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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근.현대 미술사 작가 요약본
    한국 근대미술사 (1910-50) 작가정리1. 휴버트 보스, , 캔버스에 유채, 1899보스는 네델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의 아카데믹한 화충으로 유명한 코르몽에게 사사받았다. 그는 런던에 아틀리에를 가지고 초상화를 잘그리는 화가로 알려진다. 그는 인종의 표준미의 전형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1899년 6월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초상화를 그리게 된다. 그는 고종황제분만 아니라 1895년부터 10년간 여러나라를 돌며 초상을 그렸는데 예컨대 서태후를 그린 작품도 있다. 이그림은 19세기말 서양인에 의해 그려진 사실주의 기법의 초상화로써 관찰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그 예는 파리박람회 대한제국관 전시에 이작품을 출품했다는 증거이다. 이는 각나라의 사회의 전형을 비교하는 사진 혹은 초상화가 진열된 전시회였기 때문이다.2.고희동, , 1915년, 캔버스에 유채, 61×46cm, 국립현대미술관고희동은 1915년 이전 작품이 남아있는 3점의 작품 중 한작품이다. 1910년에 동경미술학교로 유학을 떠난 유학생1호로 기록된다. 그 학교 교수 구로다 세이키에게 사사를 받아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혼합된 양상을 보인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세밀하게 묘사가 되어 있으면서도 빛이 강하게 비춰진 부분에서 명암이 대조되며 광선효과를 살리고 있어 사실주의와 인상주의가 혼합된 양식을 보인다. 이는 유학생시절 배운 아카데믹한 수업과 관련되어 있다. 고희동은 엘리트의식이 강했고 캔버스 위쪽에 영문 시그네쳐는 근대지식인으로써의 면모를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또한 뒷배경에 나타난 책들과 그림을 보아 화실보다는 서제에 더 가깝다 할 수 있다. 고희동 자신은 일상적인 적삼차림으로 부채를 부치는 모습이 소박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당시 적삼차림의 그림은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3.김관호, , 캔버스에 유채, 127.5×127.5cm, 1916. 도쿄예술대학 미술관소장고희동이 유학간 바로 1년뒤 20세의 나이로 유학파 2호가 김관호이다. 동경미술대학에서 졸업하는 16년에 수석으로 졸업하고 그해 평양다. 20대에 유학을 가게 되며 식민지 시대에 순응하였고, 은 시대상황을 고려한 것 보다 작가개인의 미의식에 치중하여 작품을 제작했다. 그가 절필하게 된 것도 식민지 시대에 개탄하며 붓을 놓은 것인데 이는 작가의 사회적 역할과 민족적인 측면과의 적극적 관계를 성립하지 못한 작가의 한계라 할 수 있다.4.김찬영, , 캔버스에 유채, 60.8×45.7cm, 1917, 도쿄예술대학 미술관 소장.우리나라 유학파 3호로 17년 졸업하여 졸업작품 자화상이 한점 남아 있다. 그는 문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귀국후에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록된다. 원래는 아버지의 바램대로 법대에 진학했으나 중토하여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그의 자화상은 무게가 있으면서도 사실적인 필치로 형상화 되어있다. 왼쪽 측면상의 흉상 모습으로 검은옷의 붉은 색조의 얼굴 등이 패기넘치는 필력을 보여준다. 배경은 산자락, 구름등의 회화적인 맛을 내고 있다. 