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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빌러비드] 빌러비드
    Ⅰ. 들어가며……6천만 명 그리고 그 이상 (Sixty Million and More)Toni Morrison의 『빌러비드』는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노예들이 운송되는 과정인 중간항로(Middle Passsge)) 서아프리카에서 서인도 제도나 아메리카 대륙으로 노예를 운반했던 가장 긴 항로. 비평가 Hortense J. Spiller는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일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말할 정도로 Middle Passage는 비참했다. 3세기 동안 계속된 노예상업의 과정 가운데, 흑인들을 가득 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출발한 노예상선은 흔히 '정어리 통조림'에 비유되는데, Spiller는 노예선이 '움직일 수 없는 물건들 사이에 살아있는 정어리 수백마리가 들어있는 통조림처럼 피를 흘렸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노예상선에 흑인 남자에게는 6f × 1f 4inch, 흑인여자에게는 5f 10inch × 1f 4inch, 흑인 남자아이에게는 5f × 1f 2inch, 그리고 흑인 여자아이에게는 4f 6inch × 1f 만큼의 공간을 주도록 계산되어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에서, 그리고 그 이후 미국대륙에 도착하여 노예생활 하에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시체마저 제대로 묻히지 못해 이름도 흔적도 없이 죽어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6천만 명 그리고 그 이상"이라는 말로 그 첫 페이지를 시작한다. 작가가 역사에 기록되지도 못한 이들을 위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진 상처를 끄집어낸다는 비난을 들으면서 굳이 이 작품을 쓴 이유가 무엇일까?흑인 노예 시이드가 자신의 딸인 빌러비드가 자신과 같은 노예생활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려고 결국 살해하는 사건이 이 이야기의 중심사건이다. 이는 1850년 켄터기 주에서 도망친 흑인 노예 Margaret Garner가 오하이오 주에서 다시 붙잡혔을 때, 자식들이 다시 노예가 되기보다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살해했던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승은 : 토니 모리슨. 평민사 1999, 145쪽자신들이 당한 고통을 자식에는 100여년전의 노예체험기들이 있는데, 이 작품들은 대부분이 백인독자들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글로 옮기기에 너무나 고통스러운 끔찍한 사건들을 계속 빠뜨리고 있다.) 안지현 : Toni Morrison의 Beloved 연구. 1994, 9쪽Morrison은 흑인들의 끔찍한 기억들을 단순히 기억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경험들을 통해서 흑인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빌러비드』에 등장하는 흑인들은 아픈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들의 끔찍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려 하지 않지만, 자꾸만 의식 위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너무나 끔찍해서 파편적으로 존재할 뿐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로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대화하고 그 단편적인 기억들을 공유함으로써 하나의 이야기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이야기가 어떻게 완성되는지 확인하고, 또 역사는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Ⅱ. 기억의 조각맞추기1855년 스위트홈이라는 소농장의 노예인 시이드는 아들 둘과 딸을 먼저 오하이오 강 너머 시어미니가 살고 있는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로 보낸 후, 임신한 몸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시이드는 신시내티에 도착한지 28일이 지난 후, 그녀와 자식들을 잡으러 온 학교선생과 그 일행이 출현한다. 시이드는 자식들이 노예가 되느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자기 딸 벌써기나(crawling already?)를 죽인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시점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그 사이에 소설의 배경이 되는 124번지를 쉴새없이 뒤흔들어 놓는 죽은 딸의 존재를 견디지 못한 두 아들은 도망가고 시이드의 시어머니인 베이비 석스는 그 사건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 시이드는 남은 딸 덴버와 함께 124번지에서 살아가고 있다. 노예로 있던 스위트홈에서 탈출해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과거에 얽매여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시이드에게 어느 날 스위트홈에서 동료노예였던 폴 디가 나타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어떤 일들은 까처가 항상 그 자리에서 서걱거리는 게 느껴졌다. 마치 재갈이 물려 있던 입가의 여린 살점이 욱신거리듯이.하지만 폴 디와의 대화만으로 시이드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큰 아픔은 자신의 손으로 죽인 벌써기나에 관한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딸의 묘석에 빌러비드(beloved)라는 7글자를 새겨주는 대가로 비문을 새기는 사내에게 자신의 몸을 10분 동안 내준다. 