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Ⅰ. 사업계획서 요약문Ⅱ. 창업 사업계획의 개요1. 사업의 개요2. 사업목적 및 특징3. 사업 전망Ⅲ. 창업 사업계획의 내용1. 회사 개요2. 회사명 - Sample ParadiseⅣ. 시장 조사 및 분석1. 목표시장2. SWOT 분석3. 동 업계 및 경쟁회사 현황Ⅴ. 사업추진 계획1. 입지선정 계획2. 조직 계획3. 마케팅 계획4. 원·부자재 사용 및 조달계획Ⅵ. 재무 계획1. 소요자금 및 조달계획2. 추정 손익계산서3. 손익분기분석Ⅰ. 사업계획서 요약문많은 기업들은 제품들을 홍보하기 위해서 샘플을 생산하여 소비자층에게 배포한다. 기업이 단순히 샘플을 배포하는 것은 홍보 효과만을 가지고 있다. 홍보 효과만으로 그치는 것은 샘플 생산 비용을 충분히 활용하는 못하는 것이다. 기업이 샘플을 활용하여 제품의 개선?개발 정보도 얻어야 샘플배포에 대한 효과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특성을 이용하여, 기업이 개발한 제품의 샘플을 소비자에게 무료 배포하고 그 샘플에 대한 소비자 의견을 수집한다. 그리고 그 수집한 설문지를 수집하여 제품의 개선?개발 정보를 기업에게 제공한다.그럼으로써 기업이 개발한 제품의 소비자 의견 수집?분석과 홍보를 동시에 해 줌으로써 기업은 연구개발비용과 마케팅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런 절감 효과를 기업에게 제공해 줌으로써 우리는 그에 대한 수수료로 수익을 창출한다. 또 소비자에게는 제품들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제품의 선택을 합리적으로 해주게 도와준다.우리나라 인터넷 사용자가 50%를 넘었다. 이 시점에서 손쉽게 온라인을 이용하여 무료 샘플을 배포할 수 있지만 오프라인으로는 직접 보고, 만져본 뒤 제품들을 선택할 수 있어 제품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이러한 장점을 이용하여 사업을 추진할 것이다.Ⅱ. 창업 사업계획의 개요1. 사업의 개요며칠 전 친구와 길거리를 지나가다 샘플을 받았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샘플을 주나 생활용품 등으로 한정되어 있어 나에게 필요한 제품이 아니면 버리거나 방치해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요즘은 고객이 제품을 직접 체험하고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체험마케팅이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며 붐을 이루고 있고 그 효과 또한 매우 높다. 물론 인터넷을 통한 샘플제공 사이트가 많이 있지만 오프라인 상에서는 고객들이 직접 보고, 만져본 뒤 선택해 써볼 수 있어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홍보효과도 뛰어날 것이라 생각되어 일본의 샘플랩에서 힌트를 얻어 우리나라에서도 샘플 전문점을 해보기로 했다.2. 사업목적 및 특징기업은 구전 마케팅의 효과를 선호한다. : 고객이 제품을 직접 체험하고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체험 마케팅이 붐을 이루고 있다. 체험 마케팅은 주로 자동차, 식품, 화장품 중심으로 이루어지다가 이제는 항공, 의료, 컨설팅 같은 서비스 영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체험 마케팅의 확산은 인터넷을 통해 과거 어느 때보다 제품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아는 소비자들이 이제는 제품을 직접 보고 선택함으로써 제품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체험 마케팅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품을 미리 사용해보고 구매를 결정할 수 있고 기업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이 제품을 사용한 후 제품에 대한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주는 구전 마케팅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양자가 서로 선호하는 방법이다. 특히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소비자의 제품 평가가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요즘 구전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체험 마케팅은 기업 입장에서 효과적인 홍보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신제품일수록 체험마케팅에 유리하다 : 소비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신제품의 경우 체험마케팅을 통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공기청정기 생산업체인 청풍은 1989년 업계 최초로 공기청정기를 출시했지만 한동안 이렇다 할 매출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독점이었지만 당시에는 공기청정기란 시장 자체가 없었다. 신생아실, 유아원과 같이 깨끗한 공기가 필요한 장소에 제품을 무료로 공급해 서서히 제품의 인지도를 높이던 청풍은 2003년써 체험마케팅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공기청정기가 흡연실의 담배연기를 빨아들이는 모습을 체험한 공항 이용객이 제품에 신뢰감을 갖게 된 것이다. 청풍은 인천공항 외에도 싱가포르 창이공항, 일본 오사카 공항 등의 흡연실에 자사 제품을 설치해 놓고 있다. 웅진코웨이 정수기의 경우 체험마케팅을 통해 활로를 개척한 대표적인 경우다. 웅진코웨이는 IMF 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고가의 정수기 사용을 주저하던 잠재고객에게 정수기를 대여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약 7년 사이에 10배 가까운 성장을 이뤘다. 또 고객 상담과 필터 교환 등을 담당하는 서비스 전문가 ‘코디’(코웨이 레이디)를 고용, 고객이 제품을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 ‘미오’란 브랜드의 차량용 네비게이션 제품을 수입 판매하고 있는 LG상사의 경우에는 제주도에서 렌터카 회사인 ‘AVIS’의 렌트 차량 100대에 자사의 네비게이션을 공급했다. 네비게이션이 탑재된 차량을 렌트하는 고객은 무료로 최신형 네비게이션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네비게이션 제품은 광고만 가지고는 제품의 특장점을 설명하기 힘들어 써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직접 써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3. 