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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관의 혼돈양상과 원인진단 평가B괜찮아요
    < 북한관의 혼돈양상과 원인진단 >{- 목 차 -1. 서론2. 남한의 북한관 변화3. 남북공동선언을 둘러싼 논쟁4. 부시행정부 출범과 북한논쟁5. 북한관 혼돈의 원인진단6. 결론1. 서론북한과 남북통일에 관한 남한사회의 논쟁은 1945년 8월 15일에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됨과 동시에 남북으로 분단된 이후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왔다. 그 동안 남한의 북한관이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에 대한 논쟁의 중심에는 북한정권과 그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북한정권과 그 지도층을 신뢰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쪽{) 진보주의 세력 : 1 자본주의와 기존의 사회경제질서는 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영구화하는 것이므 로 부인되어야 하며, 2 경찰과 군대를 포함한 국가의 강압장치를 기본적으로 사회적 특권 계 층의 도구라고 규정하면서 이에 대한 반감을 표시하고, 3 평화적 수단을 통해, 그리고 가능하 다면 북한공산주의자와의 상호조정을 통해 민족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며, 4 미 국에의 의존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가질 뿐 아니라, 5 공산진영과 비공산진영의 투쟁에 대해 일반적으로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임.(한승주, 1974)에서는 그들과의 대화 또는 협상을 통한 남북의 평화적 통일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북한과의 화해를 주장해 왔고, 반면에 북한정권과 그 지도층을 신뢰할 수 없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쪽{) 보수주의 세력 : 1 남한에서 반공투쟁의 불가피성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고, 2 남한사회의 비공산적 성격의 보호를 위해 미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으며, 3 계급투쟁의 개념을 부인할 뿐 아니라, 4 공 산진영과의 투쟁에서 비공산권의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보임.에서는 그들과의 대화 또는 협상을 통한 남북의 평화적 통일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북한과의 경쟁, 심지어는 북한에 대한 대결을 제의해 왔다. 이러한 논쟁은 남한사회가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 이념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이러한 양상은 2000년 6월다. 그로부터 약 8개월이 지나 미국 주요기관들에 대한 테러가 발생하자 부시행정부는 테러국가들에 대해 더욱 강경하게 대처하게 됐으며, 미국이 테러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는 북한과의 관계를 더욱 긴장시키게 됐다. 이러한 상황의 전개 역시 남한사회의 북한논쟁을 자극하게 됐다.남한사회의 북한논쟁은 2002년 1월 29일에 부시대통령이 연두교서를 통해 북한을 악의 축(an axis of evil) 에 포함시켰을 때 재연됐다. 북한이 과연 악의 존재이냐를 둘러싸고, 또 그 발언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 아니냐를 둘러싸고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사이에 논쟁이 거세게 벌어진 것이다.이러한 배경에서, 다음에서는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2000년 6월의 남북공동선언 발표를 기준으로 이전의 북한관에 대해 알아보고, 발표 이후 남한사회에서 벌어진 북한과 남북통일에 관한 논쟁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2. 남한의 북한관 변화1) 1945~1948북한과 남북통일에 대한 논쟁은 북한이 소련군의 점령 통치아래 놓이고 남한이 미군의 점령통치아래 놓인 외국군 분할통치 3년 동안의 시기에 이미 격화됐다. 우리의 관심을 남한사회에 국한시켜 살펴보면, 북한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적대적인 사람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북한관을 제시했다.첫째, 북한은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동유럽을 점령한 소련군이 동유럽의 국가들을 모두 소비에트화해 궁극적으로 소련의 위성국들로 만들 듯, 소련은 북한을 소비에트화 해 동북아시아의 위성국으로 만들고 있다.둘째, 소련의 북한위성국화 작업에서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이 김일성(金日成)이다.셋째, 소련의 점령통치는 북한에 대한 가혹한 착취와 수탈, 그리고 억압으로 일관됐다. 공산통치 아래서는 숨을 제대로 쉬면서 살 수 없다.넷째, 소련이든 북한이든 공산주의자들은 거짓말을 너무 잘 하며, 천성이 불성실하다.이러한 북한관에서 도출되는 남한사회의 남북 통일관은 단순했다. 