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제 1편 서 론-미중 관계의 중요성제 2편 본 론제 1장 미중관계의 전략적 협력관계로의 변화1. 데탕트 이전의 미중관계개설과 중소분쟁2. 중-미 이해관계의 합치와 관계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비밀 외교3. ‘구동존이’ 방식의 합의와 상해 공동성명제 2장 동북아시아의 4강-다극체제의 출현1. 중.소분쟁제 3장 데탕트 이후 미-중 관계1. 데탕트 이후 냉전시대(~1989)2. 탈냉전 시기의 미-중 관계3. 미중관계의 전략적 경쟁관계로의 전환배경(2001~)제 4장 데탕트1. 데탕트 detente의 의미2. 데탕트의 시대 ( 1969년 - 1979년 )가. 닉슨독트린나. 주요 사건다. 미-소가 데탕트를 추구한 이유3. 데탕트 이후 세계정세 변화제 3편 결 론*참고문헌*제 1편 서 론미중 관계의 중요성오늘날 우리는 과거와 비교하여 여러 측면에서 훨씬 깊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바, 이러한 불확실성의 정도는 특히 국제관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관계의 기본 구조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을 축으로 하는 냉전체제로서, 여기에서는 미국과 소련이 중심이 되어 형성된 두 진영(블럭)이 존재하게 되고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 특히 국력이 미약함으로써 국제 관계의 영향을 크게 받는 국가들은 자연스럽게 이 두 진영 가운데 어느 하나에 가담함으로써 스스로의 안전 보장을 도모하고 나아가 경제적 활동의 장으로 삼았던 것이다.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경제를 지배하게 됨으로써 이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정치에 있어서도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계의 일등국가’ ‘세계의 경찰국가’ 로 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과거 영국이나 프랑스가 행사했던 국제정치 또는 외교에 있어서의 결정력이나 영향력은 쇠퇴하고 그 힘의 공백을 미국이 메우게 되었고, 이러한 역학 관계의 변화는 종전 후 곧 전개되기 시작한 동서냉전 체제에서 미국을 서방진영의 맹주로 등장시키게 했다.더욱이 미국과 소련의 대결로 압축되발표는 사실상 중국에 대한 경고이며 위협이라고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중국의 영토주권도 신성 불가침한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대의를 위해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는 결국 소련이 사회주의 진영을 대표하여 중국을 무력으로 응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브레지네프의 제한주권론은 중국에게 명백한 협박이고 위협이었다. 더구나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 사태를 무력 진압한 이후 소련 공군 정예부대를 중소 국경지대로 이동 배치하면서 군사적으로 중국을 공공연히 압박하였다. 이와 같이 소련의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력이 가중되는 시점에 1969년 3월 우수리 강변에 있는 작은 섬, 珍寶島(진보도)에서 양국의 국경수비대간에 유혈 무력 충돌사건이 발생하여 양국간의 전면전의 위험성이 부각되었다.사실 중국의 안보적 위기상황은 이미 60년대 중반이후 공공연한 지적되어 온 사실이었다. 중소분쟁이 격화되면서 중국은 미국과 소련이란 두 개의 초강대국을 모두 적대 국가로 상대해야 하는 안보적 취약점을 안고 있었다. 따라서 문화대혁명 직전에 일부 외교 전문가와 군사 전략가들 간에는 소련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이런 중국의 안보적 취약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그러나 소련의 ‘사회제국주의’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공통적인 경계심 때문에, 그리고 중국의 잠재적 도전에 대한 소련 지도부의 위기의식 때문에, 중소관계는 1960년대 이후에 개선되기보다는 오히려 악화되었다. 소련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보다는 오히려 미국과의 데이탕를 통해서, 그리고 중국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을 포위 압박하려고 하였다. 따라서 1960년대 중반이후 모택동은 한편으로는 중국이 당면한 안보적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앞에서 간략히 언급한 ‘제 3 전선’ 전략을 추진하였고, 또 한편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전략적 고립에서 일거에 탈피하는 극적인 방안을 내심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의도에서 모택동은 1969년 이후 미국 측에 간접적으로 관계 개선 의사를 전달하였다.모택동의 서 민족 자결의 원칙에 입각하여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며,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북한의 한반도 통일방안을 지지한다는 종전의 입장을 재확인하고, 제3세계에 대해 중국은 체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영토주권의 존중 5원칙에 입각해서 관계 개선의 용의가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었다.이처럼 미국과 중국은 기존의 입장을 반복하고, 자신들의 핵심적 동맹세력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중국과 미국은 다음과 같은 사항에 합의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즉, 양국간의 관계 정상화를 실현하기 위해 협상을 계속하는 것이 양국의 이해에 합치된다는 점, 군사적 갈등 감소를 기원한다는 점,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상대방을 배제하기 위해 제3국과 협상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란 점, 그리고 강대국간의 세력분할이 세계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합의했다는 것이다.특히 중요한 문제는 대만문제에 대한 합의 또는 모호한 합의라고 할 수 있는데, 대만문제에 대해서도 중국과 미국은 각기 자신들의 입장을 개별적으로 다음과 같이 적시하였다. 중국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다. 즉, 중화인민공화국이 유일합법정부이며, 대만은 중국의 한 지방으로 모국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대만 해방은 중국 내부 문제로서 어느 나라도 이에 간여할 권한이 없다고 선언하였다. 