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혈의 누」는 이인직의 대표적인 소설이며,「귀의 성」은 「혈의 누」에 비해 유명소설은 아니나 이인직 소설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귀의 성」은 이인직의 여타 소설들과는 달리 선과 악의 구분과 대립이 극명한 것이 특징이며,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뛰어난 인물갈등 묘사는 독자를 소설 속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하는 팽팽한 긴장구도를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본고에서는 이 두 소설을 중심으로 하여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이인직은 소설의 중심축 역할을 대체적으로 여성인물로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인직 소설의 계몽적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소설 속 여성인물들은 시대의 논의를 떠나서 근본적으로 지나치게 편향적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본고에서는 이 두 소설 속의 여성인물들이 어떻게 묘사되는지 살펴봄으로서 여성에 대한 인식의 논의로 논점을 확장하고자 한다.본론1.여성인물의 형상화 양상1-1.여성인물의 유형구분혈의 누와 귀의 성의 여성인물들은 뚜렷한 특징을 보이는데, 현실 대처 방식에 따라 크게 수동(受動)형과 능동(能動)형으로 구분 될 수 있다. 혈의 누 옥련모,옥련 ?귀의 성 길순 김승지 부인,점순수동(受動)형의 인물인 옥련어미와 옥련, 길순(춘천댁)은 가족에게 자신의 존재의미를 부여하며 지나치게 운명에 순종적이다. 현대에도 일반적으로 여성은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희생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이 삶의 전부로서 묘사된다. 또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자주적 노력이 전혀 없으며 극복하려는 의지조차 없다. 외부적 영향에 따르거나 극단적인 ‘자살’이라는 방법을 통해 상황을 회피하고자 하는 인물로 그려지는 것이다. 여기서 ‘자살’은 아주 극명하게 이들의 수동성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①“달아 물어보자, 너는 널리 보리로다. 낭군이 소식 없고 옥련은 간 곳 없다. 이 세상에 있으면 집 찾아 왔으련만 일거 무소식하니 북망객 됨이로다. 이 몸이 혼자 살면 일평생 근심이요, 이 몸이 죽었으면 이 근심 모르리라... 꿈같.“우리 아버지는 나 죽는 것을 모르시고 코 골고 주무신다. 너의 아버지는 너 죽는 것을 모르시고 본마누라 주먹에서 사지를 꼼짝 못하고 계신가 보다. 나도 믿을 곳 없는 사람이요, 너도 믿을 곳 없는 애라. 믿을 곳 없는 인생들이 뭐하려고 살아 있겠느냐. 가자 가자. 우리는 우리 갈 곳으로 어서 가자.”)-2.“아가 아가 네 어미는 죽으러 간다. 내가 죽고 없으면, 너의 아버지가 너를 데려다가 유모 두고 기를 것이라...오냐, 잘 있거라. 나는 간다.”)①,②,③은 옥련모와 옥련, 길순의 ‘자살’결심을 묘사하고 있다. ①의 옥련모는 딸인 옥련과 남편인 김관일의 소식을 듣지 못하자 절망하게 되는데 이 것은 너무 쉽게 옥련모를 자살로 이끌어 간다. ) ②에서 옥련은 부모와 헤어져 일본 정상소좌 집으로 오고, 소좌가 죽자 정상부인의 미움을 받고 자살을 시도한다. 이 자살시도 또한 상황 극복에 대한 아무 의지 없이 단순한 상황 탈피의 시도로 이루어진다. 또한 ③에서 길순은 두 번의 자살시도를 하는데 두 번 모두 김승지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고, 혼자 아기를 달래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순간의 감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자살=죽음’이라는 코드는 쉽게 쓰여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뚜렷한 동기아래 허용되어야 하는 것인데 위의 옥련모와 옥련, 길순의 자살시도)는 모두 순간의 감정에 의해서이며 외부의 힘에 대한 수동적 행태인 것이다.