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18, 19세기 조선의 회화목 차 Ⅰ. 17세기 조선회화 1) 안견화풍 2) 절파화풍 Ⅱ. 18~19세기(후기) 조선회화 1) 남종화 2) 진경산수화 3) 풍속화 4) 서양화 5) 민화※ 우리나라 그림의 특징 ◎ 유교의 중용사상과 도교의 무위자연사상, 불교의 선사상이 그림에 나타난다. ◎ 부드러움 속에 넉넉함이 담긴 아름다움을 갖춘 선 ◎ 방향에 따라 색을 설정한 오방색설 ◎ 오방색설과 함께 전통 그림의 기본 재료가 되는 먹※ 조선 초기 그림에 영향을 주었던 화풍 1) 북송의 곽희파 화풍 2) 남송의 원체 화풍 3) 명대의 원체 화풍 4) 명초의 절파 화풍 5) 북송의 미법산수 화풍Ⅰ . 17세기 조선의 회화 1. 안견파 화풍 1) 안견파 화풍 - 조선 초 발생한 안견의 화풍 2) 안견파 화풍의 기반 - 곽희파화풍 3) 안견파 화풍의 특징 ① 삼단구성 ② 단선점준 ③ 편파구도, 좌우대칭 ④ 넓은 공간, 규칙성의 띈 형태 ⑤ 경물의 유기적 연결 ⑥ 강렬한 흑백대조의 효과2. 절파 화풍 1) 절파 화풍이란? - 중국 명대 초 선종조때 대진과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절강지방 양식의 영향을 받았던 화가들의 화풍을 집합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다. 2) 절파화풍 도입시기 - 15세기 중엽경 3) 절파 화풍의 특징 - 굳세고 몹시 거친 필치와 흑백 대비가 심한 묵법, 분방하게 가해진 준찰, 날카롭게 각이 진 윤곽선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것이다.3. 17세기 조선의 절파 화풍 1) 절파화풍의 특징 ① 절파 화풍을 수용을 수용 ② 전대의 전통회화에 대한 강한 집착 ③ 광태사학적 화풍 → 매우 거칠고 강렬한 양식이 형성 2) 17세기 조선의 대표적 절파풍 화가 - 나옹 이정, 허주 이징, 연담 김명국 등 3) 대표작품① 나옹 이정의 산수도※ 이흥효의 산수도※ 안견의 사시팔경도 '초동'② 허주 이징의 연사모종도 , 평사낙안도연사모종도평사낙안도③ 연담 김명국의 그림들설중귀로도 정리된 듯하지만 활달성은 한층 심화되어 있다. 언덕과 눈 덮인 산기슭과 앙상한 나뭇가지와 인물들의 옷 깃든 작품이다. 김명국 특유의 재빠른 붓질로 잘표현되고 있다.탐매도달마절로도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 만춘, 초하◉ 절파 화풍을 수용하였던 우리나라 화가들의 대부분은 조 선 초기에 이룩된 안견파 화풍의 전통을 부분적으로 고수하 거나 병행하여 그리고 있었다. 이러한 전통주의적 경향과 민족적 기호의 차이에 따라 우 리나라의 화가들은 중국 절파 화풍과 차이가 완연한 한국 절파 화풍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그 차이는 구도, 공간처리, 필묵법, 수지법 등의 여러 가지 점에서 간취된다.Ⅱ. 조선중기(1700~1850)의 회화 ◎ 가장 한국적이고 민족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화풍들이 풍미 ◎ 조선 초기 및 중기의 전통을 토대 → 명․청대 미술을 소화하면서 보다 뚜렷한 민족적 자아 의식을 발현했던 회화로 정의를 내릴 수 있다. ◎ 시대의 자아를 발견, 생활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소재를 택하여 한국적 미술을 형성1. 남종화의 유행 1) 남종화의 수용 - 명․청대의 화보들 새로운 것을 추구하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 남종화가 크게 풍미 2) 남종화의 특징 - 부드러운 필묵법, 담백하고 은은한 설채법, 여유있는 공간과 여백의 처리, 탈속한 서정적인 분위기 등 3) 대표적화가 - 표암 강세황, 능호관 이인상 4) 대표작품명․청대 문화의 자극+정선 인곡유거도겸재가 인왕산 아래 자신의 집 풍경을 그린 인곡유거도는 조요하고 운치 있는 삶의 분위기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그려낸 그림이다. 어쩌면 이 그림은 한여름 사랑채에서 창을 열어 제치고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그린 자화상적인 산수화라고도 할 수 있다.정선 육상묘도이 그림은 나무, 집, 산의 표현에 수묵과 엷은 담채를 써서 내면 세계를 표출해내는 남종화풍의 영향이 뚜렷하게 보여 정선 개인의 화풍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록화로서 역사적, 학술적인 의의가 큰 작품이다.강세황 벽오청서도명대 오파 심주의 벽오청서도 를 방작한 것이지만, 여러가지 기교면에서 강세황은 원작을 능가하는 솜씨와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처럼 강세황은 중국한 채색 등이 어울려 문기와 아취를 풍기는 작품이다.2. 진경산수화의 풍미 1) 진경산수화 - 정선에 의해 창출 - 시작시기는 불분명하지만 당시 파격적인 것으로 인식 2) 진경산수화의 배경 ① 당시의 비교적 안정된 정치와 경제 ② 사대부층 사이의 여행붐 ③ 지도 제작의 활성화3) 진경산수화의 의의 ① 한국의 산수를 화제로 선택 ② 화제들을 다룸에 있어서 독자적이며 한국적인 화풍을 형성 4) 대표화가 -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표암 강세황, 능호관 이인상, 호생관 최북 5) 대표작품 ① 겸재 정선의 그림들 ② 호생관 최북의 그림들정선의 금강전도 둥글고 부드러운 토산들은 이웃의 뾰족하고 날카로운 암산들과 강산 대조를 이룬다. 정선의 금강산도들은 수많은 봉우리들을 일정한 크기의 좁은 화면에 모두 그려 넣기 때문에 산들의 규모는 부득이 작게 묘사되며 또한 반 조감도적으로 표현된다.정선의 인왕제색도비가 내린 후 개이고 있는 인왕산의 경치가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으며, 또 짜임새 있는구도, 양감이 풍부한 암벽의 처리, 농묵으로 능란하게 처리된 소나무들, 걷히는 비구름 밖으로 보이는 돋보이는 굴곡이 심한 산봉우리, 생동하는 전체의 경관 등은 정선의 화풍이 만년에 이르러 극도로 완숙해졌음을 보여주며, 진경산수화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최북의 표훈사도 금강산의 표훈사와 그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려내듯 뚜렷하게 넓은 폭으로 전개하여 묘사한 작품이다. 일종의 평원산수법에 의해 내산과 외산을 거의 동일선상에서 묘사하고 있어, 이것은 마치 산으로 들어갈수록 멀리 있는 높은 산들이 오히려 낮게 보이는 시각의 착각 현상을 그대로 나타낸 작품이다.최북의 초옥산수도그림 왼쪽 위에는 '공산무인 수류화개'라는 제가 있어, 그 구절대로 공산의 텅빈 초옥이 보이고 그 옆에 선 두 그루의 나무가 근경을 채우고 있다. 그림 가운데 얕은 산봉우리가 보일락 말락 엷은 먹으로 그려져 있고, 왼쪽으로는 약간 강한 묵점으로 숲이 울창한 계곡이 암시되었다. 나무 가지들도 실제의 모습과는 아랑곳없다는 듯 제- 조선 후기의 회화에 있어서 정선에 의한 진경 산수화의 발전과 파급 못지 않게 중요한 의의 를 지니고 있다. 2) 풍속화의 유행 배경 - 조선후기의 시대정신이나 경제,사회적 여건에 연유한 것이다. 3) 대표적 화가 -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①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특징 ㉠ 소재 - 서민들의 소박한 모습 ㉡ 생동감 있는 그림 ㉢ 정도에서 벗어난 풍속화 - 공간의 획기적인 변화 ㉣ 원형구도, 수평․수직구도, 사선구도 ②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특징 ㉠ 소재 - 서민 생활의 정경과 여인들의 실재 생활면이 묘사 → 남․녀간의 애정 또는 춘의 ㉡ 순수한 풍속화 ㉢ 화면의 배경을 가득 채운 구도 ㉣ 부감법③ 단원과 혜원의 예술정신과 표현 기법의 의의 - 진정한 예술적 소재와 창조정신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주고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는데 한 방향을 제시 ④ 단원 김홍도의 그림들 ⑤ 혜원 신윤복의 그림들김홍도의 행상 당시 양반집 부녀들의 문 밖을 나설 때는 얼굴이나, 손, 발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음에 비해 상민이나 천민들의 부녀들이 얼마나 자유로웠는가를 보여준다. 