이와 동시에 모든 미국의 병력과 군사시설은 대만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중국정부는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 ‘하나의 중국, 두 개의 정부 (one China, two governments),' '두개의 중국 (two Chinas),' 그리고 '대만 독립 (independent Taiwan)'등에 모두 반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다.이처럼 중국 정부는 대만 문제에 대한 종래의 입장을 그대로 재확인하였다. 이런 중국의 입장에 대해 미국은 다음과 같이 대만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정리하여 제시하였다. 즉, 대만과 대만해협 양안의 중국인들에게 중국은 하나이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점을 미국이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다. 서로 다른 국가적 이익은 문화적 사상적 차이보다 더 큰 분열의 요인 된 것이었다. 그리고 중소분쟁은 공산주의 블럭의 해체로 이어지게 되었다.핸더슨(Geoffrey F. Henderson)과 그의 동료들은 구조적인 시각에서 중소분쟁을 소련의 유일적 지배에 대한 도전으로 보았으며 소련의 공산주의의 신화가 끝난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사실상 중국은 1960년 11월에 있은 제81차 공산당 회의에서 소련의 정책에 반대할 수 있는 중국의 권리를 정당화 하였으며, 또 소련은 타공산국가들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다며 공산주의 국가들은 소련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이 다국주의원리(polycentrism)에 입각한 독자적인 노선을 견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주장했다.중소분쟁의 원인에 대한 다른 분석으로, 윌리암 그리피스(William E. Griffith)는 "중소분쟁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초강대국화를 기도한 모택동의 생각과 결단 그리고 소련이 그것을 저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랜트너(Lentner)교수의 동북아시아 권력구조에 대한 분석에 의하면, 중국은 소련과의 분쟁을 통하여 소련의 영향권하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1894년에서 1895년 사이에 있었던 청일전쟁에서의 패배이후 상실했던 동북아시아에서의 주요 세력으로서의 지위를 되찾게 되었다고 주장한다.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강대국으로의 부상은 동북아의 기본적인 권력구조에 변화를 가져 왔으며 이러한 변화에 따라 주위 국가들과 새로운 권력구조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한 이러한 변화는 여러가지 외교적 선택의 길이 열리게 되었음으로 미국은 중국과 소련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게 되었고 중국으로서도 긴장완화정책을 추구했던 소련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지난날 적성국가였던 미국이나 일본같은 국가들과 새로운 제휴를 형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불행히도 냉전으로 인하여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 왔던 미국과 중국이 중소분쟁으로 발생한 새로운 동북아시아의 권력구조의 논리적 변화에 따라 새로운 안문사태 이후 처음으로 회담을 가짐으로써 양국간의 교류는 다시 재개 되었다. 1994년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최혜국대우와 인권문제를 연계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하였고, 이후부터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양국은 무역, 인권, 군 통제 등에서 접촉과 대화를 지속해 나가기로 하였다.1997년 10월에 중국의 강택민 주석이 미국을 방문하고 1998년 6월에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함으로써 그 간의 경색된 관계는 청산되고 안정적인 관계발전의 기반을 조성하게 되었다.3. 미중관계의 전략적 경쟁관계로의 전환배경(2001~)2001년 새롭게 출범한 미국 부시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와는 확실히 다른 동아시아 정책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미일 동맹과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동아시아 안보구도를 구축하고, 클린턴 시대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서 “전략적 경쟁관계(strategic competition)"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수정하면서 동아시아에서 중국과의 갈등상태에 들어갔다. 부시 행정부의 ‘현실적이고 일방적인’ 외교정책이 추진됨에 따라 21세기 국제관계의 중심축으로 간주되고 있는 미중관계가 갈등의 중심에 놓이게 됐다. 우선 미국의 미사일 방어계획(MD: Missile Defense Plan)의 추진과 미국의 대만에 대한 첨단무기 판매문제는 2001년 초반 미중관계를 긴장시켰다. 또한 미국은 대만문제에 대해 과거의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 중국이 대만에 무력을 행사하는 경우, 미국도 무력을 사용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서 중국과 갈등을 증폭시켜왔다.더욱이 2001년 4월 1일에 발생한 미국의 최첨단 정찰기 EP-3와 중국 전투기의 공중충돌, 그로 인한 정찰기의 중국 해남도 불시착과 전투기의 실종, 미 정찰기의 24명 승무원 처리 문제에서 발생한 미-중 관계의 긴장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후 작게는 미중관계, 그리고 크게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과 세계전략에 대해서 재고하게 만들고 있다.중국은 미국이 는 것
《송가 황조를 통해서 본 중국》서론이 영화는 전에 보았던 중국이라는 나라의 변화 속에서 크게 흔들리던 소시민의 삶을 표현했던 『인생』과는 다르게 그 시기에 중국을 이끌어가던 세 자매에 대한 이야기였다. 삶속에서 허둥지둥하던 부귀의 모습과는 반대로 그들은 중국의 중심에 있었다. 하층민의 삶속에서 바라보았던 중국의 모습과 상층민의 모습으로 바라본 중국은 사실 조금은 다르게 여겨지기도 했다. 애령, 경령, 미령은 우리가 지금껏 알아온 역사 속에서 각각의 중국의 주요한 인물들의 부인의 모습으로, 신여성의 모습으로, 혁명 속에서 그 나라를 이끌어 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알아온 역사에서 벗어나 송씨 가문의 세 자매를 중심으로 그 역사를 살펴본 것은 매우 흥미로웠고, 새로운 일이었다. 또한 같은 여성의 입장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중국의 근?현대사를 이해하는데,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송씨 가문에 딸이 셋 있었는데, 하나는 돈을 사랑했고, 하나는 권력을 사랑했고, 하나는 중국을 사랑했다- 이 말처럼 세 자매와 『송가황조』란 영화를 잘 표현한 말은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이처럼 그 시대를 살아갔다.