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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지역학]중국지역학 : 절강성 (주요도시특징 및 경제현황, 향후 전망)
    절강성(浙江省)면 적 : 101,800 평방km 인 구 : 약 4,613만명(2001년 기준) 민족구성 : 한족 99.3%,그밖에 회족,여족… 기 후 : 아열대 계절풍기후 성 도 : 항주시(杭州市) 주요도시 : 항주, 영파, 온주, 소흥 등 주요산업 : 기계, 전자, 화공, 의약, 가공업, 면마방직, 제조, 제지등절강성의 모습경제현황개혁 개방 전까지 산업기반이 동부 연해지역에서 취약한 지역 중의 하나 개혁 개방 이후 주민들과 관료들의 높은 상업의식으로 노동집약적 경공업을 발달. 2001년이후 1인당 GDP 상해, 북경, 천진에 이어 4위 기록.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동일 업종이 집중되는 '소기업 단지'를 형성 소기업 단지의 상품을 소화하는 '특화시장'이 개설제품 정보 취득과 생산기술 변화 추세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가능케 됨 이와같은 민간기업의 활발한 생산활동과 외국인 투자기업의 증가로 1998~2001년 기간 동안 연평균 10.4%의 고도 경제성장 이룩하여 같은 기간 중국 전체 평균을 2.8% 포인트 상회함. 절강성 경제 성장률 추이 (단위 %) 자료 : 중국통계연감10.511.010.010.111.112.7경제 성장율20*************819971996구분절강성 경제의 특색은 개체사영경제의 발전이 빠른 것이 특징 – 광동성 다음으로 전국에서 2위 1999년 절강성 개체사영경제기업의 공업생산액이 전 성 공업생산액의 약 절반을 차지 개체사영경제 : 주로 경공업분야의 중소형기업들 현재 절강성의 공업생산액 중 개체사영경제가 차지한 비중이 49.1% 지금 사영기업들은 소규모 생산과 가족식관리로부터 투자의 다원화, 생산전문화, 시장국제화의 방향으로 발전절강성의 시장의 규모 및 특성절강성은 市場大省이라고 일컬어 질만큼 시장이 많음 중국의 중요한 상품 집산지 전문 도매시장을 주류로 크고 작은 시장이 전국각지의 시장들과 연결되어 마켓네트를 이루고 있음 시장수량, 연간교역액, 시장교역규모 등은 모두 중국 1위를 차지 시장의 발전은 절강성 경제와 사회발전에 활력을 주어 농촌공업화, 도시화가 가속되었다.절강시장은 상품종류가 다양하여 거의 모든 생활필수품과 생산재료를 취급하고 있다. 대중형 기업과 유명브랜드 기업들에서도 시장경영에 뛰어들고 있는 실정 최근에는 부동산, 노동려력, 건축, 기술정보 등 생산인 소 시장들이 10여개의 부류로 나누어져 절강성의대외개방과 경제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절강성 내부에서도 다시 지역별로 특화생산되는 상품은 해당지역의 전문시장에서 전 지역으로 분배 전세계를 섭렵하는 절강상인에 중국 각지의 유통상이 가세되면서 절강성 전문시장이 세계에 홍보되어 외국 유통상의 출입도 많아졌다항 주현재 절강성의 성도 총인구 : 약 600만명 총면적 : 약 17,000평방km (관할7개현, 6개시구포함) 경제수준:1999년 GDP1,225억원,1인당 평균 19,960원 (전국 성도중 2위) 6대 주력산업 : 대형기계설비, 자동차부품, 정밀화학과 제약, 전자통신설비, 가전제품과 화학섬유공업 대외개방 : 세계 10개 이상의 국가 또는 도시와 견 실한 무역관계 여행자원 : 서호를 비롯하여 관광자원 풍부 교육기관 : 중국 국내 대학서열 4위의 절강대를 비롯, 절강공업대학 등 20여개의 고급대학과 학원 보유영 파총인구 : 약 790만명 총면적 : 약 9,400 평방km 경제수준 : 외국투자기업은 6,000개에 달하고 실투입된 외국자본 50여억원에 달함. 대외개방 : 이미 187개 나라 및 지역과 무역관계 진출한 한국기업 : 한진해운, LG화학, 삼성중공업, 태평양물산 교육기관 : 이공대학과 영파대학 등 특징 : 중국 3대 무역항구도시 - 주요 생산 품목 : 원단 비단 등 - 현재 IT산업의 중심지로 부각 중온 주위 치 : 절강성 동남부 총 인 구 : 708.4만명 면 적 : 1,1784 평방km 행정구역 : 6개 縣, 2개 縣級市 기 후 : 연 평균기온 18.2℃, 연 평균강수량 ,1900㎜ 자 원 : 은, 동, 망간, 연 등 농 업 : 조, 감자, 밀, 옥수수, 야채, 차 등 교육기관 : 각종 학교 3,881개, 온주대학, 온주의학원 등 관광자원 : 雁蕩山, 楠溪江, 宋葉適墓, 仙岩, 皇橋國安寺塔, 西山靑瓷窯塔 유적 등온주 발전모델의 위기와 향후 전망온주 지역은 개혁개방 이후 대표적인 민간자본 위주의 경제성장 모댈로서 중시 되어왔음 4千정신으로 상품경제를 발전시킴. 4自정신으로 시장경제의 발전을 이끌었음. 그러나 최근 온주지역의 경제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둔화되고 많은 기업들이 타지역으로 이전千온주지역 경제성장률 둔화 요인 산업클러스터, 민간자본, 기업의 혁신능력등 과거 동 지역의 발전을 가져온 경쟁우위가 최근들어 약화되고 있음 비용상승, 경영활동 곤란 등의 이유로 다수의 온주 기업이 타지역으로 이전함에 따라 산업클러스터의 기능이 약화되고 있음 온주의 토지가격은 상해외각지역의 비해 높은 반면, 여타지역의 경우 저렴한 토지비용과 각종 특혜를 제공하면서 기업 유치에 힘쓰고 있음 전문기술인력부족 온주지역 기업들의 혁신성이 점차 둔화되고 있음 중국의 자본시장 발전이 지체되면서 민영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부족하여 민영기업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음{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05.12.30| 17페이지| 1,000원| 조회(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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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선설과 성악설]성선설과 성악설 평가A좋아요
