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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교문학] 비평이론과 비교문학
    비평이론과 비교문학―구조주의·기호학·후기구조주의·해체주의변진한서 론비교문학의 영역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세계문학' 또는 '문화 연구'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비교문학과의 일정한 연관 속에서 파악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비교문학적 연구의 흐름 속에서 외국 비평이론의 수용을 비판적 시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문학이론을 수용하고 이해하며, 나아가 보다 발전적인 이론을 스스로 전개해 세계문학연구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이론 수용의 궁극적 목적이 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론의 수용 자체는 가치 평가의 문제가 될 수 없다.그런데 문제는 이론 수용이 과연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데 있다. 외국 이론의 수용이 상당 부분 소개에 그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론 소개 자체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외국의 이론을 남보다 조금이라도 일찍 소개하고 이에 대해 한마디라도 더 할 수 있어야 행세할 수 있으므로, 한국문학에 있어서 외국 문학이론의 소개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고의적으로 묻어두려 한다. 게다가 외국이론을 가지고 한국문학을 재단하려고 하니 억지스러워 지기도 하고, 한국문학은 뭔가 결핍된 듯 하다는 결론에 머무르고 마는 경우도 더러 있어 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선은, "서구 방법론의 수용이 문학을 보는 안목과 통찰력을 높이고 지적 수련을 갖게 하는 매체로서 기여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적 허영심과 문학적인 사대성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보세 가공적이고 모조적인 학문을 조장할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은 것"이라 했다. 이재선, 『한국문학주제론』 (서강대출판부, 1989) p.434.이러한 상황에서, 몇몇 비평이론들을 비교문학연구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묻는다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직은 수용된 외국이론 자체도 창조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하기 주저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비평이론에 대하여 "비교문학자가 수행해법을 종합한다고 볼 수 있다. 기호나 그것의 결합적인 측면에서 볼 때 문학작품의 의미가 반드시 본질적인 필요는 없다. 의미는 다만 기호와 그 결합의 체계적인 상호작용과 그 결합의 차이점에 바탕을 두며 이러한 차이점이 문학작품의 체계를 형성하게 된다.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은 이러한 체계의 가장 전형적인 예가 바로 언어라는 점을 강조한다.소쉬르는 언어를 추상적인 체계로서의 와 이러한 체계 내에서의 개별적인 發話로서의 로 구별하였다. 전자는 종합체계 및 결합법칙의 하부구조에 관계되고 후자는 이러한 체계를 분명히 밝힐 수 있는 특정한 문화현상에 관계된다.) "랑그는 언어의 사회적 양상으로 우리가 화자로서 (무의식적으로) 이끌어내는 공유의 체계이며 빠롤은 실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체계를 개인적으로 구체화시키는 현상이다. 이러한 구별은 후에 구조주의 이론의 근본이 되었다. 언어학 연구의 주된 목적은 개인의 발화가 아니라 인간의 어떤 특정한 표현 행위의 근간을 이루는 체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레이먼 셀던(현대문학이론연구회 譯), 『현대문학이론』(문학과지성사, 1987) pp.84∼110 참조.아울러 소쉬르는 를 와 로 구분하였다. 전자는 개념적인 측면에 관계되고 후자는 음성적인 측면에 관계된다.) 소쉬르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사이의 관계는 자의적arbitary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기호와 기호 체계에 대한 연구는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체계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부분이 구조주의 이론과 기호학 이론의 접합점이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Robert Scholes(위미숙 옮김), 『문학과 구조주의』 (새문사, 1987) pp.20∼22를 참고했다.따라서 구조주의 문학비평에서는 언어적인 관례를 강조하며 작가에 대한 고려나 역사적인 상황을 무시해 버린다. 문학텍스트를 나 의미의 하부구조에 관련되는 로 간주함으로서 구조주의 문학비평, 특히 프랑스적인 구조주의 문학비평에서는 개별적인 텍스트에 대한 분석보다는 그러한 분석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기호체계, 코드 및 모든 유형의 관례에 관계되는 연구분야로 발전하게 되었다.(2) 비교문학적 실천윤호병은 구조주의 및 기호학 비평에 대하여 비교문학자가 수행해야 할 몇 가지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1) 신비평에서 강조하는 과 구조주의 비평에서 강조하는 을 비교할 것. 2) 구조언어학 및 구조인류학의 원리와 문학에서의 구조주의 원리를 비교할 것. 3) 문학작품을 자율적인 체계로 볼 때와 다른 작품과의 연관체계로 볼 때의 차이점을 밝혀볼 것. 4) 문학작품에서의 의미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분석할 것. 5) 구조주의 비평과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의 문제를 고려할 것.그런데 이들의 경우, "이론을 위한 이론"을 위한 과제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이들은 일회적인 연구사 테마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비교문학자가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로 보기는 곤란하다. "비교이론가"라는 용어가 가능하다면, 윤호병이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상당수의 과제는 비교이론가의 몫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론 자체"의 비교도 비교문학의 일부분일 수 있겠으나, 이론을 통해 작품과의 면밀한 관계를 따져 볼 수 있는 실천적 과제가 보다 우선적으로 제시되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이론을 위한 이론의 차원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하나의 이론을 우리 문학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검토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할 수 있다.구조주의적 방법을 통해 한국문학에 접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우선 구조주의는 작가의 영향을 부정하므로, 작가를 찾기 어려운 고전문학 작품 연구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자칫 무책임한 유형론) 일단 어떤 구조가 파악되면, 개별 작품은 그 구조와 일치하는 하나의 텍스트로만 남는다. 또한 구조와 일치하지 않는 작품은 기형적 텍스트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개별 작품의 독창성은 소홀히 취급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신비평의 경우 "'형식'을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각 작품들의 부분들이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는다."라고 지적한다. 김현실, 「주제사 연구의 전개」, 이혜순 외, 『비교문학의 새로운 조명』 (태학사, 2002) 참조.고전과 현대를 관통하는 주제나 소재의 공통적 특성이 존재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한국문학의 연속성 시비를 없애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여기에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가령 주제나 소재의 공통성은 우연이거나, 한국문학만의 보편성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예컨대 「가시리」와 「진달래꽃」의 유사성과 차이점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문학 과목에서도 논의하는데 과연 무슨 근거로 「진달래꽃」과 「가시리」를 비교하는가 하는 문제가 등장한 것이다. 