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사업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이 심해서 언론에 그에 대한 사실들로 매번 보도 되었던 적이 기억난다. 개발을 주장했던 많은 사람들의 논리와 환경보호를 주장하며 삼보일배로 절실함을 보여주었던 사람들의 논리의 대립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에서 분명히 중요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그것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그 가운데 있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그 답은 간단하다. 경제적 논리로 개발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겐 개발은 있을는지 몰라도 그 안에 사람은 없다. 죽음의 바다와 땅에서 사람이 일구며 살아가는 삶이란 결국 죽음을 향한 길이 아닐까 한다.인도는 암소 숭배를 통하여 석유 에너지 중심의 경제 구조가 아닌 생태적 경제 구조를 지녔다.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100%인 현 산업구조에서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과 함께,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는 암소의 소똥을 연료로 활용하여 난방효과뿐 아니라 각종 생활연료에 요긴하게 사용함으로써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적다. 이러한 활동들이 인간 중심적 가치를 소유한 문화와 경제가 아닌가 싶다. 현 세계는 환경 보호를 위한 세계적 관심사를 불러일으키면서 공동 문제로 인식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과 고민속에서도 환경은 계속 파괴 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개발을 통한 환경보호라는 궤변적인 접근을 했기 때문이다.생태적 경제기적은 이러한 것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제공해준다. 여기서 말하는 생태는 단순히 자연보호의 차원이 아니라 그것은 인간의 삶을 보장하는 경제가 미래에도 지속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에너지 의존도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강한 우리나라는 이러한 것에 대하여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자원의 접근성이 경제발전의 부침을 경정하는 중요한 항목으로 등장하여 이러한 것은 약탈전쟁과 민족들이 억압받고 착취당했으며, 현재에도 유무형의 전쟁과 억압 착취가 자행 되고 있다. 보이는 이러한 위협뿐 아니라 생태파괴를 통한인간의 편익은 오히려 목을 더욱더 조르며 호흡을 거칠게 하고 있다.먼저 생태적 접근을 할 때 노동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70년대 초, 로마 클럽에서는 성장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예측했다. 비로써 완전한 경제성장이 완전고용이라는 개념은 무너졌으며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경제성장은 한낱 꿈에 불과함을 알 수 있었다. 실업률의 증가로 노동의 의미를 생태적으로 접근함으로써 그 본래의 의미인 인간이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간을 위해 일이 존재함을 찾아야 한다. 일자리 창출과 노사 합의, 임금삭감과 동시에 노동 시간 단축 등의 고전적 방법으로는 완전고용의 달성에 한계를 들어났음을 여러 사례에서 보여 주고 있다. 그리하여 유연한 노동시간을 통하여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며, 유연성의 노동시간은 실업과 노동에 대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 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여성과 함께 노동과 가사를 절반씩 부담하는 50-50의 가사노동을 통하여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에 대한 제한을 극복할 수 있다. 이러한 훌륭한 교육을 받은 많은 여성인력을 활용함으로써 보다 나은 경제발전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완전고용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우리는 사회적·생태적 파국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다. 특히 경제의 생태화가 일어나면 사회 여러곳에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준다. 원자력 발전소 하나가 하는 일에 대하여 다섯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 또한 자연친화적이므로 의미 또한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함으로써 완전고용과 새로운 시간문화가 등장 할 것이다. 