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9교회론- 김흥규 교수님해방을 위한 공동체Mary E. Hines신대원 3/4 김오현Ⅰ. 들어가는 말교회의 전통과 구조는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회 생활의 중요한 영역들, 특히 지도력을 가지는 역할에서 여성을 배제시켜 왔다. 이에 용기를 잃고 소외된 일부 여성들은 가톨릭 교회를 떠나 여성의 충분한 참여를 북돋아주는 다른 교파들로 가거나, 여성중심의 여신 전통으로 옮겨갔다. 다른 한편으로 교회 내의 변화를 도모하거나 구조적인 개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가톨릭 여성들도 있다.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이며 사제중심적인 억측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교회 구조들을 상당히 변형시킬 필요가 있다. 그 동안 교회에 비판적인 여성신학은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출발점으로 하여 “우리가 교회다”라는 확신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본 발제에서는 세상 안에서의 교회 사명과 교회 구조들에 대한 여성론적 비판의 관계를 숙고하고, 교회의 본질에 대한 고찰 및 교회 쇄신을 위한 다양한 자료들로부터 해방을 사명으로 하는 공동체인 교회의 현실성을 잘 표현해 줄 건설적인 제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Ⅱ. 세상 안에서의 교회 사명과거의 교회론은 흔히 교회의 본질과 구조를 진술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세상 안에서의 교회를 강조하는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는 교회의 사명을 먼저 숙고하고 난 다음 그 사명과 관련된 교회의 본질과 구조들을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교회는 다양한 태도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즉, 세상과 가시적 교회가 매우 밀접하고도 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기에 이 세상의 자율성과 동떨어질 수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교회와 세상은 완전히 분리되고 대립된 것으로 보는 사람들까지 매우 다양하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는다. ‘사목헌장’은 이 불명료한 세상과 더 폭넓게 대화하라고 선포했고, 이 세상을 죄의 세상인 동시에 은총의 세상으로 보았다. 교회는 현대의 대중사회 및 문화적 변이 속에 포함될 수밖에 없고, 더 이상 현대세계와 떨어질 수 없다.이 극적인 변화의 신학적 토대는 칼 라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세상의 역사와 구원의 역사를 같은 선상에서 바라본다. 구원은 이 세상 삶의 기쁨과 갈등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이 세상이야말로 은총의 세상이라고 말한다.) 라너의 신학 및 당시 유행했던 세속화 신학들은 세상과 대화하는 것을 공의회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도록 영향을 주었다.이는 과거의 입장에 비해 놀랄 만한 반전으로서, 교회가 세상에서 배울 수 있다고까지 제안했다. 교회의 고유한 사명은 이 세상 안에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만드는데 있다. 교회의 내적 직무는 이 근본 목표에 봉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 안의 봉사는 모든 이의 목소리와 경험을 포함하고 그들에게 선물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내적 구조는 모든 사람을 해방시키는 교회의 사명을 원활히 하기 위해 있기 때문이다.Ⅲ. 교회 구조들에 대한 여성론적 비판모든 해방신학 가운데서도 여성신학은 가장 강한 목소리로 만인을 해방시키고 힘을 북돋아 주는 일에 교회가 관심을 가지도록 그 내부 구조들을 고치라고 요구한다. 여성신학은 교회의 사명과 그 구조들 사이의 연계성을 인식하면서, 세상에 정의를 요구하려면 무엇보다 교회 자신이 먼저 정의로워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류터는 교회가 만인을 위한 해방공동체가 되어야 하며, 특히 여성을 가부장적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교회자체도 가부장적의 영향을 깊이 받았기에 교회가 변화를 이끌어 갈 수 있을지는 가톨릭 여성신학자들의 심각한 의문거리이다. 류터는 이 변화가 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여성 기초공동체의 공동체험으로부터 온다고 주장한다.“여성 기초공동체란 가부장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이해하면서, 성찰하고 축복하며 행동할 책임을 가지는 자발적이며 자생적인 공동체이다.”) 가부장제에서 해방되는 길은 여성이 교회 안에서 자유롭게 행동하고 책임감 있는 성인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성직 중심의 힘의 구조를 없애는 것이다.)교회 구조들은 교회의 사명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있는 것이므로 변경될 수 있는 것이다. 