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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와 미국의 전통, 공간의 연속성과 월드 월리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와 미국의 전통, 공간의 연속성과 월드 월리츠순서건축에서의 미국의 전통건축에서 흐르는 공간의 연속성워드 월리츠의 특징들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을 이해하려면 그의 디자인 철학을 우선 알아야 할 것이다디자인 철학은 철학은 그의 가치관,인생관,경험들이 통합되어 나타나는데 이것을 알고 나면건축가의 건물의 특징과 추구하는 것을 알수 있게 된다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물에 흐르는 특징은 자연과 건물의 조화 즉 유기적 건축과 미국의 전통을 표현하려고 했다우선 미국의 전통을 보면 미국이란 나라는 1620년 메이플라호 이후 많은 이민자가 이주했고 19세기 말까지 계속된 서부 개척시대였던 나라이다그래서 항상 자연과 같이 생활 했으며 프런티어 정신에 입각한 계속된 개척을 했었다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이것에서 미국의 전통을 찾으려 했다당시 미국의 건축은 유럽 문화의 사조속에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건축이라는게 없었고 단순히 유럽 건축의 모방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항상 미국의 건축을 꿈꾸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전통에서 자신만의 건축의 해답을 찾으려 했다미국역사속에 흐르는 건물적 특징을 보면 우선 물질보다 공간이다. 당시 유럽에서 이주한 그들은 당장 피난처가 필요했지 장식적이거나 고풍적인 집이 필요하지 않았다피난처로서 살기 위한 실내공간,즉 내부공간 형성이 제일 우선 순위가 되었다두 번째 특징은 평탄한 벽면이다. 어쩌면 첫 번째 특징에서 자연히 따라오는 관계일 것이다피난처가 우선되었기에 장식이나 꾸밀 여유가 없었을 것이고 특별한 노하우가 없었기에 단순히 통나무를 쌓거나,나무판자를 붙이는 수준에 머물러 유지되었고 청교도적인 정신에 입각해서 안정된 이후에도 그런 특징이 유지 되었다세 번째는 일실 개념과 오픈 플랜이다. 우리가 흔히 미국 영화에서 볼수 있는 오두막을 보면 이 특징을 알수 있다 . 당시는 이주의 시대라서 특별히 사적인 공간이 없고 하나의 공간으로 충분했고 칸막이의 존재도 필요 없었다. 가장 원시적인 주거 형태 이면서도 가장 자연스런 주거형태로서 여기서 또다른 미국의 전통을 찾았다넷째는 난로를 중심으로 하는 공간 개념이다. 개척 시대부터 난로는 따뜻한 가족의 상징이고 고향의 상징이였다이런 특징적인 모습이 미국의 전통이라 생각했고 이런 개념을 자기의 건축에 나타냈다우선 공간에 대한 그의 탁월한 생각은 주택 디자인에 2개의 서로 연관된 표현에 나타난다첫번째는 미국 전통에서 시작된 내부공간과 자연의 조화을 염두해서 내.외부공간의 수평확장을 통한 주변경관을 끌어 드리는 것이다.그 예로 유리 칸막이와 둘러 싸인 벽들은 공간을연결시키기 위해 바깥쪽으로 선회하는 지붕창 같이 부러져 있는 형태가 있고두 번째는 주택의 내부 분할을 전부 소형화 하거나 없애는 것이었다그것들은 견고한 벽보다는 칸막이처럼 작용하는데 실내 방들에 대한 전통적인 구획 생활을 분리된 부분으로 나누기 보다는 통합하는 연속적인 공간으로 대체되었다건축의 본질이 용기가 아니고 용기안의 공간임을 실현한 것이다다음은 벽면의 평탄함인데 초기작품부터 많이 나타 나는데 그것이 미국의 전통을 계승한것이라고 평가를 받을수 있다.물론 어릴적 프뢰벨 게임의 영향도 있을 것으로 평가 된다그의 작품에서 벽의 돌출보다는 수평의 띠장식이 되어 있는 벽과 리본 장식이 된 유리가 있는 중간 부분은 깊고 돌출된 처마에 의 해 완전히 평면의 비례를 보여주는데 평탄한 벽을 나름대로 재해석한거 같다세 번째는 일실 개념과 오픈 플랜이다. 그 당시 유럽등의 개인적인 공간을 중시하는 분리된 공간을 추구했는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생활 기능들을 분리된 방들에 할당하기 보다는 당일 공간의 연속체로 서로 연결하고자 했다. 그리고 굳이 많은 사생활이 필수적일때 칸막이를 사용했다. 