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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복음주의란 무엇인가0. 들어가며우리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영어 명칭은 Korea Evangelical Holiness Church 이다. 한국을 의미하는 ‘Korea’와 성결교회를 의미하는 ‘Holiness Church' 사이에 ’Evangelical' 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복음의, 복음주의의, 복음교회의, 복음주의자’ 등의 의미가 있었다. 이 단어를 썼다는 것은 우리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복음주의의 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된다. 하지만 복음주의의 의미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되는지는 그렇게 관심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연구를 통하여 복음주의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배척해야 한다는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신학과의 차이는 어떠한 것이 있고, 복음주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1. 복음주의에 대하여0) 복음주의의 의미복음주의는 교회사에 나타난 여러 신학적 현상과 부흥운동이다. ‘복음주의적’이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이단적인 것에 반하여 정통적인 것, 로마가톨릭교회적인 것에 반하여 프로테스탄트교회적인 것, 그리고 현대적, 또는 자유주의적인 것에 반하여 전통적 또는 보수적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복음주의(evangelicalism)는 복음 자체를 강조하는 표현이며, 복음주의자들이 그들의 입장을 나타내기 위해 선택한 말이다. ‘복음주의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알려진 것을 의미하며, 복음주의 신학은 복음서의 하나님, 즉 예수의 생애와 그의 교훈에서 계시된 하나님에 초점을 둔 신학을 말한다. 복음주의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자를 보내셨으며,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은총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복음에 헌신하는 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복음주의란 용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복된 소식, 즉 복음을 보존하고 선포하려는 기독교의 역동적 운동의 중심 취지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복음주의의 의미의 중심에는 바로 복음이라는 단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한국 기독교의 예배를 보면 말씀예전과 성만찬 예전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말씀예전의 중심에는 언제나 케리그마가 있어야 하며, 성만찬예전의 중심도 케리그마이다. 그러하기에 복음주의의 중심적 의미는 복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이렇듯 복음주의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복음주의는 어느 한 교파나 신학 노선에 국한되지 않고 초교파적인 것이 특징이다.1) 복음주의의 신념복음주의의 주요 요소와 특징은 회심주의(conversionism), 성서주의(biblicism), 활동주의(activism), 십자가 중심주의(crucicentrism)다. 회심주의는 삶을 변화시키는 종교적 체험으로서의 중생을 강조한다. 복음주의는 개인적 회심과 체험적 신앙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성서주의는 성서를 궁극적 권위로 신뢰하는 것이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는 복음주의 전통의 본질적 요소다. 활동주의는 복음전파에 관심을 두는 것을 말한다. 복음주의는 전도의 우선권을 두고 전도와 선교를 강조한다. 십자가 중심주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한 구속사역에 초점을 둔다. 복음주의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이다.2) 복음주의운동복음주의는 성서의 메시지로부터 유래한 신학체계인 동시에, 기독교에서 일어난 독특한 운동, 즉 경건하고 헌신적인 신앙 풍토다. 그것은 항상 신앙운동과 일시적으로 제휴하며 형성되었다. 종교개혁운동, 경건주의운동, 청교도운동, 대각성운동, 부흥운동, 근본주의운동, 성결운동, 은사운동 등이 그것이다.현대 복음주의의 첫 번째 역사적 원천은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이다. 종교개혁은 복음의 본질을 재천명한 복음주의운동이다. 종교개혁의 표어,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총(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의 원리가 복음주의의 정체성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운동은 교회 개혁에 주된 관심이 있었고, 불신자를 회심시키는 복음 전도와 선교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반면, 복음주의는 교회 개혁보다는 회심과 복음 전도에 더 관심이 있다.현대 복음주의의 두 번째 역사적 원천은 17세기 청교도운동이다. 18세기 영국의 복음주의적 부흥운동은 청교도운동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며, 현대 복음주의자들 역시 청교도의 후예들이다. 청교도운동은 영국교회 갱신운동이었다. 그들은 성서의 권위를 강조하고 신약성서적 교회의 회복을 모토로 삼았다. 최근의 연구에는 청교도들이 종교적 감정과 경험을 강조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청교도들은 개혁파 교회의 지적 성향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경험적 측면을 함께 강조했다. 그들은 구원의 주관적 증표인 중생의 체험을 강조했다. 즉 형식적 신앙을 반대하고, 체험적 신앙을 주장했다. 신앙의 체험적 측면에 대한 강조가 복음주의의 중요한 특징이 된 것은 청교도운동의 영향 때문이었다.복음주의의 세 번째 원천은 경건주의운동이다. 경건주의의 근본 목적은 엄격한 형식과 교리에서 벗어나 생동감 있는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회복 하는 것이다. 의인, 중생, 성화를 교리로만 취급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해야 하는 것이다. 경건주의자들의 주된 관심은 개인적 신앙, 즉 자신들의 영혼 구원에 있었다.현대 복음주의의 네 번째 원천은 부흥운동이다. 그것은 종교개혁적 신앙을 강화하려는 영적 각성의 물결이었다. 부흥 및 각성운동의 특징은 회심 체험, 경건하고 성결한 삶, 교회 갱신, 노예제도 폐지와 인권향상 등 사회개혁, 봉사와 선교 등을 강조한 것이다. 영국에서는 존 웨슬리와 그의 동생 찰스 웨슬리를 통해 영국교회 갱신운동이 일어났으며,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 성결교회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한국 성결교회와 복음주의의 연관성을 알 수 있다.3) 복음주의의 흐름복음주의는 획일성을 지닌 실체가 아니라 다양성을 지닌 신학적 신념이요 운동이다. 복음주의는 만화경, 모자이크 또는 우산으로 표현될 만큼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현대 복음주의의 유형은 학자들에 따라 3,4, 혹은 6개로 분류된다.20세기 이전의 복음주의는 종교개혁적 복음주의와 청교도운동, 경건주의운동, 부흥운동에 토대를 둔 경건주의적 복음주의로 대별할 수 있다. 