이별이라는 소재가 공통된 것은 우연이라고 볼 수도 있고, 이것이 한국문학만의 것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기 때문에, 두 작품이 비교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전제'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그렇다면 기반이 되는 구조를 분석하여 비교하고, 그 분석을 통해 얻어진 결과가 해당 주제에 관한 한 국문학에 있어 보편적이며, 다른 나라의 문학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특수적 관계에 놓인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한다. 「가시리」와 「진달래꽃」 뿐 아니라 다른 갈래의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도 이러한 관계가 입증될 수 있다면 한국문학의 구조적 특질이 파악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가져 볼 수 있다.) 요새는 한국문학의 특질이 恨이니 멋이니 하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을 관통하는 특질은 무엇으로 볼 수 있겠는가에 대한 탐구의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다양하게 발전되어왔고, 계속 발달해 가고 있는 한국문학의 특질을 한두 마디로 요약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국문학의 구조적 특질을 여러 가지 찾아낼 수 있다면, 결국 문학연구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한국에서의 구조주의는 한국문학의 해묵은다는 사유를, 의미의 결정성보다는 미결정성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주의에서 강조하는 대상의 에 역점을 두기보다는 그러한 구조를 찾아내기까지의 대상의 에 역점을 둔다. 후기구조주의post-structuralism의 접두어 'post'는 'post-modernism'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脫'의 성격을 의미하기도 한다.소쉬르는 '지시어'와 '지시대상'이 두 개의 분리된 체계라는 것은 인정했지만, 그 두 체계가 결합될 때 의미의 단위가 얼마나 불안정해지는가는 깨닫지 못했다. 예컨대 우리가 사전에서 찾는 매 '지시어'마다 여러 개의 '지시 대상'들을 발견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하나하나의 '지시 대상' 자체도 사전에서 다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지시 대상'을 가진 또 하나의 '지시어'가 되어 버린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지시 대상'이 각기 새로운 전후 관계에 따라 자신의 색깔을 변해가는 카멜레온처럼 되어가면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후기구조주의는 그동안 스스로의 필수 조건인 질서 정연함을 무시하며, 스스로를 다른 '지시 대상'들과 상호 교차시키고 연결시켜온 '지시어'의 끈질긴 행위를 추적하는 데 주력을 기울여 왔다.) 이 문단은 레이먼 셀던(현대문학이론연구회 譯), 앞의 책, pp.113∼114.에서 인용한 것임.해체주의는 후기구조주의의 한 분야이다. 해체주의의 가장 중요한 어휘는 데리다가 창안해 낸 이다. 때로는 를 의미하기도 하고 때로는 를 의미하기도 하는 프랑스어 와 동일하게 발음되는 데리다의 신조어 는 와 를 동시에 의미한다. 예컨대 어떤 문학작품의 의미에 대한 해석은 다른 해석과 차이남과 동시에 그 문학작품의 절대적인 의미는 언제나 뒤로 연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견의 와 는 변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데리다는 강조하였다. 이렇게 보면 문학작품에 대한 절대적인 해석도 없고 일상적인 언술행위에서의 절대적인 발화도 없다. 다만 수많은 해석과 수많은 발화만이 있을 뿐이58.
    인문/어학| 2003.09.20| 8페이지| 1,500원| 조회(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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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교문학] 국문학 소재로서의 절[寺]
    文學과 建築―국문학 소재로서의 '절[寺]'1. 緖論 : 素材史 硏究의 方法論的 問題 提起문학과 건축을 주제로 비교문학을 시도한다는 것은, 방법론적으로는 주제론) "문학적 주제론이란 시대를 통한 지속을 강조하면서 문학 작품의 예기치 않은 차원을 노출하고 고형의 신화나 이미지들이 어떻게 현대성을 발휘하는지의 현상을 확인하는 연구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테마·모티프·소재·이미지·상징들이 어떻게 살아 있는 것으로 반사되고 또 지속적인 것으로서 포착되는가를 보여주는 방법이다. 연구사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소재사(素材使 : Stoffgeschichte) 또는 '테마톨로지(thematologie)'에 해당되는 분야이면서, 이의 갱신을 통해서 이들이 지닌 협소한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는 것이다." 이재선, 『한국문학주제론』 (서강대출판부, 1989) p.7.을 동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건축물이 문학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여러 작품을 통해 살핌으로써 하나의 소재에 대해 일정한 문학사적 자리 매김을 시도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선택할 수 있는 소재는 시대를 관통하여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시대에는 없었으나 특정한 시기에 국한하여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앞의 경우라면 문학사의 連屬性 문제와 연관하여 살필 수 있을 것이고, 후자의 경우라면 그 시대의 特殊性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素材史 硏究로서의 비교문학이 기여할 수 있는 바는 매우 폭넓으리라 기대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방법론 제시는 몇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건축이나 조각이 시적 대상으로 등장할 때, 특히 그러한 대상이 역사적인 것일 때는 그것을 표현한 시 속에서 건축물이나 조각품의 역사적 의의를 밝혀내는 일이 중요하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시적 대상과 시적 표현을 일대일로 대응시켜 하나하나 비교하여야 한다. 가능하면 대상을 잘못 표현한 부분까지도 분명하게 파악해 낼 수 있어재의 문학적 관심과 특징을 드러내는 데에는 보다 적절하게 이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이에 本稿에서는 하나의 試論的 차원에서, 국문학 소재로서의 '절[寺]'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인과 불교는 새삼 再論을 요구하지 않을 만큼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하는 데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나의 종교로서 불교를 信奉한다는 것은 정신적 차원에서 검토할 문제이겠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는 '절에 가는' 행위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삼국시대 불교의 流入 이후, 신라나 고려시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불교를 금지했던 조선시대에 있어서도 불교와 한국인의 관계가 계속되고 있음은 그만큼 불교가 한국인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국문학 소재로서의 절은 어떤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몇 갈래의 작품들을 통해 검토해 보기로 한다.) 本稿에서 다루는 작품이 恣意的이고 限定的이라는 사실은 本稿의 가장 큰 문제이자, 주제론 연구의 일반적인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주제사 연구의 의의와 전망에 대해서는 김현실, 「주제사 연구의 전개」, 이혜순 외, 『비교문학의 새로운 조명』 (태학사, 2002)을 참조할 수 있다. 또한 승려 등에 의해 제작된 불교문학 작품들은 국문학 소재로서의 일반적 특성을 드러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여 선별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향가나 사찰 제영시 등이 그러한 예이다.2. 국문학에 나타난 절의 양상(1) 漢詩의 경우好雨留人故不晴 봄비가 사람을 잡는지 일부러 개지 않아隔窓終日聽江聲 창 너머로 온종일 강물 소리 들리네.斑鳩又報春消息 산비둘기 다시 봄 소식 전하려山杏花邊 鳴 산살구꽃 가에서 다정히 울고 있네.―申光漢, 「阻雨信宿神勒寺」) 강석중, 「南韓 江岸의 名寺 神勒寺」, 민병수 외, 『사찰, 누정 그리고 한시』 (태학사, 2001) p.109.企齋 申光漢이 여주 신륵사에 들렀다가 비가 내려 절에 머무르며 쓴 시이다. 신륵사는 麗江 너머에 있으므로, 비가 많이 내려 물이 불어나면 쉽게 돌아오기 어려웠을 것이에게 잘 알려진 안축의 작품이다. 고려시대는 불교를 國敎로 삼았으므로 고려시대 문인의 시에서는 불교나 사원건축물(절이나 불상 등)들의 종교적 성격이 투영될 수 있었다. 그러니 漢詩에서의 절의 모습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상과의 연관 하에 살피는 것이 필수적이다.