이러한 시간문화는 경제가 사람과 삶 전체에 봉사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었다. 노동을 통한 우리들의 물질적인 수인 수입이 더 적어질수록 비물질적인 가치의 추구는 더 중요해 질것이며 자가노동을 많이 하고 대안적인 에너지 정책과 교통정책을 펴게 됨으로써 미래엔 더욱더 돈이 필요없게 될 것이다.자연을 무시하는 인간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과도한 기술 풍조를 낳았다. 전지구적인 온난화는 우리가 재난의 길로 가고 있다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현재의 에너지, 교통, 물, 농업 정책들은 오히려 삶을 더욱더 파괴하는 앞장섰으며 지금은 전 지구 전체의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원자력 발전소의 건립과 원전 사고, 핵페기물 처리문제, 지구 온난화이다. 더욱이 산업국가의 정치는 이러한 것들에 대한 어떠한 대책과 비전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쳐 지구 온난화를 극복해야 한다. 정치가 에너지 생산과 공급 시스템의 구조를 바꾸어 분산적인 에너지 수급으로 해야 하며, 우리 모두가 에너지를 절약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대안적인 에너지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환경친화적이고 값싸고, 재생 가능한 방식으로 얻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생태 사회적 시장경제로 빠르게 변화를 해야만 하며, 이는 정부, 기업 투자자, 그리고 소비자들이 국가 내에서 뿐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모든 행동을 도덕적인 기준에 맞출 때에만 가능해진다. 대안적인 에너지로는 식물에너지가 있으며(C4억새를 통한 에너지 공급),풍력을 통한 에너지원 공급, 태양을 통한 에너지 공급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에너지 전환은 지구 기후의 구원이 가능하게 한다. 일본은 이러한 분야에 왕성하게 도전하여 보급화에 힘쓰고 있어, 빠르게 적응하여 구원으로 향하고 있다. 이는 더디게 변화하여 죽음을 인식하지 못했던 공룡원리를 빠르게 버리고 적응능력이 뛰어나고 변신을 잘하는 나비 원리를 받아 들여야 하며, 오직 이런 사회에서만 미래가 있다. 무한하고 값싼 에너지원인 태양, 바람, 물, 바이오매스, 지열, 그리고 태양전기 수소의 이용은 전 세계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며 이는 일자리를 창출 할 것이고, 환경을 구할 것이다.대다수의 경제적 빈국들은 인구증가가 환경오염의 주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는 부유한 나라들의 잘못된 에너지, 교통 정책이다. 즉, 인구가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가 너무 많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이다. 내륙의 수상 운송기간과 도로 교통의 경우는 비용의 대부분이 떠넘기고 있음에도 그 복구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자동차 정책은 교통정책이 아니다. 이 정책은 철도 교통에 적대적이다. 철도산업에 대한 투자 미비는 자동차를 기반으로 하는 개인 교통수단이 더욱 활성화 되게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자동차 기반의 사회구조를 생태학적 교통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로 인한 각종 환경오염과 에너지 낭비, 또한 소도시 인구에 상당하는 사람들이 장애인이 되는 등 사람들의 삶을 위협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자가용을 포기함으로써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 즉, 교통 전환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 필요하다. 대중교통 시스템을 잘 조직하고 서비스 설비를 늘림으로써 교통전환을 할 수 있다. 교통체계를 생태적으로 전화할 경우 우리의 생활은 일자리까지의 가는 길이 줄어들고, 자전거나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며, 장거리는 철도가 더 매력적인 것으로 등장한다. 또한 많은 여가를 집에서 누릴 수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철도개혁의 시급성이 요구된다. 자동차와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철도 개혁을 실시해야 한다. 그리고 전기, 태양 수소, 또는 바이오연료로 움직이는 태양 자동차를 통해서 생태적 교통체계를 달성 할 수 있다. 이러한 에너지 전환과 교통 전환은 모든 사람이 일자리와 풍요를 누릴 수 있게 하는 데 핵심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사회과학에 대하여 배웠으면서도 새롭다는 것과 지금까지의 사회과학에 대한 방법 및 특성에 대하여 심도있게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먼저 저자는 총 13장에 걸쳐서 과학을 안전히 객관적인 방법에 의해 대상의 본질을 차츰 차츰 밝혀 나간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또한 객관과 주관의 상호 연관성, 역사 발전의 불연속성, 가치관의 혁명적 전환기에서 우리가 취할 태도 등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하도록 유도 해 나가고 있다.1, 서론 : 역사의 역할저자는 과학의 발전 에 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잘 나타내주는 말이 있다. 