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諸子百家]중국 전국시대(BC 5세기∼BC 3세기)에 활약한 학자와 학파의 총칭으로 제자(諸子)란 말은 제선생이란 뜻이고, 백가란 수많은 파별을 의미하는 말이다.《한서》의 중에서 옛 서적을 분류했을 때의 명칭으로, 그 제자의 파별은 유가(儒家)·도가(道家)·음양가(陰陽家)·법가(法家)·명가(名家:論理學派)·묵가(墨家)·종횡가(縱橫家:外交術派)·잡가(雜家)·농가(農家) 등 9류 에다가 또 소설가를 부록으로 한 것이다.이 중에서 공자의 유가가 가장 먼저 일어나서 인(仁)의 교의를 수립하였는데, 그 다음으로 묵적(墨翟:墨子)이 겸애(兼愛)를 주창하여 묵가를 일으켰으며, 이윽고 노자 ·장자 등의 도가와 기타 제파가 나타나서 사상계는 제자백가의 시대라고 할만큼 극히 활발한 상황을 나타냈다.중국사에서도 특색이 있지만 또 고대 그리스의 철학계와도 비교된다. 그 발흥된 이유는 역시 사회적인 기운에 의한 것으로서 주왕조의 가족제가 붕괴되어 혈연의 일족에게 수호되어오던 영주가 농민과 경지를 확보하여 실력을 지니고 있는 신흥 지주계층에게 권력을 빼앗겨 가는 사회적 혼란 속에서 시대는 도리어 실력본위의 자유로운 활력에 넘친 유능한 인재의 발흥을 촉구하였다.제자백가의 대부분은 그러한 상황하에서 태어난 것으로, 수십대의 수레를 이어놓고 제후에게 유세한 맹자와 같은 호화로운 집단으로부터 형제가 농구를 메고 유랑하는 자까지 그 생태는 가지가지였다. 또한 집단을 이루어서 전승한 것은 유(儒)·묵(墨)의 2가뿐이고 기타는 그때 그때의 개별적인 자유사상가로 보아야 한다.Ⅰ.유가[儒家]유가는 공자를 개조(開祖)로 하여 발전해 온 중국의 대표적 철학사상이다.유가사상은 흔히 유교(儒敎)와도 혼동되나 엄밀하게 말하면 유교는 한대에 공자를 성인으로, 유학을 성교로 추앙하여 탄생한 일종의 정치성과 종교성을 띤 이념을 의미하는 것으로 철학사상으로서의 유가사상 또는 유학과 구별된다. 공자(BC 551∼BC 479)가 태어난 춘추시대는 주나라의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제후들이 무력을 바탕으로 자칭타칭으로死]보다 중하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공자가 깎고 다듬은 고전(詩 ·書 ·禮 ·樂 ·易) 가운데 우주와 인생의 변화를 다룬 《주역》은 유가적 형이상학의 방향을 결정해 주었다. 우주본체인 태극에서 생성의 두 대대원리인 음양의 작용이 생기고 그것은 하늘과 땅[乾坤]으로 대표된다. 이 두 원리에 의하여 우주는 생생(生生)되어 가며 이 생생하는 것이 변화[易]의 정체이다. 그의 《춘추》는 이 생생사관에 입각한 역사서였다.1. 선진유가사상맹자는 유추법 등을 사용하여 공자의 인을 인간의 본성으로 확정시켰다. 이것이 곧 성선설이며 성동설이다. 그는 인간의 원초적인 도덕적 심정, 즉 4단(四端: 惻隱 ·羞恥 ·恭敬 ·是非之心)을 근거로 4성(四性:仁義禮智)의 고유성 ·본래성을 확정하여 이것을 양지양능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은 흐트러진 마음을 수습하여 호연지기를 기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경제적인 문제도 도외시하지 않고 이 바탕 위에 도덕적 자아를 실천하라고 하였다. 중용 에 이르러 도덕은 인간의 범위를 넘어 천인합일의 거대한 도덕형이상학이 완성되었으니 그 첫 구절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교육이라 한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고 한 것은 이를 나타낸 말이다.대학 은 중용 에서 완성된 도덕형이상학을 실천할 수 있는 유가적 방법론을 서술하였다. 자신의 가슴에 빛나는 도덕성을 밝혀내고[明明德], 인간을 새롭게 해주며[親民], 지극히 성실한 우주의 운행질서를 돕는 데서 그친다는[止於至善] 3강령과, 격물로 시작하여 평천하에서 끝나는 8조목은 곧 유가적 이상실현의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2. 신유가사상선진유가사상을 대표하는 4서(書:논어 ·맹자 ·중용 ·대학)가 확정된 것은 송대 신유학에 이르러서였고 이것은 신(新)유학이 유가사상을 철학으로써 확립시켰음을 말해준다. 사실 송 이전 한대의 유학은 정치적 이념으로서는 많은 발달이 있었으나, 철학적으로는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였고, 분서 이에 따라 대학의 격물을 일을 바르게[正]하는 방법이라고 재해석하고, 바르게 하는 주체는 마음에 타고난 양지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양지를 이루어, 마음의 뜻[意]이 발하면 일체의 일마다 바르게 되는 것 뿐이라 단정한다.3. 청대기철학과 실학사상이학과 심학은 각각 나흠순(羅欽順)과 전서산(錢緖山) 등이 이어받아 연구하였으나 청초에 이르러 경세치용의 물결이 밀어닥쳐 신유학은 수정되거나 비판되면서 고증학과 기철학, 그리고 중국적 실학이 대두하게 되었다. 