사업 전망거리에서 나눠주는 샘플은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것과 달리 약간의 회원비와 프리패스비만 내면 화장품, 식품, 생활용품, 아기용품 등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고를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 있으며, 광고효과 및 고객들의 수요를 예측하기 위해 제품에 대한 반응을 들어야만 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제품을 제공하고 약간의 광고비만 제공하면 원하는 만큼의 고객들이 직접 보고, 만져본 뒤 선택한 제품들의 설문지를 확보를 할 수 있어 소비자와 기업에 모두에서 이익(윈윈 전략)이 될 수 있다. 또한 울산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오프라인 샘플점은 시장 형성이 되어 있지 않아 경쟁력이 크고 향후 발전 가능성이 있다.Ⅲ. 창업 사업계획의 내용1. 회사 개요기업은 제품의 홍보와 소비자의견을 듣는 것이 매우 중요로 현재 기업들은 샘플을 제조하여 소비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해 주고 있다. 이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오프라인을 통해 하루를 5개의 시간대로 나눠 내방시간 최대 1시간 30분 정도로 하여 직접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제품의 샘플을 고를 수 있게 한 후, 제품 평가와 개선 아이디어 설문을 통해 기업에게 상품에 대한 분석? 개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음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다.[기업이 제품의 샘플 평가를 의뢰] [오프라인을 통해 다양한 연령층의 소비자고객 확보][제품 평가 설문조사를 응한다는 조건으로 샘플을 소비자 고객에게 배포]-유료회원제 실시▷ 회원 등록 가입비 5000원와 10000원 가량의 프리패스(1년 기한)를 구입.▷ 입구에선 휴대폰으로 회원임을 증명하고 첫 방문 때는 본인증명 절차를 밞음.▷ 하루에 다섯 종류 이상의 시제품은 챙길 수 없음.[소비자 고객을 대상으로 제품 평가 설문조사]-제품을 받았으면 며칠 안으로 제품에 대한 설문을 제출해야지만 회원자격 유지함.[설문조사 결과 정보를 기업에게 제공]- 기업은 제품 홍보 및 개선, 개발 정보를 얻는다.[기업에게 정보를 제공한 대가로 수수료를 받고 수익을 창출]- 제품 공급업체로부터 받는 광고비(설치 및 배포)- 상세도에 따른 제품 설문조사비2. 회사명- Sample ParadiseSample Paradise에 가면 항상 다양한 종류와 양질의 샘플이 있고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견본’과 ‘천국’의 영문 표기를 합성하여 만들었다.Ⅳ. 시장 조사 및 분석1. 목표시장고 객소비자 고객대 상모든 연령의 여성과 10~20대 남성서비스기업이 의뢰한 샘플 무료 제공대 가무료로 제공받은 샘플 평가기업 고객대 상Sample Paradise의 샘플 제공업체서비스고객의 샘플 사용 평가 설문 정보 제공대 가정보 제공에 대한 수수료2. SWOT 분석STRENGTH- 핵심 타겟 공략용이- 원하는 샘플 선택 사용- 체험 제품의 다양성- 접근 용이성WEAKNESS- 심층적 조 광고 효과 극대화- 소비자의 샘플 사용 욕구THREAT- 온라인 샘플점의 등장- 각 기업 홈페이지의 활성화- 샘플 공급의 어려움3. 동 업계 및 경쟁회사 현황현재 우리나라 온라인 샘플점은 많이 운영되고 있지만, 그 종류가 대부분 화장품으로 한정되어 있다. 또한 고객이 직접 자신이 원하는 제품의 샘플을 골라 사용해볼 수 있는 오프라인 샘플점은 울산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그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 경쟁력이 크고 향후 발전 가능성이 보인다.Ⅴ. 사업추진 계획1. 입지선정 계획체험 형 샘플 가게는 유료회원제로 운영되며 시간대를 나누어 내방시간을 정해 놓은 후 이용할 수 있게 하기 때문에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적합하나 직접적인 판매수익이 아니기 때문에 임대료 대비 수익성을 고려하여 울산광역시 남구 공업탑 상권으로 정하였다. 무엇보다 공업탑 로터리는 울산 노선버스 대부분의 경유지이며 시내, 시외, 고속버스 및 택시 등의 정류장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 울산 어느 방향에서든 접근성이 양호하여 거주객 뿐만 아니라 유동객의 접근성이 매우 양호하다 생각된다. 물론 성남동과 달리 정류장을 조금 벗어나면 유동인원이 감소하고, 삼산동 일대 신시가지 개발로 상권 중심축이 옮겨감으로써 전체적인 상권의 짜임새가 약화된 추세이지만 기존의 한정된 샘플 제공에서 벗어나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제공함으로써 남?여 모든 연령대가 이용할 수 있고 거리에서 사람이 나눠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것과 달리 자신이 원하는 샘플을 직접 고르고 써볼 수 있는 장점을 적극 활용한다면 새로운 제품에 대한 호기심과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제품을 써볼 수 있다는 점이 경쟁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국내 오프라인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업형태로 신선한 아이디어와 사용자들의 입소문과 제품 광고효과로 기업의 수익향상에도 도움을 줄 수 있어 체험 제품의 다양성 확보와 체인점 형태의 사업 확장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상권에 비해 유동인원이 적더라도 접근성이 뛰어나고 임대료가 싼다.
ITEM : 새싹채소를 이용한 음식점이유 : ‘발아 생식’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독일의 의 연구 결과 가 발표되면서 부터입니다. 이 연구 발표는 한국 사람들이 즐겨먹는 콩나물과 숙주나 물 등에 영양소가 많은 이유를 분석해 놓은 것으로 “ 모든 씨앗은 발아 하는 순간이 가장 영양활동소가 증가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새싹 채소는 비타민, 미네랄 등 영 양소가 완전한 성장식물보다 5~20배 이상 함유 되어 있다. 국내에는 30 여가지 이 상 들어와 있고 물만 주면 잘 자라기 때문에 벌레가 생기거나 지저분하지 않다. 소품 가꾸듯이 5일~14일 정도 즐겁게 키워 먹을 수 있고 안전한 먹거리이다.출처 : http://blog.naver.com/perryce1/10024221199현재 가장 각광 받고 있는 것은 건강에 관련된 것들이다. 이 트렌드를 따라 생각하다 보니 채식에서 좀 더 나아가 새싹채소를 이용한 음식점을 하면 어떨까 하게 되었다. 새싹채소들의 용도는 상당히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 비빔밥에 넣어서 비벼 먹을 수 도 있고 샐러드, 샌드위치 등으로도 먹을 수 있다. 출처에서 쓴 블로그에서 보면 주스로도 마신다고 되어 있다. 