그들의 자유로움과 더불어 서민들의 현실을 예리하게 보여주는 작품김홍도 타작 열심히 일하고 있는 농민들에 비해 양반인 듯한 남자가 비스듬히 누워있는 장면은 그 당시 사회적 모순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김홍도 서당도, 씨름도서당도 는 당시 기초 교육 기관이었던 서당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씨름도 에서는 우리나라의 가장 일반화된 남자들의 놀이인 씨름을 소재로 하고 있다. 또한 이들과는 무관한 듯 딴전을 피우고 있는 엿장수를 배치함으로써 씨름판에 나타나있는 긴장감을 해소해 주고 있으며, 원형구도가 잘 나타나 있다.신윤복의 저잣길 머리에 함지박이고 바구니를 옆에 낀 젊은 여인과 바구니를 든 노파가 거리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 그림이다. 이 작품에서는 노파와 젊은 여인의 머리모양이나 옷 차림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볼 수 있다. 너울이나 장옷없이 시장에 나갈 서민층의 여은 부녀자들끼리 모여 그네를 뛰는 것이 허용되었다. 이러한 자유분방한 놀이를 그려내면서 계곡의 위쪽에서 이를 엿보고 있는 중들을 익살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금욕을 도로 삼았던 승려를 그리면서 그 당시의 불교를 타락된 면과 아울러 에로틱한 면을 자아내고 있으며 부감법이 잘 나타나있다.4. 서양화법의 수용 1) 음양법, 원근법 등을 특징으로 하는 서양화법이 일부 진보적인 화가들에 의해 수용 → 사물의 표현에 서양적인 명암법과 원근법만을 구사, 일부의 화가들 사이에서 소극적으로 수용 2) 대표 화가 - 김두량, 강세황 등 3) 한계 - 현대 서양화단으로 그 전통이 직접 이어지지는 못했다. 4) 대표작품① 김두량 흑구도② 강세황의 송도기행첩 중 17면③ 작자미상 맹견도5. 민화의 유행 - 화단을 향유하는 경향이 왕공․사대부들을 위시한 상층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다소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서민 대중들 사이에까지 확산 1) 민화 - 서민 대중의 회화 → 일본인 학자 무네요시가 “민중속에서 태어나고, 민중을 위하여 그려지고, 민중에 의해서 구입되는 그림을 민화로 하자” 2) 민화의 특징 ① 서민 출신의 화가들이 서민들의 위하여 그린 것 ② 대단히 폭넓은 주제 ③ '서툴고, 어수룩하고, 꾸밈이 없는' 미의 세계3) 민화 그림까치호랑이◎ 조선 중기의 회화 초기로부터 이어받은 전통들을 토대로 하면서 초기와는 다른 여러 가지 특성들을 발전시켰고 또 이것들을 후기로 전해 그 시대 회화 발전의 터전이 되게 하였다. 어지럽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창출되고 발전되었던 여러 가지 특성과 업적들은 문화나 역사의 측면에서도 대단히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 조선후기의 화단 전대에 비교하여 몇 가지 새로운 경향들이 대두되었다. 조선중기에 전래되어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했던 남종화가 이때에 와서 큰 유행을 보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하면서도 독창적인 진경산수화가 정선에 의해 정립되어 한동안 풍미한 것과 김홍도, 신윤복 등이 한국적인 정취가 짙게 풍기는 풍속화를 대성시킨 것은 how}
※ 우리나라 그림의 특징◎ 유교의 조화를 추구하는 중용사상과 도교의 무위자연 사상. 불교의 선사상이 그림에 나 타난다.유교의 회화 정신 - ‘소’ 와 ‘오덕’에 의해 자연의 원리를 잘 파악하여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것의 의미를 중시하면서 자연을 조화롭게 표현할 때 참된 아름다움이 창출된다고 보는 것이다.도교의 회화 정신 - 그림이라는 것은 종교나 지배 계층의 간섭에 의해서가 아니라 작가의 독창적인 정신에 의해 그려졌을 때 좋은 그림이 창출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불교의 회화 정신 - 악을 만들지 않고 자연과의 합일하기 위해서 속세를 초월하는 것이다.☞ 유교의 조화를 추구하는 중용사상과 도교의 무위자연 사상. 불교의 선사상◎ 우리나라만이 갖는 선과 형태의 특성은 부드러움 속에 넉넉함이 담긴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우리나라만이 갖는 선과 형태의 특성은 부드러움 속에 넉넉함이 담긴 아름다움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형태미가 발생하게 된 가장 중요한 배경은 우리의 독특한 자연 조건과 정성에 있다. 정서는 환경과 생활 속에서 늘 보고 듣고 체험하는 데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데 거칠고 척박한 곳에서의 생활은 거칠고 투각한 심성을 만들고 따라서 파생되는 미의 형태도 투박하게 된다. 환경이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그림의 색은 오방색설이라 하여 다섯 가지의 방향에 따라 색을 설정한 것으로 서 색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에 해당이 된다.오방색설이란 다섯 가지의 방향에 따라 색을 설정한 것으로서 색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에 해당이 된다. 동, 서, 남, 북, 그리고 하늘을 가리켜 오방이라고 하는데, 동쪽은 청색, 남쪽은 빨간색, 서쪽은 흰색, 북쪽은 검정색, 하늘은 노란색으로 설정한 것이다.다섯 가지 색과 함께 전통 그림의 기본 재료가 되는 먹의 색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먹이라는 재료는 동양에서만 쓰이는 독특한 재료이다. 먹은 단순한 검정색으로 볼 수 없는 깊은 정신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먹은 자연과 가까운 재료이다. 소나무부자에 의해 창시되고 원대의 고극공 등에 의해 발전된 미법산수 화풍이다.? 안견파 화풍◎ 안견파 화풍의 기반 - 조선초기의 회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역시 곽희파 화 풍이었으며, 곽희파 화풍은 조선 초기의 산수화단에 제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안견화풍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할 것이다.또한 안견의 화풍에는 비단 곽희파 화풍뿐만 아니라 남송의 원체 화풍과 원말 명초의 매너리즘의 영향도 다소 가미된 것은 사실이 지만, 그 주된 기반은 역시 곽희파 화풍에서 찾아볼 수 가 있다.◎ 안견파 화풍 - 조선 초 발생한 안견의 화풍은 16C중엽까지 강세를 보인다. 16C후반에 는 이정근, 17C초에는 이징에게 까지 연결되며 점차 절파풍의 유행으로 사라졌다. 안견의 화풍이 이토록 오랫동안 유행한 까닭은 안견에게 버 금갈 만한 걸출한 화가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는 까닭이다.◎ 안견파 화풍의 특징 - ①삼단구성으로 이루어졌다.②단선점준의 사용.③편파구도이거나 이것이 두 폭으로 좌우대칭을 이룬다.④공간이 비교적 넓고 형태가 어느 정도 규칙성을 띈다.