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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발달 이론들에 있어서 여성의 신앙발달 이해의 한계와 방향 모색
    신앙발달 이론들에 있어서여성의 신앙발달 이해의 한계와 방향 모색I. 들어가는 말필자는 기독교신앙과 그 신앙의 발달과정을 이해하는데 공헌한 화울러, 웨스터호프3세, 그룸의 세 학자들의 신앙과 신앙발달에 관한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그들의 이론적인 한계점을 지적함으로서, 여성들의 온전한 신앙성숙을 이해하기 위한 신앙발달 이론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II. 신앙발달 이론가들이 이해하는 인간의 신앙과 발달과정(1) 인간의 신앙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선물로서 모든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인 관심이라고 이해한다. 따라서 신앙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르치거나 줄 수 없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신앙은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의 자연스러운 경험과 양육을 통해 인간의 인격적인 성숙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신앙의 성숙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앙을 개인적 차원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적인 차원으로 이해한다.(2) 신앙을 소유나 정적인 상태로 보지 않고, 역동적인 과정 즉 끊임없이 변해가는 과정으로 이해한다.(3) 신앙에 대한 이해를 전인격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은 본질적으로 세 가지 활동들을 지니는데, 믿는다는 인지적 차원, 신뢰한다는 정서적 차원, 행한다는 행위적 차원이 있다는 것이다.(4) 신앙은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발달, 성장해 간다고 본다. 제임스 화울러는 신앙의 6단계로의 발달을 설명했으며, 존 웨스터호프3세는 신앙의 네 가지 유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토마스 그룸은 인간의 신앙은 전인격을 포함한 삶의 전 과정을 통한 발달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특히 그룸은 신앙발달에 있어서 인간의 몸의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신앙이론가들의 말하는 신앙은 관계적이고 역동적이며, 삶의 전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는 인격적인 성장과 변화와 더불어 성장해 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자들에게는 많은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론을 기반으로 여성들의 신앙과 그 성숙의 과정을 이해할 때는 몇 가지 한계점들이 나타난다.III. 신앙발달 이론가들의 신앙발달 이해의 한계와 대안모색신앙발달 이론가들은 인간 신앙을 여러 측면의 인격적 성숙과 더불어 삶의 전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성숙으로서 이해하도록 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여성들의 신앙의 성숙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한계점을 지닌다. 따라서 여기서는 한계점과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1. 전인적 신앙발달 이해에 있어서의 문제점인간의 신앙에 대해 논할 때는 인간 모든 측면의 전인적인 이해를 강조하면서도, 신앙의 발달단계를 전개시킬 때는 인간 발달의 인지적 측면을 강조한 심리학 이론과 신앙의 이성적 측면을 강조하는 서구기독교 전통의 영향을 받아, 인간 신앙의 이성적 측면을 강조하는 서구 기독교 전통의 영향을 받아, 인간 신앙의 인지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인간 신앙의 육체적, 감정적, 직관적, 상상적 차원은 소홀히 하였다. 이로 인해 여성들의 신앙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게 되는 하나의 원인이 된다. 여성들은 신앙발달에 있어서 감정적인 측면이 남성보다 더 강하게 나타난다. 남성은 인지적 능력의 발달이 강조되고, 여성은 정서적, 관계적 측면의 성장이 강조되는 현재의 사회화 과정 속에서 신앙의 인지적 측면에 대한 강조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신앙발달을 낮은 단계로 평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인간의 신앙은 인지적, 정서적, 행위적 측면으로만 이해 할 수 없으며, 인간의 몸에 기반을 둔 다양한 삶의 경험에 기반을 두어 이해되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단지 인지적 발달이나 정서적 측면에서의 발달에만 제한될 수 없으며, 인간 발달의 모든 측면을 포함해야 한다. 특히 서구 전통에서 배제되어 왔던 인간의 몸의 경험, 인간의 직관과 상상력의 차원 등이 보다. 깊이 있게 연구되어 인간의 신앙과 발의 이해에 포함되어야 하며, 인간의 신념, 믿음, 결단, 행위를 포함하여, 육체적, 심리적, 감정적, 상상적, 모든 측면의 성숙을 포함하는 전인적 신앙의 성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하겠다.2. 신앙의 구조와 내용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의 문제점신앙발달 이론가들은 한 개인의 신앙이 발달되어 가는 구조에 대해 관심을 집중한 나머지, 신앙의 구조와 내용 사이의 관계성을 인식하는 데는 소홀하였다. 신앙의 구조적 특성에 관심을 가진 화울러는 신앙의 내용이 신앙의 구조를 형성하고 재형성하는 데 중요한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개인의 신앙의 구조는 그 개인이 속한 신앙공동체 내에서 공유되고 있는 신앙의 내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따라서 가부장적 기독교의 가르침의 내용 그 자체가 여성들로 하여금 화울러가 말하는 신앙발달의 3단계에 머물도록 만드는 것이다. 