그것은 북한주민들을 소련과 그의 앞잡이 김일성 일당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북한 해방론이었다은 위장평화공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강하게 갖게 만들었다.3) 그 이후 남한의 역대 정부북한의 공산정권은 괴뢰정권이며 믿을 수 없는 존재이므로 그 정권을 상대로 한 대화나 협상을 제의하는 행위 자체는 처벌받아야 했다.1979년대 초에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추구하게 됐는데, 그 결과 미국은 중국과 더불어 한반도문제를 유엔에서 더 이상 다루지 않고 남한과 북한 사이의 대화와 협상에 맡기기로 합의했다. 박정희 정부는 그 요구에 맞춰 남북대화에 응했고 마침내 1972년 7월 역사적인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 속에서도 남한의 정부와 사회는 북한정권과 그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4) 진보세력의 출현북한정권과 그 지도자들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인식이 대체로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사이에 남한사회에 뿌리내렸다.1988년 출범한 노태우 대통령 정부가 북방정책이라는 이름아래 공산국가들에 대한 접근정책을 추진하고 그 틀 안에서 7·7선언의 발표 등을 통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폭넓게 추구하고자 했을 때 북한논쟁은 다시 벌어졌다. 보수주의자들은 북방정책이 남한의 우방과 적을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이에 반해 진보주의자들은 보다 7·7선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본질적인 관계개선을 요구했다.이처럼 남한사회에서 북한논쟁이 재연되고 있는 동안에 동유럽에서는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계기로 공산정권들이 차례로 붕괴했다. 그것은 북한붕괴론으로 이어지면서 진보주의자들을 위축시켰다. 반면에 보수주의자들로 하여금 북한에 대한 양보나 너그러움을 수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그러나 1993년에 북한의 핵확산금지협정 탈퇴선언에 따라 한반도에서 핵위기가 표면화되면서 북한논쟁은 다시 격화됐다. 역시 북한은 호전적이며 따라서 신뢰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기존의 보수주의적 시각이 우세해진 것처럼 보였다.이어 1994년 7월에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북한붕괴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북한논쟁은 더욱 활발해졌다. 그 위 동해안에서 일어난적 갈등에 정파적 갈등을 복합적으로 드러내기에 이르렀다.3. 남북공동선언을 둘러싼 논쟁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고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은 마지막 날에 남북공동선언{) 남북공동선언은 5개항으로 구성되어 있다.(1) 자주적으로 통일을 추진한다는 원칙 (2) 남측의 연합 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인식아래 남과 북이 그 공통점의 바탕 위에서 통일의 길을 모색한다는 다짐 (3) 이산가족의 재회, 그리 고 남한에 머물고 있는 북한출신 비전향장기수의 북한송환에 관한 합의, (4)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이라는 취지 에서 남한의 대북경제지원 약속, (5) 남북사이의 후속 공식회담 개최에 관한 합의, 그리고 김정일의 절절한 시기 의 답방 약속 등이 그것들이다.의 발표로 매듭지어졌다. 이 공동선언은 발표 직후의 짧은 기간에는 별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준 감동,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킨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의 감동과 기대감은 크게 약화되었고, 그동안 잠복했던 논쟁이 다시 표면으로 드러났다. 그 논쟁을 간단히 살펴보면, 첫째, 이 선언이 한반도의 평화와 관련해 별다른 언급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해, 한반도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화시키는 문제야말로 한반도 평화구축의 핵심인데 이 문제에 관해 아무런 표현이 없다는 비판이 주로 보수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이에 대해, 진보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남북공동성명의 적극적 옹호론자들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문제는 본질적으로 북한과 미국 사이에 다뤄질 문제라고 반론했다.둘째, 남측의 연합제 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에 공통점이 있음을 인정한 제2항에 대한 논쟁은 매우 학술적인 성격을 지닌 채 전개됐다. 어떤 학자들은 두 제의의 차이점들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이 합의가 남북한이 각각 제의햇던 통일방안들을 절묘하게 접합시켰다고 평가했으며, 다른 학자들은 이 합의가 북한이 다 적으며, 남한의 경제력에 비춰 감당할 만하다고 주장했다.4. 