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가치와 잡지『문장』파 근대예술가들의 지향점- 월북 작가 정지용 시인의 활동상을 중심으로목 차Ⅰ. 머리말Ⅱ. 고전의 가치와 잡지『문장』1. 고전의 가치2. 잡지『문장』Ⅲ. 정지용과『문장』파 근대예술가들의 지향점1. 정지용과 조선문화의 정체성2. 정지용의 전통 수용Ⅳ. 맺음말Ⅴ. 참고문헌Ⅰ. 머리말1940년을 전후하여 일제의 강압적 통치가 더욱 강화되면서 조선어 말살 정책과 내선일체, 황국신민화라는 시대적 압력 속에서 1930년대 말과 1940년대 초의 문단 상황은 우리말로 문학한다는 것 자체가 곧 민족성의 존립 여부로 직결되는 극한적인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말로 된 문학작품은 창작 및 발표가 점차 어렵게 되면서 우리 문학은 어쩔 수 없는 암흑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작가들은 아예 절필을 하였고, 일부는 일제에 대해 체제협력적인 시를 쓰기도 하였다. 이러한 암흑기 속에서도 우리 문단에서는 잡지『문장』와『인문평론』등을 중심으로 한 민족성의 모색이 이루어졌다. 일제 식민지 조선의 예술가들은 개화기 이래 봉건적, 전근대적인 것으로 평가절하 되어왔던 ‘전통’과 ‘고전’, 즉 ‘조선적인 것’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민족적 자아를 확립함으로써 시대의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민족 문화의 수립 및 전통과 관련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역사 소설과 역사 유적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조선민속학, 역사, 문학 등에 대한 고문서들을 체계화하려는 시도가 처음으로 이루어졌으며, 문학적 성격이나 정신적 특성에 있어서 상고주의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등장하였다. 사상적 배경의 중요성을 고유한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찾았으며, 우리의 언어, 말, 문화의 가치를 되새기기 시작하였다.여기서는『문장』파에 속한 정지용 시인의 1930년대 활동상을 중심으로 고전과 고전의 가치를 통해서 고전과 고전의 가치의 추구를 통해서 우리의 정신을 지키고자 했던『문장』파 근대예술가들이 지향하고자 하던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고전의 가치와 잡지『문장』1. 고전의 가치고전이란 예전에 쓰인 작품으로, 옛날 예법이나 양식, 오랜 시대를 거쳐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가치를 인정받아 시대를 뛰어넘어서도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니며,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을 이룬 작품을 말한다.우리는 고전 작품을 통해 이전 사람들의 사유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사유을 통해서 그 당시 형성된 민족의 문화와 철학의 근본 바탕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일제 식민지 시대『문장』파 근대예술가들은 고전을 소재적인 차원에서 활용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왜곡된 근대를 비판할 수 있는 정신적인 거점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2. 잡지『문장』잡지『문장』은 1930년대 일제 말기 국수적 민족주의에 근간한 군국주의의 물결에 위기를 느끼고, 동아일보가 주도적으로 전개한 민족주의 문화운동이 계기가 되어 한국 민족의 전통성과 특수성을 찾아내어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가자는 목적으로 확산된 고전부흥론을 토대로 창간이 되었다. 잡지『문장』은 순수문예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전과 학술분야에 상당한 지원을 배정하고 고전의 발굴과 복원작업이 힘썼다. 잡지『문장』에 관여한 예술가들은 고전에 대한 정신적 의존도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고전 연구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잡지『문장』으로 활동하거나 등단한 예술가들을‘『문장』파’라고 칭하는데, 이들은 일제 식민지 시대와 광복 이후 우리 시문학, 예술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잡지『문장』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이태준, 정지용, 이병기 등이 있다. 