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시대의 전쟁과 무기발달화약시대란13C 초 흑색화약 발명에서 19C까지 600년 시대흑색화약 이후 지속적으로 화약의 개량 발전으로 무기체계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1846년 이태리 스브레로 니트로글리세린 1884년 프랑스 비에이유 무연화약화약발명에 따른 무기체계의 발달* 전장의 주역으로 등장전략, 전술의 변화기병위주 전술에서 보병전술로 회귀(장궁, 전장포 발명) 스웨덴 구스타프 아돌프 3병전술 창안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국민전쟁화- 국민개병제도 확립 나폴레옹의 군사적 천재성에 의한 다양한 전략, 전술 발전 화력위주 전투, 총검에 의한 백병전, 공성전에서 야지전투로 전환 산병 전술 등장 : 미 독립 전쟁시 민병 사용1846년 스웨덴 노벨 다이나마이트 1885년프랑스 츄르판 황색 화약화포 : 수공업 주조 ,청동제 - 철제, 견인포(경량화), 표준화 대량 생산 소총 : 화포보다 늦게 발전, 화승총 - 수발총 - 머스킷 소총(강선, 총검, 라이타돌 점화)신대륙 발견 후 식민지 경영, 무역증대로 원양항해 가능한 대형함 발전(범선)군함은 갤리선 - 갤리아소 - 갤리온 - 범선으로 발전흑색화약 : 1242년 영국 로져 베이컨 대 포 : 1313년 독일 베르트홀트 슈바르쯔주요 전쟁고찰전쟁국 : 영국- 프랑스 기간 : 1339~1453 원인 : 프랑스 북부 영토 분쟁 결과 : 초기 영국군 승리, 말기 프랑스 승리 영토 회복 사용무기 특기사항백년 전쟁화약 발명, 주조기술 발전에 따라 대포의 출현으로 효과적인 공성무기 및 전장무기로 등장 크레시 전투(1346년) - 전장의 주역이 기병에서 보병으로 전환(영국군 장궁에 의한 프랑스 기병 섬멸) - 영국군 최초로 화포 사용 카스티옹 전투(1453년) : 프랑스 장 뷔로 250문의 대포 집중 운용 영국군 격멸 (100년 전쟁 종결)전장화포, 장궁, 석궁* 잔다르크 활약(1412~1431년)30년 종교전쟁전쟁국 : 카톨릭의 프랑스, 독일, 스웨덴 - 신성로마제국 기간 : 1618~1648 원인 : 신/구교간 종교적 갈등 인 : 슐레지아 영유권 분쟁 결과 : 프러시아 승리(프레드릭 대왕) 사용무기 : 대포, 머스킷 소총 특기사항대포를 군마로 끌게 하여 기동성 향상 - 견인포의 시초 군대 장교는 주로 귀속 출신, 엄격한 전투 교련 - 동작 간단, 군기위반 엄벌 - 병사는 전쟁의 위협보다 장교를 더 무서워하게 함 - 병사를 자동적으로 기계적 복종을 하도록 훈련 기동성, 백병전, 군수지원의 중요성 인식 성난 벌이 자기평화를 위협하는 자를 쏘기 위해 이리저리 날뛰는 양상 - 기동력을 이용한 내선작전 이점 활용 ※ 현 독일 연방의 초석을 이룩나폴레옹 전쟁전쟁국 : 프랑스 –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러시아, 스페인, 영국 등 기간 : 1796~1815 원인 : 나폴레옹의 야망 결과 : 승승장구하다 러시아 침공 좌절,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 사용무기 특기사항머스킷 소총, 총열내부강선(정확성 증대),총검 대포(전장의 주역)화포 집중운용, 기동속도의 급격한 증대 사단의 창설로 제병 협동전술 발전 산병전술과 밀집종대전술을 통합 활용 결정적 지점에 전병력을 집중 병참선 확보의 원칙 화포의 규격 통일로 양산 가능 * 화약 출연 이후 최초로 무기와 전술, 그리고 교리가 본질적인 합치점에 도달하여 각종의 무기체계가 최대의 잠재력 발휘- 민주주의 사상과 나폴레옹의 군사적 천재가 합치임진왜란전쟁국 : 조선 - 일본 기간 : 1592~1598 원인 : 일본의 대륙침략 야심 결과 : 해전에서 패한 일본군 철수 사용무기 특기사항조선 : 거북선, 지자포, 현자포, 판옥선 일본 : 조총지상에서는 초기에 적의 조총에 압도당하여 참패 해전에서는 신병기(거북선)의 투입과 뛰어난 전술로 적을 압도하여 전세를 반전시킴 당쟁과 국방 소홀에 의한 뼈 아픈 국난을 자초한 교훈적인 역사 * 이순신 장군의 우국충정과 뛰어난 전술주요무기와 전술석궁(Cross bow)11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기사를 제압(갑옷 관통)하기 위해 재개발 (휴대용 발리스타) ※ 제노아 석궁병은 용병으로 유럽 여러나라에 중용 발사속도 느림(1분간 2발 정도), 화살 발사 가능 ※ 군사조직의 중추인 기사는 지속적인 훈련, 연습이 필요하고 유지에 막대한 비용 수반 크레시 전투(1346)시 위력 발휘 – 기병이 쇠퇴하고 보병이 주역으로 등장장궁(Long bow)소총대포 등장 후 소형화하여 일반 병사에 휴대하는 과정에서 발전 수포(Hand Cannon)- 화승총(심지 점화)- 머스킷소총(차륜식 방아틀총- 수석총 : 라이터돌 마찰로 불씨)- 후장식 소총- 충격식 소총- 뇌관강선개발 초기 활에 비해 사거리가 짧고 발사속도가 느렸으나 숙달시간이 적고 별도 훈련이 필요치 않아 빠르게 확산-기술발달로 사거리, 발사속도 보완되며 소총 파괴력에 의해 기병을 몰아내고 전장의 주도권을 보병에게 내어줌 ※ 소총 등장 이후 전투 대형이 노출된 선형식 밀집 대형 이유 ※ 프랑스 혁명, 미국의 인디언 투쟁 영향으로 밀집 대형에서 산개대형으로 바뀜군대의 오랜 전통 : 고대 그리스, 로마의 밀집대형 현상 군기이완방지 : 중세에는 충성심이 약한 용병이 일반화 소총 문제점 : 전장식, 길이의 문제로 서서 동작이 신속총검총검 발명으로 총병과 창병의 역할 동시 수행;창병폐지 짧은 검이지만 소총 성능 미흡시 대단한 살상력을 발휘한 무기화포흑색화약발명 이후 화약의 폭발력을 이용한 무기 개발이 대포 개발 – 우수한 무기의 필요성과 기술발전에 따라 점진적으로 발전 초기 대포는 파열탄이 아니라 석환이나 금속환이지만 전장에서 위력 발휘 전장포- 후미장진식- 강선포로 발전하며 다양한 화포 개발 화포 제작 및 운용기술 발전 ※ 프랑스의 대포에 대한 집념과 노력으로 많은 발전을 가져옴중세 유럽군대는 밀집대형으로 파열치 않아도 활,창 등에 비해 파괴력 발휘 효과적인 공성무기로 운용캘버린(Calverin) : 평사포(Gun)- 장거리, 공성용 캐논(Canon) : 곡사포(Howitzer)-기동성 배양, 보병/ 기병지원 모타(Mortar) : 박격포-고각사격으로 성벽 넘어 공격드릴기술(포신개량)- 경량화- 견인포- 강선포 탄도수학이론 발전(사각과 사거리 계산) : 포병병과 창설아메리고 베스푸치 미신대륙 발견 마젤란의 세계일주(스페인-브라질-남미남단-괌-말라카-인도-희망봉-스페인) ※ 지구가 둥글다는 것 증명중세유럽 화약무기의 발달과 항해술 발전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제국주의의 태동-유럽의 신대륙 식민지화 및 수탈 신대륙의 아즈텍과 잉카 문명의 철저한 파괴 - 포르투갈 및 에스파냐의 역사적 배경 및 관습의 영향 노예제도의 병폐 대량의 은이 유입되어 유럽 가격 혁명 담배, 감자, 옥수수 등이 전래되어 전세계를 크게 변화 유럽이 세계의 중심화보방의 축성술과 공성술축성술돌보다 흙으로 축성 파편 위협 감소, 신축비용 저렴 및 축성 용이 원형의 성곽을 요새의 능보가 각이지게 다각형 성벽 건설-상호엄호 용이 가능한 외곽보루와 장애물을 많이 지어 바깥 보루가 함락되어도 중앙 보루에서 계속 저항 가능토록 요새공격에 어려움을 가중시킴 ※ 프랑스 국경 및 중요지역에 구축 방어력 증강-한 때 모든 전략, 전술을 무용지물로 만든 요새였음.