시이드는 그것으로 딸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빌러비드의 영혼은 그녀의 예상보다 더 큰 분노를 품고 있었다. 목이 잘린 아기의 영혼은 떠나지 못하고 124번지를 맴돌았다. 시이드는 시어머니에게 이사갈 것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베이비 석스는 '이 나라에 죽은 깜둥이 원한이 서까래까지 들어차지 않은 집이 하나라도 있는 줄 아느냐'며 거절한다. 그 아기유령은 폴 디에 의해서 124번지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폴 디의 제안으로 시이드는 덴버와 셋이서 서커스 구경을 갔다오며 행복한 나날을 꿈꾼다. 하지만 그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빌러비드라는 물에 흠뻑 젖은 아가씨가 문 앞에서 쓰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시이드가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기 시작했을 바로 그 때, 124번지에서 쫓겨난 아기유령이 처녀의 몸을 입고 나타난다.빌러비드는 시이드가 죽인 딸이 환생해서 나타난 것이다. 시이드가 물에 젖은 빌러비드는 보는 순간 그녀는 마치 양수 같은 오줌을 싼다. 그리고 이후에 나타나는 빌러비드의 행동들은 그녀가 시이드의 죽은 딸이 환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이드가 그 사실을 아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빌러비드가 유령이라는 이유로 『빌러비드』를 단순한 '유령 소설'로 정의하는 백인 비평가들도 있으나, 이는 『빌러비드』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함축성과 초현실주의적인 경험을 부정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유럽 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러한 초현실적인 존재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아프리카 문화권에서는 영혼과 육체의 세계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두 세계것을 즐겁게 느끼도록 한다. 빌러비드는 시이드에게 시이드의 어머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시이드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못하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킨다. 이는 빌러비드가 시이드의 딸의 기억을 가진 동시에 수많은 흑인노예들의 처참한 경험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머니에 대해 역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던 시이드는 자신 역시 딸인 빌러비드에게 아픈 기억을 주고 만다. 그리고 '엄마가 매일 밤 내 목을 자른다'라고 말하며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을 고백하는 살아있는 자신의 딸 덴버에게도 상처를 준 것이다. 이 대물림되는 아픔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노예제라는 사회적 문제 때문이라는 인식이 가능할 때 그들은 서로에 대한 원망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빌러비드가 자신의 딸의 환생임을 확인하는 순간, 시이드는 직업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을 모두 포기하고 역사에서 떨어져 나와 빌러비드에게 집착하며 과거를 살고자 한다. 오로지 자기 생각만을 해달라는 빌러비드의 유아적인 욕구를 채워주려는 시이드와 그럴수록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빌러비드는 점점 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시이드도, 빌러비드도 이렇든 저렇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서로 싸우는 데 쓸 기력을 비축하느라 너무 바빴던 것이다. 그래서 세상 끝에서 발길을 내딛고 죽어버려야 하는 건 결국 덴버였다. 그렇지 않으면 다 같이 죽을 테니까. 엄마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붙은 살점은 중국 비단처럼 얄팍했고 집안에 있는 옷 쪼가리들은 하나같이 커져서 몸에 걸치면 포대자루처럼 축축 늘어졌다. 빌러비드는 손바닥으로 머리를 받치고 다녔고, 아무 데서나 잠을 잤고, 날마다 뚱뚱하고 덩치가 커져가면서도 단것 타령을 했다. (……) 빌러비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해줘'라고만 말하면, 시이드는 순순히 말을 들었다. (……) 빌러비드는 어떻게 자기를 떠날 수가 있었느냐고 책망했다. 그러면 시이드는 울면서, 절대 떠나지 않았다고, 떠날 생각이 아니었다고 - 아이들을 빼내야만 했다고, 어디 멀리 담겨있는 노래이다.) 안지현 : Toni Morrison의 Beloved 연구. 1994, 51쪽즉각 무릎을 꿇고 있던 여자들과 서 있던 여자들이 다 같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도를 멈추고 한 걸음 물러나 태초로 돌아갔다. 태초에는 말씀이 없었다. 태초에는 소리가 있었고, 그들 모두 그 소리가 어떤 소리였는지 잘 알고 있었다.이들이 노래로 쫓아내었으며 한 때 시이드를 구속했던 유령은 마을 전체를 구속하는 과거이기도 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서 축출해야 하는 과거이기도 하다. 그 유령을 축출하는데 시이드를 도움으로써 공동체적 정체성을 갖게 된다.『빌러비드』의 배경이 되는 공동체는 모계사회이다. 이는 노예매매가 성행하면서 흑인들은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흑인 남성 노예들은 내재적으로 부성을 거세당하였기 때문이다.) 같은 책. 27쪽모든 남자들은 - 오빠나 동생이나 삼촌, 아버지, 남편, 아들들 - 은 모두 하나씩, 하나씩, 죽임을 당했다. 