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이해시인 이기철을 찾아서- 자연과 삶의 모습-Ⅰ. 머리말Ⅱ. 본 론1. 이기철의 생애와 삶의 발자취2. 자연은 나의 전부이다.3.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Ⅲ. 맺음말Ⅰ. 머리말지금까지 많은 시인들이 자신의 시들을 남겼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누군가에 의해 창작되어 지고 있을 것이다. 시라는 것은 어떤 문학 장르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무심코 읽은 시 한 구절이 가슴 속에 오래도록 남아 평생을 되뇌이게 하는 것은 아마도 작가의 마음과 읽는 이의 마음이 시의 매개로 강력히 동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기철 시인의 시를 읽게 되면 다들 무엇인가 향기롭고, 잔잔함이 묻어 나온다. 그의 시는 대부분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그 자연은 결코 정복해야할 대상이 아닌 그자체이며 또한 스승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한 그는 사람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다. ‘사람을 위한 시, 삶을 위한 시’ 라고 그 스스로 시작노트에서 밝혔듯 그의 시에서는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이 묻어나온다. 사람 사랑하는 마음 아니면 시를 쓰지 않으리라는 시인의 다짐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더욱더 향기롭고 잔잔한 것이 아닐까?이를 바탕으로 시에 나타나는 자연과 삶을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는지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1. 이기철의 생애와 삶의 발자취▶생애1943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국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 『현대문학』에 '5월에 들른 고향'등이 추천되어 시단에 데뷔했고, 1976년부터 '자유시' 동인, 1993-4년 대구 시인협회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시집으로 『낱말 추적』 『청산행』『전쟁과 평화』 『우수의 이불을 덮고』 『내 사랑은 해지는 영토에』 『시민일기』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열하를 향하여』 『유리의 나날』『가장 따뜻한 책』등 11권과 시선집 『청산행』 『가혹하게, 그리운 여름』이 있으며, 소설집 『땅 위의 날들』, 심으로 고찰해보도록 하자.▶ 깨달음의 자연이기철에게 자연은 바로 인간에게 지혜와 예지를 일깨워주는 존재로서 기능한다. 그는 소일거리나 취미로 자연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인간의 유한서에 대한 성찰을 일구기도 하고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기도 한다. 그가 자연에 귀를 기울여 우리에게 들려주는 잠언들은 한 없이 편안하게 하고 경건하게 한다.산들이 양떼처럼 엎드린 골을 지나빨간 자전거를 타고 산모롱이를 돌아가고 싶다귓속에 해바라기를 피워놓고 기다리는박꽃 같은 사람들을 찾아이 세상 가장 순하고 여린 마음을 지닌 우체부가 되어산모롱이를 돌아가는 페달을 밟고 싶다새록새록 숨쉬는 싸리나무의 숨소리를 듣고둔덕에 잎어오르는 자운영 꽃망울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싸락눈 같이 흰 꽃들과도 눈맞추는우편배달부가 되어 살고 싶다살구꽃이 치약처럼 피어나고햇볕이 타월처럼 빨랫줄에 걸리면 더욱 좋으리라두 달치 월급을 받지 않아도마음 그리 야위지 않고가다가 돌멩이에 눌린 풀잎 하나도 일으켜놓고 가는 사람도랑물을 건널 때 피라미들이 발목을 간지리며마음은 더욱 즐거우리라(중략)갈 때 무거웠던 편지 가방 돌아올 땐 기쁨으로 가벼워지리라어깨에 내리는 저녁 햇살이 산새처럼 정겨운,노래하지 않아도 온몸이 노래로 적셔지는,빨간 자전거를 타고 산모롱이를 돌아가는우체부가 되어 살고 싶다『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민음사, 2000이 시를 보면 배경은 산모롱이다. 이 산모롱은 바로 자연 그 자체이다. 시적화자는 이 산모롱이를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산모롱이를 돌아감으로서 그 속에서 그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고, 자연과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즉 산모롱이를 돌아간다는 것은 화자의 삶을 목표를 제시해주는 스승인 것이다.또한 ‘돌아가고 싶다’, ‘살고 싶다’, 밟고 싶다‘ 등의 시어를 통해 보다 간절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마지막 연을 보면 ’갈 때 무거웠던 편지 가방 돌아올 땐 기쁨으로 가벼워지리라‘ 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현실에서의 무거웠던 삶 고민의 양식으로 피어오르고생목(生木) 울타리엔 들 거미줄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실로 이 세상을 앓아 보지 않은 것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전문, 『청산행』, 민음사, 1995이시는 화자가 청산에 와서 변화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청산에 머물면서 흐리던 산길도 잘 보이게 된다. 이는 세상의 때를 벗어버린 순수한 자연의 상태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청산이라는 자연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지만 인가를 내려다보고 일상물건을 기억한다. 이는 완전히 일상을 벗어던지진 못한 모습이다. 이렇듯 화자는 일상과 자연 속에서 방황을 하게 된다. 결국에는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실로 눈물겨운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깨달아 고통스럽지 않게 살아가는 자연의 삶을 동경한다. ‘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실로 이 세상을 앓아 보지 않은 것들과 함께 잠들고 싶다’는 화자의 소망이 고뇌를 모두 떨쳐버리고 자연에 완전히 흡수되고자 하는 그러한 소망이다. 그리고 이 같은 바람이 역설적으로 일상의 삶을 지속하게 하고 고양시키는 힘이 되어 준다는 점을 함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청산은 화자에게 아름다움의 관찰대상이며 그가 바라는 이상향인 것이다.자연에 대한 아름답고 순수한 관찰이 이루어진 작품을 하나 더 살펴보자 는 이러한 모습을 더욱더 잘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이것만 쓰네山房(산방)에 벗어놓은 흰 고무신 안에 혼자 놀다 간 낮달을내게로 돌아오다 제 앉을 자리가 아니 줄 알고 되돌아간 노랑나비들단풍잎 다 진 뒤에 혼자 남아 글썽이는 가을 하늘을한 해 여름을 제 앞치마에 싸서 일찌감치 풀숲 속으로 이사를 간 엉겅퀴 꽃씨를내 언어로는 다 쓸 수 없어 이것만 쓰네사월 달래순이 묵은 돌덩이를 들어 올리는 힘을 본 것도 같은데저를 좀 옮겨달라고 내 바지 자락에 매달리는, 어언 한 해를 다 살아버린 풀씨의말을 알아들은 것도 같은데아직도 흙 이불로 돌아가지 못한 고욤 열매의 추위를 느낀 것도 같은데다 쓸 수 없어 이것만 쓰네-전문, 『가장 따뜻한 책』, 민음사서는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지 않은 서로 같은 동화의 모습을 간직한 시들도 많이 있다.