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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윤리설
    내가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윤리설‘실천 철학’ 중에 ‘윤리학’이 있고, 또 그 중의 ‘규범 윤리학’에 ‘이론 규범 윤리학’이 있음을 수업시간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이 이론 규범 윤리학에 지금부터 논하고자 하는‘윤리설’이 있으며, 이 윤리설은 크게 ‘의무론적 윤리설’ 과 ‘결과론적 윤리설’로 나누어질 수 있음을 배웠다. 여기서 우선 내가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윤리설을 밝히면 ‘결과론적 윤리설’ 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의무론적 윤리설’의 단점과 난점을 분석해보고, 반박해 봄으로써 왜 ‘결과론적 윤리설’을 보다 합당한 윤리설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논하여 보겠다.첫째로, 의무론적 윤리설에서는 개인이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할 때, 수많은 규칙들 중에서 도덕 규칙을 찾아내고 그에 비추어 그 행동이 옳은(right) 행동인가를 판단해야 하는데, 이 기준이 명확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개개인은 각자가 다른 인격체로서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가소적인 존재라는 말과 상통하는데, 인간은 그의 주위의 사회적 여건, 교육 환경, 그가 처해진 역사적, 문화적 조건에 따라 각각 다른 인격체가 되며, 즉 개개인의 가치관이나 무엇을 옳다고 인식하는 직관이 같을 수가 없음을 말한다. 내가 일본에 살았을 때, 우리 집에서 음식을 해서 옆집에 사는 일본 사람들에게 주면 항상 답례품이 왔었다. 그것이 얼마나 크고 작은 물건인과와는 상관없이 무엇인가를 받으면 과자 하나로라도 꼭 보답해야 한다는 식의 풍습이 일본에는 있다. 한국에서는 음식을 많이 해서 옆집에 나누어 주면 서로 정분이 생긴다. 음식을 받은 집에서 다음번에 음식을 많이 하거나 잔치가 있을 때, 다시 옆집에 음식을 줄 수 있다. 오히려 음식을 받을 때마다 꼬박꼬박 답례품을 챙겨서 보낸다면 음식을 준 사람이 부담이 되어 다음번에 음식을 주기가 꺼려지게 되고, 오히려 서운한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일본에서는 작은 물건을 받았다고 하여(과자 한통을 받았다 할지라도) 답례품을 보내지 않는 다면 몰지각 사람이 되고 만다. 일본인들이 생각하기에는 남에게서 물건을 받았으면 즉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하는 것이 옳은 행동이며, 올바른 도덕관, 윤리관을 가진 사람의 행동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번 답례품이 오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그릇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와 같이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조건들이 극명하게 다른, 다른 나라 사람간의 가치관이 같을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며, (개개인의 직관에 따른 윤리적 옳고 그름 뿐만 아니라) 나라마다 옳다고 여겨지는 윤리가 각양각색인 것도 문제가 된다고 하겠다. 이에 비해서 결과론적 윤리설에서는 어떤 행동을 할 때 우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좋은 것이 무엇이냐(What is the Good)?”, 그 다음이 “옳은 것이 무엇이냐(What is the Right)?”이다. 그런데 좋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조금은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사람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목적가치는 행복, 즉 쾌락이며 이는 경험을 통해 어떤 일을 하면 쾌락이 느껴지고 어떤 일을 하면 고통이 느껴진다 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따라서 행동을 함에 있어서 생각해야 할 것의 기준이 결과론적 윤리설이 보다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둘째로, 둘 이상의 규칙들이 상충했을 때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의무론적 윤리설은 결과론적 윤리설에 비해 명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둘 이상의 규칙들이 서로 상충하게 되는 윤리적 딜레마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을 때, 그 상황에 처해진 사람은 결국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여러 도덕 규칙들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의무론적 윤리설의 관점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못할뿐더러 설사 어렵게 여러 규칙들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규칙들은 의무론적 윤리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예외를 인정하는 일이 된다. 그런데 의무론적 윤리설에서는 본래 예외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결국 옳은 행동을 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규칙들 간의 우선 기준이 없으므로 그 사람의 선택은 결국 자의에 따라 이루어 진 것이고 이는 첫째 경우에서 논한 바와 같이 사람마다 다른 직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므로 또다시 문제가 된다. 이렇게 볼 때, 의무론적 윤리설에서 제시하고 있는 여러 규칙들을, 모든 상황에서 일관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에 비해서 결과론적 윤리설에서 두 가지 이상의 규칙이 상충했을 때는, 각각의 규칙에 따른 행동을 했을 때 얻어지는 결과가, 더 많은 행복을 또는 쾌락을 가져다주는 것의 규칙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므로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 처했을 경우에도 결과론적 윤리설이 더 나은 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셋째로, 의무론적 윤리설에서는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데 이는 도덕적 엄격주의에 빠지게 만들 수 있다. 도덕적 엄격주의에 빠지게 되면 윤리 규범들을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되고 융통성이 없어지며 윤리적 상황의 합당한 예외를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가난한 살림 속 에서 어머님을 공양하기 위해, 어머님의 밥을 계속 먹어버리는 자신의 자식을 묻으려했던 ‘손순’의 일화를 통해서 우리는 도덕적 엄격주의를 발견 할 수 있다. 효자 손순은 조선시대의 최고 가치인 효 사상에 입각하여, 어머니를 공양하는 것을 최고의 도덕규범으로 여겼다. 그런데 철없는 아들이 어머님의 밥을 먹어버리자 아들을 산에 묻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손순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아들을 묻으려 했던 곳에서 아름다운 종(鐘)이 발견되어 아들도 구하고 임금에게 그 종을 바침으로써 그 효성을 칭찬받고 이야기는 끝난다. 하지만, 아들을 죽이려했던 손순의 행동이 과연 옳은 행동이었는지는 의심이 간다. 이와 같이, 윤리적 상황의 합당한 예외가 인정되지 않으면 도덕적 엄격주의에 빠지게 되고, 또 다른 중요한 가치를 윤리 원칙에 희생시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합당한 예외를 허용하는 결과론적 윤리설이 보다 더 합당한 윤리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문/어학| 2003.11.09| 3페이지| 1,000원| 조회(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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