여기에 20세기 초반 복음주의를 대표했던 근본주의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근본주의를 개혁하려 한 신복음주의 또는 진보적 복음주의를 첨부할 수 있다.근본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기 위해 공동 전선을 펴고 일으킨 신학운동이다. 그것은 현대주의의 도전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정통주의 기독교 신앙의 근본 요소들을 재확인하고 재천명했다. 근본주의의 주 관심사는 바른 교리였다. 근본주의는 교리 중심의 복음주의라고 할 수 있다.근본주의는 자유주의의 흐름을 차단하고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요소를 보존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사회적 비전을 가진 기독교적 세계관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독교 복음의 한 측면만을 강조했다. 지나치게 내세 지향적이며, 반지성적, 비교화적이어서 교육받은 대중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여기에서 근본주의가 퇴색한 모습이 보인 것 같다. 물론 기독교의 복음이 교리가 중요하지만 우리는 실제적인 삶에서 신앙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은 교리적인 것보다 좀 더 실제적인 것이어야 한다. 신자들의 마음가운데 실제적으로 체험되어져야 할 복음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복음의 능력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의 속된 문화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정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 같다. 엄연히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근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출현한 것이 신복음주의다. 그것은 개신교 정통 교리를 유지하면서도, 학문적 연구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졌다. 신복음주의는 종교개혁 주류의 입장을 회복하면서 특히 세상을 긍정하고 문화를 포용하는 복음주의적 비전을 지니고 있었다.신복음주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영혼을 구원할 뿐 아니라 문화를 변혁시키는 복음에 대한 비전을 회복한 것”이다. 최근 신복음주의란 명칭은 간단히 복음주의로 대체, 사용되고 있다.근본주의와 복음주의의 차이는 그 양태(style)에 있다. 둘 다 성서의 영감과 절대 권위에 대한 확신, 그리스도의 유일성, 체험적 신앙, 세계 선교, 현대신학에 대한 불신 등에 대한 강조를 하고 있다. 그러나 교리적 관심을 추구하는 방법에서 복음주의자는 더욱 지적이고 개방적이다. 복음주의는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중간 길을 택하는 제3의 세력을 말한다.
    인문/어학| 2007.06.21| 4페이지| 1,000원| 조회(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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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해돈 로빈슨 강해설교 방법론 정리
    ◀ 설교 준비하는데 있어 해돈 로빈슨의 일반적인 방법 ▶< 해돈 로빈슨, ?성경적인 설교?, 김동완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 설교자와의 일문일답1. 보통 설교를 작성하시는 데 얼마나 걸리십니까?11시간에서 12시간 걸렸습니다. 매 십 분마다 기록하는 변호사같이 제가 설교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을 모두 기록해 둔다면, 아마 그보다 길 것으로 생각합니다.2. 얼마나 오랫동안 설교를 하십니까?25분에서 40분인데, 설교의 내용과 전하는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3. 설교의 주제는 어디서 얻습니까?대개가 성경에서 시작하고 그 다음 청중의 필요를 생각하거나 아니면 청중의 필요에서 시작하고 그 다음 성경으로 가거나 하는데 저는 보통 저의 관심을 사로잡는 본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4. 설교 준비는 어떻게 하십니까?첫째, 저는 제가 성경의 저자가 그의 독자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고 생각할 때까지 본문에 시간을 보냅니다.왜 이것을 썼는가? 이 말씀이 여기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 기사가 앞의 기사와 그리고 뒤의 기사와는 어떤 연관이 있는가? 저는 그 본문을 시작하는 기사에서 구조적 열쇠 혹은 실마리를 찾습니다. 성경 기자들은 놀라운 이야기꾼들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학을 가르칩니다. 저는 그들이 어떻게 그 일을 하고 있나 알려고 애씁니다.5. 설교 준비를 위해 실제로 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책상에는 무엇이 놓여있습니까?저는 여러 장의 노란 종이들을 사용합니다. 한 장에 한절씩, 혹은 본문 길이에 따라 한 장에 한 문단씩 적습니다. 본문을 연구하거나 본문과 관계되는 글을 읽다가 발견되는 사실이 있으면 거기에 적습니다. 저는 보통 한 페이지는 개요를 적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주제(주어와 보어)를 적습니다. 본문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면 저는 안도감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성경 저자가 무엇을, 왜, 말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설교 준비의 첫 목표이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무엇이 오늘날을 사는 청중에게 면에서 그렇게 느낍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경과구(transition) 사용에 있어서 가장 많이 실패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지 사이에 다리를 놓거나 중심 주제를 반복 혹은 재 언급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습니다. 설교는 제가 그것을 전하는 만큼 제게는 분명하기 때문에 저는 청중한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3,4주 후에 녹음된 설교를 들어보면 대지 사이에 연결 부분이 빠졌다는 것을 발견합니다.10. 그런 사실이 목사님을 실망시킵니까?대답은 예와 아니요 입니다. 예라고 하는 까닭은, 설교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모든 것이 정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전 항상 그렇지는 못합니다. 아니오라고 하는 까닭은 설교는 문학적인 걸작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설교는 살아 있는 의사 전달입니다. 어떤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데에 열중해 있을 때 거기에는 거친 면이 있습니다. 명백히 하려는 싸움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설교를 다시 못할 것입니다.11. 설교하실 때 항상 원고 없이 하십니까?예. 그렇습니다. 덴버 신학교에서는 그렇게 하도록 가르칩니다. 연구 조사에 의하면 제한된 적은 양의 노트는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페이지 이상의 노트는 의사 전달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용구나 그런 자료 외에는 노트를 사용하지 않습니다.12. 