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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가부채에 대한 마을사회의 대응
    농가부채에 대한 마을사회의 대응1. 머리말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업을 중시한 나라였다. 농업은 가장 기본적인 산업이며, 생계유지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살펴보아도 농업은 그 나라를 지탱하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농업이 사회적으로 경시되기 시작한 것은 공업화와 도시화가 발전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공업화와 도시화가 발전할수록 도시는 점점 근대화 되어갔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살펴보면, 도시와 농촌간의 심각한 격차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여기서 파생된 것 중에 농촌문제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농민이 사는 곳이 농촌이며, 농민이 종사하고 있는 일을 농업이라고 하며, 농업을 전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을 농민이라고 한다. 농촌문제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부터 발생하기 시작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촌문제는 왜 발생하였을까? 우리나라는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공업화와 도시화가 발달되었다. 또한 새마을운동을 추진하여 농촌 잘 살리기 운동을 추진하기도 하였지만, 공업화와 도시화의 급격한 성장속도에 비해 농촌진흥사업은 둔화된 성장을 보였다. 박정희 대통령 때의 경제성장(공업화)은 위에서부터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부의 주도 하에 경제성장 및 발전이 이루어졌고, 수도권에 집중된 발전이었다. 공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수도권은 점점 비대해지는 반면, 농촌은 점점 궁핍하게 되었다. 공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농촌과 도시의 상대적 임금격차가 발생하였으며, 농민은 도시에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에 삶의 터전인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또한 농촌에 화폐경제가 도입되면서 생산성의 차이가 발생하였다. 이런 생산성의 차이에서 수익이 낮은 소농인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게 되었다. 농촌외부와 내부의 영향으로 인해 더 이상 설 곳이 없었던 농민들은 도시로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된 것이다. 도시화와 공업화, 화폐경제 등의 여러 가 책임지고 추진했던 그는 많은 고민과 갈등 끝에 제초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이번 일은 정부의 무분별한 신농정 사업의 대표적 실패사례인 유기질 비료 영농법인 사업과 그로 인한 천문학적 숫자의 농가부채가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한 양심적인 농민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것이며 그의 재산과 가정 뿐 아니라 함께 도왔던 농민들을 연대파산으로 이어지게 만든 것이다. 이는 정부농정의 실패가 개인뿐 아니라 한 가정, 농가, 농촌 전체를 파산으로 몰고간다는 것을 똑똑히 증명한 사례이다.[사례 4]지난 10월 24일 연대보증 압박에 시달리다 죽음을 선택한 이재선(충주 살미면/65세) 농민은 9년전 농협 양계사료대 1,700여만원에 대한 연대보증을 섰다. 주 채무자가 이를 갚지 못해 연체이자가 3천만원을 넘었으며 과정에서 원 채무자는 사망하고, 함께 보증을 섰던 다른 농민도 작년에 사망하였다.물품외상보증기간 3년도 훨씬 지난 올해, 농협이사회를 통과해 위탁을 받은 고려신용정보회사측으로부터 살미농협 채무자 46명에게 원금상환의 협박이 들어왔고, 압박과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집뒤 무덤가에서 그라목손(제초제)을 마신 것이다. 이재선 회원이 남기고 간 9년전 채무는 또 누구에게 전가될 것인지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는 현실이다.하여 충주에서는 현재 살미면 향우회와 충주농민회가 연대하여 진상규명투쟁에 들어간다.11월 13일 충주 이원성의원이 충주 살미면으로 의정보고를 오는 시점을 기해, 진상규명과 살미농협조합장 등 임원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상정하고 있는 상황이다.[사례 5]지난 5일 오후 6시50분쯤 옥천군 안내면 윤춘실씨(54) 집 안방에서 윤씨와 윤씨의 어머니 박모씨(89)가 함께 극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윤씨 모자는 최근 포도값 하락 등으로 농협으로부터 대출받은 2천7백여만원을 상환치 못해 고민하다가 삶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사례6]충북에서 다섯 번째로 농민이 자살하였습니다. 나이가 59세인 안완식(충주 소태면 오량마을)씨는 농민회 초기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근래에 와서는 공업화의 여파로 인한 환경파괴로 기상마저 불안정하여 갈수록 제대로 수확하기도 힘들어지고 다음해 농사를 지을 돈(재생산비) 조차 마련을 못하여 봄에는 빚을 얻을 수밖에 없다. 생산성부채가 70%정도로 농가부채의 대부분은 농가의 경제활동에 기인하는 것입니다.과거정부의 농정실패로 인해 누적되어온 농가부채는 이미 IMF 이전에 농민들이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농가소득지지 정책이 배제된 규모화 정책에 의해 52조농업투융자사업 중 농업인에게 직접 투입된 13조원에서 보조액 2조5천억원을 제외한 10조9천억원의 융자금이 그대로 농가부채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작물경작체계, 적정 생산규모 등을 무시한 규모화?가격경쟁력 중심의 무리한 정책사업은 작목집중?가격불안정을 유발하여 농가소득의 안정을 위협했다. 또한 농업수익성을 상회하는 정책자금 금리로는 정상적인 농업경영이 불가능하다. 이에 98년 농업자본수익율은 정책금리 수준(5%)에도 못 미치는 3.56%에 머물기도 했다.5) IMF사태로 인한 부채 급증부채 원금 및 이자 상환 연기에 따른 농가부담 증가로 농가소득 및 농가경제 잉여가 감소하여 부채상환이 연기(이자분까지 연기)되었다.그리고, 소득이 감소하였으며 경영비의 증가하였다. IMF에 의한 농업경영비 증가 및 사료값 인상요인으로 인한 소값 하락 등으로 소득이 감소하여 채소, 화훼, 축산, 특작 농가의 경영이 악화된 것이다.또한 도시농가 부채 농촌으로 전가되었다. 친인척 등에게 명의만 대여해준 제3자 채무액이 IMF 영향으로 상환이 어려워져 표본농가의 부채로 전가되는 등 제3자 채무액이 크게 감소하였다. 제3자 채무액을 살펴보면 97년 401만9천원에서 98년에는 222만1천원으로 179만8천원, 약44.7%가 감소한 것이다. 98년~99년 농가부채 대책으로 상환 연기된 정책자금 및 상호금융대출금이 가중되어 2000년 이후 부채 상환 압력이 더욱 거세졌다.6) 상호보증연대의 악순환빚이 빚을 낳고 있는 것이 농가부채의 현실이다. 지난 10년동안 농춘 학(쌍호분회) 054) 862-1328부 회 장김 병 원(풍양분회) 054) 653-8384이 상 식(장수분회) 054) 672-6837박 용 범(솔티-사벌분회) 054) 541-8806상임위원진 상 국생명의터 농촌마을공동체 위원장(쌍호분회) 054) 862-1575이 태 식우리종자보존위원장(안동-온혜분회) 054) 856-1171제 정 이생활물자(여성)위원장(봉강분회) 054)이 상 식농민조합 설립 연구 검토위원장(부회장) 054) 672-6837정 한 길전국 부회장(남부분회) 054) 932-5787감 사최 병 수(한울분회) 054) 533-9244김 덕 기(안동-온혜분회) 054) 853-9054오 덕 훈(봉강분회) 054) 532-7306총 무강 성 중(안동-온혜분회)조직부장권 오 량(안동-온혜분회)물류간사이 면 봉회계간사김 호 순지도신부김 영 식요셉(구담성당) 054) 652-3334지도신부단김 재 문이냐시오(총대리, 의성성당)조 창 래빈첸시오(목성동성당)김 학 록안셀모(사목국장)안 상 기미카엘(남성동성당)김 시 영베드로(사목국차장)[표3-1] 한국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임원진(1) 안동가농의 출범)안동가농이 처음으로 출범한 1978년은 물가폭등과 외국 농축산물의 수입확대, 그리고 주택개량 등의 온갖 전시행정과 증산강제 등으로 농가부채가 급증하였던 때였다. 