸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국내의 생산능력이 떨어져 가는 것을 공동화라 부르고 있다.즉 산업공동화는 간략하게 “제조업의 쇠퇴로 인한 경제의 탈공업화 현상”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산업공동화 용어가 널리 사용된 것은 1980년대 후반쯤이다. 당시 잘 나가던 일본이 미국 경제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과정에 이 용어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1989년 일본 통상산업성(지금의 경제산업성)은 산업공동화를 '제조업의 생산거점이 해외로 이전함에 따라 국내 고용이 감소하고 중장기적으로 기술경쟁력도 저하되고 국제수지가 악화되는 상황'으로 규정한 바 있다.산업공동화 대책의 필요성이런 산업공동화가 현실화되면, 해당 지역, 해당 국가의 경제는 완전히 몰락할 수 있다. 지역, 혹은 국가의 경제적 상황이나, 산업의 종류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주력 업종인 기간 산업일수록 공동화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는 더욱 클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의 해외 현지생산 등 해외 직접투자가 진전되고 나아가 기업들이 모두 이주를 하게 되면서 국민경제의 한 주축을 담당하는 경제 주체인 기업이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국내에서의 생산이 줄어 실업률이 증가하게 되며 전적으로 수입품에 의존하게 되어 국제수지적자의 폭이 증가할 분더러, 당연히 국내총생산(GDP)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경제발전 과정에서 제조업이 하락하는 자연스러운 산업구조의 변화현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콜린 클라크는 국민경제 내 산업 비중이 1차 산업(농업)→2차 산업(제조업)→3차 산업(서비스업)으로 옮겨간다는 역6%가 조사 이후 시점에도 해외이전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한국은행의 ‘2001년 기업경영분석’에서 1996년 이후 처음으로 기계설비나 공장 등 유형자산의 절대규모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2년 1/4분기 해외직접투자 실적 8억4천만달러 중 제조업이 6억5천만달러로 전년 대비 91.2% 증가한 것을 살펴보면 국내 산업의 제조업 공동화가 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제조분야의 창업이 부진한 것과 외환위기 이후 급증했던 외국인의 제조업 투자의 급감이 우리 나라 제조업의 위기에 일조하고 있다.국내 업체들이 고임금, 각종 규제, 노사분규 등 갈수록 기업여건이 나빠지고 있는 국내를 떠나고 있는 현상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반도체 및 통신분야 등 핵심사업영역 또는 고부가가치 생산품목까지 해외로 이전하고 있음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노동집약적 산업이 나가면 첨단산업이 대체해 준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제원론적 흐름이었으나 우리나라는 첨단산업마저 이른 시일 안에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어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지금 국내의 높은 임금과 인력난, 중국시장의 급속한 확대가 진행되는 마당에 제조업체들의 해외이전을 막을 묘책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이전이 집중되고 있는 중국시장을 겨냥한 기업들의 투자는 불가피하지만 노동집약적 국내생산시설에 이어 첨단생산 기반까지 해외로 이전하는 것은 우리의 국가경쟁력 약화는 차치하고라도 주요 산업의 공동화현상마저 부른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4∼5년 안에 국내에서 산업공동화현상이 극심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응답업체의 56.8%)이 팽배해지고 있는 형국이다.5. 주요 산업별 공동화 현황현재 산업공동화가 심화되는 제조업 중 주요 산업별 공동화 현상을 보면 다음과 같다.신발 수출 세계 1위에서 무역적자 업종으로 전락국내 신발 산업은 1998년을 피크로 생산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02년 현재 국내 생산을 1975년의 48%, 1988년의 11% 수준이다. 80년대 말 인건비국거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이와 같이 현재 일본은 중국의 WTO가입(2001년)등을 계기로 3차 제조업공동화가 진행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화가 제조업 경쟁력 약화에 기인하기 때문에, R&D 등 제조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부분들의 이전이 늘어나면서 위기감을 확산시킨다.또한 공동화로 인해 일본경제 침체의 장기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제조업 생산은 1997년 피크치를 보인 이후 계속 감소하고 있는데, 해외이전은 가속화 하고 있다 또한 일본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정밀기기, 수송기기, 정자등에서도 탈일본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이렇듯 제조업 기반이 붕괴될 경우 일본 경제의 조기 회복이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왜냐하면 일본의 서비스업 생산성은 미국의 61% 수준으로, 제조공동화가 진행되면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 산업만 일본에 남게 되기 때문이다.