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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사] 한국근대이후 사회와 사람
    1. 근대적 시간, 시각1) 근대적 시간의 등장① 닭울음에서 전자시계까지 : 수탉의 울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던 사회와 전자시계의 기 계음을 듣고 일어나는 사회는 분명 다른 사회임에 틀림이 없다.② 전통시대의 시간관념 : 일반적으로 농경이나 유목사회에서 시간은 미래를 향해 일직선으 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고 생각되었다. 즉, 순환적인 농경과 유목의 성경에 따라 시간의식은 이에 규정되었다.③ 자본주의, 시간을 만드는 공장 : 공장은 근대적 시간의식과 리듬을 노동자들의 신체에 각 인시키는 '시간공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근지역의 시간리듬까지 공장을 중심 으로 조정, 통제하였다.④ 시계속에 갇흰 시간 : 개개인은 시계를 항상 휴대하고 스스로 매 순간마다 시간을 확인 하면서 분-초 단위까지 세분화된 시간리듬 속에서 살아야만 하게 되었다.⑤ 학교종이 땡땡땡 : 의무교육화된 학교교육을 통해 근대적 시간관념과 리듬이 전 사회적 으로 확산될 수 있게 된 것이다.⑥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 개인이 처분할 수 있는 '시간'을 압수하여 국가 가 강제적으로 관리하는 '시간'속에 배치하는 것이 주요한 '처벌'이 된다는 것 은 기간 규율을 통해 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통제-관리하는가를 보여준다.⑦ '코리안 타임'의 진실 : 철저한 근대적 시간규율-시간리듬을 전 사회적으로 관철하는 것 이 필요했던 사회적 지배세력은 자연적 리듬에 길들여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일종의 '부정의 캠페인'을 전개한 것이다.2) 근대의 인구변동① 인구와 사회변화 : 인구변동과 사회변화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사회변화의 결과가 인구변동으로 나타나지만 거꾸로 인구변동이 사회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② '4천년 역사, 3천리 강토, 2천만 동포' : 1925년 이전 한국의 인구에 대해서는 1925년의 국세조사를 토대로 하고 그 이전의 조사자료를 참조하여 추정치를 구하는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르면 추정인구는 1864년 1,678만명, 1910년 1,742만명이다.③ 사망률은 줄고 인구는 신민지라는 바다 위 외로운 섬 : 수 많은 일본인들이 서울에 들어와 남촌을 중심으 로 거주하면서 자신들의 아성을 쌓아 나갔고 조선인 거주지역이던 북촌도 팽창하였 다. 서울은 지방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지 못하고 물에 기름 뜨듯 따로 놀고 있었다.③ 서울은 공사중 : 서울은 인구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조금씩 지역적으로 넓어지다가 행정 적인 경계를 넘어서 주변지역과 도시들마저 자신의 배후지롤 만들어 버렸다.④ 새로운 문화 나타나다 : 인구의 집중화로 인한 경제력 집중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물산과 사람, 그것이 담고 있는 문화까지 서울로 집중시켰다. 이는 거부감 없이 모든 것을 수용하는 새로운 서울의 문화를 만들었다.⑤ 서울 공화국 : 서울의 가치관, 서울의 문화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통합된 서울 공화국, 이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현재 모습인지도 모른다.4) 해외 인민의 사회사①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 19세기 조선농민들은 여러 가지로 시달리고 있었다. 청과 러시아 의 영향력이 적었던 시기 만주이주가 본격화 되었다.② '카레이스키'의 수난 : 1937년 스탈린은 한인들을 거의 사막지대나 다름없는 중앙아시아 여러곳으로 강제이주시켰다. 강제이주와 폭압정책으로 인해 민족의식과 민족문화를 계승-발전시키지 못하고 소수민족으로서의 자기정체성을 상실했다.③ '복지만리'의 환상 : 일제는 1937년부터 재만한인을 '만주국인' 또는 '선계일본인'으로 부 르며 한인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한편 전시동원체제를 강화하고 황민화정책을 통해 만주국 통치의 보조수단으로 이용하였다.④ 현해탄을 건너서 : 일본이주는 다른 이주와 달리 1차대전후 조선의 산 노동력으로 불황 을 타개하려는 일본내부의 원인이 작용하였다. 그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등 을 거치며 강제징용으로 이주가 이루어졌다.⑤ 사탕수수농장의 땀방울 : 미국이민은 상층에 속하는 엘리트들이 희망을 품고 찾아나선 경우라 할 수 있다. 노동자이민은 대부분 선교사를 통해 이민회사에 소개된 인 연으로 하와이 사탕농장에 취업한 노동자들은 기독교인들이 많았다 밀착한 자본가들은 반민족적 성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 작하였다.③ 일본자본에 대한 애증의 변주곡 : 인본자본이 산업을 독점하고, 일본상품이 시장을 석권 하는 가운데 한인자본은 일본인 회사의 하청기업이나 일본물자의 판매를 담당하는 기업에만 투자될 수 잇었을 뿐이다. 한인 자본가는 일본경제에 구조적으로 예속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④ '내가 무슨 부루주아냐' : 식민지 조선경제가 불구적이었던 만큼 한인자본가도 불구적이 었으며, 식민지 조선경제가 예속적이었던 만큼 자본가도 예속적이었다. 식민지시기 아래 한국자본가들이 길들여져 온 형태는 권력과 외국자본에 빌붙어 국내 민중을 수탈하는 것뿐이었다.3) 식민지 노동자의 삶① '늘어가는 무리, 가두로 울며 헤매는 자여' : 새로운 경제의 후보들은 급격히 변화된 사회 속에 내몰렸지만 농촌이나 도시에서 노동력마저 팔기 힘든 세상, '날카로운 세기'가 되었음을 온몸으로 느껴야 했던 것이다.② 노동자들 어디서 살았을까 : 도시나 공장지대에는 노동숙박소라는 주거형태가 등장했다. 이곳은 주거공간이라기 보다는 잠자리에 불과한 장소였다. 또 공장지대에 새로운 주 거공간인 통근노동자들이 사는 공장촌이 형서되었다. 