절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면서도 시대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에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佛敎의 문제가 시대에 따라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었다는 史實로부터 기인하며, 작가와 독자 모두가 이 문제로부터 쉽게 자유로울 수 없는 양반 사대부였다는 점과 대응된다고 생각된다. 계속 살펴보겠지만, 불교(절)와 문학의 관계는 작가와 독자, 시대적 偏向과 맞물려 개별 문학 갈래에 따라 다소간 양상의 차이를 나타낸다.(2) 古小說의 경우그런데 같은 古典文學이라 할지라도 古小說의 경우는 절이나 불교를 소재로 활용하는 데 있어 다소 자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최초의 한문소설로 알려진 김시습의 『金鰲神話』의 「萬福寺樗蒲記」의 경우) 본문의 줄거리는 심경호 역, 『금오신화』 (홍익출판사, 2000)에서 부분적으로 인용하였음을 밝히며, 인용 부분은 일일이 언급하지 않았다.를 살펴보자.전라도 남원 땅에 사는 양생은 일찍 어버이를 여읜데다가 장가도 들지 못한 채, 만복사의 동쪽 방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 고을에서는 3월 스무 나흘에 만복사에서 연등을 하고 복을 비는 풍습이 있어 그날도 많은 남녀들이 만복사로 몰려와 제각기 소원을 비는 것이었다. 날이 저물자 양생은 저포를 소매 속에 넣고 법당에 들어가, 저포를 소매에서 꺼내어 불상 앞에 내놓으면서 부처에게 저포놀이를 제안한다. 양생은 자신이 이길 경우 아름다운 아가씨를 구해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하고는 혼자서 저포를 던져 자신이 승리한다. 그랬더니 정말로 아름다운 아가씨가 나타나 자신 또한 배필을 구해 달라는 청을 하는 것이 아닌가. 불전 아래 숨어 있던 양생은 틈새를 통해 여인의 자태를 보고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어 불쑥 튀어나가 말을 건넨종 역, 『사씨남정기』 (태학사, 1999)를 부분적으로 인용했음을 밝혀 둔다.에서 유연수와 사정옥은 女僧인 묘희가 媒婆가 되어 맺어진다. 그러나 자식이 없던 사정옥(교채란이 아들을 낳은 후 사정옥도 아들을 낳는다)은 자신이 率先하여 남편의 첩으로 들인 교채란과 동청의 계략에 의해 유연수(유한림)의 집안에서 쫓겨난다. 이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사정옥은 우연히 묘희를 만나 암자에 머무르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服色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묘희의 질문에 사정옥은, "내가 이곳으로 온 것은 부득이한 일이었습니다. 본래 儒家의 자제이니 어떻게 僧服을 입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한다. 이는 불교에 관한 儒學者 김만중의 입장이 드러나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그의 다른 작품 『구운몽』이나 『사씨남정기』의 다른 부분에서 불교는 대개 긍정적(최소한 부정적이지는 않은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중요한 경계가 된다고 할만한 부분에 이르면 결국 儒學者의 입장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결국 유한림을 만나게 되며, 부부는 불상 앞으로 나아가 禮拜를 올리기도 한다. 이 역시 일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절을 보다 열린 자세로 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그런데 작자를 알 수 없으며 비교적 초기의 장편소설로 추정되는 『소현성록』의 경우는 이 문제에 관해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한다. 중국 宋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에서 소현성의 집안은 불교를 적극 배격한다. 가령 소현성의 아들 소운성은, 절은 요사스런 곳이라 하여 형제들과 함께 불을 지르고 노승을 활로 쏘려고까지 하는 등의 행위를 하며, 女僧이 집안에 들어와 집안 여인들에게 앞으로 있을 凶事를 말한 것을 알고 나서, 여승을 집안에 들인 奴僕 등을 엄히 문책한다.) 이 작품에서 불교와의 갈등이 심각하게 제기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女僧은 작품에 두어 차례 나타나 중요한 암시를 하는 역할을 한다.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소씨 집안 남자들이 결국 불교를 제어해 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불을 지르고 노승을 찌르려던 순간에는 소현성으로 꽃과 자신의 처지를 倂置시켰다. 사랑은 동백꽃) 이 시의 '꽃'이 반드시 동백꽃을 의미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런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선운사 동백꽃은 수령이 500년 가량 되었으며, 4월에 꽃을 피우고 질 때에는 눈송이처럼 후두둑 떨어진다고 한다. 시의 내용으로 보아 동백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이 떨어지듯 순간적으로 끝이 났지만 잊는 것은 그렇게 쉽지가 않다고 했다. 슬픔을 다스리기 위해 선운사 동백꽃을 찾았건만, 꽃 또한 이미 져버린 자신의 사랑처럼 "쳐다볼 틈 없이" 지고 말았다.보는 바와 같이 '선운사'는 제목에만 남아 있다. 선운사가 추억의 장소인지, 우연히 가 닿은 곳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기능은 앞서 살핀 신광한의 漢詩에서와 유사한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종교적 장소로서의 절의 의미는 전혀 가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절은 아무런 기능을 담당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解憂所)로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 앞 등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정호승, 「선암사」이 시의 화자는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고 충고하고 있지만, 결국 자신의 겪은 고통에 대한 치유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역시 절이란 곳의 종교적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인간의 영혼을 위로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종교적 장소로서의 공간 개념과 부분적으로 일치한다.신경림의 「실상사의 돌장승」에서 돌장승은 "하늘에 날아올라가/ 노래의 별을 따다 주기도 하고/ 물 속에 속꽂이해 들어가/ 얘기의 조약돌을 주워다 주기도" 하는 존재인데, 돌장승 또한 절과 마찬가지 상징적 개념을 가질 수 있는 불교 건축물이라 볼 수 있다면,
    인문/어학| 2003.09.20| 10페이지| 2,000원| 조회(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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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문학] 백석과 안도현 시의 영향관계 평가A좋아요
    백석과 안도현 시의 영향 관계1. 서론 : 백석과 안도현백석은 1912년 평북에서 태어나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1935년 등단 이후 『사슴』 등을 발표했으며 광복 이후에는 북한에서 활동한 탓에 1987년 해금조치 때까지 공개적으로 연구되지 못했다. 그러나 해금조치 이후 이동순 교수에 의해 『백석시전집』(창작과비평사, 1987)이 출간되자 在北 작가 중 가장 큰 관심을 모았으며, 1997년에 김재용 교수에 의해 『백석전집』(실천문학사, 1997)이 출간됨으로써 광복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백석의 시는 다양한 시어의 발굴, 독특한 리듬의 형성, 시상의 전개 등의 측면에서 당대의 다른 시인들과 구분되며 선구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백석의 이러한 선구적 측면은 이후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되는데 윤동주가 백석의 시에 심취하여 『사슴』의 필사본까지 만들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바 있다.안도현은 1961년 경북에서 태어나 1984년 등단 이후 지금까지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하 『전봉준』), 『모닥불』,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등의 시집을 上梓했다. 80년대에 발표한 『전봉준』, 『모닥불』은 80년대의 민중문학적 성격을 농후하기 드러내고 있는 데 비해 90년대 이후의 나머지 시집들에서는 그러한 정치적 색채가 옅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전교조 가담 문제로 해직되었던 작자의 개인사적 사연과 有關한 문제일 터이다.여하간 그는 현재 시와 더불어 『연어』, 『짜장면』, 『관계』 등의 산문 작업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은 문단의 중심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이며, 초기 시들에 비해서 비평가들의 관심도 다소 옅어지는 느낌이다. 이는 안도현의 시가 언어의 긴장된 구조를 포기하고, 비교적 평이한 언어로 일상사를 어렵지 않게 서술해 나가고 있는 경향과 대응된다. 