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손자병법은 중국 춘추 전국시대에 손무와 손빈이라는 두 명장이 지은 만고 불변의 병서이다. 손자병법은 후한말에 조조가 주를 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읽히고 또한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동 서양을 막론하고 병법의 교과서로 지목되어 있다.일찍이 나폴레옹이 손자병법을 항상 옆에 놓고 읽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제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도 훗날 손자병법을 읽고 난 다음에 `20 년 전에만 이 책을 읽었더라면`하고 아쉬워 하였다고 한다.이 사실만 보아도 손자병법이 영원불멸의 명저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고대 중국의 병법에 관계된 저서는 대단히 풍부한 편인에 이는 바로 많은 병법가들이 춘추 전국 시대 혼란기의 서로 다른 상황아래 전쟁의 성질, 작용, 준비 과정과 전략, 전술, 무기 운용 등 여러 방면에 걸쳐 나름대러 자기의 생각을 설명하였기 때문이다.병가는 크게 넷으로 구분하는 데 1) 병권모가는 전쟁의 전반적인 고려, 규획, 부서를 설명하고, 2) 병형세가는 행군의 법칙을 주로 설명하고, 3) 음양가는 오행 참위의 미신에 관한 설명이고, 끝으로 4) 병기교가는 군인의 체력과 무리의 운용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중 손자병법은 1)에 해당되며 시계편, 작전편, 모공편, 군형편, 병세편, 허실편, 군쟁편, 구변편, 행군편, 지형편, 구지편, 화공편, 용간편 총 13편으로 이루어져 있다.병권모가에 대한 내용과 견해를 알아보겠다.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전쟁을 통해 많은 역사적 변화들을 거쳐 왔다. 고대의 대 제국이었던 로마역시 전쟁과 함께 번창 하였고, 전쟁과 함께 쇠퇴, 멸망하게 되었다.이처럼 전쟁은 인간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어떻게 보면 필연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이러한 전쟁의 중요성 때문에 인간은 전쟁에 대한 학문적 탐구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많은 이론서들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클라우제비츠의(Karl von Clausewitz) 이런 틈을 타서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나라도 나타나게 된다. 전쟁의 목적은 국가의 이익의 추구에 있지만, 그 반면에 이로 인한 손실도 크다. 특히 장기전이 되면 손해되는 면만이 확대되고 이익은 하나도 없다시피 된다.그러므로 전쟁은 이 전투구의 형상이 됨을 절대로 피하여야 한다. 이런 일을 명심하고 있는 지도자이어야만이, 국민의 생사, 국가의 안위를 맡길 수가 있는 것이다.전쟁은 속전 속결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3) 모공편백 번 싸워서 백 번을 이긴다 하더라도 그것이 최고의 방법은 아니다.최상의 방법은 싸우 지 않고 이기는 일이다.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것은, 외교적인 교섭으로 상대의 뜻을 꺽는 일이다.또한 상대의 동 맹관계를 분산시켜 고립시키는 일이다. 희생이 요구되는, 성곽의 공격 따위는 최하의 방법 에 지나지 않는다. 아군의 병력을 감안하지 않고 강대한 적에게 도전하는 것은 현명한 전쟁이 될 수 없다. 오 히려 상대를 다치지 않고 항복시키는 것이 이상적인 전법이다.병력이 열세이면 후퇴하고, 승산이 서지 않으면 싸움을 피하여야 한다.적을 알고 나를 알면, 절대로 패할 리 없다.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 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면 반드시 패한다.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4) 군형편우선 불패의 태세를 굳혀 놓고, 적이 무너지기를 꾹 참고 기다리는 것이 싸움에 능한 전법이다. 수비에 있어서는 적이 침공할 기회를 주지 않고, 공격으로 들어가면 속공으로써 적이 수 비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만이 필승의 조건이다.똑같이 이기더라도,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이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용전 감투, 큰 손해를 발생시키고 겨우 이기는 것, 이런 승리는 바람직한 승리가 되지 못한다.미리 승리할 태세를 갖추어 놓고서 싸우는 자가 승리를 거두며, 무작정 싸움을 시작하여 놓고서 승리를 얻겠다고 허둥대는 자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싸우기전에 필승의 기반을 다지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5) 병세편전쟁을 하는 방법은, 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장수된 자는 스스로가 필사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하들로 하여금 필사적이 되게 하는 것이다. 