우주론이나 인성론에 있어 청학의 개조인 고염무(顧炎武)가 이학의 실천자로 나선 것을 제외하고 방이지(方以智)와 왕부지(王夫之) 등은 기화유행의 본체론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는 기에 내재한 조리, 즉 과학적 법칙으로서만 인정하여 주희의 기에 대한 이의 형이상학적 선재설에 반대하였다. 한편 청유들의 정치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매우 강하여 그들은 전제정치에 반대하고 원칙적으로 유가의 전통정신인 민본적 민주정치의 정립을 주장하며 기존 사회제도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역사의 이해에 있어 《춘추공양전》을 중심으로, 역사는 합리적으로 발전하여 대동사회로 나아간다는 생각을 가꾸었는데, 이러한 사상은 청말, 캉유웨이[康有爲]에 이르러 집성되었다.4. 현대중국서구의 과학문명의 충격을 직접 여러 측면에서 겪었던 중국의 현대사상가들 중에는 중국철학의 중추를 이루어온 유학의 현대적 역할에 대하여 회의를 품는 사람이 많이 나타났다. 류스페이[劉師培] ·정원장[丁文江] ·후스[胡適] 등은 서구의 과학사상과사회 및 정치이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반(反)형이상학의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혹자는 유물론적 입장으로 나아갔다. 여기에 공산주의철학이 들어오면서 유학에 대한회의는 공자비판으로까지 전개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변혁기에 있어 중국의 전통철학들을 계승하되 새 시대 새 이념이 될 수 있도록 재창조하려는 사조도 일어났고 그 중의 하나가 쑨원[孫文]의 삼민주의였다. 이 회오리가 지나간 뒤 중국의 철학자들은 유가사상을 새롭게 연구다. 즉 과거의 진리를 천명하고 실천한 철인과 시대가 있었다면 그것은 언제나 계승되어야 한다는 진리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Ⅱ.도가[道家]중국사상의 여명기인 선진시대(先秦時代) 이래 유가(儒家)와 함께 중국 철학의 두 주류를 이루었던 학파로써 도가라는 일컬음은 이 사상의 개조(開祖)라 할 수 있는 노자(老子)가 우주 본체를 설명하면서 사용한 도(道)와 덕(德)의 개념에서 비롯되어 도덕을 논하는 일련의 학자들을 도덕가라고 호칭하다가 뒤에 이를 약하여 도가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호칭이 선진시대부터 나타난 것도 아니며, 전한대 유흠(劉歆)과 사마 담(司馬談) 부자가 중국사상의 내원을 설명하는 가운데 구가(九家) 또는 육가(六家)로 분류한 데서 일반화되었다.도가라고 할 때, 넓은 뜻으로는 노자를 교조로 하여 뒤에 성립하는 종교형태인 도교(道敎: Taoism)도 포함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도교와 구별하여 노자 ·장자(莊子)·열자(列子) ·관윤(關尹) 등이 중심이 되는 철학파를 가리키며, 좁은 뜻으로는 노장철학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시대적으로 보면 노자와 장자, 양주(楊朱) ·열자를 중심으로 한 선진도가뿐만 아니라 위진시대의 왕필(王弼)과 향수(向秀) ·곽상(郭象) 등을 주로 하는 현학파와 명리학파도 도가에 속한다. 도가사상은 노자에서 비롯하였기 때문에 그 연원도 노자사상을 이해하면 될 것이다.반고의 《한서》 에 보면 “도가자류(道家者流)는 사관(史官)에서 나왔다”고 한 것 또는 《사기》에서 “노담(老聃)은 주(周)나라의 수장실지리(守藏室之吏)였다”고 한 것처럼 노자는 사관 출신이었고, 사관은 역사와 전통적인 학술사상과 지혜를 이어받은 해박한 지식인이었다. 그러므로 노자는 한편으로는 서주의 예악제도와 그 문화에 대하여 철저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의 전화와 도덕의 붕퇴, 사상의 분란 및 정치적인 암흑상황을 가장 심각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영일의 방법을 구하되 눈앞의 고통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본체와 만물의 기본원리로 삼았는데, 도는 보편원리를, 덕은 특수원리를 의미한다. 그런데 노자가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유생어무(有生於無)’와 같이 도에서 만물이 이루어지는 생래과정에 치중하였다면, 장자는 본체즉현상의 입장에서 ‘일기취산(一氣聚散)’과 같이 만물이 운용되는 운행과정에 관심을 두었다. 