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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관계] 한반도통일방안
    정치외교학과199705330일제의 식민지 종속국가의 상태로 있었던 한반도는 1945년, 연합국의 승리로 종결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전후 세계질서 구축에서 발생한 미·소의 첨예한 대립이라는 외부적 요인과 민족내부의 이념간의 투쟁으로 인해 민족 간의 분열이라는 내부적 요인으로 인해서 한반도는 분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위와 같이 시작된 한반도 분단은 미·소 간의 냉전 지속과 폭력적인 방법으로 민족의 분열을 가속화시킨 한국전쟁 그리고, 남·북 양측간의 권위주의정권이 각각의 정권유지를 위해 분단을 이용하였다는 측면과 같은 여러 원인 때문에 한반도는 50여년이 지나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분단이라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그렇다면, 분단이 된 한반도를 어떻게 하면 통합할 수 있겠는가? 국제정치학에서의 통합이론을 통해서 그 시발점을 찾을 수 있다. 통합이론이란 사회집단이나 국가가 평화적인 방법에 의해서 하나의 공동체로 결합되어 가는 과정 및 결과에 관한 이론이다. 이러한 통합이론에는 크게 정치적 통합이론과 기능주의적 통합이론이 있다.정치적 통합이론은 정치적 방법을 통하여 통합을 이루려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일반 민중의 인식적 과정이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통합을 이루려하는 측면이 강하게 나타난다. 정치지도자나 정책결정자의 개인적 의지나 행위로 인해서 통합을 이루려 하는 것은 통합과정에서 상당한 불협화음과 모순을 불러일으키고, 兩집단 간의 이질감으로 인해서,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이러한 맥락에서, 기존 남북관계의 주종을 이루었던 정치적 통합접근은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정치우위의 통합모델은 근본적인 취약성으로 인해 통일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실적이 없었다. 굳이 성취라고 꼽을 만한 것은 70년대초의 7·4공동선언과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합의는 통일에 대한 추상적인 원칙을 도출했을 뿐이다. 이후의 상호신뢰가 구축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적 접근이 가지고 있는 한계일 수밖에 없다.정치적 접근으로 도출되는 통일의 논의와 연방제나 연합체제안 등은 명분상으로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천적 차원에서는 적실성을 결여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兩정치체제가 정치적 상부구조의 건설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으며, 그러한 상부구조를 구성하는 비정치적 토대의 구축을 소홀히 함으로써 토대가 빈약한 상부구조로 인하여, 사실상 정치적 통일논의는 쉽게 깨어지게 된다.다른 측면에서 정치적 접근의 한계를 살펴보면, 통일에 대한 정치적 접근은 효율성이나 생산성의 측면보다는 윤리적 정당성의 측면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정치주의적 시각은 정치의 존재이유가 되는 사회구성원들의 이익을 간과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엘리트의 이익이 주도하게 되는 정치적 접근은 일반 민중의 이익을 우선 순위에서 이차적인 범주로 간주할 공산이 크다. 그래서 정치적 접근에 의한 통일 논의는 일반 민중들의 이익을 배제할 개연성을 실제적으로 지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윤리적 비판을 받는다.기능주의적 통합이론은 비정치적 국가통합방법으로서, 주로 인간욕구의 수요와 이에 따른 공급의 원칙에 입각한 이론이다. 여러 나라들간에 있어 격증하는 생산의 분업화와 상품 및 사람들의 광범위한 교류는 상호의 협력에 대한 필요성을 창출하게 된다. 또한 학문과 스포츠 등의 교류를 통해 서로간의 필요성을 갖게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은 정치엘리트에게 통합의 필요성을 요구하게 되고, 이러한 운동의 광범위한 발전은 민중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는 자연발생의 과정을 기초로 한 상향식 운동에 의한 통일방법이다.대표적인 이론가인 미트라니(D. Mitrany)는 諸국가는 非논쟁적인 사회, 경제적 諸문제의 협력의 증대에 의해 상호의존의 복잡한 망상구조 속에 결합되어, 거기서는 분쟁·전쟁의 물리적·심리적 기반이 점차로 침식되어 최종적으로 국경을 횡단하는 다수의 기능별 국제기구의 행정망이 확립되어 평화스러운 세계공동체가 창설된다고 설명하고 있다.이처럼, 기능주의적 통합이론에서는 통합에 있어서는 국가의 강제력이나, 정부, 제도 등과 같은 정치적 역할이 중요시되지 않고, 경제·사회·문화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져 궁극적으로 상호의존성을 증대시켜 兩집단 간의 정치적 통합을 촉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한반도의 통일과정은 기능주의적 통합이론의 논리대로 나아가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인하여, 남북의 경제협력이 활발히 이루어져오고 있고,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남북한 인사들의 인적 교류도 활발해지고, 이산가족 상봉 등 정치적 분야에서가 아니라, 비정치적 분야에서 통합을 이루기 위한 교류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통합은 兩체제의 복지·사회발전·체제안정·경제력의 수준이 높을수록 쉽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한반도에서는 기능주의적 접근방법으로서 비정치적 분야에서의 통합과정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兩체제 즉 남한과 북한간의 현저한 경제력의 차이, 북한체제의 불안정성,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상이한 체제로 인한 사회구성원들간의 인식이나 사고의 현격한 차이로 인해서 통합과정상에서의 발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과학| 2004.04.10| 2페이지| 1,000원| 조회(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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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시사] 미시사란 무엇인가?