또한 장기적으로 공동화로 인한 실업문제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산업성은 거시경제 전망을 통해 제조공동화가 지속될 경우 2010년 제조업에서 250만명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일본 내에서의 중국투자확대가 ‘고용 공동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0월 5.4%를 기록한 실업률도 대기업의 중국진출에 따른 국내 인력감원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일본 정부의 산업공동화 대응방안일본은 엔화강세와 높은 물가, 과도한 세금, 경제구조의 비효율성, 지나친 규제제도 등의 요인이 되어 해외투자가 급증하였으며 이로 인해 수출 효과 감소와 국내산업에 대한 고용감소를 야기하여 산업공동화 문제를 발생시켰다.이에 일본정부는 해외직접투자의 확대에 따른 산업공동화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비용구조의 개선, 규제완화, 경제하부구조의 확충 및 행정개혁 등 경제,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투자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구조개혁을 위한 경제사회계획’을 수립하여 부문별 정책을 추진 중에 있다고 한다.특히 규제완화, 경쟁저해적인 상관행의 시정onic Manufacturing Service)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규모의 이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며 아울러 환경비용,A/S등을 감안한 종합원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대만산업공동화 과정 및 현황1990년대 대만 경제는 선진국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제조업의 침체와 서비스 산업의 비대현상이 나타났다. 1987년 이후 제조업의 침체와 서비스산업의 산업전체의 평균성장률에 미달하고 있으며, 1990년에는 0.2%를 기록하였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7년 39.8%를 고비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총고용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으나 1987년의 35%를 고비로 하락세로 반전되었다.2001년 접어들면서 대만경제가 급격히 침체되었는데 외부적으로 대만은 수출의존도가 높은데 세계경기의 침체로 수출증가율이 급격히 하락하였고, 수출뿐만 아니라 내수도 크게 위축되어 투자위축, 기업도산 증가, 고용감축으로 실업률이 연속적으로 상승하였다.산업공동화 원인대만은 1980년 중반 이후 토지 및 노동비용의 상승에 따른 국내투자가 부진하였다. 그래서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한 해외직접투자의 활성화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생산기지가 중국으로 이전되었고 이는 언어 및 문화 제약도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의 규제 제한도 다른 나라에 비해 완화한 편이라 쉽게 투자가 이루어진 것이다.외부적으로는 선진국의 보호주의 장벽의 강화되고 경기가 침체하였으며 80년대 중반이후 대만화폐의 평가절상으로 수출단가의 급증하였던 것도 한 몫을 하였다.신업공동화 대책우선 경제목표로 WTO 가입 등 경제여건 및 투자환경 변화에 대응한 경제 자유화 및 국제화 추구에 둔다.첫째, R&D, 지식기반경제 육성을 통하여 대만경제를 “환경친화적 반도체 기지” (Green Silicon island), “고부가가치 제조업센터”(High-value added Manufacturing Center)로 전환한다.둘째, 다 질에 대한 욕구 증대로 2012년까지 평균 22.4%의 높은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시장 규모도 6백12억달러에서 3천7백91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디지털 기기 제조기술과 초고속 IT인프라, 그리고 높은 아파트 보급률에 따른 밀집형 주거형태가 홈네트워크 성장에 튼튼한 기반을 제공하고 있어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게 업계측의 전망이다. 정부는 신속한 시장 선점과 국제표준화를 통해 2012년에 수출 8백22억달러로 세계 2위에 도약할 계획이다.차세대 전지차세대 전지는 2차전지, 연료전지 및 관련 소재로 구분되는데 2차전지는 99년 상용화로 이미 초기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현재 일본과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연료전지의 경우 선진국과 약 5년의 기술격차가 있으나 연구.개발에 집중할 경우 10년 이내에 세계 일류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바이오신약/장기바이오산업 가운데 부가가치 창출 잠재력과 고용창출 효과가 가장 크며, 인터페론 1g의 가치가 순금의 500배로 부가가치율이 600%에 달한다. 보건.환경.농업 등 전 산업에 대한 기술파급 효과 또한 막대하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신약개발 수준은 선진국의 60∼70%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IT기술과의 접목을 통한 산업화 부문은 성장 가능성이 크며 특히 바이오 장기의 경우 동물 복제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이고, 핵심기술 역량과 풍부한 임상경험을 갖고 있어 향후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클러스터클러스터의 정의비슷한 업종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기업이나 기관들이 한 지역에 모여있는 것을 클러스터라고 한다. 즉, 클러스터는 대학, 연구소(연구개발 기능)와 대기업, 중소벤처기업(생산, 아이디어), 물류, 금융, 소비자등의 기관(각종 지원기능)이 한 곳에 모여 있으면서 정보, 지식 공유 등의 네트워크를 통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조직을 뜻한다. 이는 産業集積(群集)지로 번역되기도 한다.클러스터의 필요성세계는 이미 클러스터 육성정책을 통해 경쟁 중이다. 미국은 40개의다.