공성술공격하여야 할 성곽에 횡대로 된 교통호로 연결된 전광형의 대호와 종대로 접근할 수 있는 병행호를 만들어 상호작전 행동을 지속하면서 축차적으로 성곽에 접근하여 공격하는 전술3병전술구스타프 아돌프 스웨덴 왕이 창안한 보병, 기병, 포병의 합동작전전술경량화된 야포 사격으로 소총병의 전진 엄호 총병의 사격으로 창병과 기병의 전진을 엄호하여 돌격 지원 기병은 단총(피스톨), 1,2발 사격 후 군도를 들고 질풍처럼 적진 돌격 ※ 각 병과가 개별적인 작전을 하던 것을 처음으로 통합 작전 ※ 용기병, 흉갑기병나폴레옹나폴레옹의 일대기1769.08.15 : 프랑스 남부 코르시카에서 출생 1785.09.01 : 포병 소위 임관(42/51등) 1789.07.04 : 프랑스 혁명, 혁명전쟁 중 천재성 발휘 혁명군 지도자로 부상 1796.03.06 :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 1798.05.19 : 이집트 원정 1799.12 : 2인 통령 중 수석 통령, 나폴레옹 헌법 발표 1804.12.02 : 황제로 즉위(35세) 1805 : 트라팔가 해전적이 분산되었을 때 압도적인 기동력으로 집결하여 싸운다.주공 (Mainforce)조공 (Secondary force)견제 (양동)내선작전포병집중운용전략적 대우회 기동 (분당 120보/적군 분당 70보)병참선 차단각개격파철저한 추격※ 접합부(joint)를 향한 중앙돌파 분리된 각개격파나폴레옹 패인(敗因)나폴레옹의 독선 명령에만 추종하는 부하장수들의 경직된 사고, 융통성 결여(나폴레옹은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려 했고, 탁월한 개인적 리더쉽으로 그가 직접 지휘하는 전역에서만 승리할 수 있었다.) 나폴레옹의 정력 감퇴 지나친 정신력 강조, 보급 경시“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 내 앞에서 보급이란 말을 하지 마라.”화약시대의 전쟁, 무기발달의 관계활강식 총산병전술영국에 대항 미독립전쟁미독립 전쟁 (1775~1783)머스킷 소총 견인포(경량화)선제기습공격 횡대전술 내선 작전탄도학술 발전 드릴링 기술영토 확장 프레드릭 대왕7년 전쟁 (1757~1764)머스킷 소총, 총검보방의 축성술,공성술 3병 전술/기병전술금융업, 무역, 군수산업 발달영토확장/정복욕 루이14세, 말버러 장군에스파니아 왕위계승전쟁 (1701~1764)수발총,머스킷 소총,갤버린포 갑옷, 투구 폐지3병 전술/기병전술의회파, 왕당싸움 크롬웰장군영국 내란 (1642~1651)수발총 청동포3병 전술/기병전술화승총 개량신, 구교의 대립 유럽각국의 세력다툼30년 전쟁 (1618~1648)갤리아스선 갤리언 화승총함포전술 선형기동대형조선기술이슬람권과 그리스도 교도간의 총돌레판토 해전 (1571)장궁 전장포포위전술 축성술 기병위주- 보병위주 전환화약의 발명 용광로 개발 성형기술영국과 프랑스의 영토전쟁100년 전쟁 (1337~1453)전략·전술기술정치·사회적 배경무기전쟁, 무기 상호 영향 요소전쟁장궁, 전장포 소총: 화승총- 수발총- 머스킷 소총(강선+총검) 포 : 야포- 견인포 군함 : 갤리아스, 갤리언, 범선보병의 재등장 3병 전술- 횡대전술- 종대전술 내선작전 해상전술: 섬멸 전략 산병전술화약의 발명 강철주조술 조how}
근력시대의 전쟁과 무기발달근력시대란인류의 출현~13C 흑색화약 발명 이전시대정치, 사회의 발전씨족,부족사회 - 고대 군주주의 국가 - 영토 확장(식민지 전쟁) 게르만 민족 이동 - 서로마 멸망과 봉건제도 정착 - 십자군전쟁,몽골의 침략(동서문화 교류)* 동물적 에너지 시대인체 에너지 시대(인류 출현~AD 500년경) : 돌, 칼창, 활, 방패 사용가축 에너지 시대(AD500년경~13C초) : 승마전, 기마전근력시대의 무기발달획기적인 발전없이 기본적인 무기 기능 및 형태(창, 칼, 활 등) 정련기술발전 : 타제- 마제- 구리- 청동기- 철제무기로 발전전술의 발전전차전, 밀집보병대형(그리스 팔랑스, 로마 레지온) 주축 봉건제도와 성곽 중심 및 기사 위주의 전투 발전 등자의 도입으로 보병이 쇠퇴하고 기병이 등장 해상전의 발전 : 갤리선, 바이킹배 활약원시투쟁인류의 출현 : 약 300만년 전 제4기말 홍적세 초인류의 역사석기시대(선사시대)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 – BC 1만년전 ~ BC 5000년 전원시전쟁인류 출현 이후 BC 3000년경까지의 선사시대 생활도구 : 돌, 나뭇가지 - 돌조각, 돌찌르개, 돌날 - 마제석기, 골각기 원시시대 무기 : 투석과 곤봉(몽둥이) 싸움의 형태 : 집단 난투극, 은밀한 접근, 급습 및 도주* 불사용, 경작, 가축 사육으로 촌락, 도시형성, 인구증대 - 생존을 위한 이웃과의 분쟁(전쟁)의 시작투석 : 원거리 투척 노력 - 투창으로 발전 곤봉 : 곤봉 앞쪽에 날카로운 돌조각 부착 - 창과 도검으로 발전금속시대(역사시대) : BC 3000년 경 이후전기 구석기시대:BC 175만년전~BC 3만년전후기 구석기시대:BC 3만년 전~BC 1만년 전고대전쟁고대전쟁은 BC 3000년경에서 AD 2세기말까지 청동제 및 철기 시대 초기의 금속시대전쟁 고대전쟁은 사람과 사람이 대항해서 도끼, 창,칼, 전차와 기병대로 공격하는 충격 작전에 의해 승부전차 : 바퀴살의 발명으로 가볍고 기동성 향상 공성무기 발전 : 파성추, 투석기, 소이탄(유황, 송진 등), 돌히타이트 무와 탈리스 왕 약 3500대 트로이 전쟁(BC 1200년 경) : 10년 전쟁, 트로이 목마메소포타미아 전차(바퀴달린 2인승 전차), 파성추 던지는 창과 찌르는 창, 도끼, 칼, 활, 돌팔매 부대 등페르시아 전쟁전쟁국 : 페르시아 - 그리스 기간 : BC 558~478년 원인 : 페르시아의 그리스 정복 야욕 결과 : 그리스의 승리 사용무기 특기사항투창, 장창, 활, 칼, 투구, 흉갑, 원형방패 트리이림(3단 170개 노의 기동선)그리스 팔랑스 : 정면 250명, 종심 16명, 4000명, 3.6m 장창 트라이림의 충각 : 청동, ½톤, 삼지창 형식, 항해시 물속에 잠겨 있음적선을 들이 받는 충격장치로 선두에 장착마라톤 전투(BC 490년) : 중장 밀집보병 승리, 전사상 최초의 양익 포위 ※ 마라톤 유래 : “기뻐하라, 우리가 승리했다” 승전보 전하고 죽은 병사를 기념함 살라미스 해전(BC 480년) : 트라이림의 충격전술로 승리마케도니아 전쟁전쟁국 : 마케도니아 - 페르시아 - 인도 기간 : BC 338~195년 원인 :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야망 결과 : 마케도니아 승리 사용무기 특기사항페르시아전쟁과 유사(전차, 장창, 칼, 활, 방패)그리스 팔랑스를 보강한 마케도니아 팔랑스(휘리프 방진) 승리 알렉산더 대왕의 지휘 통솔력에 의한 승리 – 훈련된 소수로 다수의 적군 격파이수스 전투(BC330년), 가우가멜라 전투(BC 331년), 기병의 특성을 활용(적의 배후나 측면 기동)* 헬레니즘 문화의 탄생 – 동서문화의 융합포에니 전쟁전쟁국 : 카르타고 - 로마 기간 : BC 265~201(1,2차) 원인 : 로마의 지중해 패권 야망 결과 : 로마의 승리, 2차 : 카르타고(한니발)의 승리 – 칸네 전투 사용무기 특기사항단검(로마검), 창(필럼), 방패, 카르타고의 코끼리 이용로마 Legion 군단 전투 대형보병,기병으로 능력을 고려 4개층으로 구분 편성,비교적 자유로운 대형* 인간의 심리를 철저히 이해하여 조직의 힘으로 인간이 갖는 약점인 전투의 전하는 과정의 전쟁 종교상 이유에 기인된 전쟁이 주류십자군 전쟁전쟁국 : 이슬람교 - 그리스도교 기간 : 11~12C(약 200년) 원인 : 성지회복을 위한 로마 교황의 성전 선포 결과 : 십자군의 실패, 교황권위 하락 사용무기 특기사항화살촉 달린 화살, 신월도, 석궁(교황명으로 일시중지), 쇠사슬 갑옷 등무기의 획기적 발달은 없었고 기병(중, 경기병)이 전장을 지배 ※ 인명 중시로 석궁 사용 일시 중지 교황권위 추락 및 봉건제도 붕괴의 요인 성전의 미명하에 이루어진 중세사를 백년 정도 후퇴시킨 전쟁으로 문명의 파괴, 이교도간 반목 질시, 인종 차별, 종교간 갈등을 심화시킨 반면 서유럽 세계의 대외 발전 운동이었고 동서 무역, 르네상스의 길을 여는 요인이 되었음. 1차원정(1096년) : 성지회복, 예루살렘 왕국 건국 3차원정(1189년) : 살라딘과 강화 조약, 성지순례 허용1~8차 200년간 실시, 1차 원정 외 모두 실패징기스칸 전쟁전쟁국 : 몽고 – 아시아 및 유럽 일부 기간 : 13C 초 원인 : 징기스칸의 야망 결과 : 아시아 대부분과 유럽 일부 장악 사용무기 특기사항쇠사슬 갑옷, 투구, 창, 신월도, 미늘창, 활 잘 훈련된 말과 등자전원 기병으로 편성하여 최고의 기동성 확보(토우맨- 만명의 기병 병단) 패주를 위장한 유인 전법으로 적을 격퇴 공포의 선전심리전술, 첩보전 이용※ 몽골군의 강점 - 어려서부터 말타기, 사냥 숙달, 악조건의 생활여건 – 훌륭한 전투원 자질 - 몽골말의 강점(몽골말 132cm, 서구말 158cm) : 지구력 강함 - 1인당 2~5마리 보유, 돌격시 갈아타고 야간에 2마리 대기 - 가족 동반 병참지원 임무, 식습관 간단주요무기와 전술고대전차고대 등자가 없을 때 말을 이용하여 기동력과 충격력을 극대화시킨 무기 전차의 발명BC 3000년~BC 2500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사용:우차를 전쟁에 사용 BC 1800년 경 학소스인이 이집트 침략시 두각을 나타냄 ※ 바퀴살의 발명으로 경량화 및 기동성 개선 중국은 손자병법에 전차에lista) : 활모양이지만 활과는 달리 양쪽 기둥에 윈치로 감아비틀어 밧줄의 장력 이용 대형 화살, 투창 등을 발사 목책, 수성병기 등을 파괴하는 무기그리스불 : 황, 주석, 수지, 경유 등을 혼합한 반액체 상태의 물질로 항아리에 담거나 짚단 등에 적셔서 불을 붙여 투석기로 날려 보내 발화유도. 