작가의 개성적 면모가 엿보이는 자화상이긴 하나 노을속의 인물로 주인공을 설정했듯 탐미주의적 색채가 짙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모녀상에서 나타나듯 동경미술학교 시절 유행했던 인상파, 그중에서도 외공파적 화풍을 띄였었고, 그의 졸작인 자화상에 그 영향이 나타나 있다.5.구로다 세이키, 〈독서〉, 1890-1891, 캔버스에 유채.구로다 세이키는 파리 유학시절 습듯한 시고전주의 묘사에 인상주의를 받아들여 일본 근대식으로 해석한 외광파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는 프랑스 살롱에 출품해 입선하게 되었으며 일본의 주류였던 메이지 유화에 신선한 충격을 주게된다. 서구의 카페나 바에서 책을 보거나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고 잇으며, 빛의 광학적인 색과 사실적 묘사는 단지 사실적 재현에서 머물지 않고 보고느낀감정의 묘사라고 그가 말했다.6. 나혜석, , 1924, 23.5X32.5cm, 개인소장.나혜석은 동경여자 미술학교 출신으로 유학파 4호이자 여류작가 1호라고 할 수 있다. 마혜석은 1923년 남편이 부영사로 발령받게 되며 드러나게 된다. 거친 붓터치와 물감을 툭툭 찍어 바른듯한 작약의 표현은 생동감이 잇음과 동시에 강렬한 야수파의 특징을 보여준다. 또한 색상은 초록, 빨강 등의 원색과 어두운 배경이 동시에 등장하며, 심경의 변화가 큼을 느낄 수 있게 한다.8.임용련, , 1930, 24x33cm,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그는 3.1운동을 하다 중국으로 피신하고 이후 시카고미술학교와 예일대 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게 된다. 유럽여행에서 백남순을 만나서 결혼하게 되고 귀국후에는 오산학교에서 이중섭을 가르치기도 하나 미군정기간 납북되어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파리여행중 만나 결혼한 임용련은 에르블레라는 곳에 머물게 된다. 신혼시절 살던 파리근교의 작은마을로 이그림은 그들의 신혼집에서 내려다보이던 풍경이다. 광복 후 만든작품을 북에 남겨두고 남하하여 3개의 작품밖에 남지않았는데 그 중 한작품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후기 인상파와 야수파의 영향이 엿보인다.9.백남순, , 1937, 8폭 병풍 연결, 166X366cm, 용인 호암미술관.백남순은 2번째 여류화가이다. 파리 유학시절 우연히 나혜석을 만난 백남순은 여류화가로써 큰 자부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 그림은 해방 전 1937년에 그렸던 이며 한국에 현존하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화면을 꽉채우는 대담한 구도와 활달한 필치가 엿보인다. 산수화 형식의 서양적 기법으로 그려졌으며, 동양의 삼원법적인 시점처리와 원경, 물, 폭포 등은 몽유도원도를 연상케 한다. 또한 누드로 등장하는 여인과 부드러운 색조는 경쾌한 필치와 함께 낙원의 정경을 잘 표현했다.10.김인승, , 캔버스에 유채, 1942, 한국은행 .아카데믹한 사실적 묘사로 고전적 미를 그려난다. 신고전주의는 선을 주로 강조했지만 부피감과 양감이 적절히 혼합되어 나타난다. 일본 근대적 화풍인 외광파의 영향을 받아 빛의 색을 그대로 그려낸다. 젊은 서구적 여성은 고전주의의 가장 미의 근원이라 생각해 여인상을 주로 제작하고, 우리나라의 한복은 입엇지만, 이목구비의 또렸한 표현은 서양인임을 알 수 또한 절제미를 드러내고 있어 순박한 동양처녀를 순결하게 표현했다.12.서동진, , 종이에 수채, 1932.명암에 대비가 강하고 농담이 극명하게 차이나는 채색과 과감한 붓놀림에서 자신감이 넘침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활달한 붓질과 수려한 색채감이 느껴진다. 양화도입기에 수채화로 시작한 서동진은 평범한 대구골목의 일상을 정겨운 분위기로 표현했다.13.구본웅, 여인, 1935년 전후, 캔버스에 유채, 50x38cm, 국립현대미술관구본웅(1906~53)은 마티스, 독일표현주의에서 나타나는 강렬한 색채와 거친 붓질에 영향을 강하게 받은 대표적인 작가이다. 