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은 깨끗하다.중국 미술처럼 어딘가 그득한 화려함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일본 미술처럼 세밀하고 오밀조밀한 맛이 있는 것이 아니고, 깨끗하고 담백하다.현란한 색채나 구석구석을 채운 세부 묘사 대신 끊어지는 듯 이어지고, 정적(靜的)인 듯하며 동적(動的)인 선이 형태를 만들고, 화면을 채우는 듯 채우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 화는 동양화이기 전에 한국화일 수 있으며, 중국이나 일본의 그림과도 구별된 정체를 가 질 수 있는 것이다.흐르는 것 같은 길게 끄는 그 곡선은 한없이 호소하는 마음의 상징이다. 말할 수 없 는 여러 가지 원한과 비애 또 동경이 얼마나 그 선을 통해 남몰래 흘러나오고 있을까? 이 민족은 그럴 듯하게도 선의 밀의(密意)에 마음의 표현을 택했던 것이다. 형(形)도 아니고 색(色)도 아니고, 선(線)이야말로 그 정을 호소하는 가장 적절한 방편이었다.야나기 무네요시(柳宗說)의 에 나오는 말이다. 선에 의탁하여 한(韓) 과 정(情)을 표현하였다는 말에 일본 제국주의적 냄새가 배어 있다 하여 반발하는 국내 문인도 있지만, 이 말은 일제의 눈 이전에 한 예술을 즐기고 감상하는 한 사람의 눈으로 본 한국 미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다 공정할 것이다. 실제로 한국 미술의 단아하고 우 아한 멋은 그 선에 기인한 탓이 크기 때문이다.서양 미술에서, 선은 장식적인 요소의 표현에 쓰였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가 옷감 무늬 마냥 그렇게 장식적으로 보이는 것도, 보티첼리의 여인들이나 아르 누보 그림의 여인들이 그렇게 예쁘고 관능적이기 그지없어 보이는 것도 다 그 달콤하고 인상적인 색채를 정리하기 위해 또렷하고 명료한 선을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세밀하고 꼼꼼한 선들의 집합 자체가 훌륭한 장식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느낌의 선들은 화면을 평면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선은 2차원에 속한 것이고 면은 3차원에 속한 것이다. 그래서 선을 살리다 보면 입체감은 약해질 수밖에 없고 장식성이 살아 오르는 만큼 평면화 된다. 르네상스의 입체 표현 기법이 도입되기 전까지의 그림을 생각해 보라. 특히 중세의 그림, 경건한 표정을 지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그들은 어딘지 속세를 초월한 경건함과 성스러움이 엿보이며, 평범한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임을 과시한다. 그들의 금빛 옷은 번쩍이며 천상의 영광을 표현하고, 어디도 확실히 바라보고 있지 않은 초점은 그들의 관심사가 지상에 있지 않음을 나타내며, 꼼꼼한 세부 묘사는 화가가 그들에게 가지고 있는 경외심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평면적이며 답답하게 화면에 갇혀 있다. 그들을 탈지상적으로 만들어 주었던 그들의 선이, 그들을 화면에 가두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일본의 그림이 세밀하고 오밀조밀한 맛을 지니고 있는 것도 그들의 섬세한 선 사용이 가져다 준 효과일 것이다. 우키요에가 아름다운 것은, 그 과감한 색의 대비와, 그리고 선의 섬세함에 있다. 그들은 하나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으며 꼼꼼히 그림을 장식한다. 옷의 무늬 하나 하나가 표현되며, 그것도 아주 정성스럽게 그려진다. 그러나 그런 만큼, 그들의 그림 또한 중세의 서양 미술과 마찬가지로 평면적인 2차원을 벗어날 수가 없다. 눈을 부릅뜬 사무라이는 화가 난 것 같기는 하지만, 당장 그림을 뛰쳐나올 것 같지는 않다. 그를 규정짓고 있는 섬세한 선이 그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반면, 선을 더욱 중시한 우리 나라는 그림을 장식화하거나 평면화하는 데 선을 사용하지 않았다. 우리 나라 그림에서 선은, 그 자체가 독립적 조형 효과를 갖는 경우가 많다. 깊은 울림으로 3차원을 넘어 4차원의 세계로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어쩐지 무심하게 그어진 선 같지만, 그 선이 학을 날게 하고, 잉어를 물 위로 뛰어 오르게 하며, 대나무를 바람에 흔들리게 하여 그 잎의 버석거림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우리는 그림 속의 물건이나 동물, 사람들이 그림 밖으로 나올 것 같다기보다는 그림 속에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는 기묘한 환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림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기보다는 내가 그림 속에 들어가 보고픈 욕망을 느끼는 것이다. 잘 친 난을 보라. 잘 뻗은 대나무와, 겨울의 서리와 추위에도 꿋꿋이 피어 있는 매화를 보라. 탐스러운 꽃망울을 피우고 있는 국화를 보라. 누가 사군자를 보고 단순히 평면적 또는 장식적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난과 대나무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면, 포들 하고 그 잎이 움직이는 것마저 느낄 수 있다. 지그시 무성한 대나무 숲을 한참 감상하다 가만히 눈을 감아 보자. 그러면, 대나무 잎새에 이는 바람을 느낄 수 있다.쏴아아...바삭 바삭마치 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이, 우리는 대나무 숲에서 그 바람 소리를 들으며, 심지어는 피부에 바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렇게 생동감을 주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비밀은 역시 선에 있다. 한국화의 선은 사물의 윤곽을 묘사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 자체가 사물이며, 하나의 정신이고 정신의 표현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소우주이다. 선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고, 때로는 아무 것도 없기도 하다. 그 안에 화가의 모든 끓어 넘치는 정과 애환, 꼿꼿하고 강인한 정신이 담겨 있고, 선 하나 하나에 그의 기백이 서려 있다. 선 하나를 치는 것은 단순히 이렇게 하면 예쁘게. 우아하게 보일까 또는 여기에 선을 그려 넣으면 그림이 한층 살아날 거야 같은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확실히 서양 미술에서는 선이 그런 의도에서 그려졌을 지 모른다. 아니, 그랬을 것이다. 세부적인 디테일 묘사와 하나 하나의 선이, 또 그 선으로 이루어진 물건들이 나타내는 상징성. 모르고 보았을 때는 그저 어린양을 데리고 노는 아이지만 그는 아기 예수이며, 같은 아이지만 눈을 가리고 있다든가 화살통을 메고 있다면 그 아이는 큐피트이며, 어떨 땐 단순히 자라기 쉬운, 그래서 언젠가는 죽어 버릴 허무함, Vanitas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를 서양 미술에서는 attribute라고 한다. 각 인물은 그에 따른 상징이 다 있다. 예를 들면, 열쇠를 들고 있는 사람은 베드로, 살가죽을 벗긴 성 바르톨로메우스, 검은 날개를 들고 모래 시계와 함께 있는 노인은 타나토스, ……. 하나 하나의 물건은 주의 깊게 화가에 의해 배치되었으며, 그 물건을 이루고 있는 선 각각은 모두 화가의 조심스런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근 현대 이전의 서양 미술은 모르고는 볼 수 없는, 지식인과 상류 계층의 유희 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물론, 서양에도 민화 비슷한 종류는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브뤼셀이다. 