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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중국인의 입장에서 본 한류
    인물과 중국 :한류(韓流) - 홍수전의 입장에서.학교학번이름※한류와 인물의 간략한 소개◆ 한류(韓流)한류(韓流)’는 우리가 만든 말이 아니다. 영어로는 ‘Korean wave’라고 하지만, 다른 외래어처럼 영어권에서 들여온 것도 아니다. 알다시피 ‘韓’은 ‘한국’, ‘流’는 ‘흐른다’는 뜻이다. 한류란, 한국문화와 문화상품의 글로벌진출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따라서 한류는 최근에 들어서 문화상품의 글로벌진출인 한류현상만을 한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류는 문화사업(전통적인 예술과 문화 등 공공재 성격을 띤 문화의 사업)과 문화산업(문화를 상품화하여 소비자에게 생산·유통을 하는 소비재)을 망라하여 지칭하는 것으로서 90년대 이후의 드라마로 인한 한류현상 이전에 오래전부터 불리어왔던 용어이다.◆ 홍수전:홍수전 [洪秀全, 1814.1.1~1864.6.1] 중국 태평천국(太平天國)의 창시자광둥 성 화센[花縣]으로 이주해 온 중농(中農)의 3남으로 태어났다. 25세 때 세 번째 과거에 실패하고 열병을 앓고 있을 즈음, 승천하여 금발의 노인으로부터 지상의 악마를 퇴치하라는 사명과 칼을 받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후 아편전쟁의 패전으로 충격을 받은 환경 속에서, 전에 광저우[廣州]의 노상에서 얻은 프로테스탄트계(系)의 그리스도교 입문서 《권세양언(勸世良言)》을 읽고, 배상제회(拜上際會)라는 종교결사를 창립하였다.그것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생긴 일신교(一神敎)로서, 또 유(儒) ·불(佛) ·도교(道敎) 이하 모든 기성종교 또는 우상숭배를 정면으로 부정한 첫 거사였다. 신도들은 신의 아들로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홍수전의 가르침에 따라 서로 도우며, 엄격한 금욕적 계율 밑에 단결하여 관헌과 권력자의 박해에 항거하였고, 1851년 1월 모든 요마(妖魔), 즉 우상숭배를 보호하는 타락한 청나라 조정과 이를 돕는 사람들을 타도하여 평화롭고 평등한 지상천국을 수립할 것을 목적으로 거병하였다.이때 국호를 태평천국이라 하고, 홍수전을 천왕(天王)이라 칭하였다. 파죽지세로 진격한 태평군은 1853년 난징[南京]을 점령하고 신 국가 건설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홍수전은 정치 ·군사에서 은퇴, 천왕부에서 신비적 ·광신적인 생활에 빠졌다고 하나 그 실제는 분명하지 않다. 청나라 군사가 난징을 함락하기 1개월 전에 음독자살 하였다.광주 (廣州)에서 북쪽으로 약 50킬로미터, 광둥 성 화현 (花縣) 중서부에 관록포 라는 마을이 있다. 태평천국 운동의 창시자 홍수전의 고향이다. 가옥 구조와 배열 방법, 길게 뻗은 차양 등에 객가 마을의 고유한 특징이 있는 외에는 사방이 논에 둘러싸인 극히 평범한 화남 마을이다.홍수전은 어릴 적 이름이 화수였는데, 7세에 입학한 마을의 서숙에서는 빼어난 수재로 소문이 났고, 또 과격한 성품으로도 알려졌다. 이런 그에게 가족은 과거에 급제하기를 기대했다. 광동인의 얕보는 눈초리를 견디면서 서숙까지 세운 홍 씨 일족의 앞으로의 발전과 번영은 일족 중에서 신사(紳士)를, 관료를 배출하는데 달려 있었다. 뜨거운 기대를 등에 진 자존심 강한 홍수전은 15, 16세기경부터 여러 번 과거에 도전했다.홍수전은 4년마다 부성에서 치러지는 부시에 응시할 자격을 얻기 위한 현시에서 상당한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신사에서 최초의 신분증명인 수재(생원)가 되기 위한 부시의 벽은 가난한 이주 농민의 아들에게는 너무나 두꺼웠다. 청대 과거 급제자 계층의 최저한도는 중농 상층인데 그것도 극히 제한된 인원수에 지나지 않고 태반은 지주의 자제였다. 두 번째 부시 때 그는 광주에서 권세양언이라는 천주교 해설서를 입수했다. 초기의 중국인 청교도 양발이 1832년에 쓰고 인쇄한 것이다.그는 연이어 세 번째로 부시에 응시했다가 낙제했다. 그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굴욕과 절망 속에서 위중한 열병을 앓았다. 병상에서 그는 기묘한 꿈을 꾸었다. 그는 꿈에서 천사들의 마중을 받아 하늘에 올라가 천상의 주재자인 노인으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속계의 혼탁한 양상을 제시받고, 앞으로 이 노인의 사도로서 그것을 일소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깨어난 후 입수했던 권세양언이란 책을 읽고, 꿈의 수수께끼가 남김없이 풀려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상제의 차남, 그리스도 다음의 구세주라 확신하고 그 체험과 믿는 바를 가족과 일족, 친지들에게 알리며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를 모두 미치광이로 몰았고, 그는 결국 풍운 산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부터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홍수전은 결국 태평천국이란 나라를 세우고, 자신을 천왕으로 옹립하였다. 그리하던 어느 날…….