    개요Ⅰ. 서론ⅰ) 주제를 정하며ⅱ) 맹자와 순자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차이Ⅱ. 본론ⅰ) 맹자의 생애와 업적ⅱ) 맹자의 인성론 - 성선설ⅲ) 순자의 생애와 업적ⅳ) 순자의 인성론 - 성악설Ⅲ. 결론ⅰ) 맹자와 순자 인성론의 차이점ⅱ) 맹자와 순자 인성론의 공통점ⅲ) 과제를 마치며ⅳ) 참고문헌, 참고사이트주제를 정하며…과제를 시작하기 전에는 다양한 주제들 중에 하고싶은 걸 선택해서 하면 되니까 간단한 작업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많은 고민을 하게 한 것 같다. 지난번 홍위병발언에 관한 레포트를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쓰는 바람에 아쉬웠던 점이 많아서 이번 과제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미리미리 준비해서 근사하게 써보려고 했는데 역시나 마감이 임박해서야 겨우 주제를 고를 수 있었다.처음에는 좀 많이 공부한 것처럼 보이고 싶은 욕심에 특이한 것을 주제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죽음 앞에서 곡한 공자와 노래한 장자』란 책을 중심으로 공자와 장자가 생각하는 죽음에 대해 쓰려고 했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고 철학에 관한 기초상식이 전무한 나에게 너무나 벅찬 주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래서 다음 선택한 것이 공자의 덕치주의와 맹자의 왕도주의를 비교하면서 두 사람이 생각한 이상국가에 대해 설명하고 싶었는데 책을 읽는 과정에서 비슷한 내용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아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다. 그밖에도 노자의 무위와 장자의 무위에 대한 비교나 도덕경, 맹자의 호연지기 등 여러 주제들 중에서 많은 갈등을 했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쓸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그래서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에 고른 주제가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에 대한 비교이다. 처음엔 너무도 익숙한 주제라 다소 식상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인성론에 있어서 서로 분명한 대립을 보이는 이들이 같은 유가 계통의 사상가라는 사실은 나에게 무척이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또한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정도가 인간의 본성이 착하거나 악하다는 용어풀이 이상이 아니기에 한번 공부 다를 것이 없었다고 한다.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자가 있고, 신하가 인군을 시해하는 자가 있어 윤리강상(倫理綱常)이 땅에 떨어져 있음에 순자는 개탄을 금할 수 없었다.)로 사람은 선천적으로 성품이 악하다는 성악론을 주창하기에 이르렀다.이런 전례 없는 잔혹한 전쟁은 역사의 흐름을 충동하는 산파적 역할도 하였는데 낡은 생산 방식을 타파하였고, 각 국을 통일이 되게 함으로써 정치, 군사면의 대립을 없애고 봉건화 대통일 국면의 출현을 가속화 시켰다. 전국 시대의 사회변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떠한 방식으로 봉건제의 통일을 실현할 것인가? 어떻게 통일된 봉건제국에게 완전한 통치제도와 사상 가치 관념을 확립시켜 이로서 봉건제국의 공고와 안정을 하루 빨리 실현하겠는가?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전국 시기에 많은 사상가들(제자백가(諸子百家)또는?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는 말처럼, 이 시대는 중국 사상사상(思想史上) 드물게도 그 활동이 활발했던 시대였다. 정치적, 사회적 변동을 배경으로 하여, 몰락한 귀족의 자손을 비롯해 상공업자나 농민들도 입신출세하기 위하여 군주나 유력 인사에게 접근하여 법률, 군사, 외교 등 각자 재질에 따라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자가 속출하였다.)은 격렬한 쟁론을 벌였다.이 시기의 사상가들은 비록 서로 질책하고 서로 논쟁하였지만 정치 분야에서 오래가지 않아 나타난 통일될 형세에 적응하였는데 그들 사이에서는 서로의 견해를 흡수하고 서로 융합되는 전례 없던 추세가 나타났다. 이때에 유가, 도가, 법가, 음양가 등 학파들의 계선과 각자의 전통의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였지만 대부분은 자기 학파의 주요한 전통을 기초로 하고 다른 학파의 장점을 흡수하여 통일된 봉건사회의 건립과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하여, 난무하는 여러 가지 학술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학파가 갈라진 기초로부터 각자 새로운 종합을 실현하였다.전쟁으로 인한 사회적?정치적 혼란, 생산력의 빠른 발전, 경제의 전례 없는 번영, 사회제도의 거대한 변화, 제후국들간의 통일 추세, 학술사상에서의 백 곳곳에, 일관성을 갖고 맥맥히 이어진다.맹자는 우선 인간의 본성을 물의 본성과 비유하면서 풀어나간다. 맹자 제11 2장은 성유단수야장(性猶湍水也章)이다. 맹자는 여기서 이렇게 말했다.“ 人性之善也 猶水之就下也, 人無有不善 水無有不下. ” - “ 사람의 본성이 착하다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으니 사람치고 착하지 아니한 사람이 없으며 물치고 아래로 흐르지 않는 물이 없느니라. ”이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今夫水 搏而躍之, 可使過?, 激而行之, 可使在山, 是豈水之性哉? 其勢則然也. ” -“ 때로 저 물을 치면 솟구쳐 이마의 높이까지 오르기도 하고 물을 막아 산 위로 거꾸로 흐르게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물의 본성이 아니라 형세가 물을 이와 같이 하게 한 것이다.그리고 나서 맹자는 비유해 말했다.“ 人之可使爲不善, 其性亦猶是也 ” - 사람도 착하지 않은(나쁜) 짓을 하게 할 수 있으니 그 본성은 역시 이것(물의 본성이 외부 힘에 의해 변하는 것)과 같으니라.그렇다면 맹자가 말하는 선은 무엇일까?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선한 성의 내용인지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乃若其情, 則可以爲善矣, 乃所謂善也, 非才之罪也, 惻隱之心, 人皆有之, 羞惡之心, 人皆有之, 恭敬之心, 人皆有之, 是非之心, 人皆有之. 惻隱之心, 仁也, 羞惡之心, 義也, 恭敬之心, 禮也, 是非之心, 智也. 仁義禮智, 非由外?我, 我固有之也, 不思耳矣. 故曰, ‘ 求則得之, 舍則失之’ 或相倍?