여기에다 혹심한 가뭄까지 겹쳐 농가경제가 극도로 악화되었던 상황 속에서 안동가농은 ‘농산물 생산비 보장’과 ‘강제행정 철폐’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현장활동을 개시하였다.안동가농의 결성에 앞서 안동교구의 농민사목부에서는 19개 본당, 27개 공소, 33개 마을을 대상으로 1977년에 제 1차 “부락(공소)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실태조사는 농촌사회의 구체적 복음화, 농민의 인간적 성장과 권익향상 운동을 겨냥하는 농민교육을 위한 기초적인 조사였다. 이들은 이를 통하여 공소라는 자연부락의 단위에서 신앙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개발될 수 있는 인적자원을 중점적으로 파악하려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여기에서개하였는데, 여기에서 이들은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생활권’이나 본당(가톨릭 교회) 중심으로 하는 소지역의 운동권이 차츰 늘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의 농민운동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농업 · 농민의 문제가 독점자본과 이를 비호하고 있는 독재정권, 그리고 신식민지 정책을 강요하는 외세 등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기 시작하였다.4.농가부채에 대한 집단적 대응의 시도와 좌절, 성공 등1980년대 이후 ‘개방농정’이란 이름으로 등장한 외국 농축산물의 수입확대 정책은 농민들의 수입저지 투쟁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또한 수입개방 등으로 저하된 농업소득을 커버하기 위한 정책대안으로써 1983년부터 추진된 복합영농 정책은 결국 거듭된 과채류의 가격파동과 1985년의 미국소 대량도입이 빚은 소파동 때문에 파산하였다. 이에 따라 경북에서도 1986년부터 소입식이 중단되었으며, 1987년부터는 돼지 입식 뿐아니라, 단지 과잉생산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고추, 마늘, 양파, 무, 배추 등도 복합영농 대상작목에서 제외시켰다.이처럼 복합영농 사업은 생산의 무정부성이 빚은 수급의 불균형과 확대된 수입개방의 영향 때문에 결국은 농가부채의 증가로 귀결되었다. 특히 1980년대 후반에는 무려 350여가지의 외국 농축산물을 수입하였는데, 그 중에서 소는 18만 마리, 쇠고기 2억 4천 5백만근을 수입하였다.) 이로 인하여 농가부채는 호당 평균 300만원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이러한 반농민적인 농정에 대해 안동가농은 농민운동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오늘날 농민운동은 농민만이 살자는 것이 아니라 외세의 경제 침탈을 막고 민족자립경제 민주화와 민족통일을 이루려는 반외세 반독재 운동이요, 민중의 생존권을 쟁취하려는 인간화 운동이다.”(1) 운동을 통한 문화적 대응 - 안동가농의 농가부채 탕감대회)86.4.16. 농가부채탕감 농민대회농가부채의 누적은 60년대 이후부터 추진되어온 외자의존적 수출주도형 경제성.
    사회과학| 2008.08.04| 18페이지| 1,000원| 조회(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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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이매를 주목하라!!-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목 차 ◁1. 들어가며2.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어제와 오늘(1)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어제(2)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오늘3.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미래(1)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이매(2) 관객과 하나 되는 탈놀이(3) 미완성에서 진정한 완성으로4. 나가며1. 들어가며본질적으로 카니발 정신을 그 바탕에 둔 탈춤은 유희적 기능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탈춤은 이러한 유희적 기능에 못지않게 또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기도 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한데 어울려 즐겁게 놀이를 벌이는 축제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 사회의 안녕을 기원하고 풍요와 다산을 비는 사회적 행사였다. 사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구체적인 역사적 시간과 사회적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행위 치고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회적 특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행위는 하나도 없다고 하여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탈춤과 같은 민속극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탈춤이 공동 사회의 구성원들이 벌이는 행사인 이상 사회적 기능을 전혀 무시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여기서 문제는 얼핏 상호배타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두가지 기능 가운데에서 과연 어느 쪽에 더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하지만 현대의 민속극을 보면 사회적 기능보다는 유희적 기능에만 몰두하고 있다. 한국에 가장 대표적인 탈놀이인 하회별신굿탈놀이도 예전에 가졌던 사회적 기능은 사라진 채 유희와 오락의 기능만이 남아서 전승되고 있다. 획일적인 전승양상은 더 이상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발전을 가져오지 못한다. 이미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어 전통의 형식을 따라야 한다는 제약이 있지만 하회별신굿탈놀이 나름대로의 발전방향을 찾아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하며 전승해 나가야 한다. 필자는 하회별신굿탈놀이가 발전하는데 핵심을 가진 인물을 이매로 설정해 보았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 가장 자유로운 인물인 이매를 통해 탈놀이가 어이럴 수가 있는가?선 비 : 그대는 진정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는가?양 반 : 아니 그렇다면 자네 지체가 나만하단 말인가?선 비 : 그러면 자네 지체가 나보다 낫단 말인가?양 반 : 암! 낫고말고.선 비 : 뭣이 나아? 말해봐.양 반 : 나는 사대부의 자손인데...선 비 : 뭣이 사대부? 나는 팔대부의 자손일세.양 반 : 팔대부는 또 뭐야?선 비 : 팔대부는 사대부의 갑절이지.양 반 : 우리 할아버지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이거든.선 비 : 아, 문하시중! 그 까짓것, 우리 아버지는 바로 문상시대(門上侍大)인데.양 반 : 문상시대? 그건 또 뭔가?선 비 : 문하(門下)보다 문상(門上)이 높고, 시중(侍中)보다 시대(侍大)가 더 크다.양 반 : 그것 참 별꼴 다 보겠네.선 비 : 지체만 높으면 제일인가?양 반 : 그러면 또 뭣이 있단 말인가?선 비 : 첫째 학식이 있어야지. 나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다 읽었네.양 반 : 뭣이, 사서삼경? 나는 팔서육경(八書六經)을 다 읽었네.선 비 : 도대체 팔서육경이 어데 있으며 대관절 육경은 뭐야?초랭이 : 나도 아는 육경, 그것도 몰라요? 팔만대장경, 중의 바래경, 봉사 안경, 약국의 길경, 처녀의 월경, 머슴 새경!양 반 : (초랭이를 가르키며)이것도 아는 육경을 소위 선비라는 자가 몰라?선 비 : (혀를 차면서)우리 피장파장이니, 그러지 말고 부네나 불러봅시다.(양반?선비?부네?초랭이가 함께 어울려 춤을 춘다.) 양반 ? 선비 마당이러한 싸움과정을 통해서 양반과 선비의 허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체다툼에서 선비의 우세를 구경만 하던 초랭이가, 학식다툼에 서는 양반을 거들어 선비에게 패배를 안긴다. 따라서 이 싸움은 순전히 양반과 선비의 싸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양반과 선비는 그들 스스로 다툼을 벌이며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므로 두 사람 사이의 싸움 같으나, 사실은 두 사람의 싸움을 통해서 양반?