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사상 - 仁禮를 수호화기 위해 공자는 도덕윤리의 측면에서 "仁"의 학설을 제시했다. "仁"이라는 어휘 자체는 공자 이전부터 이미 일상적으로 사용되어왔지만 철학범주로서 제기된 것은 공자에 의해서였다. 공자가 내놓은 "仁"은 이후 중국 철학사에서 중요 범주의 하나가 되었다. 『논어』에서 "仁"에 대한 언급이 아주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공자가 안연의 물음 에 답한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은 "禮"와 "仁"의 관계를 개괄하고 공자의 "仁"학설의 기본 내용을 설명해준다.안연이 인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 단 하루라도 자 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한다면 온 세상 사람들이 그를 어진 사람이라고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克己"란 자기 억제이며 "復禮"는 "禮"에 부합되지 않은 언행을 "禮"의 원칙에 부합되도록 한다면 이것이 바로 "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克己復禮"를 이룬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어진 사람이라고 부르게 된다는 것이다.안연은 한걸음 더 나아가 "克己復禮"의 내용이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나아가지 말라"고 하였다. "仁"의 원칙에 부합되는 사람이란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면에서 "禮"의 범위를 넘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여기에서 말하는 "禮"란 주례이며 동시에 서주 노예제 사회의 등급제도인 것이다. 이로써 공자가 제시한 "仁"이란 일종의 도덕원리를 이용하여 "君子"들이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 하는 모든 것을 자제케 하고 이들이 주례의 등급규정을 철저히 지키고 예를 범하는 행위를 방지 하려고 한 것임을 알 수 있다.공자는 당시 통치계급 내부의 귀족 사이에서 주례가 훼손당하고 위를 범하는 혼란과 자기가 섬기 던 임금이나 부모를 죽이는 등의 "無道"한 행위가 예사로이 발생하는 데 대해 유심주의적 관점에 서 그 원인을 살펴, 이를 귀족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고 보았다. 이리하여 공자는 "仁"을 또한 귀족 사이의 상호관계를 처리하는 도덕원칙으로 삼아 "仁"이란 곧 "사람을 사람함"이라고 강조하였다. 공자는 귀족들에게 자제와 상호협조를 통해 피차간의 모순을 조화시 킬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 자기 억제와 상호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공자는 "仁"을 실행하는 기본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무릇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려고 하 면 남을 세워주고 자기가 이루고자 하면 남을 이루게 해준다." 또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 게 하지 말라"고도 하였다. 이 두 구절의 의미는 자기가 이루고자 원한다면 다른 사람도 이룰 수 있게 해야 하며,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자의 제자 증삼은 "忠恕" 두 글자로써 "仁"의 이 두 원리를 개괄하였는데, 이는 공자의 본래의 생각과 부합된다. 충서의 도는 공자가 주장한 仁學說의 중심사상을 꿰뚫는 것이다.공자의 '충서의 도'는 역사적으로 착취계급과 그 대표자들에 의해 계급모순을 은폐하고 인민의 투 쟁정신을 마비시키는 부식제로 이용되어왔다. 이들은 온 힘을 다하여 "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는 소위 "용서의 도"를 모든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최고의 미덕"으로 선전하였고 나아가 초계급적인 "인류애" 또는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안다"는 식의 "위대한 덕성"을 고취하 는 한편, 이러한 도덕관념을 노동인민에게 적극적으로 부식시켜왔다. 이처럼 저의가 담긴 왜곡된 선전 아래 공자는 모든 사람을 사랑할 것과 남을 나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도덕유형을 만들 려고 한 것 같다. 사실상 공자의 "남"이란 다른 귀족을 말하는 것이지 노동자나 노예까지 포함하 는 것은 아니다. 공자는 다음에서와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군자이면서 어질지 못한 이는 있 을지라도 소인이면서 어진 사람이란 없다" 또 "군자가 도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사람을 부리려 든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공자에게 仁愛의 추구란 통치계급의 일 로서 통치대상인 노동자를 어떻게 지배, 복속시키느냐의 문제일 뿐 무엇이 인애이며 도덕인가를 밝히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의 忠恕란 노예소유주인 귀족들 사이의 忠恕이지 노예소유주와 노예 사이의 忠恕는 결코 아니며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는 오로지 착취제도와 착 취자만 옹호하는 것일 뿐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한 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노예제를 지지한 공자로서는 그때까지 다음과 같은 생각은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곧 그 자신이 노예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더러 노예가 되도록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며 또 그 자신이 착취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착취를 받아들이도록 하지도 않 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적대계급 사이에는 "忠恕"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피압박 노동인민으로서 말한다면, 소위 "忠恕"란 철두철미한 기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