而無算者, 不能盡其才者也 ” - 사람의 천부적인 자질이 선하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성은 선하다고 할 수 있다. 선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는 그의 자실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과 수치스러워하는 마음과 공경하는 마음, 그리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다. 이러한 네 종류의 마음은 각각 인?의?예?지로 분속시킬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밖에서 나에게 부여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것인데,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찾아내지 않을 뿐이다. 그러사랑 중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은 성경에도 있는 구절인데 맹자의 생각과도 비슷한 것 같다. 사단 중 측은지심을 제일로 쳤으니까... 레포트를 미리미리 준비했다면 교수님께서 질문하셨을 때 대답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순자의 생애와 업적우리가 보통 순자라 부르는 순황(荀況: 순경(荀卿) 또는 손경(孫 卿)으로도 불린다.)은 전국 시대 말기 조나라 사람이다. 순자는 제 (齊)나라에 유학하여 여러 학파의 학설을 착실히 연구하였다. 제나 라는 직(稷)이라는 곳에 학궁(學宮 : 국자감))을 세우고 학자들이 학문을 연구하게 하였다. 이 학궁은 전국시대에 학문을 가장 활발 하게 연구 토론하여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학궁의 최고 책 임자를 좨주(祭酒 : 학장)라고 불렀는데, 순자는 이곳에서 세 번이나 좨주가 되었다. 순자가 직하에서 대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의 직하에는 맹자, 송견, 전병, 신도 등 국내의 저명한 대학자들이 총 집결되어 있었다. 그가 그 중에서도 두드러질 수 있었던 것은 각 가(家)의 학설의 정화를 융화시켜 체계를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인데, 당시의 저명한 대학자들도 순자의 학술적 지위를 승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만년에는 초(楚)나라에서 난릉령(蘭陵令 : 지금의 산동성 역현의 현령)을 지냈으며, 그곳에서 오로지 저술에만 전념하여 후세에 수십만 자에 달하는 저작《荀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생동안 학문연구와 교육, 그리고 저술에 종사하였다. 진시황 때 유명한 재상인 이사(李斯)와 법가의 집대성자인 한비(韓非)가 그의 제자이다.순자의 인성론 - 성악설전국 시대 말기의 뛰어난 유물론자인 순자의 성악론은 맹자의 성선론을 겨냥해서 나왔다. 그는 성선론이 “사람의 성을 알지 못하여 사람의 성(性)과 위(僞)의 구분을 살피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순자는 자연과 사회에 대한 개조 작용을 강조하였으며, 자연적인 것은 인위적인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관점에 근거하여 성의 확충을 주장한 맹자의 인위적인 것이다. 사려가 오랫동안 쌓이고 감각 기능을 반복적으로 사용해서 형성된 일종의 언행 규범을 ‘위’라고 부른다. 예의禮義의 법도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순자와 맹자가 말한 ‘성’의 의미가 상이함을 알 수 있다. 순자는 사람의 선천적인 소질이나 본능을 성이라고 보았고, 맹자는 선천적인 도덕 의식을 성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순자가 볼 때 도덕 관념은 후천적인 훈련을 거쳐야 하는 ‘위’이지 ‘성’이 아니므로, 도덕 관념을 ‘성’으로 여긴 맹자의 관점에 대해 ‘성’과 ‘위’의 구분을 혼동한 것이라고 비판했던 것이다.『筍子』, 「性惡」, “ 孟子曰 : ‘今人之性善, 將皆失喪其性, 故惡也.’ 曰 : 若是則過矣. 今人之性, 生而離其朴, 離其資, 必失而喪之. 用此觀之, 然則人之性惡明矣.” ­ 맹자가 “사람의 본성은 선한데, 그 본성을 잃기 때문에 악한 것이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잘못이다. 사람의 본성은 타고난 그대로 내버려두면 자연 그 질박함이 사라져 나중에는 반드시 그것을 아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것으로 본다면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 분명하다.사람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은 순자의 인성론의 특징이지만, 그것은 결코 순자의 인성학설 가운데서 가장 가치가 있는 관점은 아니다. 순자의 인성학설 가운데서 가장 가치 있는 관점은 그의 “사람의 악한 본성은 선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인성개조론이다.순자는 말하기를 “본성은 우리들의 인위에 따라 형성된 것이 아니지만 그를 개조할 수 있다”“ 性也者, 五所不能爲也, 然而可化也. ” 라고 하였다.또 “ 今之人 化師法 積文學 道禮義者 爲君子, 縱性情 安恣? 而違禮義者 爲小人, 用此觀之 然則人之性惡明矣 其善者僞也. ”“지금 사람들은 스승과 법도에 교화되고 학문을 쌓고 예의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군자라 하고, 본성과 감정을 멋대로 버려두고 성나는 대로 행동하며 예의를 어기는 자를 소인이라한다. 이로써 본다면 사람의 본성은 악함이 분명하며, 본성이 선하다는 것은 거짓인 것이다."라고 말하.
    인문/어학| 2005.12.30| 10페이지| 1,000원| 조회(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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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ㆍ러관계와 한반도의 입장]중ㆍ러관계와 북한
