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꿈에 나타난 상징물과 로또 번호 해석인간은 꿈을 꾼다. 꿈은 인간의 외부 상황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뇌에서 재조합하여 어떤 상징으로 나타나게 한다. 가령 자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 물이 몇 방울 떨어지면 그 사람은 비가 내리는 꿈을 꾸게 된다. 로또는 한주간의 숫자의 기운 중 가장 강한 기운을 가진 숫자가 나오는 것이다. 로또볼 자체에 새겨진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 단순히 색이 입혀진 공에 불과한 것인가?그렇다면 인간세상에서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만물은 사람이 의미를 부여했기에 비로소 그 존재가치가 있게 된다. 그렇기에 성경에는 아담이 모든 만물에 이름을 붙였고, 김춘수 시인은 꽃을 노래한 것이다. 로또볼 자체를 생각지 말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지 생각해야 한다.왜 꿈에 숫자가 보여서 그것으로 1등에 당첨된 사람들이 있는가?굳이 그런 숫자가 보였다고 로또를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그것은 서로 주고받는 기운이 일치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응기(應氣)라고 해야 할까?숫자가 꿈에 보여도 로또를 사지 않으면 당첨될 수 없고, 또한 로또를 사도 아무런 의미 없이 찍는다면 그것도 랜덤확률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흔히 인터넷상에서 볼 수 있는 꿈의 숫자로 대입해 보았는가?맞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만약, 그런 꿈의 상징수를 대입해봐서 맞다면 그 주간에 가장 많이 꾼 꿈들을 모두 모아 보면 당첨번호가 나올 것이 아닌가?그래서 역경에 나오는 상수의 조합을 통해 꿈과 로또 숫자의 의미를 한층 더 심화시켜 보겠다. 역경에서 말하는 상수는 1에서 8까지가 있다. 여기에 실제 변화하는 후천수로 대입해보면 9까지 나온다. 우리는 10진법의 세상에 살고 있다. 다만 10은 1과 동일하다고 보기 때문에 1에서 9까지의 조합을 통해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꿈이라고 다를 바 없다. 꿈도 우주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꿈에서 강렬하게 어떤 상징을 보았다면 그것은 로또 번호로 해석해 볼 수 있는 것이다.다음은 로또번호와 상징물의 관계이다.1부터 9까지는 자연의 사물, 배경이 관계된다.1 물, 겨울, 우물, 얼음, 늪, 바다, 웅덩이, 동굴, 검정색, 북극성, 여자생식기, 눈(雪)2 논밭, 야채, 나물, 과일, 평평한 들판, 초원, 배3 벼락, 우레, 번개, 새싹, 버드나무, 일출, 대나무, 갈대, 남자생식기(유아)4 소나무, 바람, 숲, 해변, 허벅지, 코, 팔다리5 남극, 북극, 사막, 항문,6 하늘, 머리, 뼈7 연못, 치아, 손톱, 구강, 초승달, 석양, 저녁, 노을8 산, 남자생식기(성인), 척추, 손9 태양, 불, 눈(眼), 눈병, 화상, 고혈압, 꽃, 무지개10부터 18까지는 주로 사람, 동물 등과 연관되어 있다.10 부하, 도둑, 물고기, 자식, 환자, 과학자, 스님, 철학자, 한의사, 무당11 할머니, 어머니, 아내, 이성친구, 직장동료, 농부, 소, 돼지, 간호사12 청년, 학생, 장남, 어린아이, 신생아, 가수, 아나운서, 성악가, 경매업자13 처녀, 장녀, 연인, 목수, 장인, 우편배달원, 택배기사, 선녀, 대머리, 조경업자, 과부14 깡패, 노숙자, 사채업자, 왕, 우두머리, 범죄자, 자살자, 시체, 교도관, 장례업자, 사형15 남자,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대통령, 사장, 군인, 성인, 공무원, 사업가, 경찰, 검사16 소녀, 막내딸, 애인, 기생, 요리사, 접대부, 개그맨, 연예인, 보험설계사, 치과의사17 친척, 형제, 막내아들, 선생님, 숙박업자, 개, 회원18 연구원, 사서, 기자, 화가, 소방관, 영화배우, 안과의사, 디자이너, 미인. 