이성과 감성의 대비 – 위스키 윈저12와 임페리얼위스키 시장은 90년대에만 해도 ‘패스포트’와 ‘썸씽스페셜’ 등 스탠더드급이 90% 이상을 차지했으나 시장 규모는 적었다. 그러나 지난 94년 프리미엄급 임페리얼이 등장하면서 위스키시장이 급속히 고급화 되기 시작, 지금은 전체 시장의 80%를 넘어서 주력 제품군으로 성장했다.그 중 윈저12와 임페리얼은 프리미엄급 위스키 시장을 이끌고 있는 제품으로 서로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이 두 제품은 비슷한 가격과 품질을 지닌 프리미엄급 위스키 임에도 불구하고 그 광고 케뮤니케이션 방식은 서로 다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윈저12는 유혹이라는 컨셉으로 소비자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반면 임페리얼은 신뢰 및 약속을 컨셉으로 하는 이성적인 접근을 광고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이성과 감성이라는 다른 방식을 통해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광고를 알아보기 위해 2장에서는 윈저12 그리고 3장에서는 임페리얼 광고를 분석해 보고 4장은 이 두 광고를 함께 비교해 보기로 하겠다.은밀한 유혹 – 윈저12궁금증을 유발하는 시리즈 광고프리미엄 위스키 윈저12는 소비자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시리즈 광고로 접근했다.제일 처음 나온 광고는 정작 제품은 없고 보이는 것은 병 모양의 중세 풍 문 앞에서 한 여성이 등을 보인 채 문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하면서 소비자로 하여금 브랜드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이런 소비자의 궁금증은 후속 광고가 이어지면서 더욱 깊어져 간다. 시리즈 광고 두 번째는 병 모양을 여성의 바디라인과 연결시킨다.윈저 병 모양으로 가슴부위가 깊게 파인 옷을 입고 나온 여자 모델이 윈저12를 광고하는데, 정작 제품은 잘 보이지 않고 여자의 섹시한 가슴선을 통해 제품을 나타냈으며 이러한 방식은 세 번째 광고에서도 이어져 소비자들로 하여금 다음 광고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물론 여기서는 제품에 대한 특징보다는 제품의모양과 여성모델을 통한 이미지와 궁금증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간 것이다.유혹이라는 카피광고 메시지에 담겨진 단어, 문장 등과 같이 언어적 자극에 의한 접근은 언어적 이해 보다도 소비자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적 자극이 호감을 불러 일으키게 되면 강화 단계로 진행되어 소비자에게 호의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이성구, 1999)윈저12의 광고는 유혹이라는 언어의 카피하에 시리즈 각각마다 다양한 유혹의 시각을 보여준다. 첫 번째 광고에서는 ‘설레임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유혹, 윈저가 온다’라는 카피를 통해 유혹의 시작을 알려준다. 이후 두 번째 광고에서는 ‘가슴 깊이 파고드는 새로운 유혹’으로 가슴라인이 드러나는 여자모델과 함께 유혹이 깊게 들어왔음을 나타낸다. 여기에 ‘몸으로 느껴지는 은밀한 유혹’이란 세 번째 카피를 통해 유혹에 푹 빠져 들은 모습을 알 수 있다.그리고 이런 유혹이 ‘거부할 수 있다면 유혹이 아니다’라는 카피로 윈저12를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윈저12의 구매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마치 여성의 유혹이 윈저12를 마시는 유혹과 동일시 되는 느낌을 주게 되는데 즉 유혹이라는 컨셉으로 여성 모델을 등장시켜 제품을 감성적인 이미지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것을 알 수 있다.섹스어필논리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설득시키는 방법 외에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에 호소하는 유형의 광고에는 욕구를 부여하게 된다. 그 중 성(性)적인 이미지로서 여성의 등장은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윈저12의 광고는 모두 여성 모델이 등장한다. 이 여성 모델은 모두 신체의 일부분이 드러나고 그 부분은 어김없이 윈저12의 병 모양을 연상하게 만든다. 또한 이 여성 모델은 얼굴의 아래부분만 노출 시킴으로써 궁금증과 함께 유혹을 더욱 증폭시킨다.왼쪽의 광고를 보면 여성 모델의 얼굴은 유혹적인 색깔인 빨간 입술만 드러나 있으며 빨간 메니큐어를 바른 손가락으로 살며시 입술에 대고 있다.이것은 위스키 소비자의 대부분인 남성 고객들에게 유혹받고 소유하고 싶은 심리를 자극하는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신뢰와 약속 – 임페리얼가짜는 없다 – 고객과의 약속경쟁이 치열한 프리미엄 위스키 시장에서 임페리얼은 타사의 제품과는 다르게 임페리얼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자신감 있는 품질과 함께 가짜가 없다는 약속으로 임페리얼 키퍼라는 특징을 보여준다.그 동안 위스키 시장은 위스키가 많이 소비되는 유흥업소에서 빈병에 다른 위스키의 원액을 넣어 판매하는 가짜제품이 있는 상황이었다. 임페리얼은 이러한 방법이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도록 위스키 원액이 병으로 유입되지 않는 위조방지캡을 개발하여 임페리얼 키퍼라는 이름으로 광고를 하였다.위의 광고는 임페리얼의 광고로서 왼쪽은 임페리얼 키퍼를 강조하며 고객과의 약속을 강조하고 있다. 오른쪽의 광고는 임페리얼 키퍼가 고객과 회사의 믿음을 연결해 주는 것을 상징적으로 믿을 신(信)이라는 한자와 자물쇠의 형상화 된 모습을 통해 나타낸다. 결국 임페리얼은 위스키 광고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감성적 광고 보다는 제품의 기능을 강조한 이성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임페리얼 키퍼를 강조하는 카피와 제품사진구도임페리얼 광고의 카피는 임페리얼 키퍼를 강조한다. 이런 ‘임페리얼 키퍼’라는 문구는 다른 어떤 문구 보다도 가장 큰 글씨와 함께 모든 광고에서 등장하며 그 위치 또한 중간에 보기 쉽게 위치한다. 임페리얼 병도 전부분이 노출되기 보다는 키퍼가 장착된 병의 목 부분과 병의 일부분만 드러내어 임페리얼 키퍼를 강조한다.수상상품의 강조임페리얼은 임페리얼 키퍼를 강조한 자사의 제품이 히트 상품에 선정되었다는 것을 광고하면서 외부 공신력을 끌어들인다. 