도성을 정한 후 홍수전은 ‘대동’을 사회제도, 토지제도로 구체화하고, 전족을 금지하고 아편, 술 매춘을 엄금하는 풍속의 개혁을 시작하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는 전족을 금지하고 아편과 술, 매춘을 엄격히 금지할 것이야. 이를 어기는 자는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릴 것이다.” 홍수전은 천국 체제를 정비하며 이렇게 말했다.“천왕부로 가자” 홍수전은 발걸음을 옮겼다. “앗.. 어..어..~” “천왕폐하!!!” “천왕폐하!!!!!”.......절벽에서 떨어져서 정신을 잃었던 홍수전은 아픈 머리를 잡고 일어나 눈을 떴다.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이 그의 눈을 자극했고, 또한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그의 귀를 자극했다. “뚜구뚜구뚜구뚜구 칭칭 장장지지장장...” “이게 무슨 소리지..?” 그는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았다. 자신의 주위에는 어떤 식으로 지었는지 상상이 안 될 정도로 높은 건물들과, 사람은 사람인데 우리 중화 사람들이 아닌 것 같은, 마치 이계의 사람들인 듯 한 사람들이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영화배우에요?” 홍수전은 황급히 자신을 부르는 어린 목소리를 듣고는 고개를 돌렸다. "영화.. 영화가 뭐냐. 여기는 어디냐, 나는 천왕이다. 여기가 어디냐?” 홍수전이 말했다. “아저씨도 참, 여기는 중국 이죠~ 어제 여기서 ‘중국연가’ 촬영을 했다던데, 아저씨 어제 여기서 촬영했던 것 맞죠!?” 아이가 말했다. “중..국.. 중국이라, 나의 천국이 아닌가, 난 어떻게 여기에 왔는가.. 나의 천국은 어디로 간 거지! 나는 천왕부로 가는 길이였는데.. 어쨌든, 얘야, 그런데 ‘중국연가’ 라는 것은 뭐냐?”"아저씨 정말 ‘중국연가’가 뭔지 몰라서 묻는 거예요?? 요즘 이런 사람도 있네, 아저씨 혹시 외국사람 아니에요? 흠.. 생긴 건 중국사람 같은데.. 좋아요 뭐 까짓 거 설명해 드리죠. ‘중국연가’는 드라마 이름이에요. 드라마. 드라마가 뭔지 몰라요? 그런 표정 지으면 모른다는 표정이죠 뭐. 연극, 연극이라고 하면 아려나? 암튼~ 드라마에요 드라마. 근데 거기 나오는 김용준하고 박지우하고 너무 예쁘고 멋있어서, 요즘 완전 인기잖아요~.”“기..기..김용준? 박지우? 그게 누구냐?” 홍수전이 말했다.“누구긴요~ 너무너무 잘생긴 김용준이라고~ 한국 배우에요~ 박지우도 한국 배우구요~” 아이가 말했다.“한국? 설마 조선을 이야기 하는 것인가? 조선의 연극이 중국에까지 와서 인기를 끈단 말인가?” 홍수전이 말했다. “옛날에는 조선이라고 불렀었죠. 지금은 한국이잖아요~ 김치! 불고기! 몰라요? 아이참 아저씨도.. 정말 아무것도 모르네. 요즘 한류라고 해서, 한국문화가 아주 인기에요. 얼마나 남자들이 잘생기고 여자들도 예쁜지. 마음씨도 참 곱고, 우리한테서 사라진 문화들도 많대요. 물도 깨끗하고. 근데 아저씨. 방금 꼬르륵 소리 아저씨한테 난 거 맞죠? 배고픈가보다. 아! 내가 맛있는 한국음식점 알아요. 우리 같이 가요”홍수전은 어안이 벙벙했다.‘나의 천궁보다 훨씬 좋군. 그런데 이 찬바람이 나오는 기계는 정말 신기하군. 에.. 어콘이라고 써있는건가. 옆에는.... 삼.. 멩? 삼멩 이라고 쓰여 있는 건가?? 암튼 좋군. 그런데 머리가 아파. 너무 머리가 아프군.’“아저씨 무슨 생각해요~ 왓! 나왔다~ 아저씨! 이게 바로 한국의 불고기란 거예요. 한번 드셔 보세요.”“응? 응.. 아니다. 그래 먹자. 쩝쩝.. 쩝.. 쩝.. 음! 맛있는걸, 조선의 음식이라 이건가..”“맛있죠? 이게 바로, 한국의 음식이라니까요. 드라마, 노래가 유명해져서인지 요즘 중국 사람들이 한국 음식과 한국 문화에까지 많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래서 북경 시내에서 아주 간편하게 이렇게 한국음식점이 많이 있는 거구요. 또 한국 사람들은 유교란 걸 믿는대요. 어른한테 공경하고,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고요.”아이가 말했다.“그게 무슨 허언이냐! 유교라는 것은 영혼의 오묘함을 알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단지 별에 지나지 않는 문성 따위를 사당에 모셔 놓고 과거 급제를 기원하고, 무익하고 무효한 미신을 대표하고 있는 것인데.. 에잉!그래도 역시 모든 사람들 위에 서 있는 권위를 따라야 해. 왜냐하면 신에 의하지 않는 권위는 없고, 존재하고 있는 모든 권위는 모두 신에 의해 세워진 것이니까!”“……. 아저씨 무서워요.. 갑자기 왜 그래요..” 아이가 말했다.“아.. 미안하다. 하지만 생각이 나는 것은 다 말해야 직성이 풀린단다. 무릇 토지는 균등하게 배분해야 하고, 남녀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 유교는 남녀차별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 악함이 돋보일 수 있다. 한국이란 나라는 이점을 조심해야겠지..!”“……. 아저씨, 우리 그러지 말고 노래나 들으러 가요~ 어서요 어서~ 어서요~ 곧 서방신기가 도착한단 말이에요~” 아이가 말했다.“서..서방신기는 또 뭐냐!?” “아저씨도 참~! 그 유명한 서방신기도 몰라요? 한국 가수들이에요~!” 아이가 말했다.“허어.. 이거야 원. 먼 미래의 중국이 이렇게 바뀔 줄이야! 서방신기라니. 조선 무희라니! 감히 천한 것들이 이곳 중국 땅에 와서 춤을 추는 것을 중국 사람들이 웃으면서 반겨준단 말이냐!”