선비 가릴 것 없이 지체도 높지 않고 학식도 없다는 천박성과 무식성을 관중 앞에 폭로한다.“양반?선비마당에서 초랭이의 모. 그러므로 은밀한 성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금기의 위반이라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더욱이 그 주체가 인간의 모든 욕망을 버릴 것을 가르치는 불교의 승려라는 데서 그 의미는 더욱 커진다.)성의 드러냄은 소불알을 놓고 벌어지는 양반과 선비의 싸움에서도 잘 나타난다. 백정이 양반과 선비에게 소불알을 사라고 하자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양기에 좋다는 말 한마디에 그 둘은 서로 그것이 자기 불알이라고 주장하면서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그것을 보고 백정은 “내 불알 터진다”고 비꼰다. 겉으로는 도덕군자인 양하는 양반과 선비지만, 그 이면에는 바로 성의 욕망이 흐르고 있음을, 아니 오히려 그것에 집착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할미마당금기의 위반은 할미마당에서 남녀간 위치의 전도로 나타난다. 할미마당에서 영감이 어제 사 온 청어를 벌써 다 먹었느냐고 묻자 할미는 “어제 저녁에 내가 아홉 마리 당신 한 마리, 오늘 아침에 내가 아홉 마리 당신 한 마리씩 다 먹었다”고 대답한다. 귀한 음식을 여자가 남자보다 많이 먹었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순종과 희생을 미덕으로 가르쳤던 주자학적 질서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반적 현상이 아니다. 남자의 덕을 하늘에, 여자의 덕을 땅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유교의 남녀관을 일방적 상하 수직질서라고 매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조 사회가 남성 우위의 사회였다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할미마당이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남녀 지위의 전도이자 주자학적 여성관의 파괴이다.“처음에는 무슨말 하는지 잘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내용을 알았어요. 예전에는 남존여비의 사상이 강했을텐데 할미가 물고기를 가지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존의 사상을 뒤집는 모습을 보여주는거 같아요.”이와 같이 하회별신굿탈놀이 속에는 금기의 위반이 여러 차례 나온다. 그 금기의 위반이라는 것은 곧 주자학적 지배질서의 파괴이다. 탈놀이패들이 서낭대를 앞세우고 집돌이를 할 때는 양진당이나 충효당과 같은 대갓집을 빼놓지 않는다. 그럼에도 은 존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동제만으로 별신굿에 농축되어 있던 민중들의 그 엄청난 생명의 힘을 담아 낼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다.오늘날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전통문화의 복원이라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 속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에 이르렀고, 매주 토요일, 일요일 오후에 하회마을에 가면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에서 공연하는 탈놀이를 볼 수 있기도 하다. 근대화가 우리 민족의 당면 과제였던, 아니 그렇다고 믿었던, 그래서 아무도 전통문화를 돌아보지 않았던 시절부터 하회별신굿탈놀이을 포함한 전통문화를 복원하고 전승하려는 소중한 노력이 있어 왔기에,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오늘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의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실제가 아니라 공연의 형태일 뿐이다.“지금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공연중심적이지. 공연은 대중성을 띄어야 하거든. 관객들에게 흥미를 유발해야만 관심을 있는거야. 내가 알기로는 무형문화제로 지정 되어 있는 단체가 13개가 있는데. 13개 단체에서 화회별신굿탈놀이가 가장 공연이 많고 3자의 입장에서 봐도 가장 재미있거든. 우리가 작년에는 300여회 공연을 했고 올해는 160회 정도를 했으니까.”“하회별신굿탈놀이를 3번 정도 봤는데 탈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전수회 사람만 하고 그 장소도 공연장으로 제한되어 있어요. 연행양상 또한 매번 똑같구요. 한번 봤을 때는 정말 재미있었지만 보면 볼수록 똑같은 내용만 되풀이 되니 흥미를 잃어가는 것 같아요. 너무 인위적으로 짜 맞추어놓은 연극같아요.”이른바 백정마당, 파계승마당, 양반마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오늘날의 하회별신굿탈놀이는 한 편의 연극이다.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삶을 재현하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연극이다. 연극이 공연되고 있는 무대가 허구의 공간이듯, 하회별신굿탈놀이가 공연되는 하회전수관 앞마당도 인위적으로 설정된 공간일 뿐이다.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이 실제의 인물이 아니라 배우이듯,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연행하고 있는 사람도 배우일 뿐이다. 하지전수회에서는 변화를 꺼려한다. 변화로 인해 원형이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상태의 공연중심적 성격으로서는 더 이상 하회별신굿탈놀이가 가지는 민중적 기능을 관객들에게 발산해낼 수 없다. 그러므로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사회적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사회적 맥락을 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3. 하회별신굿탈놀이의 미래1)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이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이매하회탈에는 어느 고장에도 없는 미완성 탈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징이라고 해서 다 고유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완성된 것이 가치 있는 것이라면 미완성된 것은 뭔가 불완전하고 미흡한 것이므로 가치 평가를 절하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미 완성되어 버린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이매라는 미완성의 인물이 앞으로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완의 탈 이매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통해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을 뻔한 여러 완성된 탈들의 허물을 대신 해명하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매는 미완성이면서도 완성된 탈 이상의 구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완성이기 때문에 완성된 탈보다 중요한 구실을 하는 탈이라 할 수 있다.하회별신굿탈놀이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중에서 이매만큼 몸이 부자연스러우면서도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 바보이자 병신으로서 제 걸음걸이 하나 온전하게 가누지 못하면서도 모든 삶의 굴레로부터 해방되어 있고 세상의 모든 근심으로부터 초탈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매라는 존재는 바보로서 정신적 결함과 병신으로서 육체적 질병을 함께 안고 있는 문제의 인물이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평화로운 인물이다. 바보처럼 살면 마음의 평화를 얻고 병신처럼 살면 더욱 행복해질 수 있다. 이매는 가끔 놀이판에서 “우습다 우스워!”하고 박장대소를 한다. 우리는 이매의 그런 모습을 보고 바보라고 여기며 웃고 즐길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매야말로 똑똑하다는 세상 사람들의 바보짓을 보고 웃고 즐기는 것이다. 이매를 기준으로 보면 세상에서 잘났다는.