단순히 자사의 제품이 좋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임페리얼 키퍼가 있는 자사의 임페리얼이 객관적인 히트 상품에 선정될 만큼 좋은 제품이므로 우리 제품을 구입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감성적인 접근 보다는 외부의 의견을 끌어들여 객관적 판단을 돕는 이성적 광고 전략을 볼 수 있다.윈저12와 임페리얼의 비교광고의 기능상 광고를 접하는 소비자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성구, 1999) 이러한 과정이 어떻게 소비자에게 전해지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행동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윈저12와 임페리얼은 각각 이성과 감성을 이용해 어떻게 전달하는지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지각과정지각과정은 광고를 통해 주목을 끌고 흥미를 느끼게 하며 기억에 남게 하는 과정이다.윈저는 여성의 신체 부위와 병의 테두리 모습을 일치시키며 소비자에게 주목과 흥미를 느끼게 한다. 또한 유혹이라는 것이 소비자 개개인에게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함과 애매함을 준다. 반면 임페리얼은 임페리얼 키퍼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여 소비자에게 흥미를 제공하며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모호함보다 새로운 기능과 효용을 설명하면서 소비자의 흥미과 관심을 유도한다.(2) 커뮤니케이션 과정커뮤니케이션은 명쾌함, 완결성, 조직성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느냐를 판단하는 것이다.윈저12는 유혹이라는 다소 이미지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시리즈 광고를 여러 편 제작하여 전체적인 완결성과 조직성에서 탄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 임페리얼은 각각의 광고가 임페리얼 키퍼의 명쾌한 설명으로 접근했다.(3) 학습과정학습과정에서 윈저12는 제품에 대한 기본적 사실을 통한 인식 보다는 전체적인 그림과 이미지로서 접근하여 소비자에게 반복 학습을 하였다. 반면 임페리얼은 임페리얼 키퍼라는 낯선 용어를 등장시켜 타 제품과 차별화를 강조하고 자세한 설명을 추가했다.(4) 설득과정윈저12는 광고 메시지의 설득을 위해 단순히 개인적인 감성과 판단에 의지했다. 하지만 임페리얼은 히트상품선정이라는 공신력 있는 정보원을 이용했으며 제품 기능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메시지를 전달했다.이성과 감성적인 소비자 행동지금까지 윈저12와 임페리얼의 광고를 통해서 비슷한 가격과 품질을 지닌 동일종목의 제품이라도 광고를 전달하는 방법이 하나는 이성적이고 다른 하나는 감성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혹이라는 컨셉으로 여성 모델을 등장시킨 윈저12는 감성적인 광고 전략을 폈고, 임페리얼 키퍼라는 기능을 설명하며 히트상품에 선정 될 만큼 공신력있고 인기 있는 제품이라고 전달하는 이성적 광고 전략을 핀 임페리얼을 살펴 보았다. 이렇게 같은 종류의 제품이라도 소비자에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이 감성적이냐 이성적이냐에 따라 소비자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으며 각각 효과적인 방법을 살펴볼 수 있었다.참고문헌박대성 [꼭 익혀야 할 광고표현] 소담출판사 2002이성구 [Advertising Strategy & Creative 광고 크리에이트브론] 나남출판 1999조르주 페니누 저 김명숙, 장인봉 역 [광고기호 읽기] 이화문고 1998DUPONT저 정경선 역 [500가지 광고 이미지] 예경 2001
시대적 상황은사람들은 저마다 존경하는 인물이 한 명 쯤은 있습니다. 존경하는 인물의 행동이나 사상 또는 그들의 업적 등으로 인해, 그 인물을 존경하고 본받으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현 정치인들에게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이 김구 선생이라고 말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총선이나 대선 때 우리는 수 많은 정치인들의 프로필이나 인터뷰 내용에서 보듯이 여야와 지위의 높낮음을 막론하고 김구 선생은 그들의 마음속에 존경하는 인물로서 깊이 자리 매김 하고 있습니다. 한글을 창제하고 백성을 잘 보살폈다는 세종 대왕, 영토를 확장하고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혀 준 광개토 대왕, 가깝게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 등 많은 정치인들이 오천년 역사와 함께 했지만 왜 현 정치인들은 김구 선생을 존경할까요?그것은 우리의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 분단이라는 민족의 슬픔 아래 친일 친미로 이어지는 기득권층의 이기주의적인 행동을 촛불 하나하나로 바꾸어 보겠다는 현 시대의 흐름이, 김구 선생을 그들의 마음속에 깊이, 아니 적어도 외부적으로 존경하는 인물로 말하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입니다. 남과 북 이념에 상관없이 그리고 일본, 미국 등 제국주의 세력에 굴하지 않고 당당히 민족을 위해 목소리를 외쳤던 김구 선생이었습니다.제2의 유일한 박사를 필요로 한다현 시대적 상황, 그것은 우리 기업인들에게도 100년이라는 짧은 역사이지만 존경하고 귀감이 되는 인물을 갈구하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유한양행의 창립자 유일한 박사입니다. 당시 일본 식민지하 척박했던 기업 환경 속에서 민족기업인 유한양행을 창립하고 주식회사제도와 선진 경영 기법을 보여주었으며 작고한 후에도 유언을 통해 사회 환원을 보여준 유일한 박사가 현재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점은 무엇일까요?