종합적인 판단과 냉정한 태도로써 대처해야 한다.변화하는 상황을 정확히 판단 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9) 행군편적의 움직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모든 사실을 분석·파악하도록 노력할 일이다.이를태면 적군에게서 온 사신이 저자세이면서도 방비를 더하는 것은 진격하려 하기 때문이 다. 반대로 적군의 사신의 강경하게 말하며 진격 태세를 취하는 것은 후퇴하려 하기 때문이다. 병사의 수가 많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마구 공격하지 말고 전력을 집중시키면 적정의 파악에 힘을 써야만, 비로소 승리를 거둘 수가 있는 것이다.또한 병사들에 대하여는, 따뜻한 마음으로 교육시킴과 동시에 군령으로 통제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일 역시 장수된 자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적을 움직이는 법과 내가 움직이는 법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10) 지형편지형은 승리를 얻기 위한 유력한 보조적 조건이다.따라서 적의 움직임을 잘 알고, 지형의 험조·원근을 이리 저리 비교 검토하면서 작전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적의 전력, 아군의 전 력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더라도, 지리가 나쁘다는 것을 모르면 승패의 확률은 반반이다.전쟁에 능한 자는 적과 아군과 지형의 3 가지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행동을 일 으키고서도 이황하지 않으며, 싸움이 시작된 다음에도 곤경에 빠지는 일이 없다.장수된 자에게 있어서 병졸은 자기의 자식과 같다. 그러나 후대하는 마음이 지나치면 뜻대로 부릴수가 없고,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치면 명령할 수 없으니, 군율에 저촉하여도 벌할 수 없다면 그런 군대는 제 구실을 할 수가 없게 된다.장수는 지형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하고, 병졸을 조율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11) 구지편전쟁에 능한 자는, 마치 한 사람의 인간을 움직이듯이, 전 군대를 하나로 뭉쳐서 자유 자 재로 움직일 수가 있다.병사란 궁지에 서면, 오히려 두려움을 잃어버린다. 도망갈 길이 방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쟁의 수단을 무기뿐만 아니라 무기를 사용하는 인간(병사)으로 확대하여 설명하였다. 전쟁은 본질적으로 위험하고 불확실하며 우연이 개입되는 영역이고 전쟁에는 육체적 긴장과 고통이 수반된다.전쟁에 ‘마찰’을 일으키는 이러한 요소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용기, 날카로운 지성, 풍부한 경험, 체력과 정신력이 요구된다.한마디로 말해 용기(결단력)와 지성(통찰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특성은 지휘관의 단호함이나 완강함 등으로 드러난다. 치밀하고 폭넓은 안목을 갖춘 냉철한 인간이 훌륭한 (최고)지휘관의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제2장 전쟁의 목적과 수단순수한 개념에서 전쟁의 목적을 현실에서 고찰을 하도록 하자. 전쟁의 목표는 적의 무장해제이다. 이 무장해제란 적 전투력의 격멸이며 적 국토의 정복 그리고 평화협정이나 항복에 대한 필연성의 인식이다.적 전투력의 격멸이란 적이 더 이상 싸움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적 국토의 정복은 국토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전투력의 양산을 중지 시키기 위함이다. 적으로 하여금 패배를 인정하게 하여야만 또다른 적대적인 감정을 유발 시키지 않으며 우리의 의지를 강요할 수 있다.따라서 두 가지의 과정을 지나서 우리는 평화협정을 통해서 전쟁이 종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적의 무장해제 시키는 것이 보편적인 전쟁형태는 아니다. 무장해제가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론적으로 정립될 수는 없다. 적을 타도하는 것은 헛된 관념이다. 우리는 전쟁에서 목표에 이르는 방법은 많으며 그 모든 경우가 항상 적의 타도라는 목표와 관련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위에 거론된 방법은 각각 적의 의지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이런 저런 방법이 채택된다. 전쟁의 수단에는 무엇이 있는가? 전쟁의 수단은 단 하나 싸움뿐이다. 