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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문열에 대하여
    이문열에 대하여...이 시대의 대표적인 보수적인 인사를 정치가 아닌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찾는다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사회적인 위치와 영향력 그리고 의견 개진의 적극성 등을 고려할 때 소설가 이문열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문열은 시민연대를 홍위병에 비유한 일과 그로 인한 곡학아세 논쟁, 책 반납 운동 등을 비롯하여 언론사 세무조사 논쟁, 국회의원 추미애와의 논쟁, 소설가 마광수에 대한 비판 등등 수많은 ‘이문열 논쟁’을 만들고 그에 휩싸였던 전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논쟁들에서 이문열의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의 의미로서의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소설가 이문열이 가진 보수성에 대해서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우선 이야기 해 볼 수 있을 것이다.이문열의 초기 작품들에서는 작가의 개인적인 보수적 세계관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같은 소설에서는 독재 권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민주주의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작품에 현실의 흐름을 객관적으로 반영함으로써 작가의 보수적 세계관에 앞서는 진보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은 작품이 예술적인 면에서 가치를 가지는데 큰 기여를 한다.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이문열의 작품을 살펴보면 작품 내에서 작가의 개인적인 세계관이 작품 자체의 예술적인 면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선택?, ?아가? 등의 작품들은 예술적인 면에서 평가를 받기보다는 작품이 가지는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면으로 인해 논쟁을 일으켜왔던 것이다. 소설 ?선택?은 400년 전 봉건왕조시절의 여성의 덕목을 선전하면서 여성 독자들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다. 이 소설에서 이문열은 동료이자 후배 여성작가의 작품 제목을 그대로 또는 변형시켜 인용하면서 작가 개인의 보수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었다. 문학적인 혹은 비문학적인 수많은 ‘이문열 논쟁’이후 발표한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 라는 소설은 90년대 중반 이후의 그의 작품의 정치소설적인 경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소설을 통한 노골적인 대사회적 발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듯 싶다.이러한 경향은 이문열이 현실적인 성공을 거둔 뒤로 그가 문단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커져가면서 더욱 늘어난 것이다. 이문열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고정 독자를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소설가이다. 현존하는 한국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상이란 상은 거의 모두 수상하였다는 점에서도 그의 인기는 입증된다. 그의 인세 수입의 총액은 100억원에 육박한다. 문학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그 이상으로 성공한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그러나 이문열이 보여주는 최근의 행적들은 한국 문단에서 차지하는 그의 위치를 고려할 때 매우 실망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마치 자신이 가진 문화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보수성을 점차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어느 집단이든 그 집단 내에서 권위와 권력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보수성을 필연적으로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 보수성이 오직 그 지위와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만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진보의 한 축을 이루는 보수가 아니라 수구 반동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문열이 최근 보여주는 보수성에 대한 위험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이문열은 이념과 전망, 진보에 대하여 지극히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념에 따라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 것을 내켜하진 않지만, 유행처럼 휩쓸려 급진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그가 가진 기질적인 보수성은 월북한 그의 아버지에 대한 컴플렉스와도 관련이 있다. 월북자의 가족에 대한 사회의 냉대로 인해 오히려 남한의 반공 이데올로기에 찬성하고 주류 사회로 편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논리가 뒷받침되지 않은 강박관념은 보수성의 수구로의 변질을 증폭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이문열은 권위주의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가 어른에게 대드는 것으로 치부한다.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권위주의의 틀 속에 가두고, 그 틀을 깨려는 자들에 대해서는 최고의 자리에 있는 어른에게 대들어 그 권위에 흠을 내 튀어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이분법적인 논리로 대응한다.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와 권력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합리적인 보수와 수구의 차이에는 ‘관용’의 존재 여부가 큰 영향을 미친다. 수구는 자신과 다른 생각과 비평을 받아들일만한 관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이문열이 가진 보수성이란 사실은 수구와 다르지 않음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변질된 보수성, 수구 반동적인 성질이 이문열 개인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있다.