각 새싹 채소마다 가지고 있는 영양소에 따라 효능이 다 다르므로 소비자에게 충분한 정보만 공급되고 인식된다면 소비자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채소를 찾아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현재 대형 마트나 백화점을 찾아보면 새싹코너가 이미 따로 있다. 하지만 채소의 종류가 너무 적어 입맛대로 고르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입지가 좋고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를 선정한 뒤 광고와 홍보를 통해 소비자에게 인식 시키고 양과 질이 풍부한 다양한 종류의 새싹채소를 공급한다면 지금의 트렌드인 웰빙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여 이익창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목차Ⅰ. 기업체 현황1. 회사개요2. 창업동기 및 사업의 기대효과Ⅱ. 조직 및 인력 현황1. 고용계획Ⅲ. 기술현황1. 제품 아이템 선정과정 및 산업전망Ⅳ. 생산 및 시설계획1. 원·부자재 사용 및 조 재무계획(향후 5년간)가. 추정 손익 계산서2. 향후 수익전망가. 손익분기분석Ⅶ. 자금운용 및 조달계획1. 소요자금 및 조달계획Ⅷ. 결론Ⅰ. 기업체 현황1. 회사개요현대인들은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오염물질을 다량으로 섭취하고 있다. 농약과 화학비료는 물론 식품첨가제, 방부제, 산화방지제, 착색제, 발색제 등등 헤아리기 조차 힘들 정도로 다양한 오염물질이 우리의 생활공간에 그리고 먹거리에 넘쳐나고 있다. 사람들의 인식 또한 점점 건강을 생각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건강에 좋은 음식은 많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 최근에 새싹채소가 가장 각광 받고 있는데 이 새싹 채소란 말 그대로 채소의 새싹을 이용해 먹는 것인데 대략 5일에서 7주일이면 식용으로 가능하며 기르기 용이하고 농약이나 해충의 염려가 없어 건강식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새싹채소를 이용해 ‘파릇파릇’ 에서는 샐러드, 비빔밥, 샌드위치, 주스 그리고 가정에서 직접 키울 수 있는 씨앗과 재배기기를 판매할 계획이다.2. 창업동기 및 사업의 기대효과조류 인플루엔자, 광우병, 제조식품 내의 이물질 등등 음식에 대한 불신이 심해져 가고 있다. 그리고 현재 웰빙, 로하스 등 건강을 생각하는 음식이나 생필품 등이 트랜드이다. 앞에서 말한 2가지 모두를 포함 하는 것에서 포인트를 얻어 건강에 좋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을 생각하게 되었다.현재 웰빙 음식이 각광 받고 있는 시점에서 새싹채소로 만든 소비자에 입맛에 맞는 음식을 제공한다면 소비자의 기호에도 맞출 수 있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Ⅱ. 조직 및 인력 현황1. 고용계획종업원의 수 : 사장 (주문, 경리, 서빙, 포장 업무)주방 3명(요리, 설거지 업무)상시 종업원 1명(주문, 경리, 서빙, 포장 업무)아르바이트(시간별 종업원) 2명(주문, 경리, 서빙, 포장 업무)사장주방3명상시 종업원1명아르바이트2명- 요리- 설겆이- 주문, 경리,서빙, 포장 업무- 주문, 경리,서빙, 포장 업무Ⅲ. 기술현황1. 제품가 잦다. 그런 이유로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침세트를 판매 하는데 정크 푸드보다는 몸에 좋은 새싹채소를 이용한 샌드위치와 주스를 아침에 출근하는 회사원을 위해 선정하였다.새싹하면 일반인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음식 중에 대표적인 예가 비빔밥과 샐러드이다. 새싹채소 음식은 이미 몇 년 전부터 판매되어오기 시작했는데 일반인이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접할 수 있는 음식이 비빔밥과 샐러드라 이 두 가지를 선정하였다.마지막으로 씨앗과 재배기기를 포함하였는데 이 이유는 그저 사먹기만 하는 새싹이 아니라 집에서도 얼마든지 손쉽게 재배하여 가정 식탁에 올릴 수 있어서 제품아이템에 포함하였다.?새싹 비빔밥 : 6000원?새싹 샐러드 : 3000원(무한 리필)?새싹 샌드위치 : 3000원?새싹 주스(오렌지 아몬드 겨자싹 주스, 사과 요구르트 겨자싹 주스, 바나나 검은콩가루 배 추싹 주스, 귤 다채싹 주스, 딸기 다채싹 주스, 파인애플 파슬리 다채싹 주스, 포도 다채 싹 주스, 연두부 바나나 알팔파싹 주스, 녹차 알팔파싹 주스, 참마 배추싹 주스, 수삼 배 추싹 주스, 감자 배추싹 밀크 쉐이크) : 2500원?씨앗(홍화, 해바라기, 클로버, 크레스, 케일, 치커리, 양배추, 적무, 완두, 옥수수, 알팔파, 아마, 순무, 소송채, 설채, 비트, 브로콜리, 부추, 보리, 배추, 밀, 무, 메밀, 들깨 다채, 경 수채, 겨자 등등) : 1000원?재배기기 : 5000원, 다용도 8000원?산업전망현재 울산에서 씨앗 음식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식점이지만 같은 동종업계의 경쟁업체가 없는 것을 장점으로 비빔밥, 샐러드, 샌드위치, 주스를 판매하는데 샌드위치와 주스는 테이크 아웃으로도 판매할 생각이다. 다음으로 씨앗은 가게에 와서 먹고 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집에서도 간단히 재배해서 먹을 수 있으므로 재배기기와 함께 판매할 예정이다. 앞에서도 써놓았듯이 현재 울산에서 씨앗음식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웰빙 음식이 뜨고 있는 추세다. 그 점을 장점으로 울산 동구지역에서 유동인구가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된다.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사이트 몇 군데를 돌아다녀 시장 점유율과 매출액 증가 등등을 확인해 보았다.?새싹채소시장은 연간 400억원규모이며 60여 업체가 생산과 유통을 맡고 있다. 농산물시장개방에 따른 수입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에게 건강한 먹거리 새싹채소와 베이비채소를 선보이고 있는 대농바이오영농조합법인(대표 황성헌 www.daenongbio.com)은 국민건강의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해 가고 있다.지난 2004년부터 나주시의 경관사업과 병행해 채종포단지를 조성해 무농약 인증을 받은 991,746m2 규모의 단지를 조성하여 가격과 품질면에서 타업체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추었다.2003년까지 새싹채소 시장개척에 성공했고 2004년에는 8억원, 2005년에는 25억원, 2006년에는 34억원의 매출신장을 통해 안전한 먹거리와 육류보다는 채소라는 전반적인 의식의 변화로 새싹채소뿐만 아니라 베이비채소 등 다각한 2차 상품개발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시장현황]① 새싹의 의학적 효능이 알려진 후 새싹채소 시장은 크게 팽창② 미국이나 유럽·호주 등지에서는 채소 매장의 30% 정도를 새싹채소가 차지할 정도로 일반화됐으며 시장 규모는 이미 200억 달러를 넘어섰다③ 동양에서는 일본을 중심으로 새싹채소 바람이 불고 있다.