본론청조가 붕괴된 후, 중국은 많은 혼란과 격동의 시대를 맞게 된다. 손문과 그의 절친한 친구인 송사리는 11번의 혁명으로 중화민국을 수립한다. 송사리에게는 애령, 경령, 미령의 세 자매가 있다. 그는 신 사고관을 가진 자로서 세 딸을 일찍이 해외에 유학 보내고 세 자매는 미국에서 신교육을 받고 돌아온다. 그는 돌아온 세 자매에게 신 중국 건설에 참여해 줄 것을 부탁한다. 첫째딸 애령은 손문을 도와 일하던 중 부자이며 공자의 72대 후손인 공상희와 결혼해 은행업을 시작하고, 중국의 경제력을 장악한다. 둘째딸 경령은 애령의 일을 대신해 손문을 돕게되고, 아버지의 친구인 그와 사랑을 하게 된다.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 그녀는 손문과 결혼하게 된다. 이에 경령은 그의 혁명적 동지로써 일생을 살게 되고, 그가 죽어서도 그 뒤를 이어 중국을 위해 삶을 산다. 세 딸 중 막내 미령은 손문의 부하이면서 당시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 중이었으며, 후에 국민당의 위원장이자 대만의 초대 총통을 지낸 장개석(蔣介石)과 결혼하게 된다. 이처럼 세 자매는 부와 권력의 중심에서 중국의 근 현대사를 이끌어가게 된다. 그러나 손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중국은 혼란에 빠지고 그는 국부로써 칭송받게 된다. 남편을 잃고 아버지를 잃은 미령은 슬픔에 빠지지만 다시 일어난다.손문의 뒤를 이은 장개석은 많은 공산주의자들을 학살하는등 경령과 이념의 차이로 갈등을 빚는다. 어지러운 세상속에서 이념의 차이로 세 자매 사이도 좋지 않게 된다. 그 후에 서안사변에서 감금된 장개석의 목숨을 위해 국공합작으로 잠시 경령과 미령은 손을 잡는다. 그러나 국공합작 이후 애령이 홍콩으로 떠나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싸움으로 공산당이 승리. 결국 장개석과 미령이 중국을 떠나 대만으로 망명하면서, 세 자매는 따로 따로 떨어져 삶을 살게된다.신 사고관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애령, 경령, 미령은 신여성으로써 그들의 가치관과 이념에 따라 삶을 살아간다. 그들은 그렇게 그들의 가치관에 맞는 사랑도 찾으며, 그들의 삶속에서 중국도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 픽션같은 삶을 살았다. 그들의 살았던 삶속에서 그들이 다른 삶을 살았으면 과연 중국은 지금의 중국에서 어떻게 변하게 되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렇듯이 그들의 살았던 시대는 매우 혼란스러웠고, 그 혼란스러움 가운데에 그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어릴 적에는 그렇게 늘 함께 하던 그들도 나이를 먹고, 각자 사랑을 찾으면서 서서히 생각이나 이념이 변화되고 있었다. 물론 이에는 그들의 남자들이 큰 역할을 했음도 짐작 할 수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았는데 영화에서는 전체적으로 손문과 경령을 매우 추대하고 있었다. 그들을 국부와 국모로 추대하고 있었던 것처럼 손문은 중국인들의 영웅이었다.이 영화에서 경령이 중국을 사랑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내용을 찾으면, 처음으로 중국에서 직접 만든 비행기 시범운전이 있는데, 경령은 자진하여 장개석과 탈것을 모든 군인들 앞에서 밝히는 장면이다. 이를 염려한 손문의 말에 경령은 대답한다. “저도 중국이 만든 거예요. 중국제에 자신 없으세요?” 이 말을 통해 경령의 중국애와 중국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이런 확고한 신념에 힘입어 비행기는 성공적으로 하늘을 날아다닌다.경령의 이런 모습과는 다르게 영화 속에서 애령과 미령의 모습은 다소 부와 권력에 중점을 두고 있는 모습이다. 애령이 부자남편을 선택했다는 사실과 미령과 장개석의 결혼을 통해 송씨 가문의 명예와 장개석의 권력, 자신의 집안의 부를 합치면 정말 거대한 힘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그녀의 생각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듯 애령과 그녀의 남편은 신사고적인 생각으로 중국재정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령은 미모와 재능으로 널리 알려진 여성이었으며, 그의 가문과 그녀에게 장개석은 호감을 표하게 되며, 그녀도 그의 정치적 위치등에 매혹되어 둘은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녀의 전체적인 인물 특성이 나타난다. 미령의 남편 장개석은 정말로 군인이라고 표현되는 인물로 그 사고 자체가 군인정신의 철저함 속에서 나오고 있다고 보인다. 그는 손문의 정책과는 반대로 공산주의의 타도아래 많은 공산주의자들을 대거 처형했다. 이는 많은 시민들의 폭동과 대모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이 영화에서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경령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지금의 중국시대상황과 크게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는데 후에 중국이 공산주의 정권이 힘을 잡게 되면서 장개석과 미령은 대만으로 망명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이 영화가 상당부분 중국에서 촬영했는데, 대만에서 국부로 추앙 받는 손문과 혁명적인 장개석의 이야기가 함께 나오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이 과정에서 장개석과 미령에 관한 많은 장면이 잘려 나간 것에도 이를 알 수 잇는 것이다.사실 이 영화가 송씨 가문의 세 자매를 통해 중국의 근?현대사를 표현한 것은 여성의 눈으로 본 역사이며, 또한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접근했다는 점에서 칭찬할 만 하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들의 나라의 정치?경제?사회의 활동상이 잘 나타나고 있지 않음이다. 나는 후에 여러 자료를 보아서 애령이 실제로 정치나 경제 방면에 수단가로 알려졌음을 알 수 있었는데, 영화 속에서 애령의 뛰어난 경제 수단은 단순히 부에 대한 욕심을 표현했다고 느껴지고, 상대적으로 비중이 약하게 그려져서 좀 아쉽다는 것이다. 또한 경령조차도 남편을 통한 활약상이 대부분이었고 남편이 죽고 난 후의 그녀의 활약상을 많이 보여 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막내인 미령은 장개석의 후처로 중국 정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력가로서의 남자 못지 않은 배짱과 야심으로 국제 정치 무대에서 활약했다고 했는데 영화 속에서 미령의 그런 모습은 단지 서안사변 중 감금된 장개석을 구출 할 때의 모습 말고는 없다. 그리고 후에 공산당의 승리로 끝난 내전으로 인해 대만으로 건너간 장개석을 도와 대외적인 로비스트로 활약했다는 실제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영화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단순히 언니가 국모처럼 떠 받들어져있는 것을 부러워하고, 자신도 이에 권력을 선택하게 하는 면을 초점을 많이 맞추었던 것처럼 보인다.