⑤경물이 흩어진 듯 보이나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⑥흑백대조의 효과가 강하다.☞ 안견파 화풍은 16C에 이르러서는 보다 형태가 정형화되었고 필 치가 거칠어 졌으되 더욱 한국화 경향이 두드러졌으며, 이것은 일본 무로마찌시대의 수묵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절파 화풍◎ 절파 화풍이란 - 중국 명대 초 선종조에서 화원으로 봉직하다가 절강성에 낙향하여 황 동했던 대진과 그의 추종자들, 그리고 절강 지방 양식의 영향을 받았 던 화가들의 화풍을 집합적으로 지칭하는 것이다. 이들 화가들의 대부 분이 대진의 고향인 절강성 출신이거나 그곳 회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데서 절파라는 명칭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절파화풍 도입시기 -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된 시기에 대하여는 아직도 정확한 단정을 내리기 어렵지만, 대체로 이 화풍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고 또 소극적으로나마 수용되기 시작했던 것은 15세기 중엽경이 뿐만 아니라 수지법에서 산모양등에서도 이흥효의 와 매우 유사한 바가 있다. 또 이정과 이흥효의 이러한 구도나 공간개념, 그리고 수지법 등은 안견작으로 전해지는 중의 ‘초동’에 그 에 그 전통이 있음을 알 수 있다.안견의 ‘초동’허주 이징의 를 살펴보면 근경에 위치한 다리 위의 노승이 멀리 원경의 종각에서 울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절을 찾아가는 모습을 대자연을 배경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근경?중경?원경으로 구성된 편파삼단구도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구도가 안견파 화풍과 관계가 깊은 것은 분명하나 산과 언덕의 형태나 흑백의 대조가 두드러진 표면 묘사 등에는 전형적인 절파계 화풍의 영향이 짙게 베어난다. 또 중경의 토파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는 정자 속의 선비를 묘사하고 있는 다른 그림 도 같은 영향을 보여준다. 중의 ‘평사낙안’을 그린 듯한데 원경에 무리지어 있는 봉우리들의 각이 진 윤곽선이나 흑?백면의 대조를 위주로 하여 다룬 묘법 등은 절파중이지만, 구도나 공간 개념은 위의 와 마찬가지로 보다 전통적인 것이다.왼쪽 위 은사도, 왼쪽 아래 달마도, 오른쪽 설중귀로도절파계 화풍은 김명국에 이르러 그 절정기를 맞이하였다. 자귀의 자국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악착준으로 터치를 가하여 흑백의 대조를 강조한 주산의 표면처리, 강열한 필묵법, 거칠게 묘사된 수지법 등은 전형적인 절파계 화풍을 반영하고 있다. 절파 중에서도 광태사학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거칠고 강열한 필묵법을 특징으로 했던 광태사학파의 화풍이 호방하고 거침없던 김명국의 성격에 잘 부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명국의 호방한 필치의 더 다듬어진 듯하면서도 한층 심화된 활달성을 보여준다. 그 이전의 우리나라 화가 누구보다도 강렬한 느낌의 필법을 구사하고 있다.? 절파 화풍을 수용하였던 우리나라 화가들의 대부분은 조선 초기에 이룩된 안견파 화풍의 전통을 부분적으로 고수하거나 병행하여 그리고 있었다. 이러한 전통주의적 경향과 민족적 기호의 차이에 때라 우리나라의 화가들은 중국 절파 화풍과 차이가 완연한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그린 자화상적인 산수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정선 육상묘도(毓祥廟圖)이 그림은 나무, 집, 산의 표현에 수묵과 옆은 담채를 써서 내면세계를 표출해 내는 남종화풍의 영향이 뚜렷하게 보여 정선 개인의 화풍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록화로서 역사적?학술적인 의의가 큰 작품이다강세 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명대 오파 심주의 를 방작한 것이지만, 시원한 공간의 구비, 세련된 채색의 구사, 활달한 필치, 깔끔한 사의 등에서 강세황은 원작을 능가하는 솜씨와 경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강세황은 중국의 여러 대가들의 작품들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남종화의 세계를 구축하였다고 볼 수 있다.강세황 야수소림도(野水疎林圖)부드러운 필묵법, 담백하고 은은한 설채법, 여유있는 공간과 여백의 처리, 탈속한 서정적인 분위기 등이 돋보여 강세황의 남종화의 일면을 엿보게 한다.이인상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노송 뒤편의 바위 틈 사이에서 쏟아지는 폭포와 그것을 감상하는 인물을 묘사하였다, 간결한 구도, 편평하고 각이진 바위, 춤추듯 구부러진 소나무, 갈필의 붓질, 담백한 채색 등이 어울려 문기와 아취를 풍긴다.※ 조선후기 회하가 이룩한 업적으로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진경산수화와 풍속화의 창출이다.2. 진경산수화의 풍미1) 진경산수화 - 정선에 의해 창출- 언제 진경산수화를 시작하였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당시 파격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친구 조석영의 말 - 정선이 금강내외산을 출입했으며 영남지방을 편력했고 위쪽으로는 여려 승경들을 유람하여 그 특색을 파악하였다는 점과, 스스로 신격을 창출하고 우리나라 회화의 누습을 싹 씻어버렸으니 우리나라 산수화는 그로부터 개벽이 시작되었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지칭한 것이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3) 진경산수화의 배경 - 당시의 비교적 안정된 정치와 경제, 사대부층 사이에 퍼지고 있던 여행붐, 지도 제작의 활성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여행붐 - 수많은 사람들이 당시에 명산승경을 유람하고를 지니고 있다.2) 풍속화의 유행 배경 - 조선후기의 시대정신이나 경제?사회적 여건에 연유한 것이다.3) 대표적 화가 -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①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특징- 서민들의 생업에 종사하는 소박한 모습을 소재로 하였으며, 그들의 동작의 순간적 상태를 있는 그대로 생동감 있게 그렸다.- 풍속화의 정식에서 벗어나 화면 구성에 있어서 작가 특유의 통일감과 밀도감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는 공간의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원형구도(주제의 위치에 초점이 되도록 시선을 유도), 수형?수직구도, 사선구도② 예원 신윤복의 풍속화 특징- 조선조 후기 사회의 서민 생활의 정경과 여인들의 실재 생활면이 묘사되어 있다. 남?녀간의 애정 또는 춘의를 즐겨 그렸으며, 무속이나 주막의 점경 등 서민 사회의 점경 등을 보여주는 순수한 풍속화를 그렸다.- 화면의 배경을 가득채운 구도로서 여백의 공간미를 살리지 않았고, 배경이 없을수록 필선이 뚜렷하여 인물이 돋보인다. 특히 부감법을 이용하여 항상 누군가가 목격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혜원 교유의 특징이다.③ 단원과 혜원의 예술정신과 표현 기법의 의의- 진정한 예술적 소재와 창조정신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해주고 새로운 전통을 수립하는데 한 방향을 제시하였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김홍도의 행상당시 양반집 부녀들의 문 밖을 나설 때는 얼굴이나, 손, 발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음에 비해 상민이나 천민들의 부녀들이 얼마나 자유로웠는가를 보여준다. 그들의 자유로움과 더불어 서민들의 현실을 예리하게 보여주는 작품김홍도 타작열심히 일하고 있는 농민들에 비해 양반인 듯한 남자가 비스듬히 누워있는 장면은 그 당시 사회적 모순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김홍도 서당도, 씨름도는 당시 기초 교육 기관이었던 서당의 모습을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에서는 우리나라의 가장 일반화된 남자들의 놀이인 씨름을 소재로 하고 있다. 또한 이들과는 무관한 듯 딴전을 피우고 있는 엿장수를 배치함으로써 씨름판에 나타나있는 긴장감.