해전시는 호스 모양의 관을 이용 적함선에 화염을 분사하기도 함갤리선(galley)페니키아 군선을 원조로 하는 노를 주로 쓰고 돛을 보조적으로 쓰는 고대 군선그리스 갤리선 : 1~5단 노, 선수부충각, 선수부-눈, 선미부 물고기 꼬리모양 로마 갤리선 : 그리스 갤리선 승계, 돌격전을 위한 코르푸스(종주교) 장치선수부충각으로 적군의 선박을 충격 침몰시키거나 노를 파괴 기동 못하게 함 노수는 주로 죄인이나 노예들을 이용 갤리선이 오래 사용된 이유는 고대 해전이 배와 배가 부딪치는 접전으로 노를 이용 빠른 기동성과 조종성을 가졌고 지중해가 계절풍이 없어 돛을 사용할 수 없었던 지리적 조건 ※ 영화 “벤허”의 해전 장면바이킹선(바다의 전사)노르만 민족이 사용한 1단노와 사각형 돛을 이용한 범노선 선미가 치솟은 현호 모양 선박 조종술이 우수하고 난폭한 야만성을 보유(바이킹족)등자인류 문명은 말의 힘과 기동력을 유용하게 활용하면서 발전일상생활 : 수송수단, 말젖 활용 전쟁시 : 지휘, 전차, 기병으로 결정적 역할 수행등자란 기수가 말을 타거나 타고 다닐 때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장구로 4~5세기 중국에서 발명되어 훈족에 의해 유럽에 전파(7~8세기 경 금속 등자 사용 추정) 등자 없는 기병의 전투 행동은 완전 자유스럽지 못한 제한성 상존 - 훈련 및 전술적 운용으로 기병의 가치 유지 AD 378년 아드리아 노플 전투에서 등자의 존재와 세계사에 대변혁 초래 - 동로마 제국 발렌스 황제 휘하 4만의 로마군단과 고트족 5만이 격돌 - 등자로 무장한 고트족 중무장 기병대의 활약으로 황제를 비롯 2/3이상 희생되는 대참패 ※ 서로마제국 멸망, 보병 위주전술에서 기병위주전술로 전환, 봉건제기병과의 간격 연결, 대오 이탈 산병전로마 레지온그리스 팔랑스보다 소개하며 활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대형 고안 전사의 능력에 따라 4개 계층으로 구분 편성밸리테스(Velites) : 가장 젊고 기민, 훈련을 적게 받은 경보병대(창, 활) 하스타티(Hastati) : 25세~30세의 젊은 병사, 제 1전열(2개창,짧은검) 프란시페스(Principes) : 30~40세의 노련한 병사, 제2전열(2개창,짧은검) 트리아리(Triarii) : 가장 나이 많은 집단, 제 3열(12피트장창,짧은검)밸리테스 직접 전투후 제 2 전열 보강 제1전열 피로시 제2전열 임무 교대 제 3전열은 예비대 임무 수행 후열양익기병은 호기 포착시 적측 후방 유린운용매니플(Maniple) : 중대급, 기본 전술단위(100명 내외) 코호트(Cohort) : 대대급, 450~570명 군단(Legion) : 10개 코오트, 기병 300포함(4500~5000명) ※ 각 로마 군단은 기병 600명의 동일조직의 동맹군단이 하나씩 연계되어 있음 ※ 2개 로마 군단과 2개 동맹 군단은 집정관 군대라는 야전 부대구성근력시대의 전쟁, 무기발달의 관계장창, 칼, 전차전차전군웅할거-진의 중국 통일춘추전국시대 전쟁단검, 투창 코끼리, 레지온투창전술 포위전술로마의 팽창포에니 전쟁장창, 방진장창기술 사선대형 추격전술 지휘관 지략알렉산더의 동방원정 동서문화융합-헬리니즘 문화마케도니아 전쟁소이탄 파성추, 투석기지상, 해상합동작전그리스 패권을 위한 내전펠로폰네소스 전쟁창, 칼, 방패, 활(철제) 방진 갤리선(트라이림),창전술 해상전의 등장 상륙작전정련기술고대국가 철기문명 식민지 확보페르시아 전쟁창, 칼, 활, 창 방패(청동제) 고대 전차, 돌팔매포위전술연금술 바퀴 발명부족사회 청동문명메소포타미아 전쟁고 대 전 쟁돌창, 돌도끼, 돌화살은밀접근, 급습, 도주 매복, 습격연마기술 불의 발견신석기 시대돌날, 돌찌르게 곤봉, 투석육식수와의 싸움 집단난투극생계획득(수립) 석기문명 씨족사회 인구증가 정주지 확보구석기 시대원 시 전 쟁전략·
전쟁에 대한 이해1. 전쟁의 본질과 정의전쟁이 무엇이냐에 관한 설명은 분석자의 시각만큼 다양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사회학자는 사회학의 관점에서 법학자는 법학의 관점에서, 심리학자는 심리학의 관점에서, 군인들은 군사의 관점에서 전쟁에 관하여 나름대로의 해석을 제시하여 왔다 이러한 다양한 분석들은 이론적으로는 의미가 적지 않겠지만 전쟁에 승리해야 한다는 과업을 수행하고 있는 군인들에게는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다. 한국전쟁을 예를 들면 남침전쟁이라고 하는가 하면 통일전쟁, 민족해방전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군사적인 관점에서 현재까지 가장 존중되는 전쟁에 관한 본질적 설명은 클라우제비츠 (Carl von Clausewitz)가 ‘전쟁론 (On War)’ 에서 규정한 내용이다. 그에 의하면, ‘전쟁은 적에게 우리의 의지를 실행하도록 강요하는 폭력행위 (War is thus an act of force to compel our enemy to do our will)이다. 현재 한국군에서도 이러한 클라우제비츠의 견해를 참고하여, “전쟁이란 상호 대립하는 2개 이상의 국가 또는 이에 준하는 집단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력을 비롯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자기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조직적인 폭력행위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전쟁에 대한 실천적인 인식은 주로 정치와의 관계로서 이 또한 클라우제비츠의 분석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전쟁은 단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책의 연속 (War is a mere1y the continuation of policy by other means) 이다’라는 명제이다. 즉 클라우제비츠는, ‘정치적 목표가 목적이고, 전쟁은 그에 도달하는 수단이며, 수단은 절대로 목적으로부터 분리되어 고려될 수 없다’ 라고 하여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손자 병법 시계 편 (始計篇) 에는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 ( 전쟁은 국가의 큰 사건이다. 