사실 중국 사상에서 공통적으로 견해를 같이하는 본체론의 중요 개념들[氣 ·陰陽]은 노 ·장에 의하여 정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한편, 인생론의 경우 인의예지 등 사회에서 필요한 질서 형식을 비판함으로써 결국 집단이나 전체중심적 태도로부터 개체중심적 태도로 전환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개체 및 개인의 조화일기처럼 자유자재하면서도 장구한 것을 인생의 이상으로 삼고, 그 방법으로서 무욕물화할 것을 주장하였다. 즉 노자는 일체의 욕구를 극소화시킴으로써 시비 ·피아를 구별함 없이 병생하는 장생을 이상상태라 주장하였고, 장자는 신체적 장생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인생을 어떤 경지로 고양시키는 양생과 달생을 주장하였다. 특히 장자는 이런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으로서 무과 복성론을 제시하였다. 이것이 바로 ‘수성반덕이복초론(修性反德而複初論)’이며, 장자 내편의 소요유와 제물론, 양생주 등은 이러한 수양의 경지와 방법적 차서를 보여준 것이다.노자와 장자는 지식문제에서는 회의론과 상대주의의 입장이어서, 궁극적으로는 반지주의를 통하여 현학적 초월지를 이상적인 것으로 제시하였다. 한편 사회정치론에서는 소국과민 등 방임주의적 이론을 제시하였다.Ⅲ.묵가[墨家]중국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 묵자(墨子)를 계승하는 학파로 그 사상과 학설은 《묵자》 53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상현(尙賢) ·상동(尙同) ·겸애(兼愛) ·비공(非攻) ·절용(節用) ·절장(節葬) ·천지(天志) ·비락(非樂) ·명귀(明鬼) ·비명(非命)등 10론의 주장은 그 하나 하나가 매우 이색적이고, 전국시대의 세상에서 중앙집권적 체제지향과 실리적인 지역사회의 단결을 주장하여 유가(儒家)와 대립한 유된다.
*작가소개*-현기영-* 1941년 제주 출생.* 1961년 서울대 사범대 불어교육과 입학.* 1975년 단편 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그는 제주도라는 향토적 세계를 중심으로 민족의 수난기에 처한 역사적 삶의 내부를 치 밀하게 탐색하는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 , ,, , 등이 있다.현기영은 초기작인 , 등을 통해 제주도가 안고 있는 정신적 상처를 외지인의 시각이 아니라 제주도민의 시각으로 다룸으로써 문단에 충격을 던졌다.*줄거리*-순이삼촌-제주도를 떠나 서울에서 지내던 나는 음력 섣달 열여드레인 할아버지의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8년 만에 고향인 제주 서촌마을을 방문한다. 거기서 나는 순이삼촌(제주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어른을 남녀 구분 없이 삼촌이라 부른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30여 년 전의 참혹한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순이삼촌은 작년 한해 서울의 우리집에 와서 식모노릇을 하던 분이다. 그녀는 아내와 쌀문제로 말다툼을 하게 되어 제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녀를 데리러 온 사위 장씨로부터 순이삼촌에게 환청증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순이삼촌은 몇 년 전에 이웃집에서 메주콩을 잃어버린 일로 시비가 벌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이웃사람이 경찰서로 가자고 말하자 아무말도 못하고 주저앉아버리는 바람에 범인으로 오해받으면서 환청이 시작되었다고 한다.순이삼촌의 파출소 기피증은 30여 년 전의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0여 년 전 그해 음력 12월 19일 국군에 의해 학교운동장에 소집된 마을사람들은 자세한 영문도 모른 채 무참하게 참살당했다. 군경측의 무리한 작전과 이념에 대한 맹신이 빚어낸 비극적 사건이었다. 그 학살현장에서 두 아이를 잃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순이삼촌은 그후 경찰에 대한 심한 기피증이 생겼고, 메주콩사건으로 결벽증까지 생겼으며, 나중에는 환청증세도 겹치게 된 것이다. 평생 그날의 사건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순이삼촌은 자식이 둘이나 묻힌 그 옴팡밭에서 사람의 뼈와 탄피 등을 골라내며 30년을 과부로 살아오다가 그날의 일을 환청으로 듣게 되고, 마침내 그 살육의 현장에서 꿩약을 먹고 자살을 하게 된다. 나는 마을사람들이 30년이 지나고도 그 일을 고발하지 못하는 것은 심한 레드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한달 전에 자살한 순이삼촌의 삶은 이미 30여 년 전의 시간 속에서 정지해버린 유예된 죽음이었다고 생각한다.