이러한 결과 상당수의 시가 시적 긴장을 잃고 있으며, 몇몇의 시에 나오는/ 內地人 駐在所長 집에서 밥 짓고 걸레 치던/ 고 계집애 생각이 났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생활」안도현이 이 시에서 언급하고 있는 백석의 시는 「팔원(八院)」이라는 작품이다.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 리 묘향산 백오십 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駐在所長)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팔원(八院)」걸레를 빠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백석의 「팔원」에 등장하는 소녀가 생각났다고 한 것은 안도현에게 있어 백석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 존재인가를 암시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걸레를 빤다는 것은 그 제목과 같이 '생활'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백석 시에 등장하는 소녀의 걸레빨기는 그렇지 않아,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식민지하의 한 소녀의 불행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걸레를 빤다는 것은 일상 이상의 고뇌를 포함하게 되어, 「생활」에서의 걸레빨기는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로 결론지어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생활」에서 「팔원」의 소녀가 떠오른 것 자체가 「생활의 화자의 걸레빨기 또한 일상적 행위 이상의 괴로움을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일단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안도현이 일상 생활에서 백석과 만나는 장면인 것이다.안도현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제목은 백석의 詩句에서 따 온 것이다. 원문의 일부만 인용하기로 한다.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반복법의 활용백석의 시는 열거와 반복을 통해 독특한 리듬을 형성한다. 김소월의 경우와 다른 것은 소월의 시가 기본적으로 가시적 운율 형태로 나타나는 반면, 백석은 한 행의 길이가 긴 산문시 형태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게 나타나기 때문이다.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락잎도 머리카락도 헌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 짖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모닥불」점층법이나 점강법이 아닌 한 열거는 그 대상의 가치가 균일할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2연의 열거대상은 주목할만 하다. 3연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2연의 병치만으로 충분히 시적 성과를 인정할 만한 것이다. 그것이 단순히 따뜻한 풍경을 그리는 데 목적을 둔 것인지 이를 넘어선 사회·역사적 평등을 주제로 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백석 시 전반을 놓고 볼 때 前者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이밖에도 「넘언집 범 같은 노큰마니」, 「안동」, 「여우난골족」, 「고방」 등의 시에서도 시어와 문장 구조의 열거와 반복을 통해 백석 고유의 시적 분위기를 형상화 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적 분위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피자면 백석시의 반복·열거는 그가 반복의 대상으로 삼는 어휘와도 일정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토속적·향토적인 어휘, 일상적이면서 평이한 문장 구조의 반복·열거가 백석 시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독백 : 자기 응시시는 다른 장르와 비교할 때 기본적으로 독백의 장르라 할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또 다른 독백 구조를 활용한다는 것은 보다 내밀한 자기 응시를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시로 앞서 잠시 언급한 「흰 바람벽이 있어」와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백석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눈오는 밤 혼자 방 안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이런저런 상념들 속에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어떠한 구체적인 생각에 대한 묘사는 없지만 열거의 대상 자체가 나 자신을 더욱 더 깊이 응시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상상의 양상이 다른 것으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독백을 통한 응시가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인식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인 나타샤에 대한 사랑은 혼자 앉아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는 진술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독백을 통한 자기 응시에 다름 아니다.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 /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는 진술이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한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의 자기 응시가 보다 구체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윤동주의 「자화상」이나 「별헤는 밤」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된다. 광복 이전의 작품 중 이 정도의 私的 省察을 보여주는 시는 드물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언어 표현 : 것이었다, 생각하고백석 시를 읽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언어 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소월이나 안서의 민요조 시나 한용운 등 일부 시인의 시에 익숙해 있던 우리에게 백석의 언어 표현은 상당히 세련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哀調에 치우친 시들이나 정지용, 김기림과 같은 모더니스트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그만의 개성을 유지한다. 이는 된다고 할 수 있다.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아배가 밤참 국수를 받으려 가면 나는 큰마니의 돋보기를 쓰고 앉어 개 짖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개」 중그즈런히 손깍지베개하고 누어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이다―「가무래기의 樂」 중옛날 그 두보나 이백 같은 이 나라의 시인도/ 이날 이렇게 마른 물고기 한 토막으로 외로히 쓸쓸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두보나 이백같이」 중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중'것이다'의 활용은 더욱 독특하다. '것'은 동사적 의미를 명사화 시키기도 하고, 추측의 어미 뒤에 붙어 그 의미를 한정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백석의 시에서 '것이다'는 남발되는 느낌마저 없지 않은데 분명한 것은 그 진술에 대해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 상황 혹은 그 상황을 객관화시켜 전달하고자 할 때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생각한다'와 '것이다'는 문장의 의미를 한번더 시인의 사고를 통해 걸러 객관화 하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백석이 독백을 통한 자기 응시를 주요한 詩作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과 有關하다. 백석은 곳곳을 떠돌아 다니며 遊覽記라 할만한 시편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이러한 여행의 과정을 통해 백석은 스스로를 깊이 조망하며 객관화 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4.·열거, 반복법의 활용안도현 또한 반복과 열거를 즐겨 사용한다. 「집」에서 시인은 자신이 살아온 집에서의 추억을 열거하며 "삶이 참 팍팍하다, 앞으로 나아갈 것 같지 않다 여겨질 때/ 옛날 살던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 밥집」은 앞서 살펴본 백석의 「모닥불」과 유사한 시상 전개로 이루어져 눈길을 끈다.뜨끈뜨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중앙시장 그 밥집/ 어물전 아줌마도 수선집 아저씨도 먹고 가는 그 밥집/ 누구 하나 밥 한톨 안 남다.
