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1.설계조건2.단면의 가정 및 안정 검토3.전면벽설계4.뒷굽판설계5.압굽판설계6.부벽설계7.구조세목8.철근 상세도9.조원 감상문10.마이다스 해석결과설계조건흙의 단위 중량콘크리트의 단위 질량흙의 내부 마찰각콘크리트와 지반 사이의 말찰계수콘크리트의 설계 기준강도철근의 설계기준 항복강도적재하중지반의 허용지지력≪ 단면가정 ≫① 뒷굽 두께 가정 ㅡ 600 mm 로 가정?전단에 대한 검토② 전면벽 두께 가정?토압 계산?최대모멘트 계산?d 값 가정?전단력에 대해 검토W5W1 = 저판W2 = 전면벽W4W1W8W3W6W9W10W7W2xW3 = 부벽(conc)W4 = 부벽 상단 흙W5 = 부벽상단 적재하중W6 = 헌치상단의 흙(+적재하중)W7 = 헌치상단의 삼각형 모양의 흙W8 = 부벽 사이의 흙W9 = 헌치 (conc)W10 = 압굽의 헌치?? 점 O 에 대한 전도 모멘트1. 활동에 대한 안전 검토2. 전도에 대한 안전검토3. 지반지지력에 대한 안정①의 결정② 편심의 결정③ 저판의 지지력 계산4. 활동에 대한 안정≪ 전면벽의 설계 ≫전면벽의 단면의 설계는 강도 설계법에 의해 설계한다. 따라서, 전면벽에 작용하는 수평 토압은 하중계수 1.8을 사용하여 계산한다. 또한 전면벽의 높이가 크기 때문에 높이를 3등분하여 세 곳에서 절단하는 것으로 가정한다.ⅣⅢⅡⅠ2467.78? Rankine 토압공식을 이용한 토압계수 계산① 전면벽 하단의 설계 ( 0 ~ 2 m )? 전면벽 하단(Ⅰ)의 계수모멘트 계산< 철근량 계산 >?부모멘트에 대하여?정모멘트에 대하여< 철근비 검토 >부 모멘트 :정 모멘트 :② 전면벽 Ⅱ 구간 설계 ( 2 ~ 4 m )?Ⅱ구간의 계수모멘트 값 계산?부모멘트에 대하여?정모멘트에 대하여< 철근비 계산 >③ 전면벽 Ⅲ구간 설계 (4 ~ 6 m )?Ⅲ 구간의 계수 모멘트값 계산?부모멘트에 대하여< 철근비 계산 >?정모멘트에 대하여④ 전면벽 Ⅳ 구간 설계 ( 6 ~ 7.78 m )?Ⅳ 구간의 계수 모멘트 값 계산?부모멘트에 대하여?정모멘트에 대한 것⑤ 수평 철근 ( 최소 철근 규정 ACI Code 14.3.3 )벽체의 외측면이 흙에 접한 내측면에 비해 온도차이가 크다.따라서,벽체 외측 면 철근을 전체 소요철근량의 1/2 이상, 2/3 이하로외측면으로부터 50mm 이상, 벽두께의 1/3 이내에 배치하도록 한다.≪ 뒷굽판의 설계 ≫저판의 뒷굽판은 전면벽과 동일하게 부벽으로 지지되는 1방향 연속 보 또는 고정보로 해석하여 설계한다. 이때 뒷굽판에 작용하는 계수 하중는 다음과 같다.?저판의 뒷굽판 설계시 작용하중은 역형 옹벽과 동일하게 하향으로 작용하는하중만 고려하며, 저면의 상향지압력은 무시하고식 으로 계산한다.?피복두께,철근 사용①②③? 부모멘트?부벽과 수직으로 들어가는 철근≪ 압굽의 설계 ≫저판의 압굽판은 역형 옹벽의 경우와 동일하게 캔틸레버 보로 해석 설계한다.뒷부벽식 옹벽은 전면벽과 저판에 작용하는 토압을 부벽에 충분히 전달해야 하므로 철근을 잘 정착해야 한다. 또한 압굽은 상향의 토압을 받는 내민보와 같이 취급한다. 압굽에서 휨모멘트에 대한 위험 단면은 벽체의 전면에 위치하고, 전단에 대한 위험단면은 전단 방향으로 앞굽을 압축하기 때문에 벽체의 전면에서 d 거리에 위치한다(1방향전단). 압굽에 작용하는 토압은 수평토압에 의해 야기된 것으로 하중계수 1.8을 곱한다.① 전단에 대한 설계압굽에 사용되는 주철근을으로 하여 유효깊이를 구하면,? 유효 깊이전면벽 전면에서 d만큼 떨어진 위치에 작용하는 토압 q를 구하면,② 휨에 대한 설계④ 정착 길이?보정계수?철근 중심으로부터 콘크리트 표면까지의 거리 =정착되는 철근 중신간의 거리 =∴?∴∴저판에서 온도 및 수축 철근은 필요하지 않으나 최소 철근으로간격으로 배치하도록 한다.≪ 부벽의 설계 ≫①②③①‘②‘③‘ⅠⅢⅡ1.78m3m3mB부벽의 하단이 고정된 캔틸레버의형보로 해석한다. 따라서 뒷부벽은 전면벽의 연속 슬래브로서의 반력를 받는다고 보아야 하고 전면벽과의 일체성을 고려하여형 단면의 해석으로 단면을 검토한다. 즉, 이때 단면은 벽면 앞의 B점에서 수평으로 생각한 단면에배 한 값이다. 