일본에서는 일반 편의점에서도 새싹채소를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널리 보급되었고 야채시장 점유율은 10~20%에 이른다.④ 우리나라에 새싹채소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년 정도밖에 안되었으나 잇따른 식품사기 사건으로 안전한 식품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커졌으며 지난해부터 거세게 불고 있는 웰빙 바람도 새싹재배 붐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⑤ daum과 naver에서 ‘새싹채소’로 찾을 수 있는 인터넷 카페만도 49개.동호회 회원 수는 3만2000여명에 이르며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동호인을 더하면 2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Ⅳ. 생산 및 시설계획1. 원?부자재 사용 및 조달계획?원?부자재 사용주 메뉴인 계획다른 지역에서 새싹을 받아오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게 남의 손에서 키워진 새싹들을 판매하는 것 보다는 직접 재배하고 매장으로 가지고와 판매하는 것이 훨씬 더 안심하고 소비자에게 판매할 수 있고 직접 공수해 옴으로써 다른 지역에서 가지고 오는 것 보다 더 신선한 채소를 공급할 수 있고 직접 키우는 거라 사서 가지고 오는 것보다 자금이 덜 소비된다.Ⅴ. 시장성 및 판매전황1. 동 업계 및 경쟁회사 현황일단 소비자가 누구인지 목표시장부터 확인을 해보자면 동구 지역에 사는 주민을 대상으로 한다. 동구는 현대에 의해 활성화된 지역이다. 그로인해 대부분의 가정의 예를 보면 남편은 출근을 하고 아내는 자녀를 유치원 또는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한 후 개인 시간을 보내게 된다.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으며 학원을 다니거나 회관이나 도서관에서 하는 교실에 참여하거나 혹은 백화점에 쇼핑하러 간다. 집안일을 마치고 백화점에 쇼핑을 하거나 하기 전이 대략 점심시간이므로 하루 중 그 시간대가 매출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주말에는 가족 단위로 외식을 하기 때문에 주말에는 저녁에 매출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침에는 바로 앞에 있는 현대중공업에 출근하는 회사원을 대상으로 샌드위치와 주스를 판매할 예정이고 점심시간에는 메인 메뉴인 비빔밥과 샐러드를 판매할 생각이다.새싹 음식점은 아예 없어서 비교 대상이 없다. 그래서 일반 비빔밥을 파는 음식점을 조사해 보았다. 입지 선정한 장소 근처에 새싹음식점이 아닌 일반 비빔밥을 판매하는 음식점은 한 곳밖에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판매하는 음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경쟁이 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된다. 다만 같은 음식점으로써 소비자가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데에서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지금 나온 비빔밥 음식점은 내가 가본 곳이다. 생각보다 상당히 외진 곳에 있으며 정말 아는 사람 아니면 가지 못하는 곳이다. 맛도 그리 뛰어난 편도 아니었고 위생도 깨끗한 편이 아니었으며 서비스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된다.
中國 遊戱 와 日本의 스모(すもぅ, 相撲)1. 중국의 유희《투호(投壺)》길례(吉禮)에 속한 행사로 화살을 병 속에 던져 넣는 형식이며 한대(漢代)부터 시작되었다. 투호는 주인이 객과 더불어 연음(燕飮)하며 재예(才藝)를 겨루고 강론하는 예라 한다.『예기(禮記)』제40편에 투호가 다루어져 있을 만큼 의례가 다양하고 엄격한 것으로 보인다.1. 투호의 예절 - 주인과 객이 연회한 후 주인이 투호에 필요한 살과 중, 호를 가지고 일정한 장소에 준비해 두는데, 화살은 주인이 중은 사사(司射)가 받든다. 주인은 '제게 있는 화살과 병으로써 즐겁게 해드리고자 하니 함께 즐깁시다' 라고 권하는데 이때 손님은 ‘연회에서 좋은 술과 안주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또 즐겁게 해주시겠다고 하시니 사양 하겠습니다’ 하고 겸손함을 표한다. 주인은 다시 ‘구부러진 화살과 못생긴 병이어서 사양하실 것이 못되오니 청합니다’ 라고 권하고 손님은 사양하며 재차 권하면 손님은 ‘제가 굳이 사양해도 승낙 받지 못하오니 공경하여 따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승낙한다.2. 투호를 시작하는 예절 - 손님이 서계위에서 북면하고 두 번 절하며 화살을 받으려고 하면 주인이 조금 비켜서면서 절을 사양한다 말한다. 그 후 빈과 주인이 앞으로 나아가 두 기둥사이로 가서 남면하고 주인이 동계 위에서 절하며 화살을 보내면 객이 조금 비켜서면서 절을 사양한다고 말한다. 절하고 화살을 받으면 물러나 제 위치로 돌아와서 자리에 앉는다. 사사가 병을 놓는데 병과 손님의 자리 거리는 화살 2개 반 정도이며 중을 설치하고 동면하여 8개의 산가지를 들고 일어난다. 그리고 손님에게 ‘순투는 넣고 비투는 계산하지 말며, 이긴 사람은 진 사람에게 술을 마시게 합니다.’ 라고 하면서 투호 할 것을 알린다.3.투호를 마친 후- 악공에게 음악을 연주하게하고 화살이 갖추어지면 좌우사람들에게 번갈아 던질 것을 청하는데 손님 팀은 오른쪽에 주인 팀은 왼쪽에 자리 잡는다. 들어간 것이 있으면 사사가 앉아서 산가지를 놓으며 화살 던지기가 끝나면 산가하여 그 사실(史實)을 적은 문헌은 극히 희소하다.중국 역시 단편적인 고기서(古棋書)는 많이 있으나 역대의 사실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서지(書誌)는 극히 드물다. 바둑에 관한 중국의 역대의 사실을 발췌, 수록한 '역조혁사집략(歷朝奕事輯略)'이나 일본의 사실을 모아 적은 '좌은담총(坐隱談叢)' 정도가 있을 뿐이고 일찍부터 선기국(善棋國)으로 알려져 왔던 우리 나라의 바둑 사실(史實)은 겨우 몇 줄씩 기록된 단편적인 것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이니 한중일 3국의 바둑역사를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집대성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쯤일는지 요원하기만 하다.1.요순 창시설-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고대 중국의 요(堯)·순(舜) 임금이 어리석은 아들 단주(丹朱)와 상균(商均)을 깨우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다.