교회의 공식 기관들이 위계구조의 타당성을 끝까지 유지시키려 해도 대안적 구조에 관한 논의는 풀뿌리 신학 차원에서 잘 진행되고 있다.Ⅳ. 교회의 본질: 설명에서 표상으로교회 구조에 대한 대안들은 교회의 본질을 설명이 아니라 상징으로 설명하는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그 원천을 발견할 수 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지닌 가시적이고 제도적인 차원들로 교회를 적절하게 설명하거나 정의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교회의 현실이 가지는 다른 측면들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표상들을 제공해 준다. 초기의 가시적 측면에 집중하던 것에서 극적으로 전환하여, 공의회는 우선 교회를 신비로서 표상했다. 신비로서의 교회는 어떤 절대적 개념으로 한정될 수 없다. 그러나 권한을 부여받은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 모습이야말로 가장 먼저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교회의 표상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고 ‘교회헌장’은 진술한다.라너는 공의회 직후 교회에 관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새 표상은 지역교회에 대한 이상을 시험적으로 소개한 ‘교회헌장’에서 왔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역교회의 중요성을 인식한 ‘교회헌장’이 과거의 보편주의적 교회론을 보류하는 한편, 교회의 미래 지향점을 지적한다고 한다. 몇 년 후 지역교회에 대한 이상은 라너의 후기교회론의 중심 주제로서 더욱 그의 사상에서 중심을 이룬다.Ⅴ. 새로운 표상, 새로운 구조: 건설적 제안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구조적 변화는 제시하지 않고, 교회의 본질을 극적으로 재 구상했다.) 특히 서로 배척하지 않는 세 가지 방향, 즉 평등하게 제자직을 수행하는 교회, 민주적인 교회, 세계교회로서의 교회를 모색한다.쉬쓸러 피오렌자는 비위계적 교회질서를 재조직하는 하나의 강력한 표상을 제시한다. 예수운동과 최기 그리스도교를 여성신학적 입장에서 다시 보면서 그녀는 예수 주변의 평등한 남녀 제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을 발견한다.) 예수와 관계 맺은 사회의 소외계층들 중 여성들은 분명 초기 공동체에서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다. 류터와 마찬가지로 피오렌자는 여성교회가 이러한 이상을 살리고 고무시킬 수 있는 장(場)으로 본다. 교회를 동등자 제자직으로 표상하는 것은 교회 위계구조에 함축된 가부장제의 전반적 영향력을 무너뜨린다. 모두가 예수의 추종자이고 그분의 해방을 위한 직무를 공유하기 때문에, 소수의 지배적 남성이 절대 권력을 독점할 여지는 없다. 지배와 종속관계를 합법화하는 구조는 동등한 제자공동체 안에 자리 잡을 수 없다.사실 교회사에 민주적 요소들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교회는 현대 민주주의의 영향을 거부했고 하느님이 그 위계구조를 인정한다고 주장해 왔다. 교회의 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주적 이상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거나 자유주의시장경제와 결합된 미국 민주주의와 동일시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민주적 이상은 어떤 특정한 사회질서를 모방하지 않으면서 교회의 재건에 영감을 주어야 한다. 교회 구조를 재건하는 핵심요소에는, 선거나 다른 참여과정들이 있건 없건, 모든 단계에서 교회 지도력을 불러 모으는 폭넓은 참여가 포함된다. 비앙키와 류터는 교회의 민주적 재건을 위해 교회사에 근거한 다섯 원칙-참여, 조정, 다원성,책임감, 대화를 제시한다.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 원칙들에 따른 구체적 전략들이 필요하다.
2008. 10. 7여성신학 세미나 - 김정숙 교수님한국 여성신학을 위한 제언)신대원 4/4 김오현Ⅰ. 들어가는 말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지구화 현상으로 인하여 삶의 정황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고, 또 현대와 현대 이후의 의식의 전환과정에서 비판과 새로운 관점들이 다양한 현상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에서 신학한다는 것의 의미와 과제를 성찰하는 일은 신학의 존재 이유를 다시 확인하게 하는 중요한 일이다.1980년 한국여신학자협의회(이하 여신협이라 함)가 창립되면서 공식적으로 전개된 한국 여성신학은 1984년 여성신학회가 창립되고 1986년 공동학회에 가입함으로써 한국신학 활동 전체 조직과의 관계를 가지면서 여성신학을 심화시켜 왔다.현대를 넘어서는 패러다임 전환들의 요인을 ‘자연’, ‘문화’, ‘성’, ‘계급’이라고 한다면 여성신학은 ‘성’을 요인으로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며 신학 새로하기를 전개하여 왔고 공동학회 안에서도 신학 새로하기에 영향을 미쳤다.본 글에서는 여신협과 여성신학회 작업들, 그리고 여성신학자들의 다양한 작업과 활동들을 중심으로 한국 여성신학이 신학 새로하기를 어떻게 전개하여 왔는가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전망을 찾아보고자 한다.Ⅱ. 한국 여성신학 - 신학 새로하기의 어제1. 