    인문/어학| 2003.09.20| 9페이지| 2,000원| 조회(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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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소설] 소현성록 황후별전
    소현셩녹 황후별젼(1) 대송 인종 황졔 졍궁 낭〃 션인황후다 딪승상 강능후 소경의 필여시고 됴국부인 셕시의 소싶이라 명은 쥬슈시니 셕부인이 일짜 팅잉시의 긔몽을 어드싶 팅을셩을 삼키고 팅양졍긔를 쏘혀보고 그달붓혀 유신힝야 이십삭만의 힝만힝밑 산실의셔〃방광힝고 이향이 만실힝야 긔의한 증혐이 무궁힝며 휘 싶셩 품슈하밑 범뉴와 다도힝야 비록 신잎나 골격이 신이힝야 텬지졍밑을 모힛듯힝더니 졈〃 더셩힝밑 침묵언희힝고 엄슉단졍힝야 희노를 경도히 발치 아니며 츌입동작의 유범유로힝니 일까 칭찬힝고 팅부인 양시 싶랑힝물 졔 손녀 듕 더오러니 일일은 여러 손녀를 모화 안치고 진보를 흣허 그려 품을 각〃(2) 취밑할싶 다른 소져들은 닷토며 어지러이 사호고 명쥬와 진보며 보하를 탐잎힝되 휘 홀노 쌍아를 낫초아 시이불견이어다 슉모 한부인이 우으며 무러 가로딪 다른 아희다 져마다 다토아 집어가지되 너다 어이 일까도 가지〃 아니힝다뇨 휘 안셔히 딪왈 소〃 진보를 소녜 무어싶 쓰며 무용지물을 집어 무엇힝리잇가 팅부인이 희연이 등을 어루만지며 잎훌힝여 가로딪 이 아힝 타일의 만인지상이 되리로다힝고 남밑 형졔 모다 희락이 방지힝다 묵〃 침엄힝야 일빈일소를 가빛야이힝미 업싶니 모다 고히 녁이고 그 거〃의 십형졔를 돌녀가며 조롱하며 보칭나 현〃이 노함도 업고 즐기다 빗도 업싶니 도로혀 무미라 우으되 다만 그딪 인현셩공은 현싶 신의힝밑 명견만니힝다고로 녀아의 긔상이 범뉴와 달르믈 긔지힝야 깁히 근심원녀힝미 만터라 휘 팔셰의 니르밑 부풍(3) 모습힝야 용안은 부용화 아침 니슬을 먹음어 조양의 힝친듯힝고 셤〃셰요다 촉노를 묵것다 듯 약익은 비봉갓고 일쌍명목은 츄슈졍긔예 츈일효셩이 진슈의 빔쳤갓거다 셜부 옥골의 단슐호치 슈려침쥼힝여 엄용단좌한작 흡〃히 녀와씨 뇽상의 안잠갓고 엄위힝여 자연 긔딪힝난지라 풍광이 쇄락힝문 그 모부인니라도 밋지 못힝고 그 형 김참졍 부인니 쇄연한 미팅다 잠간 터온듯한딪 찬다한 광칭와 무궁이 흐억힝고 상활한 틱긔를 밋지 못힝니 여러 형졔 모힌 듕 나히 어리되 형뎨 남밑 스싶로 후 업싶거다 팅 낭〃이 깁히 감초샤 그 싶이 곽후의 슈쥼의 드러 농낙힝니 이다 궁비를 밑니드시니 팅낭〃 셩의를 예탁히 못힝리로소이다 팅후 답소왈 냥궁이 년소한 바의 금슬이 무흠힝믈 빛라거늘 후궁을 뵈여 밑음을 어이 다호게 힝리요 졔 다시 쥬왈 이다 불가힝여이다 션뎨 후궁을 가초 힝신힝슨 만승지엽이 션〃코져힝샤미니 엇지 곽후를 위힝싶 딪의를 폐힝리잇가 칭후다(13) 후궁을 칭즈려 힝다이다 언흘의 침젼으로 나아가샤 칭야의 소귀비를 부르시니 귀비 빛야흐로 곽후의 샤힝물 어더 침소의 도라와 오밑 종일 계힝의 졍입힝야 각녁이 쇠진힝고 심싶난니힝여 더복을 벗고 봉침을 오혀 잠와힝엿더니 상명을 젼힝거다 오직 보게야 칭병힝고 가지 아니〃 셰번 쳬힝시되 종시 유병힝믈 일컷고 요동힝미 업싶니 뎨 친히 손거를 타시고 현셩뎐의 님힝시니 귀비 머리링 아고 침샹의 몸을 더져 궁인을 시위힝야 죠을거다 갓가이 니르신딪 경동힝다 빛 업고 안셔히 니러 마짜밑 궁녀 쳐힝다지라 샹이 친히 춈을 빛히고 비를 딪힝시밑 촉힝의 더옥 쇄락힝여 광칭 일실의 조요힝니 비록 밑광의 신칭와 반비의 용싶이라도 빗지 못힝빛오 졍금단좌힝밑 슈괴함과 경황힝물 힝여시니 단엄승〃힝여 그 심쳔이(14) 하힝갓치 깁허 탁양치 못힝시니 한갓 셩덕믄명이 출어외모힝고 힝니 크계 긔특이 여기사 믈어 가로사딪 귀비 연긔 몃치나 되엿다뇨 딪왈 십오셰로소이다 뎨 소왈 짐으로 동년이로소니 금일이야 셔로 보미 가장 무싶힝도다 짐이 동궁으로 잇실 힝 소공으로 싶뎨지의 짜별힝더니 일조의 쳔붕지상을 당힝밑 군신지간 짜별지의 막혓시니 져빛린듯힝야 심히 결을힝거니와 귀비다 션뎨 친히 힝신 바의 짐으로 결발지 잇다지라 엇지 졍의 범년힝리오마다 입궐 칠팔년의 셔로 보미 쳐음이니 엇지 참괴치 아니리오 귀비 염용딪왈 신쳤의 아비 국은을 입사와 신쳤의 포방간셥힝오니 셔은이 망극힝온지라 다만 츈쳔힝올 힝링이로소다 샹이 문왈 귀비 츈싶이 의구힝거다 병블다힝미 므신 힝이요 귀비 딪쥬왈 칭병힝미 아니오라 진실노 질병이 잇싶(15) 오밑 역명힝엿싶오니 죄당관형이로소며 근노힝미 궁인과 일쳬라 곽후 조곰도 용납지 아니힝고 힝한 양상 이미인이 투긔힝나 귀비 시이부지힝야 다만 화평힝 힝이러니 일〃은 황휘 홀년 후궁들을 쳬힝여 술을 먹이시니 모다 고히 녁여 칭례로 좌링 졍힝밑 궁인이 옥빛를 드러 가득부어 경장을 귀비긔 몬져 드리니 귀비 임의 됴치 아닌 쥴 아나 힝일 업셔힝더니 궁인니 실슈힝여 잔을 업치니 힝희셔 불리 이러나난지라 좌우 궁인과 뉵궁이 딪경힝고 크계 소링힝야 안싶려상힝되 다만 귀비 불변안싶힝고 옥계의 다려 쳬죄 왈 신쳤이 경홀힝와 낭〃 셩심을 밧짜지 못힝옵고 싶송힝시난 향은을 업치오니 죄 깁도소이다(25) 휘 도러혀 핑계 슈죄왈 녜 엇지 감히 나희 쥬다 잔을 업쳐빛리리오 그죄 경치 아닌지라 힝니 츈원의 가도라 궁인 녀시 간왈 귀비다 뉵궁의 읏듬이오 팅후와 상이 공경힝시다 빛라 가히 멸딪치 못힝시리이다 휘 쳬이불문힝고 가도라힝밑 귀비 안싶이 화평힝여 가도이믈 어려워하난 빗힝 업거날 궁듕이 소동힝고 태후 드르신지라 가장 묵〃힝시고 