이동 통신의 발달 과정 99252065 토목공학과 이승춘통신이란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을 일컫는다. 최근에는 유·무선 통신의 발달로 인터넷, 이동통신, 위선통신 등을 이용하여 우리는 어디서나 누구와 다양한 종류의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수가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동 통신이란 무선호출, 휴대전화, 위성이동통신(GMPCS :Global Mobile PCS), 주파수공용통신(TRS :Trunked Radio Service) 등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다. 여기서는 휴대전화를 중심으로 살펴본다.우리나라의 휴대전화는 1984년 5월 카폰(car phone)이 도입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러다 1988년 개인휴대전화로 발전, 1991년에 가입자 10만 명을 넘긴 후, 1994년 100만 명을 넘어섰다. 2006년 1월 말 현재 국내의 이동전화 가입자수는 3,848만여 명으로 나타났다.이동 통신의 역사는 1978년 미국의 AT&T사가 시카고 지역에서 2,000 가입자를 대상으로 800MHz 대역의 AMPS(Advanced Mobile Phone Service system){)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아날로그 셀룰러 이동 전화 방식으로 미국 AT&T 벨 연구소에서 개발되어 북미방식이 라고도 한다. 아날로그 주파수 변조(FM) 방식을 사용하고, 주파수는 이동국에서 기지국으로의 상향 링크에서는 82 5∼849MHz, 기지국에서 이동국으로의 하향 링크에서는 869∼894MHz를 사용하며, 각 채널당 대역폭은 30kHz 이격되 어 있다. 주파수 분할 다중 접속(FDMA) 방식을 사용하며, 통화 채널과 별도의 제어 채널을 사용하고, 기지국 사이를 이동하면서 통화할 때 통화 채널 전환 기능이 있어 통화 절단 없이 연속적인 통화가 가능하다.방식으로 최초로 시범 서비스를 하였다. 그 후 1979년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였고, 1981년 스웨덴 및 노르웨이를 비롯한 유럽 지역, 1983년 미국, 1984년 5월 우리나라에서 북미식의 AMPS 셀룰라 시스템을 도입하여 셀룰라 이동통신 서비스가 본격 개시됨으로써 이동전화 서비스의 대중화를 위한 기반이 구축되었다. 이러한 이동통신의 역사는 1세대 아날로그 이동통신, 2세대 디지털 이동통신, 그리고 3세대 IMT-2000, 4세대 방식으로 구분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그리고 IMT-2000과 4세대로의 역사는 대략 10년 정도의 간격을 가지면서 세대 명칭을 바꾸고 있다. 1990년대가 2세대 이동통신 시대라면, 2000년대는 3세대인 IMT-2000 시대이며, 2010년부터는 4세대로 발전할 전망이다.1세대 아날로그 이동통신1세대 아날로그 이동통신은 AMPS으로 지칭되는데, 음성통화가 주된 서비스이며 주파수분할다중접속(FDMA : Frequency Division Multiple Access)을 사용한다. FDMA는 제한된 주파수 대역을 여러 사람이 이용하기 위해 할당된 주파수를 여러 개 채널로 분할하는 접속 방식, 즉 아날로그 시스템인 FDMA는 사용하는 주파수를 여러 채널로 나누어 통화 채널을 구별하는 방식이다. 이것이 현재 서비스 중인 아날로그 이동전화의 방식이다.우리나라에서는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이 1984년 5월 차량전화 서비스를 시작했고, 1987년 10월에 휴대폰 서비스의 장을 열었다. 1999년 12월 31일 디지털 전환에 따라 아날로그 서비스는 중단됨으로 인해 아날로그 이동통신은 꼭 10년 2개월만에 디지털 휴대폰의 등장으로 사라진 것이다.2세대 디지털 이동통신2세대 이동통신의 디지털 방식에는 시분할다중접속(TDMA : Time Division Multiple Access)와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 : Code Division Multiple Access)가 있다.1982년 유럽전기통신주관청회(CEPT)의 산하 GSM(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 cation)에서 디지털 셀룰러 시스템을 설정하였으며, 1989년에 유럽전기통신표준협회(ETSI)로 이관되어 범유럽 표준규격으로 제정되었다. 협대역 TDMA 방식을 적용하여 유럽 17개국을 단일 통화권으로 묶었다. 디지털 방식인 TDMA는 하나의 중계기를 매개로 하여 다수의 기지국이 다원 접속하여 동일 주파수대를 시간적으로 분할하여 신호가 겹치지 않도록 상호통신을 하는 시분할다중접속 방식을 말하며, 디지털 셀룰러폰 통신에 사용되는 기술이다.CDMA는 미국의 퀄컴사가 개발한 확산대역기술을 채택한 디지털 이동통신 방식으로 여러 사용자가 시간과 주파수를 공유하면서 신호를 송수신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아날로그 방식보다 수용 용량이 10배 이상의 대용량이며 품질이 우수하고 보안성이 탁월하여 이동국의 소비량이 적은 이점이 있다.우리나라에서는 1991년부터 국책연구과제로 지정되어 1995년 연구개발에 성공하여 세계에서 처음으로 1996년 1월부터 서비스가 가능해졌다.2.5세대 이동통신 PCS(Personal Communication System)2.5세대 PCS 이동통신은 1980년대 말 영국의 BT(British Telecom)가 처음 개념을 제시한 이동통신 시스템으로 흔히 진화단계에 따라 IS-95{) CDMA 방식의 디지털 휴대 전화의 미국 규격으로 원래는 CDMA 방식의 휴대 전화에 관한 국제적인 업계 단체인 CDG(CDMA Development Group)가 규정한 방식을 미국의 전기통신공업회(TIA)가 1993년 7월에 표준화하면서 붙인 이름이다.로 일컬어지며 IS-95a, IS-95b, IS-95c의 단계로 발전했다. IS-95시리즈는 진화단계별로 세부 규격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전송속도이다. IS-95a는 전송속도가 14.4Kbps이며, IS-95b는 최대 57.6kbps 정도로 전송속도가 빨라졌다.