    사회과학| 2004.05.07| 2페이지| 1,000원| 조회(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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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자에 대하여
    제자 백가 중 순자에 대하여1. 순자를 배우려는 나의 동기내가 처음 ‘제자 백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 한자를 배우던 때였다. 소학, 논어, 대학 등의 명문장을 익히면서 공자, 맹자, 노자, 한비자 등을 배우면서 마냥 어렵게만 느끼던 한자를 어려우나 한번 쯤은 곱씹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2학기 고문 수업을 계기로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우면서 내가 흥미를 느끼던 ‘순자’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흔히 공자,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비교하며 배울 때 우리는 사람은 천성이 착하나, 자라면서 그 사회와 환경에 의해서 악하게 변해가고, 그것을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뜻의 ‘성선설’을 대개 옳은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살아왔고, 혹여 그러지 않더라도 맞다고 교육받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특이해서 인지는 몰라도 난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게 되었다. ‘과연 사람이 정말 착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내 생각엔 아닌데,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능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것들이 그 전부를 차지하고 있지 않나? 혹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고 항변할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또다른 표현의 발로 아닌가?’라고 말이다. 이러한 나의 흥미로 인하여 ‘순자’라는 사람의 출생과 그 일대기, 업적 등을 찾아보고, 그의 사상의 핵심인 ‘성악설’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2. 순자는 누구인가성 순(荀). 이름 황(況). 조(趙)나라 사람. 순경(荀卿) ·손경자(孫卿子) 등으로 존칭된다. 《사기(史記)》에 전하는 그의 전기는 정확성이 없으나, 50세(일설에는 15세) 무렵에 제(齊)나라에 유학(遊學)하고, 진(秦)나라와 조나라에 유세(遊說)하였다. 제나라의 왕건(王建 : 재위 BC 264∼BC 221) 때 다시 제나라로 돌아가 직하(稷下)의 학사(學士) 중 최장로(最長老)로 존경받았다. 그러나 훗날, 그곳을 떠나 초(楚)나라의 재상 춘신군(春申君)의 천거로 난릉(각하는 교육의 중요성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순자가 생각하는 왕자(王者)는 결국은 교화의 주체이자 사회안정의 중심축인 셈이다. 그 역시 예(禮)를 논했지만, 그의 예(禮)는 보다 강제적·제도적·법적인 체계성을 띤 예(禮)라는 점에서 공자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강제성·제도적인 측면을 강하게 띠는 그의 논리는 법가의 논리와도 이어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4. 예학(禮學)(1)순자가 말하는 예(禮)공자(孔子)의 (禮)는 일종의 감화적 도구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예는 습관과 풍속에 합치해야 하며 법령같이 일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재보다는 감화 방면에 중점을 두었다. 공자의 예 사상은 맹자에 계승되었는데, "공자가 말하는 예의 근본은 바로 인의(仁義)이다. 맹자는 예의 근본인 인의를 주장하여 공자의 감화 정신에 대하여 충분한 보충과 발전을 가져왔으나 그 내용은 공자의 예 사상을 넘어서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이 공자의 예 사상을 넘어선 이가 바로 순자이다.순자에 있어서 천의 개념은 자연 현상이고 의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자는 天人之分을 명확히 한다. 즉 순자는 천지(自然)는 스스로 다스릴 수 없는 까닭에 군자나 성인 즉 인간에 의해 다스려 지는 것이므로 무조건 하늘을 칭송하는 것은 하늘을 이용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한다. 순자는 치국 수신의 예의법도는 성인이 제정한 인간들 스스로 발명한 것이지 천이 만들어 낸 자연존재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여 천도에 의거하지 않는 人道의 건립 즉 人爲主義를 말한다.순자는 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동시에 도덕 의지를 나타낸다."고 본다. 이는 "있는 그대로의 情을 심으로 선택하는 것을 慮라고 하고, 심으로 사려하여 동작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을 僞라 한다."고 하는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순자의 은 의 뜻을 가질 수 있는데, "심이란 육체의 군주이고, 신명의 주체이다. 스스로 명령을 발하고 다른 것의 명령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입은 억지로 말을 시킬수 있고, 다물게 할 수 있으며, ... 마음은 억그런 사람들이 왜 예의를 제정하려 하는가? 이에 대해 순자는 사람의 심리 성분 중에 외에 의 능력이 있다고 하였다. 순자는 누구든지 다 인의와 규범을 알 수 있는 소질과 행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다고 말하였다. 특히 그 중에서 이 높은 사람이 서로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혼란과 투쟁만이 가득 차 있는 사회 현실을 바라볼 때 개인 상호간의 마찰을 피하고 서로의 이익을 절제하여 서로가 화일(和一)할 수 있는 어떤 외적 표준을 제정해야 할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성인은 예의를 제정하게 되는 것이다. 