    미시사, 역사서술의 대전환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역사이야기정치외교 199705330 이정민⊙ 미시사란 무엇인가?1970년대는 68혁명의 실패, 핵전쟁에 대한 공포, 경제 침체, 산업 발전에 따른 환경 오염등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회의주의가 팽배했던 시기였다. 여러 가지 사회 현상과 산업 사회는 근대화, 산업화의 이면(異面)을 보여주었고 사람들은 이제 문명이 발달할수록 역사가 발전하고 진보한다는 생각에 회의를 품게 되었다. 역사의 진보에 대한 회의가 커짐에 따라 역사는 발전 진보한다는 믿음에 근거한 구조 중심의 사회사는 시대적 분위기에 대응하지 못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역사 연구의 새로운 한 분야로서 미시사 가 등장했다.미시사를 말 그대로 해석하면 작은 것의 역사 또는 작은 것을 통해 보는 역사 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런 의미보다는 미시사는 과거에 실재 삶을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규범화시킨 연구의 경향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미시사는 무엇보다도 역사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전체사적 흐름이라는 이름 아래 정작 그 주인공인 인간 개개인의 모습이 사라져버리는 거대 역사보다는, 어느 한 지역내에서 어떤 위기나 사건에 대처하는 그곳 사람들의 전략이나 가치관 등을 탐구하는 미시적 접근을 통해서 역사 속의 복잡 다단한 리얼리티가 더 잘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비스의 『마르땡 게르의 귀향』내털리 제임먼 데이비스의 『마르땡 게르의 귀향』은 16세기 중엽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재판 사건을 토대로 지극히 평범한 한 여성의 가치관과 행동 방식들을 복원하고자 한 연구이다. 혼인 후 3년 만에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간지 8년 만에 이전과는 다른 성격이 되어 돌아온 남편 마르땡 게르, 그리고 어느 날 그가 가짜라는 혐의를 받아 여러 번의 재판을 겪는 우여곡절 끝에 막 무죄가 선고되려는 찰나에 재판정에 나타난 진짜 남편 마르땡 게르. 데이비스는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이 재판에 대한 당대의 기록들을 미시적으로 면밀히 검토하고 그 주변 정황들을 보충하여 이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의 전말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이 저작의 초점은 남편으로 가장한 아르노 뒤 띨과 게르의 아내 베르뜨랑드 드 롤의 미묘하고도 아슬아슬한 행동과,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선택한 심리적·문화적 동기에 맞추어져 있다. 데이비스는 이를 통해 근대 초 프랑스 농촌의 한 평범한 여성이 과연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녀에게 부과된 사회적 한계 내에서 어느 정도로 스스로의 행동을 선택할 자유가 있었는지를 살피려 하였다.로버트 핀레이는 이 책이 사료적 사실보다는 상상력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라기보다는 일종의 로망스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데이비스는 핀레이가 역사적 리얼리티의 복잡성과 미묘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실을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판단하여 한다고 역비판하였다.이 논쟁의 핵심은 결국 "역사적 진실이란 무엇인가?"하는 근본적인 의문에 있다. 핀레이는 사료적 명증성을 원하고, 데이비스는 가능성의 역사를 지향한다.⊙ 미시사의 이론과 방법에 있어서의 특징1. 미시사는 이름 그대로 역사의 리얼리티를 작은 규모 또는 척도를 통해 보고자 한다. 거시사가 롱샷으로 보는 것이라면 미시사는 줌으로 사물을 당겨보는 것이다. 그러나 규모가 작다고 하여 모두 미시사적 접근에 용이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 대상이 잘 경계지워진 것이어야 한다. 역사가가 어떤 공동체나 개인을 선택해서 그곳의 특정 제의나 특이한 행동들을 촘촘하게 기술함으로써 그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말해주도록 하거나, 혹은 그러한 행위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창으로 삼아 일반적 해석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2. 연구의 초점이 개인에게 있든 공동체 전체에 있든 간에 미시사가는 거의 언제나 실제의 이름들을 추적한다. 이것은 종래의 사례연구와 미시사의 근본적인 차이가 될 수 있다. 실명을 통해서 한 가계와 다른 가계와의 관계나 매매 쌍방의 관계 등을 면밀히 살펴서 그 마을의 인적 관계망을 복원하려 하는 일종의 집단전기학적 접근이 미시사의 특징 중 하나이다.3. 미시사는 대체로 사회를 문화적 텍스트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미시사와 문화사가 접목하여 미시문화사가 되는 이유이다. 여기서 문화란 종래의 구분처럼 사회나 경제와는 다른 한 부문이라는 뜻이 아니고, 개인 또는 공동체의 행동이나 전략 모두를 문화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수와 양을 중시하는 계량적 방법보다 개개인과 공동체 간의 내적 관계에 주목하는 질적 방법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인간 행위에 문화적 정체성을 부여한다고 말할 수 있다.4. 소규모 공동체의 개개인들을 추적하여 그들의 행적과 관계망을 구체적으로 밝히다 보니, 그 서술방식이 자연스럽게 이야기체 서술이 된다. 역사를 이야기체로 쓴다는 것은 역사서술의 문학성을 의미하고, 이러한 방식이 일반인들에게 역사를 좀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5. 미시사는 가능성의 역사 를 지향한다. 여기서 가능성이라는 것은 엄격한 실증적 의미에서의 증거와 대비되는 말로서, 증거의 단편성이 문제될 때에는 증거와 증거를 잇는 최선의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진즈부르그의 실마리 찾기 의 방법이 그 좋은 예이다.