남북전쟁이 끝난지 사오년이 지났지만, 백인도 흑인도 이를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자들과 아이들로 구성된 가족의 형태를 띤 여러 집단이 섞여 있었으며, 반면에 외딴 곳에는 쫓기고 쭈는 남자들, 남자들, 남자들이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폴 디의 존재는 흥미롭다. 많은 비평가들이 노예제에서 여성들이 겪은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작품에서 많은 비중이 할애되어 있는 폴 디에 관해서는 아예 다루지를 않거나 주변인물 정도로 언급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김애주 : 토니 모리슨 연구. 한국문화사 1999, 195쪽어려서부터 스위트홈 농장에서 자란 폴 디와 동료노예들은, 다른 잔혹한 농장주들과 달리 노예들에게 총을 소지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며 그들을 사나이로 여기는 것을 자랑하는 착한 농장주 가아너 덕분에 스스로가 남성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남성성은 새로운 주인 학교선생에게 총을 빼앗기며 박탈당한다. 동료들은 하나씩 죽어가고 '스위트홈 최후의 남자'가 되어버린 폴 디는 자신이 인간
    인문/어학| 2003.06.30| 8페이지| 1,000원| 조회(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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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분석] 웰컴미스터맥도날드 평가A좋아요
    독어독문학과 97105-016신 용 수영화 는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일지 짐작할 수가 없다. 그나마 원제가 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막연하게나마 짐작이 가능하다. 일본영화에, 특히 코미디영화에 즐거워하던 시기여서 기대를 하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단순히 오버로 인한 웃음은 아니었지만 그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영화가 무엇인가를 얘기하고자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를 보면서 "이야기의 변용"이나 "이야기 스스로가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수업시간에 에 대해 침을 튀기며 극찬을 마지않는 교수님을 보며 궁금했다. 영화가 재미는 있었지만 과연 무엇이 저렇게 대단하다는 것일까? 『아랑은 왜』를 읽으며 그 이유에 대해서 어렴풋하게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답답하고 조금은 억지스럽다고 생각했었던 이야기 전개과정이 사람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스스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영화 에는 작가가 단 한명 등장한다. 바로 『운명의 여인』이라는 상투적인 멜로드라마로 어쩌다 라디오 공모전에서 당선되어 방송에 데뷰를 하게 된 '미야코'이다. 당연히 『운명의 여인』이라는 작품에 대한 모든 권리는 '미야코'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미야코'는 자신이 쓴 작품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다. 이야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가지만 그녀는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다. 자신이 썼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이야기가 바뀌자 '미야코'는 그 작품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싶어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의 이 장면에서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상품으로부터 소외받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운명의 여인』이라는 작품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어느 한 명이 작품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에 참여하는 성우나 스탭들이 조금씩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야기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고자 한다. 하지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작은 변화들로 인해 작품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아간다. 성우나 스탭들은 방송에서 자신의 역할에만 충실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심지어 작품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미야코'의 남편까지도 그 드라마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믿으며 그 작품에 개입한다.여주인공 역을 맡은 '노리코'는 이제 한물 간 배우이다. 그녀는 여주인공의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며 여주인공의 이름을 뉴욕에 사는 세련된 커리어우먼 '메어리'로 바꾸어 줄 것을 요구한다. 이름 정도 바꾸는 것은 별 상관없을 것이라 여겼던 스탭들은 이에 동의한다. 하지만 파칭코가 있는 어촌의 평범한 주부였던 '리스코'가 뉴욕의 잘나가는 변호사인 '메어리'로 바꾸면서 『운명의 여인』은 전혀 다른 운명을 갖게 된다. 여주인공의 변화로 인해 상투적인 멜로드라마에서 법정드라마로 바뀐 『운명의 여인』은 일본의 조그마한 어촌에서 뉴욕으로 무대를 옮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메어리'가 갱두목의 변호를 맡는 내용이 나오자 스탭 중 한명이 갱은 뉴욕보다 시카고가 잘 어울린다고 주장하면서 무대는 다시 시카고로 바뀐다. 