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국립박물관을다녀와서...학과: 중국학과학번: 19991318이름: 신태익제출일: 2005.4.15국립춘천박물관...그곳이 나에게 준 첫 느낌은 참으로 고요하다. 였다.수 천년 아니 수 만년의 비밀을 간직한 곳에 도착했을 때 난 이미 들떠있었다.국립춘천박물관은 전경이 참 아름다웠다. 도심한가운데 있음에도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었고 어떤 경계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님에도 고요하고 신비스러웠다.유물들은 선사시대부터 시대별로 전시되고 있었다.선사시대를 지나 고대의 강원을 관람하던 중 선림원지 동종 을 만났다. 비록 진품은 소실되어 본래의 아름다움을 전하고있지는 않았지만 복원품 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전시된 성림원지 동종 에서 녹음된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그 소리 역시 맑고 단아했다.이 종은 1948년 강원도 양양 선림원지 에서 발견되어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에 있는 사찰 월정사에 보관되어 오다가 1950년 6·25 전쟁으로 불에 타 잔편만이 남아있고, 높이는 1m정도이다.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진 종으로 수업시간에 배운 그 시대의 범종의 특징을 모두 담고있었다.멀리까지 맑은 소리가 울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음통과 종을 물고있는 용의 모양 용뉴 그리고 4개의 유곽과 각각의 유곽에 9개씩의 유두도 관찰 할 수 있었다.1/3지점에 종을 쳤을 때 소리의 울림이 가장 아름다운 곳을 과학적으로 표시한 당좌와 종의 한가운데를 장식하고 있는 주악천인상도 보였다.처음엔 우리 한국의 종에서만 볼 수 있다는 음통이 너무 신기해서 음통을 바라보았다.저 작은 구멍하나에 우리민족의 예술과학이 숨어있다고 생각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음통 옆에는 종을 바치고있는 듯한 모습의 용, 용뉴가 있었다.수업시간에 본 상원사 동종 의 용뉴의 모습이 떠올랐다. 커다랗고 무거운 종을 꽉 잡아 힘들어하던 모습의 용 무섭다기 보다는 귀엽기까지한 상원사동종 의 용뉴만큼 멋있지는 않았지만 종의 울림을 멀리까지 울려퍼지게 해서 중생들을 편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있는 용뉴였다.상대부분과 유곽 그리고 하대부분의 무늬는 비슷하였는데 연꽃과 구름무늬를 도식화 해놓은 것 같았다. 그 무늬에 나름의 의미가 있겠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진 못하였고 보기에 참 멋스러웠다.주악천인상 역시 참 아름다웠다. 수업시간에 접해본 상원사 동종 에 나타난 주악천인상과는 달리 선림원지 동종 에서는 주악천인상이 가부좌를 하고 각각 악기를 들고있었다.천인상 주위에 표현된 구름문양은 섬세하면서도 힘있게 뻗어있어 더욱 신비롭게 보였다.불에 타서 소실된 진품에서 주악천인상의 모습을 희미하게 볼 수 있었는데 잘 알아볼 순 없었지만 그 자태가 참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였다.소실된 진품을 보면서 1000여 년 동안 우리를 지켜본 범종이 전쟁에 희생되었다는 것이 참 안타까울 뿐이었다.이 선림원지 종의 몸체 내부에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고한다.이를 통해 선림원지 동종 이 통일신라시대인 804년에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고종 주조에 관계된 시주자 명단 등을 통해 당시의 관직명과 이두 등을 살펴 볼 수 있다고 한다.신라의 공예품들 중 가장 뛰어난 것 중 하나가 범종이다. 범종이 신라인들의 생활에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범종이 그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소리로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을 담고있다고 한다.절에서 예불을 올릴 때마다 두드리는 범종은 이러한 중생구제의 뜻을 담고 있으며 치는데도 법도가 있으며, 범종을 치는 횟수는 예불마다 다른데, 새벽예불을 할 때는 28번 저녁예불에서는 33번을 치도록 정해져 있다.이 28과 33이란 숫자도 저마다 뜻을 갖고 있는데, 28번은 삼계 즉 욕망이 존재하는 욕계의 6천, 욕망을 떠난 청정한 세계인 색계의 18천, 무념무상의 무색계 4천을 뜻한다.33은 욕계 6천중의 하나인 도리천의 33천을 상징한다. 도리천의 왕인 제석천왕이 있는 선견성을 중심으로 사방에 8성씩 32성을 포함해 총 33성을 갖고 있다.아침 저녁마다 울리는 예불의 범종소리는 삼계와 도리천에 전해져 이곳의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선림원지 동종 을 보면서 계속해서 상원사 동종 이 떠올랐다.