신앙공동체 안에서의 신앙의 양육을 강조하는 웨스터호프는 신앙공동체 안에서 공유되는 신앙의 전수를 강조한다. 그는 일방적인 전수의 의미가 강한 사회화보다 문화화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문화화란 동등한 사람들 사이의 대화적인 관계성과 주체적인 이해와 경험 등을 통한 상호작용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도 지배그룹의 경험과 신념에 대한 전수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토마스 그룸 역시, 기독교 공동체가 공유하는 살아 있는 신앙에 대해 강조한다. 그는 기독교 공동체의 이야기와 비전이 현재를 살아가는 기독교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의 이야기와 비전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성찰되고 변증법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 역시 기독교 공동체의 이야기와 비전은 공동체 구성원의 이야기와 비전과는 구분되는 상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며, 현재 공동체 구성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가부장제 문화와 신앙전통을 비판하고, 여성들이 새로운 신앙의 이야기들과 비전들을 창조적으로 재건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 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공동체가 공유하고 전수하는 신앙의 내용은 개인이 신앙을 해석하고 형성하는 구조와 유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공동체 내에서 공유되고 전수되는 신앙의 내용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그러한 신앙의 내용이 개인의 신앙을 형성하는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여성들의 신앙의 성숙을 돕는 신앙의 내용에 대한 창조적인 모색이 필요하다고 본다.3. 인간 발달 이해에 있어서 의존한 심리학 이론들의 문제점신앙발달 이론가들은 인간의 신앙은 여러 측면의 성장과 발달과 더불어 끊임없이 성장, 발달한다고, 발달심리학 이론들로부터 많은 통찰력을 얻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여성의 발달에 편견을 지녔거나, 여성들을 연구에서 제외시킨 남성 심리학자들의 이론에 의존하여 인간의 발달과 성장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성 중심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그들의 이론에서 여성들은 항상 발달적 측면에서 미성숙한 인간으로 평가되었다. 이에 반대하여 여성주의 심리학자들은 여성들의 가치와 인식방식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여성들의 삶의 다양성과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남성들의 기준에 의해 여성들이 남성들 보다 미성숙한 인간으로, 미성숙한 신앙인으로 평가되어 온 것은 큰 이론적인 문제점이다. 신앙발달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여성주의 심리학자들에 의해 활발하게 논의되고 실증 조사되고 있는 여성의 발달과 성장에 대한 연구들이 받아들여져서 여성의 발달과 성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기반으로 한 여성의 신앙의 발달과 성숙에 대한 이론적인 전개들이 필요하다고 본다.4. 단계적이고 위계적인 발달 이론의 문제점신앙발달 이론가들의 신앙이해는 지나치게 위계적이고 단계적인 발달과 성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발달을 이해하기 때문에, 단계적인 발달단계를 설명한다. 따라서 많은 교육자들은 단계적이고 위계적인 발달 이론에 기반을 두고 인간 신앙의 발달단계를 이해하고, 가장 성숙한 단계를 모든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발달의 완성단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인문/어학| 2018.01.18| 4페이지| 1,000원| 조회(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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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치부 주일학교 교육체제 및 운영의 유형 연구 요약서평
    유치부 주일학교 교육체제 및 운영의 유형 연구1. 서론교회는 교육적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으므로 교회는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는 자녀들을 교육할 책임이 있다. 특히 교횐는 언약의 백성인 유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하는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본 연구는 우리나라 교회 주일학교 유치부 교육을 진단하고 앞으로 교회가 지향하여야 할 유아를 위한 교회교육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2. 주일학교의 의미주일학교 교육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지혜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지혜의 개인적 획득에 역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주일학교 교육은 성경을 잘 가르침으로 주교교육의 구체적인 목적인 구원의 확신, 말씀의 확신, 생활의 확신을 시키는데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의 ‘주일학교 교육’의 개념은 ‘주일’에 교회라는 교육의 장에서 시행되는 신앙교육 곧 기독교 교육의 한 영역이며 또한 교회교육의 한 영역인 것이다.그런데 일부의 교회에서는 이러한 주일학교라는 명칭과 대조되는 명칭으로 교회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이것은 단순한 명칭의 변경이 아니라 개념의 변화라 할 수 있다. 교회학교는 개 교회가 교인들의 신앙 양육을 목적으로 의도적인 계획을 세워서 체계적인 학습 경험을 제공해 주기 위해 운영하는 학교 체제의 형식적인 교육기관을 의미한다. 