그러나 그의 풍속화에도 비유와 묘사는 피할 수 없는 장애물이다.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 놀이』. 그러나 그 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어른이다. 온갖 종류의 아이들 놀이를 신나게 하면서도, 그들은 추악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물론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는 하지만 역시 이러한 상징성은 서민들을 그림에서 멀어지게 했다.그러나, 동양 미술에서는 그것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았다. 구름이 서려 있는 것만 같은 깊은 산 속의 강가에서 한적하게 낚시를 즐기고 있는 노인은 태공망이라도 좋고, 화가 자신이라 해도 좋고, 아니라고 해도 좋았다. 단지 보는 사람이 한없는 여유와 일상 생활에서의 탈피를 느끼게 해 준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그 자신이 저 강에서 조용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흘러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사색하는 듯한 느낌. 한 폭의 동양화 같다 라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맑은 물을 뿌린 듯 깨끗하고 청명한 기운이 감도는 아름다움. 마음을 비운 가운데 빛과 바람이 서리는 기상과 여유의 아름다움.보통 전자를 소쇄미(瀟灑美)라고 하고 후자를 공활미(空豁美)라고 한다. 소쇄미는 보통 담백한 색과 깨끗한 선 처리로 나타나고, 인물의 맑은 표정, 나무나 하천의 청명함 등에서 잘 표현된다. 반면 공활미는 그림의 여백과 빛, 선의 유연한 흐름 등에서 잘 표현되는데 하늘이나 하천, 산맥의 흐름, 인물의 기골 등에서 느낄 수 있다. 보통 소쇄미는 한국 풍경화에서, 공활미는 고사도(古寺圖)나 신선도, 인물화 등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소쇄미와 공활미는 해학미(諧謔美)와 함께 한국화가 나타내는 마음으로 본 인생의 아름다움을 나타냄으로써 형성되는, 한국 고유의 멋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물론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대표적으로 흔히 한국미라 오해되고 있는 음과 양의 미가 있는데 이는 본래 중국 문화에서 온 것으로 서로 조화하는 관계를 아름다움의 극치로 보고 있다. 또, 중국 화법에서 계승된 기(氣), 골(骨), 육(肉) 등의 개념은 필법과 관련된 것으로 회화를 글씨와 동일하게 보는 관점에서 비롯된 개념들이다. 이 밖에도 서양화에서는 볼 수 없는 천취(天趣)같은 고고하고 이상주의적인 한국화 특유의 품격이 있다. 중국의 신품과 비슷한 격으로 하늘의 경지에 이른 그림의 품격을 말한다. 한국화의 예술 세계는 유럽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현격한 양식의 변화나 로고스와 파토스 사이를 반복적으로 오가며 그림의 주체를 추구하는 미술사와는 달리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비슷한 미학과 그림의 양식을 유지해 왔다.
Ⅰ. 서론현대 산업사회, 더 나아가 정보화 지식화 사회로 되어가는 현 추세에서 각 국가들은 자국의 경제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각종체제를 이념에 관계없이 도입하고 있다.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이념도 불사하겠다는 더 이상은 이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그것은 단순히 자본주의의 승리도 아니요 사회주의의 패배도 아닌 그 이상의 것임에 틀림이 없다.사회주의 계획경제체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는 이미 잘 알려진 경제체제이다. 또한 최근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수정자본주의와 수정사회주의라는 자체 수정의 모습으로 새롭게 변신하려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다. 이러한 최근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은 경제학의 오랜 숙제중의 하나인 시장자율이냐? 정부개입이냐?의 문제를 간과하고 넘어갈 수 없을것이다.이제 시장의 실패의 문제와 정부의 실패의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기존에 나와있는 諸이론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론 및 결론시장의 실패시장실패의 정의후생경제학의 제1정리에 의하면 모든 경쟁시장균형은 파레토효율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1정리가 의미를 가지려면 경쟁시장균형이 존재해야한다.경쟁시장균형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떠한 배분이 균형이 되도록 하는 시장가격이 존재해야 함을 뜻한다. 이러한 시장가격은 개인이 재화로부터 얻는 한계편익이나 생산요소사용으로부터 얻는 한계가치를 반영한다. 한편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서는 개인의 한계편익이나 생산요소의 한계가치는 사회적 한계편익이나 한계가치와 일치해야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개인의 한계편익이나 한계가치를 반영하는 시장가격이 사회적 한계편익이나 한계가치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예를 들어 쌀값의 경우 쌀값의 사회적 편익은 단순히 식량의 공급뿐만 아니라 홍수방지기능, 산소공급기능, 지구온난화 방지기능 등 기 사회적 한계편익이 더 많이 있으나 실제로 평가되는 쌀값은 그러한 사회적 한계편익이 포함되지 않는다.) 즉 시장기구(market mechanism)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고 또 시장가격이 그 자원의 사회적 기회비등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는 여타의 시장형태에서 개별기업은 가격설정자(price maker)로서 행동하게 된다.PA S(MC)Pm B (독점시장의 균형)Pc C EFSS MR DQ0 Qm Q위 그림에서 보듯이 경쟁적 시장에서의 단기균형은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교차하는 E점에서 나타나 Qc의 상품량이 Pc의 가격으로 거래될 것이다. 이때 소비자는 △APcE의 면적에 해당하는 소비자잉여를 얻게된다. 그런데 시장내의 모든 기업이 독점화된다면 독점기업은 MC 곡선과 MR곡선의 교차점인 F점을 찾아서 Qm 의 상품량을 Pm의 가격에 판매하게 되어서 소비자잉여는 사다리꼴 PmPcEB만큼 줄어든 △APmB가된다. 그런데 이는 사회 전체적 손실은 아니며 단순히 사회계층간의 소득이전에 불과하다. 문제는 사다리꼴의 나머지 부분인 △BCE인데 이는 독점화가 되어 소득이전이 되면서 누구에게도 돌아가지 못한 사회적 순손실이 되는 것이다.대책공정거래법, 독과점금지법을 통한 산업의 진입장벽을 철폐하고, 기업들의 불공적 행위를 통한 독과점화를 방지함으로써 완전경쟁을 촉진시킨다또한 외부비경제에 대한 규제(공해유발 생산요소 등의 사용규제)와 자연독점자가 생산하는 상품의 가격규제즉 평균비용가격정책(정상이윤을보장하면서 자연독점수준 이상의 생산을 유도)을 실시한다.2) 규모에 대한 수확체증(Increasing Return to Scale) 또는 평균비용 체감시장경제는 경쟁에 의하여 자원배분이 파레토효율적으로 되지만 현대의 경제하에서 경쟁이 실패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결과 독점, 과점, 독점적 경쟁이 나타난다. 