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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미술] 현대미술사조 평가B괜찮아요
    1. 20c 이후 전반적인 미술활동과 80년대의 현대미술동향인상파, 후기 인상파의 모네, 고호, 고갱, 세잔 등을 통해 근대미술이 태동되기 시작해서, 입체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의 수많은 이즘을 낳으면서 미술자체가 크게 변모되었다. 이들은 다같이 추상이라는 이름아래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감정, 질서, 상상력 등은 모든 예술영역에 서로 연관을 맺고 있다.20c 미술에 있어서 회화적 첫 봉화였던 야수파는 1906년 마티스를 중심으로, 원색에 대한 정열로 단순히 자연을 재현하는 기능에서 벗어나, 색채 자체로서의 기능을 되찾았다.한편 1907년 피카소와 브라크는 세잔회화의 본질을 연구하면서, 대상의 존재성을 기본적인 형태와 양에 의해 포착하고, 기하학적인 도식과 입방체로 환원하며, 입체주의를 낳는다. 나아가 대상을 해체하고, 그 해체된 대상을 재구성하는, 직선, 곡선, 색면에 의한 순순한 조형적 요소의 이지적인 그림으로 발전된다. 이것을 자율적 질서를 지닌 독자적 세계로 포착하여, 추상회화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1910년부터 유럽각지에 추상회화의 흐름은 세가지로 분류되며 표출된다. 청기사 그룹의 바실리 칸딘스키를 중심으로 하는 표현주의는 대상의 재현을 철저히 배제하고 색채자체로서 내면 심리를 표현했으며, 몬드리안, 말레비치의 기하학적 추상은 입체주의에서 출발하여, 오직 수직, 수평, 장방형만으로 이루어져, 회화를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환원시켰다. 역시 입체주의의 조형적추구를 흡수, 동화시킨 들로네는 색채의 리드미컬한 대비에 의한 화려한 추상콤포지션을 이루고 있다.한편 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발과 함께, 모든 도덕덕 심미적 가치가 전쟁에 의해 무의미해졌음을 선언하고, 불합리성과 반예술을 주장하는 다다가 탄생하였다. 다다의 선구자인 마르셀 뒤샹은 기성품변기(레이디 메이드)를 그대로 조형적 오브제로 전시하여, 본래의 목적성이 상실된 사물 그자체의 무의미만을 표현하였다. 그것은 초현실주의 의 오브제를 가능케하는 길을 열어놓게 되었으며, 20c 후반의 미술의 기본 배경에는 산업혁명과 1800년대이래 시작 된 미학의 학설이 부정적으로 크게 작용되었다. 즉 이 시기에는 산업혁명으로 양적으로 커다란 발전은 이룩하였으나,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으로 인해 제품의 외관은 예술성이 결여되어 있었다.이렇듯 세련되지 못한 제품들은 그 질이 떨어져서 중세이래 수공 기술의 전통은 단절된 듯 하였다. 더우기 이 시대에 만연된 자유주의는 제조업자의 임의대로 질이 낮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묵인하였고, 그 결과 조악한 재료와 낮은 기술이 산업계를 지배하게 되어 모든 공예품들은 조잡한 과잉장식의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미술 수공예 운동은 1800년 전후에 시작된 사명론적 예술관을 부정하였다. 이 시대 예술가들은 정신적 귀족주의로 대중을 무시하고 실용성을 경시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시대의 진실된 생활의 참모습을 보이지 않고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예술가를 위한 예술'만을 창조하였기 때문에 대다수 민중으로부터 격리될 수밖에 없었다.『 아르데코 』20세기초는 아직까지 아르누보가 국제적인 예술 양식으로 예술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예술사조가 합리성과 단순성, 그리고 구조적 기능성을 요구하게 되면서 아르데코가 태동하게 된다. 아르누보가 '수공예적인 것에 의해 나타나는 연속적인 곡의 선율을 강조'하여 공업과의 타협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반면에 '아르데코는 공업적 생산 방식을 미술과 결합'시킨 기능적이고 고전적인 직선미를 추구한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이러한 아르데코의 이상이 실현된 것은 1920년대로 1차 세계대전 이전인 1914년까지는 19세기 말부터 서구 사회에 나타난 '세기말'적 경향이 계속해서 지속됨으로써 동방적 이국주의나 화려한 장식이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데스틸(DeStijl)운동과 바우하우스(Bauhaus)운동이 성립되어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는데 아르데코는 데 스틸 운동의 신 조형주의와 바우하우스 운동의 기능주의에 자극을 받아 기능성과 단순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가속화된다.