소유와 경영 분리를 통한 경영권 승계와우선 소유와 경영권을 분리하여 2세에 대한 경영권 상속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2세에 대한 경영권 상속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기업의 경영권이 2세나 3세에게 상속되든 전문 경영인에게 돌아가든 정말 실력 있고 기업을 이끌어 갈 능력 있는 사람에게 맡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은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실력이 정말 시장에서 증명이 되거나 아니면 그 정도의 능력을 펼칠 만큼 노력을 하고 있다고 보기가 그다지 쉽지만은 않습니다. 게다가 상속에 있어 편법까지 동원해 윤리적으로도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 일어난 SK 최태원 회장의 분식회계 사건도 이와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개인의 소유가 아닙니다. 오너라고 해도 많은 주주 중의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한 최대주주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가족에 근거한 농업경제 구조인 우리들의 오랜 풍습에 인한 것 같습니다.하지만 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을 2세에 대한 상속이 아닌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겼습니다. 그것은 오너와 전문 경영인을 분리한 바람직한 현상이었고 적어도 한국기업에서는 꼭 이루어야 할 부분이었습니다. 현대 그룹의 정주영 회장의 경우에서도 보듯이 검증되지 않은 2세의 경영권의 상속은 그룹에 있어 많은 어려움을 주었고 그 고통을 많은 사람이 나누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기업에 비전을 제시하고 수 많은 어려움을 헤쳐 나가면서 기업을 오늘의 위치에 올려놓은 공로를 간과하지는 않지만 기업은 그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들과 함께 하고 뒤에서 묵묵히 일해 온 기업 내 직원 모두의 것입니다. 그것은 유일한 박사가 다음과 같이 한 말에서도 그 뜻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업은 한 두 사람의 손에 의해서 발전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두뇌가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발전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경영인은 정말 능력 있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유일한 박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의 이런 뜻은 지금까지도 유한양행에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이익의 사회 환원을 보여주는유일한 박사의 가장 큰 업적은 아마도 이익의 사회 환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가 얻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감사하고 나눈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은 아닙니다. 유일한 박사는 생전에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각종 재단에 기부하였고 교육사업과 공익사업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익을 직원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이익은 자신이 정말 열심히 일해 얻은 대가로서, 그만큼 누리고 향유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인의 재산이 사회에 환원되도록 장려하거나 그것을 바라여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난 모습을 살펴보면 그 이익을 위해 노력한 것도 주변의 도움이나 보이지 않는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입니다. 즉, 기업인이 뛰어난 능력과 탁월한 리더십으로 기업을 정상에 이끌어 많은 이익을 얻었을지라도 그 곁에서 함께 노력해 온 여러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업인은 그들의 이익에 겸손하며 함께 나눌 수 있는 자세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특히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모습이 더 필요한 상황입니다. 70,80년대 한국의 고성장에는 기업인들의 뛰어난 능력이 있었으며 그 공로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수 많은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근로와 선성장 후분배라는 시대적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최근 몇 년의 회계 부정 사건에서도 보듯이 이런 부를 윤리적으로 축적해오지 못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는 기업인의 부를 정당하게 인식시키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이익을 사회 환원에 관심을 기울일 때이며 유일한 박사는 그 모습을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유언장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기업인 자신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직원 모두가 힘써 온 유한양행 기업 이미지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국최초의 노벨경제학상 박제가생산과 소비를 강조한 조선의 실학자1. 들어가며이 글은 조선시대 실학자 초정 박제가가 노벨 경제학상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제안하는데 있다. 