    레포트를 시작하며...중국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중국의 국제관계에 대해서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과 열심히 해야지 하는 의욕만으론 그 동안 나의 나태함과 학과 공부의 무관심으로 얻은 내 무지의 벽이, 이미 뛰어 넘기 힘들만큼 높아져 있었다.너무 많이 들어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중국위협론이나 미국의 MD구축 같은 주제들도 관련도서, 논문, 인터넷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자료를 읽다보면 한숨만 나오는데,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란 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러시아 언어의 특성상 읽기조차 힘든 인명)과 지명들이 등장할 때면 읽던 자료들을 찢어버리고픈 충동까지 들었다.그래도 나는 써야한다. 어설프게 쓸 바에야 차라리 쓰지말자라고 마음먹을 만큼 강심장도 못되고, 한 과목의 학점을 포기해도 평점에 별 타격이 없는 넉넉한 학점의 소유자도 못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멋있는 대학생도 아니기에 이렇게 레포트를 써보고자 한다.머리말19세기 이후로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는 경쟁과 상호의심과 오래된 문화적 차이에 의하여 좌우되었다. 1960년대 초의 중국과 러시아의 분열은 이념적 분열을 더했으며, 70년대에는 적대관계가 첨예화되어 4,300km에 이르는 국경지대에 엄청난 군사력 증강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긴장은 1989년 형식적인 관계 정상화와 냉전의 종식으로 인해 완화되었으나, 상호간의 불신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여러 자료를 통해 중 ? 러 관계의 발전이 대략 4단계로 나뉘어 지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제 1단계(상호 협력의 준비 관계)는 1989년부터 1991년 말까지의 기간으로 고르바초프의 북경방문시 강택민 주석과 함께 양국의 공동성명을 통해서 상호협력의 준비가 되었음을 양국이 인정한 시기이다. 제 2단계(선린 우호 및 호혜 협력 단계)는 1992년부터 1993년까지의 기간으로 중 ? 소 관계에서 중 ? 러 관계로 안정된 전환이 이루어지고 1991년 12월 옐친의 중국방문시 공동성명을 통해 양국관계를 선린관계로 발전시킨 시기이다가 아니라, 양국 간의 관계를 초월한 국제적 ? 세계적 작용범위를 갖는 의미로 볼 수 있으며, 양국을 제외한 외부세력에 대해 외교적 공동대응을 취한다는 의미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주용기(朱鎔基) 중국 총리는 협력을 통한 동반자 관계에 대해 ‘국가간 근본적 이해 충돌이 없고, 공동의 전략목표와 이익을 공유하는 전면적 협력관계’로 보았는데 이는 경제 ? 통상 분야에서 사회 ? 문화 ? 인적교류 등 전분야에 걸쳐 협력의 폭이 확대된 개념이다. 이는 고위급 인사교류 추진, 군사를 포함한 전반적 발전, 경제협력 확대, 양국간 지역 경제협력의 강화 등 각 분야 협력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되, 과정 중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는 원만히 처리하는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구체적으로 양국은 세계정치와 경제 신질서 건립, 아 ? 태 지역의 안전과 협력추구 등 세계 및 지역문제에 있어서도 입장을 조율하고 협력을 강화하기로 함과 동시에 전략적 협력관계의 실질적인 내용을 갖추기 위해 양국정상, 총리의 정례회담 개최, 외교부장의 수시회담, 정상간 직통전화(HOT LINE) 설치 등에 합의 하였고, 러시아의 CIS통합 및 체첸 사태, 중국의 대만 문제 및 티벳 문제를 각국의 국내문제로 인정하고 경제 및 과학기술, 항공우주, 군사기술 분야 협력강화, 국경군 감축 협정체결 노력, 방어 수준의 군사력만 유지하는 것 등의 의견에도 일치를 보았다.전략적 협력관계(전략적 파트너)로의 전환 의미1994년까지만 해도 장쩌민과 옐친의 정상회담은 쌍무적인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키는 가치에 대한 양국의 한정된 일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중국은 실용주의적이고 한정적이어서 러시아의 경제적 전망에 대하여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독립적인 외교 정책에 대한 밀접한 관계와 함축된 것에 걱정을 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관계를 진전시키자는 러시아의 제의를 적절한 구실로 반대하였다.) 1994년 9월 건설적인 제휴는 ‘동맹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다른 제 3국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쌍무적시켜 줄 것이며, 첨단기술 수출을 위한 시장을 개방하고 아시아, 유럽 그리고 국제 기구에서 미국에 대항하는 잣대를 제공한다고 언급했다.전략적 협력관계의 형성 배경- 러시아의 입장첫째, 세계전략 차원에서 중국과의 특별한 협조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이다. 러시아는 미국과의「대등한 동반자관계」수립과 여타 강대국과의 전방위적 선린 등 거리외교를 추진하고 있으나, 중국과의「특별한 관계」를 천명하고 그 발전 가능성을 시사함으로써 NATO의 동방 확대로 상징되는 유럽방면에서의 대러시아 압박을 중국카드를 통해 희석시킬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국제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 즉 신국제질서 하에서 상대적으로 약세에 있는 러시아가 일반적으로 가장 위협시되는 중국과의 제휴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과거 중 ? 소동맹의 심리적 효과를 노림으로써 미국으로부터 실리를 취하고, 일본으로 하여금 대러 관계개선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중국을 통한 러시아의 입지확보 전략이다.둘째, 동북아지역전략 차원에서 미 ? 일의 신안보동맹에 대응하고, 나아가 중국의 입지를 약화시킬 필요성이다. 러 ? 중 협력을 통한 대 미 ? 일 견제라는 구상은 1991년 5월 강택민 방소시의 공동성명에서도 나타났지만, 현재의 러 ? 중 제휴는 예전과 달리 미 ? 