『 구성 원래 프랑스어로 '목마''장난감 말'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독어로는 '출산의 기쁨, 유모차, 바보스런 순진함, 애착' 이라는 의미이다. 1916년 트리스탄 짜라와 장 아르프, 마르셀 앙코 그리고후엘 젠벡 등이 카페 '볼테르' 에 모여 그들의 심미적이고 반전통적 예술 행위를 기술하는 용어를 찾던 중우연히 프랑스어-독어 사전에서 이 의성어적 유아어를 발견하고 사용하기로 결정한데서 유래한다.『 옵아트 』옵아트(Op Art)는 영어의 옵티컬 아트(Optical Art)의 약칭으로 여기서 옵티컬은 단순히 본다는 의미의 비쥬얼(Visual) 보다는 넓은 의미로 인간의 시지각의 원리에 근거를 둔 추상적, 기계적인 형태의 반복과 연속 등을 통한 시각적 환영, 지각, 그리고 색채의 물리적 및 심리적 효과와 관련된 것이다. 즉 시각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생리적인 착각의 회화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특별한 심리적인 과정이 지각과정의 한 부분인 눈을 통해서 뇌에 전달되어 사고의 세계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단순히 망막적인 예술의 극한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망막의 예술(RetinalArt)',혹은'지각적 추상(Perceptual Abstraction)'이라고도 명칭 되어진다.1964년에 조각가인 '조지 리키'가 당시 뉴욕 근대 미술관의 큐레이터였던 '피터 젤츠', '윌리엄 자이츠'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Op"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 졌으며 이는 타임지에 의해 기사화 되었다. 이러한 옵 아트는 1920년대말 모홀리 나기와 죠셉 알버스(Joseph Albers)가 색채와 원근법이라는 관점에서 시각적 시험을 바우하우스 교육과정에 도입한 것에서부터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죠셉 알버스는 기하학적 추상으로 심리학적 형태와 색채를 보여주는 최초의 옵아트 유형을 시도하였다. 이어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에 걸쳐 옵 아트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 당시는 추상표현주의, 타시즘(Tashi sme), 액션 페인팅며, 그 근본적 태도에 있어서 당시의 물질문명에 대한 낙관적 분위기와 깊이 연결되어있다.'팝 pop'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경향이 있지만 'popular'의 약자로 보는 경향이 유력하다. 즉 통속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서 일상 생활에 범람하는 기성의 이미지에서 소재를 취했던 이 경향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팝 아트가 급속히 일반화된 것은 1962년 '뉴 리얼리스트 전'이후의 일이나, 영국에서는 이미 10여년 전부터 그 전조(前兆)가 된 예술활동이 있어왔다. 즉 1950년대 초부터 리처드 해밀튼, 에두아르도 파울로치 등의 젊은 작가들이 모여서 대중사회의 문화, 예술, 매스 미디어와 같은 문제들을 토론하고 전시회를 개최함으로써 팝 아트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영국의 팝 아트는 발생초기부터 사회 비판의 의도를 뚜렷이 갖고 구태의연한 사회 질서에 대한 비판으로서 사회와 예술을 접목시키고자 했던 젊은 작가들에 의해서 전개되었다. 따라서 알로웨이가 영국에 있어서의 '대중문화'라고 말한 것은 미국과는 다른 , 문화적 계급을 의식한 것이다.『 미니멀리즘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 작가들이 최소한의 조형 수단으로 제작했던 회화나 조각을 가리키며 '최소한의 예술'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최소한'이란 일루전의 극소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은 회화의 감동성, 마티에르의 풍부함 내지 자기 표현은 곧 예술이라는 신화(神話)를 기본으로 하는 종래의 예술 개념을 거부하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특히 당시 미국 화단의 지배적인 세력이었던 추상표현주의가 초자아를 표현하여 관객에 호소하는 입장을 취했고 팝아트가 문명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성격을 띠었던 데 반해 이들의 엄격하고 비개성적이며 소극적인 화면을 구성하고자 노력했다.