人生萬事 塞翁之馬(장예모의 人生을 보고)1. 역사적 배경영화 ‘인생’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한창이던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중국의 모습을 담고 있다. 시간(역사)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이 영화는 크게 세단계로 나눌 수가 있는데 영화 초반부인 1940년대는 마오쩌둥의 공산군과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대립인, 이른바 ‘국공내전(國共內戰)’으로 영화 초반부는 형성이 된다. 중반부에 해당하는 1950년대는 중국 본토의 정권을 장악한 마오쩌둥이 경제성장을 추진하기 위해 벌인 ‘대약진 운동’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 후반부인 1960년대는 ‘대약진 운동’의 실패와 공산당 내 권력투쟁의 일환으로 시작된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이 역시 마오쩌둥 주도하에 벌어진 사건이다. 이처럼 영화 ‘인생’은 중국이 공산화가 되는 과정과 공산화 이후 공산당 내의 갈등과 권력투쟁 등으로 희생양이 되는 국민들의 모습을 주인공 부귀의 눈으로 그려냈다.2. 영화 줄거리1940년대 중국.마을 지주의 아들로 풍족한 생활을 하는 주인공 ‘부귀’는 밤을 새며 도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엔 집에 돌아와 잠을 자며 다시 저녁이 되면 도박장을 찾는 도박광이다. 가족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쉽사리 도박에서 손을 끊지 못하고 그런 그에게 그림자 극 단장 ‘용이’가 그의 집을 차지할 목적으로 접근해온다. 막대한 그의 재산이 용이와의 도박으로 모두 탕진되고, 그런 그를 한사코 만류하던 그의 부인 ‘가진’은 그의 딸 ‘봉하’와 뱃속의 아기를 데리고 친정집으로 가버린다. 부귀의 집은 용이에게 넘어가고 충격을 받은 그의 아버지는 충격으로 죽게 된다. 무일푼 빈털터리가 된 부귀는 좌절감을 맛보며 병든 노모(老母)를 모신 채 쓸쓸히 장사를 하던 중 집을 나갔던 그의 부인이 딸과 아들 ‘유경’을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여기에 힘을 얻은 부귀는 열심히 살 목적으로 그의 집을 빼앗은 용이에게 찾아가 장사할 목적으로 돈을 빌리지만 용이는 돈 대신 그가 해왔던 ‘그림자 극’ 도구를 부귀에게 빌려주게 된다.그림자 극 단원이며 예전 부귀의 수발을 들던 춘생과 함께 새롭게 시작된 부귀의 그림자 극 생활은 지방을 돌아다니며 공연할 만큼 충실했으나 공산당과 국민당의 전쟁에 휘말리며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결국 공산당의 포로로 잡히게 되나 그들 혁명군을 위해 그림자 극을 상연하게 되어 도리어 명예훈장을 받고 귀향하게 된다. 그의 마을로 돌아 온 부귀는 새벽부터 물 배달을 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그의 부인 가진과 열병을 앓아 벙어리가 된 딸 봉하와 다시금 재회하게 된다.1950년대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다시 집으로 돌아 온 부귀는 병든 노모의 죽음소식을 듣고 그동안 힘겨웠던 혁명군 시절의 일을 가족과 나누지만 그럭저럭 소박하고 행복한 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마을 읍장 및 몇몇 주민들이 찾아와 혁명군을 위해 힘쓰고 무사귀환한 그에게 축하를 한다. 춘생은 혁명군에 남아 운전병 일을 한다는 이야기 등을 전하던 부귀는 자신의 집을 빼앗은 용이가 공산당이 대대적으로 실시하는 지주 축출에 포함되어 재판받는 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재산몰수를 거부하던 용이는 총살을 당하게 되고 그를 목격한 부귀는 집에 돌아와 도박으로 재산을 잃지 않았었더라면 사형을 당한 건 자신이었을 거란 생각을 하며 부인과 안도를 하게 된다.중국 전체의 실권을 장악한 마오쩌둥이 벌인 ‘대약진 운동’에 부귀의 마을은 철을 회수하기에 바쁘다. 밥 지을 솥까지도 회수한 그의 마을에 제련공장이 들어서게 되고 부귀는 공장에서 그림자 극 상연을 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그의 아들 유경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구장님의 학교방문에 부귀는 억지로 그의 아들을 보채어 학교를 보내지만 담벼락 밑에서 잠을 자던 유경은 구장의 과실로 차와 담벼락에 깔려 죽게 된다. 싸늘한 피의 주검으로 돌아 온 부귀와 가진은 오열을 하고 유경의 무덤 앞에서 가진은 아들의 죽음이 부귀의 탓이라며 흐느낀다. 유경의 장례에 구장이 방문을 하게 되고, 자신의 아들을 죽인 구장이 옛 동료 춘생임을 알고 부귀와 가진은 반길 틈도 없이 그를 원망하게 된다. ‘목숨 하나를 빚진’ 춘생은 그렇게 돌아간다.1960년 6월 프로레탈리아 문화대혁명.제국주의적 산물을 없애자 전국적으로 벌어진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부귀는 자신의 삶의 고단함이 묻어있는 그림자 극 도구를 불태워 버리게 되고 마을 읍장과 그의 딸 봉하의 혼담을 나누게 된다. 봉하와 맞선을 보게 된 만이희는 3대째 환풍기 수리를 하는 열성적인 공산당원이다. 장애인인 자신의 딸과 마찬가지로 만이희 역시 오른다리를 저는 장애인이지만 부귀와 가진은 그가 공산당 간부라는 점과 봉하 역시 싫은 기색이 아니라는 점에 맘에 들어 한다. 며칠 후 만이희는 공장직원들과 함께 부귀의 집에 찾아와 지붕을 뜯고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해준다. 화들짝 놀란 부귀부부는 황급히 집으로 가지만 만이희와 봉하가 다정스레 벽에 마오쩌둥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며 흐뭇해한다. 그렇게 그 둘은 혼인을 하게 되고 부귀의 집엔 부귀와 가진 둘만 남게 된다. 수개월 후 봉하는 임신을 하게 되고 가족 모두의 축복 속에 병원에 입원하여 출산하게 되지만 어찌된 것인지 병원엔 팔뚝에 붉은 완장을 찬 홍위병들 뿐이다. 기존의 의사와 교수들은 문화대혁명이란 붉은 깃발 아래 모두 축출이 되고 어린 간호원들이 병원을 점거하여 모든 진료를 도맡아 하는 것에 불안을 느낀 부귀는 만이희에게 의사를 모셔 오라고 한다. 목에 푯말을 건 늙은 의사는 홍위병들에게 저지를 당하지만 만이희의 기치로 봉하의 출산을 돕게 된다.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늙은 의사에게 부귀는 만두를 사다준다. 이 때 봉하는 아들을 출산하게 되고 그 기쁨도 잠시, 갑작스런 봉하의 하혈에 어린 홍위병들은 혼비백산 어찌할 바를 모른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모셔온 늙은 의사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 역시 만두를 급히 먹은 탓에 체하여 정신을 잃고 그렇게 부귀와 가진의 딸 봉하는 손도 못 써보고 죽게 된다.6년 후 부귀와 가진은 만이희와 자신들의 외손자와 봉하의 무덤을 찾는다. 봉하의 무덤은 먼저 하늘나라로 간 유경 무덤과 나란히 있다. 이젠 자식을 잃은 슬픔의 눈물도 흘러버린 세월에 늙어버린 그들에겐 없어지고 담담한 농담만이 있을 뿐이다. 가진은 병들어 있고 그런 쓸쓸한 노부부에게 만이희와 그들의 손자만이 기쁨이다. 부귀는 집에 돌아와 자신의 삶이 배어있는 그림자 극 도구상자를 꺼낸다. 