    인문/어학| 2004.04.10| 3페이지| 1,000원| 조회(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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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획서] 투표참여운동
    Ⅰ. 민주주의의 정의대중이 정치무대에 등장한 이래로 정치질서에 대한 논의는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둘러싸고 전개되어 왔다. 민주주의는 대중의 정치참여에 관한 이념이면서 동시에 절차이기 때문에 이같은 사실은 조금도 놀라운 것이 아니다. 현대의 민주주의에서는 특히 대중의 유일한 정치참여수단은 투표권행사이다. 왜 투표권이 중요한지를 민주주의의 정의적 측면에서 알아보아야 하겠다.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민주주의는 단순히 정치적 방식이며 정치지도자들을 선택하기 위한 매커니즘이라 말했다. 시민들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겨루는 정치지도자들을 놓고 선택을 한다. 선거가 없는 시기에 결정은 정치가들이 한다. 다음 선거에서 시민들은 그들이 선출했던 지도자들을 바꿀 수 있다. 선거에서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이 권한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슘페터에 의하면 민주주의 방식이란 정치적 결정에 이르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이 안에서 개인들이 인민의 표를 얻기 위한 경쟁적 투쟁을 통해 결정권한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헬드(David Held)는 자치의 기본원칙을 뒷받침하는 민주주의의 의미에 도달하기 위해 자유주의의 통찰력과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접목시키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개인은 자신들의 삶의 조건들을 결정하는데 있어 자유롭고 평등해야 한다. 즉,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효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 한 자신들에게 유용한 기회를 만들거나 제한하는 구조를 지정하는데 있어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헬드가 민주적 자치제(Democratic Autonomy)라 부른 이 원칙이 수행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고도의 책임성을 보유해야 하고 동시에 시민사회가 민주적으로 재정비되어야 한다. 이것은 공동소유기업을 자주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물론 지역공동체의 제도에 실질적이고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이 정치적 의제를 최종 통제할 뿐 아니라 개인의 선호와 참여를 위한 평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투표권 이상의 권리법안이 요구된다. 또한 민주적 자치의 기반이 원천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사회적·경제적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튼튼한 사회적·경제적 권리 없이는 국가에 대해 권리를 충분히 누릴 수 없다. 또 국가에 대한 권리 없이는 권력과 부, 지위에서의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이 사회적·경제적 자유의 이행을 체계적으로 방해할 수 있다.로버트 달(Robert Dahl)은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평등하다고 보았으며, 시민들의 선택에 대한 정부의 대응성을 민주주의의 핵심적 특성으로 강조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판별기준으로 다음을 제시하였다.첫째, 여러 정치적 사안에 관한 이해이다. 자신의 입장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 각 시민은 정치적 이슈에 대한 그의 입장을 발견하고 확인하기 위한 적합하고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시민은 누구나 정치적 사안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둘째, 효과적인 참여의 보장이다. 각 시민은 참여에 있어 성적(性的), 경제적, 지역적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하며 최종적인 결과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데 적절하고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법률적, 제도적 보장을 넘어 누구에게나 충분하고 공정한 의사표현의 기회가 실질적으로 부여되어야 한다. 예컨대 의사 표현을 하는데 있어 비용이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직화된 경제적 이해를 위한 제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셋째, 의제설정에 관한 시민들의 최종적 통제이다. 의안이 어떻게 올려져야 하는가에 대해서 시민들이 최종적인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즉, 의사결정 과정 자체에 대해 시민들이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시민들은 그들이 원한다면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할 수도 있고, 나중에 어떤 다른 정치제도로 바꿀 수도 있다. 게임의 법칙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자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넷째, 의사결정단계에서 동등한 투표권의 부여이다.