부시행정부 출범과 북한논쟁2001년 1월 부시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때로부터 부시행정부와 김대중 행정부 사이에 북한정책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국내외에서 제시됐다. 부시행정부 고위관리들은 대북강경책을 예고하고 정책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에 대한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정책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하면서 앞으로는 검증과 상호주의가 반드시 적용돼야 한다고 제의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부시대통령은 2001년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의 제1차 한미정상회담 때 김대통령과 상당히 큰 폭에서 이견을 드러냈다. 부시는 김정일을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깊은 의혹을 나타냈다. 부시는 심지어 김대통령에게 의심이 가는 북한을 상대로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말도록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남한과 미국 사이, 북한과 미국 사이, 그리고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의 이러한 새로운 흐름은 남한사회에서 북한논쟁을 재연시키기에 충분했다. 보수주의자들은 김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이 재앙 을 만났다고 표현하면서 남한은 북한과의 화해보다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진보주의자들은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 전반을 비판했다. 진보주의자들은 부시행정부가 전쟁회귀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클린턴 행정부 때 이뤄진 제네바합의와 비적대 합의를 존중하는 기초 위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도록 권고했다.2002년 미국은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가운데 북한을 이라크 및 이란과 함께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축 에 속하는 국가로 단언하였다. 부시대통령과 보좌관들의 강경한 발언들은 남한사회의 북한논쟁에 즉각적인 영향을 끼쳤다. 보수주의자들은 부시대통령의 북한관에 대체로 수긍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는데도 김대중 행정부가 안이하게 대처해 왔다고 비난함과 아울러 이미 부시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세우인진단
    사회과학| 2003.12.09| 6페이지| 1,000원| 조회(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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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이트 이론 평가A좋아요
    Ⅱ. 프로이트의 생애1. 프로이트의 배경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1856년 모라비아의 프라이베르크에서 출생하여, 1939년 런던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는 생의 대부분을 비엔나에서 보낸 비엔나 사람이었다. 1937년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자 프로이트는 어쩔 수 없이 영국으로 피난처를 찾아 떠나야 했다. 그에게 그런 일만 없었더라면, 그는 유아기의 첫 3년을 제외한 전생애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에서 보냈을 것이다.80년에 이르는 프로이트의 긴 생애는 세계 과학사상 가장 창조적인 시기 중의 하나와 일치한다. 프로이트가 세 살이 되던 1859년, 그의 가족이 비엔나로 이주한 바로 그 해에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을 발표했다. 이 책은 전 세계 사람들의 인간관을 개혁하고도 남을 만한 운명의 책이었다.다윈 이전에는 인간은 영혼을 지녔으며, 그로 인해 동물계에서 분리된 독자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진화론은 인간을 자연계의 극히 미세한 일부로, 다른 동물들과 똑같은 동물로 간주해 버렸다. 이러한 일대 혁신적인 견해를 수용한다는 것은 자연주의적 노선에 따라 인간을 연구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간은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복잡하다는 부분 외에는 다른 어떤 생명체와도 조금도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종의 기원》이 발간된 다음 해, 프로이트가 네 살이 되었을 때, 구스타프 페흐너(Gustav Fechner)는 심리학을 자연과학의 한 분야로 정립했다. 19세기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페흐너는 1860년 마침내 인간의 내면적 심리도 과학적으로 충분히 연구할 수 있으며, 양적(量的)으로도 측정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리하여 심리학도 여타의 자연과학들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이들 두 인물, 즉 다윈과 페흐너는 당시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프로이트 역시 그들의 영향으로 지적 성장을 하였다. 