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달가정 교회학교 운동은 어떻게 일으킬까?가정 신앙교육의 신학적 기초가정 교육과 교회교육의 연계성가정교회학교 운동자녀와 함께 하는 부모의 지도력자녀교육의 태도온 교우들이 함께 하는 운동회가정 신앙교육의 신학적 기초1. 연속성과 비연속성호레스 부쉬넬(Horeace Bushnell, 1802-1876)은 기독교교육의 학문적 시도를 제시한 선구자이다. 특히 그의 명저 「기독교적 양육」(Christian Nurture)은 19세기 미국의 신학과 교육사이의 학문적인 대화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기독교교육의 학문적 시도는 당신의 시대적 상황에서 유출된다. 그 당시 미국의 큰 영향을 끼친 대각성운동(The Great Awaking)의 부흥주의는 어린이들에게까지도 회심 일변도의 경험을 강조하였기 때문에 부쉬넬로 하여금 그 반대의 교육 신학적인 시도를 하도록 자극하였다.사상적 배경으로 부쉬넬은 두 가지 사상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하나는 사무엘 콜러리지(Samuel Coleridge)와 빅터 코우진(Victor Cousin)으로부터 “직관적인 합리성,” “원초적인 자발성,”에 의해서 종교가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상이며, 또 하나는 조나단 에드워드(Jonatan Edwards)로부터 “감정”의 교리인 지각적인 경험으로서의 종교 이해했다. 그러나 어린이시절부터의 뉴잉글랜드의 회중주의(New England Congregationalism)의 언약공동체의 경험이 그의 신앙적 근거가 되어 왔기 때문에 부흥주의 운동을 비판하며 언약공동체의 교육론을 전개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호레스 부쉬넬은 부흥주의의 회심보다는 언약공동체의 양육을 강조하였기 때문이 교육신학의 두 흐름인 비영속성과 연속성 사이에서 연속성을 그의 교육론으로 채택하였다.2. 성장과 양육호레스 부쉬넬 시대의 기독교 공동체의 가입하는 방법은 대각성 운동이 있은후부터 회심이 크게 강조되었다. 부쉬넬 자신도 회심이 비 기독교인을 개종시키거나 기독교 공동체의 속하는 방법이라고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의 궁극적 관심록 사랑을 말할 때 말이 필요하지만, 말보다도 각기 다른 의사소통이 요구된다. 또 부쉬넬은 이 관계성이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언어출현보다 결정적으로 앞서야하며, 그럴때에 관계성은 말을 살아있게 만든다고 이해한다.”그러므로 이러한 관계성은 살아있는 가정 분위기를 의미하며 이에 따른 양육방법으로 가정정부(Family Government)를 제시하였다. 이 가정 정보에는 신체적 양육의 문제, 처벌, 삶의 만남이 노출되는 놀이, 좋은 대화가 오가는 치유적 목회, 가적 기도회의 방법을 말한다.이상에서 논한바와 같이 호레스 부쉬넬의 교육사상은 교육신학적 면에서 다서 낙관주의적 견해와 가족주의화의 염려로 가정을 넘지 못한 약점과 함께 논의가 남아있다. 그러나 그 당시 시대적인 학문적 시도임을 전제하여야 하며 부쉬넬의 신앙의 연속성, 신앙의 성장과 양육, 그리고 그의 따른 가정에서의 교육과정과 방법은 사회화 과정의 학문적인 추구라고 해석된다.가정교육과 교회교육의 연계성1. 신앙교육의 두자리신앙교육에는 두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하나는 공식적인 자리-교회교육이요, 다른 하나는 비공식적인 자리-가정교육이다. 사람들은 체계적인 신앙교육은 위해서 교회교육을 중요시한다. 틀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양상은 다르지만 그 사건이 교육에 관계된 것이라면 늘 가정교육을 거론한다. 왜 그럴까? 기독교 가정의 한 자녀가 자라날 때 부모들은 신앙안에서 키울 것을 다짐하며 기도를 드린다. 교회에도 잘 나가게 하여 신앙교육을 받게 한다. 그러나 종종 부모들이 드린 기도가 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신앙교육을 풀어가는 자리의 공백이 생기기 때문이다. 가정과 교회교육의 연계성의 문제이다.먼저 가정교육의 자리에서 부모들의 태도를 보자. 심각한 문제는 가정에서 행한 신앙교육을 모두 교회교육에 일임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로 구분하면, 하나는 교회가 신앙교육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가정에서 가르쳐야 할 일을 교회교육이 도맡아 하는 일이며, 사랑의 분위기에서 가능하다. 여기서 인격적, 사회적, 영적 성장을 얻게 되는 신앙공동체의 교육의 본질을 찾는다.그러나 신앙공동체가 되지 못하는 요인이 오늘 우리의 가정교육의 자리를 흔들고 있다. 외부적인 사회변화에 의해 가정의 구조가 공동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개인주의적이며 경쟁적인 구조는 가정의 전문화라는 이름 아래 모든 교육을 학교와 특수학원에 맡기니 신앙교육이야 대수롭지 않게 교회교육으로 끝난다. 따뜻한 분위기가 없으니 어떻게 가정에서 신앙과 삶을 나누는 신앙교육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있다면 진학과 출세가 강요당하는 억압의 교육일 뿐이다. 그러므로 신앙교육이 가능한 신앙공동체로서의 가정교육의 자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일을 하지 않으면 가치없는 삶이라고 고민하는 부모의 태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의 자녀들이 가정에서 기독교적 삶의 특징인 사랑과 정의를 경험하지 못하고, 또한 그 의미를 밝히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성장한다면 신앙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신앙과 삶을 나눌 수 있는 과제와 방법이 가정에 제공되어야 한다. 가정교육의 자리를 회복하는 방법 또한 교회교육의 한 과제이다.4. 