역사가 어떻게 정의되느냐에 따라서 과학의 이미지가 달랄 수 있다. 교과서 내지 교육용 교재로부터 얻어진 과학의 개념이란 마치 어느 국가의 문화의 이미지를 관광안내 책자나 어학교본에서 글어낸 격이나 다를 바 없이 실제 활동과는 잘 맞지 않는다.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 고찰을 통한 과학사의 서술이 암시하는 것은 역사의 역할이다.이러한 과학사의 서술들은 과학의 한 측면을 두드러지게 드러내게 된다. 관찰과 경험을 통한 과학적 믿음에 대한 제한은 결정과정에 개인적, 역사적 사건으로 이루어진 임의적인 요소가 그 구성성분으로 끼어들게 되기 때문이다.이런한 전문분야의 공약이 기존 전통을 파괴하는 이상 현상들을 더 이상 지탱해 줄 수 없을때 비상적(ExtraOrdinary)한 연구들이 시작되며 이를 과학 혁명이라 부른다. 이러한 새로운 이론의 동화는 기존 재구축과 기존 사실의 재평가를 요구하는 데, 이는 한 사람에 의해서 또는 하룻밤 사이에 완결되는 일이 거의 없는 본연적으로 혁명적인 과정이다.2. 정상과학에로의 길정상과학이란 과거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히 기반을 둔 활동이다. 이러한 정상과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첫째, 과학 활동의 경쟁 방식을부터 낡은 옹호자를 떼어 낼 수 있고, 둘째, 새로 형성된 그룹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융통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가지 특징을 가지는 성취를 패러다임이라고 부른 사이에 일치 정도를 증진시키면서 패러다임 자체를 더욱 명료화 시킴으로써 달성된다.저자는 정상적 또는 패러다임에 기초한 연구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를 좀더 명백하게 밝히기 위해서 정상과학을 구성하는 문제들을 분류하고 설명하였다. 먼저 사실-수집이다.제1부류는 패러다임이 사물의 본질에 대해 특히 뚜렷하게 드러내 보여준 것으로 밝혀진 사실들의 분류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 사실들을 적용함으로써 패러다임은 그 사실들을 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보다 다양한 상황에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제2부류는 패러다임 이론으로부터의 예측들과 직접비교할 수 있는 그러한 사실들을 향한 것이다. 이론과 실험의 일치를 증진시키거나 또는 그런 일치가 증명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찾아내는 일은 실험학자와 관찰자의 기술과 상상력에 끊임없는 도전을 제기한다. 이러한 일치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사실보다 패러다임에 더 의존한다. 제3부류는 패러다임 이론을 명료화하기 위해 수행된 경험적인 연구로 이루어지는데, 이때 패러다임이론의 나머지 모호성의 일부를 해결하고 이전에는 단지 관심을 끄는 것에 그쳤던 문제들에 대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허용하게 된다.두 번째 정상과학의 이론적 문제들이다. 정규적인 이론 연구의 일부는, 작은 부분에 불과하긴 하지만 단순히 기존 이론을 이용해서 고유의 가치를 지닌 사실적 정보를 예측하는 일이 된다. 또한 이론적 고찰을 통한 목적은 패러다임의 새로운 응용을 제시하기 위해서거나 또는 이뤄졌던 응용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패러다임의 명료화의 이론상 문제이다. 보다 정량적이고 보다 정성적인 과학 양쪽에서 문제들의 일부는 단순히 재공식화에 의한 패러다임의 명료화를 목표를 삼게 된다.하나의 패러다임 재공식화하는 이와 동류의 작업은 과학의 모든 분야에 걸쳐 끊임없이 진행되어왔으나, 그런 것들의 대부분은 저자가 사례를 든 재공식화보다 훨씬 더 뚜렷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불러왔다. 그러한 변화들은 패러다임 명료화를 겨냥하는 것으로서 설명된 경험적 연구의 결과로부적, 개념적, 그리고 수학적 수수께끼들을 풀어내야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패러다임이 성립된 이후의 정상과학에서는 풀이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문제들의 목록을 만들 수 있고, 그 이후 과학자 사회의 주요한 연구활동은 그 제한된 범위의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정상과학의 연구활동 대상이 되는 퍼즐에는 해답이 있다는 것 외에 해답의 본질과 그것들이 얻어지게 되는 단계를 모두 한정짓는 규칙도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규칙은 이론적, 기기적, 개념적, 방법론적 차원이다. 이러한 규칙들은 정상과학에서의 실제활동의 본질을 밝혀 준다. 