    인문/어학| 2008.08.04| 10페이지| 1,000원| 조회(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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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동지역의 전탑을 찾아서
    안동지역의 전탑을 찾아서< 목 차 >1. 전탑이란 무엇인가?(1) 전탑이란?(2) 전탑의 구조2. 전탑 안동 집중설(1) 불교 종파설(2) 풍수지리설(3) 노정설(4) 지리학설(5) 장인축조설3. 안동지역의 전탑(1) 신세동 7층 전탑(2) 동부동 5층 전탑(3) 조탑동 5층 전탑1. 전탑이란 무엇인가?(1) 전탑이란?우리나라는 석탑의 나라라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옛 탑들이 대부분 화강암의 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북 안동시에 가면 전탑(塼塔)이 많다. 왜 그런 걸까?전탑(塼塔)이란, 흙으로 만들어 구운 벽돌을 쌓아올린 탑을 말한다. 우선 전탑의 발달과정을 살펴보자면, 탑파 양식의 형성 과정으로 보아 우리나라 초기의 탑파는 목조탑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평면이 방형 또는 다각이었고, 다층인 누각형이었으리라 생각되는데, 고루형인 목탑양식은 신선사상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이는 고루 건물이 유난히 발달했던 중국에서 받은 영향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사정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모두 동일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불탑은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되고 가람이 조영되면서 더불어 조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러다 당시의 유구들이 대부분 목조였던 관계로 오늘날에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불교가 한국에 전래된 4세기 말에는 중국과의 문물교류가 빈번하였고 당시 중국 탑의 본류가 목조누각 형식이었기 때문에 한국 탑의 초기 형식 또한 목조탑이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한국 탑의 변천과정에서 벽돌이나 석재를 이용하여 목조탑을 모방하게된 것은 목조라는 재료가 가진 한계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목재는 비바람과 화재에 약하고 제작에 노력이 많이 드므로, 이보다 영구적이고 우리 주변에서 많이 얻을 수 있는 석재를 사용하는데 착안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석조로 재료를 바꾸어 새로이 만든 탑이 석탑이며 돌을 벽돌처럼 잘 다듬어 탑의 재료로 쓴 것이 모전석탑이다.신라 불탑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목탑이 발생하였고, 그 다음에 목탑 양식을 모방전탑의 독자성이 분명해진다. 전체적인 구조나 형태에 있어서는 중국의 전탑에 그 원류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전탑은 문양을 찍어내는 틀만 있으면, 얼마든지 문양전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돌의 장점을 이용해 벽돌 하나마다 부처님과 건물, 넝쿨무늬 등을 새겨 탑 전체를 하나의 불신 그 자체로 만들려 했음을 알 수 있다.(2) 전탑의 구조(가) 기단부??기단부는 일반적으로 단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현존하는 모전석탑이 거의 단층기단을 가지고 있으며 전탑들도 단층의 형태를 남기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전탑이 목탑에서 비롯되었으며 목탑 기단부는 일반적은 목조건축물과 마찬가지로 단층기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목탑을 충실히 모방한 백제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이나 미륵사지 석탑도 단층기단이며 역시 목탑에서 나온 전탑도 따라서 단층기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안동지역의 전탑들의 기단부는 모두 원형을 추정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 조탑동 5층전탑은 현재 단층의 석축기단 위에 지대석을 놓고 석재의 초층탑신을 올렸다. 그러나 현재 노인들에 의하면 현재의 기단은 탑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고 5, 60년 전까지도 이 탑은 나지막한 언덕 위에 서있었다고 하며 그때 기단부는 따로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탑이 본래부터 기단부를 가지고 있었는지의 여부는 현재로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정황은 동부동 5층전탑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동부동 탑은 현재 기단부가 없고 지대석 위에 장대석을 계단상으로 2단 쌓아 탑신받침을 만들고 그 위에 바로 탑신부가 올려져 있는데 지대석이 있는 부분의 지표는 주위의 지표보다 50cm 가량 낮아서 탑은 현 지표면보다 아래쪽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 서 있다. 그러나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진을 보면 이 탑 역시 언덕위에 서 있었음을 알 수 있어서 조사당시인 1915년 무렵에는 주위의 지표면이 탑이 서 있는 위치보다 약간 낮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탑이 주변보다 약간 높은 곳에 서 있었던 것은 단층 기단이 허물어진 데 연유하는에 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올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부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신세동 전탑에서 볼 수 있다. 신세동 전탑은 초층 감실의 천정부에서 최상층인 7층 옥개석 상부까지 1변 30cm 정도의 방형 구멍이 관통되어 있다. 이는 탑을 축조할 당시 중심을 잡기 위해 목제 찰주를 세웠던 자리로 보이는데 찰주를 세우고 그를 중심으로 벽돌을 쌓아 올리고 완성된 후 찰주는 제거하였을 것이다. 또 최상부의 찰주공은 상륜을 설치하는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경우는 대부분의 전탑의 내부는 초층부터 최상층까지 통형으로 뚫려 있으며 옥개석이 밖으로 돌출된 부분은 내부도 안으로 돌출시켜 역학적인 균형을 맞추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전탑들은 중국에 비해 소형으로 내부를 비우면서 쌓기에는 내부 공간이 너무 좁아 불가능 했을 것이다.