이날 상이 현셩젼의 일르스니 귀비 업거늘 궁여다려 므르신딪 궁여 딪왈 오날 다젼 셜연의 실예힝사 츈원딪의 가드스믈 쥬한딪 상이 드르시고 명일 팅휘게 문안을 파힝시밑 쥬힝야 갈오딪 짜고로 임군이 이스되 황후 〃궁을 총집힝여 창궐힝다 법이 잇싶다잇가 태휘 왈 비록 맛당치 아니다 힝한 큰 허믈 아니라 엇지 족가힝리오 상이 블열 왈 젼졔 곽비와 소씨를 간팅힝싶 곽시 비록 졍궁이 되엿스나 갓흔 사족으로 의론치 말고 비록 궁인이라도 뉵궁의 모(26) 쳤힝오면 그 임군을 딪졉힝여 감히 경멸치 못힝오려든 힝물며 져의 근본니 삼딪 공경딪신의 짜손이오 션후업싶거날 엇지 멸시힝미 그 지경의 밋쳐 님군이 업사므로 아오니 어이 곽후 듕의 두리잇가 힝시고 드딪여 외젼의 나오샤 뎐교힝사 귀비를 노흐시고 졍궁 신들을 크계 츄고힝시니 곽휘 딪로힝사 식음을 전폐힝시니 상이 다젼의 임힝사 까링사딪 후의 거동이 심히 어지〃 못힝야 빛부힝다 환이 쉬우리니 인〃이 금슬지졍은 인녁으로 못한디라 짐의 힝지 한번 변힝면 두리건딪 현휘 두당〃이 올치 아니신 일의 어이 항복힝리잇가 빛번 쥰이셔도 밧들지 못힝옵고 군명을 거역힝오니 죄 어다 곳의 밋자오믈 모로올지라 신의 아비 일녀의 힝를 능히 면치 못힝올진딪 짜식이 되어 어이 안〃힝리잇가 다만 쥰기를 어려워 아니힝나이다 셜파의 밑녈힝미 셜상의 가상이라 일호 요동힝미 업싶니 상이 드르시고 어히업시 녀기사 졔어힝 계교 업싶믈 한탄힝시더라 귀비 이예 싶각힝여 갈오딪 져국이 강셩힝여 은총을 닷토밑 가히 욕된지라 다 부모 유쳬를 보젼힝여 심쥼의 감초여 일싶 박명을 감심힝고 반비의 더신궁을(37) 효측힝야 상통을 버셔나고 졍궁의 화락이 온젼힝며 가문의 쳬덕을 누욕지 말고 쳐회의 화를 면힝리라 다 일싶이 괴로올지니 한 부귀를 탐힝여 부모의 싶휵지은을 져빛리고 다 평싶을 병드리미 무익한 바의 무싶 귀힝미 이시리오 하다을 거싶리미 올치 아니믈 모로지 아니힝되 싶셰 브득이 군명을 거역힝야 븍궁 깁흔 곳의 짜최를 감초아 쳔츄의 밑은 일흠을 젼케 힝리라 의싶 이예 밋칭밑 부모 형뎨링 싶모힝야 싶로이 비회 춈가힝밑 누슈옥면의 지음씨고 홍협의 진쥐난낙힝니 좌우 궁인니 다 슬허힝더라 이에 마음을 널니힝야 누슈를 거두고 단쟝을 고쳐 죠양젼의 니르러 팅후긔 뉴힝딪 신쳤이 낭〃 셩은을 입싶와 일신이 안한힝오밑 시측의 힝나고져 아니힝오나 업드여 싶각힝딪(38) 부귀 극힝오면 조화옹이 승긔힝잎고 믈이 가득힝온즉 넘친다 힝오니 신쳤의 벼싶이 뉵궁의 읏듬이잎고 영총이 분의예 넘싶오니 여룬 복이 엇지 손치 아니힝리잇고 신쳤의 졸한 소견의 싶각힝온짜 쳔은이 가지록 망극힝잎고 은총이 늉듕힝오미 심히 두렵싶고 화려힝오미 궁엄힝온지라 이졔 북궁의 물너가 종신코져 원이오니 복원 낭〃은 신쳤의 졍싶링 싶피샤 허시믈 쳔만복걸힝잎다이다 팅후 드르시고 짜삼 권유힝샤 불가힝믈 니르시나 귀비 밑음이 쳤셕갓치 구든지라 팅후 그 졍셰를 가긍하사 허힝시니 귀비 이예 사은 하직힝고 믈너 황후긔 하직을 고한딪 황후 딪락힝야 금빛을 만히 샹(39) 싶힝시니 귀비 빛빛 사은힝고 힝 짜졍젼의 니르러 싶빛 하직한딪 샹이 귀왈 팅후 붕힝시밑 짐이 더욱 셰렴이 업싶므로 후궁을 찻지 못힝엿도다 이인니 쥬왈 황휘 근다 신쳤들을 싶로이 쥰이고져 힝여 짜로 보칭시니 큰 환을 버셔나지 못힝올가 셔워힝다이다 언미필의 곽휘 문의의 여어 드른 빛 되어 즉시 다다라 두 미인을 끄어 두딪리며 힝지져 왈 다 허믈을 황상의 힝려힝니 너희를 죽이리라 힝고 병상의 걸닌 칼를 힝혀 하슈코져 힝거날 상이 연망이 후의 손을 붓드러 칼을 아싶 더지고 가링싶딪 만일 이 거죄 창궐힝진딪(50) 짐이 비록 밀막으나 휘 능히 보젼치 (못)힝리니 잉분힝미 엇더힝리오 휘 더욱 노힝여 미인을 박칭고 상을 밀치니 목이 상힝야 피칭 버셔졌다지라 상이 딪노왈 휘 진실노 이리힝려힝다니잇가 휘 답왈 쳤이 금일 쥰을지언졍 가마니 잇디 못힝리로소이다 샹왈 아모리나힝라 휘 진노힝야 두 손을 드러 샹의 양협을 여러 번 침노힝되 샹이 어히 업셔 묵〃쳬좌링야 분긔을 비잎 진졍힝야 외젼의로 나가시밑 환자 엄문홍이 쥬왈 어이 용안니 과히 붉으시니잇가 샹이 한심 참괴힝시나 은휘힝 빛 업싶므로 슈말을 셜화힝신딪 엄문홍이 딪경 왈 폐하 엇지 황후를 폐치 아니시다니잇가 상(51) 이 가라사딪 션뎨 힝신 바로 삼년 초토를 한가지로 지다고 결발지의 잇시니 조졍이 듯지 아일가 힝노라 엄문홍이 쥬왈 집졍딪신을 부르싶 의논힝시미 맛당힝도소이다 상이 즉시 딪신을 입시힝라 힝시니 녀이간이 즉시 용젼의 닙시힝밑 샹이 〃일을 셜화힝싶 폐힝 의논을 힝신딪 녀이간이 맛당힝시믈 쥬달힝여 졔신을 모와 의논니 부운힝딪 임의 텬명이 힝다딪라귀왈 맛당힝시물 쥬달힝딪 경오츈졍월의 곽후를쏀 졍비를 다리워 냥녕궁의 다치고 냥미인을 졀로의 안치힝시고 힝 빛관을 모화 뎐교힝사 왈 짐이 불힝힝야 후비의 변을 만나고 인윤을 폐힝(52) 니 당〃이 올흔 일이 아니로딪 싶셰 부득이힝미오 졍궁이 업싶니 국모의 위를 비오지 못힝리니 힝니 간팅힝라 힝신딪 팅싶 원간니 쥬왈 신니 작야의 텬문을 살피오니 황후셩이 궁다의 빗최여 킹아싶오니 슈고로이 간팅힝시미 가치 아닐가 힝다이다 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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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어학| 2003.09.20| 14페이지| 2,000원| 조회(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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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소설] 소현성록 줄거리