비판신학으로서의 한국 여성신학한국 여성신학은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서구 여성신학이 소개되면서 그것을 접한 교회여성들이 자신들이 이미 의식하고 있던 성차별에 의한 교회내의 억압현실을 신학적으로 객관화하고 비판할 수 있는 인식을 갖게 되고 방법론을 획득하게 되면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성차별적인 한국 교회 현실에 대한 비판, 남성 중심적 관점의 전통적 성서해석에 대한 비판, 그리고 한국 종교문화 전통에 나타나는 여성비하와 가부장적 문화비판을 통하여 여성신학을 정립하고자 하였고 초기 여신협의 자료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한국 여성신학이 페미니즘 관점에 의한 비판신학임을 알 수 있다. 그 비판의 내용들을 몇 가지로 상론해 본다.1) 남과정이나 가부장화된 사회적 맥락들에 대한 치밀한 분석들이나 전통적 교회론에 대한 분석적 비판과 교회 본질론의 차원에서의 여성신학적 내용은 별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손승희는 전통 교회론이 남성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였음을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비판한다. 전통 교회론이 제시하는 참된 교회의 네 가지 속성과 교회에 대한 성서적 이미지들(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백성 등)은 위계적이며 권위주의적 성격을 지닌 교회제도를 제시하게 하였고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근거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는 교회의 본질을 1) 교회제도에서 보는 측면의 전통 교회론은 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로 여성을 배제시켰교, 2) 교회를 더 특별한 본성에 의해 그 본질을 이해하는 측면에서는 성속 이원론의 교회본질 이해가 여성을 열등하거나 사악한 존재로 보는 속의 영역에 놓아 여성을 몸을 비하하는 여성 혐오의 사상을 극대화시켰고, 3) 교회를 그 사역의 측면에서 이해하는 교회론은 사역으로부터 철저하게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 중심주의의 ‘사도적 계승권’을 확립했음을 비판한다.손승희의 이 전통교회론 비판은 그것이 여성신학적 관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박순경의 관점과 차이를 가진다. 강남순 교수는 전통 교회론을 여성신학적으로 재해석하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박순경과 비슷한 논점을 가지지만,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 언어, 성령의 여성성에 대한 강조 등의 여성신학적 논점에서는 큰 차이를 가지면서 교회 본질론 차원에서 가부장제적 교회를 비판한다.한편 여성차별이 극복되는 대안적 교회 제시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탈가부장적인 ‘여성목회’) ‘페미니스트 목회’로서 주로 제시되고 있는 여성신학적 대안 교회는 교회 이미지로서는 레티 러셀이 제시한 ‘원형신탁’, ‘따듯한 집 교회론’ 등이 거론되고 탈가부장적 교회의 실천은 ‘여성교회’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되었다. 문제로 제기된 위계구조의 극복이나 평등한 참여, 민중과의 연대, 보살핌의 원리 실현 등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여성신학적 교회는 역 성서해석 비판과 성서 새로 읽기종교개혁에서 ‘오직 성서로만’을 주창한 개신교의 배타적 성서주의는 축자영감설에 입각한 성서해석의 지배적이게 되었으며 특히 한국교회는 근본주의 신앙이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성서문자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서를 맹독하는 경향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가부장적 문화에서 쓰여진 본문들을 하나님의 창조질서로 믿음으로 여성 억압적인 성서 본문을 그대로 진리로 정당화하며 그래서 교회내 성차별을 당연시하는 것이 한국교회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서를 여성의 경험에 의해 비판적으로 읽는 여성신학적 성서해석은 여성신학에 접한 여성들에게 성서를 읽는 데 충격적인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고 여성들이 이 성서해석을 중요하고 긴요한 한국 여성신학의 과제로 택하게 만들었다. 여성해방적 관점에서 성서를 읽기 위한 여성 신학적 노력은 1980년 한국 여성신학이 이 땅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주류를 이루는 성서해석은 여성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지금의 여성해방적 관점에서 왜곡되게 해석된 여성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부장제의 여성 억압을 폭로시키게 하는 여성 이야기들, 지혜롭고 용기 있는 삶의 모델들로 드러나는 여성들, 문화와 관습에 도전하거나 당당하게 살려고 하는 여성들의 발굴 등등 수많은 성서 여성들과 새롭게 만나는 신학을 펼쳤다.