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시민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투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누구나 한 표씩의 투표권을 갖는 평등선거를 의미한다.다섯째, 포괄성의 원칙이다. 어린이, 심신상실자, 수감자, 단기체류자 등 법으로 규정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누구나 법으로 주어진 모든 시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상적인 시민이면 누구나 정치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여러 학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정의는 실제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실정에 비하면 보다 진보적인 형태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상적 수준의 민주주의와 비교한다면 민주주의에 관한 최소한의 요건에 불과하다. 더욱 이상적인, 더욱 강력한 민주주의를 개념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요건에 어떤 다른 요소들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추가요소는 기본적으로 국가와 지역사회의 시민참여를 강화하는 내용들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에 있어 참여의 제도화가 핵심적임에도 불구하고 위 기준들은 참여에 관한 최소한의 원칙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Ⅱ. 운동의 배경1) 저조한 투표율 투표율 변동 상황{선거투표율제14대 대선(1992.12.18)제1회 지방선거(1995.6.27)제15대 총선(1996.4.11)제15대 대선(1997.12.18)제2회 지방선거(1998.6.4)전체투표율(%)81.968.463.980.752.7부산투표율(%)83.266.260.578.946.7은 역대선거의 투표율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투표율이 저조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민주주의의 이상적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지방자치선거는 대선에 비해 투표율이 현저히 떨어진다. 부산지역의 경우 전국평균보다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령별 투표율{총선연령별14대15대20대56.9%44.3%30대72.1%62.9%는 92년과 96년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젊은 층의 투표율이다. 15대 총선의 경우 20대의 투표율은 과반수가 넘지 않는 저조함을 보여준다. 또한 정치적 관심이 높은 30대의 투표율이 이전에 비해 10% 정도 낮아진 것을 알 수 있다.이번의 6.13지방선거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유권자가 절반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선관위가 여론조사 전문회사인 월드리서치에 의뢰해 전국의 남녀 유권자 1천5백명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는 42.7%에 그쳤다고 한다. 98년 제2회 지방선거때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유권자가 67.8%였으나 실제투표율은 52.7%에 그쳤던 점을 감안하면 실제 투표율은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또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를 연령대별로 보면 20대는 27.6%, 30대 31.9%, 40대 47.2%, 50대 61.9%로 나타나 젊은층의 투표 참여의지가 여전히 낮다는 것을 알수 있다.2) 인식의 부재근대 이후 민주정치의 발전과 선거권의 확대를 통하여 일반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반대로 정치적 무관심이 확대되어 나갔다. 오늘날 정치기구의 확대, 정치현상의 복잡화, 기술발달에 의한 사회환경의 신속한 변화, 소비문화의 발달 등은 대중의 무력감을 더해 주는 한편 많은 비정치적 관심의 대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서 정치적 무관심의 증대가 일어나고 있다.지방선거가 6월 13일에 실시될 예정이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의 관심은 저조한 편이다. 월드컵 일정과 겹쳐 있어 외견상 그렇게 비춰지고 있을 뿐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지자체선거 자체에 대한 무관심이라면 정말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월드컵의 경기일정은 줄줄 외우고 있는 사람은 많아도 지방선거가 언제 하는지 조차도 모르고 이번에 어떤 선거를 하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3) 시민운동의 중요성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사회가 점차적으로 시민사회로 변해가고 있는 이 시점에 시민운동은 힘이 커지고 또한 중요해지고 있다. 일례로, 전국의 시민단체 412개로 구성된 총선시민연대가 2000년도에 발족하여 총선에서 낙선운동을 펼쳤다. 낙선운동대상자 86명 중 68.6%인 59명이 낙선했고, 집중 낙선대상자 22명 중에서 68.2%인 15명이 낙선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뭉쳐진 시민들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정치참여를 사회운동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 올바른 사회건설을 하는데 필요하다고 본다.