무릇 예의란 성인의 인위적인 데서 온 것이요, 원래 사람의 성에서 온 것은 아니다. 성인이 예의를 만드는 것은 마치 도인이 흙을 주물러 그릇을 만드는 것과 공인이 나무를 잘라서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도인 공인이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은 확실히 후천의 학습과 경험에 의해서 이다. 그처럼 성인이 노력하여 예의를 만드는 것은 역시 경험을 쌓음에 의해서 인 것은 확실하다. 그 경험이란 것은 需要의 산물이다. "만일 스승이 없으면 편벽한 데로 기울어져 부정해질 것이요, 예의가 없으면 난폭하여 다스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이를 위하여 예의를 일으키고 법도를 세워서 성정을 교정하고 훈련함으로서 사회 규범에 따르고 도리에 맞도록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성인이 예의를 제정한 것은 그릇이 생활에 필요하듯이 사회의 편리함을 위해서 인 것이다.(2)예(禮)의 기원과 그 함의의 범위禮의 기원에 대해서 순자는 "예는 어디에서 기원되었는가? 사람은 나면서 욕망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채우려고 추구하는데 제한과 절도가 없으면 서로 다투게 된다. 다투면 사회는 어지려워 지고 사회는 막다른 길로 치닫게 된다. 옛날 성왕이 이 혼란을 싫어하여 예를 제정하여서 분별이 있도록 하였다." 여기에서 성왕이 예를 제정한 목적은 첫째 인간 악의 본성을 교정하려는 것, 둘째 천하를 치평 하기 위하여 예를 제정하였는데, 예의 제정 목적이 바로 그 기원이 된다. 순자는 하여도 실천이 거기까지 가지 않는 것은 심의 판단이 제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심이 理에 맞으면 욕심이 아무리 많아도 평화스러운 정치에 문제 될 것이 없다. 욕심이 적어도 행동의 지나치면 그것도 마음이 시키는 것이니 마음의 도리에 어긋나면 욕심이 적어도 평화로운 사회 질서는 어지러워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의 치란은 마음의 판단에 있고 욕심은 과욕에 있는 것은 아니다. 순자에서 상벌(賞罰)은 아주 중요한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많이 가지려고 하지 적게 가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 양은 물론 예의 중요 작용이지만 또 다른 예의 작용 원리인 분에 합해져야만 하는 것이다.순자는 "그러므로 선왕과 성인이 마음을 써 중을 세우고 절을 정하니 일사 분란 하게 문리를 이룩하게 했던 것이다." 고 말하여 모든 예는 (중도를 세우고 절도를 지음)의 작용을 모두 구유(具有)한다. "무릇 예라고 하는 것은 안으로는 사람의 절도를 짓고, 밖으로는 온 사물의 절도를 짓는 것이다." "예라는 것은 절의 표준이다." 등은 모두 예와 절의 작용을 두루 갖추고 있음을 말한다. 인정에 맞추어서 예문을 세우는 것이 바로 절의 대 원칙이다. 순자는 과 것이 바로 節의 작용이다. 예가 문을 가지는 이유는 내부에 마땅히 있는 감정을 표시하고 또한 감정을 조절(節)하여 적의(適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례, 제례 등의 의식은 귀신 숭배가 아니고, 인간들이 이 의식을 통하여 귀신이나 망자의 영혼을 움직이려는 것도 아니며, 인간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장식하는 것이라고 순자는 말한다.(4)예(禮)의 효용순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도덕 수양의 공부는 외적인 표준에 의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순자는 이 외적인 표준으로 예를 말한다. "기를 다스리고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으로는 혈기가 너무 강하면 항상 조화시켜 부드럽게 하며, 생각이 깊으면 평이하고 알기 쉬운 도로서 통일하며, 용기와 담력이 맹렬하면 화하고, 도로서 순하게 하며, 재빠르고 민첩하면 묵중한 태도로서 조절하고.. 무릇 기개를 다스리는 합리적이며, 더욱이 전국사상(戰國思想)의 여러 유형을 지양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것이었으므로 그의 사상사적(思想史的) 위치는 서양 철학사(哲學史)상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비교된다. 순자는 인간을 공동체 ‘군()’ 안에서의 존재로 규정하고, 인간 궁극의 실천목적을 묵가(墨家)의 사상을 취하여 그 공동체, 즉 윤리적 질서체(秩序體)의 이념에 둔다. 그 질서는 법가적(法家的)으로, 개인의 ‘분수’ 를 타율적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보나, 다시 그것을 초월하여 유기적 ·합목적적 격률(合目的的 格律) ‘성왕(聖王)의 제(制)와 예의’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리하여 객관적 규범에 의한 실천적 합리론(合理論)이 형성된다.전통적인 종교 관념 ‘하늘[天]’에 대하여서도 비판적이고 현실적이며, 유명론적(唯名論的)인 명가사상(名家思想)에 대하여서 역시 비판적이다. 그리하여 실념론적(實念論的) 입장에서 개념 종속 관계와 범주론(範疇論)을 거론하는 진보된 논리적 사고를 나타내며, 오직 명사(名辭)의 타당성은 합목적사회관습(合目的社會慣習) ‘왕제(王制)’에 의하여 정해지는 것이 특징적이다. 노장(老莊)의 변증적(辨證的) 사변(思辨)의 영향을 받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사상과는 가장 대조적이며,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욕(欲)과 지(知)가 있는 자주적 목적체(自主的目的體)로 보는 유가(儒家) 부동(不動)의 바탕에 선다. 동시에 원존재(原存在)와 의의활동(意義活動)을 구별하고, 특히 후자의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합리적 인위(人爲)인 ‘위(僞)’ 주의를 주장하였다. 종래 한동안 순자는 ‘성(性)은 악(惡)이고, 선(善)한 것은 위(僞)’라는 성악론자(性惡論者)로 이해되어 왔다.그러나 이것은 맹자처럼 인간성의 직접 확충(擴充)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생득적(生得的)인 의욕을 악한 것이라 부정함으로써 선한 의의활동이 있다(이 점은 제나라의 유심론적 영향이라 하겠다)는, 즉 인간의 정신은 주관적으로는 다면(多面)으로 작용하나 그것을 부정하여 객관적 규범에 귀일(歸一)함으로써 후자의 목적으췌함.