시장이 독점화 되는 원인중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그중에서 평균비용이 최소화 되는 산출 수준 즉 최소효율화적규모가 시장수요의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거나 기업들의 연합인 카르텔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다. 이밖에도 정부에 의한 특허권 또는 역사적 우연성으로 인한 해당시장의 전입비용 및 전략상의 이점등을 들수 있다.예를 들어 전기, 상하수도, 철도, 통신등 고정비용이 크고 가변비용이 적은 게 같은 양이 소비될 수 있기 때문에 소비면에서 비경합적으로 동시 다수의 개인들이 공동 집단적으로 소비된다.(비경합성;non-rivalry) 이러한 공공재의 특성으로 인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공공재를 소비하는 혜택을 누리는 이른바 ‘무임승차(free rider)’가 되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 결과 공공재가 사회적 적정요구수준보다 적게 공급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가령 국방의 경우 시장가격에 맡겨둔다면 가능한한 세금등을 지불하지 않고 다른사람들이 부담하는 재정적 부담으로 공급되는 국방 서비스의 혜택을 누리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공공재의 공급을 시장에 맡기면 공급이 사회적 필요량보다 적게 공급된다.PAC* ACP* MCD0Q* Q그림에서 보듯이 초기의 평균비용이 감소하는 AC곡선과 이때의 MC곡선이 그려져 있다. 이 경우 완전경쟁체제와 동일하게 가격이 한계비용과 일치하도록 (P=MC)P*의 가격으로 공급이 되면 그것을 공급하는 기업은 (AC*-P*)Q*만큼의 손실을 보게된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어느 기업이 공급하려 하겠는가?따라서 생산자의 공급의 효율성과 소비자의 편의성을 둘다 고려하면 결국 공공재는 정부에 의해 제공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대책따라서 시장에 맡겨두면 사회적 최적량이 공급되지 못하므로 정부에 의해 공급되어야 하며 그 비용은 국민전체가 세금의 형태로 부담하게 된다.외부성(externality)개인이나 기업의 경제행위기가 다른 개인이나 기업에게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시장가격에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시장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한다.생산측 외부효과의 부정적(NEGATIVE EXTERNALITY)예는 환경오염이 있다. 어떤 기업에서 제품을 생산하면서 수질오염을 일으키는 물질을 생산하고 오염된 물이 개인이나 다른 기업에게 악영향을 미치지만 이는 가격에 반영 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때는 주지하다시피 외부불경제(EXTERNAL DISECONOMY)가 발생한다.긍정적 외부효과의(POSITIVE홀형, 그리고 역선택의 문제에 있어서 자동차보험회사가 평균사고율에 근거하여 보험을 판매할 경우 사고발생 확률이 높은 사람만 가입하고 사고발생율이 낮은 소비자는 기피함에 따라서-역선택- 보험회사는 파산할 수도 있다.불완전 정보모든 경제주체는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이 완전경쟁체제의 조건이나 각 개인이 소비할 때 재화들에 대한 정보를 완벽하게 알지 못한 채 부분적인 정보를 가지고 선택하고, 각기업도 상대기업에 관한 정보나 소비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알지 못한채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현실이다.완전경쟃시장에서는 효율적인 자원배분이 달성되기 위해서 소비자와 생산자등 모든 경제주체들은 모든 재화와 생산요소에 대한 미래가격과 질에 대한 정보를 완벽하게 알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래가격은 물론 현재의 가격이나 품질에 대한 측정도 힘들다. 더욱이 미래에 발생할 경제사항은 불확실하고 선물시장이나 보험과 같은 조건부 시장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소비자나 생산자의 선택이 왜곡되고 시장실패가 발생할 수 있다.대책따라서 정보는 일종의 공공재가 되며, 정부는 모든 국민들에게 추가비용 없이 정보를 이용하도록 보장하는 역할이 필요하다.’과대광고규제’, ‘공익광고’,’카메라 출동’등이 그 예가 될것이다.정부의 실패정부실패의 정의그러므로 앞장에서는 시장의 실패가 일어나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고그때의 정부개입에 의한 대책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정부의 개입이 항상자원배분 을 효율적으로 만들수 있는가? 앞에서 살펴본 시장의실패는 정부개입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시장의 실패가 없으면 시장은 효율적으로 기능할 것이고 따라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시장의 실패가 정부를 위한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정부의 개입이 제대로되면 획복할 수 있겠지만, 많은 경우에는 또 다른 형태로 자원배분의 왜곡을초래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이상과 같이 시장의 실패를 교정하기 위한 저부의 개입이 경제적 요인, 제도적 요인, 정치적 요인, 기타 요인 경쟁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므로 X-비효율성, 즉 독점으로 인해 경여합리화를 달성하지 못하므로 평균비용곡선보다 높은 비용으로 운영하게 된다. 결국 이윤에 대한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이는 경쟁의식의 결여문제와 함께 효율성달성을 위한 incentives 의 부족으로 X-비효율성을 초래하게 된다..(“공무원의 무사안일, 복지부동의 문제”)관료제라는 속성상 장기적이고 효율적인 생산보다는 단기적이고상과위주의 생산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한 것을 볼 수있다. (금방성과가 있어야 승진도 되고, 다음선거때 당선도 되고 특히, 다리공사, 도로공사 따위..이런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장기적이고 효율적인 생산이 중요하다.각종규제조치를 만들기는 잘 하는데 제대로 지키지는 않는다.(예를 들어 무언가 규정에 위반되는 사항이 하나 걸리면 음성적거래하에 위반사항을 묵인하는 경우를 종종볼수 있다. 한번 봐달라고 떡값 형식으로 ….)정부부처간 협조체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부처끼리 위상제고를 위해 예산 극대화에만 혈안이 될 경우 정부실패가 발생할수 있다.정치과정에 의한 정부의 실패이는 공공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의 의사결정은 경제적 원리에 의하기 보다는 이해당사자간의 정치적 의사결정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런 정책결정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있는 여러 특수단체들이 각종 로비활동 등으로 정책결정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결과 의사결정권자가 공공이익(public interest)를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책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예를 들어 국회에서 대학교에 관한 법을 입법할 경우 의원들중에 사립대를 소유한사람이 많을 경우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을 만드는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특수단체는 경제5단체, 노동자 단체, 교사 단체, 시민 단체, 군부등을 들 수 있다.기타요인에 의한 정부의 실패행정비용과 정보비용의 문제라고 요약되는 기타요인에 의한 정부의 실패는 다음과 같다.국민연금 의료보험등의 설립에는 상당한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 소요되96