중국의 고전 《박물지(博物誌)》에 실린 '요조위기 단주선지(堯造圍棋 丹朱善之)'라는 문구에 따르면 기원전 2300년전 요왕이 아들을 위해 바둑을 발명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그런가 하면 《설문(說文)》에는 기원전 2200년경 순왕이 우매한 아들에게 바둑을 만들어 가르쳤다고 밝히고 있으며, 《중흥서(中興書)》에도 '요순이교우자야(堯舜以敎愚子也)'라는 글이 전해지고 있다.그러나 이렇듯 내용 자체가 다분히 전설적인데다 구체적이지 못해서 이 '요순창시설'의 사실적 근거가 확실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실 '어리석은 아들'이라면 바둑을 배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모순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2.천체관측설-농경(農耕)사회였던 고대에는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우주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연구하는 도구로서 바둑이 발명되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특히 고대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한 황하유역에는 해마다 홍수가 범람하여 선사시대 때부터 자연스럽게 천문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당시 하늘의 별자리를 표시하던 도구가 발전되어 오늘날의 바둑이 되었다는 설이 과학적인 설득력을 얻고 있다.3.우 칭위엔설-현대바둑의 틀과러 올라감·아이누 문화(조몬문화의 성격이 짙은)- 스모와 같은 일대일로 벌이는 경기 는 남아 있지 않음-부락간의 다툼 발생시 해결방법으로서 「우카라」와 대표자를 내세워 문제가 되는 일 의논-아이누 語의 辭書에 스모에는 神의 시체란 의미·산인전설- 柳田國男의 「山의 人生」스모를 좋아한 「山人」의 이야기·야요이 시대에는 조몬시대의 스모와 융합하여 일본 독자의 스모가 탄생-노미노스쿠네와 타미마노케하야의 이야기, 노미노스쿠네는 古墳(고분)의 埴 輪(식륜;하니와)를 만드는 土師氏가문 (야요이族), 타미마토케하야는 조몬 人→야요이 人의 조몬 人에 대한 승리?·조몬 시대 人은 신성한 공간을 圓, 반면 야요이 人은 사각의 공간(도작농업의 논의모양반영-능등반도의 마와끼에서의 조몬유적: 여러겹의 원형의 이루는 株跡(주적)이 존재이 신성한 원형 공간에서 다양한 神事가 벌어짐, 현재 매년 가을에 성 대한 神事스모가 벌어짐.(4)『고사기(古事記,712)』-촌계족이 출운족을 깨뜨리고 국난을 해결한 신화→지금의 시마네 지방에서‘다케미카즈치신’과 다케미나카타신’이 벌인 힘겨루기 이야기-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 神앞에서 스모를 奉納하는 것으로, 神意 (신의)의 소재를 묻는다는 의미(5)『일본서기(日本書紀,720)』-垂仁천황 7년 7월 7일 노미노스쿠네와 다이마노케하 야의 격투에 관한 기사→7월은 수확을 대비하는 시기, 풍작을 기구하는 神事의 하나로써 스 모를 벌림, 스모를 신에게 봉납하는 것으로 오곡풍양기구, 결국 고대 스모의 배경에는 ‘水田稻作農耕’(수전도작농경)-여성스모: 웅략 천황이 후궁의 관녀인 우내메들에게 나체로 스 모를 행하게 함, 지금의 스모와 방법이 유사- 일본의 스모에 관한 가장 오래 된 史實은 한국 역사와 관련→서기 642년 일본왕이 백제에서 온 사신을 환대하기 위해 병 사들 가운데 장사를 뽑아 궁궐 안에서 스모를 공연하게 함(6) ·『일본서기』垂人천황 7월 7일-野見宿 와 當麻蹴速이 천황 앞에서 스모를 하였다는 기록그들의 직업이 장례식에 관계된 직업집단 가문·『일본서기』 마을에서 민중들에게 神士스모거행-오곡풍작을 기 구하여 신에게 봉납한 고대의 스모의 형태ⅲ)전국시대- ·영주들이 스모를 장려하여 무술로서 유행·오다 노부나가-1570년~1581 아쯔시성에서 여러 차례 조란스모를 개최→쇼군이 친히 관람한 스모를 조란스모라 한다.이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확인 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의도 ·전국 말기, 스모를 전업으로 하는 직업적 집단이 등장(3)江戶(에도시대)- ·오늘날의 스모의 原型·경기 진행 제한에 의한 실전적 기능 약화→ 대중적인 오락으로 변화·간진스모와 투전을 위한 스모가 성행-유형투쟁으로 인해 몇 차 례의 금지령이 내려기기도.·간진스모- 간진이란 불교용어로서, 간진스모란 신사나 절의 건 립이나 수리에 필요한 자금염출하기 위해서 여는 행사-일자리를 잃은 많은 무사들을 중심으로 직업적인 스모 집단 발생, 이들은 오사카, 교토, 에도 등지에 간진스모 란 간판 걸고 활동-기록에 의하면, 1645년 교토에서 관청의 허가를 받고 행 했던 간진스모가 최초의 것.-이때의 스모는 원형의 인간 울타리를 만들어서 경기 진행.경계는 처음엔 4개의 기둥을 세우고 끈으로 구분, 후 끈 대신에 땅을 새기는 표시가 사용되었고 문자로 ‘토표’라 고함, 4각을 둥글게 돌린 것도 에도 시대부터,-1750년을 전후 에도(도쿄)가 주도권을 잡음: 스모會所와 도시요리 정비된 시기-차츰 권진스모는 리키시 자신들의 생계수단으로서 상업성 을 띤 흥행물로 변화→오늘날의 ‘대스모’의 바탕·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회적인 성격을 띤 여자스모도 자주 행해짐(4)明治시대-·스모의 침체기·영주의 비호아래 활동하던 리키시들에 많은 타격을 줌·「스모란 벌거숭이로 사람들 앞에서 추는 미개한 춤」이라 비하됨· 1871, 단발령이 내려짐-스모 애호가인 몇 몇 고관들에 의해 리키시 는 단발령의 예외자로 되어 전통적인 머리 모양 유지(5)1889년 천황이 스모를 직접 관람한 것을 계기로 회복의 기미가 싹틈1909년 스모 전용 경기장이 건립되고, 매스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스모는 대중적 를 제사하기 위한 儀式이지만, 그 몸짓에는 死者가 나온 것은 수호신이 멍청히 했기 때문이다, 제발 수호신이시여 정신차려서 인 간을 지켜주시오, 라는 염원이 들어있다고 생각스모의 사고도 같은 의미: 力士(りきし, 리키시)는 四股를 밟는 것으로, 신의 주의를 불러깨워 자신들을 지켜주도록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청결감으로 가득한 단순함 속에 무한의 깊음, 무한의 변화(짧은 시간동안 역사가 풀어내 는 단순하지만 변화가 많은 기술들)3) 관능성(色氣)- 일본문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德의 하나ⅰ) 나체의 스포츠- 色氣(성적 매력)의 격투기→이처럼 스모는 간소성·청결성, 그리고 관능성으로 가득한 것이며, 이 세 가지야말로 실은 일본문화의 중심에 있는 美意識인 것이다.4. 스모의 제례적 의식 - 예의로 시작하여 예의로 끝나는 스포츠1) 土俵祭り(どひょうまつり, 도효마쯔리)本場所(ほんばしょ,혼바쇼)경기가 열릴 때마다 土俵를 새로 만든다. 이렇게 本場所(ほんばしょ,혼바쇼)를 위한 土俵, 지붕등을 새로 만들고 나면 스모 관계자(스모 협회 이사장, 심판위원 등)가 모여서 이 土俵위에서 열리는 경기일정이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신에게 비는 제사를 지낸다. 이를 土俵祭り(どひょうまつり, 도효마쯔리)라 한다.土俵祭り(どひょうまつり, 도효마쯔리)는 시합이 시작되기 전날 立行司 (たてぎょうじ, 다테교지: 심판의 우두머리)와 脇行司(わきぎょうじ, 와키교지) 두사람이 土俵로 올라가서 일곱개의 祭具를 꽂는다. 제문을 읽고, 네귀퉁이 四神에게 술을 바친다. 土俵의 한가운데 바닥에 사방이 15Cm되는 구멍을 파고 제물( 밤, 씻은 쌀, 다시마, 마른 오징어, 소금, 비자나무 열매)을 파묻어 둔다. 제사를 지낸 술로 음복을 하고, 呼び出し(よびだし, 요비다시)가 북을 치면서 土俵를 세 바퀴 돌면 土俵祭り는 끝이 난다.2) 土俵入り(どひょういり, 도효이리)각 날 幕內시합의 시작 직전에 土俵入り라는 의식이 행해진다. '도효이리'는 선수들이 씨름판에 등장하는 의식이다. '토(土)'는 시합 장소를, '표( 한다.
