碩 士 學 位 論 文朴崍賢 作品에 나타나는 앵포르멜 傾向에 관한 硏究啓 明 大 學 校 敎 育 大 學 院美 術 敎 育 專 攻宋 貞 和指導敎授 李 仲 熙2001 年 12月朴崍賢 作品에 나타나는 앵포르멜 傾向에 관한 硏究指導敎授 李 仲 熙이 論文을 碩士學位 論文으로 提出함2001 年 12 月啓 明 大 學 校 敎 育 大 學 院美 術 敎 育 專 攻宋 貞 和宋貞和의 碩士學位 論文을 認准함主審 申 鉉 大副審 李 英 石副審 李 仲 熙啓 明 大 學 校 敎 育 大 學 院2001 年 12 月목 차Ⅰ. 序 論 1Ⅱ. 本 論 31. 우향 박래현(雨鄕 朴崍賢)의 생애 32. 작품의 변화과정 63. 박래현 앵포르멜 수용과 변용 151) 서구의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 152) 박래현의 앵포르멜의 내용 및 특징 183) 작품분석 22(1) 계획된 색채와 구성의 중심성 22(2) 여백의 미를 강조한 구성 23Ⅲ. 結 論 25參 考 文 獻 27圖 版 目 錄 29參 考 圖 版 30英 文 抄 錄 35國 文 抄 錄 37Ⅰ. 序 論雨鄕 朴崍賢(1920∼1976)은 해방과 6·25를 전후한 한국화단의 시대적 상황과 근대와 현대라는 과도기 시대의 가교적 역할을 한 화가이다. 우향은 경성관립여자 사범학교 미술교사 에구치 게이시로(江口敬四郞)의 권고로 일본으로 유학을 하게 되면서 미술을 체계적으로 공부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유학 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박래현의 미술공부는 우리 나라 전통적인 수묵이 아니라 채색위주의 일본화 공부였다. 이러한 박래현의 전력은 해방 후 그가 활동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화풍도입에 적극성을 띄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해방 후 반일 감정의 일제 식민 청산운동의 바람은 미술계에서도 불었고 채색위주의 화가들의 대부분이 친일로 분류되기도 하였다. 우향이 활동하던 당시 시대적 상황은 일제치하와 6·25 동란 후 서구문물의 도입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혼란과 급변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시대상황 속에서도 전통적 한국화를 고수하려는 화가들도 적지 않았지만 반면에 일본화 기법을 수용하고 서구 미참가하고 브라질과 남미의 잉카 문명 등 중남미 여행을 하였다. 여행 후 미국에 체류할 것을 결심하고 뉴욕으로 옮겨 프랫 그래픽(Pratt Graphic)센터와 밥 블랙번(Bob Blackbunn) 판화연구소에서 7년간 판화를 연구한다. 판화공부와 제작을 통한 박래현의 열정과 노력은 계속되어 1971년 프랑스의 제3회 칸느회화전에 를 출품하였고, 1972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최하는 한국근대미술60년전에 출품하였으며 펜실베니아주 아렌타운(Allentown) 미술관초청 부부전을 개최하였다. 또한 뮤렌버그(Muhlenberg)대학교 주최 부부전을 개최하였고 그곳에서 동양미술사를 1년간 강의하였다. 1973년 하와이 아카데미 오브 아트(Academy of art) 주최의 판화전에서 작품이 매입, 영구 보존작으로 선정되었으며 플로리다 미술관 판화전에도 출품하였다.박래현의 그림에 대한 열의는 1974년 신세계미술관에서 가진 '귀국기념 판화전'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는다. 1975년 7월 판화 공부를 위해 다시 미국으로 갔으나 계속된 과로로 인해 암이 발병되고 11월초에 귀국하여 치료받다가 1976년 1월 2일 그녀의 나이 56세에 성북동 자택에서 생을 마감하였다.2. 작품의 변화과정우향 박래현(1920∼1976)이 살았던 1920년에서 1970년대는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과도기적 시기로 우향을 비롯한 당시에 활동하던 여러 작가들은 전통회화가 현대 미술을 만나는 과정에서 가교적 역할을 하였다. 일본의 식민통치와 6·25라는 시대적 아픔 속에서 동양화·서양화의 이분법 개념에 제한 받지 않고 조형적 자유를 만끽했던 한국의 근대화가를 꼽으라면 우향 박래현을 떠올리게 된다. 56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우향이 보여준 작품세계는 채색화에서부터 서구의 모더니즘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우향은 동양화가이면서도 결코 동양화가라고만 할 수 없는 독특한 회화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녀의 회화 작업은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지속적인 실험정신으로 점철되며 다무언지 자신의 생리에 맞는 세계를 찾는 듯한 기쁨으로 제작이 계속 되었다.") 박래현, "동양화의 추상화", 『사상계』 1965, 12.』이 글에서 '입체적인'이란 말이 정확하게 서구의 입체파 개념과 조형방법을 수용하고 있다는 것인지는 정확히 단정지을 수 없지만 '시각의 복수성' 혹은 '시점을 다각도에 두는 표현', '사고의 힘'이라는 말로 미루어 볼 때, 이 시기의 작품들은 사실적인 묘사를 떠나서 형태와 구성을 중요 목적으로 삼는 추상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큐비즘의 개념을 인식하고 수용하는 우향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김현숙외, 앞의 책, pp.70∼76.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의 , , , , , 같은 작품에서 우향은 더욱 더 화면을 추상화하여 화면을 크고 넓은 색면(色面)으로 분할, 이전의 선염법(渲染法)) 선염법(渲染法): 동양화에서 화면에 물을 칠하여 마르기 전에 붓을 댐으로써, 물감이 번져 몽롱하고 침중(沈重)한 묘미를 나타내는 기법.보다 더 자잘한 점묘로 분할된 면을 채우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화면의 장식성을 부각시키며 장식성은 배경이 패턴화로 더욱 증강된다.