일의 반발이 중국에 집중될 수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로서는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즉 미국과 중국간의 불신을 조장하고, 일본의 대중국 경계심을 자극하는 효과로 나타난다. 고도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라 할 수 있다.셋째, 극동시베리아개발을 위한 외부적 환경 조성 필요성이다. 명실공히 아 ? 태 지역국가로서의 입지 확보를 위해서는 극동시베리아개발이 필요불가결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접국과의 선린우호협력이 긴요하다.넷째, 실리 추구 필요성이다. 현재 러시아의 무기거래에서 최대의 파트너인 중국에의 무기수출을 통해 외화를 획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기수출은 정치 ? 군사적 영향력 행사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방대한 중국시장에 대한 접 둔 국방현대화계획을 실시하고 있으나, 자국 방위산업의 낙후로 외국으로부터의 무기 기술 도입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우려하여 중국에의 무기 수출이나 기술이전을 꺼려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와의 군사교류는 거의 유일한 출구이다. 더욱이 중국의 무기체계 대부분이 구소련의 군사기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 장비와 기술도입은 매우 효과적이다.한편 강택민(江澤民) 주석을 비롯한 총리와 국무위원 등 중국 정부를 구성하는 중국 최고지도부의 다수가 소련유학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 정부내 친러시아적 분위기를 형성하게 된다. 즉 소련유학 경험으로 인한 중국 지도층의 친러시아 성향과 무기체계의 상합성, 여타 국가로부터의 무기구입 한계, 러시아의 제공능력 등이 어우러져 러.중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중 ? 러 전략적 협력관계의 실체러시아와 중국은 냉전이 종식된 후 예상되었던 것보다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 더 많은 공통적인 입장을 찾았다. 특히 1995년 이후 엘리트의 정치적 연결은 결과적으로 좋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파트너십이 포함하는 바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에게 있어 관계는 비록 논쟁거리가 되지만 깊은 정치적 철학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옐친은 파트너십은 ‘우리가 21세기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만큼 엄청난 어쩌면 역사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더욱 조심스러운데, 관계의 요소들을 계속해서 격하(格下)시키고 있고 평화적 공존의 다섯 가지 원칙에 충실하고 블록이나 동맹 정치에 반대하는 장기적인 전통의 문맥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장쩌민이 다른 중국의 지도자들로부터 합의를 구하기보다는 24시간 전에 연락을 받아 ‘건설적인’ 것에서 ‘전략적인’ 파트너로 관계를 격상시킨다고 한 합의는 중국의 독립적인 외교 정책 자세와 실용주의에서 중요한 이탈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발전된 쌍무적 관계에 있어 중국의 관심은 국경 분할과 반복해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제휴는 정상화에서부터 논리적이고 증대되는 발전을 뜻하는 것을 암시한다.중 ? 러 전력적 협력관계의 한계러.중 양국이 미 ? 일의 신안보동맹과 NATO의 동방 확대 등을 군사블록 강화로 간주하고 이에 공동 대처할 필요성을 점차 절감하게 될 경우, 군사동맹의 차원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으나, 그러나 러 ? 중관계 발전에는 상당한 제약요소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첫째, 양국은 냉전시기의 중 ? 소 군사대결을 비롯하여 역사적, 민족적으로 뿌리 깊은 불신을 안고 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외무장관의 측근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옐친 대통령의 조언자들은 중국과의 협력관계 발전을 말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전략적 동반자로서 인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둘째, 러 ? 중 전략적 동반자관계는 명백히 미국에 대한 견제라는 측면을 배경에 깔고 있으나, 러 ? 중 어느 국가도 미국과의 대결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러 ? 중간의 관계는 결국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즉 러시아나 중국이나 모두 대미관계가 우선이며, 따라서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되면 미국을 견제하는 러 ? 중간의 전략적 제휴라는 구상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중국「인민일보」는 중 ? 러관계를 "창끝을 제3국에 향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관계"로 규정하고 중 ? 러관계 긴밀화를 "중국의 다각적 외교활동의 일환"으로 강조하고 있다.셋째, 양국의 배경을 살피면서도 지적되었으나, 양국은 공히 양국관계 발전을 통해 그 자체의 실리를 얻으려는 측면과 동시에 상대방을 폄하함으로써 스스로 서방의 지원을 확보하려는 이중성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중국과의 협력 강화에 반발하는 국내여론도 적지 않다.그것은 중국이 러시아의 군사기술을 이용하여 전투기, 미사일, 야포와 같은 자국산 주요 대외판매품목의 성능을 제고시킴으로써 장차 세계무기시장에 러시아의 경쟁국으로 등장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서부터 중국에 대한 무기판매가 결과적으로 러시아하였다.