어느 임의 높이의 단면에서도 여기 작용하는 모멘트가 임의 높이 수평 단면의배 되는 곳의 단면으로 인장 철근량을 정하게 된다.뒷부벽 상단에서부터 하단 h위치에서의 부벽의 최대 계수 휨모멘트는 다음 식으로 구한다.여기서?Ⅰ 구간에 대한 설계; 변단면의 영향을 고려①②따라서, 직사각형보로 해석한다.< 유효 플랜지 폭은 일반적으로 부벽간의 간격으로 한다. >?Ⅱ 구간에 대한 설계따라서, 직사각형 보로 해석한다.? Ⅲ 구간에 대한 설계따라서, 직사각형 보로 해석한다.철근이 제한된 거리내에서 인장에 대하여 정착 해야 할 경우 갈고리를사용할 수 있다.?갈고리 이형 철근의 정착 길이< 부벽 철근 배근도 >< 상세 철근 배근도 >< 전체 철근 배근도 >
콘크리트 공시체 강도실험- 실험개요 -1.실험의 목적2. 실험 준비A. 실험 준비물B. 재료의 준비3. 공시체의 제작A. 성형 장소B. 공시체 성형C. 콘크리트 넣기 주의사항4. 실험 과정A. 10일강도 실험B. 28일강도 실험C. 실험시 주의사항5. 실험 결과A. 10일강도 결과B. 28일강도 결과6. 실험 결과에 대한 고찰A. 10일/28일 강도결과표 비교B. 결과에 대한 원인 분석C. 실험후 느낀 점1. 실험의 목적이번 시험은 시험실에서 재료의 정확한 관리와 소정의 조건 아래 시험용 공시체를 제작하고 콘크리트의 압축강도를 측정하기 위함이다.2. 실험 준비A. 실험 준비물1) 압축강도용 몰드: 지름 10cm, 높이 20cm의 원통2) 다짐대: 원형강으로 한쪽 끝이 반구형으로 둥글게 된 것3) 공구: 삽, 물통, 흙삽, 목재 부표, 자, 공시체 집게4) 저울: 0.3% 이내의 정밀도를 가진 것을 사용한다.5) 압축강도 시험기(UTM)B. 재료의 준비1) 시험 시작 전 재료의 온도는 20~25℃로 균일하게 유지해야 한다.2) 시멘트는 건조한 장소에 보관3) 균일하게 충분히 혼합해야 한다.4) 골재: 콘크리트의 각 배치에 사용되는 골재는 일정한 입도를 가진 것이 여야 한다.잔골재를 분리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잔골재를 사용하기 전에 다음 다섯 가지방법으로 골재가 일정하고, 균일한 습도를 갖도록 처리해야 한다.① 골재를 표면건조포화상태로 보관해야 한다.② 표면건조포화상태보다 약간의 자유수를 가지고 있는 골재는 사용하기 전까지그대로 보관되어야 한다.③ 포화상태의 골재는 수중에 담가 두었다가 수중에서 계량해야 한다.④ 건조상태의 잔골재와 굵은 골재의 무게를 알고 있는 것을 2개의 용기 속에 각각담아서 사용하기 전에 24시간 동안 침수 시킨다. 침수 후에 여분의 물을 따르고,골재 에 흡수된 수량을 감안 하여 혼합수량과 골재의 함수량을 측정한다.⑤ 흡수량이 낮은 (1% 이하) 골재는 건조상태로 측량하여 혼합중에 흡수하도록해도 좋다.3. 실험 과정A. 성형 장소공시체의 성형 장소는 초기24시간동안 흔들리거나 진동을 받지 않는 평탄하고 단단한곳이어야 하며, 만약 적합하지 않은 장소라고 판단될 때에는 즉시 옮겨야 한다.B. 공시체 성형a) 원통 콘크리트 공시체(지름10cm, 길이20cm) 2개에 박리제 바르기. 이 작업은시험체가 몰드에서 잘 떨어지게 하기 위해 하는 작업이다.b) 시멘트와 모래, 그리고 물을 혼합하여 모르타르를 만든다.(재료의 양 : 시멘트(1,845g), 모래(2,111g), 물(777g) - 2개 공시체 기준)c) 콘크리트 넣기d) 공시체제작 다음날 몰드에서 공시체를 분리하여 수중양생을 시작한다. 이것은원래 물로 채워져 있던 공간을 시멘트의 수화생성물로 채워질 때까지 콘크리트를포수(물로 채워진 상태) 또는 포수에 가까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함이다.C. 콘크리트 다짐시 주의사항재료분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삽 또는 흙삽으로 혼합재료들을 완벽하게 섞는다.몰드 내에서 굵은 골재의 재료분리가 적게 일어나고, 콘크리트가 좌우대칭으로균일하게 채워지도록 하기 위해 몰드의 윗면 주위를 따라 삽을 옮겨가면서 큰크리트를몰드에 미끄러뜨려서 채워야 한다.3. 