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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리니 트라잔 서신
    플리니와 트라잔 사이의 서신111년 소 플리니는 비시니아 총독에 임명되었다.플리니는 로마 법률과 전통을 깊이 숭상하던 인물이었다. 비시니아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살고 있어서 플리니는 이들의 처리에 대해서 고민을 하였다. 플리니는 기독교인들에게 세번 개심할 기회를 준 후에 계속 고집하는 자들은 처형을 하였다.플리니가 당면했던 문제는 과연 기독교신자들은 뚜렷한 범죄 사실이 있을때에만 처벌받아야 하는지 , 아니면 '기독교신자'라는 사실 자체가 범죄를 구성하는가 하는 문제였다.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던 플리니는 일체의 법적 절차를 일단 중지시키고 트라잔 황제의 지시를 받기 위해 서신을 띄웠다. 황제의 답변은 간단했다. 그들에 대한 일반적인 규칙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신고가 들어오면 그들을 처벌하되 배도하면 용서해 주고 , 익명의 신고는 받지말라고 하였다.이러한 트라잔의 정책들은 비시니아의 경계를 넘어서, 그리고 트라잔이 죽은 오랜 후에도 계속 성행되었다. 제2세기, 그리고 제3세기 일부에 이르기까지 제국 전체에 걸쳐 기독교 신자들을 솔선하여 색출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당국자들앞에 소환되었을때에는 이들을 처벌해야 하는 것이 제국의 공식적 정책이었다. 이는 이그나티우스의 일곱 서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비두니아(Bithynia)의 총독이었던 플리니의 서신은 초대교회 예배에서의 찬양의 모습(교송)을 보여준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위하여 모일 때 무엇을 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트라얀 황제에게 보낸 서신에서 자신이 발견한 사항을 기술하였는데, 특별히 그는 기독교인들이 찬양하는 모습에 대해서 이렇게 보고한다“...그들은 어느 일정한 날 날이 밝기 전에 모여서 그리스도라는 신에게 응답형식 또는 교송으로 찬양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여덟째로, 플리니의 서신은 기독교인들이 예배 시간에 일종의 서약을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어떠한 범죄도 저지르지 않고, 절도나 강도, 간음 등을 삼가겠다고 서약함으로써 굳게 결속되어 있을 때 처음부터 그를 사랑한 사람들은 끝까지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죽은 지 사흘째 되는 날에 부활해서 나타났는데, 이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이미 이러한 무수히 많은 놀랄만한 일들을 예언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이름을 따라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무리들은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라는 기록이 있어서 후대의 기독교인들이 첨가한 부분(기울임체와 밑줄 친 부분)이 있다는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기적을 행했다는 사실과 예수가 유대인 지도자들의 선동으로 빌라도의 결정 아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그가 죽은 후에도 광범위하고도 지속적인 추종자들이 있었음을 증언해 주고 있다.* 요세프스의 유대-로마 전쟁에 대한 기록은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여 그 정확성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그는 매우 신뢰할만한 역사가로 인정받고 있는데, 정치적인 문제와 전쟁에 관심이 많았던 요세프스가 예수 생전에 정치적으로는 미미한 존재였던 예수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쉽다.② 1세기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기록* 타키투스의 기록에는 ‘네로는 죄인들을 묶어두고 혐오스러운 행위(주8) 때문에 미움을 받는 무리들 즉 대중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격렬한 고문을 가했다. 그리스도는 -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이 사람의 이름을 따라서 붙여진 것인데 - 티베리우스의 통치 기간에 로마의 행정관이었던 빌라도의 손에 극단적인 형벌을 받았다. 그리고 매우 해로운 미신으로 간주되던 신앙이 당장에는 방해를 받았지만 그 악이 발생한 최초의 장소인 유대 지방에서 다시 일어났고, 심지어 로마에서도 생겨났다. 그래서 유죄를 인정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 최초로 체포가 행해졌다. 그 때 그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엄청난 사람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도시방화죄 때문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증오심(주석8 참고) 때문이었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빌라도에 의해 처형을 당한 예수의 존재와 예수의 사후에 그에 대한 신앙이 계속 이어졌으며 많은 박해를 받았음이 확인되고 있다.* 주8 :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지시심으로 널리 암송되었던 부활신앙 신경(고린도전서 15장 3절에서 8절까지 나오는 부활에 대한 목격담. AD 32-37)(주4)과 학자들에 의하여 ‘Q’문서로 지칭된 ‘예수어록’(주5) 그리고 사도 바울의 서신들(AD 50년 경)이 그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의 가장 학식이 높은 랍비인 가말리엘의 수제자로 철학과 신학에 두루 조예가 깊은 사도 바울은 투철한 부활신앙에 입각하여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며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정리하여 복음과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며 설교나 서신으로 전했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들이 점점 늙어가고 결국 핍박에 의해 순교하자 더 이상 복음 전파를 그들의 구전에 의존할 수가 없었다. 