손자를 위해 병아리 집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만이희가 차린 저녁식사가 들어오고 그들은 또 그렇게 소박한 저녁을 보낸다.3. 영화 감상과 비평근거여화의 소설 「活着」을 각색하여 만든 이 영화는 중국 영화계의 거장 장예모가 감독을 하고 갈우와 공리가 주연을 한 1994년도 영화이다. 중국 근대사에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인 중국의 공산화, 대약진 운동, 문화 대혁명 등을 지주 계급에서 몰락한 서민의 시각으로 그려내어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한 인간의 일생에서 나타나는 달콤한 행복과 쓰디 쓴 좌절 등을 순박하고 자연스럽게 그려내었다.인생만사 새옹지마. 행복에 젖어있는 부귀는 자신의 도박으로 인해 집안이 몰락하는 광경을 그저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능력한 인간이다. 하지만 빈털터리가 되고 해체된 가정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고 그림자 극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여기서 그림자 극은 부귀 자신이 처해있는 현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며 부귀 자신의 심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풍족한 현 상황), 발을 붙잡고 매달리는 여자를 외면하는 남자(도박을 말리다 떠나버리는 가진), 남 ? 여의 재회(돌아온 가진), 행복한 장면(소박한 그들만의 행복), 관운장의 싸움장면(국공내전의 묘사) 등을 보면 알 수가 있다.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영화 내에서 벌어지는 3번의 사건(국공내전, 대약진 운동, 문화 대혁명)을 주인공 부귀가 겪을 때마다 그의 소중한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이다. 국공내전 때에는 그의 병든 노모가 죽고 그의 딸이 벙어리가 되었고 대약진 운동 때에는 그의 아들 유경이 차에 깔려 죽었으며 문화 대혁명이 벌어지자 그의 딸 봉하가 아들을 낳자마자 죽어버렸다. 이 죽음들이 의미하는 것은 주인공 부귀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시대의 희생양, 즉 이데올로기에 희생이 된 것이다. 여기서 희생의 매개체로 만두가 등장하는데 아들 유경이 죽기 직전 가진은 유경에게 만두를 도시락으로 싸주며, 딸 봉하가 죽을 때에도 만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다. 도움을 얻기 위해 데려온 늙은 의사는 3일간 굶었다 하여 만두를 먹이는데 봉하를 치료할 수 있었음에도 이 만두로 인해 그의 딸의 죽음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만두는 중국 공산당에서 배급해주는 것으로서 이데올로기의 산물 중에 하나이다. 게다가 봉하가 남기고 간 그의 손자의 아명(兒名)이 ‘만두’임은 그런 공산주의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는 듯 하다.
1. 한국소비자보호원○ 설립 목적- 한국소비자보호원은 정부의 소비자보호시책을 총괄적으로 추진하는 기관으로, 1986년 개정(제2차)된 소비자보호법에 의해 1987년 7월 1일에 설립된 재정경제부 산하 특수공익법인- 소비자의 기본 권익을 보호하고 소비생활의 합리화를 도모하며 나아가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 주요 기능 (소비자보호법 제 28조)- 소비자상담 및 피해구제- 물품?용역의 규격?품질?안전성 등에 관한 시험검사 및 조사- 소비자보호 관련 제도 및 정책의 연구?건의- 소비생활의 합리화 및 안전을 위한 각종 정보수집 및 제공- 소비자보호 관련 교육연수 및 홍보- 국민생활 향상을 위한 종합적 조사?연구-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소비자보호를 위해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의뢰한 조사, 심의 등의 업무- 기타 소비자보호 관련 업무○ 기구 도표○ 주소, 연락처 및 온라인 (홈페이지)- 서울특별시 서초구 염곡동 300-4 우)137-700- 대표전화 02-3460-3000- http://www.cpb.or.kr2. 소비자보호원 사이버 소비자 센터○ 설립 목적- 2000년 7월에 개설된 사이버소비자센터는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제반 소비자문제를 탐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며, 소비자의 권익 신장에 기여- 특히 인터넷의 이용 증가, 디지털 경제의 도래 및 전자상거래의 확산에 따라 새롭게 대두되는 소비자문제에 대해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응책 마련이 중점 업무○ 주요 기능- 전자상거래를 포함한 온라인 거래에서의 소비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의 연구와 정책 대안의 제시- 전자상거래 사업자의 허위?과장 광고, 사기?기만 거래 감시 및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실태 조사- 소비자, 사업자, 학계 및 정부 기관을 대상으로 전자상거래와 소비자보호에 관한 종합적인 소비자 정보의 제공 및 소비자 교육 실시- 전자상거래 관련 소비자 피해의 유형 및 실태를 분석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 마련- OECD, IMSN, APEC 등 국제 기구에서의 전자상거래 소비자보성과 실천을 위해 각종 캠페인을 벌여왔습니다. YWCA의 재활용운동, 시민의 모임의 모유권장 캠페인, 소비자연맹의 금연캠페인, 한국소비자교육원의 건전한 결혼문화, 전국주부교실중앙회의 과대포장 폐기물 추방 캠페인 등이 있었고 이것들은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로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습니다.-고감시활동(Monitoring)상품이나 서비스등에 관한 광고메시지가 허위, 과장적 표현을 담고 있을때 소비자를 오도, 기만할 가능성이 큽니다. 소협은 인쇄출판물 광고심의 규정을 마련, 광고물을 심의함으로써 광고의 진실성 보장과 광고 윤리를 확립하여 광고가 소비자에게 올바른 상품과 서비스 선택을 도와주는 정보제공 수단으로서의 역활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광고 풍토를 조성하고자 활동을 벌입니다.- 정책 연구 및 제안활동(Relations With Government and industry)소비자보호제도나 법을 제대로 만들기 위한 각종 정책연구와 정책제안활동을 합니다. 그 결과 소비자보호법, 물가안정에 관한 특별법, Cooling-Off제도, 공정거래 및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 식품위생법, 주택임대차보호법, 할부거래 및 방문판매에 관한 법률 등의 제정 및 개정에 소비자 단체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습니다.○ 주소, 연락처 및 온라인 (홈페이지)-서울시 용산구 한강로3가 40-427 TEL 790-4050~2 FAX 793-8082-E-mail : sohyub@consumernet.or.kr-http://www.consumernet.co.kr4.