실험 과정A. 10일강도 시험a) 10일후 강도를 시험한다.b) 압축강도시험기(UTM).B. 28일 강도 측정a) 10일강도 측정과 같은 방법으로 한다.C. 실험시 주의사항압축을 하기전 압축강도시험기와 공시체의 표면 이상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표면에이물질이 뭍어있어 울퉁불퉁 할 경우 실험값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3. 실험 결과A. 10일강도a) 10일강도 결과표)(07.05.07)B. 28일강도a) 28일강도 결과표(07.05.25)4.실험 결과에 대한 고찰A. 10일/28일 강도결과표 비교10일 양생한 콘크리트 공시체는 53.5ton/㎡(최대하중=16.8ton/단면적=314.5㎠)의 힘을견딜 수 있다. 28일 양생한 콘크리트는 이보다 적은 44.58ton㎡(최대하중=14ton/단면적=314.5㎠)힘을 견딜 수 있다.B. 결과에 대한 원인분석현재 사용되고 있는 표준공시체는 28일 강도로 채택하여 사용한다. 이러한 이유는 콘크리트 타설 후 일정시간까지 강도의 발현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28일 이후에도 강도는 증진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번 시험에 있어서는 10일 강도보다 28일 강도가 더 적게 나왔다. 이류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학교에서 실험했을때는 콘크리트 관리를 수조속에서 잘 했다고 했을때 콘크리트 배합상 문제가 있을수 있다. 두 번째로는 학생들이 콘크리트를 인력비빔으로 비비기 했기때문이다. 세 번째 여러번 비빌경우 골재와 시멘트의 배합이상이 생길수 있다. 네 번째로는 콘크리트를 한통에서 비비기를 했을경우는 시간상 학생들이 시간을 끌면서 콘크리트가 굳기 시작했을경우 시험체를 만들었을 경우도 있다.
강재인장강도 실험- 실험개요 -1. 서 론A. 실험 목적 --------------------------------------------------- P.2B. 실험 전 고려할 사항 ------------------------------------------- P.2C. 시험기기 및 재료 ------------------------------------------ P.2 ~ 3D. 실험 방법 ------------------------------------------------ P.3 ~ 42. 본 론A. 이론적 배경 ---------------------------------------------- P.4 ~ 5B. 실험 결과 ------------------------------------------------ P.5 ~ 7C. 결과의 이해 ----------------------------------------------- P.7 83. 결 론A. 결론 및 고찰 ------------------------------------------------- P.81. 서 론A. 실험 목적기계적 성질은 재료가 외력에 갖는 능력이므로 이를 알기 위한 시험을 보통 재료시험이라 하는데 이 재료시험을 공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표준화된 시험법을 적용하여야 한다. 특히 구조적 이용에 필요한 재료의 선택은 그것의 기계적 성질에 의존하므로 이들의 성질을 측정하고 시험으로부터 얻어진 자료를 바탕으로 안정성과 경제성을 고려하여 설계에 쓰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이들 시험에서 얻어지는 자료의 중요성과 이를 이해하는데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인장시험은 서서히 가해지거나 정적하중과 같은 힘의 재료적 저항을 알아보는 것이다. 