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조주의구조주의는 1960년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 구조주의는 자연과 인간과 사회 ? 문화현상에 있어서 그들의 표면적 현상보다도 나타나지 않는 심층적인 구조를 밝혀내어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하고, 이 법칙을 근거로 다양한 현상을 파악하려고 한다.구조주의의 방법론적 성격을 하나의 새로운 철학적 방법으로 정립한 것은 프랑스의 인류학자인 레비 스트로스(Caude Levi-Strauss)의 공헌이다. 따라서 구조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레비 스트로스를 통해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레비스트로스는 그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그의 구조주의에 대한 착상을 준 것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그리고 지질학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여기서 참다운 이해는 하나의 현실유형을 다른 하나의 유형으로 환원시킴으로써 가능하게 되고, 참다운 현실은 결코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며, 진리는 본질상 스스로 은폐하려는 면밀함에서 암시된다고 하는 세 가지 명제를 얻을 수 있었다고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에서 말하고 있다.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방법론은 구조주의 언어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특히 프라그학파가 발전시킨 음운론의 방법과 그 성과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큰 도움을 받았다. 음운론이 어떻게 인간과학 전체에 적용되는가를 그는 구조적 인류학(Anthropologie structural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언어학자는 낱말들을 분석해서 음운들의 실재를 밝혀낸다. 그리고 만일 그가 여러 가지 언어들 속에서 동일한 대립음소들의 적용을 확인한다면, 그것은 서로 다른 개성적인 언어들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고 표면적으로는 서로 다른 대상들의 심층적인 동일성을 새로운 차원에서 보장하려는 것이 된다. 여기서는 서로 유사한 현상들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사실이 문제이다. 의식적인 표면으로부터 무의식적인 심층으로의 이행은, 곧 특수한 개성으로부터 보편적인 절대성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인류학과 언어학에 있어서 다같이 보편성이 중요하다. 만일 우리가원시인이나 문명인에게 있어서 동일한 것이라면, 곧 언어 속에서 표현된 상징적인 기능에 대한 연구가 분명하게 밝혀 낸 것처럼 그 원리들이 보편적이고 동일한 것이라면, 우리는 모든 제도와 습관의 밑바닥에 있는 무의식적인 구조를 발견해 내어야 한다.”그는 또한 언어현상과 친족관계에서 구조주의적인 방법론의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이 성과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구조주의의 시작이다. 레비 스트로스는 여기에서 종래의 빈속하자들이나 인류학자들이 사용했던 생물학 적 개별주의적 관찰방법을 지양하고 사회학적이며 보편주의적 방법을 통해서 모든 친족관계의 기본구조를 발견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친족관계의 기본적인 구조로서 교환의 법칙을 발견했다. 레비 스트로스는 친족관계의 기본구조(Les Structres Elementaires de la parent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직접적 혹은 간접적 형식으로나, 일반적 혹은 특수한 형식으로나 혹은 폐쇄적인 형식으로나, 또는 구체적인 형식으로나, 혹은 상징적인 형식으로나 모든 결혼제도의 공통적인 기반은 언제나 교환이다.”이와 같이 해서 레비 스트로스는 근친상간의 금지와 이에 따르는 여러 가지 다양한 결혼제도를 충분히 만족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에 의하면 씨족들,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 교환되는 사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근친상간의 금지는 인간의 가장 값있는 존재를 다른 가족들과 교환함으로써 비로소 연결된 사회를 이룩하고 이 교환을 통해서 비로소 문화가 가능하게 되었다고 레비 스트로스는 주장한다. 이렇게 교환을 통해서 사회가 이루어지고 문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연으로부터 문화로의 발전은 언어에 있어서의 상징적인 사유의 시초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겠다. 혈통이 가까운 여자를 자연적인 본능충족의 가장 가까운 대상으로 삼지 않고 일종의 교환대상으로 생각함으로써 여자는 우리가 사회라고 부르는 제 2차적인 관계체계의 기호가 된다. 이것은 자연으로부터 문화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인간의 사회적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학의 연구에 있어서 상징주의의 울타리안에서 움직이게 된다고 레비스트로스는 말한다.이처럼 친족관계의 기본구조를 연구한 다음 레비스트로스는 토테미즘(totemism)을 연구한다. 그는 토테미즘이라고 하는 인류학적이고 종교사적인 연구대상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을 검토한 다음, 그러한 종류의 토테미즘이란 사실에 있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인류학자들이나 종교사학자들이 설명한 그러한 현상들은 언제나 경멸적으로 설명하려는 문명인들의 버릇이 창작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특수하게 설명할 수 있기 위해서 이미 특수하게 그 현상을 묘사하고 파악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새로운 경향의 미술을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로 인해서 우리의 사회적, 도덕적, 정신적인 질서가 혼란해져서는 안 되겠다고 해서 그것을 멸시하는 것과 같다.레비 스트로스는 구조주의적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토테미즘에 대한 종래의 설명, 곧 토테미즘적인 환상은 언어학의 의미론적인 분야를 잘못 적용한데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토테미즘적 환상은 의미론적인 분야의 다른 측면들을 무시하고 일정하고 특수한 측면만을 확대해서 그것을 기이한 현상인 것처럼 드러냈다.레비 스트로스가 의미론의 연구형식에서의 의미론의 학자들이 분석해 내는 대립관계의 표본을 따라서 설정한 가설적인 모델은 인류학을 위한 구조주의적 방법의 대표적인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적용한 방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① 연구해야 할 현상을 둘 혹은 여러 가지 표현들 사이의 하나의 관계로서 파악한다.