    인문/어학| 2005.12.30| 8페이지| 1,000원| 조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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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교과서의 왜곡된 내용]※일본교과서 수정합격본에 대한 문제점
    ※일본교과서 수정합격본에 대한 문제점∇ 종군위안부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성적노예가 된 아시아 여성) - 언급 없음독일은 과거 나치의 만행을 두고두고 사과하며 방송, 연극 등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과거가 얼마나 나쁜 일이었는지 후세에 알리는가 하면 최근에는 “나치 정권 아래에서 고통을 당한 강제 노역자들에 대한 배상을 전담하기 위한 ‘ 회상, 책임 그리고 미래재단’을 설립. 과거 청산에 대한 독일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려 힘쓰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가혹행위의 상징인 군대 위안부 관련 내용을 고의로 누락시켜 자신들이 저지른 잔혹행위의 실체를 덮어두고 감추려고만 하는 등 식민지 지배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거부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유엔 인민위원회에 보고 된 바 있는 국제보고서의 내용과 지난 93년 일본 관방장관의 담화에서 위안부의 강제성과 일본군의 개입사실을 시인했던 것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태평양 전쟁 시 일본군의 비인도적 가혹행위의 주요부분을 은폐하여 그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서, 이는 객관적 사실의 서술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삼국조공 (일본과의 교류를 위해 일본에 파견된 문화교류 사절단)조공이라면 사전적인 의미로 속국이 종주국에게 때맞춰 예물을 바치는 일을 의미한 다. 그러니까 백제와 신라가 일본의 속국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그런가하면 고구려에 대해서는 야마토 정권에 접근했다고 아주 애매한 표현을 쓰고 있다. 고구려 장수왕은 일본을 가르치려 사신을 보낸 것이다.삼국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까지 일본에 가기만 하면 일본은 조공을 바쳤다고 하는데 이는 근거가 없다고 본다. 지금까지 국제관계에서 조공문제가 중국 일본에 나오는데 이건 자국의 입장에서 쓴 것에 불과하다. 조공은 이에 상응하는 행위가 따 라야 하는데 고구려 백제 신라는 행위가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은 사료적 허위 에 불과하다. 또 6세기 이후 삼국이 일본보다 정치. 문화적 우위에 있었다는 것이 한?일 학계의 통설인데도 불구하고 이 같은 서술을 하는 것은 당시 동아시아의 정세 를 왜곡해 한반도의 존재가 얼마나 미약했고 주체적이지 못했는지를 의도적으로 강 조하기 위한 것이다.▽ 한?중?일의 현실인식논리적인 근거 없이 무가사회인 일본이 문관사회인 조선보다 우월하다는 자국중심주 의적 사관에 입각하여 일본의 대외팽창전략과 침략전쟁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일본 에게 불리하거나 부정적인 사실은 기술하지 않았으며 한국을 비롯한 타국의 역사를폄하해 일본의 우월성을 부각했다.▽ 조선의 군제개혁 (외세 배격과 자주권 확립을 위해 국왕친위대를 설치하고 상비군을 신 설하는 등 군사 조직의 근대화 단행)군제란 군비의 건설 ?관리 ?운용에 관한 일체의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는 그 나라의 용병(用兵) ?국정 ?법제 ?경제 및 국제정세 등을 고려하여 제정되는데 그 바탕이 되는 것은 군을 편성하여 이를 유지 ?관리하는 군정(軍政)과, 군을 통일된 의사에 의해 운용 하는 군령(軍令)과, 군의 구성원에 대하여 특별한 복무의무를 요구하는 군사사법(軍事 司法)이다. 이렇게 한 나라의 주체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정책에 어떠한 이유에서든 타 국이 관여한다는 것은 명백한 주권의 침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일본은 조선에 대 한 일본의 영향력을 부식하려 했던 목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근대화를 돕기 위한 군사원조로 조선의 독립에 기여한 것처럼 서술함으로써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한일합방한일합방은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강압 아래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함을 규정한 한국과 일본과의 조약이다. 이 조약은 일본이 한국의 국호마저 박탈하려는 획책 이었음에도 불구. 역사 왜곡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후쇼사 교과서는 “일본 정부는 한국 병합 이 일본의 안정과 만주의 권익을 방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영국, 미국, 러시아 3국은 조선반도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서로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한국 국내에서는 일부에서 병합을 수용하자는 목소리도 있 으나...” 등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는 한국병합 과정에서의 침략행위와 강제성을 은폐하 고, 국제관계의 원칙에 따라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합법적인 것으로 기술한 것이다. 또 극소수 친일파를 고의로 부각시키고 의병투쟁과 한국내 저항?반발을 축소, 독립운동 을 단편적인 것으로 적어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묘사를 거침없이 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강제병합이 안중근의 이토사살 때문인 것으로 기술해 ‘전쟁의 원인’에 대해 서 ‘전쟁 불가피론’을 들어 침략전쟁을 정당화시키고 일본의 계획성을 은폐시키고 있 으며 ‘전쟁의 결과’에 대해서도 일제의 동북아 침략 기지로서의 역할 때문에 철도와 관 개시설 등을 설치한 것을 가지고 ‘개발’로 표현, 더 나아가?