신앙교육의 방법가정은 그 자체가 비공식적인 자리이기에 특별히 준비된 신앙교육의 방법은 없다. 있다면 자녀들과 함께 신앙과 삶을 나누는 부모의 태도가 최선의 교육방법이다. 이에 대하여 신앙공동체 교육을 강조하는 웨스터호프(John H. Westerhoff)는 부모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부모는 먼저 어린이처럼 다시 태어나야 하며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경험에도 자신을 열도록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 부모는 자녀와 더불어 신앙의 삶을 함께 나누며, 부모와 자녀는 함께 신앙의 순례의 길에 서 있는 인간이다. 자녀도 부모와 같이 신앙의 순례의 길에 그들과 함께 동행하여 줄 사람이 필요하다. 부모와 자녀는 함께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늘 물어야 한다.”우리는 신앙과 삶을 나누는 경험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신앙의 사업에 동참하였다면 함께 신앙과 삶을 나눔을 맛보게 될 것이다. 가정 단위로 사회적 행동에 참여하는 일은 가정을 신앙공동체로 만드는 귀한 프로그램이다.물론 위에서 생각해 본 신앙교육의 방법은 교회교육에서 활발히 체계적으로 시행되는 일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행하여질 때 신앙과 삶은 더욱 진하게 나누어지며, 가정교육의 자리를 신앙의 공동체로 만들게 한다. 여기에 부모의 역할과 태도는 가정교육과 교회교육의 자리의 공백을 메우기도 한다. 가정교육의 자리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자리를 위한 교회교육의 뒷받침과 연계성이 또한 중요하다.가정교회학교 운동신앙교육은 삶의 변화를 위해 체계가 필요하다. 이 체계를 조직화한 것이 교회학교이다. 교회학교의 주된 목적은 양육과 돌봄이며 이 돌봄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를 육성하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학교는 학교형(Schooling-Instructional Paradigm) 형태로 전락되어 신앙양육을 위한 교회교육이 퇴색되고 있다. 따라서 신앙교육과 변화를 위한 제도적인 교회학교의 변화가 요구된다.1. 오늘의 교회학교를 돌아보자.1) 현 교회학교 조직은 어떠한 형태로 구성되었는가?2) 한 사람이 신앙으로 양육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있을까?3) 공동체성을 찾을 수 있는가? 있다면 어떠한 프로그램인가?4) 한 사람의 신앙양욱을 위해 도와주는 (돌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5) 새신자를 위한 양육프로그램은 어떠한가?6) 신앙양욱을 위해 교회학교 교사들의 노력은 무엇인가?역할모형이 되는 교사를 추천할 수 있는가?7) 주간에 연결하는 양육프로그램은 무엇들인가?8) 가정/부모들과 연결되는 교회학교 프로그램(신앙양육을 위한 요소들)들을 있는대로 소개하라.2. 가정교회학교는 왜 중요한가?1) 신앙과 삶의 가치관은 0세-6세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발달심리학적 접근)65604540216 12 1730봄여름가을겨울① 영향을 주는 환경(의미부여) : 가정-사회-학교② 영향을 주는 사람(돌봄) : 부모-친구-교사-배우자③ 인생의 계절은 뛰어넘을큰 도움이 된다.8) 새신자 양육과정전도하여 한사람의 새신자가 등반되기까지는 소정의 양육과정이 필요하다. 양육과정을 마련하고 가정교회학교가 참여하는 일도 모색하자. 여기 안산광림교회의 유치부와 아동부의 모델을 제시한다. 각 교회별로 구체적인 양육과정을 만들고 시행하자.자녀와 함께하는 부모의 지도력지도력이 펼쳐지는 첫째의 현장은 가정이다. 부모-가정-자녀의 관계는 지도력의 두가지 면을 보여준다. 첫째, 올바른 지도자는 가정에서도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의 지도력은 부모로서의 지도자다. 둘째, 자녀의 신앙은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어떠한 접촉이 경험되었느냐에 영향을 받는다. 특히 어린시절에 원만한 가정생활과 부모의 사랑은 한 사람이 지도자로 성장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권면한다(에베소서6:4). 여기서 부모로서의 지도력 4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1. 노엽게 하지마라첫째, 부모가 주어진 힘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지도력의 방향이 가름된다. 부모가 가진 힘을 아무렇게나 사용한다든지 독재하는 것을 배우면 이 다음 커서 제2의 폭력자가 된다. 에릭슨(Erik Erikson) 연구에 의하면 히틀러(Adolf Hitler)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매를 몹시 맞고 자랐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의 힘은 가정을 부수고 식구들을 노엽게 하였다. 히틀러는 술마시는 아버지를 보고 단단히 결심했다.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고……’ 그는 술도 담배도 심지어는 커피도 안마시는 신념의 사나이가 되었다. 자기 자신을 무섭게 조절하였다. 그래서 장군이 되었다. 그에게 힘이 주어졌다. 그러나 힘쓰는 법을 배우지를 못했다. 배웠다면 아버지로부터의 폭력뿐이었다. 노여움으로부터 배운 힘은 제2차대전을 일으키는 폭력이 되었다.사람이 살아가다보면 저마다 힘이 주어진다. 이 힘(power)을 잘쓰면 에너지(energy)가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폭력(violence)이 된다. 우리 주위에는 졸부가 많아졌다. 졸부는 주어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