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인간은 몸 안에 자연의 씨앗들을 품고, 자연은 인간화된 모습으로 타나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 몇가지를 예를 들면 , , 속에서 나타난다.3.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이기철, 그가 말하는 시는“시를 읽는 그 시간만이라도 독자에게 따뜻함을 주라”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주장)처럼 전위 문학을 거치 20세기 예술에는 분명히 비인간화된 모습이 있다. 세계가 인간과 화해롭지 않은데 어떻게 예술이 화해로움만을 담을 수 있으냐, 하지만 나는 그것마저도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세계가 화해롭지 않을 때 문학과 시만이라도 화해로움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 그래야 우선 나 자신이 즐거울 수 있고 편안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화해로워야 독자에게도 화해로움을 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끝없이 따뜻하고 화해로운 말을 찾아 해맸다.)“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더러는 위의 말이 제목이 된 내 시를 보고 어떻게 당신이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울 수가 있느냐고, 세상에는 추악하고 더러운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당신은 모두 아름다운 사람만 만났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추악하고 더러운 사람에서 아름답고 착한 심성을 발견하려는 마을을 잃지 않는다. 더욱이 시를 쓰는 마음이 그런 것이어야 하리라.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인간(Human)’이라는 말에 경배한다. 인간은 짐승이 아니다. 비록 추하고 비속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 근본은 아름답고자 하는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비평도 그러한 아름다움, 그러한 인간의 호흡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글자 뒤에 숨은 인간의 호흡, 그 내밀한 정서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달걀이 아직 따뜻한 동안만이라도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우리 사는 세상엔 때로 살구꽃 같은 만남도 있고단풍잎 같은 이별도 있다지붕이 기다린 것만큼 너는 기 따뜻한 공간을 확보한다.보통 시에서 나타나는 ‘밤’의 이미지는 대체로 무겁고 암울한 모습으로 표현하는데 시인은 어둠의 시작을 시각과 청각 이미지로 편안한 상태를 조성하였다. 다음 행으로 이어지는 '채소처럼~ 씻어 놓아야 한다' 에서는 사람들의 겸허한 기다림과 반성의 시간을 설정하는 여유를 보여 주고 있다. 밤은 단지 어두운 게 아니다. 그 어둠속에서 ‘별’이 있어서 밤이라는 존재를 더욱더 가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즉 ‘별’은 어둠속에서 존재를 확인하고 삶의 의지를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이기철의 시에는 상실 또는 이별의 슬픈 감정은 없다. 이별의 상황이 여유롭게 전개되고 있다. 누구라도 왔다가 떠나는 일이 일상이고 생과 사의 이치임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면서 넉넉한 배경에 펼쳐지는 인연과 자연의 섭리를 '숭고'하게 여기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일하고 사랑하고 자연의 배경 위에 맞이하고 보내는 사람의 삶이 고통과 슬픔이 아닌 아름다운 것을 깨우쳐 주고 있다.또한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는 말은 낮 동안의 밝음과는 정반대로 어두운 이미지가 아닌 고요한 어둠의 이미지로 비추어진다. 완전한 어둠에 이르렀을 때 분주했던 밝은 시간과 작별을 하고 비로소 평온의 시간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시적화자는 시의 뒷부분에 자신의 경험과 함께 작은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 ‘향기로운 꽃잎의 말’,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에서 삶이란 결코 탁한 어둠이 아닌 고요한 어둠속의 별처럼 또한 자연과 인간 모두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Ⅲ. 맺음말시인 이기철은 현대에서 보기 드문 따뜻한 눈을 소유한 사람이다. 근대화로 인한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연의 모습과 삶의 자세를 드러내주었다.시인 이기철의 시를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1) 이끌림 자체는 강한 주장보다도 더 강하다.이기철의 시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또
현대 시 깊이 읽기-서정주서정주(徐廷柱.1915.5.18∼2000.12.24 )본관은 달성 호는 미당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나 고향의 서당에서 공부한 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6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였다.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이 당선되면서 등단해 같은 해 김광균ㆍ김달진ㆍ김동인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고 주간을 역임하였다. 1941년 등 24편의 시를 묶어 첫 시집 을 출간하였는데, 이 무렵에는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과 토속적 분위기가 짙게 풍기는 인간의 원죄 의식을 주로 노래하였다.그러나 1942년 7월 [매일신보]에 다츠시로 시즈오라는 창씨명으로 평론 를 발표하면서 친일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후 1944년까지 친일 문학지인 [국민문학]과 [국민시가]의 편집에 관여하면서 수필 (1943), (1943), (1943)와 일본어로 쓴 시 (1943), 단편소설 (1943), 시 (1943), (1944) 등 여러 편의 친일 작품을 발표하였다.1948년에는 시집 , 1955년에는 을 출간해 자기 성찰과 달관의 세계를 동양적이고 민족적인 정조로 노래하였고, 이후 불교 사상에 입각해 인간 구원을 시도한 (1961), (1969), 토속적ㆍ주술적이며 원시적 샤머니즘을 노래한 (1975)와 (1976) 외에 (1984), (1988), (1991), (1993) 등을 출간하였다.작품 활동 외에 1948년 [동아일보] 사회부장ㆍ문화부장, 문교부 예술국장을 거쳐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이후 조선대학교ㆍ서라벌예술대학교 교수, 동국대학교 문리대학 교수(1959~1979)를 지낸 뒤 동국대학교 대학원 종신 명예교수가 되었다. 1971년 현대시인협회 회장, 1972년 불교문학가협회 회장, 1977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1984년 범세계 한국예술인회의 이사장, 1986년 [문학정신] 발행인 겸 편집인을 지냈고, 2000년 12월 24일 사망하였다.