물론 기계적 성질에는 경도와 굽힘 충격, 피로시험 등이 있지만 이러한 기계적 성질에서 가장 기본적인 강도를 알아보는 시험으로 비교적 간편히 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다만 시험은 일반적으로 정해진 모양이나 치수가 있어 실제 사용되는 재료는 그 모양이나 외력의 작용조건이 실험과 다소 다를 경우 다른 성질을 가질 수 도 있다. 그러나 실제 설계에 있어서는 시험의 강도로부터 실제 강도를 어느 정도 계산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우리는 이 인장실험을 통해 이론적인 부분을 경험을 통해 체득할 수 있다.B. 실험 전 고려할 사항1) 재료의 기계적 성질을 온도와 습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가?2) 시편은 KS 규격에 맞는 것을 사용하고 있는가?3) 시편을 물릴 때 예비하중과 비틀림 현상을 제거 하였는가?4) 시편의 표점거리측정과 풀림에 있어서 그 위치를 정확히 했는가?C. 시험기기 및 재료1) 시험기기2). 모니터3) 시편D. 실험 방법1) 인장 시험기에 시편을 고정할 때 압축력이 생기지 않게 한다.2) 시험기를 일정한 속도로 작동시켜 하중을 가하면서 시편의 변화를 관찰한다.(시편의 가운데가 오목 들어가기 시작한다.)3) 컴퓨터를 통해 데이터를 얻은 뒤 하중과 변위의 관계 그래프를 그리고 탄성구간과 인장강도 파단강도 등을 알아낸다.4) 구조해석을 통해 이론값을 알 수 있다면 실험값과 비교를 통해 오차를 계산해본다.2. 본 론A. 이론적 배경1) 탄성 : 외부 힘에 의하여 변형을 일으킨 물체가 힘이 제거 되었을 때 원상태로되돌아가려는 성질2) 소성변형 : 고체에 외부로부터 힘을 가하면 형상이 바뀌지만, 탄성의 범위 내에서는외력을 제거하면 다시 본래의 형상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영구히외형을 바꾸려면 탄성한계 이상의 힘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즉, 소성변형을 하려면 탄성변형 범위 이상의 외력을 가해야 한다.3) 탄성한도 : 하중을 제거하면 본래의 길이로 돌아오는 길4) 비례한도 : Hooks's rule 이 적용되는 응력의 상한 값5) 항복점 : 하중을 증가시키지 않아도 시편이 늘어나는 현상이 일어나는 점6) 항복강도 : 항복점에서 또는 탄성계수의 기울기를 0.002만큼 그대로 이동하여하중그래프와 만난 하중을 원래의 단면적으로 나눈 값을 정의한다.7) 인장강도 : 항복점을 넘어 하중을 증가시키면 변형이 크게 증가하게 되고 최대하중을지나면 시편의 이부에 국부적인 수축현상이 생기며 하중도 감소하게 되며원래의 단면적에 대한 최대하중을 인장강도라 한다.8) 파괴강도 : 응력은 최고하중 점을 초과한 후는 변형의 증가와 함께 감소한다.인장강도 즉, 최고하중 점의 공칭응력은 파단 점의 공칭응력보다도높아진다.9) 연신율 : 쇠붙이 따위가 끊어지지 않고 늘어나는 비율이다. 최대로 늘어난 길이와원래의 길이의 차를 원래의 길이로 나누어 그 값을 퍼센트로 나타냄B. 실험 결과1) 응력-변형률 선도a) 첫 번째 시편 실험(07.06.01)b) 두 번째 시편 실험(07.06.01)2) 표2실험전실험후폭(W)15㎜L/4인 지점L/3인 지점14㎜13㎜길이(L)180㎜(235㎜)185.35㎜(240.35㎜)늘어난 길이(δ)5.35㎜-항복강도-1.538 ton최대하중-2.014 ton3) 표3표점거리2121항복점57.858.4인장강도65.163.9파괴하중2.0142.508연신율26.2%31.0%3) 탄성하중구간4) 최대하중이 발생하는 구간5) 파괴강도구간D. 결과의 이해인장시험에서 응력-변형률 곡선의 시점에서 나온 데이터는 공칭응력-공칭변형률 곡선을 타나내며 항복강도 이후에는 하중이 줄어들어도 변형률은 증가하게 된다. 이는 재료의 단면적을 일정하게 계산을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실제현장에서는 응력 또한 계속 증가하게 될 것이며, 이것을 나타내주기 위해서 진 응력-진변형률 선도로 표현을 해줘야 한다. 