주일학교 개념과 교회학교 개념의 논의를 종합하면 “교회학교는 주일학교보다 광범위한 개념의 기관이고 교회교육은 주일학교 교육보다 포괄적인 용어이다.”3. 유치부 교육체제의 유형1) 주일교육 위주형교육적인 모든 요소가 대부분 주일날 이루어지는 형태로서, 부서 지도자와 교사가 주일학교의 진행을 위해 각자 한 주간 동안 준비하고 주일날 모여 교사회의 및 기도회를 한다. 유치부 주일학교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유치부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성경공부를 하고 활동도 한다. 그리고 정규적인 교사교육은 평일보다 주일날 실시한다. 이것은 교사들이 주일날 만 봉사하는 경우로 주중에 함게 모이지 못함으로 개별적으로 주일날의 교육사역을 준비한다. 교육사역을 위하여 논의 할 것이나 건의할 것 또는 예배를 위한 기획은 전화나 인터넷을 활용한다.2) 주일 및 주중(주간) 교육 병행형유아와 함께 부모들을 위한 신앙교육이 주일 하루만으로 부족함을 인지하고 이들을 위한 신앙교육을 주일 뿐 아니라 주중에 한번 혹은 두 번 모이는 곳이 있다. S교회 ‘디모데반’ C교회 ‘아기학교’ Y교회 ‘유니게 학교’를 예로 들 수 있다.(1) 디모데 다락방-다락방은 일종의 구역으로서 지역별로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와 어린이가 모여 예배를 드리는 모임이다. 주일하교 교사가 예배를 인도하고, 교사는 주일에 배운 말씀을 어떻게 실천하는지, 다음 주일까지 어떻게 실천해야하는 지를 가르쳐준다.(2) 아기학교-생후24개월~48개월의 유아들이 어머니와 함게 일 주일에 두 번 신앙교육을 위해 다니는 곳이다. 전도의 차원에서 교회 다니지 않는 유아와 어머니도 받는다. 교육기관은 봄 학기12주, 가을 학기12주로이며, 교육을 위해서 교회가 특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교회의 시설을 최대한 활용한다.(3) 유니게 학교-디모데를 신앙 안에서 교육한 유니게의 이름을 모방한 것으로 교육적 의미는 그리스도 인이 부모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인식하고 부모는 자녀를 양육할 청지적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스스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3) 주중(주간) 교육 위주형이 교육은 주일날의 신앙교육과 함께 교회가 월요일에서 금 또는 토요일까지 주중 교육도 실시하는 형로써 이러한 교회의 사례로 J교회에서는 유치부 지도자 및 교사가 선교원의 교사들이다. 유치부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선교원의 원아들이며, 교육환경은 주일날의 유치부실이 주중의 선교원의 교실이다. 따라서 유다들은 유치부 교육환경에 친숙하다. 그리고 선교원 원아 가운데 비 그리스도인 가정의 원아들도 주일날 교회에 나오게 되어 주중교육형은 어린이 전도와 신앙교육에 큰 유익이 있음을 알 수 있다.4. 유치부 운영의 유형1) 전통적 유형예배시간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예배의 요소들이 갖추어 예배를 드리는 것을 전통적 유형이라고 한다. 이 유형의 예로 C교회 유치부를 들 수 있다. 예배 시간은 30분이며, 어린이 찬양대의 찬양시간과 목사님의 축도가 있으며, 지도 교역자의 설교는 당일의 배울 공과와 본문이 일치한다. 특히 예배신간을 광고, 새친구 환영, 분반공부 시간과 구분하고 있다.전통적 유형의 다른 예로 S교회 유치부를 들 수 있다. 예배 순서로 묵도 후 사도신경을 외우고, 기도 후 기도 송이 있으며 설교와 설교자의 기도, 헌금, 주기도문 등 예배요소를 가지고있다. 예배시간, 공과시간, 광고, 환영의 시간 구분을 하고 있다.2) 개방적 유형이 유형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운영 방식 즉 예배시간 후 분반공부 시간을 갖는 방식을 탈피한다. 이러한 주일학교는 학습자 중심의 비형식적인 예배 곧 열린 예배의 형식을 추구하는 곳이다. 이 이유형의 예로 S교회를 들수 있다. 이 교회에서는 어린이들과 선생님이 예배를 드리기 이전 50분 동안 반별로 공과의 주제와 관련된 활동(만들기, 색칠하기, 종이접기 등) 혹은 유아의 발달 특성에 따른 다양한 활동이 있고 성경 공부도 한다. 가르치기 보다는 대화를 통한 상호작용의 비중이 크다. 종종 지도교역자가 설교 내용과 관련된 역할극도 한다. 또 다른 교회로 Y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유치부 예배를 ‘유치부 기쁨 예배’라고 이름하고 열린 예배를 시도하기 위해 드라마 팀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예배 순서는 전통형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월별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있다.3) 절충형 유형이 유형은 전통적인 형식을 갖춘 예배도 그리고 후에 성경공부의 시간도 충분히 갖고 활동의 시간도 충분히 갖는 유형이다. 이 유형의 예로 S교회 유치부를 들 수 있다. 이 교회는 유치부 주일 운영의 구분과 시간의 배정이 분명하다: 찬양의 시간, 예배의 시간, 분반 공부의 시간, 활동의 시간. 유아를 위한 활동은 공과의 주제와 연계되는 것으로 만들기, 색칠하기, 게임 이 있다.5. 유아를 위한 교회교육의 방향1) 신앙공동체적 교육신·구약을 통해서 볼 때 성경은 신앙공동체를 지향하였다. 어린아이는 어른과 함께 절기와 의식을 통해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다. 성경적인 교육은 신앙공동체적인 교육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 유아들이 주요 절기만-부활절, 맥추절, 추수 감사절,성탄절-이라도 성인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2) 하나님 중심 교육교회의 유치부 주일학교 교육은 일반 유아교육 혹은 발달심리 및 교육이론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런 유아 발달에 따른 교육은 유아중심의 교육으로 이런 교육의 주일학교 운영의 형태를 개방적 유형이나, 절충적 유형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유치부 교육이든지 교육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진리의 원천이며 바탕이기 때문이다. 유아를 기쁘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시는 하나님 중심의 교육이 필요하다.3) 교회를 세워 가는 교육주일학교 유치부는 교회 조직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유치부의 운영 방안은 교회의 목회 방침과 계획을 따라야 한다. 본 연구에서 교회 담임 교역자의 목회 방침과 같은 맥략을 가지고 유치부를 운영하는 예를 개방적 유형에서 살펴보았다. 유치부 주일학교 교육도 담임 목회자의 목회 방침을 따를 때 유치부 주일학교는 교회를 세워 가고 교회를 든든히 하는 한 몫을 담당 할 수 있게 보여진다.4) 성령사역의 의존교회교육은 영적인 사역이다. 지도교역자가 교사와 함께 유치부를 계획하고 진행하고 평가를 하더라도 진정한 계획자, 진행자, 평가자는 성령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유아를 위한 모든 교육의 과정은 지도 교역자와 교사들의 많은 기도를 필요로 한다.