전쟁은 전투력이 바탕이 되지만 인간이 개입될 경우 싸움이 그 기초가 된다. 싸움에서 구별되는 각각의 단위요소들은 전투라는 이름으로 명명이 된다. 군사적 행동은 직, 간접적휘해야 할 병력이 증가할수록 중압감은 증가한다. 병사들이 더 이상 의지만으로 자신의 힘을 지탱할 수 없게 되면 병사들의 무력감은 야전사령관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따라서 모든 병사들을 목표를 추구하도록 그들의 열정과 희망의 불꽃을 점화 시켜야 한다.다음으로 명예욕이다. 명성과 명예가 공명심과 명예욕으로 전쟁에서 부당하게 취급된다면 반드시 인류에게 가장 반역적인 불의를 가져온다. 역사상 명예욕이 없었던 야전사령관은 없었다. 그리고 견고함, 타격의 강도와 관련 의지의 저항과 지구력, 장기간 지속되는 의지의 저항이다. 자제력이 필요하다.흥분된 열정에 싸인 강력한 감정 속에 그 열정을 파괴하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감정이다. 평형력으로 항상 타고난 통찰력과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행동하도록 만드는 인간의 존엄성, 고귀한 자부심 내적 심연의 정신적 욕구와 같다.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견해를 매 순간 바꾸는 인간은 성격을 가지있다고 할 수 없다.신념은 근원이 깊고 명확하며 변화에 민감하지 않다. 그리고 변화의 원인이 포함되어 있으며 입법적인 원칙에서 발원되는 의지의 확실한 행동은 일정 수준까지 견해의 변경을 거부하게 한다. 강한 정신력은 최초의 견해를 고수하고 명확한 신념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바꾸지 않는다. 면밀하게 검토된 원칙들에 대하여 강한 믿음이 있으며 순간 순간에 떠오르는 인상들이 생생할지라도 그것이 하찮은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감성이 결핍된 고집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내면에 그려진 지도로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개별 특징들이 반복적으로 조각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오직 상상력으로 불리 우는 정신력이 작용해야 한다. 야전사령관은 한 지역과 국토전체의 지형물에 이르기까지 지형파악의 수준을 높여 도로, 하천, 산악 등의 특징을 언제나 생생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지적인 지형에 대한 감각도 소유해야 한다. 상상력으로서 이러한 일들을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있으며 당황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군사적 천재에게 요구되는 사항들이다.
나폴레옹의 군사전략??목 차?들어가는 말나폴레옹에게 영향을 준 군사전략들나폴레옹 군사전략의 핵심나폴레옹의 보병?포병?기병 운용나폴레옹의 몰락나오는 말참고문헌?들어가는 말군대에 있을 때 별로 도움이 안되는 줄 알면서, 그리고 앞으로도 도움이 안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군사전술에 관련된 책을 관심있게 읽었던 적이 있었다. 소총중대전투 , 분?소대 전투기술 , Combat Bible , 61mm박격포 같은 야전 교범들이었는데 그중에 야전 교범은 아니지만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바로 위대한 장군들은 어떻게 승리하였는가 였다. 미국의 저명한 군사전략가가 세계역사상 큰 발자취를 남긴 군사지도자들의 성공 원칙을 실증적으로 밝힌 책이었다. 한니발, 스키피오, 징기스칸, 나폴레옹, 스톤 월, 독일전차부대의 전격전, 사막의 여우 롬멜, 모택동의 게릴라전, 맥아더 등등 흥미진진한 내용과 역사적 지식으로 나에게 큰 인상을 주었던 책이다.?막스 갈로가 쓴 나폴레옹 은 흥미진진함으로 가득 차 있다. 역사책보다도 더 역사같은 내용과 시대배경에서 시작하여 나폴레옹의 내면을 거울로 들여다 보듯이 재구성해내는 탁월함, 거기다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번역까지.하지만 나폴레옹 에서 무척 아쉬운 게 하나 있다. 그 책은 나폴레옹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데 성공하고 있지만, 단 하나 군사전략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기껏 드러나는 것이 나폴레옹이 장병들 사이에서 “꼬마 하사관”으로 불릴 만큼 큰 신망을 얻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성공의 큰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 정도이다.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나폴레옹의 천재성은 그의 탁월한 군사전략에서 더욱 빛난다. 계획적 분산과 집중, 식량 적지 획득, 파격적인 포산과 훈장 수여, 결정적 시기와 장소에 상대적으로 우위인 병력을 집중배치, 전략적 우회기동, 유인전술 등, 그가 구사한 많은 전략?전술들은 이후 유럽의 군사작전의 개념을 뒤바꾸는 혁신적인 것이었다.