장례와 제사머리말인간의 일대기를 通過儀禮로 본다면 冠·婚·喪·祭가 있다. 이 중 冠·婚은 삶의 이야기인데 반하여 喪·祭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우리의 고대인들은 이 喪·祭에 관한 문제도 삶에 관한 문제만큼 중시했다. 이런 喪·祭가 가지는 의미와 시대에 따른 변천과정 그리고 喪·祭의 절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Ⅰ.장례(葬禮)1.장례(葬禮)의 의미장례(葬禮)란 좁은 의미로는 장례식을 뜻하는 것이나, 넓은 의미로 장송의례의 약칭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장례란 장례식뿐만 아니라 고인의 명복을 비는 절차로 임종으로부터 사후의 상에 이르기까지의 사자를 장사지내고 애도하기 위한 일련의 의례를 표하는 것이다.장례의 의미는 사회의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규범과 종교의 형태에 따라서 사회적 신분에 맞는 예절로서 산 자가 죽은 자를 위하여 행하는 의식절차이지만 동서고금을 통하여 장례는 고인을 위한 형식적 의식절차이며 실제적으로는 산 자가 산 자를 위해서 행하는 의례절차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의례절차를 통하여 죽음과 삶의 의미를 깨닫고 가족과 구성원이 서로의 소속감과 일체감을 확인하며 인간에게 주어진 죽음의 보편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행위로서 가족과 구성원의 위로 속에서 일상생활 속으로 돌아가는 산 자의 의식행위라고 할 수 있다.2.장례(葬禮)의 역사1)원시 및 고대의 장례원시시대에 주검을 처리하는 장례풍습은 온 같은 집단내의 한 성원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현상으로 여겨 혼례풍습보다 훨씬 격식화되었다. 일반적으로 모계씨족사회의 매장풍습에서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자식들 혹은 형제자매들의 합장이 기본이였으며 형제합장, 모자합장이 많았고 일정한 무덤구획도 있었으며 씨족무덤도 새롭게 나타난다.원시시대와 고대에 시체는 평신장(平身葬)이라는 바로 눕히기와 함께 굴신장(屈身葬)이라하여 손발을 구부려 매장하는 것이 많으며 단순한 장신구와 간단한 노동도구를 함께 무덤에 넣어주었다.청동기시대의 무덤의 형식들은 다양해지고 共同墓地, 夫婦合葬, 家族合葬과 같은 부계사회의 특징적인 寺遺骨安置→埋葬 의 과정을 가지게 된다.고려시대의 喪·祭가 전적으로 불교식이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력도 고려 말에 이르게 되면 약간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고려 말에 주자학과 유교적인 가례가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그 영향으로 화장풍습을 반대하고 시체의 매장과 제사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불교세력의 쇠진과 동시에 유교의 영향력이 그 만큼 세졌다는 걸 말해준다. 이후 화장법은 점차 사라지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중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다.고려시대의 喪服制는 五服制度였는데 이는 죽은 사람과의 촌수의 멀고 가까운 것에 따라 상복을 입는 가족 친척의 범위와 기간을 5가지 등급으로 나눈 제도이다. 그것이 참최, 재최, 대공, 소공, 시마였다. 5복제는 등급에 따라 상복의 질과 상복기간은 달랐다. 고려 5복제도에서 특이한 것은 아들과 딸 그리고 형제 자매와 같이 계보상 같은 위치에 있는 친족은 남녀의 구별이 없이 같은 복을 입게 되어 있는 것인데, 이것은 남존여비, 장자우대를 절대시하는 유교도덕이 크게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당시 균등히 재산을 상속하는 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려 말에 주자학 신봉자들이 三年喪을 적극 내세웠으며 마침내 1357년에 이색 등의 강력한 주장으로 3년상을 부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도 정세의 변화로 3년상이 폐지되기도 하고 다시 시행되기도 하는 속에서 공양왕(1389∼1392)때 3년상을 《천하의 통상》으로 선포하고 3년상 안의 재취와 향음을 금지하도록 하였다. 이 풍습이 굳어지게 된 것은 16세기 이후였다.4)조선시대고려 말 유교성리학 세력들의 적극적인 주장으로 유교가 사회생활에 깊숙이 침투되기 시작하였으며 관혼상제를 『朱子家禮』규범대로 진행 할 것이 강요되었다. 당시의 조선은 朱子家禮의 禮法을 따르도록 지시하고 법제화하였다. 사대부들 속에서 4품 이상은 3개월, 5품 이하 관리는 달을 건너 장사지내도록 하였으며 관리들의 분묘의 규모도 법규를 정하고 그 경내에서게 괸다. 시체가 굳기 전에 손발을 고루 주물러 편 다음 남자는 왼손을 위로,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두 손을 한데 모아 백질 묶고, 발도 가지런히 하여 백지로 묶는다. 이는 사지를 뒤틀리지 않고 반듯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 절차는 아주 정성껏 해야 한다. 만일 소홀히 하면 수족이 오그라들어 펴지지 않으므로 염습(殮襲)할 때 큰 걱정이 생기게 된다. 백지로 얼굴을 덮은 후 홑이불로 몸을 덮고 널빤지를 준비했으면 그걸로 시상(屍床)을 마련, 그곳에 옮겨 모신 뒤 병풍으로 가라고 그 앞에 고인의 사진을 모시어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운다.4고복(皐復): 고복은 초혼(招魂)이라고도 하며 사람이 죽으면 혼이 몸에서 떠난다하여 그 혼백을 다시 불러 몸에 붙게 한다는 뜻의 절차로서 예문(禮文)에는 「복(復)」이라고 한다. 반드시 시체를 보지 않은 사람이 부른다. 남자의 초상에는 남자가, 여자의 초상에는 여자가 죽은 사람의 상의(上衣)를 가지고 동쪽 지붕으로 올라가, 왼손으로는 옷의 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의 허리를 잡고서 북쪽을 향해 옷을 휘두르면서, 먼저 죽은 사람의 주소와 성명을 왼 다음에 "복(復)!