이들은 각각 잡지『문장』의 소설과 시조, 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 많은 신진 문인을 추천하며 이후 문단 신인들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Ⅲ. 정지용과『문장』파 근대예술가들의 지향점『문장』파 근대예술가들은 1930년대 중반 이후 조선문화에 대한 고전 탐구 및 발굴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특성은 잡지『문장』을 통해 작품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것을 그대로 고수하기 보다는 전통과 고전의 새로운 창조와 변용을 주장하였다.정지용도 당대 사회의 ‘조선적인 것’에 대한 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전통과 고전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시론으로 펼치거나 전통적인 것을 작품에 적용하였다.1. 정지용과 조선 문화의 정체성정지용은 조선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동양을 버리지 않고 바탕을 이루면서 서구 근대화의 수용문제를 고민하였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 조선의 문화를 존속시키고자 하였으며, 전통과 고전의 새로운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였다. 동양화론에 기초하여 시의 정신성을 확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적 형식을 창출하고자 했다.또한 정지용은 전통을 통해 새로운 차원에서 근대시가 탄생되기를 바랐다. 감정의 절제와 언어의 엄정함을 주장했던 초기시의 근대적 감각과 문인화를 통해 습득된 동양적 정신주의가 만나, 현실에 대해서 굽어 겸허히 성찰하고 의연하게 버티며 여백의 미학과 감정의 절제 주제의식 등이 새로운 미학으로 창안되도록 하였다.정지용에게 있어서 고전이란 과거 사회가 생생한 현실을 반영해 낸 것이며, 근대적인 것이란 변화된 현실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자연스러움을 얻기 위해 고전과 근대적인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정지용의 생각이며, 그것은 그의 작품 속에서 드러나고 있다.2. 정지용의 전통 수용정지용은 전통과 고전의 답습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재인식하면서 새로운 형태와 내용으로 많은 시와 수필 등을 창작하였다.1) 내간체 사용잡지『문장』의 전통 수용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내간체’를 들 수 있다.내간 체는 『문장』파의 이병기, 정지용, 이태준의의 공통된 미의식을 규정하는 중요한 매개였다. 또한 잡지『문장』의 내간체 수용은 일제 말 우리 말과 문학의 말살에 맞 서는 우리말과 문학의 옹호와도 연관되어 의미가 있다. 또한 잡지『문장』에서 고 전의 평가는 과거의 것이 시대적 상황의 필요에 의해서 재해석된 예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고전의 평가를 창작과 연결하였다. 이는 특히 내간체의 사용인데, 193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정지용의 전통인식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내간체의 수용이라고 할 수 있다. 정지용이 그 주역이었다고 볼 수 있다.정지용은 수필과 시에서 내간체 문장을 적용하였다. 이를 통해 언문일치 문장이 지닌 유용성을 거부하는 동시에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였다.정지용은 잡지『문장』에서 내간체 문장들이 소개되기 전에 「옛글 새로운 정」 이란 글에서 인목왕후의 전교를 먼저 소개한 바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문장에 서 적용하였다. 연작 수필인「수수어」에서 주로 내간체 문장이 적용되었고, 「다도 해기」나 「일편락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정지용의 기행문에서도 내간체를 모 방한 문장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서로 차이는 있겠지만 고전「관북유람일기」나 「무오연행록」에서와 같은 내간체 기행문의 전통과 연관되어 있다. 또한 「삽살이」 와 「온정」과 같은 시에서도 “남긔”, “박긔”같은 내간체를 볼 수 있다.2) 조선어(우리말) 중시『문장』파 작가들이 고전 발굴에 심혈을 기울이고 고전의 문장이 갖는 역사성에 심취했던 것은 조선어가 민족의 문화유산으로써 함께 해왔고, 민족의 연대를 보장 하는 힘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조선어 말살정책으로 총독부에서『문장』과 『인문 평론』,『신세기』를 합쳐 하나로 만들고 일어와 조선어를 혼용하여 황도정신을 드 높이라는 요구에 대해 『문장』파 작가들은 고전만이 가질 수 있는 전통 속에서 언 어와 민족의 밀접한 유대를 발견하고, 그 당시 조선어로 조선시를 쓴다는 것만으로 신변의 위협을 당하던 시기에 『문장』의 폐간을 통하여 저항하고, 가치 있는 행동 을 한 것이다.