(다) 상륜부??현재 전탑과 모전석탑을 통틀어서 상륜부가 남아 있는 것은 송림사 5층전탑과 정암사 7층모전석탑 두 기 뿐이다. 이 두 탑은 모두 청동제 상륜부가 남아 있다. 또 제천 장락동 7층 모전석탑에서도 청동제의 연꽃 투각이 되어 있는 파편이 수습되어 청동제 상륜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은 상륜부에서는 노반 복발 앙화 보륜 수연 용차 보주 등이 확인되고 있어 상륜의 형태는 신라 석탑의 상륜과 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동에서 가장 오래된 읍지인 영가지에는 안동 신세동 7층전탑과 동부동 5층전탑에는 탑 위에 금동의 장식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금동제 상륜부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전탑이나 모전석탑에는 청동제 또는 금동제 상륜이 설치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현존하는 5기 전탑에 대한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탑명비교부분안동 신세동 7층전탑안동 동부동 5층전탑안동 조탑동 5층전탑칠곡 송림사 5층전탑여주 신륵사 다층전탑기단부단층 기단이 존재면석에는 12지등이 조각됨기단부가 따로 존재하지는 않음3단의 계단을 마련석축식의 단층 기단5단의 계단을 형식적으 많은 사람들이 이를 궁금하게 생각해 왔다. 전탑이 안동지역에 중심으로 분포하는 것에 대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고 있지 않으나 이런 저런 견해가 제기되었다. 이 지역의 토질이 벽돌 재료로 적합하거나, 교통이나 문화 전달의 경로 때문에 벽돌 문화와 접할 기회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짐작된다. 그러나 왜 특별히 안동에 집중되었는지, 당시 수도였던 경주 지역에서마저도 전탑은 왜 크게 유행을 보지 못하였는지 등의 의문점이 제기되기는 하였으나 그 모든 문제들은 어느 것도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못하였다.그렇다면 그 동안 제기되었던 의문점들에 대한 구명(究明)의 노력을 살펴보고, 그와 함께 명쾌한 설명이 될 수 있는 답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자.(1) 불교종파설불교종파설은 안동을 비롯한 경북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불교의 한 종파가 이곳에 전탑을 집중해서 유행시켰으리라는 가설이다.부석사, 봉정사를 비롯한 화엄종찰(華嚴宗刹)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에 유학했던 의상이 이곳에, 당시로서는 첨단사상인 새로운 화엄사상에 근거한 사찰을 창건하고 유학에서 돌아온 신진 유학승과 이를 쫓는 많은 승려들을 모아들여 화엄종을 열게 되었는데,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전탑형식을 함께 도입하여 집중적으로 탑을 조성하였으리라는 가설이다.당시 중국에서는 652년 서안에 세워진 자은사(慈恩寺)의 대안탑(大雁塔)과 710년 세워진 천복사(薦福寺)의 소안탑(小雁塔)과 같이 벽돌로 만들어진 전탑이 크게 유행하여 널리 축조되고 있었다. 따라서 중국에 유행했던 전탑 축조형식을 견문에 따라 세웠을 것이고 전탑 축조기술을 가진 장인들을 함께 길렀을 것이라는 가설이 가능해진다.그러나 의상이 창건하여 중심사찰로 썼던 부석사, 봉정사 등에서는 전탑이 존재하지 않고 그 밖의 사찰에서도 전탑이 유행했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의문이 생긴다. 뿐만 아니라 의상이 확립한 화엄사상은 말 그대로 중국에 의존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주체적으로 정립되어 있어 중국과의 빈번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당시 사정으로 봐서도 여 한국형 전탑을 완성하였다. 또한 경주권의 전탑은 비교적 거대하고 화려한 반면에 안동권 전탑은 경주권 전탑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으며, 그 형식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다음으로 경주의 전탑과 안동의 전탑은 가람배치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경주의 전탑이 당시 신라의 일반적인 가람배치 양식을 따랐다고 한다면, 안동의 전탑은 가람배치에서 벗어나 물가나 높은 산의 언덕에 위치한다. 이는 전탑의 건립이 특정한 불교사상의 영향아래 건립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며, 또한 경주지역 전탑 건립의 주체세력과 서로 다름을 말해주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전탑의 건립시기가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경주의 전탑 건립시기를 덕동 전탑을 제외하면 7세기 전반에서 중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에 비해 안동의 전탑은 8세기 중반에서부터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무려 100년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경주에서 안동까지 전탑이 전래되는데 무려 1세기가 소요될 아무런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경주의 전탑과 안동의 전탑이 경주→대구→안동으로의 연계 선상에 있다고 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오히려 경주의 전탑은 안동의 전탑보다 먼저 도입되어 경주지역에 잠시 동안 유행하였다가 사라지고, 1세기정도 지나서 안동지역에 다시 집중 조성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4) 지리학설안동은 두 개의 단층선이 지나가는 지질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백악기(1억 4천만∼7천만년) 이전에 생긴 단층이고, 다른 하나는 백악기 이후에 생긴 단층이다. 이 지역의 화강암은 두 시기에 걸쳐 대규모의 변형 작용을 받아 암석은 균열이 매우 심하고, 화강암의 입자를 현미경으로 보면 보통의 화강암에 비해 파쇄현상이 훨씬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 돌을 큰 석조물로 다듬어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러므로 10m 안팎의 큰 탑을 이와 같은 석재로 만든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외형상으로도 이 지방은 동서로 흐르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강의 남쪽은 점토질의 비교적 평탄한 평야로 형성되어 있고, 강의 북.