복!복!"하고 세 번 부른다. 이는 죽는 사람의 혼(魂)이 북쪽 하늘로 가고 있다고 하여 혼이 다시 돌아오도록 부르는 것이니, 이렇게 해도 살아나지 않아야 비로소 죽은 것으로 인정하고 곡(哭)을 하는 것이라 했다. 이때 죽은 사람의 벼슬이 있으면 모관모공(某官某公)이라고 벼슬 이름을 부르고, 벼슬이 없으면 학생모공(學生某公)이라 한다.5발상(發喪): 발상이란 초상 난 것을 발표하는 것을 말한다.6전(奠): 전이란 고인을 생시와 똑같아 섬긴다는 의미에서 제물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임종에서부터 이 절차까지를 초종(初終)이라 한다.2)습(襲)습은 시체를 닦고 수의(壽衣)를 입힌 뒤 염포(殮布)로 묶는 절차로서 염습(殮襲) 또는 습렴(襲殮)이라 한다. 고례(古禮)에는 소렴(小殮)과 대렴(大斂)을 나누어 행하였다.3)소렴(小殮)소렴은 시신에게 수의를 입히는 절차로써 사망한지 2일째를 지낸다. 강일이란 갑(甲) 병(丙) 무(戊) 경(庚) 임(壬)에 해당하는 날이다. 제사 지내는 절차는 초우 재우 때와 마찬가지이다.11)졸곡(卒哭)졸곡이란 삼우제가 지난 후 석 달만에 강일(剛日)을 택해서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제사 지내는 절차는 삼우 때와 다를 것이 없고, 다만 이로부터는 비록 슬픈 마음이 들어도 무시로 곡하지 않고 조석곡(朝夕哭)만 한다.12)부제( 祭)부제란 새 신주를 그의 조상 신주 곁에 모실 때 지내는 제사이다. 이 제사는 유일 강일을 가릴 것 없이 졸곡을 지낸 다음날 지내는 것이다. 이 제사는 졸곡과 같이 차리지만 준비한 음식은 셋으로 나누어 놓고 어머니의 초상에는 둘로 나눈다. 다만 사당에서 지내는 것만이 다르다. 그러나 사당이 없거나 비좁으면 마루에서 지내도 좋을 것이다.13)소상(小祥)소상은 돌아가신 지 만1년이 되는 날에 지내는 제사이다. 윤달에 상관없이 13개월만에 지낸다. 옛날에는 날을 받아서 지냈으나 요즘은 첫 기일(忌日)에 지낸다.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면 강신(降神)하기 전에 모든 복인이 연복(練服)으로 갈아입고 들어가 곡하는데 강신(降神)에서 사신(辭神)까지의 의식 절차는 역시 졸곡 때와 같다.14)대상(大祥)대상은 돌아가신 지 만 2년이 지난 기일(忌日)에 올리는 제사이다. 대상을 마치면 상복과 상장(喪杖) 등은 불에 사르고 영좌를 거두고 혼백을 묘소 근처에 안매(安埋:매장)하며 탈상을 한다.15)담제( 祭)담제는 초상으로부터 27개월만에, 즉 대상으로부터 두 달째에 지내는 제사로서 복을 다 벗는 제사이다. 그래서 담제를 탈상(脫喪)이라 한다. 정일(丁日) 또는 해일(亥日)에 지내는 제사이니, 삼년상(三年喪)을 무사히 마치므로 자손 된 마음이 담담하고 편하다는 뜻이다.16)길제(吉祭)담제가 끝난 다음 달의 정일이나 해일에 사당의 신주를 고쳐 쓰기 위해 지내는 제사이다. 담제를 지낸 이튿날 날짜를 정해서 지내는데, 담제를 지낸 달 중에서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로 정한다.Ⅱ.제사(祭祀)1.제사(祭祀)의 의미제몽주(圃隱 鄭夢周)가 제정한 『제례규정』에 의하면 3품관 이상은 증조부모까지 3대를 제사 지내고, 6품관 이상은 조부모까지 2대를 지내며, 7품관 이하 서민들은 부모에게만 지낸다 고 했다. 조선조 『經國大典』에는 3춤관 이상은 고조부모까지 4대를 제사 지내고, 6품관 이상은 증조부모까지 3대, 7품관 이하 선비들은 조부모까지 2대, 서민들은 부모에게만 지낸다 고 했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신분제도가 철폐되면서 효도하는 데에 신분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고 하여 누구든지 고조부모까지 4대봉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3.제사(祭祀)의 종류와 절차(1)제사의 종류1)사시제(四時祭)사시제는 보통 시제(時祭)라고 부르는 것으로 사계절의 가운데 달 음력 2월, 5월, 8월, 11월에 고조부모 이하의 조상들을 함께 제사하던 합동 제사의 하나로 일정한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점을 처서 택일을 한다. 시제는 고전예법에서 정제(正祭)라고 불리는 것으로 제사의 으뜸이며 표상이고, 고대 중국에서는 제사라고 하면 그것은 곧 시제를 말하는 것이었다. 또 그것은 일종의 축제와도 같은 것으로서 이날의 제사를 마친 후에 친지와 이웃을 초청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제사는 길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부터 기제(忌祭)가 중시되면서 시제(時祭)에 대한 인식은 점차 퇴색되어 간 듯 하다. 그리고 고조부모 이하 4대조의 기일제(忌日祭)를 행하게 되면서 각종 명절의 차례와 합해져 일년에 행하는 제사의 횟수가 너무 많아지게 되면서 현재는 보통 1년에 한번만 행하고 있다.2)선조제사『가례』의 선조에 대한 제사는 초조(初祖: 시조)와 그 이후 5대조까지 여러 선조에 대한 제사로 나뉜다. 전자는 시조의 직계 종손만이 행하는 것으로 매년 동지에 거행하고 후자에 대한 제사는 역시 그 선조의 직계 종손만이 제사하는 것으로 매년 입춘에 거행한다. 시조는 가문과 종족을 있게 한 시초이며 동지는 음기 가운데 양기가 처음으로 생겨나는 때이므로 이때 초조를 제사한다. 입춘은 만물이.
박정희정권의 경제개발을 어떻게 볼것인가?머릿말약 18년간이나 지속된 박정희정권은 민주주의를 극히 제한한 악독한 군사정권이었고 반유신운동에 대한 고문 등을 통한 비인간적인 압제에도 불구하고 추앙 받는 역대 대통령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현재 그의 기념관을 건립하느냐 마느냐가 국영방속국의 시사 토론의 주제로 등장할 정도로 그에 대한 찬사를 보내는 이들도 존재할 정도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동안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이 가장 경제적으로 발전을 하게 된 시기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1950년대 말에서부터 70년대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티비 프로에서 경제발전 하면 생각나는 대통령에 대한 대답에 대부분의 사람이 박정희 를 대답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실제로 그 시기의 한국 경제는 한강의 기적 이라 일컬을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했다. 물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과오도 있지만, 경제를 발전시켜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공적은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김영삼 문민정권이 실정을 거듭하자 박정희 찬양론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많이 발생했다. 