이 진리를 만세에 전하고 만방에 전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생애와 말씀을 기록한 복음서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주4 :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그 후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뒤에 다시 열 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또 한번에 오백 명이 넘는 교우들에게도 나타나셨는데 그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 뒤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또 모든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삭동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주5 :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두 복음서가 참고자료로 삼은 마가복음에 나오지 않는 서로 일치하는 예수의 말씀들이 나온다. 따라서 학자들은 두 복음서 저자가 공히 참고한 문서가 있다고 가정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출처’를 뜻하는 ‘Quelle' 줄여서 ‘Q’라고 하는 ‘예수어록’이다.이렇게 해서 예수가 부활하신 후 40년 정도 지난 AD 70년경에 최초로 쓰여진 것이 마가복음이었다. 마가는 한 때는 바울을 수행하였고 주로 베드로운 시기에 작성된 이 신경과 편지는 그것이 사실인지를 당대인이 확인하려면 얼마든지 확인해 볼 수 있는 때에 쓰여진 것이다. 또한 이렇게 이른 시기에 전설이 형성될 수는 없다.* 제자들은 물론 초기 교회 신도들에게 부활 신앙이 그들의 온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고 그들의 삶을 전폭적으로 변화시켰으며 교회가 시작되게 된 것은 그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여러 사람이 같은 환상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또 예수가 처형된 후 제자들도 예수에게 실망을 하고 있었고, 바울은 예수를 반대하던 사람이었으니 예수의 환상을 볼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만약 사람들이 본 것이 환상이라면 예수의 시체는 무덤 속에 있어야 한다.(4) 정황 증거 - 학부에서는 화학사를 전공하고 역사학박사 학위까지 가지고 있는 철학박사 모어랜드(J. P. Moreland)와의 인터뷰 - 그 당시에 일어난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의 정황이 예수 부활의 사실성을 입증한다.* 제자들은 죽기까지 믿음을 지켰다.* 야고보와 바울 등 회의론자들의 회심* 유대인의 삶에 혁명을 일으켰다. 한 명도 아니고 최소한 만 명이 넘는 유대인 공동체가 사회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수 세기 동안 자신들을 지탱시켜 오던 다섯 가지 핵심 제도와 이념들(제사, 율법, 안식일, 셋으로 나뉠 수 없는 하나님 관념, 정치적 메시아 관념)을 기꺼이 포기하게 했다. 그것은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교회의 출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건이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성령 체험)필자는 3장에서 2000여 년 전에 있었던 예수의 부활 사건에 대하여 그것이 역사적 진실임을 입증하려고 애썼다.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 가장 자세하고 권위 있는 증언은 복음서의 기록일 것이다. 따라서 4장에서는 이 복음서의 기록이 어느 정도의 신빙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출처] 리 스트로벨이 조사한 예수의 부활 사건 |작성자 산소같은3. 빈 무덤스텐리 존스라는 영국 선교사가 잃어버린 것처럼 지나간 일일 뿐이었고 그들의 스승은 자기조차 구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고 처참하게 죽은 것이다. 그래서 잔뜩 겁먹고 숨어 있는 그들인데 무슨 후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생각을 했겠으며 그런 용기가 나겠는가? 그렇다고 제자로서 마지막 의리를 지키기 위한 행위로도 볼 수 없다. 예수의 시체가 십자가에 처형된 다른 죄수들처럼 함부로 방치된 것이 아니라 예수를 존경했던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부자의 무덤에 잘 안치된 상태인데 그런 모험을 하면서까지 무덤을 옮기려고 할 이유도 없다.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의 시체를 훔친다는 것은 물리력으로도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예수의 시체가 장사된 동굴무덤 앞에는 경계병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또 한 복음서에 의하면 무덤을 막은 바위문은 봉인까지 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적자들은 예수가 생전에 자신이 죽은 후에 부활하리라고 말한 것을 알기 때문에 전혀 가능성이 없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경계망을 뚫고 시체를 훔치려면 경계병이 모두 잠들었거나 무덤을 지키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는 등 경계를 게을리 했고, 아니면 경계병과 무력 충돌을 하여 경계병 모두를 제압하였으며, 그도 아니면 경계병 모두를 매수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억측일 따름이다. 경계병들이 경계를 게을리 할 경우에는 그 처벌이 매우 엄중하였기 때문에 그랬을 리도 없지만 설령 그랬다 해도 무덤을 막고 있는 큰 돌을 굴려서 입구를 열고 시체를 옮길 때 전혀 발각되지 않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계병 모두에게 수면제라도 먹였단 말인가? 이렇게 성공하려면 경계 상태를 먼저 치밀하게 살펴서 기회를 포착해야 하고 실패할 경우? 〈?한 판 붙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 유약한 제자들이 이렇게 용의주도한 작전을 펼칠 리가 없다. 같은 이유로 무력 충돌을 꾀할 리도 없다. 또 매수할 돈은 과연 있었겠으며 경계병들이 쉽게 매수당할 리도 없다. 만에 하나 제자들이 매수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 편에 서기보다는 그이다.