    인문/어학| 2004.05.07| 9페이지| 1,000원| 조회(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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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감상]조나단 스펜서의 천안문
    조나단 스펜서의 『천안문』을 읽고,흔히 천안문 이란 말을 듣게 되면, 1989년의 천안문 사태를 생각하게 된다. 중국에 대해서 처음 접하는 내게도 역시 『천안문』이란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음에는 추호의 여지도 없다.하지만,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러한 나의 고정 관념은 깨끗이 사라졌다. 이 책 속의 사람들은 그들이 하고자 했던 일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삶을 불태웠던 사람들이다. 빤히 보이는 위험도 아랑곳 않고 거의 가망이 없을 때조차 확고한 희망을 견지하고 생존을 향해 돌진한 인물들이다. 이 책 속에는 폭력과 혁명의 거센 물살에 휘말린 중국 근현대사를 살다 간 사람들의 일생이 피와 눈물과 함께 살아 있다.조나단 스펜스는 천안문이 갖는 이러한 상징성에 주목한다. 캉유웨이, 루쉰 그리고 딩링의 삶을 날줄로 하고 량치차오, 쉬즈모, 원이둬, 취추바이, 선총원, 라오서 등 여러 지식인 또는 문인의 삶을 씨줄로 하여 고난에 찬 중국 현대사를 마치 한 편의 소설이나 '영화처럼' 아주 생생하게 소개한 저작이다.(『한국일보』, 1999, 3월)『천안문』은 189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약 100여 년 동안의 중국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책의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에서 나는 청조 말기 캉유웨이와 량치차오 같은 유학자의 세계를 중국혁명의 시점으로 잡았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중국이 세계사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어려운 과제와 씨름하면서 살았다. 또한 입헌개혁과 대중 참여정치의 의미를 둘러싸고 고군분투했다. 『천안문』의 마지막 장에서는 베이다오(北島)와 웨이징성(魏京生)이 민주의 벽에서 상상의 세계를 다시 만들어 내고 정부의 책임과 인민의 권리를 재구축하려고 노력한 1978년 초와 1979년 말을 다룬다. 캉유웨이와 량치차오가 청조 말기에 모험을 하다가 추방되었듯이, 베이다오와 웨이징성은 90년 뒤 공산당 통치자들에 의해 추방되었다. (『천안문』,조나단 스펜스, 1999, 2월) 이 책은 당시 중국의 인물을 중심으로 서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조나단 스펜스는 흔히 20세기 초, 중반의 중국을 이야기할 때 나오는,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인물인 쑨원,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이 아닌 캉유웨이나, 루쉰 같은 사람들을 더욱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조금은 색다른 저자의 전개 방식에 따라 책의 개괄적 내용을 정리하고, 그에 따른 나의 생각을 표현하겠다.수천 년 내려온 봉건왕조가 자기도취에 빠져 부패하고 무능했던 청말, 서구 열강에 의해 영토와 인민의 주권이 여지없이 유린되던 시기, 돌봐줄 사람 없는 노인, 거지, 병자들이 길바닥에 쓰러져 굶어 죽어가는 암흑의 시기, 젊은 캉유웨이는 자신이 할 일과 사명에 대해 깊이 고뇌했다. 그리고 "하늘이 나에게 인류를 구제할 지혜와 능력을 부여했다는 확신"에 이른다. 그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상황에서 황실을 비판하고 근대적 개혁안을 수없이 작성했으며 젊은 유생들을 모아 가르치는 한편, 여론을 주도했다. 학자 집안에서 태어난 캉유웨이는 공자를 '개혁가'로 부각시킨 를 통해 전통사상에서 개혁 이념을 끌어내려 했다. 그는 젊은 광서제를 추동해 개혁을 이루려 했지만 1898년 동생을 포함한 개혁가들이 처형당하는 아픔을 겪은 뒤 폼페이, 로마, 밀라노, 파리, 베를린, 예루살렘 등 세계 각국을 주유하는 방랑객으로 변신한다. 비록 그의 개혁정치가 1백일간의 천하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인류가 가야 할 이상사회를 서술한 『대동서(大同書)』는 오늘의 고전이 돼 있다. 실패와 좌절, 긴 유랑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았던 이상사회에 대한 동경과 집요한 노력은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청조의 지식인들은 각성을 통해서 현실을 파악하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폭력을 수단으로 하여 활동을 하게된다. 그렇지만 이것은 실패를 하게되고 그들의 대부분은 일본과 세계 각지로 흩어져 유랑을 하게 된다. 마침내 공화제가 성립되지만 그것이 자리잡기도 전에 중국은 혼란에 휘말리게 된다. 중국은 인구증가로 굶주림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다. 특히다. 그 대표적 인물로는 캉유웨이와 쑨원, 루쉰 등의 인물이 있다.캉유웨이는 청조 말의 학자로 입헌군주제를 내세우면서 개혁에 나서게 되고, 쑨원은 만주왕조를 타도하고 공화정을 세울 것을 목표로 혁명에 나서게 된다. 이들은 그들의 이상을 비밀결사 조직을 통해서 폭력적인 방법까지 써가면서 그들의 목표를 이루려고 하지만, 대부분의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이들은 해외 각지로 유랑하는 신세가 된다. 그렇지만 이들의 비밀 조직은 해외 화교자본의 지원으로 인해 계속되어가고 있었다.두번째 주인공 루쉰은 캉과 달리 전통을 깡그리 부정했다. 전통 의학의 의심스런 처방에 의존하다 죽어간 아버지를 목도한 루쉰은 의학 공부를 위해 일본 센다이 의전에 입학했지만, 1905년 유명한 '환등기 사건'을 겪은 뒤 2년 만에 자퇴한다. 러일전쟁 때 러시아의 스파이라는 혐의로 일본군에게 처형당하는 중국인들과 그들을 구경하는 허우대 멀쩡한 중국인들의 모습을 환등기에서 본 루쉰은, "나약하고 낙후한 나라의 인민은 아무리 몸이 튼튼해도 기껏 무의미한 처형 대상이나 그 구경꾼이 될 뿐이다. 