전쟁터는 병사의 생사가 달려있는 곳이며, 나라의 존으로 충분하다고 간주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전쟁의 본질에 관해서는 좀 더 다양한 시각과 내용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전쟁이라는 사회현상 자체의 의미, 특성, 구성요소, 전례를 통한 검증 등 전쟁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이면서 변하지 않는 내용에 관한 포괄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한 가지 측면이나 함축적인 문장으로 단정하는 대신에 다양한 시각에서 세부적인 내용을 구성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시각과 접근방법을 다양화하여 충분한 내용으로 설명할 때 전쟁의 본질을 더욱 근사하게 이해 할 수 있고, 전쟁연구의 양과 질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군인들에게는 전쟁의 본질에 관한 연구가 절박한 주제가 아닐 수 있다.군인들의 경우에는 ‘누가 화살을 쐈고 화살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느냐’ 를 연구하는 것보다는 우선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피하거나 대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는 논리처럼, 전쟁의 본질에 관한 규명보다는 전쟁의 대비, 억제, 수행에 관한 실천적인 연구가 더욱 절박하고 유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에 관한 이론적인 연구는 학자들에 의하여 수행되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실천적인 측면의 반영 정도가 제한되는 점이 있었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화살로부터 안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쏜 사람이나 화살의 속성을 알아내는 것도 필요한 것처럼, 전쟁의 본질에 대한 연구도 전쟁의 대비, 억제, 수행에 관한 연구와 함께 군인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될 필요가 있다. 합의에 의하여 객관성이 보장된 전쟁의 정의를 제시하기도 어렵지만, 정의가 내려졌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정의에 근거하여 전쟁을 인식하거나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특정한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전쟁으로 명명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 예를 들면, 100년 전쟁, 7년 전쟁에서처럼 간헐적인 무력충돌이 있는 전체 기간을 하나의 전쟁으로 부를 수도 있고,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에 벌어진 수차례의 전쟁 등과 같이 각각을 개별적인 전쟁으로 부를 수 있으며, 동일한 전쟁도 어느 마찰이 자동차를 결국은 정지시키는 것과 같다. 이 외에도 시각에 따라 다양한 기준과 내용으로 전쟁의 특성을 도출할 수 있지만, 군인들의 경우에 중요한 것은 그러한 특성의 분석을 통하여 전쟁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하고, 나아가 전쟁수행에 효과적으로 반영해 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앞에서 제시된 전쟁의 특성으로 볼 때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보다 더욱 강화된 폭력성을 행사하고, 적보다 더욱 다양한 수단과 공간을 사용하며, 적보다 더욱 낮은 제한성을 보유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고, 이것을 전쟁수행에 반영하면 승리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2. 전쟁의 원인과 예방전쟁의 원인에 대한 분석은 전쟁예방의 출발점으로 간주되어 다수의 국제정치 학자들이 상당한 노력을 투입하여 연구한 주제이다 그 연구결과는 다양하지만, 대체적으로 전쟁은 인간의 본성, 국가의 특성, 국제체제의 한계에 의하여 발생한다는 주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전쟁은 인간의 이기심, 공격적 충동,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 자체를 변화시켜야 전쟁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체주의 국가 등에서 보듯이 나쁜 국가가 내부안정 등의 잘못된 동기로 전쟁을 발발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정부의 합리성을 보장해야 전쟁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전쟁은 국제적인 무정부상태에서 국가별로 자국의 이익 증진을 위하여 폭력을 사용함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정부를 형성하여야 전쟁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인간의 본성은 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는 주로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원인을 중심으로 전쟁의 예방에 노력 하고 있다. 즉 민주주의의 확산과 공존공영의 추구를 통하여 정치지도자의 합리적 정책 추진을 보장하고 전쟁에 의존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있다. 아직 세계정부의 형성에까지는 이르지 못한 상태이지만, 국제연합 (UN, United Nations) 을 통하여 세계정부를 지향하고 있고, 세계적 차원에서 공존공영과 공동체의식을 강조하고 있으있을 수 있지만, 이 경우에는 그 반란단체가 미약하거나 실패를 할 경우에는 내란의 주체로, 강대하거나 성공을 할 경우에는 전쟁의 주제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나. 개전과 종전1907년 헤이그 협약에서는 ‘개전선언의 형식 또는 조건부 개전선언을 포함하는 최후통첩의 형식을 갖는 명료하고 사전적인 통고 없이 상호간에 전쟁을 개시하지 못한다’ 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전쟁은 사실상의 전투행위’를 통하여 개시된다. 특히 국제연합 헌장에서는 자위적 목적 이외의 전쟁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개전의 선언이나 최후통첩은 이미 의미를 상실하였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은 일방이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종료될 수도 있고, 강화조약을 체결하거나, 일방이 상대방을 정복하여 병합함으로써 종료된다. 그러나 전쟁 자체가 합법적이지 못한 상황 하에서 이러한 형식이 제대로 지켜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적대행위가 실질적으로 중지되면 전쟁이 종료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를 들면, 한반도에서는 비록 법적으로는 잠시 휴전을 하고 있는 상태지만, 사실상으로는 하나의 전쟁이 종료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4. 전쟁의 목적전쟁의 목적은 전쟁을 통하여 달성하려는 어떤 성과이고, 전쟁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전쟁 발발의 원인이며, 전쟁의 결과에 의하여 달라져야 할 사항이다. 