거실 구역에서 문을 제거한 것이다인간을 건물의 주로 생각해 건축적 공간을 자유화 시켜 불필요한 파티션 없앴다. 즉 family house에서 open plan을 제공 한 것이다네 번째는 난로에 의해 상징화된 대지와 더불어 중심간에 대한 관념이다벽난로는 내부 공간에 중심을 제공하고 전망에서 주택을 정착시킨다.라이트는 친교를 위해 벽난로에 모일지라도 거주자는 주택의 중앙을 결코 차지 할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수평공간은 벽난로로부터 외부의 빛과 전망을 향해 확장 팽창되며 집 주변에 있는 경관과의 연속성을 부여하였기에....단순히 벽난로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러한 특성이있는 것은 아니고 주택의 어둡고 사적인 은거지 내에서 주택 중력의 중심에 있는 벽난로는 성당의 것과 유사한 친밀감과 신비로움을 가진다. 또 불을 인간의 실존의 근복적인 요구사항 중 하나로 간주하고 있었기에....라이트의 건축에 대한 생각은 항상 의미를 두는 것에서 시작 되었다공간의 연속성과 워드 월리츠우선 라이트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라이트 건물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분류가 필요할 것이다 수백개의 작품을 연대기 적으로 표현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평면도에 뚜렷한 특징으로 세부분으로 나누었다이 세분류는 각각 아트리움형,타워형,벽난로형 으로 나누어져 있고 위드 월리츠는 벽난로 형에 속한다벽란로 형은 일명 유심형으로 불리는데 벽난로가 건물의 중심부에 위치하기 때문이다간단히 설명하면 벽난로형은 대지에 고정된 그 중심 코어부와 함께 가정적인 생활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 한 평면 형태이다. 또한 경관 외부로의 확대와 함께 개인의 동일성과 자유에 대한 아이디어도 구체화 했다월리츠 주택은 이런 평면에서 십자형을 유지하는 praire주택을 제일 처음으로 명백하고 포괄적으로 형상화 하였기에 그 중요성이 인식된다또 단순히 형태와 기능의 새로운 관계뿐만아니라 건물과 자연 사이의 연결 그리고 그것들의 분절과 공간 개념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 했다는 점에서도 높게 평가된다(평면도 사진)평면 이해이 주택의 위치는 광활한 대지에 평탄하고 수목이 우거진 곳이다. 평면은 서로 엇갈린 2개의 직사각형 방향의 축과 하나의 교차축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교차점에 벽난로가 위치하고 있다각 축들의 위치에 모든 형태와 연관 되어 있다기준은 항상 장축이다공간과 형태건물의 외부는 분명하게 수평적 분절을 보여 주고 있으나 이와 대조적으로 계단실과 서재가 있는 익부가 좁은 전면은 수직적인 분절로 처리 되었다우리나라의 백제지향성 건축에서 나타나는 수평한 대지에 수직적인 건물을 지어 극단적인 가운데 조화을 이루려는 경향과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수평성은 파라페트와 띠모양의 창분할 또는 유리가 없는 수평적인 개구부 그리고 캔틸레버로 이루어진 지붕의 모습에서 강조된다종묘의 지붕은 내실과 밖 사이의 지붕이 길어 전이 공간이 길어 긴 그림자 띠를 통한 수평성이 보이지만 여기서는 그 수준은 아니고 단순한 분절효과에 그친 것 같다수직적으로 3가지 요소로 분할 했는데 파라페트 ,창문의 띠, 지붕이 그것이다색깔에서도 휜색으로 채색된 벽과 창문 그리고 짙은색의 지붕으로 한눈에 알아 볼수 있었다( 특이 한점은 1층 레벨이 외부의 지면 레벨보다 상당히 높다는 것을 기억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지반을 다지기 보다는 다른 속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지붕이 달린 현관에 이르러 짧은 계단을 올라 현관의 홀에 이루면 지반 면보다 61센티 정도 높고 다시 나아가 현관 홀에서 계단을 오르면 또 다른 전이 요소에 이른다그 지점은 높이는 137 센티로)주택안의 동선공간의 연속성과 워드 월리츠평면구성워드 월리츠는 광활한 대지를 차지하고 있으며 평탄하 수목이 무성한 곳에 위치한다.