정지용은 해방 후에 『문장』파 작가들의 문학 활동에 대해 ‘위축된 정신이나 마 정신이 조선의 자연 풍토와 조선인적 정서 감정과 최후로 언어를 고수하였던 것’) 이라고 정당하게 평가를 내리고 있음 찾아볼 수 있다.정지용의 후기시에서 전통의 인식은 조선어 즉 우리말에 대한 인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지용의 작품에서의 언어 감각과 사용은 당대 평가에서도 찬사를 받았다. 이는 정지용의 조선어에 대한 각별한 애착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지용의 조선어 에 대한 애착을 보인 작품 중 수필은 이후에 시집 「백록담」에서 산문시 형식으로 재구성되어 『문장』에 발표되었다.또한 1937년 이 후,「영랑과 그의 시」라는 글에서 정지용은 영랑이 보이는 조선 어의 운용에 대해 찬사를 보내며, 특히 영랑이 구사한 전라도 사투리를 언급하면서 사투리 속에 국토와 자연이 녹아있음을 주목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정지용이 초기에 는 조선어에 관심을 보였다면 후기시에서는 향토어에 대해 재인식하기 시작하고 이 후 전통적인 자연을 대상으로 시 세계로 가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3) 문인화 운동정지용의 후기시에서 전통의 재발견은 이 시기에 활발하게 일어난 잡지『문장』 의 문인화 부흥운동과도 연관성을 갖는다. 잡지『문장』에 참여했던 김용준은 문인 화의 부흥을 위해 1930년대 초부터 서와 사군자 부활 운동을 벌였다. 잡지『문장』 에 수록된 그림에 문인화 형식에 동양적, 조선적 정신이 가미된 수묵화를 그렸다. 무엇보다 조선적인 선과 공간의 조형적 우수성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그림 속에 글 의 의미와 내용을 부활시키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정지용이 문인화 운동이나 문인 화 정신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지만 김용준과의 교류를 통해 정지용의 후기시 창작에 있어서 문인화 정신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4) 향토미의 구현정지용은 시조나 가사, 한시 등에서 보이는 꽃, 산, 물, 돌 등의 전통적인 소재 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대비를 통한 시정신을 작품에서 표현하였다.5) 전통 시어 차용과 전통 운율의 지향, 전통 시가 양식의 수용
‘고전’의 가치에 대해 깊이 천착했던 잡지『문장』과『문장』파 예술가들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목 차Ⅰ. 머리말Ⅱ. ‘고전’의 가치에 깊이 천착했던 잡지『문장』Ⅲ. 잡지『문장』파 예술가들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1.『문장』파의 상고주의2.『문장』파의 전통적 민족주의Ⅳ. 맺음말Ⅴ. 참고문헌Ⅰ. 머리말1940년을 전후하여 일제의 강압적 통치가 더욱 강화되면서 조선어 말살 정책과 내선일체, 황국신민화라는 시대적 압력 속에서 1930년대 말과 1940년대 초의 문단 상황은 우리말로 문학한다는 것 자체가 곧 민족성의 존립 여부로 직결되는 극한적인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말로 된 문학작품은 창작 및 발표가 점차 어렵게 되면서 우리 문학은 어쩔 수 없는 암흑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부 작가들은 아예 절필을 하였고, 일부는 일제에 대해 체제협력적인 시를 쓰기도 하였다. 이러한 암흑기 속에서도 우리 문단에서는 잡지『문장』과『인문평론』등을 중심으로 한 민족성의 모색이 이루어졌다.그 중 일제 강점기 말기에 고전의 가치에 대해 깊이 천착했던 잡지『문장』을 통해 『문장』파 예술가들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고전’의 가치에 깊이 천착했던 잡지『문장』일제 말기 대표적인 문예지로 평가되고 있는 잡지『문장』은 1939년2월에 창간되어 1941년 4월 통권 26권을 마지막으로 강제 폐간될 때까지 『인문평론』과 함께 일제 말기 우리말 문학 활동의 유일한 무대가 되었으며, 시문학사상 뛰어난 시인들은 배출하고, 순문학작품 발표와 고전의 발굴에 주력하였다.