제일 먼저 손대야 할 일은 그들의 정신을 개혁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후, "적들이여 나를 계속 미워하라. 나도 결코 적들 가운데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란 유서를 남기고 1936년 죽음을 맞기까지, 루쉰은 치열한 자기부정으로 점철한 작가혼의 상징이다.그 당시 루쉰은 일본에서 의학공부를 하다가 문학에 빠져든다. 이후 캉유웨이나 쑨원과는 달리 문예운동을 통해 중국의 변화를 유도하게 된다. 캉유웨이는 청조가 몰락하고 공화정이 들어설 당시까지 최대의 세력 이였으나, 1912년 쑨원의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 취임으로 세력이 약해진다. 그렇지만 공화제의 중국은 군벌세력의 간섭으로 안정적으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비록 공화제가 되었을지라도 일부의 세력들은 청조의 부활과 입헌군주제로의 이행을 시도하고 있었다.컁유웨이와 량치차오가 격렬하게 주창한 이러한 중국의 자주, 개혁을 위한 반만 선전활동을 본문명을 얻은 그는 1931년 남편이 국민당에 의해 처형당한 뒤 좌익작가연맹의 중심 인물로 활동했으나, 60~70년대엔 '노동을 통한 개조'와 투옥의 고초를 겪다 1979년에야 복권되는 등 파란의 삶을 살았다. 1905년에 태어나 1980년대까지 살았던 딩링과 양가 규수의 신분증과 같았던 전족을 풀고 아픈 발로 운동장을 뛴 딩링의 어머니에게서는 중국 현대여성의 도도한 혁명사를 보게 된다. 국민당에 의한 구금상태에서 공산당 통치구로 탈출해, 일생동안 인민을 위한 문화운동과 창작활동을 한 딩링이었지만 끝내는 숙청돼 변방에 유배, 10여 년간 양계장의 노동자생활을 감수해야 하는 데 이르러선 역사와 민족에 대한 한 여성의 순수한 열정이 무엇으로 남았는가, 냉혹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하게 만든다.(『출판 저널』, 황희경, 1999, 3월)책에서 아시아의 국가들이 근대화를 추진함에 있어서 여성의 문제를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여성들의 생각과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여권의 신장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이루어졌나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책이 과거에 없었기 때문에 나 역시 그 문제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남성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지은이는 이들 세 사람이 릴레이처럼 이어가는 혁명의 대하 드라마 사이에 수많은 작가와 혁명가와 지식인의 삶을 짜넣었다. 거기에는 "중국은 제 몸값을 받는 창녀만도 못한, 주인의 다리 사이에 엎드린 노새와 같다"고 질타하다 1905년 겨우 19살의 나이에 옥사한 쩌우룽, "3인치의 발(전족)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외치다 모반사건에 연루돼 1907년 참수당한 여성 혁명가 추진, 등 풍자문학으로 명성을 떨치다 1966년 문화대혁명 초기 홍위병들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한 뒤 타이핑 호수로 걸어들어간 작가 라오서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언뜻언뜻 얼굴을 내비친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이 당시의 지식인들 중 많은 수가 일본에서 신학문을 공 받았던 사람의 대부분이 - 몇몇 지주계급 출신 지식인을 제외하고 - 이에 해당하는데, 마오쩌둥, 딩링, 샤오준, 취추바이 등이 대표적이다. 외세 특히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면서 중국은 크게 쑨원의 삼민주의를 이어받은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과 좌파로 표현되는 공산당의 대립과 성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공산당은 노동자들과 학생들과의 연대로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게 되고, 이에 국민당은 무자비한 진압과 살인을 통해 이들을 탄압한다.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티어온 공산당은 1940년대부터 국공합작을 통해 세력기반을 키우면서 결국에는 국민당을 몰아내고 중국 대륙을 통일하게 된다. 후에 백화운동과 대약진이 실패로 위기를 맡게 되지만 문화혁명을 통해 중국은 안정을 되찾아 간다.여기에서는 특히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작품이 매우 많이 수록되어 있다. 책에서 다루는 시대가 현재와 그리 멀지 않은 시점이라 그 사료가 현재에도 많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수록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들은 지식인들간의 대화, 강연, 편지 등이 대다수이다. 이러한 사료들은 대부분이 은유로 이루어져 있음으로 인해서 당시의 상황에 대한 해박한 지식의 상당한 축적 없이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수준에서 이것들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또한 그 내용에 있어서 그러한 사료들은 중국인의 전체의 모습이 아닌 소수의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그치고 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그 당시의 중국의 상황을 대변한다고 생각할 때 이것은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나머지 일반 사람들의 모습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당시의 문예사조와 사상의 흐름은 알 수 있지만, 농촌 사람들의 피폐한 모습과 경제의 흐름과 외세에 대항하는 중국인의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러한 요인들로 인하여 역사의 흐름을 '엘리트의 역사'로 이해하게 되는 혼란을 범하기도 하였다.청조말기의 혼란과 이후의 공화제 하에서의 혼란,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이후의 혼각한다.