    인문/어학| 2007.05.26| 6페이지| 1,000원| 조회(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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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어학]중국의 소수민족 (조선족)과 한국사회 평가A+최고예요
    조선족과 한국사회학과학번이름학교로고 그림으로 넣으세요목 차━━━━━━Ⅰ. 들 어 가 며조선족의 이주사Ⅱ. 문 제 제 기한국인과 조선족: 인식의 차이점Ⅲ. 조선족 동포문제의 현황1. 조선족의 분포2. 편견과 차별3. 생활과 노동Ⅳ. 조선족과 한국사회의 관계1. 필요성2. 관계 모색Ⅴ. 마 치 며맺 음 말참 고 문 헌들 어 가 며━━━━━━━□조선족의 이주사현재의 조선족은 대체로 명나라 말, 청나라 초부터 1940년 말기까지 한반도에서 이주, 정착한 사람들과 그 후예들로 구성되어있고, 이들의 이주과정은 크게 두시기로 나눌 수 있다.□ 한일합방 이전의 농업적 이주본격적인 조선족의 대량 이주는 186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3년간 계속된 흉년에 평안북도에서 압록강을 넘어간 사람이 약 6만여 명, 함경북도에서 두만강을 넘어간 사람이 약 2만 6천여 명이 되었다고 한다.이주한 조선족은 농민이 다수였기 때문에 중국에 들어가 농사를 지었고 특히 벼농사를 지었다. 당시의 만주벌은 벼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이었는데 조선족이 직접 땅을 일구고 벼농사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족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고 한족이나 만주족 지주에게 개간지를 빼앗기고 소작인이 되어 높은 소작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한족에게 토지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중국적으로 입적하면 되지만 당시 조선족은 중국 입적을 꺼렸으며, 특히 중국식 머리와 중국복을 착용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조선에서는 어렵게 생활하는 조선족을 보호하기 위해 간도 관찰사를 파견하여 보호하게 하기도 하였다. 조선족의 중국이민은 농민이 주류를 이루는 이민이었고 오늘날과 같이 여권이나 이민허가서 등을 갖춘 정식 이민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것은 이민보다는 유민 차원의 이주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여러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이주하였고 그들은 황무지를 개척하여 벼농사를 중국 동북지방에 전파하는 공헌을 하였다.□ 한일합방 이후부터 광복시기 까지의 망명성 이주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후 조선족은 더욱 대규모로 중국 연변의 인민해방군 중 85%는 조선족이었다.문 제 제 기━━━━━━━□한국인과 조선족: 인식의 차이점중국의 개방 이후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정상화하고 교역을 하면서 조선족은 한국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개방이전에는 한국은 불쌍한 나라, 북한보다 더 가난한 나라로 인식되어 있었지만 한국을 알고, 한국을 가 본 결과 중국보다 잘 사는 조국이라는 사실은 조선족에게는 놀라움이었으며 곧 조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을 직접 접하게 되면서 조선족은 조국과 민족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같은 민족이라도 경제적 격차가 있으면 같은 민족의식을 갖기 어렵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한국의 국민소득이 1만 불이었던 1995년 중국의 국민소득은 495불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격차를 기준으로 한국인은 조선족을 멸시하는 경향을 띠게 되고, 그러한 경향이 2006년 현재까지 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인식과 편견과차별로 이어지게 된다.중국의 경우 유교 종주국이지만 1894년 이후 변법자강운동, 신민주주의운동, 사회주의운동 등을 겪으면서 유교에 대한 반복적인 비판을 가해 중국에서는 유교적 요소가 없어지고, 이에 따라 전통적인 가부장제 의식과 남존여비사상 등은 현대중국에서 소멸되고 말았다. 물론 이 배경으로는 여성 노동력을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반가정은 물론이거니와, 대중매체에서도 사회 전반적으로 가부장적 사고에 따른 위계질서가 유지되고 이것이 개인의 향동양식까지 지배하고 있다. 명 멸망후 우리나라의 ‘소중화’ 관념이 아예 ‘대중화’가 없어졌으니 ‘대중화’는 우리라는 인식 안에서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유교적 위계질서와 권위주의 시대의 상명하복적인 정치의식의 영향이 특히 크다고 생각하고, 현재 경제적인 이유로 말미암아 한국에 불법 체류 중이거나 정식으로 체류 중인 조선족들을 대개 깔보는 경향을 가지고 있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주는 것은 뉴스거리도 되지 못할 정도로 다반사가 되어 버린 것이 한국의 현실이국 건설 이후 토지개혁을 통해, 소작생활을 해오던 조선족에게 토지가 분배되었고 이에 조선족은 중국 정부를 따르게 되었다. 또한 신중국과 조선족은 항일투쟁과 국민당과의 싸움에서 강한 친화력을 형성하였고, 모택동의 장정에 참가한 주덕해, 문정일 등에 의해 민족 자치가 추진되었으며 연변 조선족 자치주가 성립되면서 주덕해가 주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신중국의 형성 이후 조선족 최고 교육기관인 연변 대학의 설립을 주도하였고 1952년 자치주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조선족은 스스로 중국 국민이며 중국은 우리나라 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조선족 동포문제의 현황━━━━━━━━━━━□ ⅰ. 조선족의 분포왼쪽의 표/그림은 인터넷으로 조선족 사진 자료를 검색 하던 중 발견한 것이다. 옆의 자료에서 볼 수 있듯, 중국조선족의 총 인구는 약 203만 명이고, 1990년에는 192만 명이라고 나와 있다. 현재 2006년에는 얼마나 될지 찾아보려하였으나 도통 자료가 없었다. 이는 중국의 공식적 조선족 인구발표가 없어서 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인구억제 정책과 더불어 생각해본다면 250만 정도가 될 것 이라고 예상해본다. 조선족은 크게 동북 3성에 대부분이 분포되어 있고, 나머지는 조선족 자치주에 살고 있다.한국 안의 조선족의 분포를 보자면, 가장 많이 거주하는곳은 한국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서울과 그 주변 지역이다.