아시아 국가들이 서구 열 강의 식민지배에서 독립하는데 도움을 줬다?등의 우익 특유의 ‘식민지 시혜론’ 주장을 일부 수용하였다. (실상 일제의 한국인에 대한 탄압과 수탈은 철도나 관개시설 같은 것 으로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대륙 침략 전쟁을 하는데 필요한 많은 물 자를 채우기위해 우리 나라에서 온갖 물건을 빼앗아가고 일본 국내 및 일본군의 쌀 부 족을 메우기 위해 쌀, 보리 등 식량을 거두어 갔다. 식량을 빼앗긴 농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이며 만주에서 가져온 콩,물 밀기울 등을 먹고 목숨을 부지해야 했다. 식량뿐만 아 니라 면화, 삼(대마) 누에고치 등 옷감 원료와 퇴비 가마니 건초까지도 거두어 갔다. 무 기를 만든다고 놋그릇과 수저 등 쇠붙이도 공출의 대상이었으며 공출 명령서를 발부하 여 강제로 거두어 갔다 학교에서는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것들을 의무적으로 가져오게 함으로써 심지어 문고리나 벽에 박힌 못까지 뽑아 가는 일이 생겼다. 또 부족한 연료를 보충하기 위하여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도 산에 가서 송진을 모아야 했다. -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책 참고)▽ 태평양전쟁의 피해자 입장 부각(전쟁을 발발시킨 가해자라는 사실 대신 피해사실만을 강조)좁은 국토와 많은 인구를 갖은 일본은 8000만이라는 국민을 먹여살리기 위해 공업국으 로써의 위치를 확고히 해야 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의 관세장벽과 경제공황은 일본으로 하여금 새로운 생활권을 구하게 하였다. 많은 자원과 시장을 얻기 위해 일본 은 그들의 생활권을 "대동아공영권"이라고 부르며 야욕을 채우기 위해 광적으로 전쟁 준비에 열을 올렸으며 이로 인해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다. 대동아 공영권은 말 그대로 서양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동남아시아가 단결해서 독립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고 여기에서 중심을 일본에 두었다. 한마디로 서양 세력이 가진 식민지를 이제부터는 일 본이 가질 것이며 또한 식민지가 아닌 곳도 일본이 자기의 식민지로 만들 것이며 이것 을 위해 일본이 열심히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지 일본은 아시아를 지키기 위 해 태평양전쟁을 수행하였다고 한다. 아시아를 지키기 위해 한민족과 그 문화를 말살 하려 하였으며, 나아가 한민족을 그들의 전쟁에 앞장서도록 강요하였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일제의 이러한 아시아를 위한(?) 정책으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커다란 희생을 강요당하였다. 그런데도 문제가 된 이번 교과서에는 일본 자신이 식민지에 준 피해 기술보다는 자신들이 입은 피해를 더 상세히 기술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사실만을 강조 하였다. 또 태평양전쟁 말기에 죽어간 젊은이들을 미화하고 가미가제 특공대를 찬미하 는 등 죽은 자들의 심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그 전쟁을 긍정하고 있다. 이는 태평 양 전쟁이 지닌 침략적 성격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인문/어학| 2005.12.30| 3페이지| 1,000원| 조회(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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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일본]역사 왜곡에대한 대응방안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방안나는 솔직히 이번 역사 왜곡에 관한 레포트를 쓰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소위 대학생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자국의 역사에 대해 무지한지 새삼 놀랐고 레포트를 쓰면서 내가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때론 놀라기도 하고 때론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이 짧은 기간 동안에 내가 우리역사에 대해 다 알았다고 말하기도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아마 이런 과제가 없었다면 내가 운동권 학생도 아니고, (학생회하는 사람들이 다 운동권은 아니지만 얘기를 듣자하니 총회에 나가면 이런 문제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한다고 한다. 미국문제도 그렇고..)역사 왜곡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평생 모르고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이번 기회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알게된 것에 대해 무척이나 감사하고 내 어깨가 많이 무거워 진 듯하다.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는 수업시간을 통해서도 많은 얘기가 나왔고 조별로 토론도해본 상태라 어떻게 정리를 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이 이번 과제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해왔던 생각들이 얼마나 단순하고 고식지계에 불과한 생각들이 었는지 느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만 그런가?)일본이 계속해서 역사를 왜곡하려 하는 데에는 경제적인면 사회적인면 교육적인면 등등 여러 방면에서 많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곡을 통해 어려워진 경제 상황을 타계할 국민의 단결을 꾀하고자 하는 것도 있을테고 왜곡을 통해 자신들의 2세들에게 일본국민?