    인문/어학| 2004.05.07| 6페이지| 2,000원| 조회(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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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서감상] 위험한 동화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비교감상
    현대인의 삶에는 항상 허무와 삶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 따라다닌다. 그리고 각자가 잘 포장된 틀에 쌓여서 속을 감추고 서로 비슷비슷한 겉모습만을 내보이며 산다. 그렇게 살면서도 나란게 뭔가? ,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는게 현대인인 것 같다. 사람들은 거기서 느끼는 환멸을 다른 것에 집중함으로 풀려고 하고, 그 집중할 곳을 찾는다. 또 삶의 본질을 깨서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한다. 사람들이 집중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섹스이고 삶의 본질을 캐다가 마지막에 다다른 곳은 바로 죽음이다.이것을 잘 표현해 놓은 소설이 있다. 바로 위험한 동화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라는 작품이다. 위험한 동화에서 나라는 인물은 한편의 소설을 책으로 낸 작가이자 살인사건을 종류별로 분류하는 일을 하는 직장인이다. 나는 어렸을 때 가족을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외로움이라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인물이다. 나는 그 외로움에 익숙하지만 또 그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 나는 외로움을 창녀와 콜걸등을 만나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으로 해소해 보려 하지만, 한 순간일뿐이다. 어느 날, 그에게 베린이라는 젊은 여자가 나타난다. 베린은 자신이 나가 쓴 소설의 주인공인 쥬베이더와 닮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와 시간을 보내면서 쥬베이더에 대해, 즉 자신에 대해 더 설명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쓴 그 소설이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베린과의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이 쓴 소설을 다시 탐색하고 닮은 점을 찾아간다.나는 라는 또다른 옛 애인이 이TEk. 그녀와는 헤어졌지만 서로가 잊지 못한다. 그녀는 새로운 사람과 사귀면서 나가 상처입기를 바란다. 나는 그녀의 행동들이 모두 의도적임을 알면서도 상처를 입고 그러면서도 그녀를 그리워한다. 나는 베린과 둘 다를 사랑하지만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못하고 또 어느 한쪽도 차지하지 못한다. 두 여자도 나를 사랑하지만 완전한 관계를 지속하지 못한다. 나는 외로움의 탈출구를 찾아 계속 헤매지만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어느 사랑도 이루지 못하고 알수 없는 이유로 해외로 나가게 된다.나는 나를 포기할 권리가 있다.의 주인공 나는 다른 사람의 자살을 도와주는 자살보조업자이다. 다소 허무맹랑한 직업을 가진 나는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자기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 이라고 말한다. 그가 신이 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다른 사람의 자살을 도와주고 그것을 글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 속엔 그가 쓴 또다른 소설이 있다.그의 고객은 유디트를 닮은 세연이라는 여자다. 그녀느 케이와 밤을 보내는 사이지만 그의 형인 씨와 밤을 보내는 것도 거리끼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 섹스는 심심함을 풀려는 놀이일 뿐이다. 씨와 케이는 형제지만 서로 간의 골이 깊다. 세연이 가스를 틀어놓고 자살한 후 케이는 씨를 찾아가서 운전할 때 항상 마지막이 되기 전에 브레이크를 밟곤 했는데 이제 마지막까지 가볼 작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씨는 그것을 말리지 않는다.세연이 자살한 후, 나는 여행을 떠나고 그 여행길에서 한 명의 여자를 만난다. 항상 콜라만 들이키는 그녀는 에비앙 생수를 싫어한다. 생수를 마시면 구토하는 그녀는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술집에서 마네킹으로 일하던 자신을 돈으로 사간 남자가 항상 자신의 정액을 마시게 했고 그 후엔 항상 에비앙 생수를 마셨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정액을 모아 그 남자에게 권총으로 협박해서 마시게 한 후 도망쳐 나왔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거짓인지 알 수 없고 나는 더 이상 물으려 하지 않는다. 나의 또다른 고객은 유미미라는 전위예술가이다. 그녀는 자살을 앞두고 가장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을 해보라는 나의 충고에 지금까지 거부해왔던 자신의 예술에 대한 복제를 시도한다. 그 도구는 바로 씨의 비디오아트다. 복제를 거부해 온 그녀는 결국 가장 완벽한 복제 수단인 비디오에 갇히게 되고 그녀는 그것이 비디오에 찍히는 순간 자신의 예술이 아니라고 말한다. 미미는 결국 전시회에서의 공연까지 끝낸 후, 처음 시도에서 실패한 욕조에서 동맥을 긋는 방법으로 자살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소설로 재창조한다.