저작에는 (전5권) 등이 있으며, 시집에는 닥 늘어뜨린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제1연은 주인공 `나'가 기억하는 아주 오래 전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보여 준다. 그것은 불행한 역사의 그림자 속에 있다. 그의 집안은 모순된 사회 제도와 가난에 시달렸다. 할아버지는 동학 농민 전쟁이 일어나던 갑오년에 집을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실은 바다에 간 것이 아니라 그 농민 전쟁에 가담하였다가 죽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는 종이었기에 주인을 위한 일에 매이어 밤이 깊도록 돌아오지 못하고는 했다.이 쓸쓸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는 구절에서 구체적으로 암시된다. 바람에라도 쓰러질 듯 가늘고 연약한 모습 ― 이것이 위의 구절에서 암시되는 의미이다. 그런 가운데 아이를 가진 어머니는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고 하나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두운 밤 흙벽에 일렁거리는 호롱불 아래 가난에 찌든 어린 소년이 때가 낀 까만 손톱을 하고 이 어두운 풍경의 일부분이 되어 앉아 있다.여기서 갑자기 시상의 흐름이 바뀌어 그의 지난 생애가 몇 마디 말로 요약된다. 스물 세 해 그의 생애를 지배한 것은 대부분이 바람, 즉 끊임없는 방랑, 세상 속에서의 시달림, 흙먼지와 추위 같은 것들이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그를 비웃기도 하고, 그의 고통을 어떤 죄의 값이라 여기기도 하였으며, 그를 천치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감연히 말한다 ―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개인적인 괴로움과 역사의 시련이 겹친 삶을 돌아보면서 그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나 아픔을 뉘우침 없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삶의 시련과 고통은 오히려 그로 하여금 더욱 굳세게 일어나도록 하는 힘이 된다. 그리고 그 힘은 찬란히 트여 오는 아침에 그의 이마에 얹힌 시의 이슬로 나타난다.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는 시의 이슬이란 곧 괴로운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의 열매이다.마지막 대목에서 `병든 숫캐마냥 흔덕거리며 나는 왔다.'고 그가 말하는 원래의 호흡으로 되돌아오는 짜임새를 가진 셈이다.제1, 2, 4연에서 시인은 한 송이 꽃이 피어나기까지의 아픔과 어려움을 노래한다. 그 배경은 각각 봄, 여름, 가을이다. 그의 생각으로는 봄에 처절하게 우는 소쩍새, 여름의 천둥, 그리고 가을 밤 무서리와 그 자신의 잠 못 이룸이 모두 한 송이 국화꽃과 어떤 신비스러운 인연을 가진 것만 같다. 상식적인 생각으로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상상일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 논리를 넘어 생각해 볼 때 이 우주와 생명의 신비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더욱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어떤 인연에 따라 생긴 것이라는 불교적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단순한 상상이나 비논리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우주적 인연의 가능성 위에서 한 송이 꽃의 피어남을 그 앞에 있었던 수많은 괴로움과 시련의 결과로 여기는 상상력이다.그렇게 하여 피어난 국화꽃의 모습을 제3연이 노래한다. 흥미로운 것은 국화가 이제 젊음의 시절을 다 지나 보내고 차분히 자신을 돌이켜보는 누님의 모습으로 노래된 점이다. 이와 같은 비유적 관계를 파고 들어가서, 봄을 20대에, 여름을 30대에, 가을을 40대에 해당하는 것으로까지 해석하는 일은 아마도 지나친 것이겠지만, 이 부분에 나타난 누님의 모습은 확실히 어떤 성숙하고도 고요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인생으로 친다면 그리움, 아쉬움 등과 같은 갖가지 젊음의 시련을 거쳐 지니게 된 성숙한 삶에 견줄 만한 은은함이 있다. 이 시가 노래한 국화란 해방 이전에 `생명파'의 일원으로서 들끓어 오르는 삶의 욕구와 격정들을 노래하여 온 시인이 그것을 넘어 보다 균형된 삶의 차원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적 이상을 투영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서정주 눈물 아롱아롱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리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임의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부질없는 이 머復位)를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그리움이 얼마나 애탔던지 죽어 원혼(?魂)이 되어 두견새가 되었다. 그리하여 밤이고 낮이고 ‘귀촉도(촉 나라로 돌아가고 싶다)’ 하고 슬피 울다가 피를 토했다. 이 두견새의 피가 진달래의 뿌리에 배어들어 꽃이 붉어졌고, 그래서 진달래를 두견화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중국 이름이다. 그러므로 두견새나 진달래, 즉 두견화의 이미지는 그리움이다. 이 시는 이토록 피를 토하며 우는 그리움의 새, 두견새와 두견화(진달래), 그 주인공 망제가 돌아가고자 애태웠던, 삼만리 밖의 파촉을 소재로 하여 이별의 애상(哀傷)과 승화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눈물에 가려 아른거려 보이는 임 떠난 길은 서역(촉 나라)으로 가는 삼만리만큼이나 아득하다. 그 길은 그리움의 꽃이 만발하여 꽃비처럼 지는 길이기도 하다.임을 보내고 나니, 그 그리움이 너무도 사무쳐 은장도 칼로 머리카락을 잘라 메투리나 삼아 드릴 걸 하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정감은 한국 여성의 전형적인 것이다. ‘육날 메투리’나 ‘은장도’가 또한 우리 고유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움을 표현하는 소재는 중국 고사에 얽힌 것이지만, 그것을 더욱 승화시켜 주는 것은 우리 고유의 소재들이다.임 그리는 마음은 밤이 깊을수록 더욱 사무쳐만 온다. 초롱불도 지친 밤하늘에는 은하도 기울고, 두견새가 촉 나라 그리운 마음으로 목이 젖도록 피를 토하며 운다. 임 보낸 나의 마음도 ‘귀촉도, 귀촉도’하고 우는 두견새의 울음처럼 피가 맺힌다.하늘 끝으로 피리를 불며불며 홀로 가고 있을 임이 눈에 선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이의 마음도 죽어 두견새가 되고 싶을 뿐이다. (권웅: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여름 산 같은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오후의 때가 오거든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산'처럼, 한낱 가난 때문에 우리들의 본질이 남루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무릎 아래 지란(향초)'을 기르는 무등산처럼 우리들도 자식들을 기르며, 부부의 정을 나누며 살아가다가 달관과 여유로운 자세로 인생의 오후를 받아들이자는 내용이다. 그래서 가시덤불 속에 뉘어질지라도 옥돌처럼 호젓하게 묻혔다고 위안을 삼자고 노래하고 있다. 