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의 金屬工藝과 목: 한국미술사학 과: 사학과조 원: 200181078 김경화200287014 김순정교수님: 안춘배교수님발표일: 2003.11.18목 차Ⅰ.序論.p.1 Ⅱ.本論.............. p.1~171.금속공예기법...p.1~32.청동기 시대..........p.3~51)무기.......p.3~42)의기.......p.4~53.역사시대 ................p.5~161)장신구.......p.5~132)범종.......p.13~153)사리구......p.15~17Ⅲ.結論..p.17序論금속공예란 금속이 지닌 특색 가운데 색채나 광택을 이용하여 장식으로 쓰거나 장엄하기 위하여 각종의 장식의 장신구나 장식금구, 종교ㆍ신앙 관계 문물들을 제작하는 것을 말한다.{ 이난영(李蘭暎),『한국고대의 금속공예』,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p1한국 최초의 금속기, 즉 청동기는 기원전 70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철기시대를 거쳐 선사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각 시대마다 기형(器形)의 차이는 있으나 제작수법과 합금술에 있어서는 거의 변함 없이 청동제품을 제작ㆍ사용하여 왔다. 아울러 금ㆍ은ㆍ동ㆍ철의 금속제 공업문화가 시대발전에 따라 더욱 발전하여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금속공예기법, 실용적인 청동제 무기ㆍ장신구에 이르기까지 금속공예품의 사용범위가 확대되어 간 사실을 유물을 통해 밝혀 우리나라 고대의 금속공예사를 살펴보고자 한다.本論(1)기법1)주조기법(鑄造技法)가열, 용해하여 액체형태가 된 소재를 뜰에(거푸집)에 부어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금속뿐만 아니라 석고, 토기, 유리등에도 따라 오려내는 것을 말한다. 문양을 두고 바탕을 잘라 내거나(지투-地透) 바탕을 두고 문양을 잘라내는 기법이다.(문양투-文樣透)5누금세공(鏤金細工)가느다란 선이나 작은 알갱이를 만들어 표면에 붙여서 장식하는 기법{ 이난영(李蘭暎),『한국고대금속공예연구』,일지사, 1992, p191~256(2)청동기시대우리나라에서 언제 청동기가 나타나는가 하는 것은 아직 확실치 않지만, 서기전 500년경이면 국산 청동기의 주조(鑄造)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고 믿어도 틀림없을 것이다. 우리 선사시대의 청동기로는 무기ㆍ의기(儀器)ㆍ장신구들이 있으며, 그 기원이나 내력을 알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출처를 알 수 없는 독특한 종류도 있다.{ 김원용(金元龍),『한국 고미술의 이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p193~1941)무기l동검동검은 길이 30~40㎝의 보통 세형 동검이라고 불리는 단검이며 비교적 좁은 검신에 슴베{ (칼 낫 호미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부분.가 매우 짧은 형식으로서 대부분의 경우 주석이 20% 정도 들어 있는 백동(白銅)으로 예리하게 주조되어 있다. 동검은 요령식(비파형)과 좁은식(세형)의 두 형식으로 갈라지며 비파형은 청동기시대에 지금의 중국 요령성지방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수위 고조선 영역에 사용된 형식으로 검신이 가운데쯤에서 허리처럼 가늘어 졌다가 하반부는 불룩하게 벌어져서 그 모양이 바이올린 또는 비파를 닮고 있다.