어떻게 그렇게 하십니까?그 비결은 명백하게 작성한 완전 문장의 개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교자는 자기의 사고의 흐름을 여러 다른 대지의 연속으로 볼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설교자가 무엇을 말하기 원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것들이 논리적으로나 혹은 심리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면, 설교는 마치 생기가 있는 대화와 흡사합니다. 강해 설교자인 경우, 본문은 종종 “설교 원고”의 역할을 해줍니다. 사실 설교란 거기서 나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설교자가 자기의 생각을 신뢰한다면 원고 없이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용은 창의성이 있는가?( )보조자료-보조 자료는 “논리적으로”요점과 관련되고 있는가?( )그것은 “흥미로운가?”( )“변화가 있는가?”( )“특수성은 있는가?”( )“충분한가?”( )어 체-설교자는 정확한 문법을 사용하는가?( )-그의 어휘는 구체적이고 생생한가?( ) 변화가 있는가?( )-단어들은 정확하게 “사용되고”있는가?( )-설교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단어들을 선택하고 있는가?( )설교의 실제지적 직접성-설교자는 그 설교가 들려지기를 원하는가?( )그는 기민(機敏)한가?( )-당신은 그가 당신과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끼는가?( )-그는 친절한가?( )-그 설교는 살아있는 대화처럼 들리는가?( )-단어들을 정확하게 “발음하는가?”( )입을 통한 전달-목소리는 듣기에 쉬운가?( ) 발음은 분명한가?( )-음성의 변화는 있는가?( )음성의 “고저”의 변화는 있는가?( )-전하는 힘의 변화는 있는가?( ) “속도”의 변화는 충분한가?( )-설교자는 “휴지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가?( )몸을 통한 전달-그의 온 몸이 설교하는데 연루되는가?( )그는 제스츄어를 쓰고 있는가?( )-제스츄어는 즉흥성이 있는가?( )폭은 넓은가?( )분명한가?( ) 싫증을 주는 버릇은 없는가?( )-자세는 양호한가?( )설교자는 기민해 보이는가?( )-훌륭한 얼굴 표정은 있는가?( )일반적인 효율성청중의 수용성-설교는 흥미를 끌었는가?( )당신의 태도에 적용되는 것이었는가?( )-그 설교는 당신의 지식과 관련되고 있는가?( )필요를 충족시켜주는가?( )-설교자는 당신과 눈이 마주쳤는가?( )-당신은 그가 청중의 반응을 알고 있다고 느끼는가?( )< 해돈 로빈슨, ?성경적인 설교와 설교자?, (서울 : 두란노, 2006), p.74. >2. 설교자들은 중심사상을 전달한다.만일 설교자들이 설교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어떤 사상(아이디어)을 전달하는 것이 되는데 인류 역사에서 2,500년이 넘도록 대중 연설을 연구하거나 직접 연설했던 사람들은 연설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구조는 단 하나의 개념을것이 아니다. 적용은 핵심적인 것이다.성경적인 설교란 여러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다. 성경 저자가 여러 다양한 문학 장르들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사상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처럼, 설교자들도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적절하게 제시할 수 있는 전달 형태를 자유스럽게 활용할 수 있다. 설교를 작성하는 데 있어서도 앞서 말한 두 가지 동일한 질문들이 설교의 사상을 더욱 좁혀 가는데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설교자들은 자신이 하는 설교의 주제를 명확히 알아야 하며 그 주제에 대하여 자신들이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강력한 성경적인 설교란 이중적인 초점(bifocal)을 지녀야한다. 성경적인 설교는 본문의 사상과 전개 과정을 반영할 뿐 아니라 동시에 청중들의 관심과 질문들도 반영한다. 청중들로 하여금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날 자신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세 가지 단계적 질문)(이것이 무슨 뜻인가?, 이것이 사실인가?, 이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을 통해 말씀과 강해자와 청중들을 성경 본문에서 설교로 이끌어 내야할 것이다.-p. 166? 청중에 관하여5. 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어떻게 긁어 줄 것인가?1)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라2) 특정한 부류의 청중을 목표로 삼으라3) 예화를 폭넓게 사용하라4) 청중의 입장에서 설교하라5) 진리는 타협하지 말라-p. 3066. 강해설교자에게 필요한 권위는 무엇인가?1) 충분히 뜻을 전할 수 없는 감정을 명확히 표현하라2) 가상의 교인들에게 귀를 기울이라3) 권위로 설교하라4) 정확하게 묘사하라5) 인격을 드러내라-p. 486? 강해 설교의 구조7. 성경 본문이 어떻게 설교를 구성하는가?우리는 설교를 처음 배울 때, 3대지, 주제별 대지 방식과 같은 설교 틀에 대해 배우고, 설교 본문을 그 틀에 집어넣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나 설교를 하면 할수록, 판에 박힌 틀에서 벗어난 유연한 설교 형태를 필요로 하게 된다. 본문이 설교를 형성하도록 해야지, ? 그리고 어떻게 해야 설교가 흥미롭고 청중의 주의를 끌 수 있을까?”를 물으면 된다.3) 다양함설교는 스스로 형성해 가는 경향이 있다. 청중 그리고 본문과 완전한 교류를 갖게 되면, 어떻게 시작하면 되고 그것은 무엇을 이끌어 내게 될 것이라는 감각을 갖게 된다.-p.5018. 모든 청중이 이해하는 설교나폴레옹은 전령을 보내며 그들에게 세 가지 지시 사항을 전했다. “분명하라, 분명하라, 그리고 분명하라.” 설교자들이 그렇기를 원한다면 몇 가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첫째로, 성경 전체를 두루 관통하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증진시킬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것을 다 사용하는 것이다.두 번째로 주제를 명확히 함으로 시작해라.세 번째로 서론에서 청중에게 설교의 몸통 부분을 분명하게 소개해 주는 것이다.중심 사상 혹은 핵심 개념을 다시 서술함으로 명료성을 더할 수도 있다.시각적인 설교도 명료성에 도움이 된다.예화를 사용할 때는 전하고자 하는 요점을 잘 예시해 주는 이야기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p. 5399. 더 좋은 빅 아이디어를 찾기 위한 방법‘빅 아이디어’의 목적은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빅 아이디어라고 할 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설교에서 주된 아이디어, 설교의 명제, 당신이 전달하려는 기본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설교는 여러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으나, 그 모든 게 다 주 아이디어로 자라지는 않는다. 이 사실은 우리 다 알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키케로로 돌아가면, 그들은 명제를 가질 것에 대해 말했으며, 그것을 중심으로 연설이 전개되는 것이다. 종종 설교에서는 이것이 잊혀지고 있다. 그래서 빅 아이디어에 대해 말하게 되면, 나는 조직하는 요소에 대해 말한다. 설교의 모든 부분을 가지고 그것들을 붙여서 하나의 전체가 되게 하라. 그때 그 전체가 설교의 중심 아이디어-빅 아이디어-다. 그래서 빅 아이디어의 목적은 그것을 중심으로 해서 설교를 구성하고 조직하는 것이다.두 번째 목적은 설교가 끝.