세사에 시달리면서도 짐짓 세상을 관조(觀照)하는 시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이 시는 생명 현상에 대한 강렬한 탐구가 주류를 이루던 초기시의 특징에서 벗어나 화해와 달관의 세계로 다가선 서정주 문학의 제2기 대표작이다.6ㆍ25 전쟁으로 인한 광주에서의 피난 생활은 인정이 메말라 허기지고 고달픈 삶이었다. 시인은 무등산을 묵묵히 바라보며 자신의 생활 철학을 담담한 어조로 들려주고 있다.6ㆍ25 동란 후 몇 년을 시인은 광주에서 기거하며 조선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아 그 당시 대학의 교수에 대한 처우는 말이 아닐 정도였다 한다. 내 남 없이 모두 궁핍하던 때인 만큼 점심을 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불가항력으로 일생에 처음 당하는 물질적 궁핍 속에서, 크고 의젓하고 언제나 변함없는 무등산을 보며 시인은 이 시를 썼던 것이다.산은 시인에게 의인적인 형상으로 보여진다.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산을 바라보며 시인은 헐벗은 자신의 처지를 차라리 떳떳하게 생각한다. 가난이란 한낱 우리 몸에 걸친 헌 누더기 같은 것이어서, 가난할수록 허릿잔등이 드러나듯이 우리의 '타고난 마음씨'는 오히려 빛나는 것이 된다. 인간의 본질이 물질적인 궁핍으로 인하여 찌들기는커녕 오히려 그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이다.그리하여 그는 푸른 산이 그 기슭(산 아래)에 향초(香草)를 기르듯이, 아무리 궁핍하더라도 우리는 슬하(무릎 아래)의 자식들을 소중하고 품위 있게 기를 수밖에 없다는, 의연한 긍정의 자세를 취한다. 참으로 인간을 찌들게 하는 것은 물질적인 궁핍이…
백석 초기 시의 3가지 성격1. 합일성(예시작품:모닥불)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쇠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집검불)도 가락닢도 머리카락도 헌겁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와장도 닭의짗도 개털억도 타는 모닥불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아이도 새사위도 갖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쪼인다모닥불은 어려서우리할아버지가 어미아비없는서러운아이로 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된 슳븐력사가 있다백석의 시에 나타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신은 시적 대상으로서의 자연과 행위 주체자로서의 인간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통합된‘하나’라는 사실이다.여러 개의 서로 다른 사물들이 공동의 터전에서 공동의 운명을 겪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삶의 소중한 친교의식, 즉 공동체의식과 다름 아니다. 백석의 시에는 무수히 많은 계층과 사물들의 명칭이 출현하지만, 이들은 서로가 분리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합일을 기다리며 모여 있는, 혹은 현재 합일되고 있거나 이미 오래 전에 합일된 사물들이다.백석이 생각한 주체적 자아 보존의 방법은 특정한 관념을 환기하기보다는 오히려 시인이 도려낸 장면을 아무런 수식 없이 선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장면에서 풍기는 정감과 분위기를 독자 스스로 끌어안도록 한다. 그러므로 백석의 시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의 터전에 대한 깊은 애착에서 시작되는 것들이 많다. 이러한 태도는 시인 자신이 모든 동족적 사물들과의 융합을 꿈꾸는 합일 의례적 성격을 나타낸다.)백석의 시가 꿈꾸는 합일의 세계는 구체적으로 무엇과 무엇의 합일인가?그것은 곧,1. 균등과 원형 보존의 정신을 대전제로 한 삶과 죽음의 구별이 느껴지지 않는 합일2. 모든 살아 있는 것끼리 더욱 하나가 되는 합일3. 계층간의 구별을 완전히 허물어뜨리는 합일4. 주체와 객체 간의 구별을 완전히 허물어뜨리는 합일5. 식물성을 위주로 하되 동물질의 폭력성까지도 식물성에 흡수시키는 합일6. 사소한 사물에 대한 깊은 애착에 보여주는 합일 등으로 나눌 수 있다.백다는 것이다.2연은 이러한 모닥불의 따뜻함을 골고루 나누어 갖는 분배 존재의 나열이다. 주체와 객체, 계층 간의 위화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재당, 초시, 문장門長 늙은이, 더부살이 아이, 새 사위, 갖사둔, 나그네, 주인, 할아버지, 손자, 붓장사, 땜쟁이, 큰개, 강아지 따위의 열거는 단순한 나열이 아닌 평등사상의 암시이다.백석의 시 작품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인물 유형은 사실상 이러한 사상성과 관련해서 읽어야 한다. 그들 대부분이 빈농 출신이거나 혹은 농업 공동체에 기반한 소외 계층이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시‘모닥불’2연의 세계는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끼리 모닥불을 피우고 그 불의 따뜻함을 함께 분배받으며 그것으로 더욱 하나가 되어 가는 세계이다. 백석은 이 제2연을 통하여 물질 공유의 사상을 슬그머니 풍기면서 합일 의례라는 행위의 극치를 보여준다.이어서 3연은 역사의 비극성과 그 내력에 대한 비유를 내포한다. 3연에서는 2연까지 유지되던 합성 집단의 개념, 즉 피아를 구별하는 의식이 완전히 소멸되고 이미 확대 가족 개념으로 모든 존재가 군단화 되고 있다. 그러한 의도를‘우리’라는 시어의 대목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식민지적 조건과 결부된 현재의 비극적 삶이 웃대의 그것과 결코 무관한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하지만 우리가 이 시에서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은‘어미아비없는서러운 아이’로‘불상하니도 몽둥발이’가 되어서, 즉 그토록 모질고 고단했던 비극적 시간 속에서도 할아버지의 세대는 꿋꿋이 살아왔고 또 지금도 여전히 불구 상태이긴 하지만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는 끈질긴 생명력의 암시이다.이 시에서‘모닥불’의 상징성은 합일 의례의 공간이자 동시에 민족 집단원 공유의 영역이었다. 원시 농경사회에서 이 고유의 영역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침해받을 수 없는 집단 공용의 소중한 개념이었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게 양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또한 다른 집단원들의 약탈이나 점거는 즉각 부당하고도 불법적인 폭거로 규정된나고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내음새도나고 끼때)의두부와 콩나물과 뽂운잔디와고사리와도야지비게는모두 선득선득하니 찬것들이다저녁술을놓은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하고 숨굴막질을하고 꼬리잡이를하고 가마타고시집가는노름말타고장가가는노름을하고 이렇개 밤이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밤이깊어가는집안엔 엄매는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옿간한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화디)의사기방등)에 심지를 멫번이나독구고 홍게닭)이멫번이나울어서 조름이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그림자가치는아츰 시누이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끄리는 맛있는내음새가올라오도록잔다백석은 일본 유학을 한 영문학도이고 기독교를 비롯한 서구정신과 근대문화에도 친숙한 시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그의 작품을 보면 가장 기본적으로 나타나는 성격은 토속성이라 할 만한 것이다. 1930년대라고 하면 우리 문단에서는 근대정신과 도시문명에 관심을 둔, 이른바 모더니즘의 사조와 그 세계가 지식인들을 사로잡던 때이다. 