    사회과학| 2004.04.10| 5페이지| 1,000원| 조회(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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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일본의 결혼문화
    Ⅰ. 서 문결혼은 사회적 제도로서 시대와 사회문화 여건에 따라서 상당히 다르고, 결혼제도는 근대사상의 도입과 산업화에 따라서 점차 변화하였다. 결혼은 모든 나라에 있어서 공통된 보편적인 제도로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결혼을 선택한다.이 글에서는 한국과 아주 가깝고, 같은 한자문화권이면서도 문화적 차이가 상당히 나는 일본의 결혼문화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본 문1. 결혼의 일반적 정의구체적인 일본의 결혼문화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결혼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을 살펴보겠다. 칸트는 근대의 결혼관계는 주체적인 인격간의 계약관계이며, 상호간에 자유의지를 매개로 하는 행위로 보았으며, 일부일처제의 관계로서 배타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했다. 특히, 성숙한 남녀가 사회적으로 적법한 혼인의식을 통해 성적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이라고 보았다. 즉, 결혼이라는 제도는 성의 조절체이며, 경제제도의 기본이며 혼인법을 통한 규범을 갖고 있고, 종교적 또는 관습적 신념을 내포하고 있으며 사회적 관계를 발생시킨다.일반적으로 결혼이란 남녀 두 사람이 사회적으로 인정된 성적 및 경제적인 결합을 말한다. 가족이 형성되자면 무엇보다도 결혼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결혼은 애정·낭만적 사랑 등과 같은 개인적 측면도 있지만, 결혼이라는 공적인 의식을 통하여 새로운 사회적 관계의 성립을 알리며,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성인으로서의 책임과 권리가 부여된다.결혼은 대부분 성인에 의해 취해지는 생활수단이다. 결혼은 자연 발생적·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제도이며, 관례이므로 반드시 결혼할 필요는 없다. 결혼을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는 개인의 자유 의사에 달려 있지만, 대부분의 남녀는 결혼 생활을 선택하고 선택한 책임은 자신이 부담해야 하므로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2. 결혼형태의 변천일반적으로 일본의 결혼형태는 처가로 들어가 결혼하는 무코이리콘(妻所婚)에서 남편을 따라 출가하는 요메이리콘(嫁入婚)으로 이행된 것이라 볼 수 있다.1 무코이리콘(妻所婚)혼인이 성립되기 이전에 특정의 남녀 사이에 연애나 성관계가 인정되어 통혼하는 것으로, 범위는 마을 안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남녀 사이에 이미 자주적인 의사로 결정된 부부관계를 하나의 의식을 통하여 공적(公的)인 것으로 한다는 점에 중점이 놓여져 있기 때문에 공적인 결혼성립 축하식은 극히 간소하게 치러진다.결혼이 성립되어도 바로 아내를 남편으로 집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아내는 친정 또는 친정이 마련해 준 주거 혹은 요메슈쿠나 네슈쿠에 기거하고 남편이 그 곳을 찾아옴으로써 비로소 부부생활이 이루어진다는 일시적이고, 일방적인 방혼(訪婚)형식을 취하는 것이다.남편이 아내의 처소를 방문하게 되는 기간은 지방에 따라 다른데, 수개월에서 20년에 이를 때도 있다. 아내가 시댁으로 옮겨가는 시기는 시부모와 자신들 부부와의 별거생활이 전제가 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시부모와는 완전히 따로 살기 때문에 재산도 음식도 달리하고 고부간의 관계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아버지의 부재기간에 태어난 아이는 어머니 책임하에 양육되고, 경제적인 부담도 어머니의 친정에서 맡는다.2 고대쯔마도이콘(古代妻訪婚)하쯔무코이리(사위가 장인·장모와 대면하여 친자맹세를 하는 의식)로 혼인이 성립되고, 이후에 일정기간 동안 처가 쪽에서 혼인생활을 갖는 일시적 통혼이다. 10세기 헤이안 시대 중기가 되면, 부부생활의 초기에만 남편이 아내의 집으로 찾아왔으나, 마침내는 상주하게 된다. 가마쿠라시대가 되면 처가 쪽에 평생 사는 것이 아니라, 일정기간이 지나면 시가로 처자를 맞이하는 혼인상태가 이루어진다.3 아시이레콘(足入婚)이 혼인방식은 혼인의 축하행사가 요메이리콘과 마찬가지로 시가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간단한 혼인성립 축하의식을 행한 후 바로 시가 쪽으로 옮긴다. 경우에 따라서는 바로 호적에 올리지 않을 때도 있고, 며느리의 피로연을 뒤로 미루던가 생략하는 일도 있다. 혼인형식상 무코이리콘에서 요메이리콘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에 생긴 방식으로, 며느리의 신분은 아직 친정에 속해 있는 것이다.4 요메이리콘(嫁入婚)혼인을 축하하는 행사는 시가에서 주로 하고, 며느리를 맞이함으로써 혼인이 성립되고, 혼사(婚舍)도 시가에 두는 혼인형태를 가리킨다. 무로마치 막부 이후 주로 무사계급 사회에서 형성되어, 지배적인 혼인형태가 된 이후, 근세에 들어와서는 이상적인 결혼형태로 서민들에게 수용되었다. 메이지와 다이쇼시대에는 거의 전국적으로 파급되어 가장 표준적인 혼인형태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요메이리콘에 있어서는 결혼 전의 연애와 성관계는 혼인윤리체제에 벗어난다 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도덕적으로 구속되기 때문에 당사자에게 있어 배우자 선택의 자주성은 상당히 약하다 할 수 있다. 혼인성립을 계기로 며느리는 자신의 소유물과 함께 완전히 시가로 옮긴 후, 계속해서 시가에서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인데 지방에 따라서는 약간 다른 곳도 있었다.요메이리콘은 후에 중매결혼, 맞선결혼이라는 다른 명칭이 붙여진다. 