특히 서울에서도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은 구로동, 가리봉동 등 옛날 구로공단 여직공들이 살던 벌집 이라 불리던 셋방이 집결되어 있는 곳으로 조선족 타운이라고 할 만큼 이방인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는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고 하는데, 이는 다음 페이지에서 알아보겟다.서울 외각으로 중국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곳은 안산, 부천, 인천 등 공장이 많은 지대, 중소기업이 집결되어 있는 곳이다. 서울 외각도시로는 의정부, 수원 등에도 조선족이 많으며 지방으로는 대구, 대전, 부산, 충청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등 한국 전역에 조선족 했다고 한다. ) 유학생이나 산업연수생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인 노동자와 같이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경우 조선족들은 대부분 한국인 노동자보다 불리한 차별대우를 받는다. 예컨대 중국조선족들은 일요일에도 일을 하게하고 보너스도 주지 않는 등의 차별대우를 받는다. 남자의 경우 하루에 12시간 내지 16시간을 일하고도 8시간 일한 한국 노동자보다 적은 보수를 받는다. 흑룡강성 아성시 대련향 선풍촌에 거주하는 김진용(52)씨의 말을 인용하면 그는 한국인이 조선족을 대하는 태도는 식민지 이등국민을 대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했다. )10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은 듯하다. 아직도 일주일이 멀다하고 신문지면이나 공중파 등 각종 매체를 통해서 조선족의 사건사고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 볼 수 있다. 현행법 아래서는 근로감독관이라 해도 피해신고자가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신고를 하지 않을 수 없어, 외국인노동자들에게 기댈 언덕이 사실상 없는 상태이다. `외국인노동자 보호법'을 제정해 관계 당국에 피해사례가 신고되면 불법체류자라 해도 체포를 일시 미루고 억울함을 먼저 풀어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주장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ⅲ. 생활과 노동한국에 온 조선족 동포들은 어느 나라 사람보다 검소한 생활을 한다고 한다. 물론 개인별로 그 정도는 다르고, 검소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남자들의 경우 자신이 일하는 건설현장에 컨테이너 막사라도 있으면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여름 더울 때에는 집세를 아껴 다리 밑에서 노숙하기도 한다. 싼 방은 대부분 반지하 방이거나 손바닥만 한 셋집이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구로동과 가리봉동에 있는 벌집 이라고 하는 다락방이다. 자선사업을 하는 한국 교회에 가까이 사는 사람 중에는 한 끼는 굶고 두 끼는 교회에서 얻어먹으며 식비를 아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남자의 경우 월평균 20일 작업을 하고 1일 평균 5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남자들이 사용하는 용돈은 술, 담배, 교통비,으로, 한국에 올 경비를 마련하고 그것을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 온 것이다. 말하자면 중국에서 중산층에 속하는 지식인, 능력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 왔으며 전에 온 사람일수록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이들의 한국행 목적은 외형상 돈벌이지만, 내실 한국사정을 알려 한 사람들이었고 무엇보다 뜨거운 동포애를 갖고 온 사람들이었다. 한국에서 이들과 직접 접한 한국인은 중소기업인 중에서도 영세한 기업주들이었고 이들이 근무한 직장은 매우 열악한 환경이었다. 조선족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욕과 매질은 선진국이라는 조국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였다. 노동판만이 아니라 일반인도 한민족으로 뜨거운 가슴을 갖고 온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냉랭한 것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무시하는 어조로 조선족을 대하였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동포라는 의식이 한국인의 언어에서 그리고 태도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조선족을 대하는 일반인보다 더 불합리한 것은 한국정부의 정책이다. 한국정부는 조선족을 짐스러운 존재로 취급해 불법체류자로 만들고 있다. 개인들이 조선족을 차별하더라도 정부는 공식 입장에서 조선족을 재외동포의 하나로 불법체류자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불법체류자를 조장하고 있다.이러한 한국에서 조선족은 한국사회에 적응할 수 없다는 소외감을 느끼며 큰소리 한번 쳐보지 못하고 낙후한 나라에서 왔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죄인과 같이 숨어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은 인내로 극복해 가고 있다. 조선족이 한국어를 알기 때문에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노동자보다 더 불리한 입장에 있고 차별당하는 것을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상처가 더한 것이 된다. 조선족에게 비쳐진 조국은 한국이 선조의 나라일 뿐 결코 조선족이 살 곳이 못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조선족과 한국 사회와의 관계━━━━━━━━━━━━━━□ ⅰ. 필요성최근 북한 핵실험으로 나라안팍이 시끄럽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상황이 흘러갈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통일이 된다는 전제하에 앞으로 다가올 통일에 있
    인문/어학| 2007.05.26| 11페이지| 3,000원| 조회(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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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과학]인터넷 상의 저작권 분쟁사례