평면은 서로 엇갈린 2개의 직사각형 방향의 축과 하나의 교차축에 바탕을 두고 있고 교차축 중앙에 벽난로가 있다가로축으로 현관 식당 앞의 현관위치와 현관 앞 주차 공간 위치는 장축 방향의 축은 1층현관과 계단실이 있는 응접실 서재등 각축들은 공간의 위치를 배치하고 있다배치도 중요하지만 주제와 관련된 공간의 연속성을 중심으로 설명하겠습니다건불 외부적으로 수평적인 분절과 계단실과 서재가 있는 익부가 좁은 전면으로 수직적인 분절을 보인다수평적 분절을 보면 건물 전체를 두르고 있는 파라페트와 띠 모양의 창분할또는 유리가 없는 수평적인 개구부 그리고 캔틸레버로 이루어진 지붕으로 세부분으로 나누어 보인다그와 동시에 수직적인 분절도 동시에 보이는 데 파라페트 ,창문의 띠.지붕의 띠가 다른 디테일로 반복되어 분절 되어 보인다그리고 건물 전체적으로 희게 채색된 벽과 목조의보와 기둥의 짙은 색의 띠 사이의 대비가 건물을 지배한다분절 말고도 내부적인 공간에서도 주목할만 점이 많다미국의 전통을 살려 난로를 핵으로 십자형 형태에 어느 정도 오픈 플랜으로 되어 있는데 현관을 들어 올때부터 지면과 상당한 레벨차이가 있다현관 홀은 지면보다는 0.61미터 1층은 1.37미터 위에 자리한다현관이 있는 부분에서 계단을 올라가면 거실이 있고 다시 계단을 올라가면 중2층이 있으며 또다시 계단을 올라가면 이층이 된다레벨을 달리한 공간이 상호 관입되어 있어 중2층에서 보면 실내 공간은 상당히 역동적으로 보인다
    공학/기술| 2003.09.23| 7페이지| 1,000원| 조회(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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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묘답사 평가A좋아요
    REPORT고전건축물 답사(우리의 기념비적 건물 “종묘”)학 번 :이 름 :제출 일자 :담당 교수 :목 차1.종묘를 찾아서2.종묘의 역사3.종묘의 길의 의미4.종묘의 공간에 대한 생각들5.집으로 돌아 오면서? 종묘를 찾아서고전 건축 답사를 하기위해서 많은 책을 찾아 보다가 이번에는 단순히 절이 아닌 다른 건축물을 해보기로 했다. 물론 우리 일상에서 고전 건축을 쉽게 볼수 있는게 절이고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기에 우리의 건축을 보기에는 제일 좋지만 누구나 소풍이나 가족끼리 많이 가본 곳도 절이기에 다른 건축물을 찾아 보기로 했다그러던 중 종묘 즉 우리나라 임금님들의 신위가 모신 건축물을 찾게 되었다일단 절이 아니고 목적도 사람을 위해서 되어 있고 건축적 가치나 역사적 가치도 있어 보였다답사란 사전 지식을 준비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틀정도 책을 보고 심화 주간때 1박 2일로 갔다 왔다.물론 위치가 서울에 있고 혼자 갈 계획이였기에 부담감도 많이 있었다 . 다녀와서는 여행이었다는 기분도 들었지만 서울에 도착해서 복잡한 지하철과 많은 사람들 때문에 고생도 많았다특히 종묘를 찾아서 물어 보고 걸어 다닌다고 힘도 많이 들었다낯선 곳에서 있다는 느낌과 갑갑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더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물어서 종묘를 찾아 갔는데 의외로 쉽게 찾은 면도 있었다서울이란 곳이 녹지가 많이 없어 종로에서 나무가 많이 보이는 곳을 찾아 가니 종묘가 있었다종묘에는 외국 사람도 많았는데 일본인 배낭족과 만나 잠깐 인사도 했다. 그럼 종묘에 대해 답사한 애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종묘의 역사옛날과 지금도 건물이 가진 의미는 다양하지만 특히 옛날에는 권력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큰 건물일 경우 인력과 경제적 지 원아래 지어 질수 있기에 권력 과는 떨어질수 없는게 건축일 것이다종묘는 조상을 받들고 효경을 숭상하는 곳으로 궁궐과 사직 과 함께 왕조의 중요한 건물로 생각 되는 곳이다우리가 드라마에서 쉽게 들을수 있는 “종묘 사직을 생각 하셔야 됩니다. 전하” 하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을 보면 이 건물들이 가지는 의미는 대단한 것이다특히 조선 왕조가 성리학의 유교 원리를 생각할 때 가장 우선시 되는 건물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그래서 임진왜란 당시에 피난 갈때도 다른 것은 다 놓고 가더라도 신위는 챙기고 다시 돌아 와서도 임금의 거처인 궁궐보다 종묘를 먼저 지운 것을 보면 한나라에서 종묘의 위치를 알수 있을 것이다물론 조선 왕조의 숨은 의도도 있다. 