맞선결혼은 에도시대 이후에 나타나는 것으로서 그 이전까지는 맞선은 건너뛰고 곧바로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맞선결혼은 대부분이 하급무사나, 초닌(에도시대의 상인), 농민들 사이에서 행해졌으며 쇼군, 귀족, 다이묘 등은 맞선 없이 곧바로 결혼을 하였다.3. 결혼의 과정일본의 전통적인 결혼과정은 1 후보자를 찾아서 2 상대집안과의 교제를 거친 후 3 맞선을 보고 4 약혼 5 유이노(結納·약혼예물) 6 혼례식의 순서로 이어진다.이러한 결혼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오랜 전통을 지닌 나코도라 불리는 중매인이다. 이들은 결혼식뿐만 아니라 이후의 부부문제, 고부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할을 한다. 나코도는 부부의 후견인이라는 의미를 많이 가지는데, 이는 현대사회에 들어와서도 큰 변화는 없다.일본의 결혼과정에서 특이할 점은 맞선과 유이노 이다. 맞선은 한국에서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일본의 부모들은 자녀가 결혼 적령기가 되면, 자녀에게 맞선사진을 찍게 한다. 이 사진을 친지들에게 돌려 좋은 배우자를 부탁하는데, 이때에 이력서와 가족내역서, 건강진단서 등을 첨부한다. 부탁 받은 사람은 주위에 적당한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 결과 서로 마음이 있으면 맞선을 보게 된다. 맞선 장소로는 오늘날은 호텔 커피숍이나 조용한 레스토랑을 이용하는데, 메이지시대에는 극장이나 음악회를 이용하는 것이 성행했었으며, 에도시대에는 여자쪽 집에서 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맞선자리에서 내놓은 차를 마시는 것은 승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남자쪽에서 승낙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부채 등 소지품을 놓고 가거나, 내놓은 다과를 가지고 가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유이노는 결혼의 최종적인 결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최근에는 서양식으로 약혼식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의 전통적인 것은 유이노를 주고받음으로써 성립된다. 이러한 풍습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 일본에 전래된 것이다.결혼 약속이 정해지면 유이노를 주고 받고, 약혼파티를 하며 약혼 기념품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 결혼 통지를 하는 것이 통상의 관례이지만, 최근에는 간략화되는 추세이다. 유이노는 새롭게 친척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같이 먹고 마시는 술과 안주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점차 신부의 액세서리나 돈이 등장하게 되어, 현재의 유이노는 금봉(金鳳)과 함께 장식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4. 결혼식과 피로연결혼식{) 결혼식에는 한국과 달리 주례의 진행이 전혀 없이 사회자가 모든 진행을 맡는다.에는 신도식(神前)결혼식, 기독교결혼식, 천주교결혼식, 불교결혼식, 인전(人前)결혼식 등이 있는데, 가장 많은 것은 신도식 결혼식이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결혼식을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이벤트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종교와 결혼식의 형식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가장 많이 행해지는 신도식결혼식은 기독교식을 모방한 것으로서 1900년에 시작된 것이다. 이 결혼식은 신랑, 신부, 나코도 부부, 가족, 친족만이 참석한다. 간누시가 신을 향해 노리토를 읽은 후, 신랑이 신에게 서약을 한다. 그리고 나서 신랑과 신부 사이에 산산구도의 술잔의식{) 3쌍의 술잔으로 세 번씩 둘이서 술잔을 건네주게 된다. 소녀 2명이 술잔을 거들어 주는 가운 데, 신부가 먼저 신랑에게 술잔을 건네주게 되고, 뒤이어 신란이 신부에게 술잔을 건네주는 의 식이다.을 행한다.결혼식이 끝나면 피로연이 행해진다.{) 일본에는 예식장이 따로 없기 때문에 음식점이나 호텔의 식당을 예약해서 그 자리에서 결혼식 과 함께 이른바 연회장 으로서 피로연에 사용한다.피로연장에는 친척 외에도 친구나 관계자를 초대한다. 과거에는 남자가 여자집을 다닌지 3일째 되는 날 밤에 두 남녀가 요 위에 정좌로 앉아 떡을 먹고 술을 마시며 식을 올렸다. 식이 올려지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는 가베시로라는 휘장을 연다. 그리고 주위에 가득 모여 있던 사람들이 축사를 보낸다. 이를 도코로아라와시라 하는데, 이는 부부가 함께 자는 것을 제 3 자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일본의 결혼피로연이 된 것이다.피로연은 보통 나코도의 인사로 시작되는데, 이 때 참석한 사람들에게 신랑, 신부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고, 주빈들의 축사를 듣는다. 이후 식사가 시작되고, 친구들의 테이블 시피치(table speech)가 이어진다. 피로연은 대략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피로연 도중에 신부가 자리를 떠나 의상을 갈아입고 나온다. 이를 오이로나오시 라 하는데 수 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관습이다. 마지막으로 친족 대표가 하례객에게 답례인사를 함으로써 결혼식은 끝나게 된다.5. 결혼의 풍습에도시대 초기까지는 후처 두드려패기 라는 풍습이 이어져 왔었다. 처와 이혼을 하고, 후처를 들이는 경우에는, 이 소문을 들은 친척 친지들이 힘이 센 여자 10명, 20명씩 패를 지어 그 집에 쳐들어가서 부엌에서 후처 두드려패기로 소란을 피우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결혼풍습이 있었다.