일본 유학시기 접한 서양사조등에 대해 충격과 감정을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여인의 모습이 노골적으로 묘사된다. 거칠고 강함 검은 윤곽선과 과장된 신체묘사 사선의 양 팔방향을 따라 칠해진 배경은 밝고 강렬한 색채와 터치들로 긴장감과 생동감을 표현한 표현주의적 기법이 두드러진다. 또한 어린 시절 낙마로 인해 곱추로 평생을 살아야 했던 그는 내면의 욕망과 갈등을 드러내어 표현의 생명력을 이끌어 낸다 할 수 있다.14.구본웅, 고행도, 1935년, 종이에 수묵, 24x27.3cm, 개인소장.서구의 기법을 동양적 세계관으로 표현하였는데 담묵과 선염에 의해 표현된 수묵화적 작품이다. 그는 1935년부터 조선화 중 수묵채색화에 관심을 두었고 불교적 상상력을 표방하여 조선주의를 실험했다. 서양의 모딜리아니나 동양적인 거북이, 사람의 형상을 한 원숭이 등을 혼합하여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그렸음을 알 수 있다.15.오지호, 남향집, 1937, 유채, 80.5X65.초가집을 과감하게 절단한 구도와 목가주의 적 한국풍경에 인상주의 색채를 표현한 오지호(1905~56)의 남향집이다. 그는 그늘에도 빛이 있다고 하며 그늘의 빛이 변화된 것이라는 인상주의 철학을 주장하며 붓과 자연을 반영해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을 추구하였다.16.배운성, , 1935, 유채, 140x200cm, 개인소장.배운성을 월북화가이기도 하며 유럽1호작가이기도 영하기도 하고, 윤곽선을 그리고 그 안에 채색을 하는 기법은 전통회화의 백묘법을 연상시키기도 한다.17.배운성, , 1930, 유채, 72x60cm, 개인소장일반 서민들을 대상으로 그려진 가족그림이 등장하는 것은 동경유학을 떠나는 1910년도 부터이다. 귀국후 모던을 구하기 어려운 형편이라 주변사람혹은 가족들을 모델로 그리게 된다. 이 그림을 20년대 식민지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서 자기 희생적인 어머니상이 절실했던 시기의 작품이다. 이시기의 모자상 대부분이 성모자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18.이인성, ,1934, 캔버스에 유채, 96x161cm, 삼성미술관 소장.황토색 주제를 띠며 1934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작으로 뽑히게 된다. 이국적 정서가 강한 풍경으로 반라의 여인과 어린아이가 묘사되고 있다. 아케데믹한 교육을 받지 않은 이인성은 누드라는 서양적 형태를 수용하면서 오랜관찰로 인한 동양적체형을 그릴 수 있었다. 조선색으로 인식되던 붉은 흙색과 파란하늘은 우리나라의 기후와 풍토릐 표현을 통해 조선적 회화를 성립했다.19.이종우, 누드_남자, 캔버스에 유채, 1926,국립현대미술관.이종우는 유화 1세대 화가들이 절필하거나 수묵채색화로 전향했던 시기에 신고전주의적 기법을 배우고 돌아온 동경유학파였다. 그는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고전적형식에 입각한 인물화를 주로 그렷으며 동경에서 유행하던 흐름에 쫓기기 보단 아카데믹한 기법 그리고 구도나 구성을 개성적으로 표현한다. 사실적인 묘사와 엄격한 형식미는 대리석처럼 맑고 차갑게 느껴진다.20.이중섭 1953, 종이에 유채.청색 날개의 수탁과 홍색날개의 암탉이 만나 재회의 입맞춤을 하고 있다. 검푸른 청공을 배경으로 빨간선과 파란선을 위아래로 그어 극도의 상징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1955년 이중섭은 개인전에서 부부의 형상이 아닌 남북한을 지칭한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21.이중섭 ,1954, 종이에 유채, 10.5x25.7cm.고구려벽화의 선과 색에 매료되어 기름기를 제거한 뒤 색칠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는 30된다.