그러나 그 규칙들이 그 자체만으로 그 분야 전문가들의 활동에서 공유되는 모든 것을 규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상과학은 고도로 결정적인 성격의 활동이지만, 그러나 전적으로 규칙에 의해서 결정될 필요는 없다.5. 패러다임의 우선성어느 시대의 전문분야를 관찰해보면, 일반적 패러다임을 찾는 것은 쉬우나, 공약을 찾는 것은 어렵다. 즉, 해답들을 영구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특정한 추상적 특질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패러다임의 완벽한 해석, 합리화에는 동의하지 않거나 또는 그런 것을 얻어보려고도 하지 않은 채 패러다임의 확인(identification)에서는 의견의 합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언어게임을 예로 들면서 패러다임의 우선성에 대하여 더욱 구속력 있고, 완전 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즉, 규칙 없이도, 낙하지점은 예층가능하다라는 패러다임을 믿는다란 것이다. 패러다임은 규칙들의 개입 없이도, 정상과학을 결정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 이유 네가지는 첫째, 특정한 정상가학 전통을 주도해온 규칙들을 찾아내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 둘째, 과학교육의 성격에 있어서, 새로운 이론과 그 적용이 계속적으로 교과서에 실리고, 이들을 공부하는 것 보다 직접 실험을 통해 깨우치는 것 및 추상적 개념화의 터득이 더욱 의미있기 때문이다라는 것 , 셋째, 과학교육의 이러한 결과들은 패러다임이 개념화된 규칙을 통해서 뿐 아니라, 직접 모혐질문을 통해 과학적 발견의 어떻게 이루어지고 받아들여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첫째, 언제 발견되었는가? 새로운 종류의 현상을 발견한다느 것은 필연적으로 복합적인 사건으로서ㅡ 무엇인가 그것과 그것이 무엇인가를 둘 다 확인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즉, 연구자의 패러다임이 그로 하여금 그 현상에 대한 채비를 갖추게 하지 못한 것은 새로움을 인지하는 길을 여는 데에 필수적인 구실을 한다. 그러나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한 것은 발견을 향한 전주 일뿐이다.둘째, 발견은 패러다임 변화를 포함한다고도 말 할 수 있는가?이론에 의해 미리 예측된 발견들은 정상과학의 한 부분일 뿐이며 새로운 종류의 사실을 파생시키지는 않는다고 말해왔기 때문에 이에 관해서는 시기가 중요하다. 패러다임 이전의 시대와 패러다임의 대규모 변혁이 진행되는 위기의 시기에 과학자들은 그 자체로 발견의 길을 지시할 수 있는 갖가지 추론적이고 명료화되지 않은 이론들을 전개시키기 때문이다.이상에서 보면 패러다임에 의해 새로움을 지향하게 되지 않는 정상과학 이상현상의 출현, 저향, 새로운 패러다임의 성립과 같은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움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것은 과학자사회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압력을 주게 되고, 이러한 압력에 의해 이상현상이 감지되며, 이상현상의 발견들 중 과학자사회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패러다임의 확립에 도움을 주게 되는 것이다. 궁극적인 새로움의 발견은 결국 압력에 의해 만들어진 특수장치와 그 장치를 가지고 무엇을 예측해야 하며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를 정확히 가려낼 수 있는 과학자의 인식능력에 의해 이워진다.이장에서는 정상과학은 내부로부터의 변화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7. 위기에 대한 반응대다수의 혁명들은 이상 현상에 대한 매우 오래되 인식으로부터 야기되는 위기감에 의해 탄생했다. 이러한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태는 정상과학의 수수께끼들이 좀처럼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다. 일단 하나의 과학이론이 패러다임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면, 그 이론은 그 하며 실험은 끝없이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이상현상을 특별히 긴급한 문제로 만드는 상황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에 대한 완전한 답은 없으며 외부적 요인과 같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쿤은 말하고 있다. 이상현상이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퍼즐 이상의 것으로 보이게 될 때에 위기가 시작되면 비상과학으로의 이행이 시작되는 것이다.이러한 위기 기간의 연구는 패러다임이전 시절의 혼란스러운 연구와 매우 유사해진다. 다만 위기의 연구에서는 견해차이의 초점이 보다 적으며 명확하게 정의된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는 정상과학이 궁극적으로 위기를 야기시키는 문제들을 다룰 수 있다고 밝혀지거나, 문제가 너무어려워서 미래 세대의 몫으로 넘겨지거나, 새로운 패러다임 후보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그것의 수용을 놓고 잇따른 투쟁이 벌어지는 세가지의 방식 가운데 하나로서 종결된다.