범종의 전체적인 생김새와 그 특징이 비슷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고 신라인들에 있어서 범종이 의미하는 바가 중생구제의 목적이라면 선림원지 동종 보다 좀 더 오래되고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보이는 상원사 동종 역시 의미하는 바가 같기 때문일 것이다.상원사 동종 은 신라 성덕왕 때 주조되었으며 현존하는 우리나라 종 중에서 조형적으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종으로 평가되고 있다.종의 높이는 1.67m이며 선림원지 동종 과 마찬가지로 음통, 용뉴, 당좌 주악천인상, 유두등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한국 신라의 종의 양식은 중국의 은주고동기에 그 연원을 두고 있지만 한국 종의 가지는 특색은 세계의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다.학자들은 이러한 종을 가르켜 한국 종 이라는 학명으로 부르고 있다.뿐만 아니라 신라의 종은 그 주금술과 조형미 그리고 마치 영겁의 소리에도 비길 수 있는 아름다운 종소리는 국제수준에 오른 세계 명종의 하나로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내용출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지음 학고재 발행-선림원지 동종 은 1949년 38선 근처에서 목기를 깍는 사람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그러나 해방직후의 열악한 교통사정과 북한 공산군과의 전투 시작으로 종에대한 연구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그래서 1950년 1월 군대의 도움으로 선림원지 동종 이 있는 곳으로의 산중직로(山中直路)를 통하여 종이 월정사로 옮겨졌다.이 종은 상원사 동종 이나 성덕대왕 신종 과는 달리 종의 명문(銘文)이 종의 내부에 위치해있다.명문의 내용은 종의 주조 년도와 시주 원하는 소망(願旨) 그리고 당대에 활약하던 큰스님들의 이름이 나타나 있다.-내용출처: 문화사학 10권 양양선림원지 출토의 신라범종 한국문화사학회발행-선림원지 동종 이 있었던 선림원은 어떤 곳이었을까?선림원은 초기 선종이 태동한 근거지였다. 선림원은 부석사계 화엄종 사찰이었다가 9세기 염거선사를 거쳐 홍각선사 시대에는 완전히 선종화됐다
천진시천진시는 광주, 상해, 총칭과 함께 중앙직할시로 인구 127,627만명이며, 중국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진출해 있는 도시중에 하나로 삼성, LG, 현대 등 많은 대기업들과 중소기업의 공장들이 많다. 천진 상회에 이어 2001년 가을 천진 한국인회도 발족했으며 같은해 가을 한국어 전용라디오 방송프로그램이 생기기도 했다.천진에는 북역, 서역, 동역등 3개의 역이 있다 그러나 보통 천진역이라고 할 때는 동역을 말한다. 천진은 京哈線(북경∼하얼빈), 京瀘線(북경∼상해)의 분기점으로 중국 남북육상교통의 중심지이면서 탕구, 천진시항이 있어 해상수송의 기지이기도 하다.이처럼 육해 교통편이 좋기 때문에 상공업도시로, 국제무역도시로 활기를 띠고 있다.지난 82년에는 북경에 이어 두 번째로 지하철이 개통되기도 했다. 중국의 도시는 대부분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하게 구획 지어져 있으나 천진 시가는 그렇지 않다. 굽어지고 휘어지고 사람들로 꽉 차 굉장히 복잡한 편이다.게다가 도로사정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이는 천진이 계획도시라기보다 자연발생적인 성장단계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됐음을 반증한다. 천진의 역사는 비교적 짧다.명조 영락제 2년(1404년)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한 명조는 식량을 강남에서 북경으로 옮기는 수로의 중계기지로서 이 마을을 건설했다. 그러나 천진이 상공업도시로 발전한 것은 1860년의 북경조약에 의해 개항하게 됨에 따라 대외무역항의 하나가 된 이후부터이다.1901년 체결된 북경의정서(중국에서는 신축조약이라고 함)의 결과로 천진에는 8개국의 조계가 설치됐다. 그후 각 국의 공사관, 상사, 은행 등이 설치돼 천진은 점차 대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이후 천진은 공업도시로서의 발전이 본격화됐고 수도 북경의 관문으로,그리고 화북지역 최대 무역항으로 부상하게 됐다.1) 면적: 11300㎢천진(11300㎢)÷서울시(605.522 k㎡) =18.66으로 약 18배이다2) 인구: 1천만명3) 행정구역: 시구 13개(화평구, 화동구,하서구, 하북구, 남이는 487㎞이다.5.면적하북성의 총면적은 187,693㎢이고 이중 산지,고원,평원의 면적이 각각 37.40%, 12,97%, 30.49%를 차지한다.하북성(187,693㎢)÷강원도(16,612.61k㎡)= 11.29 강원도의 약 11배남한의 면적은 99,800㎢이므로 우리나라의 약 2배6.기후하북성은 온대 대륙성 계절풍기후에 속하여 일년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연간 일조시간은 2400∼3100시간이고 무상기는 120∼200일이이며 연강수량은 300∼800㎜이며 연평균기온은 0∼13℃이다.7.