    예체능| 2011.05.06| 6페이지| 10,000원| 조회(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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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근대미술 기점설 요약본
    Ⅰ. 머리말한국미술사의 시대구분에서 ‘근대는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의는 연구자마다 각기 다른 기점들이 제기되고 있을 만큼 미술사학계의 숙제이다. 한국 근대의 기점을 보통 역사적. 사회적 사건을 주목한 임의적으로 구분 짓는데 이는 서구사회의 시대적 구분 방법론에 입각하여 적용이 되었다. 김현숙 선생1)은 동양의 역사관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용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방법론의 체계가잡히지 않아 서양의 것을 따르고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근대기점을 잡기에 앞서우선적으로 사회 특수성이 반영된 근대성의 대한 개념정립을 전제로 하여 근대 미술사 숙고가 이루어 져야함으로 본 연구가 진행될 것임을 밝히고 있다.Ⅱ. 근대 및 근대성 개념서양의 근대성, 현대성으로 해석이 되는 모던, 모더니티의 기원과 기본개념에대해 서술하며 현대와는 연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모든 중심이 신에게 있던 중세와분리되는 지점이라고 설명한다. 16세기를 근세도입기라고 한다면 정립과 정착의 시대는 18세기로 볼 수 있는데 학문마다의 시기적 차이는 있지만 그 중 근대의 가장큰 징후를 산업화(industrialization)2)로 보고 있으며 사회학, 역사학 관점에 따른 예를 들고 있다.
    예체능| 2011.05.06| 5페이지| 2,000원| 조회(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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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방가르드의 쇠퇴와 몰락 요약 리포트
    아방가르드의 쇠퇴와 몰락- 에릭 홉스봄전통적인 예술에 대한 혁신적인 실험을 했던 20세기 아방가르드 시각예술의 침체와 그것의 실패요인을 다루고 있다. '현대미술은 성공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에릭 홉스봄의 대답은 미술이라는 매체는 낡고 낡았으며 복제에 한계가 있어 뒤쳐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론일수도 있다. 책이라는 낡은 매체는 지금도 여전히 eBook, 오디오북 등을 누르고 지배적인 매체로 있지 않은가? 홉스봄의 논리전개 전에 반드시 숙지해야할 내용은 먼저 모더니티의 기준인듯하다. 19세기의 원본을 진품으로 간주했던 작가와 부르주아의 사회적배경과 경제의 형성이 이루어졌던 과거와 다수가 누려야 하는 홉스봄의 사회주의적 관점을 전제로 20세기의 아방가르드는 복제가 가능한 현대 산업사회에 기계화된 대량생산의 실용적 경제관점이 반영된 모던인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체제 기반아래 중세 길드방식을 적용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한 예를 바우하우스로 들며 예술품 생산방식이 이상적 이였음을 설명한다. 또한 앞서 예술이 사회성에 의존해 발전함을 주지하듯 사회주의 이념의 실천이 목적 이였던 바우하우스에서 또 다른 사회를 변화 시킨다는 것의 한계가 그것 이였음으로 책은 마무리된다.홉스봄의 요지는 아방가르드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요인을 4가지로 함축한다. 첫 번째는 모더니티의 실패이며 두 번째는 시대표현의 흐름에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시각예술이 소수의 관심거리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4번째는 예술영역의 밖에서 달성되었다는 것이다. 