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주요 활동 분야1) 조사 연구허위과대 광고 등 불공정거래 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실태를 조사하고 식품의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조사 연구 사업을 펼치고 있다. 식품, 의약품 등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에 관련된 상품, 소비자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소비자 문제에 대한 폭넓은 조사, 연구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변의 경제, 사회, 제도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올바른 제적인 연대활동을 하고 있으며 김재옥 회장은 1985년 10월 국제유아식품행동기구의 극동 아시아지역 대표로, 1991년부터 아/태 농약 행동 망(PAN AP)의 집행이사로 활동하고 있다.-UN CSD, Rio +10 NGO Forum본 모임은 1994년이래 매년 UN에서 개최되는 CSD(지속 가능 발전 위원회)에 참여하여, UN 소비자 보호 가이드 라인의 개정, 지속 가능한 소비, 생산 지원, 지속 가능 에너지 활동 성공사례 발표 등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다.또한 2002년 8월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될 환경정상회담 준비회의에 참여하고 있으며 김재옥 회장은 8월 23일부터 개최될 ISG NGO Forum준비 국제 회장단에 선출되어 활동하고 있다.5. 대한 주부 클럽 연합회○ 목 적여성?사회?환경?소비자?민간단체로서 가정주부로 하여금 주부의 가치관을 정립시키고 숨겨진 자질과 능력을 향상시켜 건전하고 바람직한 가정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여 사회기능의 담당자로서 지역사회 발전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부서별 주요 사업- 기획연구부 (T.02 752 4228)여성,사회,환경과 관련한 각종 사업을 기획, 운영한다.매년 신사임당의 날 기념행사와 훌륭한 아버지상 등의 행사를 주관하고, 건전 소비생활 및 생활개혁 프로그램, 에너지 절약, 환경보호 관련 프로그램 그리고 IMF극복을 위한 경제살리기, 토론회 등도 실시하고 있다.- 조직훈련부 (T.02 752 4227)각종 교육과 회의를 주관한다.전국에 걸친 13개 지회, 51개 지부와 묵향회, 시문회, 자수회와 모니터, 요리, 탁아모, 파출, 간병인, 산모조리인 등의 클럽, 800여 회원들을 대상으로 연수, 강연회를 열고, 전국 지방실무자 교육, 이사회, 임원회, 지회(부) 대표자 회의 및 각 클럽별 회원회의 등을 개최한다.- 생활향상부 (T.02 752 4229)여성의 자기개발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각종 문화촵교양정보 제공 및 실습위주의 강습을 실시하여 자아개발은 물론라 올바른 사업과 활동이념을 제시하고, 우리사회에서 생활협동의 문화가 정착되도록 정책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일.2) 생협운동이 활성화되기 위해 필요한 제도개선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생협법을 제정(1998년 12월)하고, 개정하기 위한 활동과 생협의 사업과 관련한 세제의 개선활동, 생협의 공익적 활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유도하는 등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제도개선사업.3) 회원생협의 임직원과 조합원을 위한 각종 교육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교육사업은 협동조합의 중요한 활동의 하나로서, 단위 생협만으로 교육하기 어려운 전문 분야에 대한 교육과 생협운동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 등을 정기적으로 실시.4) 새롭게 생협운동을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단체를 도와 생협을 설립하고 운영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를위해 정기적으로 생협설립안내 교육과 수시로 설립상담.5) 협동조합운동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10억명의 조합원이 참여하고 있는 운동입니다. 우리나에에서도 농협을 비롯하여 다른 협동조합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국연합회는 일본의 생협운동을 비롯한 전세계 협동조합단체와 교류, 협력하고 있으며, 국내의 다른 협동조합이나 시민사회?환경단체들과 연대, 교류.6) 생협전국연합회는 앞에 다섯가지 활동들을 위해서 각종 사례를 모으고, 자료나, 책으로 출판하고 있으며, 생협의 조합원을 위한 생협신문을 발행하는 것과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등의 홍보사업.이상의 사업 계획에 따라 교육, 국제교류, 신문 발행, 서적 발간등의 일을 한다.○ 주소, 연락처 및 온라인- 서울시 마포구 망원2동 475-2 (우: 121-826)- TEL : 02-324-5488 , FAX : 02-324-5585- http://www.co-op.or.kr8. 한국 사이버 감시단○ 목 적(사)한국 사이버 감시단은 급변하는 정보화사회에 나날이 늘어나는 사이버(인터넷) 상에서의 네티즌 피해를 최소화하고 네티즌의 권리는 네티즌 스스로가 지켜가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민간단체.- '한국사이버용, 인터넷방송국에서 발생하는 이용자의 불이익이나 개인정보 유출, 채팅이나 온라인 게임에서의 언어폭력 및 사이버 성폭력과 음란 정보 피해 등 이미 다른 부서에서 다루던 것들이지만 최근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부분들로 전문화하여 조사, 연구하고 있다.○ 주소, 연락처 및 온라인- 서울시 양천구 목동 914번지 목동축구장 180호- Tel : 02 -6544 -112 / Fax : 02-653-4113- http://wwwcap.or.kr- http://cyberguard.org9. 한국 소비 생활 연구원○ 목 적급속한 사회환경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과학적인 소비자 계발에 역점을 두고 현장체험에 바탕을 둔 소비자 문제 및 건전한 소비실천확산에 중점을 둔 전문 연구교육기관이다. 한편 녹색소비자시대의 정착을 위해 환경보전실천운동의 일환으로 자원절약과 재활용의 생활화, 환경과 친화할 수 있는 소비행태 연구 및 실천, 환경친화적인 먹거리 보존과 같은 전문적인 연구활동과 생활 속의 현명한 소비자 양성에도 중점을 두며, 국제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성숙한 소비자 의식 개발과 시민활동을 계도한다. 1994년에 개원, 1999년에 재정경제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제9호)된 비영리 민간소비자 단체.○ 주요 사업1) 교육연수 : 소비자 교육프로그램 개발 및 교육- 모니터 교육(연4회)- 위탁교육 실시 (수시접수)- 각종 세미나 및 심포지엄 개최2) 조사연구 : 소비 행태 및 실태조사- 상품연구 및 소비자 정보- 소비자관련법 및 정책제도 연구,- 관계법령 개선 및 대정부 건의- 국내외 소비자관련 연구 및 동향분석- 각종 위해 정보 수집 및 매뉴얼화3) 녹색환경 : 자원재활용 운동추진 및 환경교육- 환경상품, 재생상품의 생산 및 소비활동 강화- 녹색환경캠프 및 팜투어 프로그램 개발 및 실시4) 홍보출판 : 소비자정보지 격월지「녹색소비자」발행- 소비생활지침서 발간- 기타 소비생활연구지 및 사업홍보- 팜플렛 제작 및 배포- 정부 및 민간소비자단체와의 정보 교류5) 소비자 상담 :