때마침 19세기 후반에는 심리학과 생물학에 대한 중인(衆으로서 단순히 꿈을 다룬 것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에 작용하고 있는 역학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제5장은 프로이트가 인간의 정신을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이 책이 처음 발간되었을 때, 비전문가들은 거의 읽은 사람이 없었고, 의학계와 과학계에서는 일시에 무시해 버렸다. 초판 600부가 팔리는 데 무려 8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 세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실패작이 되었다고 해서 낙담하지는 않았다. 그는 스스로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했으며 정신 분석학적인 측면으로 인간의 내면을 끊임없이 탐구해 나갔다. 그는 환자들이 고질적인 병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주었고, 동시에 환자들은 그가 무의식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꿈의 해석》에 대한 보잘것없는 반응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는 향후 10년간 끊임없이 많은 책과 논문을 발표했다. 그 중 《일상 생활의 정신 병리학) 1904년 발표, 이 책은 실언(失言), 실수, 사고 그릇된 기억들은 모두 무의식적인 동기에 기인한다는 새로운 주장을 담고 있다.(The Psychopathology of Everyday Life)》, 《히스테리 증세의 연구) 1905년 발표, 여기서 프로이트는 정신질환의 심리학적 요인을 추적하는 방법을 상세히 기술하였다.(A Case of Hysteria)》, 《 성욕의 세 논문) 1905년 발표, 인간의 성적 본능의 발달을 볼 수 있는 프로이트 자신의 관점을 밝히고 있다. 몇몇 심리학 권위자들은 이 논문들 중에서 《꿈의 해석》을 제외한다면 프로이트의 저작 중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이 세 논문으로 인해 범성론자(汎性論者)라는 부당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Three Essays on Sexuality)》, 《위트와 무의식의 관계) 1905년 발표, 사람들이 주고받는 농담이 무의식의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Wit and Its Relation to the Unconscious)》가 대표적이다.오랫동안 과학렁일 때마다 수면위로 드러나는 부분을 말한다. 또한 수면 아래에 있어서 볼 수 없으며, 그 부분이 전체 빙산의 70%를 차지하는데, 그것을 무의식이라 한다.3) 무의식정신 분석 연구의 초기에는 프로이트 이론의 중심 개념은 '무의식(unconscious)'이었다. 19세기의 심리학은 의식을 분석하는 연구에만 급급했고, 그러는 동안 정신 분석학은 무의식의 연구에 전념하고 있었다.무의식은 인간 정신의 가장 깊고 중요한 부분이며 이 무의식은 제시될 수 있고 증명할 수 있는 현실이라고 프로이트는 주장하였다. 그는 우리의 의식밖에 있는 충동과 욕망이 인간 행동의 아주 중요한 부분을 만들고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고 굳게 믿었다. 이러한 힘은 의식일 뿐 아니라, 개체 내부에는 이것이 의식상에 떠오르는 것을 막는 강한 저항이 있다. 전의식적 사고와는 달리 무의식은 전혀 인식되지 않고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한다.다시 말해 소망, 공포, 충동, 억압된 기억 등이 저장되어 있는 무의식이 행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의 정신과정 혹은 정신내용은 그 중 일부분은 의식 속에 있다가 억압되어 무의식에 저장된 것이며, 나머지는 절대로 의식될 수 없고, 또 의식되지 않았던 무의식의 근저에 있다. 무의식의 내용은 언어화되기 어렵고 논리성도 없으며, 상반되는 경향이 동시에 공존하기도 한다. 무의식이 있다는 증거로는 최면에 걸렸을 때의 암시, 꿈, 잘못 튀어나온 말, 불쾌한 사건의 망각 등이 있다.3. 마음의 구조적 이론프로이트는 인성(Personality)은 세 가지 주요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체계가 소위 말하는 '이드(id)’와 ‘자아(ego)’와 ‘초자아(superego)’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이들 세 체계가 통일되어 조화로운 조직을 형성한다. 이 체계들은 상호 협력하고 작용함으로써 개인이 효율적이며 만족스럽게 환경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환경에 대처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반대로 이들 인성의 세 체계가 서로 어긋나면을 지향한다. 즉 초자아는 인간의 도덕률(道德律)이다. 초자아는 어린 아이가 부모로부터 선과 악, 덕과 죄에 대한 인식을 받아들인 결과 형성되는 것이다.부모의 도덕적 인식을 받아들임으로써 어린 아이는 부모의 것을 자기 자신의 내면적 인식으로 간주한다. 