하지만 백석은 당대의 시인들이 보여줬던 이런 저런 유형의 모더니즘적인 정신구조나 그 시작세계와는 달리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고 또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절실하게 생각된 체험과 내용을 그의 작품으로 옮겨놓았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어찌 보면 사실상 시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당위적인 문학이나 시류적인 문학을 하기 이전에 자기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숙이 내면화된 자신의 체험과 기질과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해주는 사실이라 생각된다. 이른바 시인들은 자신이 쓸 수 있는 것을 쓰는 것이지, 써야만 하는 것을 쓰기란 지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백석의 이런 문학적 경향 속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백석이 토속적인 서민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문학작품을 창작한 정직하고도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서 드러내었을 뿐, 민족시인이 되기를 의도한 것도 아니며, 민족주의니 민족정신이니 하는 것을 전면으로 부각시키려고 한 것도 아니라 생각된다.백석의 시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마도 우리 시사에서 백석의 시에서만큼 많은 인물들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경우도 쉽게 찾아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 가지 공통성을 가지고 있거니와 그것은 바로 이들이 한결같이 문명의 세례를 받지 않은 토속적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구적 합리주의라든가 근대문명이 가져온 편의주의 정신에 의하여 살아갈 줄을 모르는, 전래의 토속적 인물들인 것이다. 이와 같은 백석의 인물들은 대개가 친족처럼 정분으로 맺어져 있을 뿐, 결코 타산적인 이해관계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는다.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이런 인물들의 기본정신을 한마디로 토속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첫째, 이 인물들은 잘나고 높은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서민적인 필부필남이라는 사실, 둘째, 그 인물들의 터전 혹은 배경이 농촌이나 산골이라는 점, 셋째, 그 인물들의 성격이 한결같이 순박하다는 사실, 넷째, 작품 속에 사용된 말들이 정주지역의 지방어이면서 동시에 서민층의 언어라는 점 등이 이 사실을 뒷받침해준다.다르지만 닮은 사람들, 티격태격 하다가도 어느새 화기애애 지내는 사람들이 가족이다. 대가족이 살아가는 소리는 그래서 시끌벅적 하면서도 조화롭다. 백석의 시에는 이런 공동체적 삶이 만들어내는 토속적이고 원형적인 세계가 살아있다. 나이 어린 화자가 서술하는 동일성의 세계는 혈족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이야기, 놀이, 음식을 통해 구체적으로 재현되며, 병렬적 시 형식)을 통해서 통합의 리듬을 형성해낸다.화자에게 혈족은 삼촌이나 고모, 사촌과 같은 추상적인 관계로 놓여있지 않다.“얼굴에 별자국이솜솜난 말수와같이눈도껌벅걸이는 하로에베한필을짠다는 벌하나건너집엔 복숭아나무가많은 신리新里고무 고무의딸이녀李女은 모든 재료를 혼합해서“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에서 끓어낸 뜨거운 음식이다. 이것은 음식을 넘어 핏줄의 따스한 화합을 상징하는 것이며, 공동체적 세계가 함유하고 있는 삶의 뜨거운 에너지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다양한 사람들, 음식, 놀이, 이야기 등의 시적 소재들은 공동체의 피와 살을 만들어내고, 병렬구조가 환기하는 반복의 리듬은 이 공동체에 생생한 호흡을 불어넣는다. 거기에서 잃어버린 고향과 사람들,‘여우난곬족族’이 탄생한다.3. 객관성(예시작품:고방)낡은질동이에는 갈줄모르는늙은집난이)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어있었다오지항아리에는 삼춘이밥보다좋아하는 찹쌀탁주가있어서삼춘의임내)를내어가며 나와사춘은 시큼털털한술을 잘도채어먹었다제사ㅅ날이면 귀먹어리할아버지가예서 왕밤을 밝고 싸리꼬치에 두부산적을께었다손자아이들이 파리떼같이뫃이면 곰의발같은손을 언제나 내어둘렀다구석의나무말쿠지)에 할아버지가삼는 소신같은 집신이 둑둑이걸리어도있었다넷말이사는컴컴한고방)의쌀독뒤에서나는 저녁끼때에불으는소리를 듣고도못들은척하였다백석의 시를 특징짓는 또 한 가지 성격으로 이른바 객관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백석의 시에 나타난 정신을 객관주의 정신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화자는 언제나 그가 묘사하고 전달하는 대상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둘째, 시인은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전달하는 것보다 외부의 대상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셋째, 과거의 시인들에게서 자주 나타났던 센티멘털리즘 혹은 과장된 감정의 분출이 거의 작품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사실에 근거하여 백석의 시에 나타난 성격을 객관성이라고 명명하였거니와, 이것은 그의 시가 지닌 중요한 특성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작품으로 시적 기교가 뛰어나고 읽는 재미도 만만치 않은 작품「고방」을 예로 들어보기로 한다.위 작품에서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백석은 자신과 대상 사이에 지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고고학의 정의우선 한자로 고고(考古)라 함은 옛(古)을 생각한다(考)는 두문자의 결합에서 유적, 유물을 통하여 과거를 연구함을 뜻합니다. 서양에서 고고학을 뜻하는 어휘는 archaeology로 고대희랍어에서 과거, 고대 등 옛날과 관계되는 듯을 지니는 archaeos라는 말과 논리체계, 학문 등을 의미하는 logos라는 말을 어간으로 하는 합성어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때 고고학이란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과거와 관계된, 옛날의 사건을 다루는 학문을 뜻한다는 어원적 정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고고학은 과거의 보물들을 발견해내는 일이기도 하고 과학적 분석가의 꼼꼼한 작업이기도 하며, 창조적이기도 한데다가 창조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고고학은 이라크의 사막에서 발굴하느라 뜨거운 햇볕아래에서 고생하기도 하고 알래스카의 설원에서 이누이트들과 함께 일을 하기도 합니다. 