② 이러한 표현들 사이에 가능한 모든 교환관계의 도식을 작성한다.③ 먼저 연구 대상으로 나타난 경험적 현상을 여러 가지 교환관계들 중의 하나의 결합으 로 간주하고 그것을 전체체계의 일부로 설명한다.토테미즘이라고 하는 표현은 자연과 문화 사이에 성립되는 관계들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서자연이라는 것은 범주와 개체를 포괄하고, 문화라는 것은 집단과 개인을 포괄한다. 따라서 토테미즘이란 설명할 것도 아니며, 보편적인 법칙에 의해서 나타나는 일정한 현상이다.레비 스트로스는 계속해서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토인 부족들의 천지 ? 상하 ? 전쟁과 평화 ? 적백(赤白) 등의 대립개념과 중국의 음 ? 양의 조화로운 대립적 요소로 보편적인 구조법칙을 파헤치고 있다. 그리고 신화와 음악의 구조를 연구하여 밝혀주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공간적인 신화에서 시간적인 신화로의 변천과, 사물의 감성적인 성격에 대한 논리로부터 심층적인 현상들의 논리로의 명백한 변천을 보여주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가) 니체와 포스트 모더니즘포스트 모더니즘은 최근 철학도들 사이에서 현대철학을 대변하는 경향으로 생각되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포스트 모더니즘은 실존주의, 실용주의 아니면 마르크스주의 등처럼 현대철학의 확고한 한 조류를 형성하고 있는 사상인가? 애석하게도 현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은 철학의 한 조류로서의 명확한 규정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확실한 경향도 지시하고 못하고 있다. 철학하는 이들보다 미국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학자들 사이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상요되고 있는 것을 보아도 포스트 모더니즘이 과연 현대철학의 대표적인 한 경향인지는 의심된다.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프랑스 신문「 르 몽드」이다. 미셀 푸코 이후 데리다, 리오따르 등 프랑스 철학자들이 근대성 및 현대성으로서의 이성중심적 합리주의를 해체할 것을 주장한 것을 지칭하여 「르 몽드」는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불렸다.현재 우리에게 소개되어 있는 포스트 모더니즘은 최근 프랑스의 일부 철학자들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커다란 영향을 받은 미국의 일부학자들과 예술평론가들이 대변하는 탈근대성 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니체는 「반기독교도」,「이 사람을 보라」, 「도덕의 계보」등의 저술에서 ‘모든 가치들의 전도’를 외치면서 초인사상을 도출하였다. 니체가 모든 가치들을 전도시키고자 한 것은 지금까지 종교, 도덕, 철학, 예술 등에 있도덕을 성립하는 기독교 도덕이다. 니체는 합리주의와 기독교 도덕을 해체함으로써 창조적이며 자발적인 문화를 정립하고자 하였다.이렇게 볼 때 전통철학의 이성중심적 합리주의를 해체하고 새로운 대안과 시도를 추구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직접적 시발점은 다름 아닌 니체이며 또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주장은 니체의 주장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니체 이후 포스트 모더니즘을 향한 중간 다리는 하이데거이다. 하이데거는 현대인의 소외의 원인을 테크닉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존재론적 차원에서 결단하는 주체로서의 현존재 인간에 의해서 소외가 극복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푸코, 데리다, 리오따르 등 소위 포스트 모더니즘의 철학자들은 니체의 전통에서 정신 분석학, 언어학, 문예학 등을 바탕으로 삼아 현실을 구체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서구 문화, 곧 전통적 형이상학과 합리주의가 허구적이자 폐쇄적이라는 것을 밝히고 그것을 해체하려고 한다. 그들은 삶의 광범위한 영역에 고질적으로 배여 있는 근대성 전반을 비판하고 근대성을 해체함으로써 구속당하지 않은 삶과 문화를 정립하려고 시도한다.포스트 모더니즘의 철학자들이 합리주의적 이성을 비판하는 데 있어 주의해서 보아야 할 점은 그들이 무조건 근대적 이성을 모두 배격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근대적 이성은 너무 좁은 의미에서 분석하고 계산하는 능력만을 뜻했다는 것이 그들이 지적하려고 하는 핵심이다. 사실 이성은 다양하게 해석되어야만 하며 나아가서 이성은 언제나 비이성적인 것과 밀접한 연관 관계 속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지적이다.(나) ① 현대의 인간은 더 이상 이성적 합리성의 주체일 수 없다. ② 자연도 더 이상 유기적 전체가 아니다. ③ 사회 그리고 역사의 진보도 날조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근본적 비판 대상은 근대성, 곧 이성중심적 합리주의이며 이것은 현대성의 핵심을 형성하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와 아울러 후기 산업사회 역시 근대성(또는 현대성)을 확고하게 발판으로 삼고 있는 세기 말의 새로운 병적 .
【중세에서 근세로 이행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그리스도교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중세철학은 그리스?로마 초기의 고대 철학과는 당연히 이질적인 관심과 요구에서 출발하였다. 그 발단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복음의 선포, 사도들의 선교활동, 초대교회의 형성이라는 종교적 사건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중세철학의 근본 주체는 그리스도교와 그 모태가 된 유대교의 종교적 세계관 속에 그 싹을 볼 수 있다. 이 세계관은 이미 구약성서의 《창세기》 가운데 신화적인 표현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그에 따르면 신(神)은 유일(唯一)의 절대자요, 세계와 그 안의 만물은 무(無)에서 창조(creatio ex nihilo) 하고 인간에게 신의 모습(imago Dei) 으로서의 특별한 지위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세계관은 헬레니즘 세계에서 그리스적 문화와의 만남을 통해 명확히 자각되면서 처음에는 이 세상의 지혜 인 그리스적 자연관이나 합리주의와의 대립으로서 나타났다. 이 자각은 그의 논리적 심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그리스 철학을 방법으로서 채용하게 되고, 신앙적 세계의 이해는 점차 신학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교부철학에서 스콜라철학에 이르는 중세철학의 걸음은 이러한 신앙적 세계관의 논리화, 체계화라고 볼 수 있다.