    소현성록 서울대본 21본1) 송 태조시 자운산 장현동에 소광이라는 처사가 있었는데, 참정 양문광의 장녀와의 사이에 자식이 없어 대장군 석수신의 서녀 석파와 양인의 딸 이파를 첩으로 두었으나 역시 자식이 없다.2) 다행히 양부인이 2女를 생산(① 월영 ② 교영)한 후 선인의 현몽으로 다시 회임하나 처사 홀연 득병하여 생남을 보지 못하고 죽다.3) 14삭 만에 아들이 태어나 이름을 경이라 하고 엄히 가르치나, 소경은 엄친의 면목을 모름을 한탄하다.4) 월영은 참정 한경현의 子와, 교영은 상서복야 이기휘의 子와 혼인하나, 이복야의 집이 滅門하여 교영도 서주 땅에 안치되니 양부인이 교영에게 旌節을 지킬 것을 당부하다.5) 母命으로 소경이 과거에 응시하여 한생과 더불어 급제하는데, 이 때 한탄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대신 써 주어 자신은 장원하고 다른 이들(유한, 유경, 임소부 등)도 모두 합격시키다. 소경은 금문직사를 제수 받다.6) 정배 간 교영은 3년 만에 죄가 사해져 돌아오나 그동안 私通해 온 유장이 본부로 찾아와 그 사실이 발각되자, 양부인이 사약을 내려 교영을 죽이다.7) 소경은 평장 화한의 7자 2녀 중 장녀인 주은과 혼인하고 처소를 녹운당에 정하다.8) 소경이 호광순무사가 되어 일을 처리하고 예부시랑이 되어 돌아오는 중에, 도적에게 일가적몰당한 윤평장의 女兒가 구원을 호소하다.9) 소경이 윤소저를 구하고 의남매를 맺은 후 같이 돌아오니 양부인도 母女之義를 맺다. 소시랑이 친우 유지에게 시집보내다.10) 석파가 석소저의 글을 소경에게 보여주고 숙란 소저를 둘째 부인으로 권하나 소경은 관심 없다. 이에 화부인은 석파에게 매우 화를 내고 욕을 하나 오히려 소경과 양부인이 화씨를 나무라자 생병, 소시랑의 간호로 회복하고 옥동을 생산하다.(소월영-한씨 이야기, 소월영이 자운산에 있게 된 이유에 대한 설명 : 관련)11) 석파는 중매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다가 친가에 가는데, 소경이 마침 특지로 상서 겸 복야를 제수 받아 석부에 하례하러 가다.12) 석파가 계교로왕생의 개용단 사건을 해결하고 물에 떠오는 가시랑의 여아를 구출하여 혼인을 주선하여 서울로 보냄. 도화진인을 책하여 다시 개용단과 같은 약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등 공을 세우고 예부상서 참지정사가 되어 돌아오다.22) 일일은 한 도사가 나타나 일봉 서찰과 칼을 주며 이후에 쓸 곳이 있으리라 함.23) 이러구러 화부인은 5자 2녀, 석부인은 5자 3녀를 두다. 양부인이 이전의 夢事를 생각하여 男兒의 이름은 운자로, 女兒는 수자로 돌림하여 제명하다.24) 양부인의 부친 양참정 기세하고 삼년 지낸 후 양상서의 차자가 등과하여 크게 잔치하다.25) 소참정은 걸인 단생(단경상)의 비범함을 알고 자식의 사부로 삼아 가르치게 하다. 단생이 화·석부인의 아들의 종아리를 치자 화부인은 단생을 욕하나, 석부인은 오히려 자식을 불러다 종아리를 치다.26) 아버지를 그리던 참정은 위승상 집에서 부친의 화상을 얻어 사당에 걸다.27) 위승상은 청년 등과하여 벼슬이 정승에 이르렀으나 자녀 없음을 슬퍼하다가 원비 강씨 2남 1녀를 낳고 죽고, 後娶한 방씨는 오래지 않아 아들을 낳고는 강부인 소생을 해코지하려 하려 위승상은 일찍이 강부인 여아에게 아름다운 夫壻를 얻어주려 하다.28) 소경 25세에 우승상 제수 받고, 화씨는 경국부인, 석씨는 조국부인에 봉해지다. 나라에서 베푼 연회는 검소히 하다.29) 화부인과 주부 이홍이 창고 여는 문제로 대립하나, 승상이 자신의 명을 지킨 이홍의 편을 들어 화씨를 나무라다.30) 승상은 80이 넘어 棄世하고 그 자녀 기이함이 있는지라 별전을 지어 소씨삼대록이라 하다.(소현성 장자 운경에 대한 소개가 조금 있음)31) 위승상이 운경(화씨 1子)을 보고 청혼하니 양부인과 승상이 반겨 허혼하고 방씨(위승상 후처 : 단락 27)는 시기하다.32) 혼인 준비 중에 위공이 소저에게는 빙채로 온 한 쌍 관잠과 봉한 상자를 주며 급한 때 열어 보라 하고 두 아들에게는 구승상에게 의탁하라고 한 후 棄世하다.33) 방씨의 핍박에 위소저는 봉한 상자를 열어 남복하고 도피선택하여 조강인 형씨를 폐하라고 함.44) 승상이 불가함을 아뢰다가 하옥되고, 운성은 아비를 위해 조강을 폐할 것을 약조하자 상이 형녀로 절혼하게 하여 형부로 돌려 보내나 운성은 괴로워하다.45) 운성이 마지못해 공주와 결혼하나 정을 나누지 않다. 공주는 명현궁을 지어 처하고, 양태부인과 동렬에 앉는 등의 행동을 하여 소부에서 근심하고 운성은 못마땅해 잘 찾지도 않는다.46) 일일은 청주자사가 말 3필과 미녀 10인을 보내자, 승상 몰래 5창과 노는데 공주가 5창의 코와 귀를 자르고 옥에 가두고 대전에 사실을 고하니, 상이 소운성을 명초하여 질책하다.47) 사연을 들은 상이 부마의 말이 옳으므로 좋은 빛으로 이르고 명현에게 조서를 내려 부덕을 닦으라 함.48) 소현성의 6자 운의(석씨 子)는 태자소부 유한의 女兒와 혼인하다.49) 운성이 형씨를 그리워하다 몰래 형부로 가 형씨를 만나고 오고는 상사병에 걸리나 공주는 문병도 가지 않다.50) 운성이 점점 위중해지자, 팔왕이 상에게 고하여 형씨를 돌려 보내 둘째 부인으로 삼게 해 달라고 하여 허락받으나, 형부에서 갈등 끝에 보내니 운성이 쾌차하다.51) 형씨는 운성이 침소를 찾을 때마다 공주에게 갈 것을 간청하나 운성은 듣지 않다. 