전쟁의 목적에 의하여 전쟁의 범위가 설정되고, 그 범위를 기준으로 하여 다양한 차원에서 적절한 정도로 전쟁이 제한되며, 모든 전쟁행위와 수단의 타당성이 판별된다. 전쟁의 목적은 국가의 최고지도부가 결정하는 사항으로서, 대개는 무형적이거나 추상적인 내용이다. 전쟁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거나 타당하지 않으면 전쟁에 관련된 노력들 간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유지하기 어렵고, 전쟁 수행 자체도 효과적이기 어렵다. 클라우제비츠의 표현대로 전쟁이 ‘우리의 의지를 실행하도록 강요하는 폭력행위’ 라면, 일반적인 차원에서 전쟁의 목적은 그러한 폭력행위를 통하여 적에게 실행하도록 강요하고자 하는 ‘우리의 어떤 의지’ 가 될 것이다.합의가 도출되지 못하였을 수도 있고, 세계여론 및 국민적인 지지를 획득하기 위하여 미화된 전쟁목적을 주장할 수 있으며, 전쟁목적을 정확하게 밝히면 적이 대응방향을 쉽게 설정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고의적으로 은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쟁의 수행이 급박할 경우 전쟁목적을 정립한다는 등의 추상적 판단을 위한 여유를 갖기가 어렵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특히 공격을 받은 국가의 입장에서는 적의 전쟁목적을 거부하는 것이 그들의 전쟁목적인데, 적의 전쟁목적을 분명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들의 전쟁목적을 명확하게 정립할 수가 없다.따라서 전사를 연구하는 경우에도 모든 국가를 합리적 행위자로 간주하여 단순명쾌한 논리로 전쟁목적을 도출하거나 추리할 것이 아니라, 사실에 중점을 두어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전쟁목적이 불명확하였으면 그러한 것으로 분석하여야 한다. 후세의 시각에서 자의적으로 추정하거나 보완하는 것은 자제하여야 한다. 그리고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전쟁의 효과적 수행을 보장하고 무분별한 확산을 예방하기 위하여 전쟁의 목적을 분명하게 정립하여 국가지도 층이나 국민들의 합의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고, 특히 방어를 하는 입장에서는 적의 지배적인 전쟁목적을 조기에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최선의 대응방향을 신속하게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정의의 전쟁 (just war)은 최초에는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 평화를 강조하는 종교적 원리와 폭력적인 전쟁의 참여라는 현실상의 모순을 해결해 주는 방편으로 사용하기 시작되었으나, 그 이후에는 전쟁을 개시하는 국가의 입장에서 자국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명분으로 편리하게 사용하여 왔다. 공산주의의 경우에도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전쟁은 정의의 전쟁’ 이라는 명분으로 체제의 전복을 위한 폭력적 행위를 정당화한 바 있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1928년의 Kellogg-Briand 조약을 통하여 ‘국가정책의 도구로서 전쟁을 포기’하였고, 현재 국제연합헌장을 통하여 그 원칙이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전쟁은 근본한다.
전쟁이란가. 개요전쟁은 그 해악성에 대한 인류의 지속적 환기와 예방 및 억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통하여 줄곧 존재해 왔다. 현대에 이르러 전쟁의 잔혹성이 더욱 증대되고, 이에 따라 범세계적으로 전쟁의 예방과 억제를 위한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전히 전쟁은 수시로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전쟁은 인간의 삶 속에 조건 지워진 불변의 요인이다. 인간은 결코 전쟁을 영원히 제거할 수도 없고, 또 전쟁으로 인해 온 인류가 제거될 수도 없게 되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인류는 있는 그대로의 전쟁을 이해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냉철한 이해를 바탕으로 전쟁을 효과적으로 대비, 억제, 수행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최근 전쟁에 관한 이론적 연구는 국제정치학자나 사회학자들을 중심으로 수행되었고, 군인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주제가 아니었다. 군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전쟁에 대비하는 실천적 문제에 더욱 큰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전쟁이 오용 및 남용 될 수 있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전쟁을 효과적으로 대비, 억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쟁 자체에 대한 객관적이면서 명확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 다만, 현학적인 분석이나 과거 선현들의 결론에만 집착하는 대신에, 좀 더 실용적인 차원에서 ‘전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해답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전쟁이란 ‘국가 간에 자국의 의사를 상대국에 강요하기 위해 수행되는 조직적인 무력투쟁 혹은 폭력행위의 상태’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국제법에서는 식민지 지배 및 외국의 점령, 인종차별체제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이른바 ‘민족해방전쟁’과 한 국가에서 2개 이상의 정치적 권력집단간의 무력투쟁도 전쟁에 포함시키고 있다.전쟁은 군사적 측면의 무력투쟁뿐만 아니라, 비군사적 측면인 정치·외교·경제·심리·사상 및 과학기술 등도 무력수단과 마찬가지로 전력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전쟁은 정치적 권력집단 사이에서 조 군사력 등을 사용하여 자기의 의사를 상대편에게 강요하는 투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의 개념과 정의는 시대와 관점에 따라 그 견해를 달리하지만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① 전쟁은 국가의 존망과 생사의 문제이다.② 패자는 승자의 의지 앞에 굴욕적인 굴복을 당한다.③ 전쟁은 약속이나 계약에 의해서 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하고자 하는 자의 의지에 의하여 시작된다.④ 민족이나 국가 사이의 분쟁은 조정기관에 의해서 해결된 일은 거의 없었고, 유일 한 해결수단으로 전쟁을 구사해 왔다.⑤ 전쟁은 지금까지 인류 생존의 기본 요소가 되어 왔고, 또 인간의 천성이 변하지 않는 한 그 양상을 달리하면서 계속 존재한다.