중세 기독교 세계에 들어오면 그리스의 범자연주의는 붕괴되고 신(神)과 인간과는 자연과의 분명한 계층적, 이질적인 질서가 나타난다. 그곳에서는 자연도 인간도 신에 의하여 창조된 피조물이고 신은 창조주로서 이 모든 것들을 초월해 있다. 그리고 이 3자(者)는 어느 것이나 각기 독자적인 역할과 활동을 가지면서 하위(下位)의 것은 상위(上位)의 것을 위하여 존재한다. 인간은 이 중간에 있으며 지성(知性, intellectus)에 의하여 신을 알고 이성(理性, ratio)에 의하여 자연을 인식한다. 인간은 자연과 동질적이 아니고 그 위에서 그것을 지배하고 이용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자연을 인간과 전혀 독립된 것으로서 이것을 객관화하고 밖으로부터 실험적 조작을 가해서 알아내고 순수 되었으며, 과학은 신학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종교에 의해 제약을 받았다. 그리고 이 우주론에서는 신이라는 존재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중심적이었다. 즉 자연을 보는 시각도 인간중심적이었고, 인간의 관점에 따라 자연의 존재가치가 결정되었다. 창세기 9장 3절의 `살아 움직이는 모든 짐승이 너희의 양식이 되리라. 내가 전에 풀과 곡식을 양식으로 주었듯이 이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준다'는 내용처럼 자연은 신의 가르침이 숨겨진 고귀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피조물로서 존재하게 되었다.이러한 사고는 과학혁명시대를 걸쳐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화이트(L.White)는 이라는 기사에서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기독교는 자연에 따른 거만한 착취현상을 만들어내었으며, 이로 인해 오늘날의 생태적 위기가 발생했다'고 주장하였다.근세로 들어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인간은 신중심의 관념세계에서 탈피하여 인간중심의 철학적 풍조가 만연하게 됨으로 가치관의 대전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공헌은 이러한 인간생활에 새로운 방향에로의 변화를 가져온데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는 14세기 중엽부터 16세기까지 약 250년에 걸친 것으로 중세와 근세를 잇는 과도기이다. 그래서 중세도 아니고 완전히 근세도 아닌 그 나름의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 특징은 인간관과 세계관의 두 측면에서 잘 나타나 있다. 르네상스에 나타나는 새로운 인간관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인간긍정과 자아존중으로, 이것은 중세의 신(神)중심사상에 대해서 인간중심의 새로운 사상이 등장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시기의 인간상(人間像)은 그리스의 교양인을 이상으로 하였다. 중세인(中世人)은 신과 관계를 맺음으로써만 존재의미를 가졌으나,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 가치와 품위를 자각하였다. 그러므로 복종과 굴욕을 미덕으로 삼았던 중세와는 달리,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고 재능과 힘이 뛰어난 개인이 찬양을 받았다. 더구나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은 스토아 학자들의 보편적 의 나타남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자연은 산 자연, 즉 창조하는 자연일 뿐만 아니라 성스러운 자연으로서 종교적 성격을 띠었다. 따라서 자연은 중세에서와 같이 신에 대립하는 악(惡)의 덩어리도 아니며, 계몽주의시대에서와 같이 단순히 기계적인 자연도 아니었다. 자연은 인간의 찬미와 기도의 대상이며, 인간은 그 품에 안김으로써 비로소 참된 생을 누릴 수 있는 대상이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아비뇽 교황의 대립으로 생긴 분열 결과, 14세기경부터 그 안팎에서 쇠퇴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공의회(公議會)운동이 활발히 추진되어 피사·콘스탄츠·바젤 등지에서 공의회가 열렸으나 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한 채 무위로 끝났다. 한편, 프랑스·영국 등 유럽 각국은 근대 국민국가로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중세적 그리스도교 세력은 점차 쇠퇴해 갔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종교개혁은, 본질적으로는 교회의 혁신운동이지만 근대국가의 성립이라는 정치적 변혁과 밀접한 함수관계에 있었다. 본격적인 종교개혁은 M.루터에 의해서 비롯되었으나 루터 이전에도 개혁의 선구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민중 사이에서 성서적 신앙을 인도한 프랑스의 발도, 롤러드파(派)를 이끌던 영국의 위클리프, 위클리프의 사상을 이어받아 독립운동을 일으킨 보헤미아의 후스, 윤리적 쇄신을 시도하였다가 끝내 순교한 피렌체의 사보나롤라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르네상스적 인문주의와 종교개혁과는 본질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즉 르네상스적 인문주의는 예술적이고 귀족적이어서 참으로 역사를 변혁할 힘을 갖지 못하였다. 이와는 달리 종교개혁운동은 깊이 민중의 마음을 포착하여 역사를 움직였다.근세철학의 생명을 북돋아 주는데 있어서 불가결한 요소는 새로운 세계관을 가져온 새로운 과학이었다. 1687년 뉴턴(I.Newton)의 가 출판됨으로 근세 지적혁명의 첫 단계를 밟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근대과학이 나타나기 위하여 경제활동과 사회적 구조는 종전과는 다른 지적요소와 기술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 호의 인력 즉, 동력에 의해서 야기되는 공간에서의 물리적 점들의 운동으로 환원된다. 질점(質點)에 대한 이 힘의 효과를 정확한 수학적 공식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뉴턴은 미분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들과 수학적 기술을 고안해내야만 했다. 공식으로 파악되는 엄격한 결정론은 데카르트(R.Descartes)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나와 세계와의 근본적인 구별에 철학적 근거를 두고 있다. 이러한 구별의 결과로 세계는 객관적인 방법으로 즉, 인간이라는 관찰자에 관해 전혀 언급함이 없이 기술될 수 있다고 믿어졌고,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이야말로 모든 과학의 이상이 되었던 것이다. 데카르트는 객관적인 기술(수학적 공식)이 유일한 지적방법이라 인식하고, 수학적 물리학만이 자연을 아는 유일한 진리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두 종류의 존재 즉, 물질과 정신을 구별한다. 