연대순으로 설명하면 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서술은 미술사조안에서의 분석과도 비슷한 너무 자명한 것이기에 이해가 쉬울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술적인 면에서 시대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주장은 병아리와 알의 논쟁거리로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시 아방가르드가 추구했던 것은 시각예술의 정체성가운데 중심부였으며, 홉스봄이 주장한 ‘모든 예술에서도 가장 쇠퇴했었던 시각예술‘이라는 언급은 카메라가 기술을 마치 예술이 따라잡기라도 하듯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막시즘적 시각에서 그 가치가 단지 부르주아에만 머물렀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예술의 희소성이 현대에도 가치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듯하다. 하지만 이런 여지는 미적논란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홉스봄 또한 논외로 남겨놓을 것을 짓고 넘어간다.그가 전개 중 특정사상에 머물러 있음이 확인되는 대목이 여러번 있었는데, 살롱미술이 추상화로 돌아서며 가격이 오르게 된 것이 히틀러와 스탈린 덕분이란 부분이다. 사실 미술사 공부를 하며 스탈린 덕에 가격이 올랐다는 사실은 처음 들어봤다. 또한 사회주의 진영 안에 있다는 느낌은 ‘메마른 새로운 언어’로 추상화를 지칭하는 반면 ‘몬드리안과 간딘스키는 세계에서 매우 강력하고도 기이한 견해는 찾아보기 힘들다‘라는 표현을 했다. 사회주의 진영에서 1910~20년대의 두 작가는 형의 해방과 정신성의 추구의 면에서 최고로 칭송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공공성의 시각예술이 사라짐을 비유하며 사용되었던 스탈린동상 부분과 ‘예술의 종말‘이 선고되던 1960년을 언급하며 대중적인 인기가 다수가 찬성하는 민주화의 논리로 바뀌어 갔다는 대목은 그의 정치적 성향의 논지로 설득력 있게 이끌고 있다.
    예체능| 2010.11.16| 1페이지| 1,000원| 조회(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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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터 뷔르거, 아방가르드 이론
    페터 뷔르거, ?아방가르드 이론?독자적인 영역인 예술과 문학을 시민사회 자체의 관계 속에서 그 기능방식을 규명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게 된다. 예술과 문학이 생산 분배 수용되는 과정은 어떤 이념적 체계에 근거한 것이며, 이것은 단순히 객관적이고 독자적인 정신활동의 산물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사회구성체와 계급이익을 반영한다. 시민사회의 예술작품과 미학은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갖는다. 예술과 문학이 역사적으로 보여주었던 존재방식과 기능을 자연법칙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비판적 검토의 대상을 삼음으로써 문예학의 과제로 남겨졌다.자율성 미학에 의해 규정되는, 실제 삶으로부터 유리된 존재로서의 예술이 시민사회 내에서 갖는 지위를 말한다. 예술을 생산하고 배급하는 장치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의 수용을 본질적으로 규정하는 지배적 예술표상가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예술의 기능에 대한 논의는 개별 작품으로 논의될 사항이 아니라 예술 전체의 기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제도예술은 개별 작품의 내용과 무관하게 체제 옹호적 기능을 발취한다. 자율성 미학은 윤리와 철학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법칙을 갖는 미의 영역을 설정했던 칸트와 쉴러의 미학에서 완성되었으며, 19C까지 시민예술을 지배하는 표상이었다. 자율성 미학의 종착지는 제도와 작품내용이 일치하는 유미주의였다. 자율적 예술이라는 제도에 담긴 내용이 그 정치적 성격을 완전히 상실하고 오로지 예술이고자 하는 순간에 그 규범은 정당성을 의심받게 되었다. 아방가르드는 제도예술에 대한 총체적인 부정이며, 예술의 자기반성이다. 다라서 아방가르드의 핵심적 요청은 예술을 다시 실제 삶으로 되돌리자 라는 것이다. 이는 기존사회에 이용가치가 많은 예술작품을 생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삶속에서 예술을 지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락문학과 상품미학은 자율성예술의 잘못된 지양임이 자명하다.