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동주 (尹東柱/1917~1945) ☆Ⅰ. 생애시인. 북간도(北間島) 출생. 용정(龍井)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을 거쳐 도일,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 재학 중 1943년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하다 사상범으로 일경에 피체, 44년 6월 2년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용정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 연길(延吉)에서 발행되던 《가톨릭 소년》에 여러 편의 동시를 발표했고 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도일하기 앞서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그의 사후에 햇빛을 보게 되어 48년에 유고 30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옴으로써 비로소 알려지게 된 윤동주는 일약 일제강점기 말의 저항시인으로서 크게 각광을 받게 되었다. 주로 1938~41년에 쓰여 진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서시(序詩)》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십자가》 《슬픈 족속(族屬)》 등 어느 한 편을 보더라도 거기에는 울분과 자책, 그리고 봄(광복)을 기다리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져 있다. 연세대학 캠퍼스와 간도 용정중학 교정에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으며, 95년에는 일본의 도시샤대학에도 대표작 《서시》를 친필과 함께 일본어로 번역, 기록한 시비가 세워졌다.Ⅱ. 시세계1. 그리움과 실향의 비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관류하는 것은 그리움의 정서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소학교 때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 동생 등 가족에 대한 그리움, 떠나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지금은 흘러가 버린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그리움이 시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움들을 묶어서 우리는 향수라 일컬을 수 있으며, 이 향수는 윤동주 시의 모티프가 되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그러한 향수는 윤동주 시의 원 가자백고 몰래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故鄕)에 가자.윤동주의 뿌리 깊은 고향상실 의식과 그 비애, 불안 심리, 강박 관념과 함께 새로운 고향 즉 열린세계,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 잘 나타나있다. 그러나 그 고향은 이미 영혼과 육신이 함께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이미 유년의 평화와 아름다운 동심은 사라지고 어둠으로 가득 찬 불안의 장소로 변모한 고향일 뿐이다2. 저항의식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빼앗긴 조국과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저항 의식이 담겨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니, 시집의 기본 정신이 이러한 저항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집 전체를 저항시 또는 윤동주를 저항 시인으로 못박는 것도 바람직한 일 만은 아니다. 옥사라은 생애사적 사실과 식민지하에서 시가 씌어졌다는 사실이 어쩌면 윤동주와 그의 시를 단순화 내지는 도식화함으로써, 그가 지닌 다양하면서도 심도 있는 인간성과 폭 넓은 상징성에 바탕을 둔 시의 예술성을 제대로 해석해 내는데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극적 저항의식 : 윤동주의 저항의식은 안으로는 열하고 뜨겁지만 밖으로는 절제된 ‘내재적, 인고적, 자책적’ 특성을 지니며 그것은 기독교적 속죄양 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윤동주의 저항 의식에 있어서 그리스도적 수난 의식과 속죄양 의식이 그 핵심으로 작용한 것이며, 이 점이 투쟁적, 전투적 저항 방식의 관점에서 볼 때는 한계적인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윤동주시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저항의식은 흔히 얘기되는 비판적, 투쟁적, 행동적 속성을 지니지 않는다. 그것은 내성적, 자책적, 수호적 특성을 지니며, 인고의 정신에 바탕을 둔 기독교적 속죄양 의식에 본원적으로 회귀되는 저항의식인 것이다.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위에습한 간(肝)을 펴서 말리우자.코카서스 산중(山中)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내가 오래 기르는 여윈 독수리야!와서 뜯어 먹어라,살아 왔던가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그때 그 젊은 나이에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그러면 어느 운석(隕石)밑으로 홀로 걸어가는슬픈 사람의 뒷모양이거울 속에 나타나온다시인은 밑줄 친 구절에서 보듯이 삶의 무의미함을 자각하는 그 순간 유서와 같은 참회의 마지막 시 한 줄을 쓰고자 하는 것이다.