물질의 본질은 공간적 연장(延長)이며, 정신의 본질은 데카르트가 `생각한다(cogitare)'라는 말에 부여하고 있는 의미를 그대로 지닌 사유이다. 데카르트는 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모든 실체에는 각기 하나의 주된 속성이 있다. 정신에 있어서는 사유가, 물체에 있어서는 연장이 그것이다.' 그의 존재(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 대한 철학은 연장이라는 속성에 의해서 특정지워진 실체(물체)와 함께 또 하나의 실체, 사유에 의해서 특정지워진 정신을 발견해냈다. 이때부터 세계는 서로 분리된 두 가지의 원리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또 정신으로서 특정지워진 근대적 인간의 탄생을 의미하고 있었다. 즉 데카르트에 의해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원리를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 자각한 것이다.근대의 사회에 관한 체계적 접근 단계에서 제반 학문이 사회과학이라는 칭호를 얻으려 하던 때 이는 이미 서양적 합리주의, 이원론 등 고전적 패러다임에 예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사회과학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그것은 데카르트, 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적 자연과학의 패러다임이다. 로크가 사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분리를 의미한다. 두 번째는 실재는 객관적이어야 하며, 또한 실증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를 `객관성과 분석, 수학적 모델화야 말로 진리에의 길이다', `과학은 모두 확실하고 명백한 지식이다. 단순한 가능성으로서의 지식은 모두 배제하고, 완전히 알고 그것에 관해 어떠한 의문도 없는 것만을 믿어야 한다'라는 말로 시사 하였다. 모든 지식은 객관적 차원 다시 말해 숫자, 위치, 움직임 등 `일의적(一義的)인' 객관적 성질로 환원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되어 왔다. 한편 주관적인 측면 즉 정동(情動), 감각, 직감이라는 `이의적(二義的)인' 성질은 비실재적이라 하여 완전히 말소되어 왔다. 세 번째는 진정한 관찰은 반드시 관찰자라는 외부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대상을 잘 고찰하려면, 연구자는 한발 뒤로 물러나 대상의 바깥에서 냉철하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특징은 요소환원주의, 다시 말해서 기본적 요소가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즉 모든 사물이라는 것은 복잡한 현상을 작은 요소로 환원시키면서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분할은 물질을 죽은 것으로, 인간과는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취급하게 하였고, 물질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조립된 제각기 다른 객체의 군집으로 보게끔 하였다. 데카르트적 이원론은 인간 역시 활동이나 재능, 감정, 신앙 등에 따라 수없이 쪼개진 분야로 분열하여 인식하였는데, 이러한 분열은 오늘날 일련의 사회적, 생태적, 문화적 위기의 근본이유라 여겨지고, 우리를 자연과 소외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데카르트이후 150년간 이 사상은 큰 영향력을 발휘했기 때문에, 이 시기에 인간의 관심을 끄는 모든 학문은 이성과 수학을 토대로 하여 재건되었다. 17세기의 과제는 자연을 기계론적으로 해석하는 일이었고, 18세기의 과제는 자연 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러한 방법으로 해석하려 한 것이다. 뉴턴은 데카르트적 사고를 기초로 해서 그의 기계론(적 역학)을 구축함으로서 고전물이다.
비폭력 철학의 계보는 예수의 가ㄹ침에서 유래 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산상수훈에 나타난 예수의 사상이 그 이권을 이룬다 할 것이다. “칼을 쓴 사람은 칼로 망하리라”고 한 예수의 말은 이러한 철학의 저변에 깔린 중심 사상을 요약하고 있는데, 즉 폭력은 인간 문제를 항구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으며, 그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고차적인 형태의 행위가 요구 된다는 입론이 바로 그것이다.비폭력 철학자로서 가장 두드러진 몇몇 위대한 사상가들은 인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다 고차적인 형태의 행위가 요구 된다는 입장에서, 자신의 사상을 그대로 산 본보기였다는 점에서 철학의 사변적 세계에 있어서 특이하고 유일한 하나의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삶은 산 사상가로는 예수, 간디, 슈바이처를 들 수 있고 그 밖에도 톨스토이, 마틴 루터 킹을 들 수 있다.▷ 예수(jesus)나사렛 예수가 품었던 윤리의 유형은 비록 체계화되거나 통일성을 갖는 것은 아니나 대체로 윤리적 직관주의자(칸트 등)의 그것에 가깝다. 그 이유는 도덕이란 내적인 경험이며,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라는 그의 주장 때문이다. 도덕은 선을 행하는 문제이기보다는 선하게 되는 것이다.예수의 윤리는 인간 개개인이 갖는 무한한 본래적 가치에 대한 존중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 개인은 우주에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 가치가 있으며, 심지어 세계 전체보다 더 가치가 있다. 인간은 가치에 있어서 그와 대등한 대상이 없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영원한 영혼으로 간주된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사람이 자기 생명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그 존엄성 혹은 무한한 가치를 지니는 한 개인은 도덕적 가치에 있어서 백 사람의 그것과 동등하다. 왜냐하면 저울 눈금에 있어서 무한과 무한은 평행을 이루듯이 한 사람의 저울 눈금과 100사람의 저울 눈금도 평행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단일한 한 개인에 대한 배려는 그 특정 개인이 궁지에 처한 사람일 경우 100사람에 대한 배으로 체험함으로써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인간들 중 가장 비천한 자도 사회가 그들에게 부여한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이다. 예수에게 있어서는 사회적 차별이 신의 구별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회는 흔히 “인간의 명령”을 신의 교설로 해석하기 때문이다.