증권사직원19부터 27까지는 주로 행동, 행위와 관련된다.19 섹스, 연애, 출산, 임신, 겁탈, 매춘20 노동, 느린, 봉사활동, 운동, 경기, 일, 휴가, 제사21 노래듣는, 선거유세, 합창, 허풍, 큰소리로 떠들다, 사고, 출마, 당선, 당첨, 결심22 기침, 흔들리다, 정리정돈, 청소, 이사(옮기는중), 여행, 장사, 판매, 경쟁, 결혼23 폭력, 구속, 덫에 걸린, 갇힌, 날뛰는, 도살, 장례24 재판, 판결, 주장, 조사, 싸우다, 승진, 예측, 통솔25 이성희롱, 도박, 놀다, 웃음, 노래하는, 먹다, 즐기다, 꾸짖다, 비방, 말싸움, 수술26 배신, 이사(옮긴전후), 역전, 돌아서다, 쫒겨나다, 혁명, 입사, 줄서다, 등산, 유학, 공부27 발표, 약속, 떠나다, 이별, 의사표시, 수사, 재판, 분쟁, 마찰, 부상, 주식투자, 기도28부터 36까지는 인위적인 사물, 배경과 관련된다.28 도랑, 비, 수로, 콧물, 눈물, 음료수, 목욕탕, 수영장, 세탁소, 다방, 술집, 사창가29 집, 별장, 외가, 한나라당, 친정, 가게30 큰길, 고속도로, 노래방, PC방, 발전소, 방송사31 부동산중개소, 노점상, 행상, 행사장, 풍력발전소, 여행사, 가구판매점, 제지공장32 전쟁터, 장례식장, 납골당, 도살장, 축사, 화장실, 쓰레기장, 고물소, 교도소, 공동묘지33 청와대, 군대, 학교, 국회의사당, 병원, 공공기관, 비행기, 선박, 대기업34 오락실, 연회장, 결혼식장, 잔치, 음식점, 칼, 주사, 송곳, 드라이버35 아파트, 오피스텔, 학교, 호텔, 여관, 채석장36 도장, 신문, 유언장, 신문사, 미용실, 안경점, 소방서, 주유소, 네온, 백화점, 용광로37부터 45까지는 기분, 감정, 의지 등과 관계된다.37 음침한, 불안한, 초조한, 힘든, 어려운, 고통, 고생38 여성적인, 성실한, 착한, 인색한, 희생적인, 부드러운, 평범한, 관대한39 격분, 허풍, 발광, 놀람, 소란스러운, 신속한, 용기, 활발, 쾌활40 유혹, 꼬시는, 여유있는, 안정적인, 사랑, 정감있는, 우유부단한, 사교적인, 완벽한41 고집, 고집, 욕심, 포악, 권위, 막무가내42 순수, 강한, 거친, 진취적인, 야심찬, 굳센, 귀한, 고상한, 착한, 거만한,43 기쁜, 즐거운, 들뜬44 꾸준한, 욕심(건전한), 이중적인45 밝은, 모순적인, 열정적인, 분명한, 화려한, 예술적인, 의지력 있는, 화난, 빈정대는항상 만물의 기운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기 때문에 위의 상징 틀이 꼭 들어맞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9가지 구분은 주역에 근거했기에 크게 빗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잘 적용해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2. 징조로 나타나는 로또 숫자의 조합징조란 무엇인가? 징조는 반드시 어떤 일이 발생하기 전에 나타나는 공명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고가 나기 직전 컵이 깨진다던지 문에 옷깃이 끼인다던지 하는 현상이 있다. 이를 두고 어떻게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사건을 추론할 것인가는 오로지 개인의 직감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리고 혹 영적인 세계를 믿는다면 미래를 알 수 있는 영들이 자신에게 미래의 일을 알려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1. 영화의 줄거리노래를 좋아해 기도나 미사시간에도 늦는 등 수녀로서의 자질을 의심받는 견습 수녀 마리아가 명문 트랩 가에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부터 영화가 시작된다.트랩가의 7명의 아이들은 해군대령인 아버지의 엄격한 군대식 규율에 얽매여 있었다. 이러한 대령의 교육방식에 심한 저항감을 느낀 마리아는 대령이 빈에 간 사이에 아이들을 산으로, 마을로 데리고 다니며 노래를 가르치고 자유롭게 교육시킨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마리아에게 거부감을 표시했지만 이내 마음을 열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다. 빈에서 돌아온 대령은 처음에는 마리아에게 화를 내지만 결국 그도 웃음을 되찾은 아이들의 모습에 만족하게 되고 마리아와 결혼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검은 구름이 트랩 가에도 밀려와 대령은 미국으로 망명하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알프스 산을 넘어 자유를 찾아 길을 떠난다.2. 트랩 대령과 마리아의 행동비교마리아는 엄격한 규율을 지켜야하는 수녀원의 견습 수녀였고, 트랩 대령도 명령과 규율로 움직이는 군대라는 조직의 일원이었다. 두 사람은 다르지만 비슷한 성격의 조직 구성원인 것이다. 하지만, 마리아는 밝고 사교적이며 사소한 감정까지도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트랩의 자녀들을 대할 때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친구나 언니, 누나처럼 자녀들을 대한다. 