그리고 탄성에서 소성으로의 전이가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금속에 있어서는 응력-변형률 곡선이 직선에서 벗어나는 점을 항복점으로 정한다. 이것을 비례한계라 한다. 우리는 실험을 통한 그래프에서 하중 2.014ton이 걸렸을 때 최대응력점인 인장강도 65.1㎏/㎟ 를 할 수 있다. 시편을 가지고 해석을 할 때 이러한 해석 값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① 불균일한 요소현상이나 내부의 불균일 점은 응력집중의 발생이나 계산 값의 차이를가져온다.② 인장시험 시 하중의 속도, 하중의 증가량, 주위온도, 시편의 가공 상태에 따라다르게 나타난다.③ 이상적인 실험의 데이터이므로 오차가 생겼다④ 시편의 물림에 있어서도 그 위치에 영향을 받는다.⑤ 시편을 물릴 때 예비 하중이 남아 있었다.3. 결 론A. 결론 및 고찰이번 실험에서 우리는 재료가 하중이 걸릴 때 탄성변형에서 소성으로 그리고 파단 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번 실험을 요약해본다면, 소성변형이 시작된 후 계속적으로 소성변형을 일으키기 위해 응력이 증가하다가 어느 점 이후로 감소한 후 파괴된다. 최대 응력점)은 재료의 인장강도로서 이점까지의 게이지 길이 부분에 나타나는 모든 변형은 균일하다. 이후에는 변형은 시편이 수축된 중심부위에 집중하게 된다. 이 현상을 네킹이라고 하며 결국 파괴는 이 네킹 부분에서 일어난다. 구조물에서 인장강도 최대응력점에 해당되는 응력이 가해졌을 때는 이미 소성변형이 일어나 구조물의 기능을 상실했을 때이므로 설계시 재료강도는 항복강도를 뜻한다.
콘크리트 압축강도실험- 실험개요 -1.실험의 목적모르타르강도 시험의 중요성2. 실험 준비물3.실험 과정A. 실험체 성형B. 7일강도 실험C. 28일강도 실험4.실험 결과A. 7일강도 실험B. 28일강도 실험5.실험 결과에 대한 고찰A. 7일,28일 실험결과 비교에 대한 느낌1. 실험의 목적a) 건축재료실험의 의의오늘날 건설재료는 매우 다양하고 점점 발전함에 따라 재료의 물성, 상태, 치수 및 형상 등이 구조물의 설계 및 시공에서 요구되는 제 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는가의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건설재료는 그 용도에 따라 구조재료와 마감 재료로 크게 구별할 수 있으며, 그 환경조건에 의하여 강도, 내구성, 내화성, 방수성, 음향적 성질, 열적 성질 및 미관 등의 성질이 요구되며, 더욱이 자연조건이나 이용조건에 따라 중시해야 할 점이 있어 우리가 재료의 적부 또는 양부를 판단할 경우 그 재료가 갖는 여러 가지 성질이나 중요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b) 실험의 목적모르타르의 강도 실험은 표준사를 사용하여 제작한 공시체의 강도 발현상태를 아는 것이다. 시멘트의 강도 특성은 시멘트의 품질관리상 필요할 뿐만 아니라 콘크리트의 배합설계에도 필요하며, 이 시험에 의해서 역학적 성질 등 많은 성질을 예측 할 수가 있다.2. 실험 준비물① 모르타르 압축강도용 혼합기② 저울: 2kg 이상, 감도 1g③ 표준체: No 5o체, No 30체④ 메스실린더: 250ml , 500ml⑤ 몰탈몰드: 50.8mm 입방체⑥ 다짐막대⑦ 다짐봉⑧ 흙손 및 나무망치와 고무제 스크레이퍼, 시멘트 칼⑨ 습윤양생 주조⑩ 온도계, 습도계⑪ 캘리퍼스⑫ 시멘트 및 표준사⑬ 모르타르 압축강도 시험기3. 실험 과정A. 실험체 성형a) 입방체 모르타르 시험체 몰드(5cm×5cm×5cm)에 박리제 바르기. 이 작업은시험체가 몰드에서 잘 떨어지게 하기 위해 하는 작업이다.b) 시멘트와 모래, 그리고 물을 혼합하여 모르타르를 만든다.(배합비: 시멘트(170g): 모래(417g)= 1:2.45, 물은 시멘트의 48.5%인 약 83g)c) 시멘트를 몰드에 넣는다. 다짐봉을 이용하여 몰드 안에 있는 시멘트를 다져준다.d) 몰드 윗면에 밀려나온 모르타르는 흙손으로 밀어 넣음으로 표면을 고르게 한다.e) 몰드제작 다음날 몰드에서 시공체를 분리하여 수중양생을 시작한다. 