    인문/어학| 2018.01.18| 4페이지| 1,000원| 조회(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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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보냄을 받은 선교적교회를 말하다
    선교적 교회론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신학교를 입학한다.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만 되면 모든 것이 다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졸업을 하고 사역을 하면서 어떤 목회를 해야 하나? 어떤 교회를 만들어 가야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여러분도 졸업을 하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될 것이다. 임지가 있어 교회에 청빙을 받아 사역을 하더라도 어떤 목회를 해야 하나? 답 없이 나가면 참 혼란스럽다.이번에 여러분과 교회, 목회, 복음 이라는 주제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여러분과 세 번째 만나는데 먼저는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작년에는 선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올해는 이 둘을 합하여 목회적 관점에서 선교적 교회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교회라고 부르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아프리카의 어떤 목사님께서는 땡땡치는 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나무 밑에서 종을 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남미에 한 목사님은 성경과 사람들만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합니다. 그 뜻을 알고자 성경을 배우기를 원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교회는 성경과 사람이 있으면 됩니다.한국에서는 건물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건물이 있어야 교회를 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교회를 시작하려면 먼저 건물을 알아보고 전세나 월세를 준비해야 합니다.중국에서는 교회라 부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졸업후 어떤 교회를 세울 것입니까? 사역지는 있습니까? 어떻게 교회를 시작하죠? 이번 강의에서는 이런부분을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선 지난 번에 다른 교회의 의미를 잠깐 살펴보겠습니다.1. 교회란 무엇인가?1-1 구약 카할과 에다교회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의 “카할” 또는 “에다”에서 비롯되었다. 구약의 헬라어 번역인 70인 역에서 카할은 “엘클레시아”로 에다는 “시나고게”로 번역하였다.- 카할: "부르다"를 의미하는 '칼'(??)이란 단어에서 비롯된 것, "소집된 모임"다. 경제적으로도 가난하였다. 지식적인 면에서도 그들은 학력이 낮았을 뿐 아니라 이들은 용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은 모두 닫혀 있었다. 유일하게 열린 곳은 하늘뿐이었다. 공포와 실망에 빠진 120명의 무리가 사방이 막혀 있는 좁은 공간에서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하늘을 향하여 약속을 잡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그리고 드디어 하늘의 문이 열리고 성령께서 그들이 모인 곳에 강림하셨다. 그리고 교회는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신약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교회는 이때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종교와도 구별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 임했다는 것을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뚜렷하게 증거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대교와 교회와의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는 역할을 하였다.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성령께서 오순절에 임하신 사실을 의도적으로 밝히고 있다. 행2:1에서 “오순절이 이미 이르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순절에 임하셨던 사건은 몇 가지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첫째, 오순절은 시기적으로 불 때 성령께서 임하실 가장 적절한 절기이다. 오순절은 유대인의 추수 명절로 수고하여 뿌린것의 첫 열매를 거두는 절기이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성령 강림이 이루어진 것은 앞으로 초대 교회가 선교를 통해 커다란 영적 수확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둘째, 이 절기는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졌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예루살렘에 모여든다. 