이젠 비상적 연구란 무엇인가 살펴보자 위기가 많이 진전되기 이전에 새로운 패러다임은 덜 발달된 상태로 모습을 드러내는 수가 많다. 라부아지에는 패러다임의 사소한 붕괴만을 가지고 그 분야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과학자는 끊임없는 추론적인 가설들을 내세우려고 애쓰게 되고, 성공적인 경우 새로운 패러다임에 이르는 길을 열게 되고 실패하는 경우 대수롭지 않게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상적 연구는 때때로 철학적 분석으로 진행되며, 문제가 생긴 좁은 영역에 관심을 집중시켜 새로운 발견들을 양산하게 해준다. 여기서 우리는 위기가 어떻게 상투적인 틀을 이완시킴과 동시에 근본적인 패러다임 변동에 필요한 증대분의 데이터를 제공하는가를 보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정상연구에서 비상연구로 옮아가는 증세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현존 패러다임에 대해 이전과 다른 태도를 취한다. 따라서 연구 성격이 바뀌게 된다. 경쟁적인 명료화의 남발, 무엇이든 해보려는 의지, 명백한 불만의 표현, 철학에의 의존과 기본요소에 관한 논쟁이다.8.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요성앞장에서 과학혁명이란, 보다 옛 패러다임이다.
1.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요약{맥도날드화란 패스트푸드점의 원리미국 사회와 그밖의 세계에 더욱더 많은 부분들을 지배하는 과정 으로 보면서 이는 패스트푸드업 뿐 아니라 교육·노동·의료·여행·여가·다이어트·정치·가정등 사회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맥도날드화는 도저히 침투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제도와 세계의 여러 부분에서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맥도날드는 미국의 상징이 될 뿐 아니라, 사회 안팎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고,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대학, 군대, 항공 등으로 뻗어가고 있으며, 이를 본뜬 맥(Mc)으로 시작되는 별칭을 차용할 정도로 확산되었다.이러한 맥도날드화의 성공을 이끄는 핵심은 효율성, 계산 가능성, 예측가능성, 통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공들은 편이성이라는 이점과 함께 다양한 이점을 주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즉, 이러한 합리적인 세계로 필연적으로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 합리적 체계는 인간의 이성을 부정하는데 기여하며 따라서 종종 비이성적이다.현재의 맥도날드화는 막스베버의 이론에 바탕을 둔 것같이 근대가 합리성이 진전되는 것으로 보고 합리화가 일어나게 되면 인간은 쇠감옥 에 갇힌다고 본다그 선례들로는 유대인의 대학살과, F.W.Tylor 가 창안한 관학적 관리와, 헨리포더의 조립라인, 레비타운의 교외 대규모 주택단지, 쇼핑몰, 그리고 최초의 맥도날드를 들고 있다. 즉, 이러한 선례들은 베버의 합리성을 근간으로 일상의 삶에 침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 베버의 합리성은 형식합리성일뿐 내면적으로는 합리성의 불합리에 갇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럼 여기서 그 맥도날드화의 기본특성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효율성이다. 즉, 주어진 목적을 위해 최적의 수단을 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스스로 목적을 위한 최선의 수단을 찾지 않고, 그 대신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서 이미 발견되어 제조화된 최적의 수단에 의존한다. 패스트푸드점은 효율적 식사를 향하여 햄버거를 준비하는데 석쇠에 굽는 것, 속도를 높이기 위한 메뉴간소, 절차간소, 좀더 효율적 운전자용 창구등 절차의 간소화와 제한된 메뉴와 같은 제품의 단순화, 고객에게 일시키기등으로 이루어 졌으며, 대학교육 또한 객관식 시험실시, 문제제공(컴퓨터디스켓)등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며, 조립라인을 상상하게 하는 의료센터 또한 효율성 추구의 경향을 가진다.이러한 효율성의 예들은 위와 같은 비슷한 형태로 우리사회에 나타난다.둘째로 계산 가능성이다. 여기서는 합리성의 양적 측면을 살펴보고 있다. 셀 수 있고, 계산되고, 수량화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양에 대한 과정과 결과에 대한 강조는 질을 대신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이러한 양에 대한 강조는 무엇보다도 질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페스트 푸드산업에서 와퍼(whopper), 웨일러(whaler)등과 같이 양에 대한 강조, 고객이 싼값에 많은 양을 먹는 것 같이 착각하게 하고, 45,36g의 패티의 무게, 3분이내 음식 제공등 생산과 서비스 과정의 수량화에서 나타난다. 