초기 철기시대로 들어가면서 요령식 동검은 위, 아래가 가늘어지고 허리의 패어진 부분은 그 흔적만 남는 우리나라 특유의 보다 날씬한 형태를 지닌「좁은 검(세형)」형식으로 바뀌었다.{ 김원용(金元龍)ㆍ안휘준(安輝濬), 『한국미술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p312동과(銅戈)과(戈)는 목이 긴 낫과 비슷한 중국 기원의 무기로서 앞으로 뻗은 과신(戈身)을「원(援)」, 그것이 ㄱ자로 꺾여서 내려오는 부분을「호(胡)」, 원의 뒤쪽의 뾰족하게 뻗은 부분을「내(內)」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과(戈)는「호(胡)」가 없어져 단검(短劍)과 같은 한 것이다. 이와 같이 간략한 수법인 고구려 금동관은 어쩌면 삼국시대 금동관의 시원(始原)양식인지도 모른다. 고분 벽화에 나타난 무인의 투구의 기초 형태 같은 점이 퍽 흥미로운 것이며, 고구려 역대의 어는 왕이 썼으리라고 믿어진다. 고구려에서 금동제 관모는 거의 없었으나 이 금동관이 발견됨으로써 고구려에 관모다운 것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유일한 것이다. { 황호근, 『한국장신구사』, 서문당, 1996, p72 73다음에 중화군 진파리(中和郡 眞坡里)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 투각 용봉문 관형장식(金銅 透刻 龍鳳文 冠形裝飾)이 있다. 이 장식은 비행기의 미익(尾翼){ 항공기의 동체(胴體) 뒤 꼬리 부분의 수직 및 수평 날개. 꼬리 날개.같은 투각 금판을 좌우에서 붙여서 모자 같은 형태를 만들었다. 중앙에는 연주(聯珠){ 여러 개의 구슬을 꿰어서 이음, 또는 이은 그 구슬.를 두른 소원권(小圓圈)안에 그림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은 삼족조(三足鳥)를 새긴 것이다. 그 위에 윤곽이 선명하지 않으나 봉황이 나래를 펴고 않아 있고 그 밑으로는 용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더욱 봉황과 용 사이에 투각된 비운(飛雲)은 유려하기 그지없으며 연주문(蓮珠文)의 배지(背地)에 남청색의 비단딱정벌레의 나래를 부착시켜 한층 아름다운 광택이 나타나게 하였다.{ 황호근, 『한국장신구사』, 서문당, 1996, p73 74또 하나 평양 청암리(淸岩里)출토라고 전하는 금동 투각관이 있다. 이 관은 투각당초문대(透刻唐草文帶)의 좌우에 장식용 리본을 늘어뜨리게 하고 위에는 5개의 끝이 불꽃처럼 뻗은 인동문(忍銅文) 장식을 돌리는 형식이며 삼국시대나 일본 아스카 시대의 금동보살(金銅菩薩)중에 이러한 형식의 관을 쓰고 끈으로 맨 모습이 흔히 나오고 있다. 이상의 관 또는 관식에 나타나 있는 특징은 문양의 구성이 동적이라는 점이다.{ 김원용(金元龍), 안휘준(安輝濬), 『한국 미술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p63이에 비하여 백제의 관은 그 형식이 다르다. 나주군 반남면 신촌리 옹관(甕棺)새의 깃털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다음에 신라시대 관식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그 형식이 주목된다. 가장 많이 발견되는 형식이 긴 날개를 폈을 뿐 날개가 붙어 있는 몸체의 표현이 확실하지 않은 것과 또 하나는 날개는 작으나 몸이 비교적 잘 표현되어 있는 형식이 있는데, 이 두 가지 형식은 모두 새를 상징한 것으로 해석된다. 어느 것이나 투각문양(透刻文樣)이 있고 영락이 달려있다. 