창조적 주체로서의 개인 및 개성의 표현으로서의 예술을 지양한다. 예컨대 칸트가 언급한 천재가 받는 영감 등이 그러하다. 아방가르드가 집단을 예술생산의 주체로 대체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창작이라는 카테고리 자체를 부정한다. 예컨대 뒤샹이 1910년대의 발표한 레디메이드 작품을 말한다. 아방가르드는 유기체적 예술작품개념을 폐기하고 개방된 작품개념을 도입한다. 예술작품의 통일성은 부분과 전체의 통일이다. 유기체적 작품에서 그 통일은 무매개적이나 비유기체적 작품에서는 매개적이며, 부분은 전체에 대해 자립적이다. 극단적인 경우 수용자를 통해서야 비로소 통일이 이루어진다.아방가르드의 특성은 첫 번째, 직접적인 현실연관을 직접적인 가치척도로 삼는다. 둘째는 예술은 고ㅈ립된 공간으로 파악되지 않고 소통과정을 향해 열린다. 셋째는 예술은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향해 개방된다. 넷째는 예술적 수단의 혁신이다. 다섯째는 장르간의 경계가 와해된다. 여섯째는 예술작품의 의미연관을 수용자에게로 개방시킨다. 일곱째는 예술을 사회적 생산의 계기로 파악하게 된다.예술을 삶으로 환원시킨다는 목표를 내세운 아방가르드의 제도예술에 대한 공격은 실패하였다. 포스트 아방가르드시기에 들어서면 역사적 아방가르드가 반 예술적 의도로 고안해낸 방식이 예술적 목적으로 사용됨으로써 작품개념이 복원되었을 뿐만 아니라 확장되었다. 아방가르드의 정치적인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지만 유기체적 예술작품개념을 파기함으로써 예술에 영역에 있어 과히 혁명적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개별 작품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서 갖는 제도 예술의 비중을 인식시켜주었다.
    예체능| 2010.11.16| 1페이지| 1,000원| 조회(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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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시대 미술 요약본
    1. 시대적 배경고구려는 혼강과 압록강 하류역에서 발흥하여 중국 동북부의 일부지역과 한반도 북부를 포괄하는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로 발전하였다. 700년간 긴 존속기간의 고구려가 국가 체제 정비가 이루어진 시기는 태조왕 (1C), 영토 확장은 광개토대왕부터 장수왕까지 (5C)이며 불교가 수용되는 시기는 소수림왕(4C)시기이다. 또한 19대 광개토대왕 시대에는 만주 통구 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였다.2. 고구려 문화 전개고구려는 삼국 중에서도 가장 일찍부터 중국의 한(漢)대와 육조(六朝)시대 회화의 영향을 받아들여 자체 발전의 토대를 삼았다. 광대한 지리적 풍토와 외세의 영향을 받아 길러진 늠름하고도 분방하며 용맹스러운 고구려인의 기상은 그대로 미술에 반영되어 힘과 정열이 넘쳤다. 이러한 사실은 고구려의 미술은 옛 수도였던 국내성과 평양성 부근에 있는 고분, 불교조각, 금속공예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렇게 중국회화 및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역회화(西域繪畵)의 영향을 수용하면서도 어느 나라의 회화보다도 힘차고 율동적인 특유의 회화를 발전시켰다.3. 장르별 특징 및 대표작품① 고분고구려의 고분에는 돌무지 무덤과 굴식 돌방 무덤이 있다. 초기에는 주로 돌무지 무덤이 만들어졌으나 점차 굴식 돌방 무덤이 주류를 이루었다. 돌무지 무덤으로는 <장군총>이 유명한데, 계단식으로 화강암을 7층으로 쌓아올렸다. 맨 아래층의길이는 약30m이고, 높이는 약13m이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서 각 층의 길이와 높이를 줄여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굴식 돌방 무덤 내부에는 벽화가 있기도 하여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굴식 돌방무덤은 흙으로 덮은 봉토 내부에 굴식 돌방이 있는 것으로 <쌍영총>, <무용총>, <강서 고분> 등이 있다.이하생략
    예체능| 2010.11.13| 2페이지| 2,000원| 조회(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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