모든 인류를 지고의 가치를 가진 지위에로 고양시키는 그의 교설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뿐만 아니라 그의 당대에 남자보다 아주 열등한 존재로 간주되었던 계층으로서 여성과 어린 아이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어린 아이는 성인들의 행위에 대한 모범으로서 복잡하지 않고 순진무구한 인간성과 행동에 있어서의 단순함으로 나타난다.인간 존재와 신에 대한 이러한 태도에 비추어 볼 때 그에게 있어서 일처적인 덕이 사랑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성적인 의미의 사랑도, 다정다감도, 단순한 우정도 아니고, 아가페(agape) 즉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 유사한 사랑이다. 따라서 예수가 기본적인 중대성을 갖는 것으로 간주한 계명은 몸과 마음을 다하여 신을 사랑하고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랑은 앞에서 말한 다양한 형태들로 나타날 수도 있으나 아가페는 열거된 다른 것들보다 더 고귀한 사랑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가장 고상한 행위를 수행하도록 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사랑이 최고의 덕목인 것은 바단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고 사도 바울의 윤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최고의 덕을 찬양하면서 사도 바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라고 말한다.예수에 있어서 사랑이란 도덕의 기준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기준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이란 인간이 지닌 도덕적 가인류에게 적용된다. 선량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예수의 비유는 이 점을 명료하게 말해 주는 대목이다. 인류의 보편적인 형제애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 이전에 행해진 윤리적 지침은 오직 같은 종교를 가진 자나 신앙을 가진 형제들 간의 한정되고 제한된 사랑만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예수는 종족이나 계층과 조건에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신의 자녀들로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사랑과 동적을 받을 권한을 갖는다고 가르쳤다.인간이 태어난 때 갖는 자기 중심적인 동물성으로부터 도덕적으로 훌륭한 상태에로 전환하는 일은 정신적인 중생의 과정, “다시 태어남”의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도덕적인 재탄생, 모든 가치관의 전도는 지극히 필수적인 도덕적 전생이다. 세속적인 가치관은 천상의 가치관으로 바뀌어진다.사랑은 베푸는 것을 함축하는 자선의 의미를 갖게 되는데 왜냐하면 흔히 다른 사람에세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사랑을 받을 자가 동정과 협력에 대한 절실한 필요에 처해 있을 때 베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가 가르친 바와 같이 자선은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눈에 뜨이게 혹은 위선적으로 행해서도 안되고 받는 자가 베푸는 자가 누구인가를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비밀리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이다. 나아가서 예수는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궁핍한 자에게 돈을 빌려 주고서 도덕적 기준을 지키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 돈을 되받을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예수는 이상적인 성격을 산상수훈의 팔복(八福)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축복받고 지복의 상태에 있는 자가 혹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의 특성을 열거한 것이다. 이성적인 인격에 대한 예수의 묘사는 지배적인 기존 가치관의 전도, 당시에 존재했던 부르즈와의 윤리규범의 역전이라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는 최고의 행복이 가난하고 슬퍼하며, 온유하고 자비로우며, 마음이 깨끗하고 화평하며, 의에 대한 굶주림에 젖어 있는 사람과 함께 할 것으로 보았게 때문이다.예수는 ‘십계명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모세의 규범이 갖는 정의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개조된 규범은 “앙갚음하지 말아라. 누가 오른 뺨을 치거든 왼 뺨마저 돌려 대라.”는 것이다.예수에게 있어서는 불안감마저도 도덕적인 문제가 된다. 신은,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 염려하는 것 이상으로 큰 배려를 한다. 따라서 사람이 삶에 필요한 것에 대해서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신의 섭리를 불신하는 것이며, 그것은 비도덕적인 것이다. 기독교의 계명에 따라서 사는 삶은 그 자체가 진리임이 입증될 것이다.나아가서 예수는 말하기를 그 누구도 한평생의 문제를 단 하루에 살아 내야 하는 것처럼 행위해서는 안된다. 즉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점차 처리해야 할 미래의 문제들까지 끌어와서 그 모든 것을 한 순간에 해결할 듯이 골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하루를 하루로서 살아간다면 결국 우리는 평생의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게 되는 힘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예수의 계명은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라는 황금률(Golden Rule)에 전형적으로 나타난 바와 같이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나 긍정적인 것이다. 공자와 같은 다른 위대한 사상가들은 동일한 규칙을 부정적인 형태로 제시했는데,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난 그 규칙은 때때로 은백률(Silver Rule)로 불리어 진다.▷ 간디(1869~1948)자기 자신의 생애를 “진리에의 실험”으로 묘사하는 간디가 특히 영향을 받은 사람은 예수, 소로우, 톨스토이, 그리고 힌두성전이었으며,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의 산상수훈, 톨스토이의 「신의 왕국은 그대 속에」, 힌두교의 「바가바드 기타」, 그리고 소로오의 「시민불복종」이었다. 이보다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하나 러스킨 역시 간디의 견해에 영향을 미쳤다. 