이것은원래 물로 채워져 있던 공간을 시멘트의 수화생성물로 채워질 때까지 콘크리트를포수(물로 채워진 상태) 또는 포수에 가까운 상태로 유지하기 위함이다.B. 7일강도 시험a) 7일후 강도를 시험한다.b) 압축강도 시험기(UTM)를 이용하여 7일 압축강도를 측정한다.B. 28일 강도 측정a) 7일강도 측정과 같은 방법으로 한다.콘크리트 압축강도실험3. 실험 결과A. 7일강도a) 7일강도 결과표)(07.03.29)B. 28일강도a) 28일강도 결과표(07.04.20)4.실험 결과에 대한 고찰a) 28일 강도측정의 의미현재 사용되고 있는 28일 표준공시체를 콘크리트의 구조체 강도로 채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로 콘크리트는 타설 후 일정시간까지 강도의 발현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28일 이후에도 강도는 증진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수중양생한 표준공시체의 28일강도는 현장에서 타설된 구조체의 28일강도 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지만, 구조물이 실제 사용되는 이후의 준공시에 콘크리트 강도는 일정부분 증진되므로 구조체의 강도가 재령강도를 넘을 신뢰성이 있으며 많은 실험을 통하여 품질관리가 이루어진 경우의 표준양생 공시체의 28일 강도는 구조체의 실제 사용시 강도로 보아도 신뢰성이 있음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둘째로 실질적으로 구조체와 동일조건에서 콘크리트 공시체를 양생한 후 이를 측정하여 구조체의 강도로 채택하는 것은 가장 신뢰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콘크리트의 품질관리 측면에서 강도의 발현특성이 재료적인 요인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환경적인 요인에 관한 것인지에 대한 불확정요인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콘크리트 강도를 신뢰할 수가 없는 단점이 있다. 또한 실질적인 콘크리트의 강도는 구조체가 실제 사용되는 시점에서의 강도지만 콘크리트는 반제품적인 성격의 재료이고 공사가 완료된 시점에서 콘크리트의 강도를 평가하는 것은 공사 중 콘크리트의 강도를 모르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셋째로 구조체의 코아 콘크리트를 채취하여 강도를 평가하는 방법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구조체의 위치별 콘크리트 강도가 다르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채취하여야 하지만 실질적으로 코아콘크리트를 채취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되어 있다. 또한 코아콘크리트 채취시 기계적인 진동으로 인한 콘크리트의 강도가 저하하는 특성이 아직까지 명확히 규명되고 있지 못한 이유도 있다.
훈민정음 약사(略史) summary - 金奎勝1. 서언훈민정음의 변천사를 편의상 4기로 나누어보면, 제1기인 훈민정음 시대는 세종대왕으로부터 연산기까지로 보고, 제2기는 최세진이 「훈몽자회(訓蒙字會)」를 지은 중종 22년으로부터 시작하여 고종 30년 계사(癸巳)까지의 약 300년동안으로 보며, 제3기의 국문시대는 고종 31년 갑오(甲午)로부터 융희(隆熙) 4년 경술(庚戌)까지의 약 15,6년간으로 볼수 있으며, 제4기 한글시대는 웅희 4년 경술로부터 시작하여 해방까지의, 약 35년까지로 볼 수 있다.2. 