기존 무선 데이터 서비스 시스템이 무선 채널 하나만을 활용해 데이터의 용량과 종류가 제한되었다면, IS-95b에서는 최대 8개의 무선 채널을 가입자 한 사람에게 할당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동영상이나 그림파일처럼 데이터 용량이 큰 자료를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우리나라에서 IS-95b 서비스는 무선인터넷이란 통칭아래 1999년 하반기 이후 당시 SK텔레콤·KTF·LG텔레콤이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따라서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무선인터넷의 본격적인 개화기는 2000년으로 볼 수 있는데, 그 기반 인프라는 IS-95b였다.IS-95b가 가져온 무선인터넷 시대는 용어상 혼란이 있었던 IS-95c로 진화하면서 휴대폰의 본래적인 존재 목적을 바꿔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S-95c는 전송속도가 144Kbps까지 가능한 이동통신 시스템으로 오늘날의 CDMA2000 1x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0년 9월 SK텔레콤이 세계 최초로 시범서비스를 개시하였고, 2001년 6월에 CDMA2000 1x 기반의 동영상 상용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개시하였다.3세대 이동통신 IMT-2000(International Mobile Telecommunication 2000)20003년 말부터 동기식 IMT-2000과 함께 비동기식 IMT-2000으로 W-CDMA의 서비스가 개시되었다.먼저 동기식 IMT-2000은 HDR(High Data Rate){) 우리말로 고속데이터전송으로 번역되며, CDMA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퀄컴사가 개발한 패킷 무선 데이터 전송기 술이다.기술을 적용한 CDMA방식의 이동통신시스템으로 일반적으로 CDMA2000-1x EV-DO{) EV는 Evolution을 뜻하고 DO는 순방향의 데이터 전송속도만을 지원하다는 점에서 Data Only를 말한다.라 지칭한다. HDR이 대두된 계기는 미국과 한국의 동기식 진영에서는 주파수를 협대역(1.25MHz)으로 쪼개 이동통신용으로 사용하는데, 이런 협대역에서는 고속 데이터를 전송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IS-95 네트워크에서는 144Kbps 이상을 구현하기가 불가능한 만큼 고속데이터 전송을 위한 보완 솔루션으로 나온 것이 HDR이다. 1x EV-DO 역시 한국에서 최초로 상용서비스가 이뤄졌다.W-CDMA는 5MHz 주파수를 한꺼번에 사용함으로써 넓다(Wide)란 뜻의 광대역 CDMA라고도 한다. 이동상태에서 최대 384Kbps, 정지상태에서 2Mbps의 전송속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W-CDMA는 신규 투자에 대한 사업자들의 부담감, 이미 상용화된 동기식 IMT-2000과의 차별성 부족 등으로 인해 앞으로 크게 활성화될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많은 게 사실이다.4세대 이동통신미래의 이동통신으로는 ATM(Asynchronous Transfer Modes), OFDM(Orthogonal Frequency Division Multiplexing), MC-CDMA(Multi-Carrier CDMA), MIMO(Multiple Input Multiple Output), 스마트안테나(Smart Antenna) 등이 있다.ATM은 비동기전송모드 기술로서 음성통신에서 사용하는 스위칭 기술을 이용하여 테이터 통신까지 처리하게 만든 기술이며, 가상 채널 회선 교환방식을 사용하여 53바이트 단위의 고정된 길이의 셀(Cell)을 갖고 통신을 한다. OFDM은 직교주파수분할다중 기술로 한정되어 있는 무선채널의 전력과 주파수 대역을 가능한 효율적으로 사용하여야 하며, 요구되는 BER(bit error rate){) 비트오류율로 1과 0으로 된 2진 데이터가 통신 회선이나 기억 장치에서 잘못된 데이터로 변하는 확률. 데이터 통신에 서는 일정한 시간 내에 수신 측에서 수신한 데이터가 송신한 데이터에 비해 어느 정도 잘못되었는가를 나타낸다.
환경의 변화를 연주하는 마케팅 리더들1. 마케팅 리더십이 필요한 디지털시대최근에 KMA 마케팅위원회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발표한 ‘2005년 대한민국마케팅대상’ 수상기업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통합적 마케팅, 전택과 집중을 통한 시장 리더십,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상품개발 등으로 요약된다.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공통적인 키워드는 리더십으로서 매우 시의적절한 평가기준이라 생각된다. 날이 갈수록 다양하고 급변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하고 짧아지는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을 극복해 나가는 일이야말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직면해 있는 마케팅과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의 성공적인 기업들을 관찰해 보면, 자신의 역량을 전문분야에 집중시켜 탁월한 성과를 수행함으로써 경쟁력을 발휘하고 업계의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말하자면 ‘강점위에 조직을 구축하라(Build on strength)’는 피터 드러커 교수의 말처럼, 남보다 뛰어난 점, 소위 경쟁적 우위에 조직의 자원을 집중하는 기업들이 보다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산업계를 선도함으로써 사회와 소비자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이 되고 있는 것이다.한편 디지털 경제가 진전되면서 기업들은 자신의 시장영역과 위치를 보다 명확하게 정의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전통적인 마케팅부서의 경계를 훨씬 뛰어넘는 새로운 마케팅 컨셉과 역량, 그리고 연결이 필요한 시대가 내도한 셈이다. 이제 마케팅은 기업의 전략 및 조직 내에서의 영향력뿐만 아니라 산업 전체의 역동성과 경쟁력을 선도하는 핵심동력이 되었다. 따라서 기업들이 디지털 경제에서 성공적으로 조직을 경영해 나가려면, 무엇보다도 기업지배에서 시장지배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 고객과 공급업자,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강력한 유대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기업의 고객관계 형성과 관리의 기술, 말하자면 리더십의 역할이 한층 더 중요한 역량으로 간주되어진다. 오늘날의 디지털경제에서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번영하기를 희망하는 경영자들은 그동안의 성공을 이끌어 온있었다. 이와 동일한 실험을 대학내 동아리활동에서 리더역할을 하는 학생들과 일반 학생들에 대해서도 실시해 보았는데, 그 결과는 원숭이 실험과 비슷하게 나왔다. 원숭이나 사람의 경우 모두 보통사람보다 리더가 되면 셀로토닌 양이 점차로 증가하게 된다.이처럼 리더에게 더 많이 함유되어 있다는 셀로토닌처럼 마케팅리더십이 뛰어난 기업들이 보통의 기업들보다 더 많이 갖고 있는 특별한 요소는 무엇일까? 다음의 요소들은 여러 학자들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변함없이 마케팅리더십의 DNA로 작용해 왔다고 평가하는 개념들이다.1) 혁신오늘날의 기업들은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새로운 세계로 항해하고 있다. 말하자면 IBM의 전 회장, 루 거스너가 토로하는 다음과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때때로 매우 심오하고 강력하여 그 충격이 모든 것을 바꿔버릴 정도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출현한다. 예를 들면 인쇄기술, 백열등, 자동차, 비행기 등인데, 이러한 기술이나 아이디어는 자주 나타나지는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린다.”