일본민족으로서 자긍심을 심어주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애국심을 한번 고양시켜 보자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군국주의나 제국주의의 부활일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은 알아야 한다. 지난날의 반성없이 더더욱 역사를 왜곡까지 해가면서... 그래서는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 뜻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역사는 비판정신에서 시작된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맑고 바른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용기이다. 과거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일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층의 역사를 역류시키려는 책략이다. 이것은 결코 그네들의 2세를 위해 좋은일이 아니다. 진정 국가를 위한다면 민족을 생각한다면 더 낳은 일본이 되길 바란다면 아시아 여러 국가들에게 손해와 고통을 준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사죄해야 할 것이며 올바른 교육을 통해 다시는 그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과거사를 은폐하고 전면적으로 미화하는 역사상을 갖고 국민을 교육하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의 후손들에게서 아시아 세계 여러 민족과 평화적으로 인간적으로 이해와 협력하는 가운데 생활할 가능성을 빼앗는 일이 될 것이다. 즉 일본 국민의 미래를 빼앗는 것이다. 그래서야 UN의 상임 이사국으로 나가기위해 돈을 아무리 많이 낸다한들(일본은 지금 미국에 이어 돈을 2번째로 많이 내고 있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진국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미래는 아시아 경제대국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우리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일본 정부에게 알려야 할 것이다.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비단 우리나라나 다른 아시아국가 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정부의 목소리가 작고 힘이 없어 그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 다면 힘을 모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정치권, 시민단체와 연계해 범국민적 대응수위를 강화해 나가야하고 국제적으로는 중국, 동남아등 식민지의 아픔을 갖고있는 주변국가들과 연대해 과거 역사를 바로 정립하는 일에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대만?태국?홍콩등의 언론이 일본 비판에 가세했고 그로인해 반일무드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역사학회를 비롯한 15개 학술단체에서도 세계학계와 연대해 나름대로 일본 교과서 문제 해결방안을 모색중이다.비록 지금까지는 우리 정부가 이번 왜곡사건과 관련해 65년 한일협정의 당사자인 김종필 총재를 파견한 것과 정치권을 포함해 일제의 교육을 받은 보수세력이 온존해 있는 것 등 국민으로서 이해 할 수 없는 그래서 상대적으로 일본에게 더 강하게 수정을 요구 할 수 없었던 일들을 많이 해왔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삼아 세계 속에 떳떳한 민족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교과서 왜곡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 못지 않게 우리 한국사의 철저한 재검도 중요하다. 일본에게 그들의 부끄러운 잘못을 교과서에 기록하여 반성토록 하는 것이 옳다면 우리도 우리의 친일적 반민족적 행위를 거짓없이 역사책에 기록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친일행위를 하였던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과거를 명확히 기록하여 현재 그들이 보이고 있는 민족을 배신하고 일방적으로 친미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에 대한 경각심도 갖도록 해야할 것이다. 또 베트남 전쟁 중에 저질렀던 수많은 우리 국군의 행위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번 과제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의 양심 있는 한 언론사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쓴 적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겨레신문에서 2000년 11월 14일자에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기사를 썼다고 한다.) 한동안 곤혹을 치뤘다고 한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부분이다. 과연 우리에게 일본을 탓할 떳떳함이 있을까? 과연 나에게 일본을 욕할 권리가 있느냐는 말이다. 나 자신도 베트남 전쟁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일본 국민이 태평양전쟁에 대해 잘 모른 다고해서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교육은 어떤 목적을 위해 이용되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더욱 그러하다. 과거의 잘못보다 부끄러운 것은 현재 그 잘못을 모르고 사는 것이다. 일본정부는 또 우리정부는 국민들이 부끄럽지 않도록 올바른 교육에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인문/어학| 2005.12.30| 2페이지| 1,000원| 조회(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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