나는 여기서 나폴레옹의 군사전략을 다뤄보고자 한다. 나폴레옹 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타고 갑옷과 투구를 쓰고 창을 휘두르는 기사였다. 기사의 갑옷을 관통해서 그를 떨어뜨릴 수 있는 영국의 활과 석궁이 등장하면서 기병의 힘은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사를 전장에서 결정적으로 물러나게 한 것은 화약으로 발사되는 총탄이었다. 15세기 중반에 효과적인 화기가 등장했고, 다음 세기의 초반에 그 화기의 총탄은 무장한 기사의 갑옷을 뚫을 수 있었다. 17세기에 서구에서는 고대로마이래 처음으로 보병이 다시 한번 전투의 여왕이 되었다. 이제 단발의 실탄을 총구로 장전하는 구식 소총으로 무장하고 기동성있는 포병의 지원을 받는 보병이 전장을 채웠고 이들은 오히려 기병을 능가할 정도로 기동할 수 있었다.유럽이 거대한 대결구조로 빠져 들게 되면서 자연히 무기와 전쟁이론들도 빠른 속도로 발전해갔다. 나폴레옹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주된 변화는 18세기 중반과 후반 한무리의 프랑스군장교들의 혁신적인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부르세(1700-1780)는 부대를 몇 개의 종대로 나누어 여러 개의 통로를 이용해 공동목표로 진군시키는 이른바 “분진협동공격”의 개념을 발전시겼다. 이 개념은 본질적으로 징기스칸이 콰레즘을 공격했을 때와 그의 부하장군 수베에테이가 헝가리를 공격할 때 사용한 것과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그는 적이 모든 곳에 힘을 모아 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병력을 분리해서 운용함으로서 실제 목표가 아닌 곳에 주된 공격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게 하여 적을 현혹시킬 수 있다고 가르쳤다.기베르(1743-1790)는 군대를 상설적인 사단으로 편성함으로서, 각 사단이 각각의 분리된 경로를 따라 독립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더욱 기동성있는 전투형태로 만들기를 원했다. 넓게 분산할수록 적을 혼란시킬 수 있고, 지휘관이 보다 좋은 기회를 포착하여 공격할 수 있으며, 민간인이 후방에서 식량을 추진보급하는 관례를 없앨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군 장교가 군수관계를 배우기를 원했고, 적지에서 적의 비용으로 아군을 유지할 것을 강조했다.다른 는 적에게서 놀라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는 적 주력부대의 격멸이라는 제 1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른 고려대상은 모두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적의 보급로와 증원, 퇴로를 차단하고 적에게 두려움을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자신의 부대를 적의 측면과 배후에 위치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병참선은 안전하게 열려 있도록 노력했다. 적이 타격하는 것을 막으면서 적을 탁겨하는 것이 군시절 내내 그의 목표였고 성공의 비결이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나폴레옹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을 적용했다. 그렇지만 상대방은 그것을 결코 효과적으로 모방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그에게는 계속되는 승리가 잇따랐다.나폴레옹이 사용한 세가지 방법은 첫째로 “적 배후로 기동”하는 것이다. 이는 적의 병참선에 대해 대규모나 전 병력으로 기습을 가하는 효과적인 전략적 공격이다.이 개념은 우선 적 정면에 부대를 투입하여 맹렬한 공격과 위협으로 적군을 주된 전선(前線)에 고착시키고, 동시에 강력한 종대를 적의 측면을 돌아 배후로 들어가게 하여 적의 병참선과 철수로를 가로지르는 전략적 장애물이나 장막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적은 그의 주력 전선에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만약 장애물이 적시 적소에서 적을 차단한다면 적을 일거에 패배시키거나 분쇄할 수 있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정면공격을 하지 않을 수 있을 때는 결코 정면공격을 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적의 배후로 기동하여 적의 퇴로를 차단하려고 노력했다. 이 전략은 1800년 이탈리아에서 수행한 마렝고작전과 1805년 아우스터리츠작전의 두 번째 단계에서부터 나폴레옹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두 번쨰는 “전략적 전투”로서 그가 즐겨 쓰던 전술이다. 