이러한 형태의 관식은 관 안에 시신이 쓰고 있는 상태로 발견되지 않고 관 밖에 다른 유물들과 함께 매장되었다는 점에서 삼한시대부터 유행하던 조류 숭배 사상에서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홍섭(秦弘燮), 『한국금속공예』, 일지사, 1993, p17~18끝으로 가야시대의 관을 살펴보면 대개가 금동관이고 형식은 출자형과 녹각형(鹿角形)의 입화식(立花飾)이 있는 것이지만, 고령출토로 전하는 금관은 대륜에 초화형장식(草花刑裝飾)을 4개 세운 형식인데, 곡옥과 영락을 매달고 윤곽에 2조의 띠를 두르고 그 사이에 능형문(菱刑文)을 점선조 기법으로 시문하였다.오쿠라수집품 가운데 창녕 지방 출토로 전하는 금동제 투조 관식은 투조한 사이에 영락을 매달고, 바탕은 점선조 기법으로 선을 긋고 있다. 또 경상북도 출토 금제관은 대륜 위에 날개 모양의 입식이 다 가닥 있는데, 한쪽에 보주형의 작은 입식을 세우고 대륜의 상ㆍ하단에는 2조의 윤곽을 긋고 그 사이에 점선조기법으로 파상문을 시문하였다.고령 출토의 김동현 옹의 수집품 가운데 은제조익형관식(銀製鳥翼形冠飾)은 신라의 금제 조익형 관식과 다른 바 없는 형식으로 가장자리에 2조의 점선문대가 뒷면에서 앞쪽으로 두들겨 둘러지고 정면의 장식판에는 방형의 무늬를 역시 2조의 점문으로 시문하고 있다.복천동 출토의 금동관은 관대에 3개의 입식이 있는 간결한 형식이나, 관대의 주연에는 모조기법에 의한 선조가 둘러지고 있다. 또 임당동 출토 금동관은 관대를 둘러싸고 출자형의 입식이 세워져 있어 신라계의 관식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은제의 과대와 요패가 출토되었다.{형(華籠形) 수하식 ㆍ 산치자형(山梔子形) 수하식 ㆍ 다지식(多枝式) 수하식 ㆍ 혼합용(混合用 ) 수하식 등.이상은 신라 귀고리의 형으로서 고분 출토의 것이 대부분이다..영형 수하식 귀고리: 가락지 같은 인상이 드는 가는 주환(主環)에 작은 유환을 달고 그 밑에 작은 금방울(鈴)을 달아 매우 간략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경남 거창(居昌) 지방에서 출토되었다 하지만 확실치 않다. 수하식이 방울 같은 모양을 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산치자형 수하식 귀고리: 남부 지방에서 출토된 귀고리이나 수하식이 산에서 체취할 수 있는 치자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주환은 거의 정원이며 치자 같은 수하식에 금루 세공법으로 금립을 부착시켜 보기에 매우 아름답다..목실형 수하식 귀고리: 목실형은 나무 열매 같은 모양의 수하식이 달려 있다. 가는 세환에 작은 유환이 연결되고 다시 작은 방울의 중간식에 목실형 수하식이 두개 달려 있다. 퍽 이색적인 수하식 귀고리로 역시 경남 거창 지방에서 발견된 것이다.{ 황호근, 『한국장신구사』, 서문당, 1996, p161 1623과대( 帶)직물로 된 띠의 표면에 사각형의 조작(造作) 금속판(金屬板)을 조그만 못으로 박은 것이며, 이것은 그 기원이 어디였는지는 모르나 우리 삼국시대 것은 중국의 과대에서 받아온 것이 틀림없다.{ 김원용, 『한국 고미술의 이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p210삼국시대 고분에서는 과대와 요패가 많이 발견되고 있지만 허리띠의 사용은 상당히 오랬을 것이고, 청동기 시대에는 이미 정교한 장식품을 달아서 허리띠를 고정시켰다.{ 진홍섭, 『한국 금속공예』, 대한미술출판사, 1993, p27~28고구려의 과대는 완형(完形)으로 발견된 것은 없고 평남 대동군 시족면 호남리(大同郡柴足面湖南里)에서 어느 정도 형태를 알 수 있는 과판하나가 발견되었다. 이 과판은 방형인데 안에 또 하나의 방권(方圈)을 돌리고 외주(外周)와의 사이에는 연주문(聯珠文)을 투각하였고 방권 안에는 고사리무늬 같은 문양을 투각하여 드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