하지만 바닷가에서의 로맨틱한 만남이라는 원작의 설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카고에 있는 호수에 댐을 설정한 후 붕괴시키면서 억지스럽지만 그럭저럭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남자주인공이 등장하면서 일은 더 커진다. 여주인공 역의 '노리코'의 행동에 앙심을 품고 있던 남주인공 역의 성우는 '마이클'이라는 평범한 이름을 거부하며, 자신을 직업이 파일럿인 '도나르도 마끄르 도나르도'라고 이름 짓는다. '메어리'와는 또 다른 이유로 이름을 바꿔 등장한 '도나르도'는 하와이 상공에서 행방불명 되는 것으로 처리된다. 하지만 문제는 스폰서였다. 항공사의 스폰서를 받는 방송은 부득이하게 '도나르도'를 우주비행사(파일럿)라고 처리하며 일본의 작은 어촌에서 일어났어야 할 로맨스를 우주로까지 확대시킨다. 결국 이 드라마는 단순한 멜로드라마이면서 그 범주는 법정드라마로, 재난드라마로, 그리고 공상과학드라마로 확대한다. 이 끊임없는 이야기의 변용을 살펴봤을 때, 분명 '노리코'가 맡은 역할의 이름과 직업을 바꾸는 사소한 합의에서 시작됐지만 그 이후에는 배우나 스탭들의 기대와는 무관하게 이야기가 스스로 변화되어 가며 원작 『운명의 여인』과는 전혀 다른 『운명의 여인』이 탄생하는 것이다.영화 의 결말은 상투적이다. 이야기가 스스로 끊임없이 변해가는 과정에서 결론은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메어리'가 자신의 남편 '하인리히'와 사랑하는 '도나르도'를 떠나보내고 혼자가 되어서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페미니스트 영화로 흘러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작가인 '미야코'는 인위적인 힘을 가하여 이야기를 자신의 생각대로 끌어오려고 한다. 하지만 스탭들의 반대로 무위로 돌아간다. 바로 이때 "짠!!"하고 새로운 영웅이 나타난다. 바로 PD인 '구도'이다. 그는 자신의 PD라는 역할을 위반하면서까지 작가가 원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맺으려 한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스웨터를 어깨에 걸치고 폼잡는 '구도'의 돌출행동에 총책임자 '우시지마'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별다른 거부반응없이 작가가 원하던 결말로 끝을 맺으며 만족해한다. 이런 과정들은 지극히 인위적이다. 일본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구도'류의 영웅들, 그 영웅의 행동에 너무나 쉽게 감동하여 영웅을 따르는 대중들 등등 이런 모습들이 즐겁게 영화를 보던 이들을 맥빠지게 한다. 어쩌면 영화는, 이 인위적인 장면을 통해서 시청자들이 라디오나 TV 등의 방송매체의 드라마에 바라는 해피엔딩이 이런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그리고 영화의 감초격으로 등장하는 전직 특수효과맨 '수위 할아버지'가 기계문명에 대한 비판을 하는 장면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수위실에 앉아서 게임기계를 두드리며 시간을 때우던 할아버지가 기계를 너무 믿지 말라는 모습은 단순한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항상 비굴한 표정으로 남 앞에서 굽신거리던 총책임자 '우시지마'가 작품을 변형을 참지 못하고 떠나려는 작가에게 비장한 표정으로 "언젠가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 날이 온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아니다......어쨌든 당신의 작품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감동적이라기보다는 자기변명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작품보다는 매니지먼트사와 광고주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영화가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인문/어학| 2003.06.30| 2페이지| 1,000원| 조회(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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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구적가치] 서구적가치는존재하는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할 것입니다.국민이 주인이 되어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동등한 기회 속에서 최선을 다하므로함께 발전해 가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임을 확신합니다.-좋은 생각-지하철역 공공화장실의 소변기 앞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문구이다. 한 때 "한 발자국만 더 다가서서 볼 일(?)을 보자"는 문구로 화장실을 깨끗이 써서 문화선진국이 되자는 캠페인을 벌이던 화장실시민연대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시민단체에서 붙인 이 문구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가슴을 내리누르는 답답함을 느낀다. 이 문구를 보는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대한민국이 정말 "국민이 주인"이고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국민 모두가 "함께 발전해 가는 나라"임에 틀림없다는 믿음을 재확인할까? 아니면 백 번 양보해서 대한민국이 과연 이런 "좋은 생각"을 꿈꾸고 있다는 것은 믿어야 할까? 화장실에서 잠시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순간마저도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라는 믿음을 강요받아야 하는 이 사회를 진정 자유롭고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권력의 분산을 통해서 개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진보해 왔다. 