이때 성령의 역사의 파장은 극대화될 수 있는 시기인 것이다. 누가는 오순절에 모인 사람들이 15개 나라에서 모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일시에 많은 지역에 복음의 영향력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는 이렇게 쉽지 않을 것이다.셋째,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형식과 제도에 치우친 율법주의적 유대교를 대치할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가 자발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처음부터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태어났으며 이후에도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존하여 진행됨을 보여 준다.넷째, 이 사건은 문화적하는 행위를 자행하였다. 이렇게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는 서로 원수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 운동을 시작하시면서 그 초기에 바로 이러한 분열과 고통의 장소였던 사마리아에 찾아가셨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사마리아선교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다 뜻하지 않게 이루어졌다거나 혹은 지리적인 이유로 갈릴리로 보다 빨리 가려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했다.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그곳에 선교를 위해 방문하신 것이다. 이것은 ‘가다_통과’라는 동사(디에르코마이)라는 단어 앞에 ‘반드시’라는 조동사(데이)를 사용하여 ‘반드시 가실 것이다’라는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우연히 가신 것이 아니라 주권적인 섭리 가운데 사마리아의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선교의 목적으로 가신 것이다. 이것은 성육신적 삶을 통해 선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세밀하게 보여 준다.초대교회의 집사였던 빌립은 이러한 예수님의 성육신적 선교의 뒤를 이어 사마리아 지역으로 들어가 선교하였다. 그의 선교 방법은 케리그마적 사역이었다.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는사역이 동반되었다. 또한 섬김의 사역(διακονια)이 동반되었다. 그 결과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귀신들이 나가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들이 치료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로 그 성에 큰 기쁨이 회복되었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예수님을 따라 성육신적 선교를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성육신적 선교는 베드로의 가이샤라 선교를 통해서도 나타난다(행10장). 이것은 초대교회가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문화적 장벽을 어떻게 넘어가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성령께서 환상을 통하여 고정관념을 깨뜨리셨다. 율법이 정한바 부정한 짐승을 먹을 수 없다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먹으라는 명령을 통해 이방으로 나아가야 됨을 역설하셨다.이 사건은 교회가 선교를 위해 세상으로 성육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들 즉 세상을 통해 쌓아진 지식과 경험들이 얼교회는 유기체다 살아 있는 공동체이지 죽은 화석이 아니다. 교회에 필요한 목회자는 단순히 교회를 관리하는 관리자가 아니다. 세상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는 선교사가 필요한 것이다. 교회가 참 된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목회자와 성도 모두가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셋째, 교회가 선교를 잃어버리면 세상의 물결이 교회로 역류해 들어와 교회가 세속화될 수 있다. 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한다.예) 삼투압-농도가 높은 액체가 낮은 곳으로 침투해 들어감, 배추절입교회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에 침투해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중단되면 세상의 탁류가 교회로 들어온다.예루살렘교회는 우리에게 큰 소망을 준다. 비록 작고 초라하게 시작하였지만 마침내 소금과 같이 세상 속에서 들어가 그곳을 변화시킨 위대한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워진 교회는 그 규모와 재정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선교의 큰 꿈이 그 속에 있다. 작은 사과 씨 속에 온 세상을 사과나무로 덮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 같이 교회는 주님의 복음으로 온 세상을 살려낼 가능성이 있는 존재이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성령께서 능력으로 임하셔서 일하시므로 선교적 사명을 늑히 감당 할 것이다.4. 현대교회와 선교적 교회론세계의 많은 교회들이 21세기에 진입하며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위기적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교회를 떠나는 무수한 젊은이들, 서구 기독교의 쇠퇴, 기독교가 추구하는 참된 영성의 상실, 성직자들의 윤리적 타락, 교회 신뢰도 하락,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 세력의 증가, 포스트모든니즘의 영향으로 퇴색된 복음에 의한 교회 정체성의 혼란 등 현대 교회안에 스며드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고 있다.기독교 국가라는 유럽과 미국에서 지난 20년 동안 수천 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다.