반면 트랩대령은 무뚝뚝하고 군대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자녀들에게 엄한 아버지로 군림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이 둘의 이러한 차이가 갈등을 이끌어 내고 그런 갈등의 해소과정을 통해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대화와 진정성쇼펜하우어는 직관적 통찰, 즉 언어는 타인으로 하여금 자기 안에 숨겨진 사상에 눈을 뜨게 만들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즉, 대화를 통하여 자기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장점을 살릴 수 있으며 상대로 하여금 그의 마음에서 미처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 끄집어 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마음과 마음이 열리는 것이며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거부감 없이 전달할 수 있게 하는 방편이 되는 것이다.마리아가 처음 아이들과의 인사말을 주고받을 때 아이들과의 대화를 보면 그녀가 얼마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아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적절하게 받아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마리아가 얼마나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반면 트랩 대령은 바르고 정직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대해 표현이 딱딱하고 서투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로 인하여 관계가 어색해지고 일방적이게 되는 것이다. 트랩 대령은 마리아가 왔을 때 아이들을 집합시키는데 호루라기를 사용한다. 이는 최소한의 언어조차 사용하지 않고 신호를 통해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명령을 하달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의 감정이나 행동, 그리고 결정을 무시하는 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대령에게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마리아는 대화를 통해 서로간의 의사교류가 원활해지고 상대로 하여금 보다 쉽게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 하지만, 트랩대령은 대화를 최소한으로 차단하여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의사전달을 하기 때문에 서로간의 소통이 차단되고 관계형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말로 표현하는 것만이 인간의 의사소통의 전부가 아니고 때로는 비언어적 행위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더 잘 표현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마리아는 대화를 할 때 이미 그 눈빛과 적당한 몸짓, 그리고 적절한 감탄사 등으로 비언어적 행위가 언어를 보조하고 있었다. 또한, 아이들이 말하는 바를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함으로써 원활한 관계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사회복지사도 클라이언트와의 관계형성을 위해서는 업무 수행을 위한 소극적이고 형식적인 대화가 아니라 상대가 말하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적인 자세로 적극적이고 사려 깊은 대화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감정과 정서마리아가 아이들에게 도레미송을 가르쳐 주는 장면은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장 자크 루소는 인간에게 공통적인 것은 논리나 이성이 아닌 감정과 정서라고 강조했다. 음악이 감정과 정서를 통해 사람들을 이어 준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트랩 대령은 누구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아내와의 사별로 인하여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것이 괴로웠기에 가정에서 음악을 의도적으로 봉쇄했다. 즉, 트랩대령은 마음속에서는 음악에 대한 사랑이 있었고 아이들에게도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있었지만 이를 표현하지 않았고 따라서 내면과 외면의 불일치가 일어났던 것이다. 효과적인 관계형성에는 진실성, 즉 일치성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이 결여되었던 것이다.