잡지『문장』은 여느 문예지와는 다르게 우리 문화 전통에 대한 선호하였고, 고전 탐구를 중심으로 한 전통을 지향한 변별적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문학지이면서 동시에 종합예술지, 순문예지이면서 동시에 대중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 폐간되기까지 잡지『문장』은 가사, 타령, 시조, 고소설, 한문학, 불교문학, 무속의 신가, 이조시대의 인문화, 산수화, 중국 시문학 등의 고전예술의 적극 소개하였다.잡지『문장』으로 활동한 작가들과 잡지『문장』을 통해 등단한 작가들을 통틀어 흔히‘『문장』파’라고 칭하는데, 이들은 광복 이후 우리 시문학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잡지『문장』을 대표하는 작가로는 이태준, 정지용, 이병기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은 각각 잡지『문장』의 소설과 시조, 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 많은 신진 문인을 추천하며 이후 문단 신인들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 또한 1940~1950년대에 활동한 문인들의 대부분이 잡지『문장』을 통해 등단하였다고 해고 과언이 아닌데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의 청록파와 현대 시조의 장을 열었단 김상옥, 이호우 등이 발굴되었다. 이들의 시와 시론이 다음 세대에 끼쳤던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한국 현대 시문학사에서 『문장』의 역할은 실로 중요한 것이다.Ⅲ. 잡지『문장』파 예술가들이 추구한 상고주의와 전통적 민족주의일제 식민지 조선의 예술가들은 개화기 이래 봉건적, 전근대적인 것으로 평가절하 되어왔던 ‘전통’과 ‘고전’, 즉 ‘조선적인 것’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민족적 자아를 확립함으로써 시대의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민족 문화의 수립 및 전통과 관련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역사 소설과 역사 유적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조선민속학, 역사, 문학 등에 대한 고문서들을 체계화하려는 시도가 처음으로 이루어졌으며, 문학적 성격이나 정신적 특성에 있어서 상고주의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등장하였다. 사상적 배경의 중요성을 고유한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찾았으며, 우리의 언어, 말, 문화의 가치를 되새기기 시작하였다.1. 『문장』파의 상고주의상고주의란 옛적의 문물을 숭상하여 모범으로 삼는 주의로 고대를 존중하는 것이며 가치의 기준을 후대보다 전대에 두는 것이다.『문장』파의 상고주의는 무엇보다도 조선조의 문화적 유산들의 능동적인 수용을 통해서 문화 창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주해 및 번역을 통한 조선조 문학고전들의 소개, 국학의 동향과 성과의 반영, 현대시조 창작의 후원 등에 기울인 『문장』파의 특별한 관심에 잘 나타나 있다. 『문장』지의 편집에 나타난 조선조 문화의 계승 작업은 『문장』파가 193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고전부흥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하지만 잡지『문장』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 것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고전 속에서 나아갈 지표를 발견하고 그것을 현대적인 것으로 발전시키고자 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문장』파의 상고주의는 유교문화권에서 역사관의 정통으로 군림했던 복고주의와 대조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으며, 『문장』파의 상고주의는 어떠한 실천적 목적의식과도 연결되지 않는, 옛 시대의 심미적 문화의 우상화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식민지의 근대에 대한 성찰 없이 즉자적으로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복고주의와 달리 근대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의 전근대의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 『문장』파의 상고주의였던 것이다.『문장』파 가운데서 전통 지향성을 주도해간 대표적인 작가로는 1930년대 후반 일제 전시체제가 본격화 되어 내선일체의 논리에 의해 민족 정체성이 위기에 처해있을 시기에 상고주의를 표방하는 잡지 『문장』을 간행하고 민족적 주체를 형성하고 수호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이태준이 있다. 