주요도시하북성에는 지구급(地區級) 도시가 11개,현 115개,향 1101개로 구성되었다. 세부적으로는 석가장, 당산, 진황도, 한단, 형대, 보정, 장가구, 승덕, 창주, 랑방, 형수등 11개의 지구급(地區級) 도시가 있다.8.인구하북성의 인구는 2001년말현재 6,699.1만명으로 이중 비농업인구는 1,362.6만명이며,인구성장율은 4.98(천분율)이다.9.민족하북성에는 만족,회족,몽골족,장족,조선족,묘족,투가족 등 53개의 소수민족이 있으며(287.7만) 총 인구의 4.3%를 차지한다.하북성에는 현재 6개의 소수민족자치현이 있다.10.하북성의 경제력하북성의 GDP는 3,953억 7,800만 위안(476억 3,590만불)으로 서울의 지역총생산 GDP (676 억 달러)의 0.8배에 달하고 있으며 1인당 GDP는 6,525위안(95만원)으로 서울1275만원의 1/13 수준에 미치고 있다. 수출입총액은 현재 39억 8,054만불 (수출 26억 3,833만불수입 13억 4,221만불) 외자유치액은 11억 708만불 수준이다.북경시개황:북경시의 약칭은 " 경(京)" 이다. 화북평원 북쪽끝에 위치하였으며 동남쪽 방향의 발해와는 거리가 150km이다. 전국(戰國)시기에는 연(燕)나라의 수도였으며 초기에는 "계"로 불렸으며 후에는 요(遼), 금(金), 원(元), 명(明), 청(淸) 및 민국의 수도로 800년 간 역사적인 유래가 있다. 1928년 시(市)로 정하고 이름을 "북평(北 온대 반 습윤 계절풍 기후로 여름은 덥고 비가 많으며 가을은 서늘하고 겨울은 추우며 봄은 짧고 건조하다. 1월의 평균기온은 5(도)--10(도), 7월은 24(도)-26(도), 년 기온차는 15(도)내지 30(도)로 대륙성기후의 특징이 있다.서리가 없는 시기는 4월부터 시작되며 약 6개월 반 가량이며, 일 평균 기온이 온정하게 0(도)와 10(도)인 날짜는 약 260일과 190일 이다. 년 강우량은 500-700㎜이다. 식물생장기의 농토물(수분) 부족량은 200-300㎜이다. 남부는 가뭄,모래바람 등 자연재해가 비교적 많으며 서북부산지구는 여름에 산홍과 흙,모래 ,돌섞인 물사태가 쉽게 발생한다.농업:북경은 수자원이 모자라서 신중국건립후 密云, 懷屢,등 저수지를 수건(修建)하고 현재 교외 경작지 중 90% 이상이 관개지이며, 기계 경작면적은 70% 도달했다. 80년대부터 우유, 가금, 육류, 과수 등 생산기지를 발전시키고 농산품의 상품율을 크게 제고하였다. 농림,목, 어업의 총 생산액 중 목축업의 비중은 42%로 각 성시 중 4위를 차지한다.개혁개방으로 농촌,향진기업은 교외 농촌의 경제기둥으로 되었다.특산:북경의 특산은 연산(燕山)의 밤, 밀운(密云)의 대추, 홍과(紅果) 및 창핑(昌平)의 蓋枾등 마르고 신선한 과일로 만든 과푸(果푸)는 五味俱全 갖추었다. 화훼 재배업은 원(元)조 때 이미 규모를 갖추어 "명화만목,위경성제일(名花萬木,爲京城第一)"이라 하였다. 지금의 묘봉산(妙峰山)은 장미꽃 기지로 건설되었다. 북경특산은 秋梨膏, 桂花陳酒, 同仁堂 중약 등이 있다.북경지방의 특색이 있는 요리로는 북경오리구이(베이징 카오야), 宮廷菜, 譚家菜, 불고기,쏸양로우가 5대 명요리로 불리운다.북경의 특색있는 공예품은 京太藍,玉器,絹花,京花 등이다.공업:북경 문두구(門斗溝) 석탄, 풍부한 房山區 석재자원,그러나 근대공업은 천진,상해보다 늦게 발전했다. 50-70년대 중점건설을 하고 80년대에는 구조조정에 중점을 두었으며 경공업의 방직,식품,전자공업의 비중을 크게 하였으며 전국적인 유통망을 형성하고 있다. 농업생산량은 전국 2위이나 경제개발 확대로 매년 경작면적이 감소하고 있으며, 용수부족으로 기본적인 농업조건은 양호하지 못한 편이다.http://blog.naver.com/junghee2357/140009225583북경의 역사북경은 고대에 연나라의 수도였다. 연나라와 우리나라는 과거 여러차례 다툼이 있었고 연이 진에게 멸망하자 연의 지역 근처를 유주로 불리웠다. 삼국지에 나오는 지명 중에선 계 라는 곳이 북경의 근처이다. 그렇게 진 한 진 수 당 5대까지 유주라는 명칭으로 불리우다 당 때에 태원부에 소속시켰다 북도(北都)라 불렸고 다시 사경(四京)의 하나로 삼아 북경으로 고쳐 불렀다. 이 때에 처음으로 북경이란 명칭이 생겨났다.그러나 후에 요(遼)나라 때 중국의 북쪽을 제패하고 남경으로 정했다. 하지만 송나라는 북경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 사이 북경은 몇번의 이름을 바꾸게 된다. 연경, 연산부 라는 이름으로 불리다 금이 요나라를 멸망 시키고 중도라 부르며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는 건설공사를 크게 벌였다. 지금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있는 노구교(蘆溝橋)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그러나 금나라는 1231년 몽고족에 의해 멸망당했는데 징기스칸은 남송까지 멸망시키고 북경을 자신들의 수도로 삼고 이름 역시 대도(大都)라고 불렀다. 원나라는 북경건설에 큰 힘을 쏟았는데 그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경산(景山)공원이 유명하다. 