따라서 국가와 민족의 생존권을 확보하고 독립과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전쟁을 이해하고 연구하여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이론적 근거가 여기에서 비롯된다.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은 단일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나, 조미니(Jomini, B. D.)는 정부가 전쟁을 하는 원인을 다음의 여섯 가지로 분류하였다. ① 권리의 회복 및 보호, ② 주요 국가 이익의 보호 및 유지, ③ 세력 균형의 유지, ④ 정치적 혹은 종교적 이념의 전파· 말살 또는 보호, ⑤ 영토의 획득에 의한 국가의 영향력 및 세력의 증대, ⑥ 정복욕의 충족이다. 전쟁은 반드시 원인과 동기에 의해서 발발한다. 원인은 예외 없이 장기간에 걸쳐 전쟁 결의와는 별도로 교전국 쌍방 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동기는 많은 경우 미묘하고 교활하게 하여 개전 책임을 상대편에 전가시키기 위해 감추어서 식별하기 어렵지만, 한 편이 먼저 침공함으로써 발생하게 된다.나. 전쟁의 역사전쟁은 원시전쟁, 고대전쟁, 근대기술전쟁, 현대전쟁 으로 나눌 수 있다.1) 원시전쟁시대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원시인 사회부터 일정한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를 교환하게 된 무렵부터 전쟁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집단투쟁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견해는 세계 도처에 남아 생존하고 있는 미개민족의 조사 연구에 의한 것이다.2) 고대전쟁시대나일강·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는 약 6,000∼10,000년 전, 인더스강· 황하 유역에서는 약 4,000∼5,000년 전, 페루· 멕시코 등지에서는 약 3,000∼4,000년 전에 고대문명이 일어나서 고대전쟁시대에 들어섰다고 보여지고 있다. 이 시대는 문자의 사용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특징이다.3) 근대기술전쟁시대인쇄술과 화약의 발명 및 세계적 교통의 약진을 가져온 15세기부터가 근대기술전쟁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때까지 주무기로 쓰여 왔던 칼· 창· 궁시(弓矢) 등이 화약· 총포 등으로 바뀌고, 기사(騎士)· 기병· 민병 들이 소총을 휴대한 보병과 교체하게 되었으며, 중세기에 위력을 떨쳤던 성곽· 망루 등의 요새시설이 대포의 발달로 인해서 빛을 잃게 되었던 시대이다. 에스파냐· 스위스 등의 군대에서 처음으로 채택된 화기가 16세기 초에는 이미 각국 군대의 표준무기가 되었고, 30년 전쟁(종교전쟁)과 전제정치시대에 널리 채용된 직업군인 (용병)들의 주무기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 크롬웰, 루이 14세, 샤를 2세, 구스타프 아돌프왕 등의 노력에 의해서 군대의 편성이 근대화되어 근대 상비군의 기초가 조성되었다. ‘종교전쟁시대’와 ‘전제정치시대’는 직업군대 (용병대)가 활약한 시대였으며, 동시에 새로운 상비군도 이 시대에 출현하게 되었다. 군함도 17세기 중반부터 강력한 포를 탑재한 고속함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시대에는 화기와 항해술을 이용하여 유럽의 강대국들이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등지에 세력을 확장하면서 전략요지를 점령하고, 식민지 건설에 앞을 다투기도 하였다.‘산업· 국가주의시대’는 프랑스혁명을 기점으로 해서 시작되며, 혁명전쟁에 이어서 개시된 나폴레옹전쟁부터는 고전적인 전술이나 사회제도가 일변되어 버렸고, 프랑스로부터 시작된 징병제도가 유럽 제국에서도 널리 채용되어 일반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장국가의 관념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또한 나폴레옹식의 기동섬멸작서 이론이 체계화되어 전체 (절대)전쟁의 개념으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19세기 초의 산업혁명은 때를 같이해서 융성하는 국가주의 ·민주주의 및 산업주의와 서로 매개되면서 전쟁의 기술화를 급속도로 촉진시켜 결과적으로 무장국가 및 전쟁절대화의 경향을 강화시켰다. 한편 해군에 있어서는 증기기관의 발명에 의해서 범주선(帆走船)이 기주철선(汽走鐵船)으로 바뀌고, 미국의 남북전쟁시에는 새로운 군함에 의한 최초의 대규모 전투가 실시되기도 하였다. 19세기 후반에는 공업기술의 발달에 의한 여러 가지의 발명으로 무기의 진보와 전쟁기술의 기계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으며, 직업군인 (용병) 대신에 국민 대중으로 편성된 상비군제도가 확립되었다.‘세계대전시대’는 항공기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었다. 항공기가 참가한 입체전쟁의 탄생과 강대한 공업력을 배경으로 한 각국의 군비경쟁은 그 때까지 세계의 안정세력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영국의 지위를 뒤흔들어 18세기 이래의 팍스 브리타니카 (Pax Britannica)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전제정치시대의 유물인 제정국가(帝政國家)의 붕괴를 촉진시켰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공산혁명이 발생하여 세계적 선풍을 일으켰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 실패 등이 원인이 되어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세계를 민주· 공산의 양 진영으로 분열시켜 놓았다.4) 현대의 전쟁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출현한 원자폭탄은 계속 개량되어 위력이 극대화되었고, 운반수단의 발달에 따라 상대국의 중추부에 대해서 일거에 파멸적 타격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만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던 초기에는 보유 원자탄의 수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운반수단도 프로펠러식의 폭격기에만 의존하는 형편이었으므로 소련의 절대적으로 우세한 대 육군과 그런대로 균형이 유지되었고, 소련이 핵무장을 시작한 1949년 후부터는 양국 간의 핵전력에는 실질적인 격차가 작게 되었다. 더구나 원자폭탄이 수소폭탄으로 발전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사일이 실용 배치되면서부터는 어느 쪽이 선제공격을 하든 간에 전면적인 핵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경우에는 양국이 함께 멸망하게 될 것이 명백해지면서 핵무기는 전쟁억지력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대신에, 전쟁도 평화도 아닌 냉전시대를 낳게 되고, 이른바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하게 되었다. 