반면 마리아는 스스로도 음악을 매우 좋아하고 그것을 표현했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었으며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아이들의 감정과 정서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 도레미송의 장면을 통하여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와의 관계형성을 위해 논리나 이성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이 담긴 마음으로 상대의 감정과 정서를 이해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자기결정영화에서 천둥번개와 비바람이 치는 밤에 마리아의 침실로 아이들이 한명씩 찾아오는 장면이 있다. 서로간의 이해와 친밀감을 높여가면서 마침내 아이들이 마리아에게 의지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 때 아이들이 스스로 마리아의 방으로 들어감으로써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자기 결정에 의해 그런 행동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이전의 아이들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었고 아버지 트랩대령이 결정지으면 그것을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런 아이들에게 마리아는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여 행동할 수 있는 단계까지 도와준 것이다.
조선시대 신분제의 변화1. 서언2. 조선의 전기 신분구조1) 양반 2) 중인3) 양인 4) 천인3. 양란 이후 신분제의 변화1) 양반 인구의 증가 2) 중인의 성장3) 서민의 경제적 성장 4) 노비정책의 변화4. 결언1. 서언조선시대 신분층의 구조는 정치제도와 연계되어 구성되어 있었다. 정치체제와 연계된 양반은 관제상 양반인 문반?무반을 구성하여 관료를 독점하고 있었던 자들로서, 유교정치 이념상 職役的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유교적 명분과 유학으로 무장되어야 함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조선 왕조의 신분구조는 양반관제가 사회신분의 명칭으로 의미가 바뀌는데서 알 수 있듯이 직역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면서 사회통념과 혼합되어 있었다. 양반이 최고의 신분층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좋은 직역에 종사하는 사회신분층이라는 의미이고, 이어 중인?양인?천민층은 그 직역이 고된 것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조선사회의 신분구성은 직역의 변동에 따라 변화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그렇다면 조선 초기 기본 신분구조인 양반?중인?양인?천민에 대해 알아보고 양난 이후 이러한 기본적인 신분질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보겠다.2. 조선의 전기 신분구조조선왕조의 신분제는 신분직역제로 함축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남자는 원칙적으로 신분적 지위에 맞는 직역이 각 개인에게 주어지고, 이에 따른 권리ㆍ의무상의 차등이 법제 적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개인의 신분적 지위는 직역의 여하에 따라 파악할 수 있었다. 직역은 신분을 판정하는 유력한 수단의 하나이기 때문에 장적에 기재된 직역을 통해서 조선의 신분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조선 초기에는 양인과 천인으로 신분이 구분되어서 양인은 역과 세를 부담하고 천인은 이것들을 부담하지 않았다. 양인이 역과 세를 부담하는 대신 그들은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고 천인은 관직진출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이르면서 양반, 중인, 상민, 노비의 격차는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다.1) 양반양반은 관료직을 독점하려는 제도적 장치와 사회관행을 통해서 그들의 신분을 형성하는 사람이 많았고 정원이 늘어나 양반들 사이에선 인기를 잃었다. 그러므로 양반들의 주된 관심은 문과와 그 예비 시험인 생원?진사시에 있었다. 그런데 이들 시험은 양인이 응시는 할 수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다. 