들어가며...영어에서 사람 이라는 단어가 man'임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한 때는 사람이 곧 남성을 의미했다. 아득한 초기의 민주주의 시절, 평등하게 민주주의 권리를 부여받은 시민 속에는 노예와 어린이, 외국인은 물론이고 여자 또한 포함되지 않았다. 근대 시민 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근대 인권의 개념은 확립되어 갔지만, 그 인권은 사실상 남성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가장 극명한 예로, 민주주의 발상지라고 하는 영국은 1918년에, 미국은 1920년에 비로소 여성에게 참정권을 인정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남녀차별문제가 국제사회에서 인권의 주요한 내용으로 취급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유엔(국제연합)의 설립을 계기로 하며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가 인권의 의제로 부각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이처럼 여권이 문제시된 것 자체가 그다지 오래지 않다는 것은 이러한 차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어 왔으며, 사람들의 사고 깊이 뿌리 박혀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법이 인권보장을 중요한 기능으로 하고, 민주주의는 다양한 구성원의 의사와 경험, 인식, 입장 등이 법이나 정치, 정책의 의사결정에 반영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법을 만들고 집행, 적용하고 가르치고 해석하는 권한과 지위를 가지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구조는 이러한 남녀 차별을 더욱 고착화시킬 뿐이었다. 여성이 가사노동의 담당자로서 특질과 사명, 능력을 가진다라고 보는 전통적 성별 역할 분업론부터 시작하여 여성의 정조를 중시하면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시키는 이중적 성윤리와 성문화 등은 사회구성원의 반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이 당하는 다양한 차별과 폭력을 인권에 관한 논의에서 제외시키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게 해 왔다. 또한 법이나 정치, 정책 , 사회의 의사결정에서 여성들이 참여하고 여성의 의사와 경험, 인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은 여성집단만의 권익향상문제로만 인식되어 왔고 민주주의 발전의 기본요건으로는 인식되지 못하였다여자아이는 신이 저버렸다 하여 불길하게 여긴다. 인도에서는 매년 1만 건의 여아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대개 어머니가 독단적으로 저지르는 것이지만 남편은 아내의 살인을 알고도 모르는 척 한다. 살아 남았다 하더라도 여아들은 남아보다 수유기간도 짧고 먹는 음식의 질도 떨어지고, 대부분 무관심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죽을 위험이 매우 높다. 딸들은 남자 형제에게 모든 것을 양보하고 빼앗기며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한다. 물론,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여자들은 열등 인간 으로 살아가게 되고 이 악순환은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자아이를 죽이고 아이에게 차별을 가하는 사람도 결국 여성인 어머니인 것이다. 여자에 대한 여자의 폭력인 것이다. 이는 인도 사회의 가장 어두운 면 중 하나며 여성 문제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성 자신이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고, 다음 세대인 그 딸의 권리마저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의 인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자란 딸이 다시 어머니가 되고, 다시 자신의 딸을 억압하고,……. 결국 악순환인 것이다.둘째, 조혼 및 성행위의 강요, 성희롱, 또는 강간이다. 통계에 따르면, 20세기 초 인도에서는 조혼이 아주 보편적인 관습이었다. 1921년 북부 오드 지방에는 10세 미만 기혼자가 15만 명이고, 5세 미만 기혼자도 1만 명이 넘었다. 정부는 19세기 중반에 12세 미만의 여자아이와 결혼하는 것을 강간으로 간주하는 법령을 제정하여 통과시켰지만 힌두들은 자신들의 관습에 개입하는 영국 정부에 격렬히 반대했다. 저명한 민족주의자 틸락의 아내가 쓴 자서전에는 10세에 결혼한 자신이 노처녀였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그 당시 조혼이 심각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쉽게 고쳐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아의 법적 최저 결혼 연령은 점점 늦어져서 12세, 14세, 16세로 조금씩 올랐고 지금은 18세로 정해졌다. 조혼 문제는 종교적, 경제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아 60%, 일본 59%, 니카라과 52%, 과테말라 49%, 인도 45%, 우간다 46%, 케냐 42%, 벨기에 41%, 잠비아 40%, 말레이시아 39%, 한국 38%, 이스라엘 32%, 캐나다 27-36%, 미국 28%, 노르웨이/영국 25%, 네덜란드 21% 의 순이다.(http://www.humanrights.or.kr/HRLibrary/HRLibrary10-na1.htm 검색일 : 11월 25일)여러 자료에서도 나타나듯 인도에서는 가정 폭력이 빈번하게 일어나며 인도 뿐 아니라 배우자에 의한 구타는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인도 여성들은 남성에게 구타당하는 것을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수준인 것이다. {) 1998년 당시 실시된 남부 지방 농촌 여성들의 설문 조사를 보면, 남편이 아내를 때릴 수 있다 고 믿는 여성이 무려 70%를 넘는다. 아내가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말(남편과 시댁 식구의)을 듣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도전을 불허한다는 의식이 남 자 뿐 아니라 여자에게도 뿌리깊이 박혀 있는 것이다.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왜? 라는 물음에 그들은 대답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이 자신을 때릴 것이기 때문 이라고.지참금 살인 또한 심각한 실정이다. 이것은 가정 폭력의 가장 심각한 형태이며 남편 외의 시댁 식구에 의해서도 저질러지고 있으며 가장 흔한 케이스는 시댁 식구들, 특히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불에 태워 죽이고 부엌에서 일어난 사고로 위장하는 것이다. 