아득히 먼 옛날 절대적 권력을 지닌 한 종교적 개인이 집단의 생사를 결정하던 시기에서부터 시민이라는 절대다수에게 권력이 분배되기까지 끊임없는 혁명과 희생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세계에는 소외 받는 힘없는 국가가 있고 사회에는 소외받는 힘없는 계층이 있고 소외받는 힘없는 개인이 존재한다. 인류의 역사가 더 진보하기 위해서는, 가장 힘없고 소외받는 개인도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낼 수 있는, 집단내의 개개인에 대한 인권과 자유가 충분히 보장받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 일본 등의 강대국들이 이와는 전혀 반대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지금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일방주의에 많은 나라들이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내의 신보수주의자들은 "서구적 가치와 제도"가 인류보편의 가치라유색인종들과 성적소수자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대두되면서 다문화주의가 논의되기 시작했다.신보수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다문화주의는 이미 대학 내에서 많은 학생들에게 당연시되거나 강요되는 사상이 아니다. 미국이, 혹은 더 나아가서 지구가 백인만이 존재한다거나 백인만을 위한 국가가 아니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인종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개개인의 인권을 존중하고자 하는 다양성에 대한 긍정에 불과하다. 어쩌면 당연한 이 생각은 근대사회로 접어들고 전지구적인 교류가 가능해지며 한 번도 당연시되지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백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제 걸음마단계인 '다문화주의'에 대한 긍정마저도 부정하고자 한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단순히 대학이라는 일부 학문적 공간이 아닌 사회 전반에 걸쳐 논의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대학 내에서도 다양성에 대한 긍정은 쉽지 않다. 이러한 "서구적인 가치"가 최고라는 애매모호한 편견을 없애고 진정한 개인에 대한 존중과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용을 위해서 다양한 커리큘럼의 전제는 당연한 것이다.과연 서구적 가치란 무엇인가?Kagan이나 D'Souza는 서구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확한 설명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서구적 가치의 위대한 특징들을 몇 가지 이야기하고 있다.At its core is a tolerance and respect for diversity unknown in most cultures. One of its most telling characteristics is its encouragement of criticism of itself and its way. (Kagan p.528 : 37 ~ 39)서구 문명의 가장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가 다양성에 대한 "관용"과 "존중"이라면 그들은 다문화주의를 왜 부정하는가. D'Souza는 온건한 목표의 다문화주의는 "다양하고 유용한 경험"이 될 수 있지만, 비서구적인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문화주의자들의 주장은 허구적이라고 한다. gins. (Kagan p.529 : 1 ~ 4)분명 지금 서구의 문화와 제도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패러다임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유지되어 온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가 성립되고 팽창하던 "제국주의" 국가들이 다른 대륙의 국가들을 힘으로 굴복시키면서 이루어낸 결과일 뿐이다. 아무도 지금의 패러다임이 얼마나 갈지 모른다.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팍스 로마나" 역시 붕괴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의 "팍스 아메리카나" 역시 곳곳에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역사에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 "서구의 문화와 제도"가 현재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Kagan의 말처럼 끊임없는 "스스로에 대한 비판(criticism of itself)"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과 관용이 있을 때에 그 비판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So it's only when we're free to explore the complexities of our hyphenated culture that we can discover what a genuinely common American culture might actually look like. (Gates p.527 : 28 ~ 30)현재 지구상에는 수많은 문화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 어떤 문화도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없다. 문화는 스스로 변화하기도 하고, 다른 문화와의 충돌을 통해서 변화하기도 한다. 다른 문화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문화가 살아 남는다. 하지만 그 문화적 선택은 일방적으로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자발적인 수용이 아닌 강자의 강요에 의해서 문화가 전수될 경우, 아무리 훌륭한 문화라고 하더라도 제대로 정착된 적은 한번도 없다. 