조선 왕조가 성리학적 사회 구현을 기치로 역성혁명을 했기에 왕조의 정통성이 미흡하고 문화 왕권을 실현하기위해 종묘를 중요하게 생각한 점도 있다그래서 종묘의 위치도 ?주나라의 예법?에 따라 좌종묘 우사직을 고수한 것 같다종묘의 건물도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을 가지지 않았고 여러번 증축을 통해 길어 졌고 1834년의 마지막 증축으로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종묘에는 정전과 영녕전 두개의 중심 건물이 있다조상의 신위는 5대가 넘으면 태우고 1년에 한번 합동 제사를 하는데 군왕의 위패는 태울수 없어 사당을 짓고 위패를 옮기게 되면서 지금의 종묘가 되었다이를 별묘제라고 부르는데 중국의 예법을 따른 것이다이런 것을 보면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인정 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수 있을 것 같다하지만 종묘의 위패가 늘어가서 정전을 무작정 늘릴수 없어 “5세가 지난 왕은 원칙적으로 정전에서 영녕전으로 신위를 모셔 봉인한다. 그러나 태종이나 세종과 같이 공덕이 뛰어난 선왕의 위패는 옮기지 않고 영구히 정전에 보전한다 . 또 보위에 오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세자들도 추존하여 왕으로 추존하여 모신다. 이렇게 종묘에서 정전과 영녕전이 생기게 되었다여기서 정전은 서쪽에서부터 선왕순으로 모시고 영녕전은 중앙부터 선왕으로 되어 있다이런 것을 조사하고 가서 그런지 보다 좋은 답사를 할수 있었다? 종묘의 길의 의미역사말고도 종묘에서 눈여겨 볼 것은 우리 일상에서 보기 힘든 길이다종묘를 들어가면 거친 돌들로 되어 있는 길을 보게 된다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불편하게 길 중간에 이런 것이 있지 하고 생각하지만 여기에 많은 의미가 있었다종묘라는 곳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모시는 곳으로 길이란 의미를 가진다사진에서 보면 길이 크게 세 개로 나누어 보이는데 중간 길은 신도라고 해서 조상들이 다니는 길이고 양쪽 길은 제사 담당자인 임금과 세자가 이동하는 길이다길이 제사의 진행을 나타내고 인도 한다관람할때는 느끼지 못하지만 이길을 따라 움 직여 보고 가만히 걸어 가면 엄숙함을 느낄수 있다아무리 빨리 가려해도 거친돌 때문에 빨리 갈 수 없고 중간 중간 다른 높이로 신경쓰고 걸 어 가야 한다이것은 임금이 조상에 대해 자연히 엄숙함을 느끼고 서두루지 않고 마음을 다스릴수 있을 것 같다길 중간과 끝에 판위가 있는데 제주가 서 있 는 장소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스릴수 있는 장소 가 될 것 같다서두름을 다스리고 멈춤과 시작을연결하는 것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그리고 길을 자세히 보면 짙은 전돌을 한 길과 아래 밝은 박석의 길이있었다만약 답사전 준비가 없었다면 무심코 넘어갈 부분이었는데 생각하고보니 재미 있었다. 이길이 목적지 를 나타내는 길로 짙은 전돌은 정 전으로 들어 가는 길이고 밝은 박 석의 길은 정전에서 나와 영녕전 으로 향하는 길이 였다아마 보통 절에서는 제사를 위해 길을 따로 있지 않을 것이다다만 사람들의 동선을 위해 공간 적으로 유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직접적으로 길을 유도 한느것이 흥미로웠다길의 건축인 종묘는 길에서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아무리 이곳 지리가 처음인 나도 길을 따라 가면서 느끼는 것은 절에서처럼 복잡함 보다 편안함이다 특히 서울의 낯설음과 갑갑함을 느낀 나로서는 나무로 둘러 쌓인 길을 가면서 편안함과 상쾌함을 느꼈다길이 둘러 가는 것 같지만 다른 통과 없이 짧은 길인 것 같고 길 이 유도하는 동선으로 건물을 보 면 모퉁이에서 보도록 유도하고 있다건물 자체가 엄숙함과 기념비적 건물이기 때문에 바로 정면에서 보면 부담스러울 있는데 이런 유 도를 통해 보다 편안하게 느낄수 있다옛날 파르테온 신전이나 고대 건축을 보면 사람을 압도하지 인간적 스케일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권력과 연결되어 지어지기 때문에 압도감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건축은 기념비적 건축물이면서도 동선유도를 통해 보다 편안한 접근을 유도하는 것 같다? 