이처럼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는 이 시대의 물결은 인터넷과 세계화이다. 인터넷은 단순한 판매경로나 광고매체가 아니라, 기업의 비즈니스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하나의 도구로서, 미래의 시장과 사업 행태를 좌우한다. 인터넷이란 거스너 회장이 예를 든 인쇄기술이나 비행기처럼 시장과 비즈니스를 근본적으로 재편성하는 새로운 기술이다. 그리고 이것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화는 탈규제화(deregulation)와 민영화(privatization)를 통해 기업들로 하여금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창조할 수 있게 한다(필립 코틀러외 2003). 그리고 이 인터넷과 세계화란 변화가 몰고 온 디지털경제(신경제)는 기업들로 하여금 사고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경제의 변화나 기술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의 변화, 철학의 변화, 무엇보다도 세계관의 변화이다.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황은 약 50년 전, ange agent)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피터 드러커 2004).변혁의 추진자가 수행해야 할 아주 중요한 과업은 조직 전체의 마음자세(mindset)를 바꾸는 것이다. 말하자면 변화나 변혁을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로 여기도록 정신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미래에서 살아남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낡은 것을 파괴하고 극복해 나가는 ‘창조적 파괴’를 단행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어제를 버리지 않고 내일을 만들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낡은 지식을 버리고 새로운 지식을 학습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더 이상 성과를 낳지 못하는 것과 공헌할 수 없게 된 것에 투입하는 일을 그만두고, 더 높은 성과와 공헌이 기대되는 것에 자원을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워크아웃으로 극적인 개혁을 이룩한 GE의 잭 웰치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바로 이 혁신이야말로 마케팅의 본질이며 핵심이다.2) 비전디지털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규모의 경제가 과거처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기업이 업계의 리더가 되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시장점유율은 최고지만 수익성은 동업계의 작은 경쟁자들보다 훨씬 뒤쳐지는 회사들이 산재해 있다. 이 점과 관련해서 드러커 교수는 기업경영에서 중요한 것은 양이나 크기가 아니라, 그 질과 내용임을 강조한다. “사업은 크기가 아니라 본질이 중요한 것이다. 크게 성장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악성종양처럼 쓸데없이 커져서는 안 된다. 비즈니스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떤 사회적 공헌을 하려고 하는지가 중요하다. 기업은 반드시 크게 될 필요는 없지만 부단히 좋아지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말 속에 비전이야말로 기업경영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임을 내포하고 있다.비전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미래에 대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잘 설정된 비전은 기업이 나가야 할 기본방향을 제시하고, 구성원들이 수행해야 할 올바른 행동을 가르쳐주며, 구성원들이 한 방향으로 한마음이는 데 기업의 생명을 내 건 결과, 비전기업의 세계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제임스 콜린스?제리 포라스 1996).3) 개척리더십은 능동적인 과정이다. 성공적인 마케터들의 공통적인 특성은 현상을 뛰어 넘어 낯선 상황에 직면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자세다. 이들은 마치 미지의 대륙을 향해 떠나는 콜럼버스처럼 본능적으로 현상유지를 거부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는 호기심과 탐구심을 나타낸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개척정신의 소유자들은 오늘날 우리들의 문명 수준을 현저하게 향상시킨 산업발명가의 명성을 듣고 있다. 이를테면 개인용 컴퓨터에 승부를 걸어 미래시장을 개척한 애플사의 스티븐 쟙스, 독자적인 대량생산시스템으로 시장을 넓힌 헨리 포드 등은 개척정신을 통해 자신의 기업은 물론 산업계의 획기적인 발전과 소비자의 이익을 창조한 경우이다. 말하자면 창의성과 자발성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선두에서 미래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것이다.4) 겸손좋은 기업을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시킨 리더들은 흔히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명사로 등장하는 지구상의 도도한 리더들과 비교해, 마치 화성에서 온 사람들처럼 낯설게 행동한다. 나서지 않고 조용하며 조심스럽고 심지어 부끄럼까지 타는 이 리더들은 개인적 겸양과 직업적 의지, 배우려는 자세의 역설적인 융합물이다. 이들은 패튼이나 시저보다 링컨에 더 가까운 성품의 소유자이다. 링컨은 겸손하면서도 의지가 굳고, 변변찮아 보이면서도 두려움 없는 사람이었다. 조용하고 조심스러우며 늘 공손하고 점잖은 신사였다(짐 콜린스 2002).1971년, 누구나 케케묵은 사양산업으로 보는 제지회사, 킴벌리 클라크의 사장으로 영입된 다윈 스미스는 거만한 기색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유행에 동떨어진 옷차림을 하였으며, 배관공이나 전기공들과 허물없이 지냈고, 휴가는 위스콘신 농장의 별채 오두막에서 땅을 파고 바위를 들어 옮기며 보냈다. 그는 영웅이나 재계의 명사 신분에 어울리는 소양을 갈고 , “나는 직무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라고 간단하게 말할 뿐이다. 배우려는 열망과 일에 대한 헌신이야말로 유능한 리더보다 한 단계 앞서 나가는 겸손한 리더의 성품이자 힘이다. 요컨대 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도약시킨 리더들은 ‘조용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조심스러운, 수줍어하는, 정중한, 부드러운, 나서기 싫어하는, 말수가 적은’ 등으로 묘사되는 성품의 사람들이다. 