또 미국 플로리다 주 앞바다에ㅓ 스페인 난파선을 을 찾아 잠수해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며 영국의 로마시대 요크 시 하수구를 조사하기도 하죠. 그러면서도 고고학은 또한 이 모든 것들이 인류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힘든 해석작업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고고학은 세계문화유산을 약탈이나 무분별한 파괴로부터 보호 보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이로 보건대, 고고학은 야외에서의 육체적 활동인 동시에 연구실 혹은 실험시에서의 지적 연구활동입니다. 이 점은 고고학의 커다란 매력 중 한 부분입니다. 또 위험과 흥미진진한 탐정 일이 한데 섞여 있어서 소설가과 영화제작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재가 되어 온 것이 바로 고고학이죠. 그러한 묘사들은 아무리 현실과 동떨어질지라도 고고학이 흥미진진한 탐구, 즉 우리 자신과 우리 인류의 과거에 대한 지식의 탐구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지표조사지표조사는 땅 위에 드러난 유물과 유적을 찾아내는 작업을 말합니다. 고고학 전공자가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비전공자에게서 흔히 받는 질문에는 "도대체 그러한 것이 거기에 있는 것을어떻게 알았느냐?"하는 물음이 있다. 많은 고고학 유적이 우연한 계기에 의하여 발견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보다 많은 수의 유적들은 고고학자의 꾸준한 지표조사의 결과 그 존재와 위치가 획인된 것이다. 비록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지표는 자연상태에서도 끊임없이 변화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땅 속에 묻힌 유물과 유적 중 많은 것이 시간이 경과하며 그 모습을 지상에 드러내게 된다. 지표조사란 이렇게 땅 위에 드러난 증거들을 발견하여 한 지점이나 지역에서 인간이 자연에 가한 변화의 증거, 즉 문화적 활동의 증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기록하며 분석하는 작업이다.시굴모든 발굴은 우선 "시굴"에서 시작된다. 시굴이란 발굴대상유적의 일부를 본격적 발굴에 앞서 우선 시험적으로 파서 유적의 개략적 층위상과 내용을 파악하려는 작업이다.본격적인 발굴은 지표조사와 시굴에서 얻은 정보에 기초하여 진행되는데, 그 구체적인 규모와 진행절차는 발굴을 통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시굴에서 얻은 정보 및 발굴예정시간, 투입가능인원, 예산 등등의 제요소에 의하여 결정된다.발굴발굴은 지하에 매몰된 상황에서 단순히 존재함에 지나지 않는 고고자료에 대해 철저한 방법을 통해서 검출하고, 고고학적으로 유의한 데이터로 기록하고자 하는 행위이다. 이 행위에 의해 비로소 고고자료는 학문적으로 이용 가능한 상태가 된다.모든 고고학 발굴사업은 크게 나누어 학술발굴과 구제발굴의 두 종류로 생각할 수 있다. 학술발굴이란 문자 그대로 고고학전공자가 고고학의 학문적 문제를 규명하기 위하여 시행하는 발굴이다. 학술발굴은 순수 학문적 목적에서 시도되는 것이니만큼, 이의 시행에 필요한 경비는 연구비 형식으로 조달되는 것이 상례이다.구제발굴이란 유적파괴의 사유가 발생하여 그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유적의 말살될 위기에 처한 경우에 행하게 되는 발굴이다. 도로나 댐건설과 같은 대규모 토목사업은 넓은 지역의 형질을 변질시켜 그 지역에 존재하는 문화유적을 파괴시킨다. 구제발굴이란 이렇게 불가피한 상황 하 에서 최소한의 문화정보만이라도 구제하기 위한 목적의 발굴을 지칭한다. 구제발굴은 조사가 완료되어야만 하는 시한이 못 박혀 있으므로 고고학자는 항상 용역계약의 단계에서부터 시간과의 싸움에 들어가게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졸속발굴의 비난을 면치 못할 우려도 안게 된다.사진촬영어떤 분야이던가에 대상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고 저장하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사진으로 남기는 것일 겁니다. 물론 고고학 연구분야에서도 이러한 사진촬영이 다양한 부분에서 실시되고 있습니다.물론 사진으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매우 디테일하고 중요한 부분의 경우에는 앞선 시간에 알아본 실측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표현하지만 사진이 주는 생생함을 따라갈 수는 없겠죠?현재 고고학분야에서는 다양한 카메라와 다양한 방법으로 유적과 유물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습니다.현장에서의 사진촬영은 다음기회로 미루고 이번에는 실내에서 실시되는 사진촬영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장에서 발굴한 유물은 세척, 복원의 거친 후 사진을 찍게 됩니다.이는 출토된 유물을 데이터베이스화하며 추후에 보고서에 쓰일 사진자료를 위함이지요.현재 전북대고고학 연구실의 경우 디지털카메라, 현상용 수동카메라, 슬라이드용 카메라 등이 사용되고 있습니다.이렇게 다양한 카메라가 사용되는 이유는 단순히 사진자료들이 보고서에 쓰이기 위함이 아니라 발굴된 자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추후에도 다양한 연구에 쓰기 위함입니다.유물사진을 촬영하는 방법은 다른 사진촬영 방법과는 매우 틀려서 숙련된 연구자만이 촬영할 수 있습니다.또한 유물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조명과 배경이 함께 필요하게 됩니다.실내작업- 1단계. 세척작업많은 분들이나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통해서 고고학자들이 현장에서 유적을 발굴하는 모습을 쉽게 접해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의 발굴이 고고학의 전부는 아닙니다. 현장에서 조사되고 축적된 자료를 통해 당시인 들의 생활과 문화를 복원해내는 것이 고고학의 목표하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고학 자료의 연구는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실내에서도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유구를 통한 조사를 주를 이루기 때문에 발굴을 통한 자료의 분석과 연구는 사실상 발굴 종료 후 실내작업을 통해 이루어 진다라고도 할 수 있죠. 따라서 현장에서 발굴 못지않게 중요한 작업이 바로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작업들입니다.앞으로 발굴을 통한 자료들이 실내에서 어떻게 분석되고 연구되어 지는지 차근차근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1. 발굴이 진행됨에 따라 출토유물 자료들이 축적되고, 이는 최종적으로 꽤 방대한 양이 됩니다. 이러한 자료들은 오랜 시간 동안 지표 하에 있었기에 대부분 진흙이나 여러 이물질이 부착되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바로 이러한 자료를 분석하기란 불가능하죠. 그래서 실내에서 하는 첫 번째 작업이 바로 이러한 고고학 자료의 세척입니다. 세척작업은 발굴과 병행해서 우천시에 하기도 하지만, 대량의 유물의 경우 발굴 종료 후에 집중적으로 행해집니다.가장 기본적으로 물과 수세미나 브러쉬를 이용하여 고고학 자료를 세척하는 것입니다. 