    인문/어학| 2007.05.30| 10페이지| 2,000원| 조회(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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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강해설교의 정의와 의미
    『 강 해 설 교 』- 강해설교의 정의와 의미 -Ⅰ. 서 론본 연구의 목적은 강해설교에 대한 역사적, 학문적 자료들을 검토하여 강해설교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고 강해설교가 설교자에게서 갖는 의미를 생각하고, 첨부된 별지를 통해서 실제적으로 강해설교를 함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사항을 알아보고자 함에 있다.서론에서는 강해설교가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강해설교가 나오기까지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고 그에 따라 강해설교가 꼭 필요한가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강해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에 있어서 역사적 의미와 그 당위성을 알아보고자 한다.0. 강해설교가 나오기까지 배경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설교의 원형은 강해설교였다. 강해설교는 현대에 와서 갑자기 생겨난 설교의 한 가지 종류라고 할 수 없다. 강해설교는 역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가장 이상적인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강해 설교가 교회에 어떤 위치를 차지하였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구약시대의 강해설교구약의 설교자들은 선지자들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선지자가 있기 전에도 설교자는 있었다. 모세는 바로 왕 앞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증거 하였고 백성들의 아픔을 하나님께 아뢰기도 하였다. 물론 모세를 비롯해서 모든 선지자의 사명은 설교자로서의 사명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신명기는 가장 오래된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서 가르치고 적용한 것은 강해설교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구약에서 학사 에스라는 강해설교적인 정신을 우리에게 전달하여 준다. 느헤미야 8:8에 보면 에스라가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는 모습이 묘사된다. “1.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2. 그 뜻을 해석하여 3.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4.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 지라.” 여기서 에스라의 설교문 그 자체를 접할 수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그가 무슨 설교를 했는지 알 수 는 없지만 선택된 구체적인 본 복음서 등을 전부 강해설교로 했는가 하면 특히 크리스톰은 신약성경 전부를 강해설교하였다. 그는 성경의 축어적, 문법적, 역사적 해석으로 유명한 안디옥 학파의 출신이었던 만큼 교부시대의 설교는 건전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강해설교를 하되 어떤 성경관을 갖고 어떻게 접근하는가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달라질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오리겐(Origen)의 경우는 강해설교의 대가였고 설교의 형식을 수립한 최초의 설교자였으나 그의 설교의 우화적 경향 때문에 사실은 성경의 본문에서 멀어지고 잘못된 적용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우화적 설교는 오리겐의 전유물은 아니었지만 오리겐은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무시하고 오직 우화적으로 성경을 보았다. 이렇게 설교자가 성경을 계시사적으로 또는 구속사적으로 바로 보는 일이 없이 단순히 성경의 인물이나 사물의 뜻을 영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현상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다. 종교개혁시대의 강해설교4세기에 강해설교가 절정에 이른 후에 교회는 말씀의 종교에서 의식적인 종교로 탈바꿈했고, 중세에는 강단을 잃어버린 기독교로 전락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성경의 재발견이었고 강단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개혁자 루터나 존 칼빈은 강해설교의 왕이라고 할 만큼, 그의 목회의 전 사역에서 강해 설교로 일관했다.칼빈은 신학자요 강해자요 강해설교자 라고 할 수 있다. ) 칼빈의 설교에는 개혁가들의 설교 방식인 해석설교 또는 강해설교가 강조되고 있다. 그의 주석들은 실상 그의 설교와 강의의 열매였고 그의 설교들은 주해의 연장이며 또한 적용이었다. 대부분 그의 설교는 구절구절을 강해하는 방법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는 사상의 흐름이 있는 논리적 연속성이 있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단순한 주석이 아니라 신속한 지각, 확실한 감각, 능력있는 표현 등이 어우러져 성경의 깊은 뜻이 드러나도록 하며, 설교자의 기교의 도움 없이도 깊은 인상을 청중들에게 심어주었던 것이다.)칼빈이 설교 본문을 선택할 때는 교회력에 있대 심리학의 조류 등이다. 그러나 설교자가 성경을 떠나면 그는 스스로의 권위를 포기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는 더 이상 회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간들의 말을 전하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대의 많은 설교들이 생명력을 잃고, 사람들에게 하품 밖에 자아내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속에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이 성경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통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적인 설교인 강해설교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나타내려고 노력하며, 성경에 기초한 설교이다. 이런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세상 남녀들과 직접 만나시고, 이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딤후3:15) 의와 온전한 기독의 품성을 소유하도록(딤후3:16-17)이르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설교를 통해 개인들과 만나시고 그들의 영혼을 붙잡으시는 순간에는 무엇인가 장엄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진정한 강해설교 뒤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살아 역사하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밝히 드러나며 교회가 말씀에 의한 기쁨과 능력을 얻는다.Ⅱ. 본 론이 장에서는 강해설교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와 강해설교의 특징을 알아보고, 그에 따른 장점과 단점을 알고자 한다. 방법론적으로는 강해설교를 작성함에 있어서 어떠한 점에 유의해야 하는지 해돈 로빈슨의 이론으로 알아보았다.(첨부된 별지 참조)1. 강해설교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강해설교에 대해서 로빈슨(Robinson)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즉 “강해설교란 성경본문의 배경에 관련하여 역사적, 문법적, 문자적, 신학적으로 연구하여 발굴하여 알아낸 성경적 개념, 즉 하나님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으로써, 성령께서 그 개념을 우선 설교자의 인격과 경험에 적용하시며, 설교자를 통하여 다시 회중들에게 적용하시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또한 로빈슨은 성경본문을 가장 중요시하고 특히 본문의 개념이 먼저 강해자에게 그리고 다음으로 청중들에게 만(Bauman)은 강해설교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강해설교는 두절이상 좀 더 긴 본문에 기초한 설교이다. 제목과 대지들은 택해진 본문에서 나온다. 설교내용은 다른 성격 구절에서 얻어진 생각에 힘입지 않고, 그 본문에서부터 전개된다. 이 설교는 하나의 단일한 목적과 주제로 통일성을 얻으며 과거와 현재를 모두 초점으로 하되 하나로 통일되는 타원형의 도식을 제시하려 한다.”)