이러한 미학의 개념은 본래 카시미르 말레비치와 마르셀 뒤샹에게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말레비치의 작품은 캔버스 위에 그려진 것은 모두가 회화가 될 수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뒤샹의 레디 메이드는 어떤계적으로 확대한 화면의 효과는 매우 충격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가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 없었던 추악함 예를 들어 모발에 가려진 점 이라든가 미세한 흉터까지도 그대로클로즈업 되어, 보통이라면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사실성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잔혹한 인상 을 받게 만든다.포토 리얼리즘은 종래의 추상미술로부터의 완전한 이탈이라는 의미와 사진 그 자체와 양쪽에 대한 아이러니의 표 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작품 제작에 사진이나 슬라이드를 직접 간접으로 이용하는 척크 클로스, 하워드 캐노비츠, 맬컴 몰리 등 과 사진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연의 풍경이나 모델만을 대상으로 하는 필립 펄스타인, 시드니 틸림등은 추구하는 점은 같으나 표현 방법의 차이를 보이는 두 예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역사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대략 2차 세계대전 수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모더니즘의 흐름자 체가 인습이 되어 버릴 정도의 한계에 이르렀을 때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일련의 사조로 드러난 것이다. 혁신적인 현상들이 나타남에 따라 기존의 가치 체계나 도덕이 효력을 상실하게 되고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분위기 속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은 일관성 있는 사상체계가 아니며 특정한 유파는 더욱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근대에 나타나기 시작한 다 양한 예술적, 일상적, 사상적 경향을 지칭하려는 의도에서 발생한 것이다.'포스트'라는 접두사는 몇 개의 모순된 뜻을 포함한다. 그 중 하나는 상투적인 것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으로 아방가르드의 '연속적 인 혁명'을 뜻한다.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를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특성은 재현을 거부하기 위해 전통, 혹은 과거의 형식을 빌려 현재 상황으로 변형시켜 새로움을 담는 ' 과거의 현존'으로 이것은 미술에서의 알레고리(allegory), 음악에서의 반복(repeat),문학에서의 패러디(parody), 건축에서의 이중부호.
    예체능| 2003.10.20| 13페이지| 1,500원| 조회(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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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심리] 색채와 아동심리 평가B괜찮아요