    사회과학| 2003.12.10| 6페이지| 1,000원| 조회(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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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혼] 이혼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평가B괜찮아요
    서 론부부중 한 사람이 사망하여 혼인관계가 자연히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이혼으로 결혼생활을 끝낼 수 있게끔 제도화된 점이 현대사회의 한 특성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계속적으로 이혼은 상당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혼이 증가하는 추세에서 이혼으로 인한 자녀의 문제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이혼이 왜 일어나고, 이것이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논해보기로 하겠다.본 론1. 이혼의 사회적 배경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이 빨리 진행되면서, 가족도 가구형태와 가족구성원의 인간관계 등 여러 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 구성형태는 확대가족이나 직계가족에서 부부중심의 핵가족 형태로 되었다. 복합적인 기능은 축소되고 대부분의 주요기능은 전문적인 사회제도로 이관되었다. 중세사회 자체가 권위주의적 원규(原規)에 의하여 지배되었던 것처럼 가족 내부의 인간관계도 가장 중심의 권위주의적 원규에 의하여 규제되고 있었으며, 거기에 따라서 질서도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제도적 가족에서 우애가족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이러한 일련의 변화에 수반되어 가족집단에 내재하는 문제점도 크게 변모하게 되었다. 가족의 불안정이라는 새로운 가족문제가 제기되게 되었다. 가족의 불안정성을 나타내는 명백한 지표의 하나로서 증가된 이혼가정의 출현현상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이혼은 배우자의 생존을 전제로 한 혼인관계의 해소로서 이혼에 따른 가족의 역할과 기능상의 문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가족원에게 곤란을 주게 된다. 그러나, 이혼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부부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의미와 결혼 존속의 필수품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람들은 결혼에 대한 높은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어서 이혼의 출구 없이는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혼은 결혼에 대한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불행한 결혼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으며 행복한 결혼생활로 대치하려는 희망을 의미한다는 지적도 있다.2. 이혼의 증가 원인이혼이 증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검토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가치관의 변화전통사회에서의 부부관계는 남편이 부인을 지배하고 부인은 남편에게 복종하는 상하주종의 관계였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들이 한 번 시집을 가면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에 여자에게 이혼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에 비해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권리가 존중되고 있다. 따라서 이전처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참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여성들이 줄어들고 있다. 결혼생활을 더 이상 지속시킬 수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정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는 이혼을 자신의 삶을 위한 하나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결정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가지고 이혼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2 도덕관·종교관의 변화결혼과 가정에 대한 종교적 영향력이 과거보다 감소함으로써 여성의 이혼이 인정되지 않았던 유교나 카톨릭적 의식에서 벗어나, 결혼이 개인의 행복을 저해할 경우 이혼은 고통이나 비극 또는 악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의 재출발이 될 수 있으므로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만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3 여성의 경제적 자립전통사회에서는 가족이 경제적 생산단위이자 소비단위였으므로 가족을 떠나서는 생활이 어려웠다. 따라서 경제적인 압력 때문에 불행한 결혼도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여성의 교육 기회가 증가하고 취업기회도 많으며 여성 노동력에 대한 수요도 증가되었다. 여성 취업의 증가는 여성에게 경제적 자립능력을 갖게 했으며 이러한 능력은 이혼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4 이혼의 법제적 요인의 변화법은 이혼을 통제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이혼법의 입법 태도 여하에 따라 이혼율이 달라진다. 과거의 가족과 관련된 법은 가족의 유지를 목적으로 이혼을 금지하려는 의도가 컸고, 특히 남성전권주의로 여성에게는 불리하였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민법은 유책주의를 지양함과 더불어 이혼시의 재산분할청구권으로 여성의 가사노동 가치를 인정하고, 자(子)의 면접교섭권 신설, 자녀양육권의 선택 및 조정을 가능케 할 수 있는 등, 이혼과 관련된 불평등 법조항들이 많이 개정되어 과거보다 쉽게 이혼을 할 수 있게 되었다.5 자녀수 감소와 자녀관의 변화출산율 감소는 세계적인 추세로, 자녀의 수가 부부간의 갈등을 야기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일단 갈등이 발생하여 부부가 이혼을 결심할 때 자녀의 수가 적으면 부담이 적다. 