마이어(F. B. Meyer)는 “강해설교란 성경속의 비밀을 파악할 수 있으며 그 정신이 설교자의 심령속에 들어오기까지 설교자가 머리와 마음과 두뇌와 근육을 총동원하여 이에 대하여 울고 그리고 기도한 성경중의 어느 한 책이나 또는 보다 확장된 부분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취급하는 방법”이라고 표현하였다.클라크(C. H. Clerk)는 “강해설교는 주석과 마찬가지로 해석과 설명을 하지만 그 재료가 조직되고 문제의 여러 가지 부분들이 조화되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정의하였다.마지막으로 리펠드가 말하는 강해설교의 5가지 특성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첫째, 강해설교는 먼저 성경 본문이 있어야 한다. 둘째, 강해설교는 해석학적 성실성을 가져야 한다. 셋째, 논리의 통일성을 의미하는 결합력이 있어야 한다. 넷째, 설교의 흐름과 방향을 가져야 한다. 다섯째, 삶에 대한 실제적인 적용이 있어야 한다. )이상과 같이 강해설교에 대한 많은 학자들의 정의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서 공통점을 찾아보면 어떤 특정한 유형에 의존하기 보다는 본문과 해석, 적용, 전달에 대한 태도들이라 할 수 있다.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성서본문이다.강해설교는 어떤 주제나 사상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성서본문을 선택해야 한다. 반드시 성서본문을 가지고 설교해야 하며, 본문이 유일한 메시지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둘째, 본문해석이다.즉 본문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다. 본문의 의미란 물론 저자의 의미이지 독자와 해석자의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저자의 의미는 본문에 나타나 있으며막아준다.)셋째, 강해설교는 풍부한 설교자료를 제공한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설교의 압박감속에서 성경은 무한한 다양성의 요구에 부응하는 광범위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넷째, 강해설교는 다루기 힘든 문제를 원만히 다룰 수 있다.) 설교자들은 누구나 민감한 문제, 특히 한번 언급했을 때 그것이 누구의 문제인지를 회중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책을 선택해서 계속 강해설교를 해나간다면 교인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주지 않고 쉽게 다룰 수 있는 것이다.다섯째, 강해설교는 설교자와 교인 모두를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빠져들게 할 수 있다.여섯째, 강해설교는 설교자의 주관을 극복할 수 있다. 강해설교는 그 자체의 방법으로 인하여 설교자가 자기주관에 빠지는 것을 예방해 준다. 그것은 강해설교라는 방법자체가 성경본문과 씨름을 해서 그 본문의 중심사상을 강조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설교자의 주권이 최소화되는 것이다.)일곱째, 강해설교는 교회성장의 원동력이 된다. 성장하는 교회치고 강단이 약한 교회는 없고, 강해설교를 착실히 하는 교회치고 성장하지 않는 교회도 없다.) 말씀의 충실하고 지속적인 선포는 교회성장에 장기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알렉산더(Alexander)는 강해설교의 장점들을 열 다섯가지로 정리한다. )1) 강해설교는 설교의 성경적 목적(하나님의 메시지 전달)을 가장 잘 성취한다.2) 강해설교는 설교가 성경의 권위를 지니게 한다.3) 강해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높인다.4) 강해설교는 설교 자료의 보고(寶庫)를 제공한다.5) 강해설교는 목회자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이끈다.6) 강해설교는 양떼들의 성경지식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이끈다.7) 강해설교는 성경적으로 생각하고 살도록 인도한다.8) 강해설교는 설교의 깊이와 높이를 조장한다.9) 강해설교는 해석하기 어려운 본문을 다루도록 한다.10) 강해설교는 성경본문을 잘못 해석하지 않도록 보호해 준다.11) 강해설교는 설교자로 하여금 틀에 박힌 설교에서 탈피하도록 한다.12) 강해설교는 성경본문을 잘못 해석하다.
    인문/어학| 2007.05.30| 10페이지| 2,000원| 조회(2,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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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학]하박국 스바냐 개론 정리 평가A좋아요
    ◎ 하 박 국 ◎I. 서 론하박국서는 소 예언서의 여덟 번째에 속한 책으로 1:1에 나타난 표제에서 말하듯이 예언자 하박국이 보았던 신탁 이다. 예언자들의 신탁들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되 그들의 잘못을 꾸짖기도 하고 새롭게 개혁이 되도록 도전하기도 하며 현재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해석하여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서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예언자의 기능에서 보더라도 예언자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제3자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표제에서 신탁이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박국서는 문학적인 양식과 그 내용에 있어서 구약의 다른 모든 예언서와는 매우 다른 독특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일반적으로 거의 모든 구약의 예언서들에는 메신저 양식 이라고 불리는 야웨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라는 문구가 나타난다. 하나님이 예언자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필요로 하는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하박국서에서는 문학적 양식에 있어서 "메신저 양식"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 반면에 주로 그 삶의 자리가 예배이며 시편에서 주로 발견되는 개인 탄식시(1:2-4 12-17)와 하나님의 현현을 보여 주는 예언자의 찬양시(3:1-19)등이 주로 나타난다. 특별히 예언자가 청중들을 향하여 말하는 그의 활동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잘못을 꾸짖거나 개혁을 요구하는 직접적인 전달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고 다만 하나님과 예언자 사이에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놓고 질문(1:2-412-17)과 대답(1:5-112:2-4)을 하는 대화의 형식과 하나의 독립적인 문학양식으로서 하박국의 비전이 핵심 내용으로 되어 있는 예언자의 시편(3:1-20)이 있을 뿐이다.)또한 특별히 하박국서는 바로 하나님이 정말 이 세상을 정의로써 다스리시는가하는 신정론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구약성서 중의 하나이기에 중요하다.) 하박국서는 이 세상에서 억압을 받고 있는 용기를 잃고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법성들을 구원해 주신 사실에 대하여 찬송의 시를 지어 제사 의식에서 낭독한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본서의 기록 연대는 B.C. 539년 이후라야 된다. 또한 둠의 가설이 비판된다고 할 때 헬라 시대를 제외한다면 본서의 기록 연대 하한선은 B.C. 4세기 이전이 된다. 이러한 일련의 주장들은 본서의 표제에서 본서의 기록 연대를 추정할 만한 연대기적 기록이 없기 때문인데, 이러한 사실로부터 엘리거는 본서의 수집은 이미 예언자의 생전에 이루어졌으나, 그 날짜를 기록하지 않은 이유는 당대에 연대기적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엘리거는 본서의 기록 연대를 B.C. 605년 이후 B.C. 597년 이전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많은 학설들과 다양한 유추들이 존재하지만 전통적인 학자들은 대개 B. C. 605-598년 사이의 여호야김 치세기라고 주장하고 있다.4.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BC 722년 BC 605, 598, 586년 BC 536앗수르에게 멸망 바벨론에게 유다 포로로 잡혀감 바벨론에서 귀환아모스 에스겔 다니엘호세아 (BC 8세기)이스라엘(여로보암)통일왕국시대유다(르호보암)요엘 이사야 미가 스바냐 하박국 예레미야 학개 스가랴 말라기(BC 9세기) (BC 8세기) (BC 7세기) (BC 6세기) (BC 5세기)주변국가들 오바댜 요나 나훔시리아 시대(아람) 앗수르 시대 바벨론 시대 메대/바사시대BC 732 BC 612 BC 539 BC 331시리아 멸망 앗수르 멸망 바벨론 멸망 메대/바사 멸망Ⅲ. 