로버쳐 슐러 목사의 수정교회 파산가장 강력한 기독교 국가라는 미국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있는 걸고 알고 있다. 가정교회에 출석하던 사람들도 아마 갈등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질 것이다. 경제적 풍요는 더 이상 불편한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더 이상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복이라는 포장으로 교회는 비즈니화 되어 간다. 가정교회 지도자들도 많은 갈등이 있을 것이다. 계속 가정교회를 할 것인지 삼자교회를 할 것인지 등등 이 고민은 여러분도 할 것이다. 어떤 교회를 세울 것인지, 어떤 목회를 할 것인지?이렇게 교회 공동체마저 기업의 논리를 따라 이합집산하면서 작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심각한 좌절과 혼란에 빠져 있으며 교회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던진다.(3) 교회 축소주의보다 심각한 문제는 잘못된 교회관이다.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론에 있어서 신학적 균형 감각을 상실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개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교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춗소주의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교회관은 지역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온전하게 파악하고 감당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이러한 교회관은 주고 전통적 교회관으로 제도적 관점에서만 보려고 한다. 교회를 제도 혹은 조직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3세기였다.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감독 키프리안은 교회의 감독 제도를 강화하면서 “감독에게 대항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 교회를 어머니로 가지지 못한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고 주장하여 제도적 교회를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감독이 있는 교회 그 안에 구원이 있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했다. 이런 교회는 4세기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 하면서 본격화 되었다.특히 4세기 이후 교회는 로마 제국 황제의 보호를 받으면서 기득권 세력이 되었으며 로마 제국과 정치적인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교회는 로마의 권력 모델을 따라 교회 구조를 형성하였다. 점차로 교회의 성직 제도는 로마의 관료 조직과 유사한 형태를 본받아 제도화되고 계급화 되었다.왕이 후원하는 교회에는
    인문/어학| 2018.01.18| 24페이지| 2,000원| 조회(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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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선교적 관점에서 이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신학교를 입학한다. 신학교에 들어가 목사만 되면 모든 것이 다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막상 졸업을 하고 사역을 하면서 어떤 목회를 해야 하나? 어떤 교회를 만들어 가야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여러분도 졸업을 하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될 것이다. 임지가 있어 교회에 청빙을 받아 사역을 하더라도 어떤 목회를 해야 하나? 답 없이 나가면 참 혼란스럽다.이번에 여러분과 교회, 목회, 복음 이라는 주제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여러분과 세 번째 만나는데 먼저는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작년에는 선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올해는 이 둘을 합하여 목회적 관점에서 선교적 교회에 대해 나누려고 합니다.교회라고 부르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아프리카의 어떤 목사님께서는 땡땡치는 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나무 밑에서 종을 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회과학| 2017.05.29| 67페이지| 1,000원| 조회(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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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선교학
    선교학