불에 탄 경우는 증거가 남지 않기 때문에 우발적 사고와 고의적 사건을 구별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수사가 이루어져도 판결에는 5-6년이 걸리고 그것도 유죄가 입증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델리에서 지난 7년간 일어난 1천여 건의 사건 중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는 4건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판결을 내리는 사람들은 대개 결혼 지참금 제도에 긍정적인 입장인 남자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는 풀리지 않고 있다. UN 세계 인구에 관것이다. 어머니와 아이들이 건강하면 아동의 사망률이 줄고 출산율도 떨어지리라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이옥순 1998)홀어미에 대한 차별도 사회 문제 중 하나이다. 「죽음」과 관련된 행위를 공동체에 가장 불결한 존재로 여기는 힌두 정서. 그래서 「남자를 죽여 보낸」 과부들은 불결 그 자체이다. 그들은 집안 길흉사에 전혀 낄 수 없으며 아들의 결혼식에조차 참가할 수 없다. 불길한 존재인 홀어미는 아들의 행복한 출발에 부정한 기운을 퍼뜨릴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힌두에서는 남편은 신이며 아내는 그 숭배자여야 한다. 따라서 여성의 행복은 남편의 죽음과 함께 막이 내려야 한다. 몸단장은 전혀 허용되지 않으며 잠은 침대를 두고 땅바닥에 자리를 깔고 새우잠을 자야 한다. 외출도 흐리거나 비오는 날에나 가능했고 옷은 언제나 흰 색, 음식은 자극적인 음식, 즉 고기는 물론이고 마늘이나 양파도 피해야 한다. 더구나 그들은 누구나 깔보고 아무나 넘보는 대상이며 숱한 의혹과 소문의 근원이었다. 홀어미는 그들의 말을 따르자면 죽어서도 도깨비가 된다는 저주받은 인생 이었다. (이옥순 1998)시댁의 구박과 경멸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여성들은, 또는 시댁의 강요와 억지에 못이긴 여성들은 그래서 마지막으로 들고자 하는 폭력인 Sati를 택하게 된다. 「Sati」. 우리말로 옮기자면 과부 화형식 (Widow Murders)이다. 이것이야말로 인도에서 여성에게 행해지고 있는 가장 유명한 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남편 시체가 타고 있는 장작불에 몸을 던져 함께 죽는 행위이다. {) 라자스탄에 위치한 한 왕국(메와르)의 왕비 파드미니는 아름다운 외모로 소문이 자자했다. 1303년, 델리국의 술탄은 몸소 군사를 이끌고 그 왕국을 침공하여 요새와 같은 왕궁을 포위했 으나 쉽사리 함락되지 않았다. 몇 번의 공략이 실패하자 술탄은 왕궁으로 사신을 보냈다.파드미니 왕비만 한 번 본다면 그냥 물러가겠다.메시지를 받은 왕과 신하들은 고민했다. 그들(라지푸트)은 타고난 군인 계층으로 용맹과 명예 중받는다는 것이다.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농촌 사회에서 다음 세대의 노동력을 출산하고 양육하며, 가사를 지휘하는 어머니의 위치가 존중받는다는 것은 합당한 이치라고 생각된다. 반면, 토양과 기후 조건이 나쁜 북부 유럽에서는 자연히 수렵이 생활 방식이 되었는데, 여러 가지 위험 요소로부터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남성의 역할이 강조되어 왔다. 우리 나라의 예를 들어서도, 불교와 유교의 영향으로 여성이 사회를 주도하거나 남성의 상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없지만, 삼국 중 오직 가장 남단에 위치한 신라에서만 여왕이 나왔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 고구려의 벽화에서 여자들은 무희 또는 장수나 벼슬아치의 부인으로만 묘사되어 있고 -쌍용총이나 무용총 등- 반면 남성들은 우람한 역사(力士)나 날쌘 사냥꾼, 힘찬 대장장이 등으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고구려의 벽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 벽화에서 중요한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간의 크기 차이인데, 중요한 인물은 그 크기가 과장되어 나타나며 이들의 거의 대부분은 남자이다. 반면, 좀 더 남단 에 위치한 백제나 신라의 예술은 좀 더 여성스러우며, 거칠다기보다는 화려하다.그러면 여기서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어째서 농경 사회인 인도에서, 그것도 인도 남부 농촌 지역에서 더욱 심한 여성 차별과 여성 인권 탄압이 일어났느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도의 여성 차별 및 여성 인권 탄압은 어떤 특수한 문화적, 사회적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나는 그 원인을 네 가지로 분석해 보았다.첫째, 불교의 영향이다. 비록 인도 내에서 불교를 믿는 사람은 소수지만, 역시 불교의 발상지는 인도이다. 우리 나라에서 현재 유교나 천도교, 대종교를 믿는 사람은 극소수지만 특히 유교는 우리 사회 의식 구조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사람들의 의사 결정을 지배하는 부분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볼 때 불교가 인도인의 사고 구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갖는다..
1980년생 99학번인 나에게 98, 97학번들이 자주 하는 소리가 있다."80년대에도 사람이 태어나는구나. 너희들은 모를 거다. 격동의 70년대를 산 우리들을."확실히 70년대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격동의 70년대'. 반쯤 잠들어서 살고 있는 2000년대의 우리들은 그 격정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 격정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 속에 사는 지도 모른다. 70년대는 책 속에 얌전히 박제되어 '배우고' '읽는' '지나간' 역사일 뿐이라는 그런 생각 속에서... 단지, 지나간 역사이고 우리와는 관계없다는... 그런 생각에서 우리는 70년대를 잊고 있다.'격동의 70년대'... 우리의 선배들은 1970년대를 그렇게 명명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잊고 있는 것이 있다. 그들은 우리 나라의 개항으로 시작된 침탈, 외교적인 압력, 식민지화의 수모를 잊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70년대를 잊었듯이 '격동의' 19세기를 책 속에서 '읽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 그들을 명성황후는 냉연히 바라보고 있을 지 모른다. 구한말의 격정 넘치는 삶을 살았던 우리의 선조들을 잊고서 2000년대를 잠든 듯이, 죽은 듯이 살아가는 우리들을.언제나 한 인물에 대해서 엇갈린 시각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때로는 한 인물에 대해 의도적인 폄하의 노력조차 존재하는 법이다. 우리의 '국모'였던 명성황후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는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일인들의 손에 무참히 참살 당했으며, 그 시체는 무수한 모욕 끝에 불태워졌고, 그 후 그녀가 이루어 냈던 수많은 업적들은 고의적으로 왜곡되었으며 그 이름은 낮추어져 일국의 황후에서 일개의 '비'로 불리웠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흥선대원군의 비난섞인 조롱에 고소를 흘릴 뿐이다.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먼지를 털고 명성황후를 되살리고자 하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으나 그 중 가장 대표적이고 성공적인 케이스로는 뮤지컬로 만들어진 '명성황후'를 꼽을 수 있을 것 있었다. 