또한 이와 같은 상황은 여러 가지 방식의 국지전쟁을 발생하게 하였으며, 핵무기의 소형 ·경량화에 따른 전술핵무기의 사용 가능성도 높아졌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유연반응 ·단계억제의 전략을 채택하게 되는 한편, 미· 소 간에 새로운 군축회담이 진행되게 되었다. 1991년 ‘소련해체’에 이은 동구공산권의 분해로 냉전이 종식을 고하자 동서 간에는 핵· 통상무기 양면에 걸친 군축이 급진전되고 이에 따라 대전쟁 발발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새로운 무기의 개발에도 노력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므로 언제 어떠한 계기로 ‘위태로운 균형’이 깨지게 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2001년 9월 11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20분 사이에 일어난 항공기 납치 동시 다발 자살테러로 인해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펜타곤)가 공격을 받은 대참사가 일어났다. 이 사건은 4대의 민간 항공기를 납치한 이슬람 테러단체에 의해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세계 초강대국 미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뀌었고, 세계 경제의 중심부이자 미국 경제의 상징인 뉴욕은 하루아침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하고 말았다. 미국의 자존심이 일거에 무너진 것은 차치하고, 이 세기의 대폭발 테러로 인해 90여 개국 2,800∼3,500여 명의 무고한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CNN 방송망을 타고 시시각각으로 사건 실황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서 세계 역시 경악하였다. 이로 이해 미국은 9월 12일 테러 개입자들에 대해 사전 경고 없이 보복할 것을 천명하고, 이튿날 부시 대통령은 '이 테러를 2다.
고대, 중세의 전쟁1. 전쟁사 연구 목적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이다. 전쟁을 통한 역사 속에서 수많은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다. 그러므로 어느 한 시대를 알고자 할 때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 또한 그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전사를 통해서 간접적인 전쟁을 경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전사를 연구하는 동안 머리 속에는 수없는 또 다른 “사고 (思考)의 전쟁”을 치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나면 종국에는 이들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쟁을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과거에 일어났던 수많은 전쟁들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힘이 없었던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한 채 마구 덤벼드는 열강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무참히도 짓밟히고 말았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 수 있었고, 또한 그때마다 국가존망의 위기에서 평화를 유 지 할 수 있었던 국민 (국가)들은 평상시 전쟁을 철저히 대비했던 국민들이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는 결론으로 집약되었다. 과거의 전쟁도 그러했듯이 앞으로의 전쟁도 필연적으로 총력전이 될 것이며 전투원과 비전투원의 구분은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해 버린지 오래이다. 다시 말해 이제는 국민 누구나가 전쟁에 대처하여 단결된 마음으로 대응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한 연구나 독서는 군인들 뿐만 아니라 범국민적인 차원으로 확산되어 실행되어 야 할 것이다.전쟁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쟁이 어떠한 양상을 띠면서 발전되어 왔느냐 하는 부분의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미래전쟁의 양상을 예측한다는 것은 전쟁사 연구의 근본 목적이기 때문이다. 전쟁사 연구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을 쌓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리델하트는 전략론에서 전사연구를 통한 간접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직접 경험은 이론이나 응용에서 있어서 많은 한계점이 있으나, 역사 연구를 통한 간접경험은 다양한 조건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경험이기 때문에 더욱더 가치가 있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몰트케는 전쟁사가를 성 안으로 들여 놓고 승리의 기쁨에 취하였다. 새벽이 되어 목마 안에 숨어 있던 오디세우스 등이 빠져 나와 성문을 열어 주었고 그리스군이 쳐들어와 트로이성은 함락되었다. 여기서 비롯된 ‘트로이의 목마’는 외부에서 들어온 요인에 의하여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게 되었다.한편 고대에는 이 전쟁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으나, 19세기의 비판적 역사 연구에서는 허구적인 신화로 취급하는 풍조가 강하였다. 그러나 하인리히 슐리만이 1870년부터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근거를 얻게 되었다. 1930년대에 미국의 블레겐이 트로이 유적에 대한 과학적인 재조사를 시행한 결과, 트로이전쟁이 사실성을 갖는다면 BC 1250년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하였다.2) 마라톤 전투(BC 490년 경, 전쟁사에서 통상 이 전쟁부터 연구함 )그리스사(史)의 고전기란 BC 5~BC 4세기에 걸치는 폴리스 사회의 최성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 시대는 페르시아 전쟁이라는 역사적으로 의의 깊은 대전쟁에 의해 개막되었다. 이오니아 식민시에서 페르시아에 대한 반란(BC 500~BC 493)이 일어났을 때, 아테네가 이를 원조한 것을 구실삼아 페르시아가 그리스 본토에 대원정을 단행한 것이다. 페르시아는 오리엔트의 통일된 대제국이었던 데 반해, 그리스는 수많은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있어 상식적으로는 페르시아에 대적할 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BC 490년과 BC 480~BC 479년 등 2번에 걸쳐 아테네군은 페르시아군을 격퇴하는 데 성공하였다.이는 동방 페르시아 전제정치에 대한 서방 폴리스 자유시민단(自由市民團)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로써 그리스의 자유가 수호된 동시에 아테네의 번영과 아울러 그리스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서양 문명 발전의 기반이 확립되었다. 