대부분 일제 식민지 지식인들이 서구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할 때, 이태준은 전통’ 및 ‘고전’ 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이를 추구하였다. 그는 『문장』의 제자와 표지화부터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의 것으로 택했으며, 『문장』의 편집 방향 역시 고전 탐구, 전동적인 것의 계승으로 설정하였다.또한 『문장』파 예술가들은 당시 상황 속에서 고결한 인격과 순수한 감정 및 위대한 정신을 유지하고자 전통의 정신세계인 조선시대 문화와 선비정신의 계승을 하고자 하였다. 『문장』은 당시 일제의 군국주의 파시즘과 대동아공영권, 동양문화사론, 이로 인한 문예계 현상인 아세아주의라는 틀 속에서 전통 논의를 실질적으로 주도해나갔다. 잡지『문장』의 전통에 대한 논의는 다분히 민족주의에 기초한 것으로 이해된다. 잡지『문장』은 또한 자신들이 추구하던 고전 지향성을 표출하고 민족문화에 입각해 ‘우리의 색감과 우리의 정조가 배어있는’) 표지 및 규정을 만들어 내기위해서도 노력하였다.전통에의 회귀는 다분히 방어적인 논리이기 하지만, 식민주의와 화해하지 않으려는 결단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것에는 민족적 정체감을 고양시키고 이를 통해서 ‘황국정신’의 야만적 폭력에 맞서는 저항의 힘이 서려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2. 『문장』파의 전통적 민족주의국권의 상실과 함께 대한제국의 국어가 민족어로 전락하고, 일본어가 국어로 등장한 이후 조선어는 존폐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일본어 교육을 통해 국민정신의 함양을 통한 민족말살, 동화예속의 감행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내선일체를 내세워 더욱 가혹한 식민정책을 펴던 일제말기에는 1938년 발표된 교육령에 의거 조선어 폐지에 이은 조선어 금지와 일본어 상용의 강요가 이루어졌다.언어와 문자는 한 나라의 민족의 심성을 바로잡고, 국가의 독립을 완전히 할 수 있다는 일종의 언어 민족주의적 관념을 바탕에 깔고 있으므로) 언어의 실용성과 민족성은 일제 식민지 시대 문학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이다.『문장』파의 문인들은 언어를 민족의 기억을 담고 있는 저장고라고 생각하고 우리 민족의 오래된 언어들은 수집하였다. 우리말의 토속어, 문화어로서의 기능을 강조하고, 활용하는 데 많은 심여를 기울였다.대표적으로 이병기는 고문 수집과 이에 병행하는 고문체 발견, 시조 발굴과 창작을 통해 잊혀지고 사라진 우리말들을 단편적으로 모아서 소개하기도 하고 자신의 시조 창작을 통해서 우리말을 활용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잡지『문장』의 내간체 수용과 내간체 소개이다. 이병기는 고전에서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산문 문장을 발견하고자 하였고, 한글로 된 내간체 작품을 가장 이상적인 고전으로 평가하였다. 『문장』 창간호에서부터 소개한 궁중에서 쓰인 내간체 문장으로 쓰인『한중록』의 해설에서 그는 우리 고전산문을 내간체, 가사체, 역어체로 구분하고 그중 내간체 문학을 가장 높게 평가하였다. 이를 통해 이병기는 산문 문체의 독자성을 학립하고자 하였다. 이에 『한중록』은 『문장』의 문학적 지향이 전통지향 또는 상고주의로 파악되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문장』파의 문인들이 고전 발굴에 심혈을 기울이고 고전의 문장이 갖는 역사성에 심취했던 것은 고전만이 가질 수 있는 전통의 무게 속에서 언어와 민족의 밀접한 유대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즉, 우리말이 민족의 문화유산으로써 그 운명을 함께 해왔으며, 민족의 기억을 담고 있는 문화재로 보고 민족의 연대를 이루는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언어가 가지고 있는 유구함은 그대로 조선 민족의 유구함으로 전이되어 민족의 결속감을 형성할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한다고 믿었다. 언어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간에 결속감을 이루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능력을 가졌음을 확신하고, 『문장』파 예술가들은 잡지『문장』을 통해 일제 말기 사라져가는 우리말의 수호를 통해 문화적, 전통적 민족주의를 고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