다만, 당시의 국제적인 정세에 대한 분석은 여러 조약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약간의 차이 -일본인이 갑신정변 당시 개화파를 배신하였던 원인에 대한 판단이나 미우라가 명성황후를 살해하려고 결심한 시기 등 -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비슷하였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정비석씨는 강신재씨에 비해 국내 정치적인 상황 분석이나 판단, 역사적 상상력이 부족한 듯 하였다. 단적인 예로 정비석씨는 민치록의 사망 후 민승호를 민치록의 양자로 들이는 형식으로 하여 명성황후 -당시의 이름은 민자영-와 남매의 연을 맺어주는 것을 민치록의 생존 시 단순히 '외동딸의 미래를 걱정해서' 라고 보았으나 강신재씨는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의 정치적 고려로 보고 있다.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으로 볼 때 이는 민치록 생전 당시에 맺어진 남매의 연이라기보다는 후자의 정치적 고려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합당할 것이다. 민자영, 즉 미래의 명성황후의 간택 당시 민자영은 양어머니 이씨 외에는 그야말로 혈혈단신의 몸이었고 「경국대전」에는 양친이 모두 있지 않은 처녀는 중전으로 간택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민승호가 미래의 명성황후 민자영의 양오라버니로 들어간 것은 '짜고 치는 고스톱'에서 조금이라도 모양새를 맞추기 위한 흥선대원군의 정치적인 조정이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정비석씨는 야사에 많이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 정비석씨의 대표작인 '성황당'의 특징인 토속성이나 향토성과 같은 맥락에 서 있다고 본다. 정확한 사료보다는 조금 원시적으로까지 보이는 '소문'이나 '전설'에 의존하는 경향이 같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정비석씨의 『명성황후』는 정치 소설로서의, 또는 역사 소설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격하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명성황후가 질투에 못 이겨 고종황제의 총애를 받던 장상궁에게 직접 칼을 들고 찾아가 칼을 던졌다는 것은, 그리고 마침내 하문을 도려내게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국의 황후가 그처럼 '품위없고' '야만적인' 일을 했다유'를 가진다는 것이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일일 뿐 아니라 당시 천주교는 종교라기보다는 학문으로서 지식층에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 지배층에게는 천주교란 사회를 흔들어 놓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moral hazard와 같은 것으로 인식되기에 알맞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의 사회 구조인 반상에 대한 부정 -만인 평등 사상- 과 '두드리면 하늘 문도 열린다' 는 사상, 신을 조상이나 부모보다도 높이 섬겨 우상 숭배를 금하고 제사까지 금한 것은 분명히 당시의 사회에서는 충격이었을 것이고, 사회의 기층 구조를 깨려는 병리 현상으로 인식되었음이 분명하다. 고지식한 성리학이 지배하고 있던 조선 사회에서 서학 아니라 같은 유학이라도 주자학이 아니면 학문이 아니라고 인식되고 있었던 당시에서 대원군이 아니라 하더라도 천주교를 탄압한 것 자체는 조선의 지배층이라면 누구나 취할 행동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을 비판할 것이라면 차라리, 외국 선교사에 대한 박해와 사형 등으로 외세 침탈의 빌미를 주었다고 비판해야 옳을 것이다. 그것은 대원군이 국제 정세에 어두웠고 관심도 없었으며, 양이(洋夷)에 대해 과소 평가를, 조선의 구식 군대에 대해 과대 평가를 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인지 모형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인지 모형이란 정책 결정자의 지각(perception)에 주목하는 것으로 외교 정책 문제 발생시 정책 결정자는 우선 전례로부터 얻어진 역사적 교훈을 통해 문제의 성격을 파악하며, 유추된 전례에 따라 일장 정책 방향이 정해지면 여러 가지 인지적 메커니즘이 작동하여 정해진 정책 방향과 상반되는 정보를 거르거나 수정함으로써 정책을 합리화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인지적 접근법은 정책 결정 상의 주요 함정이나 인지상의 실패를 잘 보여주며 높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큰 설명력을 갖는 모형이다. 이 인지적 모형의 대표적인 예로는 인지적 일관성(cognitive consistency)와 집단 사고(group thinking)면세전의 국가 반납, 탐관오리의 적발과 처벌 등의 혁신적 정책을 펼쳤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했다. 대원군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정치 지도자였던 것이다. 그는 평민들은 물론이고 양반에게까지 근검 절약을 강조했다. 이는 반감을 사게 되어 나중에 명성황후에 의해 오히려 반대로 이용되기는 하지만 대원군이 청렴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정비석씨가 평가한 명성황후의 개인적인 성격은 기승하고, 다소 방자하며, 사내를 제압할 정도의 '기'를 가지고 있으며 건방지기까지 한 기상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고종에 대한 질투는 상식을 넘어서는 정도로, 전혀 이성적으로 자제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정비석씨는 소설에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현숙하고 후덕하며 부덕을 골고루 갖추었다'라고 전하는 사료로 보아서는, 명백한 오류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의 소설 전체에서 그는 명성황후의 성격을 뒤죽박죽으로 묘사해 놓았다. 앞에서는 아버지에게도 거리낌없이 건방지게 화를 내는 성격으로 묘사해 놓았으나 군데군데에서 그녀의 이성적임과 지혜로움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러나 이는 뒤에 그가 평가해 놓은 명성황후의 '보신 제일'의 외교 정책 또는 국내 정책과 전혀 맞지 않는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는 오류를 책 내에서 몇 번이나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그보다는 오히려 강신재씨의 명성황후에 대한 분석이 일리가 있다. 그녀의 명성황후는 불같이 대가 센 성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냉정한 책략가로 기회가 올 때까지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을 줄 아는, 냉철하고도 이성적이며 현명한 성격이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성격 분석의 차이는 결국 대한제국의 외교 정책 평가의 차이로 나타나게 되었다.대한제국의 외교 정책을 이끌어 갔으며, 그 가장 핵심에 있었던 인물은 주지하듯이 명성황후이다. 명성황후는 교묘히 고종을 조종하여 흥선대원군을 권좌에서 축출한 뒤) 그 후 고종황제는 몇 번이나 자신의 아버지에게 등을 돌리고 -임오군란, 청일 전쟁 후 등- 자신의 반려인 명성황후를 택하게 된다.실제적인 권력의 는 왕비일 것이다. 