    아동의 심리와 색채1. 색채와 심리색채라는 개념은 우리가 평소 지각하는 것보다 훨씬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즉, 우리는 의식적인 측면 이외에도 무의식중에 색채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색채의 영향은 특히 인간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많이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색채가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주는 것만으로는 색채와 인간의 심리와의 관계는 설명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색채에 의해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색채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색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색채와 인간의 심리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린 그림을 분석하는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그림을 그린 사람의 정서생활이나 성질이 그 표출의 강도를 특히 잘 반영하는 것이 색채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동이 그린 그림 속에 나타나고 있는 특징적인 색채는 그 때의 아동의 강한 정서와 거의 일치한다. 어린이는 정서적 경험과 적응 행동방식을 그림과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한 색으로 그대로 표출한다. 성인에 비해 아동은 자신의 생각이나 심리상태를 표출하는 데에 있어서 꾸밈이 없고 솔직하기 때문이다. 색채보다 선이나 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아동은 자기방어를 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고 또 외부의 사물에 대한 관심이 강하며 감정적이라기 보다는 이지적 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선이나 형태보다 색채의 강한 관심은 그림을 그린 사람의 정서적 감정과 관계가 깊다고 볼 수 있다.2. 아동과 색채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린 아이들이 선택한 색채와 그들의 심리 상태와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 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아이들의 그림 속에는 그들의 언어와 행동표현 보다는 그들의 감정과 심리적 갈등이 솔직하게 나타난다. 특히 그때의 분위기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려진 표현속에는 어린이들의 가슴 깊숙히 숨겨 감추어진 내 표현해 놓는다.세상에서 아이와 가장 가까이 생활하며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엄마인데도 서로의 감정 교감이 익숙치 못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엄마가 조금만 참고 기다려 준다면 아이가 무엇을 생각 하려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이것을 참지 못해 아이의 올바른 생각과 감정을 흥분시키거나 감정을 절제시킨다. 아이는 엄마 때문에 성격이 변질되고 왜곡되는 것이다.이러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낙서, 그림의 표현 속의 선과 색깔, 형태, 주제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나타내어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언어 표현이 미숙한 유아기 대는 자연스럽게 자기주의에서 가장 접하기 쉬운 연필, 크레파스 같은 도구를 서거 마음속 이야기를 표출하려고 애쓴다.낙서나 그림 속에 표현된 내용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심성으로 표현 되었다면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 표현이 왜곡되고 변질되게 나타났다면 인성교육을 바탕에 둔 미술 교육이나 부모의 관심과 함께 나누는 교감을 통해 교정되고 완화 될 수 있을 것이며 어린이들이 성장하는 과정 중 정신건강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아동이 평소에 선호하는 색은 주위의 환경 적인 영향에 의해 결정되어 졌다고 보아도 큰 무리가 없으며 때로는 선천적인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들이 선호하고 좋아하는 색은 밝고, 따뜻한 색일수록 좋다는 막연한 관념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실제로 어떤 연구에 의하면 따뜻한 색(빨강, 노랑, 오렌지 계열의 색)을 즐겨 사용하는 어린이는 일반적으로 자유로운 정서 행동과 다른 사람에 대해 동정적이며 다른 사람의 애정에 잘 기대는 등 부드럽고 정감 있는 대인관계를 보인다.