간디로 하여금 깊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귀의하게 한 사상, 즉 아힘사는 ‘비폭력’의 교설로서 생의 보존과 불살생인 것이며, 이것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서 사티아그라하는 진리의 힘, 혹은 혼의 힘으로서 ‘수동적인 생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간디가 적용함에 있어서는 가능한 가장 광범위한 의미와 폭 넓은 표현에 있어서의 비폭력의 교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각 신봉자들로 하여금 타자를 상해하는 일을 삼갈 것을 요구하고 심지어 소위 자신의 적수에게 겨냥된 것이라 할지라도 어떤 자비롭지 못한 생각을 억제할 것을 내세운다. 그것은 폭력을 당한 자에 의한 보복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원한의 감정이나 복수심마저 금하고 있다.그래서 아힘사는 각자의 적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침략자의 공격에 대한 보복을 삼가는 것은 되받아 치는 행위보다 더 큰 용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반복해서 덤비는 우리의 적을 계속해서 폭력에 대해 사랑으로 보답하는 것은 결국 적으로 하여금 승복을 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정산적인 정신상태에 있는 인간이라면 그 본성상 자신에게 선행을 베푸는 자를 계속해서 칠 수가 없기 때문이며 자기 자신을 피조물 중 가장 비천한 존재로 격하시키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그의 공격적인 태도를 철회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완전한 사랑의 실천은 인간의 의무이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인간은 필요한 경우에는 자신의 육체를 완전히 희생하거나 심지어는 육체로부터 초탈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인간의 희열은 타인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를 자발적으로 받아 짊어지고 그 고통을 기꺼이 감내함으로써 주어진다. 진리가 가치를 지니는 까닭은 진리가 그것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인간의 내면적 원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유는 인간의 나약함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상실되지 않으며 공포로부터의 해방은 죽음을 불사할 수 있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사티아그라하는 산다그라하(진리의 견실성)로부터 만들어진 말로서 처음에는 수동적 저항의 교설에 적용되었고 드디어는 간디와 그의 동표들이 인도의 해방을 위해서 행한 모든 추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 배경은 여러 원천으로부터 연유된 것인데 예수의 상산수훈, 바가바드 .
※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의 차이점▶ 합리주의르네상스와 더불어 자연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따라서 자연과학이 괄목할만한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17세기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자연과학의 성과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었고 그것을 발전시킨 보편타당성을 지닌 명증과학으로서의 수학에 대해서 모든 지식의 전형으로서 그리고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확실한 논증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절대 진리의 학문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 직접적 확실성을 가지는 수학적 방법만이 모든 학문의 정립과 진리의 유일한 기준을 이성으로 확신하고 이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확실한 기본 개념으로 철학의 전체적 체계를 창조하려고 시도한 철학이 대륙의 합리주의 철학이고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가 여기에 속한다.▷ 데카르트데카르트는 수학적 방법만이 학문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인식은 수학적 방법에 의하여 확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철학을 보편수학으로, 즉 엄밀한 연역적 방법에 의거하여 일체의 것을 하나의 근본개념으로부터 도출해 낼 수 있는 학문으로 성립시키려고 하였다. 바로 여기에 유명한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가 성립한다. 그는 철학의 확고한 기초가 될 수 있는 출발점을 찾기 위하여 모든 것을 의심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첫째,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관한 인식의 기초로서의 감각적 경험의 가치에 관해서 그것의 확실성을 의심한다. 감각은 때때로 우리를 기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뿐만 아니라 감각은 우리의 주관적 사실에 불과하므로 인식의 기초로서는 부적합하다. 우리의 감각적 경험은 마음속에 생긴 심상에 불과한 것으로서 우리의 마음 밖에 사물과 그것이 닮았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또 우리 마음 밖에 사물이 존재한다는 증거도 없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한낱 상상에 불과한가, 나에세 지각된 것과 같은 성질의 존재안가에 대해서 의심해 보아야 한다.둘째, 무엇보다 가장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수학원리에성으로서 성실성을 신의 완전성에서 도출하고 인간의 인식이 정당함을 신의 존재에서 발견하였다.데카르트는 존재론에 있어서 이원론을 주장한다. 이원론이란 실재의 세계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존재로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 신념을 뜻한다. 데카르트는 모든 실재가 정신이거나 물체, 즉 정신적 실체이거나 물질적 실체라고 주장한다. 그는 먼저 사유하는 정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본유관념의 원인으로서 신의 존재를 증명한 다음 신의 성실성으로 보증되는 물체의 존재를 긍정한다. 그리하여 신?정신?물체를 세 실체라고 하였다. 데카르트는 실체를 ‘존재하기 위하여 다른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 실체의 개념규정에 의하면 신만이 참다운 실체인데 그는 정신과 물체를 신에 대해서는 의존하나 상호 독립적이고 아무런 영향도 주고받지 않는 존재이므로 이차적 실체라고 불렀다. 