    인터넷 상의 저작권 분쟁사례:소리바다와 한국 음반산업협회의 분쟁을 중심으로목 차━━━━━━Ⅰ문제인식Ⅱ분쟁의배경Ⅲ양측의주장Ⅳ법 적 근 거Ⅴ소송/판결Ⅵ결과에 따른 주장검토Ⅶ유사사례Ⅷ결론문 제 인 식━━━━━━온라인 상에서의 p2p, 특히 음반에서의 저작권 문제는 여러분의 상상보다 그 규모가 크다. 처음으로 PC통신이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화에서는 크게 문제가 커지지 않은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초기 PC통신에서는 영화와 같은 대용량의 파일을 전송하는데에 문제가 있었고, 음악파일은 훨씬 용량이 작아 편하고 쉽게 내려받을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인식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는 현재까지 이어져 개인과 개인간의 공유 파일을 인터넷을 통해 주고받는 P2P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이를 음악전용 P2P로 개발하여 보급시킨 것이 소리바다이다. 이 소리바다의 공유프로그램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쉽고 간편하게 무료로 음원을 다운로드 받아 음반을 사지 않고도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이를 문제시 삼아 소송을 벌인 것이 음반산업협회이다. (창조적 예술성 보다는 자본주의의 원리를 중요시하던 음반제작자협회가 내세운 ‘지적재산권의 보호’ 가 정당한지를 살펴보려 한다.) 소리바다와 음반산업협회 간의 분쟁내용을 다뤄보려 한다. 이를 위하여 양측의 주장을 들어보고, 소송과 판결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회색 단어는 교수님이 코멘트에서 지적하신 사항에 해당하는 원문이며,녹색 단어는 원문을 수정한 내용입니다. 참고해주십시오.)------------------------------------------------------------------------------코멘트 내용:문제인식에서 온라인 환경에서 P2P, 특히 음반에서의 저작권 문제 등을 먼저 제시한 다음에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바람직.문화산업에서의 핵심적인 기반이 저작권 문제이며, 저작권 문제는 매우 복합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단순히 창조적 예술성 보다는 자본주의 원리를 중요시한다고 하는 것은 무리임.분쟁의 배경━━━━━━P2P서비스 업체는 꾸준한 증가추세. 2000년 서비스를 시작한 소리바다를 필두로 동키호테, 파일구리 등 인터넷의 속도증가와 함께 p2p는 갈수록 증가추세.대부분 업체들은 연결에 대한 수수료를 수익원으로 삼고 있다.저작권법에 의해 저작권자에게 돌아가야 할 수익이 p2p 상의 파일 공유로 인하여 p2p 서비스 업체에만 수익이 돌아가는 꼴.이에 따라 P2P업체와 저작권자들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대표적인 것이 소리바다와 한국 음반산업 협의회의 갈등이다.양측의 주장 - 음반협 측━━━━━━━━━━━━1. CD음질과 맞먹는 무료 mp3 파일의 제작자의 동의 없는음악서비스는 명백한 지적재산권 침해이다.2. 소리바다에서 공유되는 파일 자체는 타인의 저작권을 무시하고 불법으로 음원을 복제한 것임. 소리바다와 같은 음악파일 공유 프로그램으로 인해 연간 2천5백억원의 피해를 본다. 대중음악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소리바다와 같은 음악파일 공유프로그램을 금지해야 한다.3. 저작권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 따라서 '소리바다' 사이트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상의 지적 재산권 보호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양측의 주장 - 소리바다 측━━━━━━━━━━━━━1. 문제는 인터넷에서 저작권을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이용자들의 비영리적이고, 개인적인 파일 교환’을 저작권 위반으로 볼 것인가’가 중점임. 소리바다에서 파일은 이용자들의 PC에서 PC로 전송된다. 따라서 대부분 비영리적이고, 법적차원에서 저작권법 제27조에서 보장하는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로 보는가의 여부는 결정하기 어렵다.2.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과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이 확장되어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두 가지 예상이 있다. 하지만 소리바다가 음반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구체적 분석의 결과가 없다.3. 저작권법을 저작권자의 이익만을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저작권은 문화 발전을 목표로한다. 이를 위해 지식의 확산이나 이용자의 권리 역시 균형있게 보호되어야 한다.법 적 근 거━━━━━━━━1. 저작권법저작권법이란 음악은 물론 시, 소설, 연극, 미술, 사진 등의 저작물을 만든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공정한 이용을 유도하기 위한 법이다. 저작권법은 2005년 1월 16일에 개정 되었는데, 새 저작권법과 이전의 저작권법을 비교해보면 개정되기 전에는 작곡, 작사가 등 저작권자만이 음원 저작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후에는 작곡, 작사 가 뿐만 아니라 실연자(가수, 연주자)와 음반제작자들까지도 음원 저작권을 가지도록 개정되었다. 이를 통해 본다면------------------------------------------------------------------------------ㅇ 보고서 내용이 몇가지 부문에서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음.- 소송에 관련된 내용이므로, 분쟁의 배경과 판결의 기초가 되는 저작권법 관련 규정 및 이에 대한 해석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시할 필요가 있음.- 또한 판결의 내용 등에서도 양측 주장의 전체적인 내용 이외에 구체적 사안에 대한 인용여부 등을 보다 구체화하여 향후 쟁점 및 개선의 기초로 제시할 필요가 있음.소 송 과 정━━━━━━━━소리바다 시스템을 이용하여 MP3 파일을 공유하는 행위는 저작권법상 복제권, 배포권, 전송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5차 공판에서 법원이 판결을 내린 것이다.한국의 저작권법에서 MP3 파일 공유에 적용될 수 있는 예외 규정은 제27조의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가 있는데, 소리바다를 통한 MP3 파일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은 사적이용으로 보기 어렵다. 사적이라고 할 수 있는 범위는 자기 자신, 또는 가정 내에서 가족 간에 사용하거나 가족에 준하는 친척간이어야 한다. 