    인문/어학| 2009.06.09| 15페이지| 1,500원| 조회(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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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양사] 테이레시아스를 읽고... 평가A+최고예요
    역사를 위한 역사 들추기....나라는 존재는 워낙 책을 읽는 것을 싫어한다.고작 평소에 양서라고 읽는 것이 성경책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서 책을 읽는 리포트를 쓰면 ‘아~ 이걸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부터 떠오르는 것이 나 자신이다. 이후로는 리포트를 쓰기위해서 책과의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처음 교수님께서 권해주신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라는 책을 대할 때도 그랬다. 그땐 그저 고리타분한 역사를 담은 책일거라는 막연한 편견아닌 편견으로 책장을 열어 젖혔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를 위한 고루한 텍스트가 아니었다. 머릿글부터 정해진 역사의 틀을 거부하는 새로운 시각을 열기 위한 하나의 시도란 것을 알 수 있었다.처음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테이레시아스라는 인물을 등장시킨 것을 보곤 또 무슨 있지도 않았던 그리스 로마신화에 있는 시덥 잖은 우상을 등장시켜 미화하려나 하고 주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봤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나의 기우에 불과했다. 저자는 테이레시아스를 통해서 자신의 역사를 보는 관점과 이 책에서 어떤 식으로 역사 들추기를 할 것 인가에 대한 발언을 던지고 있었다.테이레시아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서 남자로도 살아보고, 여자로도 살아본 양성자였다. 그런 테이레시아스는 제우스와 헤라의 힘겨루기에 눈이 멀게 되는 불운을 맞는다. 이것이 미안하고도 불쌍했던 것인지 제우스는 테이레시아스에게 예언의 능력을 주게 된다. 지은이 주경철 교수는 남자와 여자, 신과 인간, 혹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등 양면성의 차원를 넘나들며 우리의 눈을 뜨게 하는 테이레시아스의 역할이 바로 역사가의 책무가 아니겠는가하는 역사와 사회 속에 숨어 있는 참 역사 들추기를 하려 한다는 신호탄을 던지고 있었다. 바로 여기에서 테이레시아스를 통해 지금의 역사, 역사가에게 시사하는 것들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일단은 우리가 기존에 통념적인 연대기 순으로 이 나라는 이랬고 저 나라는 저랬고 하는 식의 텍스트가 아니었다는 것이 나처럼 책을 읽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이면에서는 교수님께 참 감사드린다. 마치 단편소설들을 잘 엮은 듯한 느낌에 한 장 한 장 읽어 나갔다.이책은 1부 와 2부로 책을 반가름 하고 있었다.‘제1부 역사의 발언’ 과 ‘제2부 문학속의 역사’ 로 말이다. 나는 왜 저자가 책을 이런 큰 제목 두 가지로 나눴는지에 대해서 먼저 생각 했다. ‘역사의 발언, 역사의 발언이라... 문학속의 역사라...’ 고심끝에 미약하나마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제1부 역사의 발언’ 이라고 이름 한 이유는 역사자체에게 발언을 할 기회를 주자는 의도인 듯 했다. 이때까지의 대부분의 역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실의 실제 목소리보다는 역사가들에 의해 재편성되고 만들어진 역사가 많다는 교수님의 강의와 연관시켜 보니 이 주제에 관한 답을 찾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역사가들의 의도가 아닌 순수한 역사 그대로의 역사가 말하게 즉, 발언하게 하자는 것이다. 난 고등학교 때까지 수업시간에 배워왔던 역사에 관한 지식들이 다 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는 역사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때로는 권력과 결탁하여 때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충분히 왜곡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로 3가지만 꼽는다면 먼저 일본의 역사 교과서가 행하는 역사에 관한 은폐와 한국교과서에 대한 정해진 포맷에 의한 역사 서술을 꼽고 있다. 이장에서는 “이보다 더 한심할 수는 없다.” 라는 말로 모든 것이 대변되는 듯하다.그 다음으로는 독재정치 때 즉, 권력과 역사의 결탁을 보여주기 위해 스탈린 시대 소련에 관한 논쟁을 들고 있었다. 바나크와 시도르프의 역사적 견해차는 곧 당시 권력의 정당화 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서 무척이나 민감했기에 권력은 역사의 진실보다 정당화에 손을 들어 바나크는 죽음을 맞이하고 시도르프는 과학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권력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또한 그들자신의 권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바나크는 죽음의 누명에서 복권되는 헤프닝을 벌였다는 것이다. 