반면, 차가운 색(파랑, 보라 계열의 색)을 주로 사용하는 어린이는 일반적으로 강한 자기 통제를 가지고 있고 지나칠 정도로 순응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비판적이고 자 기 주장이 강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솔직히 털어놓지를 않는 타입이다. 두드러진 행동으로는 계획을 세워서 행동하며, 지적인 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색을 즐겨 쓰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 적이며, 혼자서 놀기를 좋아하며 타인에 대해서 관심이 적고 또 타인에게 의지하지도 않는 성격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따뜻한 색을 즐겨 쓰는 아동에 비해 스스로의 행동에 억제와 자제를 하는 경향으로 자기중심에서 벗어난 통제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따뜻한 계통의 색은 대체로 통통한 아동들에게서 선호되며 특히, 여자 아동에게서 붉은 색이 더 잘 나타나는데 아마도 신체적인 기질과 색채의 성격이 어울린 결과로 보아야 하겠다. 반대로 차가운 계통의 색은 대체로 체격이 마른 요즘의 아동들에게서 선호되며 아마도 가정과 주위의 환경적인 영향이 큰 결과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이처럼 색채를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으로 구분하여 비교하는 것은 색채와 아동의 심리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에 있어서 아주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구체적으로 세분화하여 주로 아이들이 선호하는 색채와 그 색채를 선호하는 아이들의 심리 상태에 대해 알아보겠다.3. 아동화에서 본 색채별 심리빨간색을 좋아하는 성격은 주로 비교적 자유로이 느낀 대로 표현하고 행동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규범 같은 것은 그리 마음에 두지 않고 건전한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이 빨간색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신체기능이 왕성하고, 활동적이며, 자유롭게 반응하며 주위 환경에 대하여 행복을 느끼는 상태로 불만, 비난 등 충동적인 상황이 많으며 공격적 성향을 자주 보인다. 그러나 연필법이나 크레용의 사용법(strokes)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야 한다. 둥글둥글한 필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애정이나 기분이 좋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수직이나 수평방향으로 직선적으로 쭉 뻗게 그린 무거운 필법이나 폭이 넓게 화면을 덮는 경우, 다른 색 위에 겹쳐서 빨강을 덧칠한 경우는 심리상태가 매우 격앙, 분노되어 있거나 억제된 적대감과 공격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빨강을 적대감이나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빨강은에 찬 격한 심리상태일 때에 나타나는 상반된 경향이 있다. 빨강은 활동, 건강, 외향성의 상징이지만 그것이 강하게 난잡한 필법으로 그려졌을 때에는 격렬한 자기주장, 흥분, 불만, 노여움, 광기 등의 상징이 된다. 빨강은 밖으로 향하여 팽창되고 발산하는 색인 동시에 고양된 마음의 에너지를 불태워 버리고 마는 색이기도 하다.노란색을 단독적으로 사용한 경우에는 의존적인 성향이 많다. 행동도 정서에 의해서 좌우되며 행동특징으로는 대인관계가 원만하며 인기가 있고 평판이 좋다. 그림 전체가 노란색의 색채를 가지고 있다면 유아기적 행복감에 찬 상태라 볼 수 있겠다. 노랑은 유아성, 미숙성, 의존성, 응석부림 등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노랑은 빨강처럼 강한 자극성이나 에너지를 느끼게 하지는 않는다. 밝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가볍고, 조금은 안이함을 느끼게 하는 색이며 그것은 따뜻하고 인자한 어머니의 살갗을 연상하게 하기도 하고 어머니의 부드러운 품 속에서 충족되기를 기대하는 젖먹이의 마음이 이 노란색에 반영되어 있다. 의지적인 노력의 의미로의 파랑과 반대적 성격을 반영하는 노랑색은 퇴행욕구를 나타내 "좀더 어린아이이고 싶다" "사랑 받는 아이이기를 원한다" "응석을 부리고 싶다"의 메시지를 담기도 한다. 파랑과 노랑의 대비를 사용한 그림은 이러한 대립은 의존과 자립으로의 대결로 해석할 수 있다.