사회 통념상 개념을 확대 적용하더라도 사적으로 친한 친구까지가 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범위인데 인터넷 상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타인과 MP3파일을 주고받는 행위는 사적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로 볼 수 없다.따라서 중앙서버에서의 MP3 파일의 저장없이 단순히 개인간 파일공유를 도와주는 프로그램인 소리바다의 서비스 중지판결은 일단 법원이 향후 P2P 관련 분쟁에서 법원이 저작권 보호에 보다 힘을 싣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됨.2006년 3월1일, 소리바다 5 란 이름으로 소리바다가 다시 등장했다. 음제협과 유료화를 조건으로 모든 소송을 취하하는 방식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최근 17개 음반사가 소리바다를 대상으로 필터링 문제에 관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등 논란이 아직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최근 문화관광부는 소리바다의 역할을 강조 하면서도 소리바다의 필터링 강화를 요구했다. 저작권을 확보하지 못한 음원에 관하여 소리바다 프로그램 자체에 필터링 기능을 도입한 것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심 내용이다.결과에 따른 주장검토━━━━━━━━━━음반협측 주장1. CD음질과 맞먹는 무료 mp3 파일의 제작자의 동의 없는음악서비스는 명백한 지적재산권 침해이다.=> 연이은 소리바다의 패소 판결로 참고해 볼 때, 지적재산권 침해임이 명백해짐.2. 소리바다에서 공유되는 파일 자체는 타인의 저작권을 무시하고 불법으로 음원을 복제한 것임. 소리바다와 같은 음악파일 공유 프로그램으로 인해 연간 2천5백억원의 피해를 본다. 대중음악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소리바다와 같은 음악파일 공유프로그램을 금지해야 한다.=> 금지보다는 절충과 타협을 통해 양자가 윈윈 할수 있는 전략구상이 바람직3. 저작권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 따라서 '소리바다' 사이트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상의 지적 재산권 보호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판결내용을 참고해 볼 때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고, 현재까지 여러 p2p 제작사들과의 소송이 이루어지는 점으로 볼 때 이는 꼭 필요한 일이다.소리바다측 주장1. 문제는 인터넷에서 저작권을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이용자들의 비영리적이고, 개인적인 파일 교환’을 저작권 위반으로 볼 것인가’가 중점임. 소리바다에서 파일은 이용자들의 PC에서 PC로 전송된다. 따라서 대부분 비영리적이고, 법적차원에서 저작권법 제27조에서 보장하는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로 보는가의 여부는 결정하기 어렵다.=> 대부분 비영리적이긴 하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음반업자들에게 피해룰 주며,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로는 볼 수 없다.2.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과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이 확장되어 매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두 가지 예상이 있다. 하지만 소리바다가 음반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구체적 분석의 결과가 없다.=> 교수님의 코멘트를 따르겠습니다3. 저작권법을 저작권자의 이익만을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저작권은 문화 발전을 목표로한다. 이를 위해 지식의 확산이나 이용자의 권리 역시 균형있게 보호되어야 한다.=> 맞는 말이지만 문화 발전보다는 보호가 우선이다------------------------------------------------------------------------------- 양측의 주장을 제시하였으므로 판결 이후에 이에 대한 검토가 비교되어 제시될 필요가 있음. 예를들어 소리바다가 음반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는 저작권의 법적 문제와는 직접 연관이 없음(일본 대중문화개방 이전에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복제의 암묵적 허용이 일본대중문화의 확산에도 일정부분 기여하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일본에서는 전략적/정서적 문제로 제기하지 않은 것 뿐임)
    사회과학| 2007.05.26| 11페이지| 1,000원| 조회(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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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과학]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평가 평가B괜찮아요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평가━━━━━━━━━━━━━━이름학번━━━━━━━━━━━━━━□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 정치 분야를 중점으로.?들어가며정치외교학을 공부한지 3년이 다 되어간다. 아직은 모자란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지 않지만, 여기서는 나름대로 노무현의 리더십, 그중에서도 경제를 중점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미리 밝혀둘 것은, 나는 이른바 ‘친노 계열’ 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하지만 계속되는 언론의 질타와 국민들의 체념소리와 계속되는 정책실패에 신념이 흔들린 탓인지 조금씩 그 생각이 바뀌는 중이다.노 대통령은 막내라서 자기고집이 세고 주관이 강하다고 한다. 말도 즉흥적이고 서민적 의식 속에 살아온 분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 총명하고 영리했다. 그런데 잘 운다. 대통령 된 후에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10번 정도 울었다. 그만큼 감성이 풍부하고 인정이 많아 약자 편에 서려고 하는 의협심이 강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너무 즉흥적이고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 노 대통령의 어머니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항상 어린 노무현을 붙잡고 가난에 대한 한을 많이 토로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학력이 고졸이다. 