박제가는 그의 어려운 삶을 극복하고 봉건적인 시대적 상황을 타파하는 즉,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는 실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더구나 그는 다른 실학자와는 달리 상업에서 소비를 중시하는 탁월한 경제 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그 동안 노벨 경제학상의 불모지였던 동양에서 최초의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뛰어난 경제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2. 새로운 패러다임박제가는 1750년(영조26년) 11월 5일 서울에서 유부승지 박평의 서자로 출생하였다. 서자라는 매우 불우한 처지는 그로 하여금 양반제도와 신분차별에 대한 불만을 가지게 했으며 농민을 동정하고 혁신적인 실학사상을 전개하도록 한 바탕이 되었다. 그는 연암 박지원의 지도를 받으면서 진보적 실학사상을 접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이서구, 서상수, 유득공 등 많은 이름 있는 실학자들과 함께 교류를 가지면서 그의 사상을 발전시켜 나갔다. (양참삼, 1993)그러나 밀폐된 문화 구조일수록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키려면 외부의 새로운 문화 충격이 필요한 법이다. (홍원식, 1999) 그래서 박제가는 4,5번의 북경, 당시 연경(燕京)을 방문하여 공부하면서 중국 실학을 접하고 그의 사상이 녹아있는 라는 책을 편찬하게 된다.당시 중국은 많은 우수한 서양문물의 유입으로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반봉건적인 경제사상도 아울러 발전하는 시기였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 실학이 크게 펼쳐지는 상황이었고 중국의 실학은 과학발달의 실체달용(實體達用)과 경제발전의 경국제민(經國濟民)의 사상이 녹아있었다. (홍원식, 1999)이런 시대적 배경에영향을 받은 한국의 실학은 기존의 성리학과는 확실히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게 된다. (한형조, 1996)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농학, 문학, 예술 등 실로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틀을 제시했지만 그 중 경제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우선 조세제도를 개혁하여 산분에 의해 차별되는 조세를 공평과 합리화 하는 방향으로 추진하였으며, 농업의 발전은 물론이고 이유에 대한 긍정적이 인식과 함께 상업도 발전해야 한다는 인식을 자리잡게 했다. 또한 화폐 통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토지 소유를 개혁하며 상점에서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자는 주장을 펼쳤는데 현대에도 상당히 개혁적이라고 여길만큼 당시 상황에서는 기득권층에게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만한 사고를 지닌 개혁의지였다. (연세대학교국학연구원, 2003 ; 양참삼, 1993)3. 또다른 시각으로하지만 박제가의 사상은 당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실학의 사상과 비교해 또 다른 새로운 주장을 볼 수 있다. 이른바 우물론이라는 것이 그것인데 “소비”의 원리를 도입한 한 차원 높은 경제학적 사고라 할 수 있다. ‘무릇 재물은 우물과도 같다. 우물의 물은 퍼서 쓸수록 자꾸만 가득 채워지는 것이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익성, 1992) 이것은 당시 왜곡된 검소가 초래한 경제의 위축과 동시에 소비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박제가가 활동하던 조선후기 실학자는 사상에 의해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이익으로 대표되는 성호학파와 박제가가 속해있던 북학파이다. 이들은 개혁에 있어 조금 다른 관점을 지녔는데 전자는 농업에 중심을 두는 한편 후자인 북학파는 상업을 중시하고 무역개방, 이용후생(利用厚生)을 강조한 근대 지향적인 계몽적인 관점을 지녔었다. (홍원식, 1999)그 중 박제가는 북학파 내에서도 파격적이고 참신한 인물이었다. (대우학술총서공동연구, 1998) 선진기술 습득과 함께 그의 상업 중 소비 증대를 통한 이용후생을 증가하는 우물론은 북학파 내에서도 독창적인 이론이였으며, 마치 소비의 중요성을 강조한 케인즈를 연상하게 할 만큼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시대를 앞서가는 경제이론이었다.4. 서양의 경제학과 비교하여그러나 박제가의 소비수요에 대한 이론을 케인즈와 비교하여 서로간의 이론의 우월성과 시기의 빠르고 느림을 단순히 판단하기에 앞서 당시 서양 경제학의 흐름과 비교해 박제가의 경제학적 위치를 비교해 보도록 하자.박제가가 살았던 조선 후기 18c는 영국에 유명한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1723-1790)가 있었다. 애덤 스미스는 10년의 노력 끝에 그의 대표작인 을 1776년에 펴냈고, 박제가는 1778년에 를 펴냈을 만큼 그들은 삶과 학문의 측면에서 동시대를 살았다고 할 수 있다.국부론은 국부가 만들어지는 매커니즘을 밝히려고 했던 연구결과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원리 아래 생산과 소비 및 활발한 무역의 자유를 통해 국부를 최대한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내용을 가진다. (토드 부크홀츠, 1999) 이와 마찬가지로 박제가 역시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백성을 안심시키는 부국안민(富國安民)이라는 목표는 애덤 스미스의 그것과 동일한 것으로서 생산과 소비를 강조하며 활발한 무역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많은 유사함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런 부는 생산이 아니라 소비가 먼저 증가하면서 이끈다는 이른바 “우물론”은 시대에 앞선 사고라 할 수 있어 그의 뛰어난 경제학적 능력을 판단할 수 있다.5.나오며결국 박제가는 성리학이라는 기존의 고정적인 패러다임을 실학으로 바꾸는데 함께 했으며 이들 보다도 한차원 높은 소비이론을 주창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 서양의 경제학 이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뛰어난 경제학적 사고라는 점으로 박제가를 한쪽 면만 바라보는 노별 경제학상에서 최초의 한국노벨경제학상의 후보로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6. 참고문헌김태영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대우학술총서공동연구 민음사 1998양참삼 양영각 1993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혜안 2003이익성 한길사 1992토드 부크홀츠 김영사 1999한형조 세계사 1996홍원식 예문서원 1999