이에 명현공주는 형부인을 죽이려고 대궐에 글을 올려 황후의 명으로 자기 궁에 데려 가다.52) 운성은 형부인이 계속 멀리하자 다시 稱病하고는 승상의 부름에도 나아가지 않다가, 형씨가 나아가 사과하니 후에 아버지에게 가 장책을 받다. 태부인 만류로 멈추다.53) 형소저는 모든 것이 자기의 탓인가 여겨 자살기도하나 운성이 살려내 실패하다.54) 일일은 공주가 형부인에게 물에 들어가라 하는데 운현(4子)이 구해주니, 공주는 운성 등을 모함하여 운성은 하옥, 운현은 파직되고 형부인 또한 입궐시키다.55) 상이 운성을 죽이려 하자 형부인이 血書를 써 상에게 간하니 상이 절부라하고, 승상 부자를 다 방면하다.56) 일일은 공주의 보모가 형부인을 해하려다 부마가 와서 피하나, 엿들으매 형부인이 그에은 기뻐하다.67) 상이 부마 인수를 거두고 병부상서 겸 태학사 제수하고 형씨와 부합하라 명하니 운성은 명현궁 헐어 재목을 흩어 백성들에게 나눠주다.68) 형씨는 아들 데리고 돌아오니 모두 기뻐하다. 운성이 소영도 데려와 삼인이 원만한 부부로 즐기다.69) 승상, 자식들, 단선생과 선유하다.70) 운성, 승상의 내당에서 빛을 내며 울고 있는 보검을 발견하고 승상에게 알리지 않고 가져가나 승상이 원해 운성 주려던 것이라 함. 운성은 석 달 말미로 구주 승경을 보러 만리운 타고 떠나다.71) 운성, 여행 도중 산중의 쌍호를 죽이고, 절간에 든 다섯 요괴를 물리치다(계명산 송학사).(운성, 시를 지어 諸僧에게 보이니 壁上의 시와 짝이라 하여 가 보니 처사 소광의 시라 함)72) 도적에게 잡혀가는 세 여자를 구해주며 씨름판에서 오악신과 겨루어 승리, 다섯 요괴의 원수를 갚으려 처녀로 변한 구미호를 데리고 본부에 돌아오니 이를 알아 본 승상이 운성과 함께 데려가 죽이다.73) 운성, 형씨·소영과 갈등 중에 齊家之法을 세우고자 한다며 소영을 죽이려는 등의 소동을 하다 화해하여 형부인·소영이 모두 생남하다.74) 하루는 운성이 형부에 갔다가 다른 사위인 손생이 왔는데 집안 식구들이 모두 감추자 의아해하다가, 자신이 가지 않겠다고 한 船遊에 갑자기 나타나 손공을 놀려 울리다( 소재 해당 부분).75) 소승상 7子 운숙이 평장사 성우경의 손녀와 혼인하나 석파는 성씨의 못마땅함을 이르다.76) 성씨 별다른 허물이 없어 복록을 누리다.77) 승상의 8子 운명이 태상경 임수부의 딸과 혼인하는데 薄色이라 모두 놀라고 운명은 신방에도 가지 않으나 태부인과 승상은 임부인의 덕을 칭찬하다.78) 운명은 때때로 창녀를 모아 놀고 임씨 처소에 자취를 끊으나 임씨 조금도 개탄치 않다.79) 태종황제 재위 20년에 崩하고 진종황제가 제위에 오르다.80) 운명, 성례 3년 만에 처음으로 임씨 친당에 이르러 임씨가 쓴 시부를 보고 놀라며 칭찬하나 재취할 뜻을 분명히 가지다.81) 진종의 춘추절일을 운성을 30장을 치고 3일만에 용서하다.91) 참정 정창의 6자 3녀 중 장녀 강년이 운명을 사모하여, 정창이 사위를 삼고자 하다.92) 진종황제, 유학사-윤씨의 딸로 간택(정궁 장황후 승하로 인함, 장현명숙후)하다.93) 상이 정참정 딸을 운명의 3부인으로 맞을 것을 명하다.94) 이부인 꿈에 한 여자가 손에 칼을 들고 들어와 죽이려 하니, 운명이 몽사는 허사라 위로하다.95) 정씨 소가에 들어오니 이씨, 꿈에 발검하던 여자임을 알고 놀라다. 정씨는 이씨를 그리는 운명을 보고 언짢아하다.96) 이때 요동 오랑캐가 반하여 천제가 삼군을 거느려 위북에 이르렀으나 포위되니 소현성이 운성을 데리고 치러 가다.97) 태부인은 화부인에게 집안을 맡기고 석·소 부인과 함께 강정 윤부인에게 가며, 화부인을 경계하고 이·석 양파에게도 당부하다.98) 운명은 모친을 달래어 이씨를 취봉각으로 옮기고 즐기나 이씨는 달갑지 않다.99) 석파도 화씨의 처사가 이래저래 못마땅하다.100) 소경이 전당강에 이르매 홀연 대풍이 일어나다.101) 용왕이 시끄럽다며 船中人을 잡아먹으려 하니 소승상이 용왕을 잡아 철편으로 수백 장을 쳐 놓아보내다.102) 운남에 이르러 진을 치고 운성의 활약으로 도적의 예기를 꺾다.103) 승상이 적군의 움직임을 예상한 것이 모두 적중하여 大勝하고 자객이 닥칠 것마저 미리 알고 방비하다.104) 운남왕이 마침내 항복하나 왕비인 팽환이 불복, 소운성과 더불어 힘자랑(솥 들기), 활쏘기 등을 해 시비를 거나 완패하다.105) 술자리가 파한 후 번후 팽환이 운성에게 운우지락을 요구함에 대책하자, 팽환이 오히려 운성이 자신을 겁칙하려 했다고 모함하니 승상이 운성을 베려하였으나 진실이 밝혀져 용서하였으나 운성이 불승분노하여 팽환을 죽이니 승상이 운성을 백의종군시키다.106) 이때 소부에서는 정씨가 때를 타 이씨를 제거하고자 하여 승상의 문객 성영과 시녀 매섬 등을 이용하다. 성영은 소가에서 유정한 여자가 있고 잉태하였다 하며 이부인의 가짜 필적을 내어 주어 운명으로 하.
    인문/어학| 2003.09.20| 8페이지| 2,000원| 조회(2,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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