교육에서는 평점, 학점, 등급 등으로 수량화를 강조한다. 의료계에서 1인당 진료시간 제한, 1일 진료 환자수를 제한함으로 비용절감과 수익증대의 수량화에 대한 강조를 하며 그 외 기타영역에까지 이 계산가능성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셋째로 예측가능성이다. 합리성에는 시간과 공간에 구애 않는 예측가능성을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합리화된 사회는 규율, 질서, 체계화, 형식화, 관례, 일관성, 조직적 운영 같은 것들을 강조한다. 이러한 예측 가능성은 쉽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며, 일상에서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 주지만, 소비, 노동, 경영등을 모두 정신을 마비시키는 관례화된 업무로 바꿔놓는 것이다. 패스트푸드 산업에서는 같은 색깔과 모양으로 고객들에게 예측가능성의 느낌을 불러 일으켰고, 종업원의 각본에 의한 의례적이고 관례적인 행동, 업무지침을 통한 종업원의 행동예측, 원료와 생산의 표준화에 의한 제품의 동일등에서 나타난다.교육에선 유사한 교재, 객관식 시험등에서, 의료는 관료조직, 정부, 제3자 지불인에 의해 현실화되고 있다.넷째로 통제의 증대 및 인간이 무인기술로 대체되는 것이다.합리화가 되어가고 있는 어떤 체계에서든 불확실성, 예측불가능성, 그리고 비효율성은 주로 사람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통제를 늘리려는 노력은 대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일단 인간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면, 인간의 행동을 기계적 움직임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기계처럼 행동하게 되면, 로봇 따위의 기계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패스트푸드산업에서는 무인기술에 의해 미리 만들고, 기계·규칙·절차를 설정함으로써 제품과 과정의 통제를 실시했고, 빨리먹고 나갈 수 있도록 고객들을 통제했다.교육에서는 강의시산 배정, 강의 평가제, 학생테스트, 규칙과 규정준수, 수업시간과 수업진도등을 통하여 나타나며, 의료에서는 컴퓨터 진단에 의한 의사 통제, 제3지불인, 연방정부등에 의한 통제에서 나타난다.다섯째로 합리성의 불합리성이다. 합리적 체계는 합리성을 제한하고, 훼손하며, 심지어는 파괴하는 일련의 불합리성을 낳는다. 비효율성으로 페스트푸드점의 긴줄에서, 비용측면에선 패스트푸드점보다 집에서의 식사하는 것이 비용의 효과를 볼 수 있으며 맥도날드화에서는 추가비용까지 지불하면서 비인간성과 비효율성을 다룬다.또한 실제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그렇게 믿게 하는 효율성과 절약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다.맥도날드화는 건강과 환경에 대한 위협을, 고객과 종업원간의 각본에 의한 상호작용으로 비인간화를, 가족간의 공동의 단란한 식사를 없애므로 비인간화를, 사회의 국가의 다양성이 아닌 동질화를 추구함으로써 반인간적, 심지어는 인간파괴적인 비인간체계로 나아간다.의료에서는 환자를 인격체가 아닌 숫자로, 조립라인의 제품으로 비인간화를 초래하고, 교육에서의 합리화는 인간적 상호작용의 단절은 교육의 불합리성을 낳는다.이러한 맥도날드화의 특성들로 맥도날드하의 심각한 불합리성에 부딪히게 된다. 맥도날드화의 쇠감옥 을 합리 시스템에 의해 사람들은 갇힘을 경고하고 있다. 포스트모던 현상속에서 산업사회와 후기 산업사회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연장선상에 있다, 즉 맥도날드화가 우리 사회가 향해가야 할 비관적 운명이다.사회의 막강한 맥도날드화는 출생, 죽음, 그리고 그 이전, 이후 단계에까지 우리 사회에 파고든다. 이런 맥도날드화된 사회에서는 벗어나기 이해서 노력해야 한다. 맥도날드화의 불가피성속에서 그 속의 투쟁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인간 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이다.2. 우리나라 사례와 연관하여 생각해보기우리나라도 합리성, 효율성이라는 명목하에 많은 부분에서 우리 사회에서 맥도날드화가 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어 본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까지얼마나 많이 맥도날드화된 사회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그 속에 오히려 순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아 볼 수 있다.우리사회의 그러한 부분들을 살펴보면 첫째, 우리나라의 IMF현상 속에서 우리나라가 취하고 있는 경제 부분에서 그것을 살펴 볼 수 있다. 구조조정의 목표는 합리성이고, 저비용 고효율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다. 좀더 합리화되어 가면서 스스로의 자화상은 없어지는 것이다. 합리화를 위해서 사람의 삶이 그 두 번째가 됨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