목차1. 들어가며..① 소비자 운동의 대두② 선택 동기2. 본론① 소비자 운동a.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자b. 20c의 위대한 발명c. 미국의 소비자 운동사②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 모임a. 소개b. 하는 일* 법률 상담* 조사 연구c. 국제적 연대3. 정리하며..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 모임의 한국적 특수성들어가며..소비자운동이란 소비자로서의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고 재화 및 용역의 구매로 발생하는 피해를 방지하고 보상받기 위한 일련의 집합적 행동이라 정의 내릴 수 있다. 사회운동으로서의 소비자운동은 기존의 구 사회운동들과는 상이한 사회 역사적 맥락에 위치한다. 대표적인 구 사회운동인 노동운동은 산업 사회에서의 두 중심계급인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구조적 대립, 타협, 그리고 국가의 조정등을 통해 그 양상이 결정되었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구조 속에서 운동의 초점은 생산과 분배의 문제등에 모아졌으며 조합주의적 노동조합은 노동환경의 개선, 임금인상, 고용안정 등을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하였다. 노동운동과는 반대로 소비자운동은 소비영역에서 발생하는 포괄적인 문제, 특히 소비자와 기업간의 힘과 정보의 불균형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일면 기업의 횡포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노동운동과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소비자는 공간적 분산성과 관계의 비지속성 때문에 조직적 동원에 어려움이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운동에서는 소비자 개개인의 직접적인 참여보다는 전문화된 운동조직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이런 사회적 필요에 의해 조직된 것이 바로 소비자 단체이다. 우리가 조사한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도 이러한 운동(Consumer movement)을 하는 소비자 단체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 단체이고 , 이러한 주제인가? 얼마전 MBC 방송국의 다큐멘터리“성공시대”란 프로그램은 이례적으로 NGO시민단체의 한 장(長)을 촬영했다. 그가 이모임의 주역인 송보경 회장(前)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며 한국 소비자운동에 대해 관심이 가게 되었고, 당연히 한국 소비하게 관련되어있다.특히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자운동의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그 첫 번째는 급진주의보다는 개혁주의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개혁적 성향 때문에 소비자 활동가들은 독과점 기업이나 집중도가 높은 산업의 시장지배력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주로 유해 상품이나. 기만적 거래행위를 시장에서 몰아내는 것을 목표로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 개혁주의는 기업에 대하여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기 보다는 상품디자인 규정이나 정보 공개조건 등을 부과하는 것과 같은 정부 규제를 통해 소비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두 번째는 여러나라의 소비자운동에서 상품 시험 검증기관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들 단체들이 발행하는 잡지들은 상품개발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상품에 대한 실질작인 지식으로 소비자들을 무장시킨다.세 번째 공통점은 소비자운동이 특히 노동운동이나 환경운동등과 같은 다른 사회운동과 연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종종 이러한 사회운동 단체들은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전략적인 동맹을 있다. 세계가 점점 하나로 연결되어감에 따라 소비자 조직은 관심분야와 집중분야가 상당히 다양해졌다.이러한 소비자운동의 범 세계적 보편성 속에 그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 미국의 소비자 운동이다. 소비자운동이 하나의 독자적인 사회운동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대체로 본격적인 소비사회로서의 진입이라는 사회적 조건이 필요하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포드주의적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축으로하는 축적체제의 순조로운 작동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하였고 바로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미국의 소비자운동은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안전에 대한 권리(right to safety)건강 내지 생명을 위협하는 상품으로부터 소비자가 마땅히 보호받을 권리정보 입수에 대한 권리(right to be inform)사기 또는 기만적인 오해를 초래할 수 있는 보도, 광고, 표시 등에서 보호되고 현명한 하였다.3.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소비를 하도록 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하였다.지금까지는 미국의 소비자운동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미국과의 연속성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한국의 소비자운동을 만나보도록 하겠다.2. 소비자문제를 연구 하는 시민의 모임Ⅰ. 소개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소비자 주권을 확립하고 소비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하고자 1982년 11월 창립 총회를 개최, 1983년 1월 20일 김동환 변호사를 초대 회장으로 하여 발족된 이래 자발적?비영리적?비정치적 전문 소비자단체로서 18년 간 꾸준히 소비자운동을 전개해왔다.현재 송보경 회장님이 임기(6년)을 마치고 김재옥씨가 새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회원수가 5만명이 되는 거대한 시민단체이지만 회비를 의무적으로 내야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가입만 하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회원은 5만명이 되지만 재정조달은 거의 정부로부터 보조받고 있다. 