능동(能動)형의 인물인 점순과 김승지 부인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상황에 맞선다. 김승지 부인은 김승지가 춘천에서 얻은 첩 길순(춘천댁)이 오자 자신의 위치에 위협을 느끼고 대책을 모색한다. 또한 점순이 길순을 없앨 모의를 하는 것은 김승지 부인으로부터 속량과 황해도 연안에 있는 전장을 얻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살’로 상황을 회피하려는 수동형 인물들과는 달리 김승지 부인과 점순은 상황의 능동적 모색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고전소설의 전형적 惡行이며 그들 역시도 악인으로 묘사된다는 것이다.)①-1.“저년들애가 누구냐. 그것이 춘천집의 자식이냐. 에그, 그년의 자식을 생으로 부등부등 뜯어 먹었으면 좋겠다. 네 그년의 자식을 이리 데리고 오너라. 모가지나 비틀어 죽여 버리자.”)②-1.“그럴 터이면 마님께서 돈을 많이 쓰시면, 춘천 마마님과 침모를 죽일 도리가 있습니다.”)-2.“얘, 오늘은 네가 내 덕에 살았지. 이후에 내 손에 죽더라도 원통할 것 없느니라. 너는 죽을 때에 너의 어머니와 한날한시에 죽어라. 헤헤헤…”웃으면서 뾰족한 턱이 어깨에 닿도록 고개를 둘러서 어린애를 보는 눈동자가 한편으로 어찌 몰렸던지 본래 앙상스러운 눈이 더욱 사람을 궂힐 듯하다.)-3....“그래 그놈은 누워서 떡 받아먹듯 내게 오는 돈을 떼어먹는단 말이오. 여보 최서방, 그놈을 붙들거든 대매에 쳐 죽여 버리고 돈을 뺏아 오시오.”)①-1에서 김승지 부인은 침모가 길순을 숨겼다고 생각하면서 ‘대강이를 깨뜨려 놓겠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며, ①-2는 길순의 아이를 보고 하는 말로 김승지 부인의 잔인하고 표독스런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밖에도‘눈에서 모닥불이 똑똑 떨어진다’, ‘목소리는 폭포수 같고, 집어 삼킬 듯 날뛴다’라는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김승지 부인 자체가 소설 속 惡人이며 , 그녀가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한 태도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의 ‘질투’처럼 보인다. 김승지 부인이 취한 방법 또한 극단적으로 잔악한 방법이다.능동형의 또 다른 인물인 점순은 김승지 부인보다 오히려 더욱 더 악랄하게 그려지는데 ②-1에서 점순은 길순을 보고 안절부절 못하는 김승지 부인에게 길순과 침모를 죽이자는 제안을 한다. ②-2는 자신이 죽일 길순의 아이를 태연히 봐주면서 아기에게 하는 독백으로 잔인한 심성을 엿볼 수 있다. 점순은 길순을 죽이고 부산으로 도망가는데 ②-3은 아무 거리낌 없이 살인에 대해 얘기하는 점순의 교활성을 보여주고 있다.2.형상화 된 여성인물들의 특징2-1.수?능동형 인물들의 대립은 善과 惡의 대립인가?여성인물들의 수?능동형 구분은 너무 쉽게 ‘수동형=선 , 능굴에 웃는 빛이 나며 말을 묻는다 ... “누가 아니 듣는다고 무엇이라 합더니까. 그러나 강동지 죽이던 이야기를 좀 자세하구려.” )옥련모는 남편 김관일과 옥련을 찾다가 산중에 농꾼을 만나는데, 농꾼은 옥련모를 겁탈하려고 한다. ①은 옥련모가 겁탈을 당할 위기에 쳐하자 하는 말로, 옥련모는 농꾼에게 울기고 하고 빌기도 하며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정조를 지키려고 한다. ②에서 길순의 아비인 강동지는 원수인 김승지 부인을 죽이기 위해 강도 행세를 하며 방에 들어온다. 