이때 자료를 상처내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이러한 물을 이용한 세척은 철기나 목기, 골기같은 자료는 불가능하고 석기나 토기자료를 세척하는데 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금속자료의 경우 물을 사용한 세척은 오히려 자료의 부식을 촉진시키기에 먼저 건조시킨 후 진흙을 털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일반적이고 효율성이 높은 방법이 화학적 방법을 이용해 녹 등을 제거하고 보존하는 방법입니다. 세척은 단순히 자료에서 진흙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자료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보존의 과정을 거치는 작업입니다. 이때에는 단순히 고고학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의 힘을 빌리게 됩니다.유물복원세척을 마친 유물은 통풍이 잘되는 그늘진 공간에서 건조과정을 거치게 됩니다.그리고 세척이 끝난 유물편 들은 원래의 기형으로 복원을 하게 됩니다.고고자료는 분묘에 부장되거나 화산의 분화로 일시에 매몰된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사용에 의해 파손 당해 파편으로서 폐기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 파편으로 유물을 접합하고, 본래 형상을 복원하는 일이 필요합니다.복원을 하는 데 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파편으로 남겨진 고고자료를 원형의 상태로 복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구로서 사용되었던 유물 본래의 모습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당시의 생활을 보다 구체적으로 포착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또한 파편으로만 남겨졌던 중요한 고고자료들이 복원을 통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얻게 됩니다.복원을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복원하는 과정에서 그 유물의 제작과정을 추정하고, 나아가 유물이 유적의 어떤 부분으로 확산되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에 기초하여 유적 내 인간 행동양식을 복원하게 되는 것이지요.토기나 자기의 경우 복원에 다양한 종류의 접착제가 사용되는데 토기의 기종과 재질에 따라 다른 접착제가 사용되게 됩니다.실측작업 1복원이 끝난 유물이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작업가운데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실측작업에 들어가게 됩니다.유물실측은 유물의 형태와 제작기법을 그대로 도면으로 표현, 묘사하여 당시의 물질문화상을 하나하나 상세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작업입니다. 이러한 유물도면에서 고고학자는 당시의 문화상과 연대를 추정하게 됩니다.고고학연구의 기본적인 자료를 제공하는 교과서와 같은 발굴조사 보고서는, 유물 실측 도면의 정확성의 정도에 따라 질적 평가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보고서 작성과정과 향후의 연구논문의 작성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기본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실측용구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① 방안지, ② 직각자, ③ 삼각자, ④ 디바이더, ⑤ 바디,
과 제 물정지용 시에 나타난 이미지즘-바다와 산을 중심으로-?차 례Ⅰ. 머 리 말Ⅱ. 본 문1. 정지용 생애에 대한 고찰2. 바다와 산에 나타난 이미지즘에 대한 고찰(1) 바다를 중심으로(2) 산을 중심으로Ⅲ. 맺 음 말.※부록? 바다와 관련된 시? 산과 관련된 시Ⅰ. 머리말1930년대 )의 가장 핵심적인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각광받는 모더니스트로서 주목을 받은 정지용은. 은유와 심상을 1920년대 시와는 질적으로 다르게 의식적으로 다듬어 참신한 감각을 표현하였다. 한국 현대시의 획기적인 전환을 실질적으로 주도해 나간 인물로 평가된다. 따라서 그의 시세계는 서구적 모더니즘의 틀로 다루는 경향이 많은데, 그것은 그의 초기시에서 살필 수 있다. 정지용의 시세계를 초기시와 후기시로 구분하자면, 초기시는 주로 바다를 대상으로 하고 후기시는 주로 산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가 이 과제를 하며 가장 먼저 착안한 점은 왜 정지용은 바다와 산을 시적 공간으로 설정하였을까? 라는 의문에서부터 시작하였다.지금부터 집중적으로 탐구하게 될 바다와 산을 중심으로 한 이미지즘에 대하여 고찰한 이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정지용의 전체적 시세계에서 바다와 산의 이미지는 어떻게 변모되어 가며 정지용이 지향한 바다와 산의 미적 의미는 무엇인지를 파악해 봄으로써 그에 대해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인간 정지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문1. 정지용鄭芝溶 (1902.5.15-1950.9.25) 생애에 대한 고찰정지용은 1902년 음력 5월 15일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아버지 정태국씨와 어머니 정미하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릴 적 이름은 지룡(池龍)이었는데 이것은 연못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태몽을 꾼 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후에 항렬자를 따라 지용(池溶)으로 고쳤다. 옥천(沃川)은 지명의 뜻 그대로 땅이 기름지고 물이 맑은 곳이다. 지용의 생가가 있는 청석교 부근은 지금은 도로변이지만 지용의 어린 시절에는 그의 시다. 이러한 정지용의 시세계에서 바다를 중심으로 고찰 해 보도록 하자.1) 넓은 바다① 풍요로운 생명력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가니,오·오·오·오·오· 연달아서 몰아 온다.간밤에 잠 살포시머언 뇌성이 울더니,오늘 아침 바다는포도빛으로 부풀어졌다.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제비 날아들 듯 물결 사이사이로 춤을 추어.다양한 심상과 시어를 통하여 이미지즘 계열의 시 세계를 보여 주고 있는 작품으로 원제는 '바다1'이다. 2행씩 4연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바다의 심상을 감각적인 심상으로 그려 내고 있다. 특히, '바다'를 다양한 청각적 심상으로 형상화하고 있음이 돋보인다.정지용이 섬세하고 예리한 감각을 동원하여 세련된 한국어를 구사하고 있다는 평가에 걸맞게, 이 시에도 바다의 인상을 주로 청각적 심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즉, 바다를 '오·오·오·오·오·'나 '철썩, 처얼썩, 철썩, 처얼썩, 철썩'과 같이 비슷한 시어를 연첩시켜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또한 아침에 솟아오르는 태양에 의해서 바다는 풍만한 생성력을 갖는다. 생성력의 이미지는의 서술어에 의해 만삭의 여인과 여인의 출산을 동시에 환기시켜 한층 강화된다.이런 심상 표현은 시인의 섬세한 감각과 정확한 표현력을 짐작하게 하는 것으로, 그의 시세계에 비교적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언어 탐구를 통하여 시인은 우리 시와 언어를 지키려는 일제 강점기 시인의 '자기 지키기' 노력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②외로움과 그리움정지용이라는 한 개인의 의식 속에 바다라는 사물이 처음으로 언제, 왜, 어떻게 자리 잡히게 되었으며 유년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작가에게 있어서 유년기란 매우 중요하다. 