하박국 내용 개요1. 목적이 책의 목적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공의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다. 호신론-하나님이 인간을 심판하시는 방법에 대한 옹호-부분에 등장하는 질문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서 어찌 바벨론과 같은 사악한 국가를 사용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하박국은 유다 백성들이 형벌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하나님이 바벨론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이기게 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바벨론을 승인하는 범주에 있어서 가장 우력한 것은 갈대아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이 가지는 문제점은 여호와께서 일으킬 나라로서 하박국 1:6에 언급된 갈대아 사람들이 하박국 1:2-4의 압제자를 처벌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갈대아 사람들이 자신을 징벌하는 결과가 된다. 칼 부드(Karl Budde)는 하박국 1:2-4 및 1:12-2:4의 압제자는 앗수르이며 1:5-11의 갈대아는 잘못 삽입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갈대아 사람들이 일어나 앗수르를 징벌할 것이며 따라서 하박국 1:5-11은 2:4 이후로 옮겨야만 적절한 역사적 흐름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스미스(G.A.Smith)도 이 견해를 지지하나 하박국 1:12-17의 압제자는 주전 608년-605년의 애굽으로 보았다.2. 묵시의 내용(합2:2-3)세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첫째, 묵시를 기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그가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 압제자를 처벌할 것이라는 계시(합1:6)의 배경이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하박국 1:5-11은 선지자가 기록한 묵시의 기본 내용이 된다. 두 번째 해석은 이 묵시가 이어지는 본문 하박국 2:3-5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즉 백성들에게 더딜지라도 원수갚는 날이 올 것이니 참고 인내하라는 것이다.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악인이 심판을 받고 의인이 구원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길이다. 바벨론의 폭력적인 방법은 의인이 살아야 할 믿음의 길과 반대된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 것을 확인하고 격려하는 묵시는 하박국 1:5-17에 기록한 거만한 이방인나라인 갈대아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만일 묵시가 하박국 2:3-5이라면 1:5-11은 단지 묵시와 관련된 구절일 뿐이다. 그러므로 하박국은 이 묵시를 기록하면서 갈대아 사람이 심판의 대행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재확인 한 것이다. 이 해석이 가장 자연스러워 보인다. 세 번째는 이 묵시가 하박국 3장의 여호와의 임재를 계시한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젤린(Ernst Sellin)과 포레(Georg는 정직하게 살아야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를 따르는 것은 아주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이다. 시련 많은 어두운 상황 속에서도 의인의 정직과 믿음은 횃불처럼 빛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확신을 보여준다. 2:6-20까지의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바빌론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심판하실 것이나 그 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빌론을 사용하시는 것이 곧 그들을 승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의 형벌의 날이 임하기까지 하나님은 그들을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악한 행위이든 갈대아의 더 잔악한 행위이든 심판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시는 방법은 인간의 계획과 생각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이러한 희망을 하박국은 가지고 있었다.)2) 역사의 문제에 대한 성경의 대답)(1)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갈대아 사람들이 그들의 막강한 군사력으로 그 당시의 근동지방을 장악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2)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진행됨역사에는 어떤 목적이 있고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아래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3) 역사는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진행됨인간이 어떤 기도의 응답이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시기를 가지고 그에 따라 행동하며 일하신다는 것이다.(4)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하나님께서 지금 이 교회와 이 세상에 허용하고 계신 일은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과 관련이 있다.하박국서는 하나님의 신정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형태로 시작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간 사회에서 펼쳐지는 온갖 형태의 억압과 불의, 그리고 약자와 가난한 자의 권리를 부인하는 모든 권력 구조에 항거하여 분개하 이 이름은 구약에 다른 부분에서도 언급된다. (대상 6:36-40, 렘 21:1, 슥 6:10) 70인역에서는 그 명칭이 소포니아스로 나타나고 벌겥 라틴역에서도 이와 같이 나타난다.)2. 저자스바냐는 “여호와께서 감추신다”, 여호와께서 소중히 간직하셨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특이한 사항이 많은 예언자이다.) 그는 나훔, 하박국과 더불어 요시야 시대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예언자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인물에 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1장1절에 나타나고 있는 그의 족보는 다른 예언서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4대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그의 족보인데, 이 족보로 인하여 그의 신상에 관한 많은 추측들이 나타나고 있다.) 므낫세의 압제 정권 당시에 태어난 스바냐는 요시야의 재위 초기에 하나님의 메시지를 외쳤다. 정확한 연대 추정은 어렵지만 스바냐의 사역 시기를 요시야의 개혁(622 B. C.)직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스바냐서에 나타난 표제(1:1)를 통해서는 그가 어떠한 인물이었는가를 거의 알 길이 없으나, 그가 요시야왕 초기의 왕족 출신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스바냐서 전체를 통해서 그가 어떤 예언자 전통을 지니고 있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우선 스바냐는 당시의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지리적, 사회적, 종교적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었다. 본문은 그가 예루살렘의 지리적인 면을 자세히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왕궁에 대한 언급(1:8-9)이나 상인들이 출입하는 어문에 대한 언급(1:10), 구도시(1:12-13)와 신도시(1:10-11)에 대한 언급들은, 스바냐가 예루살렘에 오랫동안 살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스바냐는 예루살렘에 대한 지리적 지식뿐만 아니라 종교적, 사회적으로 부파해 있던 것에 대해서도 매우 자세히 알고 있었다. 상인들의 모습(1:11)과 정치적 지도자들의 폭력(3:3), 재판관들의 불의(3:3),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의 잘못된 종교적 행위들(3:4)은 스바냐가 당시의 상황에 .)