그래서 신은 무한실체이며, 정신과 물체는 유한실체이다. 실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성질에 의하여 인식되는데 그 성질을 양태라고 한다. 정신의 속성은 사유이며 그 양태는 감정, 의지, 표상, 판단 등이고 물체의 속성은 연장이며 그 양태는 위치, 형태, 운동 등이다. 데카르트는 정신과 물체를 독립적 실체로서 대립적 존재로 파악했다. 정신은 사유하고 연장이 없는 실체이며, 물체는 사유하지 않고 연장을 가진 실체이다. 데카르트는 이와 같이 이원론적 체계를 확립하고 자연에 대해서는 기계적 성질을 주장하였다. 기계론적 자연관에 입각해서 인간의 육체도 자연계의 기계적인 체계의 일부로서 다른 동물과 같이 자동기계이나 인간은 한편으로 정신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 안에 있어서의 인간의 위치를 설명함에 있어서 심신상호작용설을 주장하였다. 실체로서 정신과 물체는 상호 독립적이고 어떤 연관성도 없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나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일정한 접촉점을 가지고 외부로부터의 물리적 자극이 신경계통을 통하여 마음속에 감각을 일으키고 반대로 의지의 작용과 결정은 육체에 전달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상호작용설은 불데카르트에 있어서 독립된 실체로 인정된 정신과 물체는 그 실체성을 상실하고 그것들의 속성인 ‘사유와 연장’이 스피노자에 있어서는 하나의 실체, 즉 신의 속성이 된 것이다. 하나의 실체, 즉 신의 속성인 사유와 연장이 여러 가지로 변형한 것을 양태라고 한다. 속성이 신의 영원한 본질인데 대하여 양태는 다만 신의 자기를 나타냄에 자니지 않는다. 개개의 정신, 개개의 문체는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유한하고 가변적이며 나타났다 사라진다. 우한한 개개의 사물은 유연적이지만 그러나 결코 무법칙적인 것은 아니며, 모든 유한적 사물은 다른 유한적 사물에 의하여 결정되어 있어서 스피노자에 있어서 세계는 엄밀하게 신에 의해서 결정되어 있다. 사유와 연장은 신의 속성이지만 양자는 서로 다른 계열의 것이다. 연장의 양태는 연장의 양태 속에 원인을 가지고 사유의 양태는 사유의 양태 속에 원인을 가진다. 두 개의 계열은 평행하여 진행하고 서로 다른 계열의 것이다. 연장의 양태는 연장의 양태 속에 원인을 가지고 사유의 양태는 사유의 양태 속에 원인을 가진다. 두 개의 계열은 평행하여 진행하고 서로 영행을 미치는 일이 없다. 다만 사유와 연장과의 관계는 대응관계에 있어서 물체에 대응하지 않는 사유도 사유에 대응하지 않는 물체도 없다. 그러나 이 대응관계의 근원을 따져보면 하나의 인과성 유일한 인과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즉 동일실체에 근거하는 것이며 특히 개별적 존재로서의 인간 육체와 정신이라는 두 개의 분리된 실체로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두 가지는 동일한 하나의 존재가 지닌 두 개의 측면에 불과하다. 이리하여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심신평행론에 의하여 극복하려고 했다.스피노자에 있어서 세계의 일체 사물은 신의 본성에서 필연적으로 또 기계적으로 발현되는 것이므로 거기에는 인간의 의지의 자유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기를 자유한다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자기의 행위의 원인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인간의 행위다. 셋째, 단자는 정신이다. 넷째, 단자는 개체이다.라이프니츠는 단자와 같이 무한히 많은 실체를 상정하고 이들 각각의 단자가 모두 독자적인 표상의 세계를 지니고 있으며 세계 전체는 단자와 그 단자가 지니는 표상에 의해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들 모든 단자가 곧 세계의 전체적 조화를 형성한다고 하였다. 각 단자는 자기만을 위한 독자적 능력에 의하여 마련될 수 있는 그들 단자의 표상내용이 서로 일치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결코 단자 자체를 통하여 설명될 수 없고 모든 단자가 전체적 조화를 통해서 세계를 형성하는 것은 단자의 발생을 가능하게 하는 신성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이 예정조화설이다. 그리하여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난점이나 스피노자의 범신록적 세계관을 극복하고 세계와 구별되는 세계에 대한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기독교적 입장을 지킬 수 있었다.라이프니츠는 이 예정조화의 사상에 근거하여 최선에 대한 윤리관을 도출하였다. 우주가 신에 의하여 창조되고 이 우주에 조화가 예정되어 있다면 이 우주는 최선의 것이 아닐 수 없다. 세계를 부분적으로 볼 때 거기에는 확실히 부조화가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거기에 일대 조화가 있음을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세계에 존재하는 부분적인 불완전은 음악에 있어서의 불협화음과 같은 것이며, 또 그림에 있어서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그러나 불협화음이나 그림자가 있음으로써 전체로서의 완전성이 이루어진다. 신은 전지전능하므로 세계를 창조하고 그 창조는 최선의 것을 선택할 것이다. 즉 신은 가능한 한 많은 세계를 사유하여 그 중에서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세계, 즉 현실세계를 선택하였다. 그러므로 현실세계는 가장 좋은 세계이며 최선의 것이고 조화의 걸작품이다. 여기서 라이프니츠의 낙천주의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비합리주의헤겔의 사후 헤겔에 대한 반발은 유물론에서 뿐만 아니라 합리적인 체계에 반대하는 비합리주의적 방향에서도 나타난다. 우선 직접 헤겔비판과 연관되는 쇼펜하우어와 니체를 들을 수 라고 말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현상들이 개개 인간 존재의 사적인 정신 속에 있는 주관적 관념들이라고 말한다. 즉, 이것은 가상의 세계이고 이것을 나타내는 본질은 의지에 있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궁극적 실재인 의지는 외적 물질계의 질서인 현상 혹은 관념을 창조한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과의 법칙에 의해 연결된 세계로 나타나는 관념은 지성을 통해서 표상으로서 알려진다. 관념, 즉 현상계는 확실히 지성을 통해 알려질 수 있지만, 궁극적 실재의 세계는 지성에 의해 알려질 수 없다. 눈에 보이는 현상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 속에서 하나의 본체적 대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대상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고 자기 자신이 대상을 만들어 내는 궁극적인 실재인 것이다. 