이런 점에서 과연 박정희정권기의 경제발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할까? 또한 엄청난 속도의 경제발전의 결과를 한 사람의 집권자의 공으로만 돌려져야 할까? 1997년 말 우리 경제는 결국 IMF라는 경제적 위기에 빠졌었고 그 여파는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제 2의 IMF가 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이것이 김영삼정권의 경제정책 실패가 직접적 원인이긴 하지만 박정희정권의 경제정책이 그 근본적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는 박정희정권의 경제건설의 정책방법과 그 뒤에 나타난 한계점에 대해 알아보고 박정희정권의 경제개발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박정희 군사정권 이전의 이승만정권 시기의 경제는 자본과 원료 면의 대외의존성이 높은 소비재 중심의 원조경제체제 였지만 4.19혁명과 5.16쿠데타를 거치면서 등장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외국자본 도입으로 이루어진 외자경제체제 였다고 할 수 있다. 이승만정권 때까지의 원조경제체제가 박정희정권의 외자경제체제로 바뀐 것은 1962년에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시작되면서였고 그것이 본격화 한 것은 1965년 한일협정체결 이후부터였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그 소요자본의 대부분을 외국자본에 의존했다. 따라서 재정차관은 물론 상업차관 도입과 외국인 투자, 유상 기술도입 등이 일제히 실시되었다. 그러나 그 초기에는 상업차관이나 외국인 직접투자자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아서 재정차관이 중점적으로 도입되다가 한일협정이 체결되면서 상업차관과 외국인 직접투자 규모가 급격히 확대되었다. 한일협정 체결은 외자경제체제 전개과정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 상업차관 등 일본자본이 적극적으로 도입되었다. 과거 식민 지배국이었던 일본의 자본이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한 지 20년 만에 다시 한반도에 침투하는 길을 결어놓은 것이다. 이 협정으로 문호가 개방된 상업차관으로 부실기업이 속출하였고 외국인 직접투자 우선정책으로 전환하여 마산·이리 등지에 수출자유지역을 설치하고 외국 기업체가 입주하도록 유도하였지만 1973년의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직접투자가 줄어 국제금융기구로부터의 차입을 비롯한 재정차관이 증가했다.또한 박정희정권 아래서 유지된 외자경제체제는 외채도입과 수출신장을 바탕으로 공업부문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종래의 소비재 생산 중심의 고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문제, 공업의 대외 의존도를 줄이는 문제, 지역적 편중성 및 수출공업과 내수공업 사이의 격차를 줄여 그 구조상의 이중성을 해소하는 문제, 중소기업의 희생 위에서 심화되는 대기업의 독점성을 방지하는 문제, 노동의 일방적 희생 위에서 실현된 수출지향의 공업화를 바로잡는 문제 등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외국자본에 의존하는 외자경제체제의 문제점은 결국 이후 한국을 만성적 무역적자국이자 외채과잉국가로 만들었고 이 같은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결국 1990년대 들어 이른바 IMF라는 경제적 위기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수출이 신장된 한편 농촌경제가 크게 변화했다. 1960년대 이후의 수출제일주의, 급격한 공업화, 고도의 경제성장은 우선 국민 총생산에서 농수산업의 비중이 현저하게 감소했고, 농촌인구 구성비도 크게 떨어졌다. 그리고 농가 계층구조 면에서 영세농층이 큰폭으로 떨어져나가고 중농층이 상당이 증가했다. 이처럼 영세농가의 감소율이 높은 것은 경제성장의 결과 농가와 비농가 사이의 소득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비농업부문의 고용기회가 확대되면서 나타난 이농현상 때문이었다. 특히 한국자본주의의 고도성장에 필수적인 저임금 유지를 위해 저농산물가격 정책과 양곡 수입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농가소득 수준은 계속 악화되었고 도농간의 소득격차는 확대되었다. 또한 이시기 도시화 및 공업화가 급격히 진행되었음에도 부구하고 농업부문의 토지조건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도시화와 공업화에 따른 공장 및 택지와 도로용지의 수요 증가로 농지가 잠식되었고 반대로 농지의 개간은 저조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농업의 고질적 취약점을 박정희는 도시자본의 농업부문 유치와 기계화를 통한 대규모 농업경영으로 농업의 자본주의화를 시도한 농업정책으로 농업생산력을 향상시키고자했다. 하지만 그 결과 농촌의 황폐화를 가져와 이후 한국은 만성적 식량수입국이 되었다.박정희정권의 외자경제체제는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면서도 제1차 5개년 경제계획 후 19년간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박정희정권이 무너지고 1997년 말 한국경제는 IMF라는 경제위기에 빠지면서 IMF관리체제 로 들어가고 말았다. 물론 IMF는 1990년대의 김영삼정권의 경제적 실책이 원인이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이승만정권부터 시작된 재벌중심 경제체제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박정희정권 이래 계속되어온 재벌중심 한국경제의 구조적 모순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작은 이승만정권부터였지만 그것이 본격화한 것은 역시 박정희정권 때부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지적한 문제점들이 쌓이고 싸여 20여년이 지난 1997년에 와서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재벌중심 경제체제는 엄청난 외채를 끌어들임으로써 우리 경제의 대외종속성을 심화시키고 국가의 경제력 전체를 몇몇 재벌에 집중시킴으로써 경제적 민주주의에 크게 역행했으며 한편으로는 농업을 철저히 희생시켜 만성적 식량수입국으로 만들고 소득분배구조를 약화시켜 국내 각 계층간의 격심한 갈등을 빚어냈다. 1960년대부터 7,80년대를 통해 축적된 이 같은 구조적 결함이 결국 1990년대에 폭발하여 이러한 구조적 결함을 축적하고 조성한 것 자체에는 별 책임이 없는 엄청난 수의 직업인들을 실업자들로 만들어 자살률이 급등하는 등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