심리학적으로 공부를 잘했지만 대학을 못 간 사람은 학력 콤플렉스가 강하다. 노무현은 공부 잘하고 똑똑했지만 학력이 없다는 것이 한이다. 그리고 숱한 역경을 극복하고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한정된 울타리를 벗어나 국민 포용력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부분에서는 ‘실패’란 말이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빈곤층 비율은 18%로 2003년(16.9%), 2004년(17.4%)에 이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년 새 25만7000가구, 60만6000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반면 중산층은 2003년의 47.2%에서 46.1%로, 상류층은 24.1%에서 24.0%로 각각 낮아졌다. 가난한 사람은 늘고 중산층과 부자는 줄었으니 양극화가 심해졌다기보다 빈곤화가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올해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더라도 한국은 지난해 19위에서 24위로 떨어졌다. 하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공공부문의 취약성, 한마디로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줄곧 ‘큰 정부 아닌 일 잘하는 정부’를 내세워 온 것과는 딴판인 결과다.이러한 지표만 가지고도 ‘실패’라는 말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80%가 넘는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노 정부에 등을 돌린 것을 몇 개의 지표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끊임없이 국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노무현 리더십’에 있다. 어떤 개혁도 국민의 삶에 실질적 향상을 가져오지 못하면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국민이 원하는 일에 집중하기는커녕 대연정(大聯政)이네, 전시(戰時)작전통제권 환수네 한다. 물론 대연정의 말 뜻속에 담긴 의미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나쁘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으로서 필요한 일들이긴 하나, 현재 국민들의 시각으로는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개혁은 피로감을 넘어 분노와 증오를 확대 재생산하고, 결국 국가의 잠재성장력마저 고갈시킨다. 그렇다면 과연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떤 형태를 띠며, 어떤 점이 잘못되어 이 지경에 이른 건지, 분석해보도록 하겠다.?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 특징분석1) 수평적, 민주적 리더십노무현이 추구하는 리더십은 핵심간부나 지지자들에게 올바른 방침을 제시하는 철인형 지도자가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이 다양한 견해를 자유롭게 표출하도록 만들고 이견과 대립을 조정하고 절충하여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 인격적 카리스마가 아니라 비전과 제도화된 절차를 통해 조직을 이끌어 가는 민주적 리더십을 추구하고 있다.2) 개방적 네트워크형 리더십노무현은 측근과 사조직, 돈으로 유지하는 리더십은 시효가 종료되었다고 보고 있다. 혼자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떤 힘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계와 관계 속에서 커다란 힘이 되고 자신의 세력으로 상대방을 누를 수 있다. 이것이 네트워크의 본질이며 네트워크가 가지는 힘인 것이다. 내가 있는 위치와 나를 원호하는 다른 타자의 위치 그리고 그 둘 간에 맺고 있는 관계에 의하여 네트워크는 유지되고 종내에는 그 네트워크가 구축하려는 세상 즉 망이 된다. 그것이 촘촘하게 엮일수록 강력한 사회적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그는 최상단의 리더의 자리에 갈수록 의견의 청취보다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이 주 업무로 수행된다고 보고 그것을 탈피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과 가능하면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표방한 것이 바로 참여정부 라는 것이다. 각자가 가진 의견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가운데 정책추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것도 대화의 유익한 혜택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추세를 보자면 이러한 개방적 네트워크형 리더십은 더욱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3) 리눅스형 리더십그동안의 정치는 비공개적이고 정보 독점적 형태를 많이 보여 왔다. 리눅스형 리더십이라는 것은 모든 소스를 공개하고, 정보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상태에서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발전시키고 함께 이루어나가는 리더십인 것이다. 노무현은 여러 차원에서 기존의 정보 독점적인 관행을 탈피하기 위하여 다양한 모색을 해왔다. 그 중 인사문제를 보면 인사권을 조직으로 위임함과 동시에 그것을 공개적으로 신뢰성 있게 추진함을 볼 수 있다. 인사문제는 조직의 사기와 활력에 많은 영향을 미치므로 조직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비공개적인 신뢰성 없는 인사는 합당하지 못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근 전효숙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를 비롯한 여러 인사문제로 인한 파장은 상당하다. 워낙 시국이 좋지 않고, 인사문제가 대통령의 교유 권한이란 것은 확실하며, 대통령이 하니까 무조건 NO! 하는 한나라당도 분명 문제가 있지만,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이를 한나라당이 결코 곱게넘어가지 않을 것을 예측하지 못한 걸까.4) 권한위임형 리더십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한다. 그러나 그것은 부하직원들에게 굉장한 비난을 받을 수 있고 정책결정에서 현명한 판단을 하기 힘들다. 노무현은 해양수산부장관시절에 국장급 인사만을 자신이 결정하고, 그 이하는 국장 단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국장들이 필요한 부하를 알아서 스카우트하거나 트레이드하도록 했다. 