이 복잡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기업의 경영자들은 고결함과 겸허함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두 가지 성품이야말로 배우려는 자세와 섬김의 정신으로 기업과 고객을 승승(win-win)의 메커니즘으로 결속시키는 관계형성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고바야시 가오루 2003).4) 모범조직이 나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전파하는 리더십에는 예나 지금이나 리더가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 이를테면 경영진이 경영혁신의 비전을 생활 속에서 몸소 실천해 보이면, 그것을 보는 구성원들이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경영진의 명령이나 사내보에 실린 수백 가지의 이야기보다 ‘경영혁신이나 비전이 얼마나 중요하고 믿을만한지’에 대해 확실한 증거로써 작용한다.이를테면 어느 항공회사가 경영혁신의 중심사상으로 고객만족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그 회사의 대표이사는 불평을 호소하는 고객의 편지를 받을 때마다 친히 48시간 이내에 회답을 보냈다. 얼마 없어 그 소문은 회사 내부에 급속하게 퍼져 나갔고, 결국은 80%의 직원들이 ‘진심으로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헌신하는 경영자의 의지’를 존중하고 따라하게 되었다(존 코터 1999).이와 유사한 사례로써, 타이레놀을 전량 폐기하여 윤리경영의 모범이 된 존슨 & 존슨, 대공황 중에도 여행자수표의 환전업무를 지속시켜 브랜드파워를 강화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최초의 제조법으로 돌아가 재기에 성공한 코카콜라 등은 경영자의 솔선수범의 리더십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들이다.말로 하는 것은 쉽지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은 쉽
영화와 고전문학* 서론최근 임권택 감독이 조선 시대 화가 오원() 장승업()의 삶을 그린 영화 취화선())으로 권위있는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그 동안 감독이 보여준 예술 세계를 생각하면 늦은 감도 있지만 어쨌든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영화에 대한 뒷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 고전문학과 시각 영상을 공부하는 우리에게는 더욱 반가운 이야기가 있다. 화가를 소재로 한 만큼 영화에는 조선 시대 유명 화가들의 그림이 직접 등장하거나 소재로 이용되었는데,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의 정사() 장면은 별 시나리오도 없이 신윤복의 춘화() 한 장을 살려낸다는 의도로 찍었다는 것이다. 감독은 그저 그림 한 장을 배우들에게 보여주었을 뿐이며, 배우들은 그림 한 장의 장면에서 떠나 앞뒤의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려 9시간을 고생했다고 한다.영화의 소재도 우리의 옛 것에서 취한 것도 그렇지만, 영화를 만드는 방법도 우리가 공부한 것과 관련이 있다니 더욱 반가웠다. 이런 즈음에 영화와 문학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은 우리 문학도들에게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본론 - 영화의 매체적 특성영화(, motion picture)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연속 촬영으로 기록한 필름상의 화상()을 스크린에 투영(), 움직임 있는 영상을 보여주는 장치 및 그렇게 만든 작품. 초기에 한국과 일본에서는 영어의 motion picture를 직역하여 활동사진()이라고 하였다. 그 밖에 무비(movie)시네마(cinema)필름(film) 등으로도 불린다.라고 되어 있다).정의에서도 알 수 있지만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가 살펴본 그림, 사진, 만화 등은 움직임이 없이 정지된 화면으로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광고 역시 잡지나 신문상에서는 정지된 화면이다. 그러면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먼저 생각할 것은 장면과 장면의 연결을 상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림과 사진은 하나의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앞에 놓고 다양하게 앞뒤의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우리가 다음 장면을 상상할 틈도 없이, 혹은 생략된 앞 장면을 상상할 틈도 없이 다음 장면으로 교체된다. 이러한 영화의 특성 때문에 독자는 작품을 보며 상상할 여지가 별로 없다. 이 점은 단점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다른 시각 영상 장르에 비해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일방적인 장르이다. 그림을 볼 때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름의 추상성을 가져볼 수 있었던 독자들은 영화에서 그런 자유를 잃는다. 그런 만큼 영화를 볼 때에는 충돌도 자주 일어난다. 영화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주제가 독자의 생각과 일치한다면 독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모든 영화들이 일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영화들에서는 주제에 대한 표현을 모호하게 하여 독자들이 나름대로 상상할 수 있게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예를 들어 송일곤 감독의 2001년 영화 꽃섬)을 보면 가끔씩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이 튀어나와 독자들의 상상을 자극한다. 남해로 가는 고속버스가 눈 덮인 첩첩 산중으로 들어가고, 거기까지 버스를 몰고 온 운전 기사는 태연하게 배드민턴을 치고, 암에 걸린 여주인공이 기중기로 올려진 배 위에서 사라지고.오늘날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는 거대 산업이라는 점일 것이다. 영화는 그림 전시회나 사진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독자를 가지고 있다. 서울의 중심가에는 발길에 채이는 것이 극장이고, 사람들 사이에 시간 나면 영화나 보자는 말은 일상 용어가 되어 버렸다. 그만큼 영화가 대중적인 장르가 되다 보니 자본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제 영화는 하나의 투자이고, 장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까?여기서 살펴봐야 할 것이 영화의 작가이다. 영화의 1차 작가는 시나리오를 쓴 작가일 것이다. 위에서 영화 산업을 설명하려다 보니 영화 제작의 목적을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야기했는데, 이 시나리오 작가의 단계만 하더라도 영화의 목적은 문학예술)과 다를 것이 없다. 작가는 현실 원칙에 억눌린 자신의 욕망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며, 주인공은 자신의 분신이 된다. 작가 자신이 감독을 한다면 이런 일은 없겠지만 영화에는 제2의 작가가 있으니 그가 바로 감독이다.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두 개인의 생각은 다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사이에는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두 사람은 각자의 세계관의 중간쯤에서 합의를 보고, 작품을 그 자리에 놓는다. 