즉 역사상 세계 최초의 동서전쟁(東西戰爭)이라고도 불리는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그리스의 승리는 오리엔트적 전제정치로부터 폴리스적 자유와 그 문화를 지켜냈을 뿐만 아니413):휴전기간. ③ 제3기(BC 413∼BC 404):데켈레아 전쟁이라고도 한다제 1기 전쟁을 아르키다모스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스파르타 왕 아르키다모스가 육군을 거느리고 자주 아테네 원정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장군 페리클레스는 농성전술을 택하여 최강의 육군을 자랑하는 스파르타와 정면으로 싸우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한 소모를 피하였다. 그리고 해군으로 펠로폰네소스 해군을 습격하여 스파르타군에 타격을 줌으로써 승리를 획득하려고 하였다. 이 전술은 성공하는 듯하였으나, 개전 후 얼마 되지 않아 아테네에 페스트가 유행하여 많은 인명을 빼앗고 페리클레스도 이때 병사하였다. 화평의 기운은 자주 보였으나 아테네의 지도자가 호전파인 클레온인 점도 있고 하여 전쟁은 계속되었으며, 클레온의 전사로 BC 421년에야 겨우 니키아스의 화약이 체결되어 전쟁은 일단 끝났다.제 2기의 휴전기간 중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직접적인 전쟁은 없었으나, 서로가 세력범위의 유지 확대를 꾀한 이른바 냉전의 기간이었다. 이것이 다시 ‘뜨거운 전쟁’으로 변한 것은 아테네가 시칠리아 원정을 시도하였을 때 스파르타가 이를 간섭한 때문이었다. 아테네는 시칠리아 원정에서 무참히 패하여 그 후 군의 재정비를 꾀하였으나,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데켈레아를 점령, 요새를 구축하여 아테네를 괴롭혔다. BC 405년 아테네 해군은 아이고스포타미 해전에서 패하고, 또한 델로스 동맹도시들은 점차 아테네로부터 떨어져 나가 아테네는 식량난으로 시달렸다. 또한 과두파에 의한 정변이 일어나는 등, 아테네는 갈수록 불리하게 되어 BC 404년 마침내 스파르타에 항복하고 말았다. 그 후 아테네는 함대를 스파르타에 인도하고 장성(長城)을 헐었으며, 델로스동맹을 해산하고 과두정부를 만들었다. 패권을 잃은 아테네는 기울고 그 후로는 그리스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이 아니라 문화적 중심이 되었다. 한편 스파르타는 패권을 장악하였으나 그것이 그리스의 쇠망의 원인이 되었다.나. 로마의 전쟁1) 포에니전쟁 (BC 3세기 중엽- BC 2세기 공략했다. 그러나 BC 212년 로마군은 카푸아를 봉쇄하고 이듬해 함락시켰다. BC 209년 타렌툼을 되찾은 로마는 한니발을 서서히 반도 남쪽 끝으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BC 207년에는 히스파니아에서 카르타고의 지원군이 침입해 이탈리아 중부에서 한니발 군과 로마 시를 공격하도록 되어 있었다. 메타우루스에서 카르타고 지원군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로 이탈리아에서 사실상 전쟁이 끝나 BC 203년 카르타고군은 이탈리아에서 철수하고 한니발은 아프리카로 돌아갔다.제2차 포에니 전쟁 동안 이탈리아 국외에서는 제1차 마케도니아 전쟁(BC 214~ 205)이 있었다.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는 패배했지만 마케도니아와 카르타고의 동맹을 막을 수 있었다. 로마는 식량공급원인 사르데냐와 시칠리아 전투에서 카르타고를 물리쳤다. 한편 카르타고의 보급창인 히스파니아에서는 로마가 졌으나 카푸아를 장악해 이탈리아에서 히스파니아로 병력을 옮겼다. BC 210년에는 당시 로마에서 가장 훌륭한 장군인 대(大)스키피오가 사령탑을 맡으면서 전세는 역전되었다. 스키피오는 카르타고군의 이탈리아 진출을 막지는 못했지만 히스파니아에 남아 있던 적군을 분쇄해 BC 206년말 히스파니아를 완전 정복했다. BC 205년 콘술이 된 스키피오는 여세를 몰아 카르타고의 본거지를 공격하고 크게 승리했다. 한편 카르타고는 다시 한니발을 기용해 전투를 벌였으나 마지막 결전지인 자마 전투에서 로마군 기병의 활약으로 스키피오군이 승리를 거두었다. 카르타고는 스키피오의 조건을 받아들여 전함뿐 아니라 지중해의 여러 섬을 로마에 양도했고 전쟁배상금으로 1만 탈렌트를 지불했으며, 전쟁과 외교에 관한 자주권을 포기했다.2) 카이사르와 파르살루스 전투BC 146년에 있었던 카르타고와 코린트의 함락은 로마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로써 높은 문명을 지닌 세력에 맞선 대규모 전쟁이 끝을 맺었던 것이다(히스피니아에서 계속되었던 전쟁은 BC 133년에 일단 끝을 맺었음). 그에 따른 결과는 제국의 행정 부분에서 가장 먼저 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그 운용에 많은 제한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백년전쟁 말기 인 1453년경 프랑스의 화포는 그 위력과 사거리에서 영국의 전술을 능가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야금술의 발달로 총열 포신 탄환의 강도가 향상되고 사수의 능력이 고양됨에 따라 봉건영주의 상징이었던 성곽은 무력하게 되었고 1453년 오토만? 터키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당시의 화약 무기는 값이 비쌌기 때문에 자유시나 영방국가 (領邦國家) 등 거대한 재정 수입을 갖는 곳에 그 소유가 제한되었고 포병은 주로 도시 중산층의 상인 및 제조업자에 의해 독점되어 봉건적 토지귀족세력을 축출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로 인해 정치적 중앙집권화가 가속되었으며 근대국가 형성에 필요한 기술적 기반이 제공되었던 것이다. 십자군 원정으로 인한 무역의 팽창과 제조업자의 발달로 비롯된 화폐경제, 그리고 백년전쟁이 전술적 영향으로 기병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였다. 이제 중세의 봉건귀족들은 더 이상 전쟁 수단을 독점할 수 없었고 장교가 됨으로서 사회적 지위를 보존하기 위해 상비군에 들어왔다. 1346년 이래 2세기 동안 전쟁은 기병의 시대로부터 화약의 시대로 완전히 전환하였다. 직업적 보병이 전쟁의 주역으로서 기병을 대신하게 되었고 화포의 위력 (Missile Power)이 방진이나 군단 이후 기병에까지 이어온 충격력 (Shock Power) 을 대체하게 되었다. 이제 근대적 전쟁으로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가. 십자군 전쟁1) 개요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 사이에 서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성지 팔레스티나와 성도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전후 8회에 걸쳐 감행한 대규모의 군사원정을 말한다. 이에 참가한 기사들이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 표시를 했기 때문에 이 원정을 십자군이라 부른다. 십자군에게서 종교적 요인을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와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을 간단히 종교운동이라고 성격 지을 수는 없다. 봉건영주, 특히 하급 기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