나치의 역사인식도 그와 같은 맥락이라고 볼수 있겠다. 역사의 진실은 외면한 채 나치즘의 정당화를 위한 자민족중심주의의 역사관을 펼쳐 살육의 발판으로 삼았으니 말이다.마지막으로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인식에서 보게 되는 ‘로마인 이야기’이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중에 책을 즐기지는 않더라도 그저 읽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 책을 대부분 읽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위의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서평을 물어보면 거침없이 칭찬하는 것을 많이 들었고 필독서라고 권유하는 것까지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심지어는 중학교 때 역사담당 선생님이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권유를 들은 적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은 역사와 지식에 대한 큰 수요와 전문가의 부족사이의 괴리로 인해 생겨난 시장을 점령한 책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로마제국에 대한 설파가 아니라 자신들이 이루지 못하고 일그러진 그림자로 남고 말았던 제국주의의 원형을 다시 로마제국의 원형과 같이 이루고자하는 열망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의 사론집 격인 ‘로마인에게 붇는 20가지 질문’ 을 중심으로 다시 질문을 던지며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근거 없는 역사적 사실과 전체주의적 사상의 간접적인 내포를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 했다. 이로써 1부에 대한 제목이 왜 ‘발언’ 이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린 것 같다. 역사가에 의한 외곡이 아니라 이제는 역사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와 목소리를 주자는 필자의 생각이 집약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러면 2부는 왜 ‘문학속의 역사’ 라는 제목으로 나누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두 가지로 귀결되어졌다. 하나는 이 책의 특징처럼 편안한 읽기를 유도하기 위해 문학이라는 장르를 빌려 역사를 쉽게 느끼게 하기 위한 필자의 배려와 고뇌를 담고 있는 듯 했고 다른 하나는 바로 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인 것 같았다.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문학이란 것은 다분히 그 현시대를 반영 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비현실의 서술 인 것이다. 그것이 현실이면 현실인 데로 역사를 엿볼 수 있고 그것이 비현실이면 비현실인 데로 그 당시의 사회상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문학이 역사에게 가지는 최대 장점이 바로 권력에 의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유가 아닌 듯싶다. 바로 직접성이 아닌 간접성을 통한 자유말이다. 1부에서 살펴보았듯이 권력에 의해 두 역사가가 운명을 달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순수한 역사가가 아니었고 역사가임과 동시에 문학가 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 당시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면 문학을 통해 역사적 진실을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책에서는 굳이 역사가가 아니었더라도 문학가로서 역사를 말하는 부분들을 찾아 소개했다.2부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문학작품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이었고 다음으로는 메데이아였다. 기존의 연대기적 순서를 따라 작품들을 당대의 역사와 더불어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평소 잘 알고 있던 동화나 구전으로 전해지는 수많은 아름다운 스토리들이 실제 원작에선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폭력적이고 반인륜적인 내용들이 많다고 말하는 것에서 문학이 가지는 특수성을 통한 역사말하기를 엿볼수 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학으로 인해 정신이 나가버린 역사를 순화시키고 제자리 할수도 있다고 생각되어졌다. 저자의 역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회과학| 2004.03.21| 3페이지| 1,000원| 조회(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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