명성황후의 저 한 마디는 어머니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자신의 '자식들'을, 그리고 자신의 가정을 지키려고 애쓰지 않았을까? 흥선대원군이나 그녀가, 권력 다툼에서 빚었던 마찰, 그리고 그로 인한 비극을 강신재씨는 '내가 아니면 이 나라를 구할 수 없다는' 마음에서부터 나온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흥선대원군이 단순히 권력에만 눈이 멀어서 며느리를 몰아내고 -민비 살해 음모설까지 있다- 또 아들을 제치고 정권을 잡으려고 했을까? 물론 '권력욕'이란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당시로서는 과감한 개혁 정치를 보고는 감히 강신재씨에게 찬성할 수 있다. 그는 분명히, 이 땅의 도탄에 빠진 민중들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는 역사적 사명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원납전의 강제 징수나 당백전의 남발로 인한 경제적 혼란, 문세, 관직매매 등은 비난받아 마땅한 대상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썩을 대로 썩은 현실을 개혁하기에는 당시 예산이 모자랐던 것이었다. 그가 사치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그는 임금과 자신의 '품위 유지비'까지 줄여 가면서 국가 경제를 회생시키고 국민들을 구원하려고 했던 노력이 곳곳에 보인다. 그러나 비극은 명성황후 또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데 있다. 단, 그녀의 권력욕에는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도 빠뜨릴 수 없는 요소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러나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었어도 권좌에서 잠시 밀어낸 사이에 안심하기엔 대원군은 너무 큰 호랑이였을 것이다.그러면 여기에서 명성황후의 정책을 평가해 보자. 명성황후의 국내 정책은, 확실히 말해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인기몰이'를 하느라 흥선대원군이 바꾸어 놓았던 모든 것을 갈아엎었다. 반상의 구별을 없이 하려 하던 흥선대원군의 정책을, 갓 권좌에 올라 지지 세력이 미약하던 명성황후가 철폐하려 했던 것은 정치적인 배려로서는 너무나 당연한이다.
I.우리나라 잠수함 기술의 자주성우리나라 잠수함 기술의 자주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잠수함 기술의 국산화를 논하여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의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다. 하나는 하나의 잠수함에서 가격 대비하여 어느 정도나 국산화가 되어 있느냐? 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의 잠수함 건조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이다.잠수함의 가격 대비 국산화는 어느 정도인가?장보고급 잠수함의 경우 가격 대비 국산화는 37% 정도로서 이는 함체를 구성하는 HY강, 다수의 밸브와 배관, 자국산 어뢰{) 백상어, 청상어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의 사용 등에 의한 것이다.{) 월간 국방과 기술 1999년 1월호국산화시키지 못한 것은 추진체계인 엔진과 7엽 프로펠러, 소나, 통합 전투 정보시스템, 잠망경시스템, 소나가 들어가는 함수부분으로서 이는 수입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기계, 전기, 전자, 더 나아가 국가 산업전반의 기술력이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단, 가초 설계 능력이나 조함 설계 능력 등 무형의 기술은 각고의 노력 끝에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다. 잠수함의 선체 기술은 평가 절하되기 쉬운 항목이지만 모든 배의 가장 기본적인 설계는 선형설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첨단의 전자장비를 갖추고 있어도 선체가 불량하면 무용지물인 것이다. 혹자는 '우리나라가 독일보다 우세한 부문이 용접기술뿐이다' 라고 비웃지만 조선기술에 있어서 핵심은 용접이다.{) 미국의 시울프급은 실제로 불량한 용접 때문에 2년이나 건조가 지체되고 있었던 사실이 있다.용접이 잘 된 배는 그만큼 견고하고 수명도 길어진다.우리 나라의 잠수함 건조 기술은 어느 정도인가?우리나라는 핵잠수함을 만들 정도의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디젤 잠수함은 만들 수 있다. 209 정도는 건조할 수 있고 209 업그레이드형도 가능한 정도이다. 대우에서 준비한 관련자료로 3000톤급까지는 건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AIP(무외 급기 추진 기관)에 대한 건조 경험은 없전수할 기업은 없을 것이다.{) 차기 사업의 해외 조선소로 결정된 독일의 HDW 조선소도 필요한 기술의 핵심은 전수할 수 없다는 것을 과거에 이미 명백히 밝힌 바 있다.둘째, 기자재의 국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타국에서 제작한 장비를 탑재하게 되면 잠수함의 주요 성능에 대한 보안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셋째, 건조 능력이 완전해야 한다. 해외 기술자들로부터 기술지원을 받을 경우 역시 보안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넷째, 설계한 잠수함에 탑재할 적절한 무기가 있어야 한다. 다른 국가가 개발한 무기로 무력을 키운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위험할 뿐만 아니라 보안성이 없다. 마지막으로 운용자가 운용능력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잘 교육된 승조원, 적합한 운용 설비, 보수유지 기술자 및 설비 등이 필요하다.위와 같은 조건들이 충족될 때 순수 국산 잠수함을 보유할 수 있을 것이나, 작금의 상황으로는 결코 가까운 장래에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잠수함 건조에는 연습 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건조 비용만으로도 한 척 당 수천억 원이며, 1940년대에 3, 40명의 승조원들을 태운 채 잠수했다가 아직까지 부상하지 못하고 대서양 해저 어디에선가 고이 잠든 50여 척의 독일 잠수함들이 있다는 독일의 "Laboe" 해변의 잠수함 기념관의 기록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잠수함 자체 설계 는 결코 쉬운 명제가 아니다. 50여 척의 잠수함이 아직도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한 두 차례의 건조 교육으로는 잠수함 설계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이미 수십척의 잠수함을 설계 건조한 스웨덴의 "KOCKUMS" 조선소가 호주의 ASC와 공동으로 설계 건조한 "Collins"급 잠수함이 치명적 결함{) 소음 수준이 높다는 것인데 이것은 잠수함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이다.을 안고 있을 뿐 아니라 성능이 기준에 미달하여 대대적인 수리에 착수했다는 사실 또한 이를 반증하고 있다. 따라서 비록 대우가 어느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지가정 하에서도 그것은 대함용 어뢰에 불과하다. 