이상의 50년대 시기의 작품특색을 다시 살펴보면, 1950년대는 6·25 전쟁이라는 사회적 상황과 피난생활이라는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되는 시기이다. 식민 해방 후 일본화풍 탈피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우향 역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반면 새로운 동양화 창건을 위한 모색의 한 방편으로 그는 서구의 신사조 가운데 입체파를 수용한다.우향은 입체파의 특징인 사물을 분석, 해부하여 나타내는 형식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다양한 시각에서 보여지는 사물을 평면적 구성으로 재해석하여 전통적인 점묘법이나 번지기로 표현해 우향만의 서정적 큐비즘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3) 제3기; 1960년대 - 앵포르멜(Informel) 특성의 추상작업과 맷방석 시리즈1950년대 말 시리즈에서 60년대 초반에서 후반까지 나타나는 시리즈에서 보여지듯 우향은 반추상에서 방향으로 흔들어서 깔쭉깔쭉한 구멍을 만들어서 소지로 한다. 그 판면을 도형에 따라서 스크래퍼(동판화용 칼)와 베니셔(판화용 강철봉)를 사용해서 회색에서 백색까지 인쇄할 수 있게끔 그라데이션을 붙여서 완성한다., 석판화, 실크스크린 등 다양한 기법을 본격적으로 실험했다.우향이 판화에 관심을 갖게된 동기는 김기창의 세계에서 독립되어 자기의 독자적인 미술세계를 형성하기 위한 시도이며 우향은 판화가 새로운 미술형태로 각광 받고 있고 재료와 방법이 시대성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으며 중남미 공예품의 패턴에서 얻은 영감을 자기의 작업에 정착시키는 수단으로도 적당하다고 보았다.) 임지예, 홍익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9, p.50.판화의 주제와 영감은 1964년 미국, 유럽, 중동 여행과 1967년의 남미여행, 그리고 한국적인 소재들에서 얻은 영감들과 결합되어 있다. 1970년대 초반 우향의 판화작품은 1960년대 앵포르멜 경향과 맷방석 시리즈의 회화들처럼 특유의 구성 방식을 판화기법에 적용하고 거기에 고대의 원생동물부터 역사적 유물의 모습을 담고 있다. 우향의 판화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는 에칭과 메조틴트를 병행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도상적인 측면에서 여러 가지 모티프(Motif)를 포함하는 꼴라쥬(Collage) 형식을 택하고 있다. 어린뿌리, 새싹, 씨앗, 세포의 형태, 웅크린 인간의 모습 등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모티프들은 생명과 근원적인 것, 그리고 탄생을 의미한다. 와 비슷한 구성방식으로 제작된 는 우리 나라의 하회탈, 보리, 고분에서 출토된 금귀고리 이미지들과 이제까지 자신이 표현했던 형태들을 꼴라쥬 형식으로 다시 결합시켰다.과 1973년 작인 에서 세포들처럼 보이는 것이 얽혀 있는 모습은 1960년대 맷방석 시리즈의 작품 , 과 비슷한 형상들을 보이고 있다. , , 과 70년대 초반의 과 은 상하, 좌우 등의 대칭적인 구성을 보이고 있다. 과 는 여리고 부드러운 선과 색채의 회화들과 유사한 특성을 지닌 판화들로서 말기의 서정적 작품들이場)의 일부 같은 느낌을 준다.이라는 두 흐름으로 나뉘어진다.폴록과 뉴만 그리고 로드코 등의 추상표현작가들은 일찍이 전면회화(All-Over)) 화면에 어떤 중심적인 구도를 설정하지 않고 전체를 균질하게 표현하는 경향의 회화. 화폭의 테두리까지도 그림으로 가득 채우며, 화면 전체를 동일한 방법으로 같은 강도로 칠한다.와 무관계(Non-Relational)로 불리우는 화면의 전면구성을 통하여 회화 본래의 평면성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킨다.유럽의 앵포르멜과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는 전쟁과 대공항으로 인해 황폐화된 정신상태를 잘 다듬어진 조형언어가 아닌 보다 파격적인 조형언어로 표출하는 것을 목적한다. 하지만 이 둘은 분명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서구의 앵포르멜이 화면에 칠해지는 두꺼운 안료나 물질이 중첩되어 표현되어지는 질감으로 황폐한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는 격정적이고 혼란한 마음상태를 행위 자체로 표현하여 화면에 나타나는 결과보다는 작가의 직관적인 표현 행위 자체를 존중하는 경향인 것이다.2) 박래현의 앵포르멜의 내용 및 특징앵포르멜이 의미하는 정신적 배경이나 역사적 상황에 대한 뚜렷한 검증과정 없이 우리화단에 앵포르멜 열기가 불어닥친 것은 1957년부터 1959년까지로 유럽의 앵포르멜이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보다 거의 10여 년이 늦었고, 일본보다는 1,2년이 더 늦은) 김영나, 『20세기의 한국미술』 (서울: 예경, 1998), p.252.것이었다. 이러한 서구의 미술사조를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6·25라는 시대의 비극이 우리 작가들에게 안겨준 정신적 상처와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를 태동시킨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이 겪은 정신적 상황과 유사성이 있었고 전후의 갈등이 표현된 그들의 화면에 일종의 상황적 공감을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구열, 『한국현대미술사 연구』 (서울: 미진사, 1992).수묵채색화단에서 본격적으로 추상열풍이 일어나기 시작한 때는 1957년 서양화단의 앵포르멜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