    인문/어학| 2008.08.04| 12페이지| 1,500원| 조회(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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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의 주거환경과 공동체적 역할을 위하여
    아파트의 주거환경과 공동체적 역할을 위하여< 목차 >1. 들어가며2. 우리나라 주택의 대표, 아파트의 역사3. 왜 아파트를 선호할까?4. 나를 감추면서 과시하는 기호체계, 아파트5.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6. 글을 마치며1. 들어가며언젠가 한 영국인이 한국에는 아파트가 너무 많다며 'Crazy'를 연발했었다.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 눈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분명 높은 아파트들이 즐비한 풍경일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가 작고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에서의 아파트의 필요성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이런 지리적, 사회적 특징은 아파트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주거형태로 만들게 되었다. 주거는 우리가 먹고, 자고, 사는 그야말로 삶의 터전임에 분명하다. 이 같이 인간 생활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존재인 아파트가 중요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를 바탕으로 과거에서 현재로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당연한 이치였고, 그 결과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과거의 아파트는 주거만을 위한 아파트를 지향했다. 주택 보급이 시급한 실정에서 아파트의 중요도는 더 할 나위가 없었고, 이에 따라 아파트의 수요는 급증했다. 아파트의 사는 인구도 급증했을 뿐 만 아니라, 그 가치가 상승도 동반 상승 한 것이다. 그러나 초기의 아파트는 단순 복합 주거 형태로의 기능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문제성이 많이 지적이 되었다. 최근의 아파트는 이러한 과거의 아파트를 개선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모습을 보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아파트 시설 자체의 변화는 혁신적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아파트 또한 그 외형적 모습에서 변화를 가져왔음은 당연하다. 인체공학적인 설계, 자연주의적인 아파트를 외치는 건설회사의 광고 전략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가까운 미래에 등장할 것이 예상했던 유비쿼터스 아파트의 모습도 현재에 나타나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다.앞으로도 아파트 시설의 변화는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시설적 측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아파트 문화이다. 현재의만 이상이 거주하던 제정시대의 로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시작된 아파트의 역사는 발전된 도시를 중심으로 이어져 오게 된다. 인류의 주거문화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해준 것은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발전함에 따라 규모가 커지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대규모 아파트가 대량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만들어지고 내부설비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오늘날과 같이 아파트가 단지를 이루면서 건축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이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환경은 엉망이 되었고 이에 대한 해결로 아파트가 건축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일자형 아파트로서 대량건설이 가능하고, 많은 사람에게 살 곳을 제공하는 동시에 ‘경제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구조였다.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주거의 형태는 현대인의 다양한 생활욕구로 더욱 복잡하게 분화되고 도시화 및 핵가족화 과정으로 인하여 주택의 절대량이 도시에서는 부족하게 되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가속화된 도시화는 경제, 정치, 사회, 환경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로의 인구집중은 무엇보다도 주택의 절대 부족현상을 야기 시켰으며, 심각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부도심과 신도시에 대단위 아파트단지 건설에 주력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도시공간은 급속히 재배치되기에 이른다. 1957년 종암아파트와 개명아파트의 건설을 시작으로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게 되었다.1960년대 들어서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아파트가 건설되어 오늘날에 이르는 시초가 된다. 1962년에 지어진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마포아파트는 주택공사가 건설한 우리나라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로 계단식, 개별온수난방,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임대아파트였다. 마포아파트는 영화촬영장으로 애용될 만큼 세간의 관심을 끌었고 이때부터 아파트는 편리한 신식 주거공간으로써의 진면목을 과시하며 일반인의 관심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당시 아파트는 장독대 등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해 논의와 우리 국민의 생활 습성에 맞추기 80년대는 아파트 구조가 더욱 다양화되어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지면서 비로소 주변 환경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단지 배치와 보행자 및 차량도로를 분리하는 등의 변화를 보였다. 이에 따라 사생활 보장을 위한 부부 전용 욕실이 등장하고, 부엌의 직접 채광과 환기가 강조되기도 했다.투기 바람이 부는 와중에 주거환경 자체로써의 질과 가치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는 시기로 아파트가 보편화되자 이를 점차 고급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또한 82년 공동주택관리령의 개정으로 입주자대표회의의 법제화와 하자보수 절차의 강화 등이 아울러 이루어졌다.1980년대에 이어 신도시가 조성되고 이와 함께 학군 프리미엄이 강해지면서 강남권이 여전히 부각되어 아파트는 점차 부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잇따른 아파트 건설이 붐을 이뤄 분양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미분양 아파트가 나타나기도 했다.90년대 아파트 업체들은 경쟁에 기인해 내부 설계와 마감재 고급화에 치중했고 초고층 주상복합 형태의 아파트도 등장했으며 도로를 따라 아파트를 배치해 조망권을 최대한 확보하는 시도도 일어났다. 또, 획일화된 아파트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나타나 외벽에 색채가 입혀지기 시작했고 창문과 발코니도 다양한 형태와 색채가 등장했다.그러나 한편으로 주공은 영구임대, 공공임대아파트 등 도시서민 주거안정에 관심을 쏟기 시작해 98년에는 수원 정자지구에 최초의 국민임대아파트를 선보였다. 전용면적 18평 이하의 10년 임대와 15평 이하의 20년 임대주택으로 지어진 이 아파트는 전세시세의 절반 수준에 장기간 거주할 수 있어 주거안정에 일조한다는 평을 받았다. 특히, 슬럼화의 방지를 위해 단지설계와 내부평면, 마감재 등을 일반 분양아파트와 같은 수준에 맞추고 디자인도 밝은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주력했다. 이 밖에도 이 시기에는 4만 5천여 명이 응시한 가운데 주택관리사(보) 제1회 자격시험이 실시되기도 했다.2000년대 아파트는 이제 국내 주거환경에 있어서 더 이상 빼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존재로 자리 잡게 됐주택 방식으로서 단위주거당의 건축비와 공기(工期)가 가장 짧고, 난방이나 위생설비 등 공유하는 서비스 시설이 충분히 뒷받침 될 수 있으며, 놀이터, 공원 등의 개방공간을 공동화 함 으로써 대단위화 할 수 있다.그러나 계획이 부적합할 경우 세대마다의 개체성이 무시되고, 주거 전체가 단조로운 틀 속에 예속된다는 비인간적인 환경이 될 염려가 크다. 또한, 이웃간의 사회적 접촉이 단절될 우려가 있고, 전통적인 토지의 관념과는 상대적으로 사유 정원과 토지가 없다는 주거의식이 문제이다. 하지만 아파트의 편리성은 이러한 문제점을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난방, 방범, 수리가 간편하고 단지가 제공하는 공원 등의 여러 편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인구밀도가 높음으로 인해 정보 인프라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 등이 요인이다. 교통, 학군의 면에서 최소한의 편리성과 경제성을 보장하고 있다는 측면도 중요한 요인이다. 입지는 도심·부도심·교외의 어느 곳에나 가능하며, 제한된 토지 내에서 용적을 높일 수 있으므로 토지이용효율이 가장 높은 주거 형식이다. 또한 아파트는 편리함. 난방, 방범, 수리가 간편하고 단지가 제공하는 공원 등의 여러 편의 시설을 이용할 수 있고, 인구밀도가 높음으로 인해 정보 인프라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 등이 요인이다. 교통, 학군의 면에서 최소한의 편리성과 경제성을 보장하고 있다는 측면도 중요한 요인이다.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선호되는 주거형태가 되었다. 이는 한국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도시화가 진행되고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건설을 통한 성장을 추구한 기업의 이해관계와, 도시적 주거형태 보장을 위한 정부의 목적이 일치함에 따라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 대거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고 이는 아파트에 대한 선망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현대적이고 발전된 서구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오리엔탈리즘)적 사고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현대의 아파트는 재산의 소유와 문제는 아파트 공동체의 약화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고조되고 있다. 공동체는 우리가 구축해야할 목표이며 현실적으로 필요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도시화된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에서 그 기인한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도시공동체에서 사람들의 관계는, 경쟁과 자기이익 추구로 사무적이고 비인간적이며 일시적이다. 개인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익명성을 향유할 수 있으므로 사회규범이 해이해지고, 사람들은 성품의 순수성을 잃고 인생에 무관심하게 되어 범죄 ?비행 ?퇴폐적 생활 ?정신적 붕괴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L.워스는 지역공동체의 규모가 크고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구성원이 이질적일수록 도시적인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도시공동체의 특징은 한 가지 생활양식만으로 대표되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생활양식으로 나타난다.오늘날 고도로 산업화 ?도시화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교통기관의 발달로 사람과 상품이 지역을 넘어 쉽사리 이동하고, 통신과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발달로 정보의 전달이 광역화하여 광범한 사람들에게 공통의 사회의식을 형성시키고 있다. 따라서 폐쇄적 공동체의 성격은 없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아파트 공동체가 지니는 문제를 아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아파트 공동체 역할의 문제점 중 가장 큰 것은 이웃간의 단절이다. 우리는 익명성의 시대이다. 이웃 바로 옆에 누가 무엇을 해도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 한다. 이로 인하여 개인주의의 심화에 따른 공유공간의 전유공간에 대한 상대적 열세현상을 가져왔다. 공동주택인 아파트에서 필수적인 공용공간이 전용공간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볼 때 관심의 정도가 미약하다는 것인 사실이다. 예를 들어, 주거동내 공용공간인 복도나 엘리베이터 홀 등이 단순한 통로공간으로만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생활의 풍요로움을 스스로 억제한다고 본다. 또한 공동생활공간의 축소 또는 방치되어 아파트를 만들 때부터 공동공간에 대해서는 최소한으로 만들려.