그것은 조직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권한을 부여하고 결과에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당을 장악할 의사도 없고, 당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제왕적 리더십과는 정반대의 리더십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부하가 아닌 참모나 동업자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자신이 최고경영자인 것처럼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요구한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다가 실패한 것에 대해서는 질책하지 않지만 게으르거나 안주하는 자세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화를 낸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오히려 ‘권위주의적’인 ‘제왕식’ 통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권위를 가진 대통령이 요구되는 듯하다. 여기저기서 비판당하는 대통령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니, 때로는 권한위임보다도 권한 집중이 필요한 듯
    사회과학| 2007.05.26| 5페이지| 1,000원| 조회(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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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권력구조의 문제점과 개편방안. 06년12월 최신!
    한국 권력구조의 문제점과 개편방안━━━━━━━━━━━━━━━━━이름쓰세요━━━━━━━━━━━━━━□ 한국권력구조의 문제점한국 권력구조의 문제점이라 한다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한국 의회정치 내에서의 제대로 된 여당의 역할의 부재를 꼽을 수 있고, 두 번째로 선거전과 선거후의 판이한 정당구도 (양극화 경향),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불안정한 연합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한국 권력구조의 문제점과 개편 방안에 대하여 알아보겠다.위에서 언급한 한국 권력구조의 첫 번째 문제점부터 살펴보겠다.첫 번째는, 한국 의회정치 내에서의 제대로 된 여당의 역할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한국의 독특한 정당구조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미국의 정당제도와 관련지어서 설명해 보겠다. 미국의 경우에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분점정부이건 단점정부이건 간에,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미국에서의 정당은 행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의 기능에 충실하다.이와 반대되는 개념이 내각제라고 볼 수 있는데, 여당/집권당 의원들이 행정부와 일체감을 가지는 정당 제도를 내각제라고 볼 수 있다.한국은 대통령제를 채택하여, 미국과 제도적 유사성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미국과는 반대되는, 여당 의원들이 행정부와 일체감을 가지는 내각제적 특성을 보인다.이는 권위주의 시대의 역사적 경험이 한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제3~5 공화국 시기에는 물론이거니와, 문민정부와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도 입법부의 기능을 충실히 하자니 여당, 같은 당의 총재인 대통령에게 누가 되는것 같고, 당론에서 접근하자니 입법부의 기능에 충실하지 못하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두 번째 문제점은, 선거 전과 선거 후의 판이한 정당구조라고 할 수 있다.한국은 민주화 이후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다당제적 형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이후로는 정당경쟁이 대체적으로 양극적 형태를 띤다.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선거 시에는 양극적 형태를 띠고, 선거가 끝난 후 다당제적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맞을 것 같지만, 한국의 정치 판도는 반대적 성격을 띤다.왜 그럴까? 이렇게 선거에서 형성된 정당제와, 의회에서 이루어지는 정당구도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대통령제임에도 불구하고 행정부와 의회의 융합에 의존해 온 통치행태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특히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에 기초한 다당 체제가 된 이후에 특정 정파의 단독 과반수 확보가 어렵게 되었기 때문에 정당재편은 불가피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인위적인 개편은 집권세력 입장에서 볼 때 다수의석 확보를 위한 것이고 이에 반대되는 세력들이 결집하며 양극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불안정 연합을 들 수 있다.한국사회에서 정당이란 결국 목표가 정권획득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같은 이념을 가진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좌파정당과 우파정당간의 연정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허나 한국 정당정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석의 ‘수’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진보세력의 퇴화 이다. 민주화 이후 진보세력이 선거를 통하여 의회에 진출하는 것은 실패하고, 결과적으로 의회 내에는 보수 일변의 세력만이 남아서 정당간의 세계관은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개혁 지향적이고 진보적으로 알려진 국민회의와 보수를 표방하는 자민련이 15대 대선에서 집권연합을 형성한 점에서 우리는 한국의 정당이념이 극복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겠다.
    사회과학| 2006.12.05| 4페이지| 1,000원| 조회(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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