부모의 도덕적 인식을 자기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어린 아이는 부모의 소망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쾌락을 얻는 동시에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는 현실 원리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뿐 아니라 그들은 항상 부모의 도덕적 지시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도 배운다. 어린 아이가 부모에 의존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초자아의 형성에는 유리하다.초자아는 '자아 이상(ego-ideal)'과 ‘양심(conscience)'이라는 두 개의 하위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자아 이상은 부모의 도덕적 선이 무엇인지 어린아이가 알게 될 때, 그 어린아이가 형성하는 선(善)에 대한 개념과 관계가 있다. 부모는 어린아이가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였을 때, 어떤 보상을 줌으로써 그 어린아이에게 부모의 도덕적 인식을 전달한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매우 깨끗하고 단정한 태도를 보일 때마다 꾸준히 상을 주면 마침내 청결이 어린아이의 이상이 되기 십상이다. 반면, 양심은 부모가 느끼는 도덕적 악이 무엇인지 어린아이가 알고, 그 악의 개념을 형성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이 악의 개념들은 벌을 받음으로써 확립된다. 어린아이는 더럽다고 해서 매번 벌을 받게 되면 불결이 굉장히 나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자아 이상과 양심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동일한 도덕적 표리(表裏)이다. 초자아는 사회가 지니고 있는 전통적 가치와 이상이 인성 속에서 발현된 것이다. 모든 전통적 가치와 이상은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전승(傳承)되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어린아이의 초자아는 부모의 행동을 반영한다기보다는 부모의 초자아를 수용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초자아의 목적은 무엇인가? 일차적인 목적은 충동을 억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충동은 통제되지 않있는 행동 등으로 표현된다. 변비증은 배설에 대항하는 일반적인 방어 반응이다.만약 배설물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어린아이는 배설할 때 뭔가 귀한 것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그 상실에 대한 반응으로 어린아이는 의기소침해지며 허탈해지고 또 불안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배설을 거부함으로써 자신에게 미칠 상실을 막으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이 고착되고 일상적인 일이 되어 버린다면, 그는 알뜰하거나 인색하며, 타산적인 사람이 될 것이다.3) 남근기(Phallic period , 3세 - 6세)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그리스 신화 오이디푸스에서 딴 말로서 s.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서 쓴 용어이다.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에피카스테)의 아들인데 숙명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의 왕이 되었다. 어머니인 줄 모르고 결혼한 그들은 그 사실을 알자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기 눈을 뺀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 그리스신화에서 아가멤논의 딸 엘렉트라가 보여준 아버지에 대한 집념과 어머니에 대한 증오에서 유래하였다. 미케네 왕 아가멤논은 10년 동안의 트로이전쟁을 마치고 귀국한 날 밤에 아내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간부(姦夫)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당하였다. 엘렉트라는 동생인 오레스테스와 힘을 합쳐 어머니와 간부를 죽이고 복수하였다.남근기는 3세에서 6세까지로 아동이 자신의 성기를 만지고 자극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부터 id, 자아, 초자아는 역동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동시에 부모에 대한 어린아이의 성적 동경이 강화되는데, 이것은 그 아이의 대상 집중에 일련의 중대한 변화를 유발시킨다.남근기가 시작되기 전 남아는 어머니를 사랑하며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한다. 성적 충동이 강해짐에 따라 어머니에 대한 남아의 사랑은 근친상간적이 되어 가고, 그 결과 자신의 경쟁자인 아버지를 시기하게 된다. 이처럼 남아가 어머니를 독점하기를 갈망하고 아버지에게 적의를 느끼는 상태를 '오이디푸스
    사회과학| 2003.11.03| 17페이지| 1,000원| 조회(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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