타오르는 감정을 억제하여 머리를 식혀 주고, 체념할 것은 체념하고, 침착한 마음으로 냉정히 현실에 대응하려고 하는 심리를 반영하는 파랑은 물과 상징 관계를 갖고 있다. 파랑은 단순한 억제 색이 아니며 당면한 욕망이나 감정을 눌러 현실에 복종하고 적응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보다 큰 만족과 성장을 얻으려는 심리에 대응하는 까닭에 자립, 독립에의 원망을 반영하는 색이라 할 수 있다. 색채 기호 조사 같은 것을 보면 일반적으로 여성보다 남성 쪽이 파랑을 좋아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사회적 활동이 많은 남성 생활이 모든 장면에서 자제를 강요받고 있는 사실이 반영된 것이며 메테를링크의 '파랑새'에 행복을 추구하는 자세의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는 비유로 파랑을 말하고 있다. 파랑을 집중적인 덩어리 물감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긴장된 상태이거나 불안이나 공포심을 품고 있을 때 잘 나타난다. 그러나 그림의 선이나 형태를 그릴 때 파랑을 사용하는 것은 성격적으로는 명랑하고 활동적이며 적응활동을 보이는 일이 많다. 그래서 이때 사용하는 파랑을 '승화의 파랑'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어떤 정해진 규범에 잘 맞추어 지내겠다는 의사표시이기도 하며 '규범을 따르겠다' '한 차원 높아지겠다'의 욕구를 나타낸다.검정은 정서적인 행동이 결여되고 자유로운 감정의 흐름이 없는 색이다. 공포나 불안에 의해서 생겨난 자기의 억압을 반영해 주며 엄격한 훈육, 권위적 부모, 결손가정, 신체적 결함에 대한 공포를 검정으로 표현한다. 더구나 공포와 싸워 이기려는 의욕을 거의 상실한 위축된 상태를 보여준다. 밖으로 보기에는 순종하고 온순하며 적응된 행동을 보이지만 내면 생활에 있어서는 자기를 과도하게 통제하고 있다. 검정은 암흑의 색이며 모든 것을 감싸주는 은신처가 되어 감추고 싶은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 무서움과 공포심의 연상으로 검정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감정이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 겁이 나서 그것을 암흑 속에 감추어 두고 싶은 심리충동이 검정을 택하게 하는 것이다. 파랑은 비교적 자율적인 감정 제어에 대응한다고 할 수 있는 데 비하여 검정은 타율적인 어쩔 수 없는 불만을 감춘 감정 제어라고 해야 할 것이며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파랑은 자아를 살린 제어이고, 검정은 자아를 죽인 제어라고 말 할 수 있다. 아사리는 검정을 많이 사용하는 아동은 그의 부모에 대한 문제로 보았다. 부모가 잘못된 자녀교육의 적극성을 가지고 있거나 히스테리적 성격의 부모에게서 심한 꾸지람과 훈육적인 가정환경을 가진 아동이 이런 색 배열을 자주 사용한다고 한다. 노랑과 검정과의 대조를 쓰는 경우 아동은 아버지가 사망하거나 부재, 꾸지람을 하는 경우이며 어른들의 경우도 배우자를 잃었을 때 노랑과 검정의 콘트라스트를 다.
    사회과학| 2003.10.19| 5페이지| 1,000원| 조회(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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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건축기행이탈리아의 피렌체1427년경 마사치오가 그린 삼위일체상 프레스코화는 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작품이었다. 손에 잡힐 듯한 인물들의 모습과 배치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신을 우리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경배의 대상으로 묘사했던 중세시대의 그림과 달리 르네상스의 그림들은 그 속 인물들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준다. 원근법의 발견과 함께 자연주의와 복고주의로 찾아온 르네상스의 시작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은 원근법을 과학적으로 재 정립시키고 고전주의를 인간적으로 재해석 한 브루넬레스키, 그가 설계한 피렌체의 피오레 대성당의 돔에서 시작된다.