다시 말해 나 자신의 의지를 통해 보이지 않는 참된 대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의지는 도덕적인 의지가 아닌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로 지향하는 분투의 의비이다. 현상적으로 혹은 외부적으로 관념으로서 나타나는 모든 것은 의지의 부단한 운동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의지는 세계의 본질적인 원리이고 인간의 가장 본질적 표현의 핵심이다. 인간의 의지가 실현되는 것이 현상이다. 이 의지는 자연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모든 우주 전체를 움직이는 본질이다. 그러나 의자가 무엇을 실현하고자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현상에 나타나는 것을 보고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의지는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나 가치가 없는 맹목적이고 충동적인 의지이고 지성보다 우위에 있다. 지성은 단지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를 주의주의자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맹목적이고 충동적인 의지에 염세관을 보태었다. 그렇다고 모든 주의주의자가 염세주의자는 아니다. 염세관은 주의주의 관념론의 체계를 전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도인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의지의 작용은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하는 것이라 말했다. 그것은 무엇을 결여한 상태이고 따라서 악이다.
? 쓰기 교육 : 국어과 교육의 중요한 영역 가운데 하나.과거의 쓰기 교육 - 많이 써 봄으로써 스스로 이치를 깨치는 것 혹은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써 보는 것글쓰기 이론의 탐구효과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도움이 됨,또한 체계적인 국어교육론 정립을 위해 필요.? 쓰기 이론의 정립 과정은- 쓰기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인지적 관점, 사회적 대화라는 관점)- 쓰기의 어떤 측면을 중점적으로 볼 것인가(형식주의, 구성주의, 사회주의, 대화주의)- 쓰기교육에서 다루는 교육 내용을 어떻게 볼 것인가(능력, 기능, 전략적 차원)- 쓰기 과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단계모형, 문제해결모형, 사회적 상호작용모형) 등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음.쓰기 과정과 결과를 어떻게 이해 할 것인가.쓰기 행위와 텍스트를 어떤 입장에서 이해할 것인가.1) 쓰기 행위와 텍스트에 대한 관점① 구조주의와 구성주의? 쓰기 : 자신의 생각과 상을 글로 표현하는 행위를 말함.? 쓰기교육 : 이런 능력을 길러주는 것? 쓰기 교육론 기능적 차원과 전략적 차원 혹은 지식적 차원에서 접근됨기본사상 :구성주의구조주의? 구조주의: 언어학 연구방법을 기조로 하는 것으로 연구 대상을 설명하는 기제로 체계와 관계라는 개념을 사용? 구조주의의 관심 - 설명 모형을 만드는 일과 그 모형을 이루는 구성요소를 검토하는 일→ 이러한 입장은 1960년대 중반까지의 형식주의 쓰기이론으로 규정, 이 이론에서는 “규정문법의 준수와 모범적인 텍스트의 모방, 그리고 어법상의 정확성을 강조하는” 쓰기 이론이라고 설명. (필자 - 의미의 전달자, 독자 - 수동적인 수신자)? 텍스트 구성 능력(의미구성능력) - 계속적이고 체계적인 모방과 연습을 통해 신장됨.? 구성주의- 1970년대를 전후로 등장- 개인의 자각을 중심으로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쓰기이론.- 인지심리학에 기초- 구조주의에서 절대적이라고 생각한 범주를 상대적이고 목적지향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상호주관적인 접근방식을 택함.- 텍스트를 생산하는 과정을 중시- 분석 대상 : 개별적인 쓰기행위- 글쓰기 : 사람이 의미를 재생산하는 과정구조주의구성주의기본적 특성반복과 강화, 조건화자극-반응관찰가능한 반응경험주의과학적 방법언어수행표층구조“무엇”에 대한 기술→ 대립 ←분석과 통찰습득, 생득적의식상태합리주의심리주의, 직관언어능력심층구조“왜”에 대한 관심학문영역심리학행동주의적인지적언어학구조적기술적생성적변형적쓰기교육텍스트 구성요소 중시결과에 대한 관심모방, 반복 훈련의미재생산과정 중시과정에 대한 관심필자의 사고와 형상화② 개인적 인지와 사회적 대화? 70년대 등장한 구성주의 → 개인적 인지 행위에 중점을 둔 이론? 80년대부터 사회적 해석에 초점(사회적 구성주의 또는 사회적 대화 행위)을 맞춤- 이것은 언어사용의 사회성과 기능성을 중시하는데, 쓰기의 과정에서 사고와 언어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맥락을 중시해야 한다는 이론.언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담화관습 및 규칙으로서의 텍스트 생산에 관심- 건전한 글쓰기 : 언어 사용집단으로서의 담화공동체 혹은 학문공동체에 참여함으로 가능? 대화주의 글쓰기- 사회적 구성주의를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이론- 대화주의 : 사회적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이론 (분석대상 : 담화행위로서의 텍스트)- 사회적 구성주의가 필자의 입장(텍스트 생산자)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데 비해,대화이론에서는 담화 자체를 중시하는 견해.2) 과정 ? 결과에 대한 관점① 결과 중심의 단계 모형- 1960년대 중반 이전의 쓰기 연구의 중심을 이루었음- 실험집단과 비교집단을 구성하여 사전, 사후 검사를 실시하여 쓰기의 질을 평가하는 방 식을 택함- 교수 방법의 성공 및 실패는 학생 작품의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결정- 이 모형은 전통적인 쓰기교육의 토대를 이룸-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논의된 글을 쓰는 과정을 인식한 단계 모형Rohman과 Weleck : ‘사고와 쓰기는 별개의 활동이며 사고가 쓰기에 선행한다는 인식하 에 교사들은 아동에게 사고 활동을 강조해야 하며, 아동들이 쓰기를 하기 전에 사고를 자극할 수 있는 일지쓰기를 강고해야 한다.’ (예비쓰기, 쓰기, 다시쓰기의 단계)재기술다시쓰기기술쓰기기술 전예비쓰기? 문제점 : 학습자가 자기 점검을 해 볼 기회가 거의 없다.교정등급표시, 점검(교사활동)글쓰기(학생활동)과제제시(교사활동)- 교수 ? 학습 : 교제제시-오류점검의 형태? 문제점 : 이 단계 모형은 쓰기의 과정은 인정했지만, 이들 과정을 엄격히 선조직적으로 파악하여 쓰기가 문제해결이나 사회적 상호작용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② 과정 중심의 쓰기 연구- 1980년대 들어서면서 쓰기의 의미구성과정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 전문 작가의 쓰기 방법에 대한 연구를 통해 쓰기의 모형이나 모형을 이루는 요소에 대 한 연구가 가속화- 성인의 쓰기 모형의 특징㉠ 계획하기, 글쓰기, 교정하기 등 쓰기의 각 단계는 회귀적으로 발생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