    사회과학| 2006.11.22| 24페이지| 3,000원| 조회(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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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사]어거스틴의 생애
    1. 들어가며나는 캐톨릭에서 말하는 성인을 잘 모른다. 지나가다 주워들은 이야기로 세계사 교과서에 참회록의 저자로 나왔던 ‘성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 성가곡의 제목으로 유명한 ‘성 프란시스’ 외에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얼마전에 칼빈의 예정론에 대해 공부하던 중 칼빈총서의 예정론에 칼빈이 자신의 신앙고백서를 쓸 때, 어거스틴의 책에서 발췌한 인용만 가지고서 자신의 고백서를 써도 칼빈 자신은 지극히 만족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고 칼빈도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칼빈이 어거스틴의 인용문만으로 자신의 신앙고백서를 쓸 수 있다고 하니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과 여러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어거스틴에 관한 말들-칼빈은 어거스틴을 ‘거룩한 사람(holy Man)) 이라 표현, 고대 교회는 어거스틴에 와서 사도 이래 최고 수준의 종교적 경지에 도달:윌리스턴 워커), 고대철학과 기독교의 종합을 만들어낸 인물:박용규), 바울 사도를 이어서 교회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신학자:김의환) 등.-은 어거스틴에 관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이 글을 쓰는데 충분하였다고 본다. 그래서 필자는 많이 부족하겠지만 이 글을 통해 어거스틴의 생애와 그의 중요한 업적 및 신학사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2. 어거스틴의 생애그의 어린 시절은 대부분 그가 43세 무렵에 히포의 주교가 되었을 때에 쓰기 시작한 ‘고백록(Confessions)'에 대부분 의지하여 조사한 것이다.어거스틴은 당시 콘스탄틴의 영유지였던 북아프리카 알제리아(Algeria)의 누미디아(Numidia) 지방의 타가스테(Tafaste)에서 354년 11월 13일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파트리시우스(Patricius)는 좋은 지위에 있었으면서도 재산은 적었던 이교도로서 놀기 좋아하는 세속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죽음이 임박했을 때에 가서야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이었다.여기에서 그의 어머니 모니카(Monnica)에 대해 언급을 안할 수 없는 것이 그녀가 어거스틴의 삶에 미쳤던 영향은 너무나도, 오직 아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밤낮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그러나 어거스틴은 어린시절 이러한 어머니의 기대와는 다르게 공부에 흥미가 없었으며, 언제나 강제로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헬라어를 정말 싫어해서 나중에 고대의 라틴 철학자로서 헬라어를 전혀 몰랐던 사람은 어거스틴 한사람 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라틴어는 문법 선생들이 가르쳐주는 수준 높은 문장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학업을 중간에 잠쉬 쉬며 고향에 있을 때에는 너무나도 타락하고 방탕한 생활로 스스로도 이 당시를 ‘미친 욕정이 나를 사로잡았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부유한 시인 로마니아누스(Romanianus)의 도움으로 카르타고에서 대학 교육에 해당하는 교육을 받으러 갈 기회를 얻음으로써 그의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기를 맞게 된다.어거스틴은 카르타고에서 수사학교의 학생으로 등록하여 우등생으로 왕성한 지적 탐구의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방탕한 생활을 버리지 못한 그는 한 여자와 동거를 하며 ‘아데오다투스(Adeodatus)’란 아들까지 갖게 된다. 그리고 그 해에 이교도인 ‘마니교’에 입교를 하였다. 그러나 학업만큼은 열심히 했던 그는 언제나 수석이었고 이러한 면에 높은 자만과 교만을 갖고 있던 중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라는 철학 책을 읽고선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진정한 지혜와 지식을 찾게 된다. 그러나 성서의 중요성을 깨닫지는 못하였다. 어거스틴의 마니교의 선택은 이원론에 입각한 그들의 교리 때문에 나중에 어거스틴의 금욕적 생활을 촉진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후에 그의 ‘참회록’에서 그가 마니교에서 나오는데 그의 어머니의 기도가 큰 역할을 하였다고 고백한다). 시간이 지난 후 어거스틴은 고향에 돌아와 절친한 친구인 알리피우스(Alypius)를 만나고 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후 카르타고에 돌아와 수사학 교사를 하다 로마에 가게 된다.로마의 밀란을 온 어거스틴은 가족들과 함께 지내기도 하고 밀란의 수사학 교수로 중에 신플라톤주의는 어거스틴의 영적 생활의 인력의 중심을 뒤바꿔 놓는 그 이상의 어떤 것이 된다). 어거스틴은 이로 인해 기독교의 본질을 이해는데 큰 걸음을 뛰어 넘었다. 그러나 아직 그는 그리스도교에 물든 플라톤주의자의 단계에 있었다).그러다가 오스티아라는 곳에서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병으로 숨을 거두게 된다. 이일로 인하여 어거스틴은 많은 슬픔을 경험하게 되지만 또한 ‘참회록’9권에서 어머니와의 추억으로 다시 주님께 올바른 신앙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그 후 391년 어거스틴은 잠깐 들렸던 히포에서 거의 강요당하다시피 사제의 자리에 앉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곳에서 그의 모든 저서중 가장 유명한 책 ‘참회록’을 저술하게 된다. 