目 次시대를 살아가는 서로 다른 방법… 이백과 두보把酒問月… 이백復愁… 두보이백과 두보 – 이두 우열론이백에 대한 단상1. 시대를 살아가는 서로 다른 방법… 이백과 두보이백과 두보는 당문학사는 물론이고 중국문학사에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시인이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의 시는 여러 방면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우선 2장에서는 이백의 시에 대해 그리고 3장에서는 두보의 시를 두 시인의 생의 흐름에 따라 각각 살펴보았다. 4장은 이 두 시인을 비교하였는데 현재 까지도 거론되는 이두 비교론을 살펴보면서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5장은 개인적으로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들었던 생각을 이백의 시 把酒問月을 중심으로 적어보았다.2. 把酒問月… 이백술잔을 들어 달에게 물어보다. 이 시는 이백의 많은 시중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이다. 술과 달은 이백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 이것이 그의 시세계를 나타낼 수 있는대표적인 말이라고 생각해서 제목으로 정해 보았다. 오기 있고 슬 잘하며, 고답적이며 낙천적인 이백(701~762), 그는 자가 태백(太白)으로 본적은 분명하지 않다. 모친이 장경성(長庚星)을 꿈에 보고 출산하였다고 하며, 젊은 나이에 이미 문재를 드러내었고 검술을 익히고 협객을 자처하였다. 그는 남에게 베푸는 것을 중시 여기고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지 않아 20세경에 소정이 그를 보고 탄식하였다고 아며, 그 이후에는 민산에 은거하면서 기이한 조수들을 길러냈다고 한다.1) 자연을 벗하는 낭만주의자이런 이백은 스물 여섯이 되던 해에 여행을 떠난다. 사천 지방을 떠난 그는 먼저 동정호를 유람했으며 상강을 이동하여 청오산에 올랐다. 그후 여산 금릉을 들러 소주, 항주 일대를 둘러보았다. 여기서 이백은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며 적지않은 산수시를 썼다.天門中斷楚江開 천문산을 끊으며 양자강이 흘러가고壁水東流至北廻 푸른 물 동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선회한다.兩岸靑山相對出 양쪽 기슭 산이 마주 보며 솟아 있고孤帆一片日邊來 외로운 돛단배는 해 곁에서 내려온다.여기서 으며 곁에서 황제와 양귀비를 찬양하는 시를 지었다.名花傾國兩相歡 아름다운 꽃과 절세미인 둘이 서로 줄거워하니相得君王帶笑看 항상 웃음을 머금은 임금의 사랑을 받는다.解譯春風無限恨 봄바람의 무한한 한 풀어버리고서,沈香亭北倚欄干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어 있다.이백은 이리하여 현종의 곁에서 그의 뜻을 이루어 가는 듯 했다. 비록 몸은 술에 취해 엉망이었지만, “賢聖旣已飮, 何必求神仙(청주와 탁주를 이미 마셨으니 하필 신선을 취하겠느냐?)”라는 시와 같이 그는 이미 왕후나 권력자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3) 방황 속의 깨달음이처럼 포부가 큰 그였지만 결국 인간으로서 마음은 언제나 고독하였다. 이백은 시 가운데 근심을 자주 밝히고 있는데 이는 두보의 근심과는 차이가 있다. 이백은 꽃이 피었다가 순식간에 지는 것과 같이 삶에 대한 근심을 시에 담고자 했다.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했나黃河之水天上來 황하의 강물이 하늘에서 흘러내림을奔流到海不復回 거세게 흘러 바다에 이르면 돌아오지 않는다.권력의 부질 없음을 느끼고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을 그는 꿈 속에서 찾으려고 한다.이것이 그가 술을 즐기며 시를 통해 낭만적인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에 시에 그가 꿈꾸던 신선의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3. 復愁… 두보다시 근심함… 그것은 두보의 삶이 순탄치 않은 걱정과 시련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萬國尙戒馬, 故國今若何(온 나라는 아직 전쟁 중인데 고향은 지금 어떠한지?) 그의 시 復愁에서 알 수 있듯이 항상 나라를 걱정하며 사회를 비판하는 지식인 두보, 그는 양양(襄陽) 출신으로 대대로 관리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백과 마찬가지로 두보도 스무 살이 넘으면서 전국 여행을 시작했다. 그 후 낙양으로 돌아와 과거에 응시했다.1) 시련과 고난의 연속讀書破萬卷, 下筆如有神(세상 책은 모두 읽어, 붓을 대면 신 들린 듯) 이라고 자신하던 두보였으나 당시 배경이 없으면 합격하기 힘들었던 과거에 낙방을 한다. 여기서부터 두보의 힘든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는 다시 여정을 떠나며 이백, 고적 등깊어라感時花賤淚 시절이 아는지 꽃조차 눈물을 흘리고恨別鳥驚心 이별이 한스러워 새들도 놀라는구나烽火連三月 봉화가 삼월에도 이어지니家書抵萬金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처럼 소중하다白頭搔更短 흰머리는 긁은 대로 짧아져渾欲不勝簪 도무지 비녀도 못이길 지경이구나가족과 나라를 걱정하는 두보의 마음에 봄조차 빛을 잃고 암담하게 변했다. 전쟁의 오랜 지속과 그 속에서 더욱 가족의 애틋함을 표현한 이 시는 당시의 암담한 시대 상황을 우월하게 잘 표현하였다.두보는 주로 당제국의 전란에 휩쓸려 혼란 속에 말려든 시기에 시작 활동을 하였으므로 그의 시에는 민중의 고통이 반영되었다. 