이 당시 북경은 서양에서도 선교사를 파견하고 이슬람 상인들이 거리를 메우는 등 국제도시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보면 자세히 나와 있다.후에 명대에 와서 다시 개명을 하는데 북평(北平), 북경공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그시대 대표적 조형물로는 유명한 천안문 등이 있다. 다시 청대에 와서 북경으로 바뀌고 여지껏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도중 국민17년인 1928년 북평으로 불려졌고 1949년 10월 1일 북경이라 불리게 된다.근대의 북경은 여러 가지 집회 장소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1919년 일면이다.2. 북경사람은 북경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베이징에 있다는 것 자체가 성공 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북경사람들이다.13억 인구중에서 상상하기도 힘들 엄청난 경쟁을 뚫고 북경에 입성하여 생활하고있다는 자부심은 우리가 상상하기 이상이다.나는 북경의 천안문이 제일 좋다. 천안문위로는 태양이 떠오른다 는 가사를 가진 노래를 중국에서는 어릴때부터 배운다.이러한 노래를 듣고 부르면서 중국인들에게는 확고부동한 북경의 이미지가 심어진다.이러한 이미지는 북경사람들에게는 집단적인 우월감을 타지 사람들에게는 열등감을 안겨 준다.북경사람= 중국인이라는 민족적인 우월감+ 북경에 산다는 자부심+중국의 미래를 이끌고 있다는 책임감 의 공식으로 표현 될 수 있겠다.3. 농담을 좋아하고 허풍이 심하다.-허풍이 심하고 兒 화음을 많이 사용하는 북경사람들을 다른지역 사람들은 大舌頭 라하여 혀만 커다란 사람들이라며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4. 접대문화가 발달되어 있다.-북경은 오래전부터 중국의 수도였다.그래서 각국의 외교관련자들과 매스컴이 집결된 장소이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접대 문 화가 발달되었고 겉치레 또한 심하다.5.상하이 사람과 라이벌-상해 홍콩으로 대표되는 연해지역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발전과 변화의 주도는 자존심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북경사람들에게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면 그들이 충분히 열등감을 갖게하는 일이다.이러한 리이벌 의식이 최근에 생긴 것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북방의 북경사람들은 남방의 풍요로움을 부러워했다.-자료출처김경일 중국인은 화가 날수록 웃는다 -바다 출판사-중국민정부ㆍ중국사회출판사 편저/ 김하림 옮김중국인도 다시읽는 중국사람이야기 -에디터-북경의 관광명소1. 자금성자금(紫禁)이란 북두성(北斗星)의 북쪽에 위치한 자금성이 천자가 거처하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된 말로, 베이징의 내성(內城) 중앙에 위치한다. 1407년 명나라의 영락제(永樂帝)가 난징[南京]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기 시작할 때부터 건립하여 1420년에 완성하였다.2. 이화원주위 8km. 인공호인 다.
중국 지역연구 레포트대련의 매력 찾기대련(大連)...대련(大連)은 중국에서 현재 숨가쁘게 발전하고 있는 도시중 하나 이다.중국인들이 대련(大連)을 북방의 홍콩으로 여긴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도시의 모습이 하루하루 변하고 있으며 사람들도 항상 활기에 차 보인다.이번에 개인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한림대 중국학과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현지학습지 1위에 올라있기도 하다.이번 레포트에서는 한림대 중국학과 학생들이 중국인들이 대련(大連)을 선호하는 이유와 그 이유를 통해 한림대학교 학생들의 선택의 허 와 실 그리고 대련의 숨겨진 매력을 찾아보기로 하겠다.우선 한림대 중국학과 학생들이 현지 학습지 중 대련(大連)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조사를 해보았다.그 결과 대련(大連)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양하게 나타났지만 정리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대련(大連) 현지의 교환 학교인 대련 이공대학(大連理工大學)이 중국이공계 대학 중 상위 5위에 드는 명문대학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대련(大連)을 선택했다고 했다.둘째, 깨끗한 도시환경과 다른 도시에 비해 한국과의 문화적 괴리감의 차이가 적다는 말을 들어서 대련(大連)을 선택하게 되었다.셋째, 대련이공대학(大連理工大學)의 교수진의 교육열이 다른 학교보다 높다는 말을 들었다.넷째, 친구가 대련(大連)으로 가서 친구와 같이 가기 위해 대련(大連)을 선택했다.