    인문/어학| 2008.08.04| 10페이지| 1,500원| 조회(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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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대운하는 대국민 사기극
    한반도 대운하는 대국민사기극1. 기본 목적- 저렴한 수송로 확보, 국토 균형발전, 수자원 보호 및 효율적 이용, 특성화된 관광 인프라 구축운하추진 측은 위에 열거한 다양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위의 항목 중 어느 하나도 운하를 반드시 해야만 할 타당성을 제공하고 있는 항목은 없다.(1) 수송로?현대의 쾌속화, 전용화 된 물류처리에서 운하는 중세의 유물 취급을 받는다. 운하가 많은 유럽에서도 신규 운하를 검토하는 일은 없으며 운하가 분담하는 물류수송비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검토한 적이 있는 물류효율화 정책은 운하의 타당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유럽에 흩어져 있는 기존 물류망(항공, 철도, 도로, 운하)의 효과적 연계사용을 위한 것일 뿐이다. 운하에서는 속도를 내고 싶어도 내지 못한다. 운하 자체의 구조적 문제와 바지의 문제도 있지만, 배의 속도가 빨라지면 그만큼 인공으로 건설된 제방에 충격을 주어서 제한속도 설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시속 10키로 내외의 운하가 무슨 물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가? 더구나 일방향 갑문으로 겹겹이 막힌 운하에서 말이다.☞ 차라리 철도와 연안 해운을 활용하는 편이 훨씬 났다.- 서울↔부산 사이에 19개 갑문과 충주리프트, 문경리프트(또는 상주리프트)를 통과하고, 문경새재(조령산) 25km 터널을 지나야 하는 사실과 외국의 운행사례를 볼 때 최소한 60~70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화주협의회 소속 화물운송업체 57%가 ‘경부운하 건설되어도 이용하지 않겠다.’ 하고, 이들 77%는 향후 물류 상황에서 운하는 그다지 필요 없을 것으로 답하였다.☞ 운하로 실어 나를 화물량 수요도 정확히 잡혀있지 않은 상황이다.- 운하를 이용할 화물(외국은 주로 석탄, 석유, 철광석등 벌크화물임)이 경부축에 얼마나 있을까?- 추진측은 2011년 기준으로 경부축 수출입 컨테이너 물동량이 761만TEU인데, 그 중 14%인 104만TEU 를 한반도 운하가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러나, 761만TEU는 수도권,한 운하이며, 네덜란드의 운하는 해수면보다 낮은 매립지의 국토에서 제방과 물길을 건설하면서 발생한 운하이다.이러한 운하와 달리 한국에서 검토하는 운하는 자연하천을 그대로 운하로 변경하는 경우이다. 네덜란드 운하회사가 한국에 와서 "운하를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라고 말한 까닭은 생 땅을 새로 파고 물을 유도할 필요없이 물이 흐르는 하천을 이용하는 것이니 운하를 시작할 기본 조건을 갖추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전문가는 분명히 황당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식수로 이용하는 자연하천을 운하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기발한 것이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코메디 수준이다. 한반도운하의 타당성으로 네덜란드 운하회사의 말을 인용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창피한 일인 줄 알아야 한다.더구나 한국과 같이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물류의 경쟁력은 제로이다. 운하를 건설해 놓고 사용자가 없다면 지역균형발전도 없다. 지역의 자원을 소모하며 터미널 아무리 건설해봐야 파리만 날린다면, 이는 지역발전이 아니라 지역부담일 뿐이다.(3) 수자원 보호 및 효율적 이용?이 역시 말장난 수준에 불과한 기만용 문구이다. 한국의 수자원은 전력, 식수생산, 농업용수 생산에 소요된다. 이 수자원을 관리하기 위한 기관이 수자원 공사이다. 그러나 운하가 시설되면 한국 수자원은 주운용 뱃길이라는 용도로 단일화된다. 운하에 물을 채워 넣기 위하여 담수해 놓은 충주호, 소양호 등의 모든 수자원이 집중되어야 할 판이다.운하의 물은 기본적으로 6급수이다. 식수로 관리되는 물은 현재 낚시까지도 금지될 정도로 오염물의 유입을 차단하고 있다. 그러고도 식수 취수원의 수질을 2, 3급수로 유지하기도 버거운 현실이다. 그러나 만일 모든 물이 운하로 집중된다면 어찌 되는가? 운하에서의 사고위험은 물론, 배로부터의 기름, 청소물, 화물 잔존물 등의 오염물이 끊임없이 강으로 투입되며 심지어 개발된 강변으로부터도 오염이 지속해서 들어오는 구조의 운하라면 그 수질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뻔히 알 수 있다. 심지어 운하의 수심을 유지하기 위한 수중보로 있고 하상계수가 높은 나라에서 층층이 연결된 계단식 운하로 어찌 홍수를 조절하는가?홍수가 가랑비라면 가능하다. 그러나 산과 지천에서 일시에 밀려 내려오는 물은 제방과 보를 갖춘 운하체계에서는 대처가 불가능하다. 자연하천에서는 옆으로라도 범람하지만, 운하에서는 제방 둑을 무너뜨리거나 혹은 범람으로 인한 산 아래 쪽의 수몰을 당연시하는 수밖에 없다.결국 운하는 한국의 기존 수자원을 깡그리 6급수 이하의 뱃길용 수자원으로 단일화하며, 만일 제방에 문제가 있을 시 역사에 유례가 없는 홍수 대재앙을 각오해야 할 수자원으로 전락시키는 사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제방이 터지지 않게 시공한다는 찬성론자들의 말은 무책임하다. 제방은 위험시설이다. 어느 한 곳에 약한 곳이 있으면 강 전체 수십억톤의 수압이 그 곳에 몰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하에는 조그만 틈이라도 있으면 이는 반드시 대재앙으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운하 제방에 쥐가 굴을 판다면, 그 지역은 언제라도 붕괴와 대홍수가 일어날 수 있는 1급 위험지역이다. 올해 1월에 발생한 미국 네바다 주 펀리시의 제방 붕괴와 홍수 대참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콘크르트철근 제방으로 두껍게 쌓아 올린다 해도 붕괴의 위험은 상존하는데, 자연제방으로 한다면? 