< 르네상스의 정신 >15세기초 도시의 발전과 동방의 높은 문화와의 접촉에 의한 시야의 확대, 상인의 현세적, 합리적인 의식등을 기초로 하여 르네상스 문화가 탄생하였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배경을 보면 첫번째, 이탈리아에선 귀족계급과 부유한 부르조아 계급 사이의 구분이 없어졌으며, 두번째, 이탈리아가 서유럽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고대 로마시대의 유적이 산재하는 등 고전시대에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세 번째, 도시의 자부심과 사유재산제가 잘 발달되어 예술에 대한 후원의 기회가 많았다는 것 등이다.중세의 지나친 신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을 세계의 중심으로서 고려하고자 했던 르네상스 시대는 예술도 중세와는 달리 신이 아닌 인간을 주제로 하였으며 건축도 교회에 집중되었던 중세와는 달리, 공공건물, 궁전, 주택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이루어졌다.르네상스 예술가들은 중세의 지나친 신 중심의 감성적, 낭만적 경향에 염증을 느끼고 고전주의의 자연주의와 균형적 예술에 관심을 가졌다. 따라서 건축도 과거의 고전주의 건축에 관심을 가져 고전주의에 대한 연구분석을 통해 고전건축의 구성원리를 이론화, 체계화하여 이용하였다. 수학적 비례체계가 우주의 질서를 표현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수학적 비례체계가 건축물의 기본적 구성원리로서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의 평면과 입면을 지배하였다.르네상스시대에는 이 형태는 아름다운가 혹은 적합한가? 라는 질문이 아니라 이 형태는 정확한 것인가? 라는 질문이 행해진 시대였던 것이다.언제나 그렇듯 시대의 변화는 흐름이다. 시대사조가 바뀌었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모든게 바뀌지는 않는다. 초기 르네상스 미술이 원근법을 통해 큰 흐름을 바꾸었지만 여전히 고딕적인 요소를 담고 있었던 것 처럼 초기 건축도 중세건축에서 이루어진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초기 르네상스의 중심지인 피렌체와 그곳의 건축물을 살펴보자.< 피렌체의 역사 >르네상스 문화운동의 중심이었던 피렌체는 '꽃피는 고을'이라는 의미를 가진 도시이다. 문화와 예술의 성지인 피렌체의 역사는 BC 10세기 무렵의 취락 빌라노바에서 시작되며 도시로서의 발전은 BC 2세기부터였으며 로마시대 카시아 가도의 중심으로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제정시대에는 토스카나·움브리아의 중심이 되고 프랑크 왕국의 지배하에서는 백작령의 중심이 되었으나, 11세기 후반 마틸데의 시대까지 도시의 발전은 정체상태였다. 마틸데 사망 후 12세기 전반에 코무네로서 독립하고 좌안의 보루고 지역을 병합해서 발전하였다.12세기 무렵부터 산업, 특히 모직물공업이 발전하여 많은 직물상인이나 귀금속상인이 각기 조합을 만들어 경제적으로 번영하였고 피렌체는 유럽의 상공업 ·금융업의 중심이 되었다. 13세기에 이르러 교황당과 황제당과의 싸움이 피렌체시 뿐만 아니라 전 토스카나 지방, 나아가서는 전 이탈리아를 휩쓸었으며, 이때 피렌체는 피사 등의 인근도시를 지배하여 강대한 공화국이 되었다. 이 무렵 피렌체는 이미 인구 10만에 다다랐고, 산업 뿐 아니라 문화면에서도 이탈리아의 중심이 되어있었다.특별히 지옷토와 단테의 출생지였던 부유한 상업도시 피렌체에선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고자 하는 흐름이 강하게 나타났다. 피렌테는 새로운 아테네로 부상될 만큼 시민예술의 야심찬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예술가를 엘리트 집단으로 인정하는 등 미술가의 지위가 향상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 도시는 정치적·경제적 번영을 배경으로, 인문주의 사조를 기르고, 인간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했다. 미술가들은 조합을 만들고 공방을 거점으로 고전작품의 연구와 사실적인 자연탐구를 추진해 나갔다. 시민들의 미술에 대한 높은 관심과 공사에 이르는 왕성한 주문에 따라 건축·조각·회화 등 모든 조형분야가 서로 호응하면서 활성화하고 있었다.< 르네상스 건축의 특징 >* 중세건축의 구조와 의장의 융합 - 르네상스에서 계승*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전통을 통해 계승* 횡적인 유대감을 강조 - 휴머니즘* 건물전체의 조화 - 평면 입면의 비례 (Proportion), 균제 (Symmetry)* 교회당, 궁전 (Palazzo), Villa 등 여러가지 건물의 건축이 이루어짐.