대지용 공격 무기가 없이 2,000톤급 이상의 잠수함을 건조한다는 것은 결국 투자 대 효과 측면에서 지나치게 비경제적이라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영국에서 건조한 Upholder급, 네델란드의 Walus급, 호주의 Collins급 등 대지공격능력을 갖추 지 못한 2,000톤급 이상의 잠수함들이 하나 같이 문제가 많아 잠수함으로서의 가치가 높지 않 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결론이다. 1998년 인도 해군 00 장성의 견해로는 "러시아 Kilo급 잠수 함은 크기만 커서 운용 능률이 낮고 상대적으로 피탐률이 높다."라고 한다. 따라서, 최소 미국 의 Thomahawk와 같은 사정거리를 갖는 순항 미사일을 가진 뒤에 이에 적합한 크기의 잠수 함을 개발 건조하여야 할 것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기술의 자주화에 대해 논할 때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는 부품의 100% 국산화만이 자주성을 획득한다고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잠수함은 선체를 비롯하여, 배관계통, 전기계통, 무기통제, 통신, 전자, 음파탐지 및 선실 계통 등 매우 다양한 각 분야가 좁은 공간에 치밀하게 설치되어 있으며 하나의 치수가 약간이라도 변경되면 다른 하나도 따라서 변경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충격, 소음, EMI 및 압력 등에 대한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제품만이 설치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국산화 할 수 있는 항목이 무엇일 것인가? 국내 업체에서 생산 가능한 항목은 무엇이며, 각종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제품을 만들려면 어떤 시험을 얼마나 수행하여야 하며, 만들었을 때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판매하여 수익을 달성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각종 개발비와 risk를 안고서 애국심 하나로 국산화를 시도할 국내 업체는 존재할 것인가?부품의 100% 국산화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뿐 아니라 너무 많은 cost로 인해 오히려 가격 대 효율 면이 떨어지게 된다.{) 한 예로 일본에서는 K1A1 전차를 순수 국내 생산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 비해 생산비용이 앞서 있다. 결국 세계 노트북 시장의 반을 석권하고 있는 대만이 우리나라에서 액정을 수입하고 있으며 비교 우위를 통해서 고임금과 기술력의 부족을 극복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물론 잠수함과 컴퓨터를 단순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컴퓨터란 성능보다는 가격에 의한 부품 구성이 주가 되고, 잠수함은 민수 산업인 컴퓨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고비용 첨단 기술이며 기술의 독점이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해군력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잠수함에 있어서는 가격보다 성능이 우선시 되어야 할 항목이다. 우리나라가 많은 비용을 들여서 부품들의 국산화를 위해 기술을 개발한다고 할 지라도 성능 면에서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던 기존의 선진국을 능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함형 체계가 만들어지고 그 체계를 이용한 작전 개념이 수립되어 아군들이 그에 숙달될 때까지의 기간은 적어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무척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대우 209급 사업의 경우에도 사업 계획에서부터 승조원의 인수 후 전력화까지의 기간이 약 10여년 이상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잠수함의 생산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다섯 개국 내이고, 이들 나라에서부터 라이센스를 얻어서 자국의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라이센스들이 제 삼국으로의 수출을 막고 있는 현실이다. 또한 잠수함 건조는 수상함과는 달리 도크 하나에 크레인 몇 개로 끝나는 게 아니며 적어도 수십 년의 기술 축적이 있어야 한다. 또한 건조기술자들의 양성과 거기에 들어가는 자금도 감당해야 한다.따라서 현재 상황에서 100%의 잠수함 국산화(부품의 국산화를 얘기하는 차원에서)는 오히려 지양해야 할 선택인 것이다. 설비자체로 무기 제조를 위한 것이므로 채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군대가 단독 수요자인 상황에서 국가의 보호 없이는 설비의 유휴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방위 산업에서 단순한 경제적 비교우위만을 내세우는 것은 전략적인 측면을 중요시해야 할 본연의 목적을 잊고 있는 것이라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동력원, 동력 체계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해서 디젤 잠수함은 디젤 엔진으로 움직이고, 핵 잠수함은 핵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엔진내부(실린더)에 연료와 연소에 필요한 기체가 보내지면 흡입->압축->팽창(폭발)->배기의 단계를 거치는데 이때 피스톤의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꿔 동력으로 사용하게 된다. 잠수함의 경우 이런 기계적인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 축전지에 저장해 놓았다가 필요할 때 전동기(모터)에 보내 프로펠러를 돌립니다. 디젤엔진만으로 추진이 가능하지만 소음이 전동기로 추진할 때 보다 더 강도 높게 발생된다. 반면 핵 잠수함은 이와는 다른 체계로 동력을 얻고 있다. 추진에너지를 전달하는 체계는 디젤 잠수함과 원리가 같지만 이 에너지 자체를 원자로를 통해 얻어내는 데 차이가 있다. 핵 원자로 내에 연료봉(농축우라늄 등)을 삽입하면 핵반응이 발생하고 이때 나오는 (열)에너지를 교환기를 통해 전달한다. 원자로의 반응을 조절하기 위해선 감속재로 불리는 재료(흑연봉 등)를 원자로에 삽입한다.핵 잠수함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원자로를 잠수함에 탑재할 만큼 소형화 할 수 있는가? 이다. 그리고 원자로를 제어하는 기술 또한 필요하다. 또한 원자로에서 나오는 방사능을 차폐하는 기술 이 중요하다. 지상의 핵발전소와는 달리 바다 속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잠수함에 탑재해야 하므로 안정성을 얻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고도의 기술을 요구한다. 한국엔 현재 십 여기의 원자로가 있으며 서너 군데의 핵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각 발전소 당 서너 기의 원자로를 운용하고 있다. 수십 년 간 핵발전소를 운영해 온 원자로에 대한 기술과 제어, 운용기술로 핵 잠수함을 건조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무리 라고 할 수 있다. 발전소와 핵 잠수함의 원자로는 그 원리만 같지 그 기술의 난이도와 정밀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 발전소와는 달리 바로 추진에너지로 써야 하기 때문에 기술의 극단적인 고도화가 필요하다. 또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