-도령마루의 까마귀-노형 피난민들로 구성된 성담 쌓는 울력군들 가운데 귀리집은 예전의 기억으로 감독관인 까마귀 오순경이 설핏 보이기만 해도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다. 저번에 소카이 지역에 들어가서 좁쌀을 가지고 나오다 들켰을 때 오순경에게 들켜 닛폰도 칼로 혼줄이 났기 때문이다.귀리집의 시아버지는 땔감을 해서 내려오시다가 돌아가시고 다섯 살배기 아들 순구는 호열자로 잃었고, 소카이 후 시어머니는 폭도들의 대창에 찔려 돌아가시고 막내 아기는 젖이 말라 굶어서 죽게된다. 남편은 폭도들을 피해 어느 굴에 숨어 있는지 생사를 알 수 없고, 필주 어멍 말에 의하면 아들 순원이는 읍내로 도망갔지만 새끼 꼬아서 밥벌이를 한다고 한다.축성이 거의 끝나면서 읍내에서부터 울력을 하는 사람들과 점점 가까워지고 곧 아들 순원을 만날 수 있을꺼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귀리집은 아들에게 줄 땔감을 미리 준비해 놓는다.드디어 축성 마지막날 도령마루에서 귀리집는 아들을 만날 기대감에 담가를 들고 돌을 나르다가 까마귀 오순경의 명령에 따라 까마귀가 수없이 몰려있는 밭으로 가게된다. 거기에는 까마귀 부리에 얼굴을 쪼인 사람들의 시체가 무수히 널려있고 오순경은 그 시체를 십분 이내에 구덩이에 넣으라고 명령한다. 시체를 옮기던 중 시체 밑에 들어가 있어 까마귀 부리에 쪼이지 않은 채 얼굴이 온전한 순원이 아버지를 발견하게 된다.*작품해설*은 실존하는 역사적 사건이 문학작품으로 형상화됨으로써 문학의 힘이 어떻게 발휘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사실주의 기법의 작품으로,1949년 1월 16일 북제주군 조천면 북촌리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을 모델로 삼고 있다. 제주도 출신의 작가 현기영은 그 학살현장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순이삼촌의 삶이 어떻게 황폐화되어 가는가를 보여줌으로써, 4·3사건의 참혹상과 그 후유증을 고발함과 동시에 30여 년 동안이나 묻혀 있던 사건의 진실을 문학을 통해 공론화시켰다.이 작품은 에 죽은 자들과 죽지 않은 자들을 통해서 제주도 4.3 사건을 그려낸다. 고향 제주도를 떠나 서울에서 안온한 생활에 영위하던 는 8년 만에 고향에 찾아간다. 그곳에서 갑작스럽게 접하게 된 의 죽음을 통해서 삼십여년 전에 있었던 참혹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귀향 목적이었던 봉제사도 실질적으로는 이 사건과 깊이 연관되어 있었던 까닭에 순이 삼촌의 지난했던 과거사가 전면에 부각되는 것이다. 소설적 주인공인 순이 삼촌은 살륙의 현장에서 우연히 목숨을 건졌다 하더라도 그때의 정신적 충격으로 결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여분의 삶은 죽음과도 같은, 혹은 죽음보다 못한 삶이었을 뿐이다. 고향이 군 소개작전에 따라 소각된 잿더미 모습 그대로 주인공의 의식에 남아있듯이 그들은 를 뒤집어쓴 채 시간을 견뎌내고 있을 따름이다. 이미 삼십여 년 전의 시간 속에서 생을 정지해버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이 삼촌의 삶은 에 불과하다. 참혹한 역사의 현장에서 결코 죽지 않고 살아남은 그들의 육체는 그 날의 사건을 세월의 지층 속에서 현재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끄집어낸다. 그들의 육체는 죽은 자들과 마찬가지로 시간 속에서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극을 고스란히 증언할 수 있다. 따라서 비극적 인물들이 존재하는 한 그 비극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모든 행위들은 가장이고 위선일 따름이다. 현기영은 이처럼 유예된 죽음의 시간을 견뎌나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감추어졌던 역사적 사실을 복원하고자 한다. 작가는 결코 4.3 사건의 현재적 의미를 묻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경험했던 사람들조차 의식적으로 망각하고자 했던 그 사건이 과연 어떠한 진실을 담고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 날 그곳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 자들은 망각된 역사의 현장으로 이끌어가는 살아있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제주 4.3 사건을 민중적 시각에서 조명함으로써 역사적 사실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치열한 작가정신을 보여주는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에 이르면 제주도의 역사는 드디어 제주도만의 역사로 그려진다. 