    선교학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다. 인류는 문화와 과학 통신 그리고 의료의 발달로 전에 없는 새로운 삶의 기대와 희망이 가득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런 발전에 따른 부작용으로 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들 앞에 놓여 있다. 이 로 인한 불확실한 미래로 또 다른 염려 가운데 있다. 세상은 이전의 발전과 변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교회도 이런 세상에서 전에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이런 21세기에 교회가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선교신학의 회복이다. 이것은 선교학이라는 한 분야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신학이 선교적 특성을 가진 신학으로의 회복이다. 그 동안 교회는 선교적 활동을 많이 하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의 왕성한 선교적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선교를 교회의 하나의 프로그램 내지 선교사를 위한 것으로 축소되었다.선교는 교회의 선택 사항이 아니다. 교회를 이루는 본질이다. 교회의 존재이유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파송 하셨고 예수님은 교회를 세상에 보내셨다. 교회의 시작이 선교에서 시작되었고 선교를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그럼 왜 이런 선교가 교회의 본질이 되지 못하고 하나의 선택사항이 되었는가? 그 이유는 한 네 가지 정도로 요약 할 수 있다.첫째, 신학적인 문제이다.신학은 교회의 선교 현장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선교를 배경에 두고 있었다. 바울 신학은 바울이 전도한 현장의 상황을 담고 있다. 그에게 신학과 선교는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신학은 선교였고 그의 선교는 신학을 낳았다. 따라서 바울의 선교를 모르면 바울의 신학도 이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신학에는 대부분 이러한 선교적 특성이 배제 된 채 신학과 선교가 나뉘어 져있다. 따라서 선교 없는 신학은 강의실에서 메말라가고 있다. 오늘날 신학이 선교적 관점을 회복한다면 교회는 세상을 향해 거룩한 영향력을 강력히 나타낼 것이다.둘째, 선교학의 문제다.교회는 선교학을 해외 선교사들을에서 대체로 사용하는 용어다. 선교학(Missiology)이라는 용어는 ‘특별한 메시지와 임무를 가지고 파송되었다’라는 뜻의 라틴어 ‘missio(mitto)’와 ‘말씀, 연구, 강의’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 ‘logos’와의 합성어다. 이것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과 인간의 활동을 나타내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섬길 때 교회와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또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것이다.(4) 선교학에 대한 여러 정의# 마이클버스트비그리스도인을 향한 기독교의 확장의 역사와 이론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하였다. 개종 중심의 선교학의 개념을 역사와 이론을 함께 다루는 선교학으로 발전시켰다.# 버카일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시는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활동에 관한 연구라고 정의한다. 그는 선교학을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했다. 하나는 선교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관점이다. 그는 신론과 하나님 나라 중심적 선교학을 수립한 것이다.# 티펫선교학은 기독교 선교의 성경적 기원, 선교의 역사, 선교의 인류학적 원리와 방법, 선교의 신학적 기초, 선교의 실천에 관한 자료들을 연구하고 정리하고 체계화시켜 다양한 선교 현장에 적용하는 학문이다. 라고 했다. 그는 선교학을 보다 넓은 관점에서 성경, 역사, 인류학, 신학적 관점에서 이해함으로써 통전적 관점으로 보는 선교학으로 발전시켰다.결론적으로 선교학은 한 가지 측면으로만 정의해서는 안 된다. 선교신학, 선교역사, 선교인류학, 선교실천 등 다양하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특히 21세기 선교학은 신학을 신학 되게 하고,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1_3 선교학의 분야선교학은 크게 네 분야가 있다. 그러나 교회는 선교학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하여 왔다. 다른 나라에 가서 전도하기 위하여 선교사를 훈련시키고 보내는 것으로만 이해하였다. 그 결과 교회는 조직화되고 경직되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이 대학에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선교학을 실천신학 분야에 넣어 다루었다. 그 후 대부분의 학자들이 큰 이견 없이 그를 따라 선교학을 실천신학분야에 포함시켰다.그러나 이 결과 선교학은 신학 커리큘럼에 있어서 선교학이 변두리 학문으로 전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후 카이퍼는 선교학을 목회학 분야에서 다루었으며 심지어 그는 설교학에 포함시키기도 하였다.바빙크는 실천신학 분야에서 다루었으나 그는 다른 신학분야와 고립되지 않으면서도 독립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선교를 단지 설교학에서 다룬 것을 반대하고 섬김의 학문이라 하였다. 그는 설교처럼 가르치는 사역이 아니라 섬김을 실천하는 사역이라고 본 것이다.(2) 독립적 학문선교학이 실천신학의 분야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학문으로 다루기 시작 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현대 선교신학의 진정한 창시자라고 불리는 독일의 구스타프 바르네크의 노력 때문이었다. 그는 ‘복음주의 선교학’이란 책을 통해 선교를 선교역사, 선교이론, 선교 변증학 이렇게 세 분야로 나누어 저술함으로 독립적 학문으로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특히 그가 네덜란드 할례대학의 선교 신학 정교수로 임명되면서 선교를 신학이라는 학문으로 인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가 선교 신학의 발전에 공을 세운 것은 실천신학이라는 분야에서 벗어나 신학의 한 분야로 독립적인 학문으로 다루게 했다는 것이다.2_4 선교학과 신학과의 관계성선교학과 다른 신학과의 관계는 네 가지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1) 종속적 관계신학의 네 분야는 절대 바뀔 수 없는 것으로 학자들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선교를 학문으로 취급하면서 선교학이 설 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 해결책은 이미 존재하는 네 개의 신학분야 중 하나에 선교에 관한 연구를 추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실천신학 분야에 포함시킨 이후 선교신학은 자연스럽게 실천신학에 종속적인 관계를 지니게 되었다.