이상의 4개지 이유로 요약 정리를 할 수 있다.위의 4가지 이유에서 알 수 있듯이 현지 학습지를 선택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 들은 정보가 선택에 큰 비중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첫 번째 이유인 대련이공대가 중국에서 상위 5위에 드는 명문대이다라는 이유는 유학을 선택한 학생들이 마음에 들어할 만 한 이유가 분명하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중국에서 이공계 전공을 선택해 공부하지 않는 이상 4~5개월의 일정으로 중국어를 배우러간 우리에게 커다란 이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다.두 번째 이유인 깨끗한 도시환경과 우리나라와의 적은 문화적 괴리감은 정말 빠지기 쉬운 위험한 함정이라고 생각한다.깨끗한 도시환경은 당연히 학생들이 선호할 만한 커다란 이유이다. 그러나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러 가는 우리 유학생들이 우리나라와의 문화적 괴리감이 적은 곳을 선호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환경과 비슷한 곳 즉, 중국적 특색이 적은 곳을 선호하게 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하는 커다란 함정인 것이다.세 번째와 네 번째 이유는 달리 언급할 사항이 없는 자신의 선택과 경험에 맡겨야 하는 사항이라고 생각해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위에 언급한 빠지기 쉬운 함정을 감안하고도 대련(大連)의 유학을 결정하였다면 이제부터 대련(大連)의 매력에 빠질 준비는 다 갖추었다.유학에서 중국의 전통적 특색을 포기하고 선택한 대련(大連)이라면 대련(大連)의 현재의 모습에서 지금현재의 중국모습을 찾아낼 수 있다.레포트의 처음에서 언급한 듯이 대련(大連)은 하루 하루가 다르게 그 모습을 바꾸어가고 있다.더욱 현대적이고 더욱 미래 지향적으로 현재 대련(大連)에는 많은 외국계기업을 유치하고 있다.그 가운데에는 일본기업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우리 한국 기업들이다. 당연히 대련(大連)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는 일본인 한국인 순이다.대련(大連)은 러시아가 최초로 도시를 계획하고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이 대련(大連)의 도시를 정비할 당시 대련(大連)은 중공업 중심의 도시였으며 대련(大連)의 항구는 중국에서 샹하이(上海) 다음으로 물류량이 많은 도시였다.일본의 지배를 받는 동안 대련(大連)은 중요한 산업중심지가 되어 전국의 철도를 공급 하는 등 기계조립산업이 발달했으며, 화학 산업이 발전해 비료와 폭약에 쓰이는 화학 물질들을 생산해 냈다. 2차 대전 직후 소련에 점령당한 뒤 기계공업과 철강 공업은 더욱 발전하다가 45년 2차 대전 종전이후 그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었다.그러다가 57년에는 이 도시의 산업생산량이 1943년의 5배에 이를 정도로 산업이 다양화 되어, 중공업 이외에도 식료품가공 면직물 정유 비료 제지를 비롯한 경공업도 광범위하게 발달했다.지금도 대련(大連)에는 러시아 거리가 보존되어 있다. 이렇듯 대련에는 한국 러시아 일본 중국의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여러 나라의 문화가 공존하면 다양성을 기본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도시곳곳에 숨겨져 있는 각 나라의 특색을 찾아보는 것도 대련(大連)이라는 도시가 가진 숨은 매력중 하나이다.이제 대련(大連)의 두 번째 숨은 매력에 빠져 보자.대련(大連)은 바다에 근접한 해양 도시이다. 북경(北京)요리, 광동(廣東)요리, 사천(四川)요리, 상해(上海)요리와 같이 오래된 전통의 유명한 지역 요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타의 해양도시들이 그러하듯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난다. 대련(大連)의 문화적 다양성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련(大連)의 요리는 다양하고 자유롭다. 면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과 밥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이 혼재되어있어 이렇다할 특색의 지역요리는 없지만 무어라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그들만의 맛을 형성하고 있다.또한 한식 일식 양식들 각종요리들이 공존하고 서로 한데 섞여 대련(大連)만의 독특한 요리를 우리에게 선사한다.대련(大連)에서 맛보는 북경오리구이(北京 鴨), 대련(大連)에서 맛보는 운남 쌀국수(雲南米線), 대련(大連)에서 맛보는 김치찌개, 대련(大連)에서 맛보는 일본 초밥 , 대련(大連)에서 맛보는 멕시코음식은 맛보는 이에게 색다른 느낌과 맛을 선사할 것이다.