종묘의 공간에 대한 생각들종묘건축은 외국에서 보면 일종의 신전 건축으로 생각할수 있을 것이다이런 건축이 가지는 신성함을 무시 못할것이고 종묘에서도 이런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건축적 장치와 개념들을 은연중에 표현하고 있다쉽게 생각하면 종묘의 핵심 건물인 정전과 영녕전을 보면 건물이 길다는 생각이 든다이것은 우리가 볼수 있는 시각 척 도와 관련 되는데 우리가 볼수 있 는 시각 척도는 상하 좌우 5칸 정 도 이다그 이상이 되면 한번에 알아 볼수 없고 느낌으로 길다 크다라는 생각 을 한다건축적으로는 휴면 스케일, 기념 비적 스케일이라고도 나누어 말하는데 우리가 일반 건축 잡지에서 모더니즘 건축이 비인간적이다 말하는 부분이 여기서 말하는것과 일맥 상통하다고 생각하면 된다빌딩이 가지는 수십층의 크기와 같은 입면이 우리를 압도하는데 그 부분을 지칭할 때 많이 쓰는 말이다여기서 종묘의 건물에서도 계속된 증축으로 긴 건물이라는 생각만 가질뿐 정확한 칸을 한번에 알수 없다그래서 지금도 칸을 증축해도 건물의 변화를 쉽게 이해 하지 못할 것 같다이런 부분이 계속 늘어 날수 있는 종묘의 건물에 대한 배려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또 하나는 이런 기념비적 스케일이 가져 주는 엄숙함이나 압도감도 생각할수 있을 것이다물론 외국에서 주는 단순한 웅장함과 대칭을 통한 압도감만 표현한 것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규모와 형태로 가기 쉬운 반복의 효과를 또 다른게 표현한것도 주목할 부분이다외국에서처럼 섬세하게 조각된 부분들이 정교하게 통일의 원리를 나타 내거나 착시 현상의 보정을 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여백의 미 단순하고 거친 마감을 통한 초월감을 읽을 수 있다밝고 어두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할수 있었다종묘는 일종의 지상의 무덤이고 세면이 모두 벽돌로 막혀 있고 제사때만 앞문만 열리는 어두움의 공간이고 마당은 햇빛과 하얀 박석으로 인해 밝음만이 있다산자와 죽은자의 공간이라고 거창하게 애기할 정도는 안되고 우리가 봐야 할 부분은 이들 공간을 어떻게 연결하고 있는가 이다처마밑의 한칸 정도의 어슴 프레함은 두공간의 전이 공 간을 만들고 있다프랭크 로이드가 캔틸레버와 파라페트를 이용한 전이공간 을 만들어 나타 냈는데 그런 공간에 대한 생각은 동.서양 비슷한 것 같다이런 공간이 영화장에서 바 로 나와 눈부심있고 어색함을 완화해주는 공간과 같이 두 공간의 상호 관입을 쉽게 해주는 것 같다외국의 캔틸레버와 같이 길게 나와 있는 건축은 우리 건축에서 보기 힘들었는데 이것이 가지는 역할은 전이 공간 말고도 시각적인 불안감도 해결하고 있다만일 툇간이 없으면 육중한 지 붕으로 인해 붕괴될것한 느낌을 가질수도 있는데 한칸 정도의 어슴프레함은 마치 무언가 있어 지붕을 바치고 있는 듯해 시선 의 편안함을 느낄수 있었다여러 책에서는 그것을 하늘과 땅을 매개해주는 부분이고 태실 을 감싸는 공간의 띠라고 장황 하게 설명을 하는데 우리의 마음에는 쉽게 다가 오지는 않았다다만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편안함을 준다는 정도 뿐이였다정전과 영녕전은 임금의 신위를 모신다는 점에서 같지만 건물에서 상당히 다른 점도 많이 발견된다그 중에서 가장 비교 되는 것이 휴먼 스케일과 기념비적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지금에 와서 휴먼 스케일이 중요시 되고 보다 자연 친화적이고 인간에서 가깝게 하는게 중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였지만 옛날에는 그런 것 보다 궁궐에서 권위가 우선시 되는데 영녕전에는 그런 특징이 많이 나타 난다
    공학/기술| 2003.09.21| 21페이지| 1,000원| 조회(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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