(2) 독립적 관계선교학을 독립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선교학을 실천신학에서 벗어나 로 생각했다. 그들은 새로운 인간 사회를 형성하는 것 즉 신 인류를 건설하는 것이 선교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인간의 모든 형태의 억압이나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교회의 활동을 선교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타 종교인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선교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신 선교’라 불리는 새로운 선교운동이다.세속화 신학 사신신학 종교다원주의고전적 선교 신 선교신 선교는 WCC를 중심으로 해서 세계무대에 등장하였다. WCC는 196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3차 총회에서 국제선교협의회를 흡수하여 선교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968년 웁살라에서 제4차 총회를 열고 기독교 선교의 목적을 ‘인간화’의 개념으로 재구성하였다.웁살라에 모인 진보적 학자들과 목사들은 선교를 현 시대에 적절히 부응하는 선교 개념으로 바꾸어야 하고 선교의 주된 관심을 ‘세상에 속한 여러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기에 그들의 선교 목적은 서로 이해하고 전쟁을 하지 않는 사회 조화의 의미를 갖는 ‘샬롬’의 건설이었다.신 선교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한 죄인을 구원하는 복음화적 선교 개념을 정면으로 반대하였다. 그리고 선교를 가난하고 병든 자를 돕고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자들을 자유하게 하며 그것을 위하여 사회 개혁의 일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신 선교는 4가지 방향의 선교를 추구한다.(1) 인간화신 선교는 인간화를 이루는 것이 선교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목표에 따라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복음전파를 선교에서 배제시켰다. 신 선교는 교회가 없는 지역 선교사를 파송하여 교회를 세우려는 시도를 그만 두라고 한다. 그 이유는 전 세계 어디에든지 자신들의 종교를 따르는 사원이나 종교적 조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선교의 동기 역시 십자가 구속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휴머니즘적 동기만 부각시킨다.성경은 타락한 인간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 영적 회복을 경험하지 않는 이상으로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방인들에게 찾아가서 복음을 선포하여 구원하는 하나님의 구속적 활동을 의미한다. 그 결과 개종이 이루어지고 개종자들이 교회를 설립하는 활동이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선교사는 선교의 주체가 아니라 보내신 자의 뜻에 순종하는 종이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이 같은 섬김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제4장 성경적 선교(새로운 선교)_통전적 선교우리는 신 선교와 성경에서 말하는 선교 그리고 복음주의 자들이 말하는 선교의 개념을 살펴보았다. 이제 21세기를 사는 오늘에 우리에게 필요한 선교의 개념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자 한다.이상의 것들을 종합하여 보면 선교는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양육하는 모든 사역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땅에서 우리의 이웃 가운데 병들고 소외된 연약한 자를 섬기고 봉사하는 사역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사역이다. 라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므로 선교는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믿도록 하는 것에 거쳐서는 안 된다. 그들을 가르쳐 또 다른 제자가 되도록 해야 하며, 아울러 세상을 향한 다양한 섬김의 사역이 동반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게 하는 모든 활동을 선교라 할 수 있다.4_1 지리적 신화의 극복우리는 전도가 먼저인가? 선교가 먼저인가?를 두고 논쟁을 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의미 없는 낡은 논쟁에 불과하다. 전도와 선교의 개념을 다룰 때 지나치게 지리적인 측면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전도는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는 활동이나 사역을 의미하는 국내용으로, 선교는 해외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활동이나 사역을 의미하는 해외용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때론 국내에서도 특별한 전도 사역에 대해서는 선교라는 이름을 붙여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교도소 선교, 직장 선교, 학원선교, 군 선교 등이다.이러한 혼동은 16세기 유럽의 카톨릭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해외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선교사를 파송 하면이다.
    사회과학| 2016.09.20| 30페이지| 2,000원| 조회(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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