    인문/어학| 2004.05.07| 2페이지| 1,000원| 조회(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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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사회학] 3.12 대통령 탄핵소추와 2002 월드컵 열기를 스포츠 사회학의 이론을 적용하여 논하라
    3.12 대통령 탄핵소추와 2002 월드컵 열기를 스포츠 사회학의 이론을 적용하여 논하라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가결은 총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대한민국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작금의 상황은 집권 여당에 매우 유리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지난번 월드컵에서 우리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길거리 응원에 필적하는 촛불 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킨 야당들은 전국민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과연 월드컵의 응원 열기와 탄핵 소추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언뜻 보면 이 둘은 별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이 둘의 공통점은 유추해낼 수 있다. 국민들이 서로 같은 마음으로 무언가를 목적하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번 월드컵에서 어떠하였는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우리 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였고 매 경기 서울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그 승리에 대한 염원을 몸소 실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길거리 응원은 외신들에 의해 전 세계로 널리 알려져 특종이 되기도 하였다. 한편 탄핵 소추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냉소이다. 분노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치적인 상황에 따른 견해가 매우 다양한 것은 개인적인 생각의 표출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러므로 탄핵 소추안 통과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들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높은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탄핵 소추의 부당함을 소리 높여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월드컵 열기와 같은 한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번 주한 미군 장갑차 사건과 같은 촛불 집회가 월드컵 응원의 성지인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탄핵의 부당함을 한 마음을 가지고 모여 공동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포츠의 사회통합적 기능에 비추어 볼 때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스포츠를 통해 인간은 서로 집단을 형성하여 공동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또 그 목표를 위해 협동과 분업 등을 하여 성과를 얻는다. 그 과정에서 인간 사회는 서로 통합을 이루게 되는 데 월드컵 때의 응원이나 작금의 촛불 집회가 모두 이러한 사회 통합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서로 같은 목표와 의도를 지니고 모여서 주장하고 행동하는 것에서 이러한 사회 통합을 찾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 집단 속에서 동일한 목표 하에 일체감을 느끼는 것도 사회 통합의 한 단면이다. 축구 대표팀과 국민 모두와의 정신적 일체감이나 탄핵 반대자와 반대 집회가 그 예라 할 수 있다.우리 국민들은 지난 번 월드컵 4강 신화를 통해 오랜 숙원을 풀었고 승리의 기쁨도 만끽하였다. 축구 대표팀의 대표 선수들의 고된 훈련과 국민들의 염원을 이해하고 그것을 위해 헌신하려는 선수들의 의지, 그리고 홈의 이점과 국민들의 엄청난 응원 열기 등은 우리 대한 민국을 축구 신흥 강호로 도약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과연 이것을 통해 우리 국민들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바로 희열감이 아닐까, 카타르시스가 아닐까. 승리에 목말라 하는 선수들과 축구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역시 승리를 꼭 이루길 바랐고 마치 민주화를 애타게 열망하고 갈망하던 1980년대 후반의 대한 민국 국민들의 그 목마름과 같은 승리를 우리는 따냈고 그 기쁨과 희열을 만끽하였다. 희열.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얻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포츠의 사회 정화적 기능을 엿볼 수 있는 키 포인트이다. 응원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알게 모르게 받았던 모든 스트레스를 전부 날려 보내고 대리 만족을 통하여 즐거움을 나누며 인간의 내면에 내재된 공격적 성향을 스트레스에 의한 왜곡된 부정적 방향이 아닌 긍정적 방향으로 전환하여 배출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얻은 것이고 또 정화, 즉 카타르시스이며 스포츠의 사회 정화 기능이다. 