이는 국민을 공포에 떨며 살라는, 국민의 명을 재촉하는 헛소리일 뿐이다.홍수는 일시적 재앙이지만, 식수는 상시적 재앙이다. 운하로 모든 수자원을 동원하고 나면 식수의 취수원은 없다. 지하수는 교란되고 모아놓은 모든 물은 6급수 뱃물 길로 동원된다. 찬성 측은 강변여과수방식을 말하지만 이 역시 무식의 소치이다. 강변여과수를 하려면 강변지형이 사암 구조이어야 한다. 이러한 지형은 한정되어 있어 마실 물조차 충분히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며, 강변여과수 시설을 설치하는데도 천문학적인 예산이 요구된다.- 현재 인수위에서는 강변 여과수 등을 개발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지질 구조는 유럽과 달라 이 방법으로 는 10%의 식수도 확보하기 어렵다.- 창원시의 강변여과수 사례만 보더라도 6보 한국인'의 사례를 전 세계에 홍보하는 관광효과이다.(5) 종합살펴보았지만 나열한 명분(사업목적)중에서 합리적이거나 타당한 것은 하나도 없다. 언급한 바 있듯이, 사용목적을 여러개 나열한 것들 중에는 사용목적 타당성이 하나도 없는 경우가 있다. 운하가 바로 그러하다. 사용목적(명분)타당성이 없는 차원을 넘어, 운하 사업계획은 기존의 국토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재앙을 호도하는 기만이다. 그러기에 반대 측이 운하를 대국민 기만사업이라 부르는 것이다.국토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며 후대에 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석유 등의 부존자원은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물을 마음껏 취수할 수 있는 청정자연이 있다. 지금 강의 일부가 오염되어 있다면 과학적인 준설이나 물의 흐름 개선, 오염원의 규제 등을 통한 치유법을 생각해야 한다.운하는 치유법이 아니라 강의용도 자체를 사용정지 시키는 방식이다. 우리는 4대 강에서의 운하계획을 절대적으로 반대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지켜 줄 국토를 위해서,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2. 운하 추진의 기본 내용- 1차로 문경과 충주 사이에 40㎞의 인공 수로를 건설산을 뚫어서 배를 운항시킨다는 논리이다. 산에서 배가 나온다는 말을 공중파 방송에서 자랑스럽게 말하던 어용학자 박모씨가 생각난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토목공학이면 다된다는 어리석은 발상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를 맡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 국가의 비극이자 재앙이다. 어찌어찌해서 성공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을 그렇게 개조한 댓가는 반드시 돌아온다. 사람이 상상 못할 위력의 재앙으로 말이다. 이것이 역사의 진실이다.조령터널, 운하의 터널은 고속도로 터널과 같이 간단한 것이 아니다. 폭 22미터로 25킬로를 뚫어야 한다. 언제 어떤 사고나 재해가 덮칠지 모른다. 터널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스카이라인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지역을 수몰시키는 흉칙한 콘크리트 수로, 댐을 국립공원 속리산에 시설해야만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300를 띄운다고 하지만, 배의 원리상 모든 배는 물 속에 프로펠러가 있고 프로펠러가 물속에서 돌기 위해서는 미량의 윤활물질이 지속적으로 바깥으로 배출될 수밖에 없다. 선박이 주로 사용하는 벙커씨유(중유)의 경우, 통상적으로 대기오염물질 특히 황산화물 발생량이 아주 많다. 대부분의 선박이 값이 저렴한 중유를 사용하지만, 미국 등에서는 대기오염의 이유로 항구에서의 정박 중에는 중유 사용을 하지 못하게 규제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데, 선박의 발전시설과 엔진 가동에 사용하는 경유와 중유에는 황성분이 각각 3.5%와 4.5%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4. 개략 공사비- 1단계. 1안(터널) : 14.9조원. 2안 (Sky) : 15.8조원- 2단계. 추가 소요 : 6.7조원- 건설비 마련. 강바닥 준설로 인한 모래와 자갈 약 8.5억 ㎥. 준설된 모래와 자갈 판매 수익금 : 약 8조원. 주요 하천은 국가 소유이기에 하천 주변을 정비해 활용하면 엄청난 재원 마련 가능강변여과수를 말하는 사람들이 강의 모래를 파낼 궁리를 한다. 생각나는대로 주장하는 운하 추진 측의 헛소리에 일일이 대응하기도 버겁다. 정신병자는 나오는대로 말하니 편하지만, 그것을 정상적 소리로 받아들여야 하고 또 반대 논리를 합리적으로 말해야 하는 상대방은 얼마나 피곤하겠는가?골재채취로 인한 수익은 크지 않다. 준설을 하게 되면 자갈, 모래 등의 골재는 진흙범벅으로 야적될 것이다.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골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세척, 분류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찬성 측에서는 이 비용은 전혀 계상하지 않고 있다. 세척과 분류의 과정에서 골재의 양 또한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사용가능한(팔 수 있는) 골재로 분류하고 나면 이를 팔아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1년 골재의 수요량은 약 십분의 일에 불과하다. 이는 쌓아놓고 팔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골재든 무엇이든, 재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면 그 가격은 반드시 내려간다. 찬성 측은 정상가로 계산하지만, 3~4년간 야적된 르겠다.
    사회과학| 2008.08.04| 7페이지| 1,000원| 조회(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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