여성신학적 성서해석의 입장은 여성신학 안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성서는 철저히 가부장적이어서 여성해방의 자원으로서는 거부될 수밖에 없다는 태도(메리 데일리), 성서의 본질은 비가부장적이므로 그 본질을 드러내는 성서해석을 해야 한다는 태도(필리스 트리블), 성서의 문자는 가부장적이지만 성서 역사를 재구성함으로써 남녀 평등한 성서 공동체의 경험의 역사를 재건해야 한다는 입장(휘오렌자), 성서를 해방과 억압으로 이중 경험한 공동체의 독특한 경험 안에서 해석하게 된다는 주장(흑인 여성신학, 유색인 여성신학, 아시아 여성신로는 서구 신학의 지배를 벗어나서 ‘한국적’ 여성신학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탈서구적 의식과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얼마나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우리 전통에 대한 페미니스트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맥락에서 여성신학의 도입 때부터 관심을 가진 주제이다. 1981년 여신협 세미나에서 이우정은 “한국 속담과 여성의 비인간화”에서 우리 속담이 여성을 무능력자로 보며, 종속적, 의존적 존재로 특징지우며, 주체성이 강한 여인은 배척을 받게 되며, 집에 가두어 놓고 길들여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여자는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며, 여자만 정조를 지킬 것이 강조되고, 남자의 애완물로 묘사되며, 질투가 많고 상대를 증오하고 말이 많고 판단력이 없다는 등등의 여성비하적 내용이 지배적임을 드러내었다. 이 전통문화의 여성 비하가 여성신학적으로 조명되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학적 차원을 갖지 못하였다는 지적이 많지만, 그럼에도 우리 일상에 익숙한 삶의 표현 가운데 지극히 남성우월적이고 여성 비하적 언어와 관습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폭로하여 많은 자극을 주었다. 유교의 여성억압에 대한 비판은 암암리에 일반화된 것이 사실이며 이 또한 한국 여성신학이 한국여성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유교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계속 논의할 과제로 남기고 있다.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여성신학적 관심은 비판과 동시에 우리 전통에 어떤 여성해방적 자원이 있는가를 또한 탐색케 했고 여기에 무속과 도교적 문화가 여성을 긍정적으로 혹은 해방적으로 인식함을 발견한다. 이는 민속신앙과 무속종교가 유교의 엄격한 남성 중심주의나 가부장적 위계적 구조와 다르게 남녀 평등성과 개방성을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여성 중심의 제의 진행이나 여신상의 주체적이며 권위적 모습을 통하여 여성 긍정의 기반을 찾을 수 있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우리 전통종교와 문화에 대하여 비판적이거나 재건하는 차원에서 신학적 조명을 한 것, 특히 무속에 대하여 새로이 논의한 것은 기독교의 배타성을 극복난을 해방으로 이끌어내는 ‘실천적인 신학’ , ‘현장성을 담보한 신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여성신학은 그 표현방법론에 있어 아카데믹한 글들보다는 가장 쉬운 언어로, 가난한 지역 여성들의 삶을 반영하면서 이들의 여성해방의 주체로 이끄는 기독여성운동과 여성신학, 성서 읽기 등을 노력한다. 오늘의 한국 여성신학은 민중 여성신학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하여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오늘의 상황에서 민족, 성, 계급의 범주들이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또한 성찰하여야 한다.3. 민족 통일의식을 포괄한 신학 ? 평화/통일과 한국 여성신학한국 여성신학은 민족의식에 입각한 통일과제를 한국 여성신학의 과제로 생각하고 그 4, 5, 6차 정립협의회를 “한국 여성신학과 민족통일”을 주제로 개최한다. 박순경은 여신협 초기부터 한국민족의 과제가 바로 여성신학의 주제요 과제가 되어야 함을 주장하여 민족 역사의 맥락에서 전개되는 여성신학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민족의식의 맥락에 따른 여성신학에 대한 관심은 민족 통일과 직결되고 한국 여성신학은 통일을 여성신학의 주제로 생각함과 동시에 통일이 민중여성의 해방과 연결됨을 또한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 여성신학자들은 평화와 통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고, 이것이 여성신학적 작업으로 나타났다. 여성신학자들이 평화와 통일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988년 NCC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이다. 이 선언은 분단을 조장하는 군사주의가 가부장주의에서 나온 것이며 가부장주의가 모든 식민주의, 제국주의, 군사주의의 온상이라고 규정하며 통일은 흡수통일이 아니라 민족화해의 통일이 되어야 함을 선언하였다. 이후 한국 여성신학에서 평화통일에 대한 관심은 주로 ‘통일희년’과 관련하여 발전, 전개되었다. 임희숙은 평화통일과 희년을 위한 교회 여성들의 운동과 신학에 대하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첫째, 통일희년운동이 한국교회 여성들에게 만족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