이제 눈길을 돌려 탄핵 쪽을 살펴 보면 이 또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데 이 또한 카타르시스이다. 대통령 탄핵 소추안의 국회 가결은 우리가 교육을 받으면서 교과서를 통해서나 알던 그 탄핵이 실제로 이루어 질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의 도화선이다. 일종의 국가 비상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정부가 수립된 이래로 경제적 성장과 부의 축적을 위해 정치나 사회적 평등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고 이를 파악한 소수의 세력들에게 맹목적인 충성에 의해서나 무지에 의해서나 국민의 권력을 강탈당하여 억압과 부당함을 당하며 살았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그때 마다 국민의 힘을 보여 주면서 민주화의 염원을 달성하였고 또 그것을 지켜오고 있다. 이러한 국민들의 성숙한 정치 의식을 애써 무시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또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야당을 위시한 소수의 세력들은 이제는 개혁을 위해 변화를 추구하는 국민들의 열망을 꺾고 이를 이해하고 대변하려는 한 개인의 의욕을 무참히 꺾으려는 일을 자행하였다. 본래는 강하고 또 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권력에 약했던, 기득권층에 약했던 우리 일반 국민들이 또 한번의 승리를 위해 서로 모여 그 동안의 억압이나 불편 부당을 토로하고 그것을 해소하여 제대로 된 질서의 창조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탄핵 반대 촛불 집회와 같은 일련의 집회이다. 이를 통해 승리를 확신하고 실제로 얻어내며 희열을 맛보고 억압과 부당함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만을 사회 불안과 혼란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표출하여 긍정적이고 옳은 답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회 정화가 아닐는지. 총선이라는 기회 앞에 주어진 사전 의견 조율을 통해 소수가 주인이 아닌 다수가 주인임을 명확히 인식시키는 이러한 일들이 국민의 심판에서 불합리와 불편 부당을 해소하는 첩경이며 바로 사회 정화는 아닐까 싶다. 갈등 이론에서 보면 지배 집단과 종속 집단의 끊임없는 갈등에서 사회는 변화한다고 하였다. 그 갈등에 의한 변화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바로 사회 정화가 위의 갈등 상황에서 얻어진 부산물이라 볼 수 있다. 즉 변증법적 원리에 의해 얻어지는 합에 해당하는 것이 사회 정화이다.모든 것들은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것이 있기 마련이다. 비록 탄핵 소추와 월드컵 응원 열기가 국민들의 통합과 카타르시스 욕구 해결에 매우 긍정적인 작용을 하였고 그에 따라 우리들에게 이로운 것이 됨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사회 통제이다. 스포츠는 특히 신군부 시절 즉 전두환 대통령 집권기에 3S라 하여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세가지 중 한가지라는 사실이다. 스포츠의 사회 통제 기능을 두고 한 표현인데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기에도 박 대통령은 많은 스포츠 사업을 전개하고 장려하여 국민들의 관심을 돌린 바가 있다. 이는 스포츠 사회학의 이론에서 보면 구조 기능주의 이론에서 일탈 행위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스포츠를 이용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모순된 사회에서 가득찬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고 통제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스포츠이고 3S이다. 월드컵 응원을 통해 그 전의 정치 상황과 국론 분열, 그리고 여러 가지 국가적 상황을 잊고 서로 한 마음이 될 수 있었는데 이것 역시 국가의 사회 통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탄핵 소추 역시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치적인 상황과 경제 문제를 위시로 한 국가의 중대사들에서 국민들의 관심을 아주 조금이나마 돌릴 수 있는 기회였고 사회 통제였다. 스포츠의 역할에 비견 될 만큼 효과적인 탄핵 소추의 카드는 결국 야당에는 독이 되었지만 그 당시 상황에서는 야당이 노릴 수 밖에 없는 그런 수단이었고 국민적 불만을 잠시나마 돌릴 수 있는 스포츠와 일맥 상통하는 사회 통제 기능을 지닌 것이 바로 탄핵 소추였다고 사료된다.위에서 살펴보고 궁리해 본 바로는 탄핵 소추와 월드컵 열기는 그 기능적인 측면에서 서로 유사하고 일맥 상통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2002년의 월드컵이나 2004년의 탄핵 국면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고 이들이 낳은 결과들은 국민들을 서로 묶거나 행동하게 하였다.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들에서 우리는 사회적인 의미를 탐구할 수 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살펴 본 3가지 기능적 측면을 바탕으로 사회나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고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인가를 잘 알고 실천하는 것이 이들의 관계를 설정하고 탐구하여 알아내는 것 만큼 중요하다.
    인문/어학| 2004.05.07| 3페이지| 1,000원| 조회(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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