여기까지도 영화의 목적은 여전히 예술적이다. 그러나 영화에는 또 하나의 작가가 있으니 바로 제작자이다. 제작자는 영화를 만드는 돈을 대고, 관객을 모아 수익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당연 영화의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작품은 또 한번의 다툼을 겪게 되며, 이번의 싸움은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간의 3파전이 된다. 이렇게 여러 다툼을 겪고 나면 작품은 처음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지게 된다). 싸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를 촬영하다 보면 촬영감독의 욕망도 개입하게 되고, 예쁘게 보이려는 배우의 욕망, 음향 기사, 조명 기사 등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개입된다. 결국 영화는 집단 창작물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이런 집단 창작의 영화이다 보니 영화를 만드는 목적을 하나로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언뜻 보면 돈을 위해서인 것 같지만, 제작자야 그렇든 말든 자신의 영화가 예술성을 띄기 바라는 감독이 있을 수 있고, 돈을 떠나서 꼭 한번 영화에 출연하는 영광을 얻기 위해 노력한 엑스트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작에만 수백명, 보이지 않는 관객들의 욕망까지 합치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들끓고 있는 영화를 어떻게 하나의 목적으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여기서 하나 소개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미타니 코키 감독의 1997년 영화웰컴 미스터 맥도날드(Welcome Mr.Mcdonald))가 그것이다. 이 영화는 한 라디오 드라마 제작 과정에 작은 사건들이 하나 하나 일어나면서 내용이 완전히 뒤바뀌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드라마의 원작자는 경악을 하고, 우발적인 사건에 연출자도 당황한다. 소재가 영화가 아닌 라디오 드라마이지만 각 개인들이 어떻게든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려는 모습은 영화 제작 과정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이렇게 보면 성공하는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어렴풋이나마 얻을 수 있다. 가능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가지며, 그 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욕망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싣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제작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현대인들이 보편적으로 욕망하는 바를 연구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 할 지라도 현대인의 관심 밖이라면 영화는 외면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영화는 그 점에 대해 연구해야 하고, 거꾸로 성공한 영화를 보면 우리는 현 시대의 흐름을 읽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집으로)라는 영화의 성공을 통해 우리는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이 외할머니의 사랑이 있는 고향 이미지를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집으로의 경우는 다양한 계층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관객들의 욕망을 연구할 때는 먼저 그 영화가 노리는 겨냥층을 선정해야 한다. 최근의 영화는 워낙 대중화되어 특별히 어느 연령대를 노려야 성공한다는 말은 별 의미가 없다. 각 영화의 주제와 소재에 따라 그런 영화를 보려고 극장을 찾을 만한 사람들을 계산하고, 그들의 욕망을 파악한 다음, 거기에 맞추어 영화를 제작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도 이른바 기획()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대부분의 시각 영상이 그러하듯이 영화에서도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영화의 이미지는 주인공의 성격, 공간적시간적 배경, 음향 및 음악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이것들에 대해 일일이 다 살펴보기에는 필자의 능력이 부족하여 몇 가지만 살펴보겠다.영화도 만화와 마찬가지로 캐릭터가 중요하다. 이것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아직도 영화 사상 최고의 캐릭터로 동그란 모자에 지팡이를 든 찰리 채플린이나, 펄럭이는 치마를 붙잡는 마릴린 몬로를 꼽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캐릭터는 배우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한 기획 아래 만들어지는 것이다. 배우와 영화 제작자들은 극중 인물을 가장 잘 드러내면서도 독자들의 인상에 깊이 남을 캐릭터를 고심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캐릭터가 성공하면 영화도 성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상업적인 영화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헐리웃 영화가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것은 이 캐릭터의 창출에 아주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는 원작도 훌륭했지만 비비안 리와 클락 케이블이 두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와 래트 버틀러의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12억이라는 어마어마한 관람객 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음향 및 음악의 이미지도 중요하다.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의 경우는 음악 이미지가 영화에 앞서 있으며, 1994년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합작 영화 파리 넬리(Farinelli il Castrato))는 영화는 못 봤더라도 영화 중에 등장하는 나를 울게 하소서라는 곡은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음악 이미지가 성공한 경우이다. 음악 뿐만 아니라 음향도 매우 중요하다. 얼마 전에 개봉했던 복수는 나의 것)은 딸을 잃은 아버지의 잔인한 복수극을 다루고 있는데, 영화의 중간 중간에 스산한 느낌을 주는 쇳소리를 음향으로 삽입하여 독자들을 더욱 오싹하게 만들어서 성공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