또한 과거에는 자녀 때문에 이혼을 자제하는 경향이었으나, 현재는 자녀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거나 삶을 구속당하지 않겠다는 사고방식이 증가하고 있다. 자녀보다 자신의 삶을 더 중요시하거나, 이혼후 자녀도 훌륭히 양육하면서 자신도 새출발하겠다는 진보적 사고방식의 증가가 이혼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6 일반인들의 태도 변화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부부는 백년 해로 해야 한다는 것과, 여자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이혼한 여자는 소박 맞았다고 하여 실패한 인생으로 간주했고, 친정에서도 가문의 수치라고 여겨 받아들이지도 않았으며, 딸의 이혼 사실을 숨기곤 했다. 그러나, 최근 이혼에 대한 일반인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지면서 이혼 증가의 한 원인이 되었다. 요즘의 일반인들은 부부에게 문제가 있으면 불행한 상태에서 결혼생활을 지속시키기보다는 새로운 삶을 찾는 것이 낫다 고 생각하고, 예전에 비해 이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점차 약화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이혼을 수용하는 태도가 증가하고 있다.7 남녀의 성역할 변화성역할의 변화, 특히 여성의 근대적인 성역할 태도는 남자와 동등한 교육을 받은 여성으로 하여금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통한 자아실현을 추구하게 한다. 이러한 여성의 성역할에 대한 태도 변화는, 첫째로 부부간 역할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나라 남성들의 역할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가부장제도하에서의 남성 역할에 더 익숙해 있다. 또한 아들은 그러한 아버지로부터 남편의 역할을 답습하기 때문에 가사분담 및 자녀양육에서 동등함을 주장하는 아내의 입장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부부간에 갈등이 일어나고 극단적인 경우, 이혼에 이르게 된다. 둘째로 기혼여성의 사회생활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증대시켜 불행한 결혼을 영위하는 경우에는 이혼을 더욱 고려할 수 있게 한다.3. 이혼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대부분의 아동들이 부모의 이혼 후 첫 2년 동안은 여러 가지 문제를 보인다. 이러한 위기 시기가 지난 뒤에 일부 아동들은 두드러지게 회복하여 잘 기능하며 역량 있고, 심지어 더 향상된 개인이 된다. 그러나, 일부 아동들은 발달상의 지연이나 혼란을 겪으며, 또 어떤 아동들은 변화의 초기 단계에서는 잘 적응하는 것 같다가 청소년기나 초기 성인기에 지연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1 정서적 문제이혼은 많은 경우에 자녀문제를 전혀 또는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부모의 생활 상황이 향상될 것이라는 가능성에 토대를 두고 결정된다. 부모의 이혼을 원하는 자녀는 거의 없으므로 부모의 이혼에 대해 대부분의 자녀들은 처음에 상당한 분노, 원망, 불안, 불행으로 반응한다.이러한 반응은 자녀의 발달단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즉 자녀의 나이가 매우 어린 경우에는 이혼이라는 개념을 잘 알지 못하며, 어느 날 갑자기 한쪽 부모가 자신들과 같이 살지 않거나, 아예 사라져 버려 궁금해하고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6세 전후의 아동들은 종종 부모가 화해할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두 부모 모두로부터 버림을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비현실적인 공포감까지 느끼며, 또래들이 자신의 가정생활을 알까봐 두려워한다.아동기 후기의 아동들은 믿었던 부모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생각에 배신감과 원망이 깊어지면서 부모에 대해 강한 분노감을 느낀다. 특히 청소년기 자녀들은 부모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자녀를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로 인한 배신감과 분노감을 표출하기 위해 부정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부모가 이혼한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대부분 새로운 생활환경에 잘 대처함에도 불구하고, 종종 부모의 이혼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과 감정을 지닌다.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한 성인들은 그러한 경험이 없는 성인들과는 달리, 어린 시절이 자신들의 삶에서 가장 불행했다고 보고한다.2 행동적·사회적 문제이혼 후 첫 2년 동안 아동들은 행동문제를 일으키고 사회적 역량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청소년 전기 단계에 있는 여아들은 대체로 어머니가 친권을 가진 가정에서 새로운 생활환경에 빠르게 적응하지만, 남아들은 이혼 후 4∼8년 정도까지 불복종하고 충동적이며 공격적이고 반사회적 행동을 계속 보인다. 남아들이 사회적으로 더 부정적인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남아들이 가깝게 느꼈던 아버지와 헤어져 살게 되면,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따라서 성역할 모델이 사라지면서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데, 남아들은 좌절감을 내적으로 나타내는 여아들과는 달리 이를 외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다.이혼한 가정의 청소년들은 사회적으로 덜 유능하고 더 공격적이며, 불복종하고 성적으로 활발하며, 약물이나 술을 더 많이 즐겨 약물 중독자와 알콜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이혼한 가정의 10대 소녀들이 성적 활동에 빨리 눈을 뜨는 것은 신체적 조숙, 성적으로 적극적인 어머니, 나이 든 친구들의 존재 및 친구들의 활달한 성적 활동 등에서 비롯된다.
    사회과학| 2003.12.10| 5페이지| 1,000원| 조회(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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