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학교 역사시간에서 뿐 아니라 많은 영화들, TV 속에서도 한번 이상은 들어봤을 단어이다.마녀사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14세기에서 17세기에 유럽의 여러 나라와 교회가 이단자를 마녀로 판결하여 화형에 처하던 일'을 말한다. 교회가 이단자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 처형을 했다는 얘기다. 그럼 이 '마녀사냥'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원래 마녀라는 존재는 그 이전에도 존재했었다. 그러나 이때 그들은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병자를 고치거나 다산을 돕거나, 낙태를 시키는 어떤 주술적 힘을 가진 여성들로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여겨지던 주술사 정도였다. 하지만 14세기에 들어 이들이 '마녀'로 여겨져 이단으로 찍혀 많은 핍박을 받고 처형을 당하게 된 것이다.중세 유럽은 교회의 권력이 최절정에 있던 시점이었다. 사람을 위해 종교가 있던 것이 아니라 종교를 위해 사람이 존재했던 것이다. 당시 온갖 질병과 굶주림, 그리고 외부에서 침입해오던 이교도들로 인해 민중들의 삶이 비참해지고 불만이 높아지자 교회는 '희생양'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 '희생양'이 바로 '마녀사냥'의 여성들이다. 그녀들의 역할에 대한 교회 지도층의 시기와 질투도 더해져 교회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을 마녀로 잡아들여 재판을 하기 시작하였다. 주로 정신병자, 혼자 사는 여성,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성, 산파들이 이에 포함되었다.먼저 재판의 진행을 살펴보면 체포, 밀고, 세상의 소문, 자수, 투옥, 재산수색, 증언, 변호, 대답할 수 없는 심문, 고문, 처형이 있다. 체포는 말 그대로 이단자로 여겨진 사람을 교회가 체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가 있어 체포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주로 이단이라는 떠돌아다니는 소문에 의해서 체포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서부터 '마녀'들이 그저 희생양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다음으로 밀고는 심문관들이 가장 장려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심문규정에 의하면 14세 이상의 남자, 12세 이상의 여자에게는 이단을 밀고할 의무가 있고, 이 의무를 게을리하는 것은 '간접적 이단'이었다. 그래서 마녀재판의 기록을 보면 부모자식, 부부, 형제, 사제, 주종이 서로 밀고하는 예가 많이 보인다. 밀고를 장려하기 위해 어버이를 밀고한 자식은 이단자의 가족으로서 받아야할 처벌을 면제받았고 밀고자의 성명은 노출하지 않았다.세상의 소문은 체포되는 가장 많은 이유였는데 고발자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것은 피고에게는 아주 불리한 일임에는 분명했다.심문관들은 또한 소문에 오른 자들에게 자수를 권하고 있었는데 자수를 한다고 해서 결백이 밝혀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자수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체포된 용의자 곧바로 감옥에 투옥되는데 환경이 어찌나 안 좋았는지 많은 이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자백하는 경우가 많았다. 감옥의 고통은 자백을 강요하기 위한 일종의 고문이었다.용의자가 투옥되고 난 후에는 그 사람에 대한 재산수색이 이루어졌다. 이는 재산몰수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부동산, 채권, 채무 등에 대해 상세히 조사가 이루어졌다. 실제로 많은 재산을 소유한 과부들이 마녀로 몰리는 일이 있었는데 재산을 몰수하기 위한 음모라고 할 수도 있었다.증언과 변호는 명분만 존재했을 뿐 용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다음 대답할 수 없는 심문이란 피고의 '자백'을 의미한다. 심문관에게 가장 확실한 증거는 피고의 '자백'이었는데 그 질문이라는 것이 하나같이 '모릅니다'라는 대답밖에는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마녀가 된지 몇 년이 되었는지, 마녀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 집회에서 무엇을 했는지 등등. 하지만 심문관에게 대답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피고가 자백을 했다는 것만이 중요했고 더 알아내기 위해 고문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고문이야말로 마녀재판에의 중심이었다. 눈을 빼는 고문, 사지 늘리기, 물고문, 불로 지지기 등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고문으로 인해 자백을 줄줄이 이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으로 사라져가게 되었다.