이때의 경험이 작품 전반에 걸쳐 작가의 사상이나 작품의 성향을 결정짓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지용에게 유년기는 하나의 특수한 공간을 형성한다. 그것은 정지용이 고향인 옥천에서 공립보통학교를 마치고 14세 되던 때 서울로 올라와 고달픈 타향살이를 한바다는 파도가 철썩이고 고기잡이 배가 있는 실제적 바다가 아니라 파랑병 속에는 파랑바다가 나오고 빨강병 속에 나오는 빨강바다로서 자신이 무한이 상상하는 그런 바다이다. 어린 시절의 정지용에게는 바다는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한 존재였다.하지만 누나가 시집을 간 뒤 아무리 병을 깨뜨려도 신기한 바다는 나오지 않는다. 누나가 없는 화자의 외로움과 바다는 만나지 못하는 화자의 심심함이 동일선 상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정지용 초기시의 바다는 그리움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그것은 역설적으로 바다와는 상관없는 산간 내륙지방에서 태어났다는 전기적 여건이 형성한 정지용의 최초의 바다 이미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정지용 시에 나타난 그리움의 정서를 드러낸 작품을 하나 더 예를 들어보자. 은 그리움의 정서를 절실히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당신께서 오신다니당신은 어찌나 오시려십니까.끝없는 울음 바다를 안으올때포도빛 밤이 밀려오듯이,그 모양으로 오시려십니까.당신 께서 오신다니당신은 어찌나 오시려십니까.물건너 외딴 섬, 은회색 거인이바람 사나운 날, 덮쳐 오듯이,그 모양으로 오시려십니까.당신 께서 오신다니당신은 어찌나 오시려십니까.창밖에는 참새떼 눈초리 무거웁고창안에는시름겨워 턱을 고일때,은고리 같은 새벽달부꾸럼성 스런 낯가림을 벗듯이,그 모양으로 오시려십니까.외로운 졸음,풍랑에 어리울때앞 포구에는 궂은비 자욱히 들리고행선배 북이 웁니다, 북이 웁니다.- 전문-여기서 화자는 그리운 이를 기다리는 사람이다. 화자는 임이 찾아오는 풍랑몽(풍랑처럼 고생스런 꿈)을 꾸고 있다. 그 임은 언젠가 와야 할 존재다. 그런 존재를 화자는 애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검은 파도가 밀려오듯이. 무인도에 사는 거인이 덮쳐오듯이, 새벽달처럼 부끄럽게 나타나듯이, 임은 올 것인가. 당장에는 올 것 같지가 않다. 풍랑몽이기 때문이다. 포구엔 궂은 비 내리고 행선배조차 울면서 화자의 슬픈 심회를 돋운다. 주로 직유를 통해 임에 대한 그리움을 간절하게 노래한 작품이다. 화자의 애절한 어조가 가슴을 울도록 하자.나의 가슴은조그만 갈릴레아 바다.때없이 설레는 파도는미한 풍경을 이룰 수 없도다.예전에 문제들은잠자는 주를 깨웠도다.주를 다만 깨움으로그들의 신덕은 복되도다.돛폭은 다시 펴고키는 방향을 찾었도다.오늘도 나의 조그만 (갈릴레아)에서주는 짐짓 잠자신 줄을-.바람과 바다가 잠잠한 후에야나의 탄식은 깨달었도다.- 전문 -이때, 가톨릭에 귀의한 정지용의 시의 세계는 광활한 세계로의 수평적 확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있는 하늘로의 수직적 상승에 의해 도달될 수 있는 있을 것이므로 바다는 파도로 변형되어 평정한 기도의 자세를 뒤흔드는 저해물의 이미지로 변환된다. 매개항의 역할이 바다에서 산으로 바뀐 것은 단순한 바다에서 산으로의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정신적인 상승을 의미하며 바다에서 산으로, 땅에서 하늘 가까운 곳으로의 정신적 상승도 의미한다.지상의 것들은 덧없는 것이라는 허무의 인식, 다시 말하여 땅에서의 개인적 실존을 조건지우는 역사,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을 포함한 희비애락이 인간의 욕망에 의하여 야기되는 것들이며 특히 정지용 자신의 삶을 억압했던 식민지 상황의 고뇌, 자식을 잃은 개인적 비애의 해소는 지상의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림으로써 가능하다는 각성이다.(2) 산을 중심으로바다에서 산으로, 땅에서 하늘 가까운 곳으로의 정신적 상승 과정에서 겪은 정지용의 신앙체험은 《백록담》의 세계를 가능하게 한다.) 무욕의 세계로의 정신적 상승은 신앙체험 이외에도 이후 산행 체험을 통해 정지용이 보여준 동양사상, 동양고전)의 영향도 상당히 작용되었으리라 생각되어진다. 잡지 《문장》에 관여하면서 쓰게 된 연작이나, , ) 등의 작품에서는 정지용의 정신적 성격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1절정에 가까울수록 뻐꾹채 꽃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스러지고 다시 한마루 위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중에는 얼굴만 갸웃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版) 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 데서 뻐꾹채 키는 아주 없어지고도 팔월. 불구(不具)에 가깝도록 고단한 나의 다리를 돌아 소가 갔다. 쫓겨온 실구름 일말(一抹)에도 백록담은 흐리운다. 나의 얼굴에 한나절 포긴 백록담은 쓸쓸하다. 나는 깨다 졸다 기도(祈禱)조차 잊었더니라.- 전문 -백록담은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극한의 지점이다. 하늘과 지상이 만나면 인간과 신이 마주하는, 따라서 인간 세상에서 길들여진 의식들이 모두 뒤바뀌는 곳이다. 시적 자아는 점점 더해가는 고도를 ‘뻑꾹채 꽃키’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정상에 이를수록 ‘뻑국채 꽃키’는 상징적인 형상으로 추상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지상의 꽃은 하늘의 별과 동일시된다. 그 이유는 하늘이 지닌 극도의 순수성 때문이다. 산에 절정에 놓인 꽃은 희박한 공기와 낮은 기온을 견뎌낸 강한 생명력의 그것이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순결함의 결정체인 것이다.시적 자아는 모든 물질과 육신이 걸러진 듯한 이곳에서 죽음이 생명과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님을 체감한다. 죽음과 같은 상태가 열매 하나로 인해 생명으로 전이될 수 있는 것이나 아름다움의 극한을 보여주는 ‘백화’가 아무렇지 도 않게 ‘촉루’ 곧 해골처럼 보일 수 있는 지경은 죽음에 대한 의식이 매우 가벼운 상태로 여겨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죽음은 거부감도 두려움도 일으키지 않으며 생의 다른 이름 정도로 의식되는 것이다. 이것은 물질이나 육신이 더 이상 집착하는 대상이 아닌 것이 될 정도로 정지용의 정신성이 고양된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정지용은 산을 시적 공간으로 둠으로써 초월적 세계관을 드러내 주고 있다. 산을 제재로 한 시들을 살펴보면 산이란 속세의 혼탁과 대립되는 신성하고 정결한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신성하고 정결한 공간으로서의 산은 당연한 결과로 정적의 상태를 유지한다. 떠들썩한 저자 거리의 모습을 산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다. 이 산에는 인간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시의 화자는 분명 인간이고 그의 시각에 의해 자연 정경이 포착되지만 시의 문면에는 인간사, 세속사의 단면이 제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