두보는 민중의 고통을 시로 써 내는 데 있어 민중에 극도로 동정하는 뜻을 부쳤고, 그러한 기대를 시에 반영시키고 민중의 고통을 동적적으로 써 내는 작품이 한 가지 전통으로 수립되었다. 이 시기에 안사의 난, 고위자의 무능을 풍자, 정치 사회 군사의 상황 등을 알게 하는 것이 태반을 차지하고 있다.3) 흐르는 세월을 따라두보는 40대 후반쯤에 와서야 비로소 이상적인 정치를 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자각하고 벼슬에서 물러나 자신을 지키는 생활로 후퇴한다.五十頭白翁 50이 된 머리 센 늙은이가南北逃世難 남북으로 세상의 난리를 피해 다닌다疏布纏枯骨 엉성한 천으로 메마른 뼈 싸메고奔走苦不暖 도망쳐 다니느라 몸 녹지 않아 괴롭다已衰病方入 이미 노쇠하여 병은 막 파고드는데四海一塗炭 세상은 온통 도탄에 빠져 있다각지에서 난동이 계속되어 두보는 계속 피해 다닐 수 밖에 없었고 절도사 엄무(嚴武)에게 의탁 하다가 그가 죽자 유랑의 길을 떠난다. 그리고 세상을 뜰 때까지의 이 시기에는 그는 이미 60세가 넘어 감상에 젖은 작품이 뚜렷해지고 과거를 추억하는 심정을 즐겨 썼다.親朋無一字 친한 친구들한테서는 한 자의 소식도 없고老病有孤舟 노병에 외로운 배가 있을 뿐이다戎馬關山北 전란이 관산 북쪽에 일어나軒涕泗流 난간에 기대어 있자니 눈물 흐른다4. 이백과 두보 – 이두 우열론고대 중국의 詩史上 후대에 영향시는 이태백 전집에 들어있지는 않고 후대의 희작이라고 여겨지는데 이백을 높이는 측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白也詩無敵 이백은 시에 적수가 없고중략何時一樽酒 어느 때에나 한 잔의 술을 놓고重與細論文 다시 그와 함께 자세하게 시를 논하게 될까이 시는 이백이란 자는 시로는 자기가 제일이다. 그러니 언제 한 번 굴 한 단지 받아 주면서 자세하게 알아듣도럭 시를 다르쳐 주게 될까라고 보는 두보를 높이는 측에서 보는 입장이다.이렇듯 이백과 두보의 우열을 가리고자 하는 노력들을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다. 최근에는 곽말약이 이백과 두보의 우열을 논하면서 두보의 계급의식을 분석하여 그에게 ‘인민시인’이라는 칭호를 붙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문학작품이 체계화된 계급적 이데올로기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는 것이 인정된다면 곽말약의 논리는 역사가나 사상가의 논리이지 문학 연구자의 논리는 아니다.단지 중국시문학에서 양대 고봉인 이백, 두보 두 사람 사이에 차별성이 존재한다는 것만 인정하면 된다. 이러한 차별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 사람의 사상, 시체, 성품 등의 차별성을 이해햇을 때만이 詩仙과 諡聖으로 추앙받는 이백과 두보의 시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고 각각의 시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5. 이백에 대한 단상중국문학에서 당시의 위상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 중에서도 이백과 두보는 당시를 대표 아니 중국 문학 전체에서도 대표할 수 있는 시인이다. 이번 레포트를 통해서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이백과 두보의 시 세계에 접근해 볼 수 있어서 중문학도로서 당연한 일이거니와 정말 좋은 경험이 되었다. 물론 이 두 시인은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자기만의 색채를 가진 시인이라 할 수 있으나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백의 시에 더 마음이 끌린다. 앞서서 거론 되었듯이 이백의 把酒問月을 시인의 대표적 성향을 볼 수 있다고 감히 부제를 설정한 것도 개인적으로 그 시에 대한 감흥과 더불어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이백의 把酒問月을 중심으로 이백에 대에 짧게 생각해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던 날 밤이었다. 창문 틀 안에 있는 그 초승달은 그녀의 집을 향해 지고 있었다. “아, 이 편지에 내 마음과 함께 그 초승달에 넣어 그녀의 집까지 전달 할 수 있겠구나”라고 느끼며 달은 사랑의 메신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얼마 전 읽은 광인일기에서는 달은 자아를 인식하는 매개체였다.그리고 이백이 말하는 달, 그것은 영원성의 달이다. 지금 비치고 있는 이 달은 엣날 사람에게도 비친 달이다. 옛 사람이나 지금 사람 모두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지만 오직 달 만큼은 오랜 세월 상관없이 영원히 술잔을 비추어 주기를 이백은 바란다. 이백은 그 ‘영원’이 담긴 술잔을 천천히 목으로 넘기면서 가슴 깊숙히 그리고 온몸으로 ‘영원’을 느끼고 싶어했을 것이다.이 영원성은 그가 이루지 못한 동경을 나타내는데 세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人攀明月不可得 사람은 달을 붙잡고자 하여도 되지 않는데여기서 달은 사람들이 붙잡고자 하는 먼 공간이다. 하지만 붙잡을 수 없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공간적인 동경의 모습을 나타낸다.今人不見古詩月 지금 사람은 옛날 달을 보지 못했건만그리고 그 달을 지금 사람인 우리들은 보지 못한다. 다만 달이 우리를 보아왔을 뿐 지금 사람은 시간적으로 옛 달을 동경할 뿐이다.嫦娥孤棲與誰隣 외롭게 사는 선녀는 누구와 함께 지내는가영원을 상징하는 달을 동경하는 이백은 그 달 즉 영원 속의 선녀를 가리키며 이 선녀는 누구와 함께 지낼 사람이 없어서 외롭다고 한다. 이백의 심중에 사랑의 마음을 표출하며 사랑적인 동경의 모습을 보여준다.하지만 정말 이백의 멋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마지막 두 구절이다.唯願當歌對酒時 다만 바라기는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시는 자리에月光長照金樽裏 달빛이 영원히 술잔을 비쳐 주기를그의 영원을 향한 동경이 풍류를 알고 소탈한 마음을 나타내면서 정말 멋지게 마무리되었다. 단지 한 잔의 술과 그 속에 비친 달빛을 보면서 그는 여유를 알고 인생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중간고사 끝나고 知音과 술 한잔 해야 하겠습니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