먼저 양인들은 과거준비를 할 수 있을 만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과거에 급제하기까지는 적어도 25~30년간의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조선 초기 양인들은 대부분 영세 농민이었고 따라서 그러한 과거 준비기간에 몰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음으로 양인들의 교육환경은 양반자제에 미치지 못했다. 양인들의 자제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서책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거응시 절차도 양인들은 까다로웠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과거제는 양반의 신분 유지를 위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었다.양반은 자신들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혼인권을 만들고 족보를 만들었다. 주자학의 학문적 수용이라는 당시 시대상과 관련하여 성리학은 여러 면에서 조선 양반지배층에 부합되는 논리와 도덕성을 제공하였다. 양반층은 고위 관료직을 독점하는 면에서 유리한 조건을 만들고 성리학적 규범 논리를 통해 자신들의 행위범위를 단속하기도 했다. 즉 양반은 족보?향약과 학문적 성향, 그리고 지주제라는 경제논리로 원시 유학에서 제시한 정치구조를 자신들의 정치적 특권과 혼인권 유지에 이용하고 가부장적?정법적 논리와 가례적 질서론을 통하여 배타적으로 자신들의 신분을 유지하려고 했다.양반은 사권의 기반으로서 노비를 소유하고 있었다. 노비는 양반의 사회적 권위와 경제적 여유를 제공해 주는 주요 생활근거였다. 노비의 봉사가 있음으로써 양반은 생산노동에 직접 종사하지 않고 독서와 수기치인에만 종사하여 조선사회의 지배층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양반은 어떻게 해서든지 많은 노비를 확보하려 하였다. 노비는 토지와 함께 양반에게 가장 주요한 재산이었다.양반은 노비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기 위하여 법제적으로 이들을 천인화하고 양반과 노비와의 관계를 하늘과 땅, 위와 아래의진출도 막히게 되었다.그 결과 전 ? 현직 양반관료를 비롯하여 사족들은 상급 지배신분층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 반면 이들은 하급 지배신분층으로 격하되었다.3) 양인양인과 천인은 각기 인민의 등급을 대조적으로 구분하는 ‘양’과 ‘천’이 사람을 뜻하는 ‘인’과 결합하여 만들어진 용어로서 조선 초기에는 개개인의 신분을 표현하는 법제적 규범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常人 ? 平人 등으로 불렸고 이것은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대변해주는 말이었다. 따라서 사회적 위치가 보통사람과 다른 특별한 사람들은 평민으로 지칭될 수 없었다. 승려 ? 무격 ? 백정처럼 특수한 업무에 종사하는 자도 보통사람으로 간주되기 어렵다. 향리 ? 역리 ? 목자 ? 염간 등과 같이 특이한 신역을 부담하는 자도 보통사람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가장 순수한 평민이라고 칭할 수 있는 자들은 일반 양인 농민일 수 밖에 없었다.양인 농민은 소수의 지주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자영농이나 소작농이었다. 이들은 주로 자신과 가족의 노동력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조선 초기에는 정부가 필요로 하는 항구적인 노역이나 물자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하여 군역 이외에도 잡다한 신역이 설치되어 있었다. 역은 양인 고유의 역이었다. 각 군현에서 군역자원을 차출하는 과정에서는 중앙의 지침과는 달리 우선적으로 힘없고 가난한 농민을 뽑아 그 액수를 채우기 마련이었다. 군역으로 차출되지 않는 농민은 잡색역에 동원되었다. 잡색역에 동원된 농민은 대개 관아의 사령 역할이나 공공건물을 간수하는 등의 노역이 부과되는 것이 보통이었다.당시의 군역에서 입역 연령은 16세부터 60세까지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16세에 입역을 시작하여 60세에 마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단지 이 연령은 신역을 부과할 수 있는 범위를 나타내는 데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입역 부담은 여러 가지 완충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4) 천인조선 초기의 천인으로는 노비가 대표적이다. 조선시대의 천인은 일반적으로 사료지배당하고 있으면서 국가의 공권력에 대해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였다.3. 