대련(大連)은 여러 축제가 열리는 도시이다.4월엔 대련(大連)에서 아카시아 축제가 열린다. 도시 곳곳에 아카시아 모양의 가로등이 켜지고 아카시아 꽃 내음이 온 도시에 퍼지는 듯하다.7월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광장이라는 성해광장(星海廣場)에서 맥주 축제가 열려 중국 각지의 유명한 맥주와 세계에서 유명한 회사의 맥주회사들이 한 곳에 모여 행사를 한다. 이국적인 맥주와 볼거리를 제공하며 신기한 안주들을 한 곳에서 접해 볼 수 있다.9월에는 맥주축제를 열었던 성해광장(星海廣場)에서 대련국제의류축제(大連國際服裝節)를 개최한다. 이 축제에서는 중국의 현대적인 의류의 미(美)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수의 업체들의 의류를 접해 볼 수 있고 유명한 연예인들이 출연해 볼거리를 제공한다.얼마전 우리나라 신문에 최근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있는 한국 가수 BOA 와 중국에서 선풍적인 한류 몰이를 하고 있는 강타 가 대련국제의류축제(大連國際服裝節)에 초대되었다는 기사가 나기도 하였다.이러한 축제 뿐 아니라 현재 중국의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금지되어있는 개인이 주최하는 불꽃놀이가 아직도 대련(大連)에서는 성행하고 있다. 중국의 각종 명절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나가 보면 어김없이 검은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화려하고 현란한 불꽃놀이를 만나볼 수 있다.
새 천년 밀레니엄을 맞이할 때 우리는 새 천년을 몇 해 앞두고서야 밀레니엄 버그의 문제점의 심각성을 인지했었다.그것은 분명히 위기였었다. 그 위기를 철저한 대비와 체계적인 준비로 큰 피해 없이 극복해 냈다.그리고 그 위기극복 이후에 진정한 새 천년이라는 기회를 맞이하였다.우리사회는 지금 다시 한번 인구구성의 급속한 노령화에 대한 위기에 봉착했다.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65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인구에 7.2%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UN이 정한 고령화 사회 에 진입했다.2019년과 2036년에는 각각 고령사회와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이런 인구 구성의 변화는 세계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여러 가지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그러나 현재 우리사회에서 이에 대한 대비나 사회적 인식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급속한 인구구성의 변화가 가져올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알아보자.노인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노인 부양에 대한 국민적 부담이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핵가족화의 확산으로 인한 독거 노인의 증가, 인구구성의 노령화로 인해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듦으로써 생산가능인구 1명당 부양해야하는 노인의 비율의 증가, 평균수명 연장에 의한 의료비 지출증가에 따른 의료 보험비 부담 증가, 국민연금 수령자가 늘어나면서 생기는 연금재정부담의 증가 등의 이유들로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두 번째로 장·단기 요양 시설의 부족을 말할 수 있다.노령화에 따라 노인 장애와 허약노인등 보호와 관리를 받아야 할 노인들은 늘어나는 반면 이들이 생활하고 이용할 요양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셋째 인구구성이 노령화 되면서 경제 성장률이 둔화될 것이다.생산 가능인구의 비율이 줄어들면서 취업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왕성하게 일할 나이의 생산인구는 비율적으로 줄어들고 있어 고령화가 낮은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다..또한 비근로 노인들이 많아짐으로 서 경제활동 참가율도 저하되며 출산율의 감소로 전체 취업자 수도 감소할 것이다.이를 대체할 급격한 생산성의 향상이 없는 취업인구의 고령화와 경제활동 참가율의 감소 및 전체 취업자감소는 경제 성장율의 둔화를 가져올 것이다.넷째로 노인인구의 증가는 저축율 성장의 둔화를 가져오고 이는 기업자금 유동의 어려움으로 나타난다.