이는 일제시대의 우리 역사나 미국의 개입으로 인해서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남미의 여러 국가들을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강자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왜곡된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f Western civilization. It should be obvious, then that all Americans need to learn about that civilization to understand our country's and share in its heritage, purposes, and character. (……) At the extremes of this onslaught, the civilization, and its study, is attacked because of its slavery, imperialism, racial prejudice, addiction to war, its exclusion of women and people not of the white race from its rights and privilege. (Kagan p.528 : 2 ~ 13)Kagan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국은 공통된 조상이나 핏줄을 가진 국가가 아닌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들이 세운 국가이다. 하지만 미국의 역사는 단순히 그 백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다.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끌려 넘어온 흑인 그리고 그 이후로도 꿈을 가지고 자유의 땅 "미국"으로 넘어갔던 수많은 히스패닉과 아시아의 인종들이 미국역사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역사에서 그들은 분명 힘없는 소수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Kagan은 이런 미국내의 소수인종들이 '근본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Affirmative Action" 같은 보호정책이 오히려 더 똑똑한 백인들의 사회진출을 막는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역사에는 분명 노예제를 비롯한 인종차별이 엄연히 존재했고 이런 사회적 차별이 존재했기 때문에 백인들이 그나마 조금 더 똑똑해 보인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싶은 것일까. 인종차별은 단순히 과거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미국 내외에서 인종차별은 끊임없이 존재하고 있다.미국내의 신보수주의자들은 다문화주의로 인해서 미국의 "정체성"550 : 3 ~ 9)위와 같은 D'Souza의 주장은 얼마나 자기모순적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D'Souza와 같은 신보수주의자들은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붕괴를 이유로 해서 동성애를 부정한다. 그런 입장에서, 다른 문화에서 동성애를 범죄시하는 것을 비난하면서 '서구적 가치'의 우월함을 동성애나 여권에서 찾는 것은 자기모순의 증거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여성인권의 신장은 여성들을 억압하던 남성들의 관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성들의 문제제기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동성애자들의 권리 역시 스스로의 사회의 편견에 끊임없이 싸워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분명 일부 아랍여성들이 사리를 입고 자신의 몸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랍여성들의 인권이 서구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인한 오해이다. 실제로 아랍여성들의 사회활동은 서구에 비해서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할당제'와 같은 사회적 제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아랍권 국가들을 서구인들이 보기에 낯선 모습이라는 이유에서 자신들이 문화를 우월하다며 강요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자신에 대한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가치가 절대적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미국의 다른 사회에 대한 간섭과 강요는 선의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선의는 결국 자신들이 이해관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박정희 시절,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의 회고록을 보면 미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김형욱은 스스로가 "철저한 반공 우익인사"임을 자부하는 인물이다. 그의 눈에 비친 자유의 땅, 미국의 대외정책은 그다지 민주적이지 못한 것 같다.미국의 눈에 들기 위하여 그-박정희-는 자신의 회색적 내지 기회주의적 사상을 반공으로 하루 아침에 표변시켰고 미국은 적어도 박정희가 반공적이며 친미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한 그가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 중대한 훼손을 가하는데도 이를 묵인하고 박정희를 지지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미국이
    인문/어학| 2003.06.30| 6페이지| 1,000원| 조회(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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