주거 공간의 차이는 계층간의 격차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동시에 민족적 차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③ 식민지의 '모던 타임즈' : 식민지적 근대화, 공업화 과정은 일제의 이해관계에 따라 짧은 시간안에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더구나 식민지라는 상황에서 그것은 강제적이고 폭력 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 과정속에 살았던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에 대 해 놀라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특히 더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이전과 다른 생활방식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자기 자신의 존 재도 생소하게 느꼈을지 모른다. 공장복을 입고 공장지대에 바쁘게 몰려다니는 사람 들이 낯설게 보였듯이. 따라서 당시에 노동자는 급증하였지만, 식민지적 조건속에서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에 대해 근대적인 계급으야 했다. 집안일은 여전 히 그녀들의 몫인데 과년한 딸들이 도시로 나가고 없어서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가사 노동도 더욱 힘들어졌다.⑥ 농협, 농민의 대변인? : 조합은 될 수 있으면 판매사업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조합이 돈 벌이가 되는 정부대행사업과 신용사업 그리고 구매사업에 치중하고 농민의 농산물은 팔아주지 않으니 농민들은 농협을 '돈놀이하는 신용금고', '조합직원을 위한 조합', '대 기업의 대리접'이라고 비만하였다.⑦ 일어서는 농민 : 농민들은 강제경작과 새마을사업의 강제집행, 농산물 검사의 부정, 경지 정리 부실 공사, 을류농지세의 부당과세 등 관료주의적 횡포에 맞서 싸웠다. 또한 농 협의 미주화운동은 농민운동의 중심적 과제였다. 농민들은 농협 임원의 정부 임명, 농 협사업의 반농민성, 강제 출자, 강제 저축, 강제 판매 등에 항의 하고 농민이 농협의 주인되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농민운도은 차츰 정치투쟁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5) 도시화의 뒤안길, 달동네 사람들① 뿌리뽑힌 사람들 : 오늘날 도시빈민들은 산업화 과정의 초기에 나타나는 의식주의 궁핍 현상은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으나 아직도 주택문제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② 움막 속의 토막민 : 이전 시기에는 그 명칭조차 없었던 토막민은 일제의 수탈정치가 빚 어낸 도시빈민 계층으로 이른바 근대적 도시빈민의 시원이었다.③ 해방촌과 삼팔따라지 : 해외 통포들의 귀환과 분한주민들의 남하, 이농민의 유입 때문이 었다. 서울 등 대도시에 몰려든 사람들은 상당수가 빈민화하여 남산이나 한강 다리 아래, 도시의 변두리에 천막을 치고 정착하여 판자촌을 형성하게 되었다.④ 쓰레기처럼 버려진 사람들 : 생활능력이 없는 도시빈민들을 골라 마치'쓰레기를 내다 버 리듯 차에 실어다 황무지에 버린 것'과 같은 형국이었다. 이들은 서울시로부터는 쓰레 기와 같은 대우를 받았다면 경기도로부터는 '귀찮은 손님'으로 눈칫밥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⑤ 서울의 달 : 달동네가 도시 공간의 효울적 이용과 도시 미화들의 명목으로 재개발되대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다 양한 색깔과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② '모던 보이'와 '마르크스 보이' : 사회주의는 젊은이들의 의식 속에 급속도로 파급되어 '입 으로 사회주의를 말하지 아니하면 시대에 뒤진 청년'같이 생각 될 정도로 영향 력을 발휘하였다. 음주, 흡연, 마약에 취하여 식민지 현실을 애써 외면하려 했던 이들 젊은이들을 당시 사회에서는 '모던 보이'라 지칭하였다.③ 전후세대의 비애 : 무차별한 학원의 정치도구화와 이승만 정권의 정치, 경제적 무능 부패 는 학생들에게 강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④ 시대의 어둠을 둠고 : 이때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구 자신이 사회운동에 직접 참여차지않 았더라도 누구도 시대가 주는 무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젊은 세대는 거듭되 는 투쟁과 저항 속에서 청년시절의 낭만과 개인의 가치실현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렸다.⑤ X세대 : 신세대를 지칭하는 X세대라는 용어는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우려에 서 나온 '불안정성'이라는 의미와, 아직 탐구해야 할 '미지의 세대'라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이전의 역사적 경험의 공과를 가감없이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것은 세대 간의 틈을 좁히는 기초이다. 이를 바탕으로 세대 갈등을 해 소하는 실마리를 잡아가야 할 것 같다.3) 여성, 그들의 사랑과 결혼① 자유 연애, 붉은 연애 : 전통시대의 결혼관과 결혼문화가 힘을 발휘하고 있던 일제시기, 전통적 인습에 정면 도전한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유로운 남녀 교제와 연애, 사람하는 남녀가 함께 살 자유를 추구했다.②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 사랑이 더 이상 죄악이 아니고 연애결혼이 보편화되기까지 그 기나긴 역사의 흐름 속에는 자유 연애와 붉은 연애의 주인공들, 사랑에 속 고 돈에 울던 여성들의 용기와 좌절, 분노, 비탄과 눈물이 녹아있다.③ 결혼 적령기는 언제? : 일제시기에는 조혼으로 인해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기 어려웠다 면 오늘날에는 만혼화로 인해 연애 따로 결혼 따로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④ 결혼하는 남자, 시집가.
    사회과학| 2003.12.10| 10페이지| 1,000원| 조회(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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