즉, 정면공격으로 적을 고착시키는 가운데 측면을 돌아 적의 배후로 부대를 보내고, 동시에 측면기동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 노출된 적 전선의 한 지점을, 선발된 포-보-기병으로 돌파함으로써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다.1796년 8월 5일 나폴레옹은 카스트을 계속하는 동안, 집중공격부대의 보병은 적의 전열이 깨진 곳으로 돌격해 들어가 그들을 분쇄하며 돌파구를 확장하고, 이 틈을 통해 기병들이 곧바로 질주해 들어갔다. 이러한 돌파는 적의 균형을 한 순간에 무너뜨렸고, 기병은 이들 와해된 부대를 과감하게 추격하였다.세 번째 비결은 “내선위치 전략”, 즉 서로 지원 가능한 거리에 있는 둘 이상의 적 부대 사이로 기동하여, 둘 중 한쪽이 손을 쓰기 전에 다른 한 쪽을 무찌르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내선위치 전략을 “전략의 본질은 비록 적보다 약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공격할 때나 적에게 공격받는 곳에는 항상 적보다 더 많은 병력을 유지하는 데 있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이외에 지적해야 할 것이 분진협동공격이다. 이탈리아 원정에서 나폴레옹은 상대방을 속이고 상대의 취약점을 노출시키기 위해 각기 다른 전선을 따라 여러 지점으로 몇 개의 종대를 진군시킨다는 부르세의 가르침을 적용했다. 나폴레옹이 피에드몬트평야에 이르게 되었을 때, 나폴레옹은 피에드몬트의 수도인 투린으로 이동할 것을 명했는데, 이에 따라 그의 군대는 3개의 종대로 나뉘어 서로 하루 행군 거리만큼 떨어져서 행군했던 것이다. 즉, 촉수를 흔들며 자기 주위에 있는 어떠한 상대도 움켜쥘 수 있고 그 사이 다른 촉수가 그것에 접근하는 낙지같이, 일련의 독립적인 종대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것이었다.?3. 나폴레옹의 보병?포병?기병 운용(1) 보병의 운용보병은 나폴레옹의 주력군대였다. 원칙적으로 보병은 혼합대형으로 배치되었다. 즉 보병대대의 일부는 횡대로, 일부는 종대로 배치되었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 군대는 횡대대형만을 썼다. 횡대대형은 군대의 화력을 최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선두 2열 정도만이 머스킷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또 한편 병사들이 충분히 훈련을 받지 못하면 계속해서 사격을 할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종대대형의 심리적 효과는 상당했다. 종대대형은 기베르가 특정 상황에서 사용할 것을 주장한 것으로, 프랑스 혁명 전쟁장치 머스킷이었다. 그 머스킷은 라이터 돌을 빈번하게 교체해야 했기 때문에 큰 효율성이 있지는 못했다. 또한 화약이 조악해 총신이 망가졌으며, 화약 자체도 젖으면 무용지물이 되었다. 가장 고난도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1분에 두 번 사격을 할 수 있는 게 고작이었다. 사실상 나폴레옹은 훈련으로 보병의 화력을 발전시키는 일을 조금도 귀찮아하지 않았다. 머스킷 탄환의 유효사정거리는 180m정도였고, 그러한 사정거리에서는 약 2.7m의 오차를 보였다. 보다 정확한 라이플이 고안되었지만, 조작시간이 오래 걸렸고 값이 비싸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2) 포병의 운용과거 포병장교였던 나폴레옹이 전술에 가장 독창적으로 이바지한 부분은 대포의 사용이었다. 이제 비로소 대포가 기술적?산업적으로 크게 발달해, 지휘관들이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폴레옹은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포병은 대열의 전면에 산재 배치되어, 대형을 갖추려고 하는 적군을 방해하고,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적 전열의 선두를 약화시키는 구실을 했다.나폴레옹이 그의 천재성을 처음으로 드러내 보인 것은 1793년 영국이 점령했던 지중해의 툴롱항에 대한 포위공격작전이었다. 그는 이 때 툴롱항의 출구를 봉쇄하기 위해 포병을 이용했고, 이로 인해 영국의 함대와 영국군은 도시에서 즉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1795년 10월에 왕당파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왕당파의 행진을 멈추게 한 것은 나폴레옹이 정렬시킨 대포의 “포도탄 한 방”이었다. 나폴레옹은 포병을 연대로 재조직했고, 말을 이용한 그리보발식 포병의 기동성을 활용했다. 전투를 할 때 그는 대포를 한 곳에 집중시켰다. 보로디노 전투에서는 200문의 대포를 집중 배치해, 보병종대가 진격하기 전에 미리 적의 전열에 구멍을 내기 위해 대포를 사용했다. 그의 군사경력이 오래될수록 그리고 그의 군대의 질이 떨어질수록, 나폴레옹은 보다 더 포병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고, 대포의 전술적 중요성도 점점 커졌다. 대포 자체는 새로워진 것이 없었다. 대포는 매끄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