양란 이후 신분제의 변화임진왜란으로 인한 사회경제적인 피해는 전국적인 농촌?농민층의 피폐를 가져왔고, 그와 동시에 사족들도 그들의 물적인 기반이 와해되었다. 기존의 특권과 경제력을 심각하게 상실한 중앙의 지배세력들은 이를 만회하고 기존의 특권을 확보하고자 치열한 내부분열을 전개했다.한편 산업의 여러 분야에도 급속한 변모가 이루어져, 농업분야의 경우 이앙법의 전국적인 보급과 작부체계의 발전에 다른 생산력의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이는 시장?상업체계의 발달과 짝하여 상업적 농업의 발달도 촉진시켰다. 농업생산물이 증대됨에 따라 잉여산물들은 상품으로 점차 전화되었고, 합리적인 농업경영으로 부를 축적한 새로운 형태의 부농층이 나타나 농민층 내부에서도 서서히 계층분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들 부농층과 같이 경제적인 부를 소유한 새로운 계층의 출현은 기존의 지주층이나 재지사족들의 지위가 결국에는 도전받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었다.이런 변화의 조짐은 비단 농업분야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상공업이나 수공업, 광업의 분야에서도 과거 국가가 독점적으로 그 이득을 확보하던 체계는 점차 이완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같은 상품경제의 발달과 유통구조의 확대과정은 시장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자본을 형성시켰으며, 이들 자본의 축적은 전통적인 사회경제구조의 동요를 초래했다.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인 변화는 전통적인 신분체제에 대한 의식과 계층구조를 변화시켰다. 조선 후기 신분병동의 주요한 양상은 각 신분층 내부의 분화현상과 하층 신분의 상층신분으로서의 신분상승으로 특징지어지며, 이는 구체적으로 양반층 인구의 급격한 증가, 상민층의 상대적인 감소, 외거노비의 실질적인 소멸, 솔거노비의 광범한 도망현상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었다.양반의 수적인 증가는 양반계층 자체의 양적팽창에도 일부 그 원인이 있겠지만 그보다는 하층민의 신분상승결과로 야기된 것이었다. 조선 전기 사회에 있어서 상민이나 두드러지는 과정에서 지배신분층이었던 양반층 내부에서는 이에 부수된 계층 분화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양란 이후 첨예화된 당쟁의 격화는 양반층 내부의 분열을 가속시켰고, 학맥이나 지맥, 인맥 등으로 연결된 당파간의 경쟁과정은 관직의 점유와 그와 결부된 사회경제적인 특권의 균형있는 배분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특히 당쟁의 과정에서 정계에서 물러난 양반은 이제 그들의 족적?재지적인 기반에 관한 한에서만 양반으로서의 권위를 보유하게 되었으며, 그 같은 기반마저 확실하지 못한 경우에는 몰락하여 소위 잔반이 되어갈 수밖에 없었다.이들 집권계층에서 이탈된 몰락양반들에게는 관념상의 양반지위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사회경제적인 처지는 평민과 거의 다름없었고, 오히려 현실적인 조건은 평민보다 열악한 경우도 허다했다. 몰락한 양반들은 서당 훈장이나 고용훈장처럼 지식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거나 더욱 심한 경우 농업이나 상공업 등 생업에 직접 종사하여야 하였다. 이들은 명목상으로만 양반계층이었을 뿐 상민층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처지에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양반층의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지위가 분화되어가는 현상은 하층민의 신분상승에 못지않게 조선 후기 사회의 신분구조 변화과정에 있어서 주요변수로 작용하였고, 이 같은 변화는 향후 향촌사회 지배질서의 복잡한 변화와도 연결되고 있었다.1) 양반 인구의 증가양반의 인구는 조선 후기로 오면서 점점 늘어나게 된다. 양반인구는 조선후대로 올수록 점차 증가하고 있다. 양반인구가 증가한 요인에는 “양반”이란 개념자체가 확대된 까닭도 있으나, 幼學이 급증한 이유가 크다. 숙종 4년부터 정조 10년까지 단성지역에서 ‘유학’의 직역을 퍼센트로 살펴보면 숙종 4년에 41.5%, 숙종 43년에는 78.4%, 영조 35년에 87.7%, 정조 10년에 94.5%이다. 즉, 유학이 조선 후대로 갈수록 점차 증가하고 있어서 유학이 양반층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양반층의 급증이 유학의 급증에 따른 것임을 뒷받침하고 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