훈민정음 이전시대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문자표현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실황(實況)으로 볼때 한문자(漢文字)나 또는 약체(略體)로써 표현되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향가(鄕歌)나 중국사람이 우리말을 기록한 「계림유사(鷄林類事)」등등, 여러 사적에 기록된 지명?인명?관명 등에 관한 기록들 모두 그 내용을 한문자를 빌어서 발표하였으며, 신라 설총이 방언으로 구경(九經)을 해석하였을때 쓰인 표기법은 이른바 1)이두(吏讀)였다. 이것은 이씨조선 초기에 편찬된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에 이미 이용되었고 비명(碑銘)이나 종명(鐘銘)에서도 볼수 있다. 또한 토(吐)라고 하는 것이 경서 같은 한문을 읽는 데에 붙여쓰여있기도 했다. 이와같이 이두(吏讀)나 토(吐)가 역시 한문자 또는 그 약체(略體)로써 표시된것음을 보여주며 따라서, 훈민정음 이전의 우리말의 연구는 한문자(한문자)의 연구에 의거하여 해명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말의 고대연구에 있어서 한문자의 연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3. 제1기 훈민정음 시대훈민정음 시대는 세종대왕 25년(서기 1443)에서 중종 21년(1526)까지 약 80년간으로 보았다. 즉, 그 창제로부터 시작하여 제 1차 고난을 받은 때까지라고도 하겠다.세종실록(권102) 12월조에서 보면 훈민정음은 세종대왕께서 친제하셨다는 것과, 그 총자수가 28자수이었다는 것과, 그 제작의 기원을 고전에 의방하였다는 것과, 초?중?종의 3부로 그 성을 분하였다는 것과, 또 3부를 합하여야 글자를 이룬다는 것과, 무엇이나 못 적을 것이 없이 다 쓸 수 있다는 것과, 훈민정음이라는 명칭을 처음 쓴 것과, 또 하나 더 한문이 아닌 우리 글을 언문이라고 통칭하였다는 사실을 알수있다.세종대왕 26년에는 훈민정음 제작에 대하여 7가지 요지로 반대하는 장문의 상소가 올라왔다. 당시 조선은 지성으로 사대모화를 하거늘, 새로 언문을 제작함은 국가의 동문동궤의 시기에 있어서 큰 수치이며, 중국 이외의 문자가 있다는 것은 夷狄의 일에 속한다. 그리고 이두는 그래도 한문자에 의거했지만 언문은 하나도 한문자에 근거한게 없다. 또한 언문의 창제 사용으로 형옥이 잘 다스려질 것이라고는 하지만, 형옥이 잘 다스려지고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그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형리의 사람됨에 있으며, 국가의 일에도 완급이 있는데 어찌하여 언문 같은 것의 제작에 집념하시는지, 언문을 배우게 한다면 누가 성인의 학문을 배우는 자가 있겠느냐며 훈민정음 창제에 반대하였다.하지만 세종은 가령 이두같은 것을 보아도, 그 제작된 본의가 역시 한문자만 가지고는 우리나라 어음에 맞지 않으므로 우리 백성 전부에게 편리하게 하고자 지은 것이다. 그리고 언문을 제작함도 그 뜻은 우리 전백성이 편리하게 하고자 함이라며 민중 전부에게 이편(利便)을 준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역설하며 반대의 무용함을 깨닫게 하시었다. 또 훈민정음의 사용을 널리 보급하시기에 갖은 수단을 연구하시어 금중(禁中)에는 정음청을 두시어 훈민정음에 해례를 첨가시키었고, 또 27년에 문학?어학?역사?지리?제도의 각 방면에 있어서 당시 국가 체면상으로도 중요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제작하게 하시었다.세종 28년 병인(丙寅) 9월에는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는데 세종실록(권102)에서 보면 세종대왕의 어제서와 초발성(初發聲)과 중성(中聲)을 일일이 그 음을 표시한 점으로부터 훈민정음의 창작 동기를 엿볼 수 있다.세조 때에는(1456~1494) 재위 13년간에는 불경의 언해가 특기하여, 『간경도감판』의 「능엄경」, 「법화경」, 「원각경」, 「금강경」등의 우리 고어를 보는데 가장 귀중한 문헌들이 만들어졌다.