그리고 몸을 허락하면 죽이지 않겠다고 김승지 부인을 떠보는데, 김승지 부인은 너무나 쉬이 제안을 허락한다. ①의 옥련모와 다르게 김승지 부인은 그 당시 양반 사대부 집안의 부녀자가 지녀야 할 정조를 지킬 의지가 없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처럼 그 당시의 도덕적 문제인 정조에 있어서 수동형 인물과 능동형 인물은 상반된 차이를 보인다. ‘수동형=도덕적, 능동형=비도덕적’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다.(2)외적 묘사의 차이③옥련이는 어디 그러한 영리하고 숙성한 아이가 있었던지 ... 옥련이 같은 아이는 옥련의 부모의 눈에만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어떠한 사람이든지 칭찬 아니 하는 사람이 없고, 또 자식 없는 사람이 보면 빼앗아갈 석같이 탐을 내서 하는 말에, 옥련이를 잡아가서 내 딸이 될 것 같으면 벌써 집어갔겠다 하는 사람이 무수하였더라.)④침모가 전동 있을 때는 부인의 생강짜 서슬에 어찌 조심이 되던지, 부인 보는 때는 김승지 앞에 바로 서지도 못하였더니, 춘천집은 부인의 성품과 어찌 그리 소양지판(宵壤之判)으로 다르던지, 김승지가 침모를 보고 무슨 실없는 소리를 하든지, 춘천집은 들은 체도 아니 한다.)⑤이마는 숙붓고, 얼굴빛은 파르족족하고, 눈은 게슴츠레한 계집이, 나인 스물이 되었거나 말거나 하였는데...캄캄한 안 마루 끝에서 팔짱을 끼고 기둥에 기대고 앉았다가, 혼자 씩 웃으면서 건넌방으로 건너가더라.)외적 묘사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데 ③,④의‘옥을 깎아서 연지분으로 단장한 것덕적=醜=惡人 ’라는 공식이 도출되는데 왜 이런 묘사가 이루어지는 것일까?3.여성인물에 대한 편향된 묘사의 원인(1)시대적 원인옥련과 옥순이 다른 남성 인물들에 비해 나약하게 설정되어 있는 이유는 외래문화의 유입과전통문화의 충돌 사이에서 아직까지 확실한 주체의식을 확보하지 못하고 봉건과 개화의 혼란을 겪고 있는 당시의 시대의식에서 먼저 찾을 수 있다. 소극적, 순응적인 여성의 삶은 크게 변화되지 못하였으며, 여전히 여성은 남성의 부분으로 남성의 말을 따르고, 그들을 도와주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다.(2)개인적 원인이인직 개인의 남성적 시각에서 보면 남성에게 수동적인 여성인물은 선인으로, 그렇지 않은 인물은 악인으로 밖에 묘사될 수 없었다.‘여자로 태어나서 자식 없는 설움과 자식이 없는 까닭으로 첩을 들이는 것, 그리고 첩에서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 이러한 것은 여자로서의 결정적인 열등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이런 열등감이 그녀가 극단적인 폭력을 행하게 하는 심리적 기저이다’)위는 김승지 부인에 대한 한 연구자의 잘못된 이해를 보여준다. 첫 번째, 이 연구자는 「귀의 성」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였다. 김승지는 자식이 없기 때문에 첩을 들인 것이 아니라 춘천군수로 부임했을 때, 필요에 의해 길순을 첩으로 맞은 것이다. 두 번째, 극단적 폭력의 표출 원인은 열등의식이 아니라, 지나친 질투심과 자신의 위치를 위협하는 요인에 대한 배척이라고 할 수 있다. ‘열등의식’이라는 표현이 바로 남성적 시각에서 보는 여성의 행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열등하기 때문에 질투심과 권리추구라는 자세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첩이 들어온 상황이라면 본처의 질투심과 권리추구는 자연적인 방어본능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승지 부인의 악행은 극단적으로 변형된 권리추구 일 뿐이다.점순의 형상화 과정도 역시 자신의 권리를 찾는 여성을 악인화 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점순은 종의 신세이다. 이 종의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속량되어야 하고, 그리고 돈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