회비와 시나 국가에서 하는 전화 상담을 해주고 얻는 수입이 있긴 하지만 얼마되지 않는다. 시민단체에서 계획한 프로젝트를 정부로부터 심의를 거쳐서 나오는 지원비나 아니면 정부에서 먼저 청탁하면서 들어오는 지원비로 재정을 충당하는 실정이다.서울지회, 경기지회 및 전국에 7개 지부 - 서울지부, 성남지부, 원주지부, 안산지부, 태백지부, 대전지부, 인천지부-를 두고 있다. 현재 서울 지부에는 김재옥 회장과 김자혜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재무담당 이사, 기획실장, 조사부장, 교육부장, 국제.홍보부장과 연구원 총 15명의 상근자가 상담 및 조사 업무와 홍보, 교육 등을 하고 있다.각 지부에서는 지부장과 운영위원장을 중심으로 연구원들과 모니터들이 활동하고 있다.소비자 모임에서는 특히 자원봉사 모니터들의 참여가 적극적이다. 자문 변호사들도 상담 활동과 조사 연구 활동에 필요한 법률적 자문을 해 주고 있다.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 조직도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현재 8개 위원회가 있다.*내분비계장애물질(환경호르몬) 자문위원회*에너지?자원 효율화 실천운동본부*질인 알라를 검출했다. 이른바?알라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수입농산 물의 안전성 문제를 사회에 공론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이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 측에서는 사실의 확인보다는 사실의 거부로 일관하면서 소비자단체의 해석이 잘못된 것이라고 몰고가기도 했다. 소비자 모임은 미국 정부의 압력에 대응, 전 국민의 참여를 유도하여 미국산 자몽 불매 운동을 성공적으로 벌여 외부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독립적인 소비자운동의 모습과 소비자단체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은 그 동안 우리 나라 국민들이 수입농산물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있었음을 보여준 것으로 수입농산물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 1993년에는 발암농약이 검출된 수입밀의 사용 저지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였다.또한 1986년 4월 발생한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사건 이후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 특히 유아의 분유 원료인 카제인나트륨, 토마토케첩의 원료인 토마토 페이스트가 방사능 낙진에 오염된 사실을 밝혀 내어 1988년 10월 방사능 낙진 오염 수입 식품 원료 사용 금지를 촉구했다. 이 사건은 수입식품의 문제점 제기와 함께 환경오염 피해가 광범위하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수입식품의 표시기준과 관리의 허술함에 따라 불량 제품이나 부패 식품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음을 인식, 수입식품의 제조년월일, 유통기한 표시, 품질문제 등에 대한 조사활동을 통해 수입식품의 표시기준 강화 및 관리 강화방안과 제재 조치를 지속적으로 촉구 해 왔다.c. 약관 규제의 입법화 - 소비자 모임은 1983년 약관실태조사와 소비자 법률상담을 통해 거래되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약정서들 중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조항이 그대로 시행되어 소비자들의 피해가 많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특히 할부판매, 방문판매 등 특수매매에 의한 소비자 피해가 급증하였고, 여행 계약, 숙박 계약 등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도 불공정 거래조건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으며, 신용카드 보증 및 분실에 따른 문제 등이 약관법 제정의 직접적9년 3월 미국 내 햄버거, 피자, 치킨, 아이스크림 등 패스트푸드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다는 미국 뉴욕주립대학 보건과학센터 연구팀 아놀드 쉑터 교수팀의 연구 보고서를 입수,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맥도날드, 피자헛 등에서 판매되는 패스트푸드 일부 제품을 대상으로 다이옥신 검출 실험을 실시한 결과, 이들 패스트푸드에서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소비자 모임은 이 보고서를 토대로 국내 패스트푸드의 다이옥신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관계 기관이 국내 유통 패스트푸드의 다이옥신 잔류량 실험을 실시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1999년 6월 벨기에산 돼지고기 등 유럽산 육류, 달걀 등이 다이옥신에 오염된 사료로 인해 오염된 사건을 계기로, 소비자 모임은 다이옥신의 식품 중 잔류 기준을 마련, 수입 육류 등 식품으로부터 소비자의 안전권을 지켜 줄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f. 유전자조작 식품 표시 촉구 - 유전자 조작 식품이 인간의 건강에 위해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나타나는 가운데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유전자 조작 식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자 모임은 소비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유전자 조작 식품을 섭취하는 실태를 바로 잡고 유전자 조작 식품으로부터 소비자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 하고자 1999년 10월 2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유전자 조작 식품, 무엇이 문제인 가' 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연사로는 미국 소비자연맹(CU)의 소비자정책연구소 소장 마이클 한센 박사를 초청, 유전자 조작 식품의 안전성을 짚어 보 고 이들 식품의 표시(라벨링) 문제를 논의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의 라벨링 문제 는 1997년 몬트리올 회의에서 안전확보를 위해 거론된 이래 계속되고 있는 문제임을 국내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Ⅲ. 국제적 교류앞에서 살펴본 소비자 모임에서 하는 일들은 국내활동으로만 해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입 농수산물에 대한 농약의 잔류량의 기준이나 외국에서 규제되고 있는 약품에 대한 정보 등 국제적 연계를 통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