우리는 방금 살펴본 고령화 사회가 가져올 이러한 사회문제들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차근차근 준비하여 극복하고 사회통합을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이러한 사회통합 및 노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새 천년, 밀레니엄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처럼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며 우리의 행복하고 안락한 노후를 보장해 줄 것이다.얼마 전 한림대학교 고령화 센터에 설치되어 있는 생애 체험관을 다녀왔다.그곳에서 잠시나마 노인 체험을 해 볼 수 있었다.결과적으로 두시간 정도의 비교적 짧은 시간이었지만 현재의 나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약간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는 생각의 토대를 마련한 경험이었다.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일상의 생활 한가지 한가지가 노인 분들께는 불편뿐만이 아닌 생활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의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게 되었다.생애체험을 하면서 노인 분들의 생활을 조금은 이해 하게되었고, 그 생활 속에선 생활의 작은 배려 하나가 생활의 질을 월등히 올릴 수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체험도구부터 시작해서 노인들을 위한 생활용품과 같은 제품은 모두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 뿐 이라는 사실이었다.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탓인지 우리나가 기업의 실버산업 진출이 미비한 실정이라는 설명을 들었다.삼성경제 연구소의 고령화 사회분석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우리나라 실버산업의 시장규모는 17조원에서 2005년의 27조원 2010년에는 41조원으로 전망하고 있다.이렇게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시장에 대한 조사와 접근 그리고 투자는 기업인들의 기회이자 의무이다.위에서 언급한 생활용품과 같은 안전시설사업 뿐만 아니라 요양시설사업이나 의료서비스 산업, 여가 산업, 금융이나 이사문제와 같은 생활 방면의 사업, 노인들의 교육서비스 산업도 역시 잠재적인 성장을 가진 산업들이다.이러한 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우리사회 구성원의 노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도 선행 되어야하고, 이러한 산업에 투자, 생산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며, 질 좋고 가격이 적당한 제품이 생산되어 이런 실버산업의 재화가 일부 돈 있는 노인들의 전유물이 아닌 노인 생활의 일부로 누구나 이용 가능한 그러한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실버산업의 장단기적인 시장규모의 확대 및 성장을 고려해 봤을 때 고령화 사회에 알맞은 사업 아이템 몇가지를 생각해 보았다.사단법인 노인의 전화 라고 하는 노인 상담센터에서 받은 전화 상담내용을 보면 38%가 직업과 관련된 문의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에 15%가 양로 시설 10%가 이성문제의 순으로 나타났다.우선 소비자의 욕구를 알아야 그 수요에 맞는 알맞은 제화를 생산해 낼 수 있기 마련이다. 노인 상담센터 노인의 전화 의 상담 내용 중 2,3위를 차지한 내용을 보면 양로시설에 대한 문의와 이성문제에 관련한 문의였다.이 내용으로 유추해 보면 현재 노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문제는 안락한 노후의 생활이다.양로시설 사업에 대한 사업 아이템은 자신의 자본과 투자금 그리고 정부의 보조금으로 양로 시설을 만드는 것이다.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있겠지만 몇 가지 정리해보면 첫째로 우리의 사회 인식의 변화를 주도 해야한다. 전통적인 윤리관에 사로잡혀 자신의 부모를 자식들이 모셔야 효도하는 것이고 양로시설에 맡기면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버린 불효자식이 되는 이러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선행 되어야한다.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노인을 부양할 여건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현재에 변화하는 사회에 알맞은 사회적 인식과 가치관의 변화는 필수 적인 것이다.둘째, 노인들이 원하는 것은 안락한 노후의 생활이지 노년기에 사회로부터의 격리가 아니다.노인들의 요양시설의 핵심은 우선 안락하고 편안한 노후의 보장이다.하지만 이것은 노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여 시골로 보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노인들이 원하고 있는 사회 참여와 교류를 염두에 두고 입지를 선정하야 한다.셋째 특색 있는 요양시설을 기획단계부터 구상하여 노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연말 연시에 한 번씩 행사처럼 찾아오는 곳이 아닌 정말 가보고 싶은 곳이 되어 찾아오게 하는 관광상품화 시키는 것이다.