이 후 비록 강제로 사제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의 지혜와 지식의 깊이는 아프리카에서 날로 유명해져서 한번의 그가 지기 욥기 사본의 여백에 끄적끄적 주(註)를 달아놓은 것을 누군가가 가져가서는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돌려보내는 바람에 골치를 앓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이 후에도 어거스틴은 감독으로 있으면서 마니교도를 비판하는 글들과 삼위일체에 관한 글등, 많은 저서로 활동하며 또한 지역에서 이교도(도나투스주의자)들을 몰아내고 그들과 논쟁을 벌이고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제이자 설교자, 감독으로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로마가 멸망하고 410년에 건강이 나빠진 어거스틴은 시골에 있는 친구의 별장에서 요양을 하면서 그의 두 번째 대작인 ‘하나님의 도성’을 쓰게된다). ‘참회록’이 어거스틴의 인생의 미로에서 길을 잃었다가 마침내 발견할 때까지의 과정이 나타나 있다고 하면, ‘하나님의 도성’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 주위에 있는 세계, 세계 안에 있는 기독교회 그리고 교회와 세계에 동일하게 주어지는 성경의 메시지에 대해 진술하였다).이 때에 그 때가지 어거스틴의 골치를 썩게 하였던 도나투스에 승리를 거두고(412년, 황제에 의해 공식적으로 금지)), 펠라기우스와의 반론에 집중을 하게 된다.펠라기우스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원죄 같은 것을 수락할 수 없다는 태도이다). 이후에 이들과의 대립의 오랜기간동안 어거스틴에게 난제가 되었다.이후 어거스틴은 감독의 자리에서 은퇴를 한 후(426년) 남은 평생을 펠라기우스주의자들(특히 줄리안)과 논쟁을 하며 밤에는 도서관에서 그의 저서들을 재편집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430년에 그는 고열로 인해 앓아누웠다. 자신의 죽을 때가 가까웠음을 안 어거스틴은 병상에서 온당하고 정확한 참회를 수행하기 위해서 다윗의 참회시 4편을 큰소리로 읊으며 진찰시간과 식사시간 외에는 아무도 자기를 보러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 후 8월 28일에 어거스틴은 죽었다.3. 신학과 사상분야에서의 어거스틴의 영향그의 사상은 옛 서구의 전통적 기독교 사상이 종결되는 지점이자 이후 새롭게 전개되는 기독교 체계화의 풍성한 원천을 이루고 있다.) 어거스틴은 또한 철학과 신학을 교묘하게 통합하였다. 고대 철학의 형식을 계시에 근거를 둔 기독교에 도입시킴으로써 종교와 철학을 이원화하지 않고 하나로 통합했다고 볼 수 있다. 어거스틴은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기독교 설명의 이론적 근거로 삼음으로써 앞으로 기독교 철학의 길을 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어거스틴은 비그리스도교조차도 그이 중요성을 인지하는 몇 안되는 그리스도교도 사상가들 중의 한 사람이다. 더구나 카톨릭의 현실 대응에 대한 문제 제기로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개신교 개혁가들에게조차 어거스틴은 그들의 개혁과 주장의 한 원류가 되었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그를 가장 위대한 크리스챤 박사 중의 한 사람으로 존중하기를 결코 머뭇거리거나 중단한 적이 없었다.) 그는 기독교 신학에 관한 한 시대를 초월한 권위자이며 기도굑의 핵심 사상을 누구보다도 깊고 넓게 파헤친 조직적 논술가이다.)지벡(Siebeck)은 어거스틴을 ‘최초의 근대인(the modern man)'이라고 부르길 서슴지 않았다. 종교 철학의 경우 그 출발을 루터나 칸트, 슐라엘마허(Schleiermacher)에게서보다 오히려 어거스틴에게서 발견할 수 있고 순수 철틴을 두 번 언급하고 있지만 그의 ’군주론‘은 어거스틴에게 영향받은 바가 많다.)중세 신학 전통에 미친 어거스틴의 영향은 실로 크다. 토마스 아퀴나스, 위클리프, 성 보나벤투라, 켄터베리의 성 안셀무스만 아니라 다미아니(P. Damiani), 베르나르(Bernard), 같은 반대자들의 생각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많은 중세 철학자들이 아우구스티누의 주장을 더 정교하게 체계화 시키는 역할을 담당했고 유명론자들의 주장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실재를 찾고자 했던 루터나 위클르프도 결국 그 논제의 근거를 어거스틴에게까지 찾아 올라갔다.) 종교개혁 또한 유사한 아이러니를 지니고 있는데 어거스틴으로의 회귀를 강하게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가들의 주장은 어거스틴의 바울 해석보다 더엄격하게 돌아가자는 것으로 거기에는 당연히 의인의 문제(Justical Cation)와 예정론(Predestination), 원죄와 은총, 인간의 무력성과 욕정(Concerpiscence)의 문제가 거론되지 않을 수 없었다. 루터가 어거스틴 수도다느이 수도승이었으며 그의 종교명이 아우구스티누스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단순히 어거스틴 저서들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어거스틴의 전 삶을 온몸으로 살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7세기는 데카르트적 합리주의가 근대 철학의 문을 열고 있었는데도 그에 못지 않게 어거스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시기로 혹자는 이를 어거스틴의 세기라고까지 부르고 있다고한다. 사실 데카르트와 어거스티은 서로 다른 자리어ㅔ 서 있는 것 같지만, 기실 내면성에서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크게 유사하다. 메르세네(Mersene)가 데카르트의 ‘방법론(Discoure on Method)'을 읽자마자 어거스틴의 이성론과 데카르트의 그것이 아주 유사하다고 지적했던 것은 이를 시사한다. 다만 데카르트가 사상적 측면을 강조했다면 어거스틴은 신앙적 진리에 더 역점을 두었고, 전자가 진리의 주관적인 측면에 우선권을 두엇다면 후자는 진리의 보편적인 면을 강조했던 것이 다르)
    인문/어학| 2006.06.12| 6페이지| 1,500원| 조회(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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