그러나 어차피 삶은 회한과 참회의 연속인 것, 언젠가 미래의 어느 날 다시 써야만 할 유서 또는 참회록을 예감하고 새삼 부끄럼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보자”와 갓이 현실의 어둠 속에서 흐려만 가는 본원적 자아를 자꾸만 갈도 닦는 일 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슬픔 그 자체로서의 운명이라 하여도, 욕됨과 부끄럼 그리고 슬픔이 뒤섞인 참회의 눈물, 그 거울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자신을 발견하며 새삼 스스로의 운명을 긍정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욕됨, 부끄럼, 슬픔’등 윤동주 시 정감의 핵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 참회록의 참뜻이 놓여지는 것이다.3. 부정적 현실 인식 또는 비극적 세계관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는 부정적인 현실 인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것은 현실을 부재하는 것 도는 깨어진 것으로 인식하는 것으로서, 어둠 혹은 밤의 표상성을 지닌다. 실상 이 시집의 주조는 어둠의 색채로 물들어 있고 밤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절망과 공포, 그리고 비탄 등 부정적 현실이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관형어가 “슬픈, 괴로운, 어두운, 텅 빈”등과 같이, 서술어가 “없다, 아니다, 말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 될 수 있다.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고한번도 손들어 보지못한 나를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나를 ‘돈벌러 만주 간 아빠, 죽어서 별나라 간 엄마’ 등 현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동시라고 해서 어린이가 쓴 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이 경우는 스무 살 때 썼다는 점에서 어른이 쓴 동시에 해당하며, 이것은 윤동주의 동심에 대한 지향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이처럼 동시에는 자아와 세계와의 행복한 화해가 추구되는 가운데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가 다소 드리워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점은 이미 지적한 것처럼 많은 동시가 어린 시절보다는 스무 살 무렵에 씌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색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윤동주의 유아 의식 혹은 유아기에의 퇴행을 반영한 것이라고 이해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거칠고 억센 식민지 말기의 질곡ㅇ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중의 하나가 어린 것, 착한 것, 순진무구한 것, 불쌍한 것, 아름다운 것을 동경하는 동심에 대한 지향정신 속에서 획득될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 된다.5. 천상에의 동경과 자연 친화천상적 질서에의 동경과 함께 자연 친화의 정신이 드러남을 읽을 수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 제목부터가 그렇듯이 시집 도처에는 무수한 전체적 이미저리와 전원 심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천상적 이미지인 하늘, 바람, 별 등과 전원의 상징인 계절과 식물적 이미지 등도 신뢰할 수 없는 현실로부터 열린 세계를 지향하는 정신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순환하는 것, 변화하는 것으로서 대자연의 순환질서가 막힌 현실에 변화를 불어 넣음으로써 새로운 정신의 탄력을 유발하고, 서정의 신선한 긴장력을 유지시켜 주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려라.어둠과 바람이 우리 창에 부닥치기 전나는 영원한 사랑을 안은 채뒷문으로 멀리 사라지련다.이제네게는 삼림 속의 아늑한 호수가 있고,내게는 험준한 산맥이 있다.이 작품은 순이라는 구체적인 여성 이름이 등장한다. 사라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그것은 다분히 좌절된 사랑, 쫓기는 사랑, 헤어질 운명의 사랑으로 묘사돼 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연정 혹은 맹목의 관념적 사랑이 표현된 것으로도 보인다.④ 신앙적 사랑 : 부분적으로 나타나지만 이것은 작품의 밑바탕에 녹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몇 작품에서 기독교적 속죄양 의식과 종말론적 세계관 그리고 성서 인용이 구체적으로 나타난다.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마태복음 5장 3~12라는 원전이 밝혀져 있는 이 작품은 신앙심에 직접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실의 고통과 운명의 슬픔을 인정하고, 오히려 즐겁게 받아들이려는 기독교적 수난 의식과 긍정적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⑤ 자기애 : 이 자기애적인 자아 성찰은 변정법적 과정으로 전개된다. 그것은 ‘들여다봄→미움’ ‘돌아감→가엾음’ ‘도로 들여다봄→미움’ ‘돌아가다 생각함→그리움’아라는 이행 과정을 겪는다. 다시 말해 ‘미움→가엾음→미움→그리움’이라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발전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는 자기애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미움도 가엾음도 아닌, 미움과 가엾음의 과정을 통해 마침내 진정한 그리움의 세계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윤동주의 자기애는 자기 성찰의 변증법적 갈등을 겪은 진정한 자기애의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자기애의 변증법적 발전 과정은 마침내 운명애의 단계로 고양되게 된다.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