강의 첫 주의 내용은 과학기술의 역사 전반에 관한 소개였으며, 그 후 석주간은 과학기술을 보는 철학자들의 논의(플라톤, 데카르트, 영국 경험론 즉 로크와 흄, 그리고 칸트), 한 역사학자의 논의 (실증주의에 입각한 전통적인 관점을 다시 해석하는 쿤의 사상사적 입장), 그리고 사회학자들의 논의에 관한 것이었다. 이들의 입장을 당신이 이해한 대로 정리해 보시오.우선 플라톤에게 있어 지식이란 가능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절대로 확실한 것이었다. 즉 가시계의 어떤 상상이나 현상은 가변적이고 불완전한 의견(Doxa)에 불과하지만 가시계의 현상, 물질의 그림자 - 상상이나 우리가 직접 관찰한 어떤 현상을 표현한 그의 표현-가시적 대상에 의해 생겨난 정신 상태는 분명히 상대적인 지식이지만 그 것을 통한 가설을 통해 객관적인 이해를 하게된다면 그 지식(episteme) 완전한 지식이 되며 완전한 지식의 제일성은 실제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인 것이라고 보았다.이러한 그의 견해는 그의 이데아 론 과 연결되는데 순수하고 진정한 지식인 이데아는 인간의 정신 속에 실재하고 있으나 사람이 태어나면서 잊고 있다가 교육을 통한 사물의 객관적 사유를 통해서 이를 다시 상기하게 된다는 것이다.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tgoto ergo cum). 는 유명한 말을 남긴 바 있다. 이 말은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지식에 대한 생각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라 볼 수 있다. 그는 회의주의가 유행하면서 모든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모든 일에 의심을 품고 회의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확실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지금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생각하고 있는 자신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적 회의에 의하여 얻은 명증적 의식에서 정신의 순수성을 확보하고 정신과 물체는 각각 독립된 실체라는 이원론에 도달하였다.또한 실천적 입장에서는 반대로 물체와 마음의 합일을 설명하고 세계의 기계적 법칙적 필연에 대한 인간적 자유의 영역을 인정하였으며, 자유의지의 완성을 이상으로 삼는 도덕설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물질과 인간의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신에 의존 할 수 밖에 없는 한계성을 드러냈다.플라톤과 데카르트가 인간의 정신과 이성에 의해서 완전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연역적인 입장에서 그 방법을 주장했다면 그와 반대로 로크와 흄은 인간의 수많은 경험에 의해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로크는 인간은 처음 태어났을 때 백지와 같다고 보고 있다. 살아가면서 많은 현상을 경험하면서 그 결과로 크기, 모양과 같은 객관적인 제 1성질을 인식하게되며 색, 맛, 냄새 와 같은 주관적 제2성질을 인식하고 기억하면서 우리가 어떤 현상을 접했을 때 인식된 관념들(idea)들의 연합으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흄은 직접인상(impression)이 있어야 관념이 생성되고 이러한 관념들의 연합으로 지식이 형성된다고 하였다. 관념의 형성은 인상이 그 밑바탕이며 인상의 원인은 미지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계의 고찰은 중요한데 그중 에서도 인과관계는 중요하다. 원인의 결과로의 이행은 습관에 의해 확립되고 신념에 의해 뿌리 박힌 것으로 객관적인 필연성은 없다.이를 통해보면 그는 표면상으로 회의주의적 결론에 도달한다.칸트는 이러한 경험론적 결론에 영향을 받게된다. 그는 모든 지식은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으로 얻어진다고 하였는데, 분석판단은 예를 들어 순이는 여자 이다와 같은 객관적인 사실을 통한 판단이고 이에 순이는 고약하다는 식의 선험적 경험이 필요시 되는 종합판단으로 지식을 얻는다고 하였다 즉, 사물의 표상도 아니며 논증을 통한 개념도 아닌 인간내면의 틀을 통한 순수직관에 의해서 사물 그대로를 감성과 오성의 범주 내에서 인식함으로써 지식을 얻는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