성종 때에는(1470~1494) 두시언해 남명집등의 언해와 악학궤범,동국여지승람등 좋은 서적이 발행되었지만 훈민정음 그 자체적 발전상엔 별로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다.연산군 때에는 무오(戊午)?갑자(甲子)의 양사화(兩士禍)가 있고, 곧 이어 정음자의 사용을 금지하였으니, 이때에 남자의 손으로부터 정음 사용이 떠나게 되었으며, 소위 이라 이름의 기원도 지어졌으리라 보여진다.종합하여 보면, 세종대왕께서는 훈민정음을 그 반대많은 가운데서도 능히 창제하시었고, 또 각 방면으로 보급하시었다. 그 후에 세종,성종,이조의 언해사업에 의하여 계속되어 오닥, 연산군 때에는 크게 수난을 당하였다고 불 것이다.4. 제2기 언문시대(諺文時代)임진왜란을 전후로 나누어 볼 때, 전기는 중종 22년으로부터 선조25년 임진년(壬辰年)까지로 보고, 후기는 선조 26년 계사에서 고종 30년 계사까지를 후기로 본다.전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일은 「훈민정음」으로서 창제된 것이 「훈몽자회」로서의 실용화에 이응(移應)한 것이다. 두 책을 차이점을 보면 첫째, 명칭상으로 보아, 훈민정음이란 이름을 훈몽자회에서는 한 곳도 사용하지 않고, 다만 언문이란 제목 밑에서 논하였으며 둘째, 훈민정음의 어제서에서도 분명히 28자라고 밝혀 놓았음에도 훈몽자회에서는 27자라고 하며 ‘ㆆ’자를 제거해버렸다. 셋째, 초성과 중성에 관한 호칭이 다르며 넷째, 종성 즉 “받침”으로 쓰는 글자에 있어서 차이가 나는데 훈몽자회에서 종성으로 사용될 자를 제한하였다. 다섯째, 초성과 중성의 순서를 바꾸어 배열하였는데 훈민정음과는 정반대의 순서로 배열되다시피 하였다. 「훈몽자회」의 비거는 실용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여진다.후기에서의 특징들은, 첫째로, 문헌상의 판이다. 고어의 어휘의 취사에 있어서 임진난을 전후한 차이는 확실히 현저하다. 둘째, 순전히 훈민정음만을 잡아 가지고 순전히 논한 책의 출현이다(「훈민정음운해」&「언문지」) 셋째, 한문도 좀 더 조선화하기 위해서 학습에 관한 교과서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넷째, 가곡류가 성행했고, 다섯째, 역어관계를 논했으며, 여섯째, 운서와 관계가 깊었고, 의서,농서 방면에서도 관계를 찾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전설 소설류등이 많이 나타났다.이상을 종합해 보면 문학?어학?역학?농서?병서?총서의 제류에서 우리말과의 관계를 찾게 된다. 즉, 제2시대의 전기는 훈몽자회와 훈민정음과의 비교에서 현저한 것이 있고, 그 후기에는 훈민정음운해와 언문지의 재고에 의하여 드러날 것이 있다고 본다. 연대상으로만 본다면, 제2시대의 후기가 가장 긴 기간이지만, 훈민정음 그 자체에는 그 만큼의 발전을 가지지 못하였다. 모두 훈몽자회의 소시대로 지켜온 데에 불과하다고 보겠다. 다시말하면, 정신적으로 웅결한 맛이 없어지고 실제 사리의 편으로 혹은, 고상한 맛이 없어지고 점차 좁아 들었다고나 말할 것인가 하는 그런 형편으로 보여진다.선조조 말년은 난후 수습에 골몰하여 한문학습의 교과서를 정리하는 정도로 지냈고, 광해군 때에 들어서면서 의학 방면에 현저히 행하게 되어서 「동의보감」같은 좋은 간행이 있었다. 인조,효종,이조때는 병서나 농서방면에서 우리말이 극히 단어적으로 인용되었고, 숙종때에 오면 우리말은 다만 역어관계의 서적이나 운서에 인용하여, 그 음이나 현토하는 그런 정도에 사용하는 문자로 나타날 뿐이었다. 영조때에 들어오면 「반계수록」이나 「산림경제」와 같은 방면의 서적에 이용되었고 정조때 활자를 주조하면서 경서의 언해방면에 치중하여 우리의 문자를 이 방면과 역어에서 엿볼 수가 있다. 이 영?정 2대의 긴 동안을 거치어 순조때에 들어오면, 그 24년에 언문지」라는 특기할 만한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