그럿은 이중의 의미에서 그러하다. 한편으로는 제주도가 한갓 배경이나 주인공의 출신지로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제주도에서만 일어났던 특수한 역사적 경험 자체가 형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다른 지역과는 무관한 제주도만의 일인 듯이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곧 작품 속의 사건을 구체적인 시공간적인 배경 속에 투사 즉. 역사화 하고 있다. 이로써 그 동안 은폐되어 왓던 제주도 민중의 터무니없던 수난사가 우리의 의식 속에 부활할 수 있기도 하고 한 3백명 되는 좌익의 무장폭도 를 사냥한다는목적으로 5만여 명의 양민까지 학살한 그 엄청난 사건을 다시금 기나긴 은폐의 장막을 걷고서 폭로해 낸 그 점만으로써도 사실 이들 작품은 의미가 없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그는 초기작인 , 등을 통해 제주도가 안고 있는 정신적 상처를 외지인의 시각이 아니라 제주도민의 시각으로 제기함으로써 문단에 깊은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의 초기작은 대부분 1948년의 제주도 4 . 3사건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이념대립으로서의 4 . 3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그는 4 . 3사건이 무고한 양민의 집단학살을 가져온 광기와 폭력의 시기였으며, 이로 인해 현재에까지 제주도민 모두가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제주도민의 가슴속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는 4 . 3의 상흔을 소설화함으로써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4 . 3의 역사적인 재 규명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소설의 배경을 살펴 볼 수 있는 부분*-순이 삼촌-*시간적 배경*-음력 섣달 열 여드렛날, 그날은 유달리 바람 끝이 맵고 시린 날씨였다.-한국소설문학대계 72, P.75*역사적 배경*(제주도 4.3사건)-군인들이 이렇게 돼지 몰 듯 사람들을 몰고 우리 시야 밖으로 사라지고 나면 얼마 없어 일제사격 총소리기 콩볶듯이 일어나곤 했다. 통곡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P.82- 쯧쯧쯧, 운동장에 벳겨져 널려진 임자 없는 고무신을 다 모아 놓으면 아매도 가매니로 하나는 실히 되었을 거여. 죽은 사람 몇백 명이나 되까? P.82- 불났져! 마을에 불났져! P.78-울타리가지 갈 것 없이 마을 동편 하늘에 까맣게 불티가 날고 있는 게 내 눈에도 역력히 보였다. 매캐한 연기 냄새도 차츰 바람에 밀려왔다. P.78참고-제주도 4.3사건8 ·15광복 직후의 혼란기를 틈타 남조선노동당은 제주에 지하조직을 구축하기 시작하였으며, 제주인민해방군은 일본군이 숨겨놓은 무기와 화약을 찾아내어 무장을 하고 유격전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한편,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반대투쟁을 벌이던 제주도민에 대한 경찰 및 우익단체의 무차별한 테러가 극심하여 도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북 출신의 경찰관들이 제주에 파견되자 이를 계기로 좌익세력은 남한만의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 반미 ·반경찰 ·반서북청년단 등의 구호를 외치며 민중봉기를 주도하며, 유격전을 벌이기 시작하였다.이에 미군정청은 경찰병력을 제주에 투입하여 이를 진압하려 하였으나, 사태가 더욱 악화되자 군을 투입하여 제주도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약 9만 명의 이재민과 엄청난 재산피해 ·인명피해가 발생하였다.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하여 제주에서는 5 ·10선거를 치르지 못하였다. 비록 이 사건은 발발 1년 만인 1949년 5월 일단 종결되었으나, 봉기의 여파로 인한 완전진압은 6 ·25전쟁을 거쳐 1954년에 가서야 가능하였다.-도령마루의 까마귀-*공간적 배경*-서호부락 밖, 모래바람 부는 일주도로에 사람들이 작업반별로 무더기 무더기 모여 앉아 인원점호를 받는다.-한국소설문학대계72, P. 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