* 재료 및 구조- 주로 석재, 벽돌, 콘크리트 등을 주재료로 이용- 실제구조는 조적식 구조이면서 외부입면에는 가구식 구조로 표현- 돔은 시공성, 경량화, 아름다움 외관을 위해 골조 구조를 내외로 마감하는 이중구조로 시공- 조적식, 배럴보울트 구조법- 외관 : 질서를 가진 벽면의 구획 (수평:코니스, 수직:편개주), 재질감 강조 (2차원-3차원), 개구부의 변화감* 형태 및 장식- 고전건축의 질서와 형식미를 건축의 기본적 요소로서 고려- 수학적 관계에 바탕을 둔 조화와 질서, 균형과 통일에 의한 형태미를 추구- 건축의 각 구성요소가 그 자체와 상호관련성에 있어서 완벽한 비례와 조화를 이루는 건축형태를 추구- 주범, 코니스, 박공, 아치, 아케이드, 등의 고전적 요소들을 장식적 요소로서 이용- 외벽의 경우 벽면을 거칠게 마감하여 재질감을 강조하는 러스티케이션 기법을 적용- 내벽의 경우 프레스코벽화, 장식문양< 브루넬레스키와 건축 >브루넬레스키 (Filippo Brunelleschi, 1377~1446년)는 세공기술자였는데1401년 피렌체 세례당의 청동제정문에 당선되면서 조각가 대열에 들어섰다. 르네상스 최초의 건축가로서 초기에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정립하였는데 건축에 이전시대의 고전적 요소들을 도입하여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로마에 유학하면서 고대의 조각들과 건축양식, 그것들의 대칭과 균형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로마에 체류하면서 고대건축물들을 끊임없이 관찰하여 고전적 건축요소를 자유롭게 인간적으로 구성하였으며 투시도법을 발견하였다.당시 브루넬레스키가 유학한 로마는 새로운 건축양식에 결정적인 모델이 될 수많은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판테온이다. 이교도의 신전이었던 판테온은 카톨릭의 성당 산타 마리아 아드 마르티레스로 변화되었기 떄문에 파괴되지 않고 온전히 원형을 보존할 수 있었다. 삼각박공을 지지하는 거대한 기둥이 있는 주랑, 이상적인 중앙집중식 건축양식, 둥근천장이 씌워진 원형건물 등 판테온은 고대신전의 완벽한 본보기였다. 브루넬레스키는 이 판테온에서 영감을 얻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을 설계하게 된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공사는 13세기 말에 시작되었지만 여러 건축가들을 거치면서 오래 끌어왔고 ‘돔’ 부분은 15세기 과제로 남겨져 있었다. 브루넬레스키는 고대 로마의 판테온의 가구기술을 채용하여 돔을 설계하여, 조화를 이룬 당당한 볼륨을 공간에 세우는 데 성공하였으며 이로써 르네상스 건축의 시대를 열게된다.대성당은 3랑식의 교회당인데, 그 내진부는 8각형 평면의 중앙부를 에워싸 다각형의 apse가 방사형으로 펼쳐지도록 계획되어 있다. 요컨대, 고전적인 바실리카식 교회당의 머릿부분에 집중식 형태의 내진부가 부가된 형식이다. 브루넬레스키는 로마의 판테온과 기타 로마의 볼트들을 검토한 후, 북 모양의 팔각형 석조 구조위에 일련의 동심원 고리들을 올려놓음으로써 돔을 짓는 방법을 발견해내었다. 그 고리들은 벽돌과 석재로 된 수평의 층들로서 각 층을 지탱할 만큼 강하였다. 그렇게 올려놓게 되면, 석재들은 팔각형의 각 모퉁이 위에 놓이는 8개의 무거운 서까래를 형성하는 것이었다.브루넬레스키는 장엄하면서도 격리된 모습을 주기 위해 바깥쪽과 안쪽에 두 개의 돔을 지었는데, 이 안쪽 돔으로 인해 바깥 돔의 무게도 줄어들게 되었다. 돔은 본당회중석과 측랑을 맞춰서 가득히 엎도록 걸쳐져 있는데, 이 문제를 8개의 구면3각형으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cloister vault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그는 이것을 안과 밖의 2중 쉘로 이루어진 것으로써 구상하였으며, 그 때문에 골조로써 8각형의 정점에서는 중요한rib외에 rib사이에 보강rib를 놓고 그것들을 수평방향의 아치로 연결하였다. 또한 돔의 변형을 막기 위해서 rib의 바닥부분을 떡갈나무보에 의해 체륜으로 감싸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원형 평면위에 돔을 얹는 판테온의 경우와 다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고대로마를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전승된 전통 위에 새로운 형태를 세우면서 그 때까지와는 다른 구성미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의의를 엿볼 수 있다.
    예체능| 2003.10.19| 7페이지| 1,000원| 조회(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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