마녀에 대한 처형 방식은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화형 선고와 교수형이나 효수형에 처한 후 그 시체를 불로 태워 버리는 화형 방식을 주로 썼다. 그 외에도 교수형, 수장형 그리고 참수형 등이 있었다.이러한 마녀사냥은 3세기 동안 이어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다. 기록을 보면, '17세기 말 마녀사냥의 중심지였던 북프랑스 지방에서는 3백여 명이 기소되어 절반 정도가 처형되었다. 1582년 바이에른 어느 백작의 한 작은 영지에서 한 명의 마녀가 체포되었다. 이 마녀의 체포에 연속으로 48명이 마녀로 낙인찍혀 화형 당하였다. 1587년 도릴 지방의 약 200여 촌락에서 1587년부터 이후 7년간 368명의 마녀가 적발되어 화형 당하였다. 또한 1590년 남독일의 소도시 네르도링켄에서 시장의 제안에 의하여 시의회는 거리를 나돌아 다니는 마녀를 철저히 일소하도록 결의하였다. 이후 3년간 32명의 마녀가 화형 또는 참수되었다. 1590년 소도시 에링켄에서 65명의 마녀가 처형되었고, 1597~1676년에 197명의 마녀가 화형 당하였다. 소소크만텔 승정령(僧正領)에서는 1639년에 2,428명, 1654년에는 102명이 처형되었고 오늘날 오스트리아 영토가 된 스타이엘마르크 지방에서 1564~1748년에 1,849명이 소추되어 1,160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나노수 지방에서는 1629년부터 4년간 2,255명이 마녀로 소추되었고, 뷔르튄겐 지방에서는 1633년 이후 3년간 11명이 처형되었다. 튜링겐 숲에 인접한 게오르겐탈이라는 인구 4천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에서 1652~1700년에 64회의 마녀재판이 실시되었다. 반베르크 승정령에서는 1627년 이후 4년간 화형당한 마녀가 285명이었고, 그 이후 30년에 걸쳐 이 재판소에 계류된 마녀재판은 900건을 넘었다. 이 승정령의 인구는 겨우 10만 명을 넘지 않았다. 뷰르스부르크 승정령에서는 1623~1631년에 화형당한 마녀가 900명에 달하였다. 1627년부터 이후 연간 29회의 재판에서 화형당한 157명의 희생자를 보면 잡다한 연령과 계급, 직업의 사람들이 혼재해 있었다. 시의회의원, 고급관리의 부인, 시의회의원의 처자, 그 지방의 가장 아름다운 자매, 8, 9, 12세의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후루다에 살고 있는 바루다세르 후스라는 마녀재판관은 19년간 700명의 마녀를 화형 시켰는데, 자신의 일생동안 1천 명을 처형하기를 소원하였다고 한다. 로트링겐에 살고 있던 니콜라스 레미라는 사람도 재직 15년간 화형 시킨 마녀가 900명에 달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이 연극의 제목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에서 ‘모든 것’은 현재의 걱정, 근심, 고통을 의미하고 ‘목탁구멍 속’은 과거의 짧은 순간을 이야기 하며 ‘작은 어둠’은 이러한 과거 속에 얽매여 있는 욕망, 집착을 말한다. 처음 이 제목을 듣고 연극을 보러 갔을 때 극장이 매우 좁았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면 무대에 바로 보이는 양손을 들고 있는 이상한 불상 때문에 과연 이 연극은 무엇을 말하려는 연극일까 궁금했다. 밖에서 나눠준 팜플렛에 쓰이어진 작품 줄거리를 보고 나서야 대충 내용을 알았지만 그래도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졌다.연극의 내용은 도법이라는 스님이 겪는 인간 본질적 고뇌와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제 1장에서 탄성스님은 두 눈덩이가 피범벅이 된 도법스님의 망령을 만나 도법스님의 죽음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도법스님이 죽게 된 이야기와 그의 인생과 악몽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제 2장이 시작되면서 과거의 일들이 나온다. 주인공인 도법스님은 전직 미대교수이자 유명한 조각가이다. 입산한 뒤 수행에만 전념해오고 있던 중 큰스님의 불상을 조각하라는 명을 받아 봉국사에 오게 된다. 그는 불상을 제작하면서 표현된 조각 작품 속에서 지고의 불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집념에 의해 3년간 불상을 제작하게 된다. 3년 후 불상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을 무렵, 도법스님은 탄성스님과 함께 초상집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탄성스님은 도법스님이 시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것을 보고 단순은 복잡 위에 있다며 시달림은 시달림으로만 끝내야 한다며 꾸짖는다. 탄성스님이 밖으로 나간 사이 도법스님은 누워있던 시체가 반쪽만 타버린 피투성이의 망령으로 변해 일어서는 것을 보고 기절한다. 탄성스님에게 업혀서 돌아온 도법스님은 작업실에서 다시 피투성이의 망령을 만난다. 망령은 자신도 도법과 이름이 같다며 수인사나 하고 지내자고 접근한다. 그리고는 불상을 발견한 뒤 망치를 들어 불상을 부수려 한다. 도법스님이 달려들어 말리자 망령은 자업자득이라며 자네가 만든 것이니 자네가 부수라고 말한다. 얼마 후 초파일에 쓸 연등을 만들고 있을 때 월명스님이 달려와 불상이 부수어졌다고 말한다. 도법스님이 작업실에 가보니 불상이 모두 부수어져 있고 망령은 자신이 한 것이라고 하지만 탄성스님은 대중스님들이 도법스님이 한 짓이라 생각한다고 말하며 이곳을 떠나 갈 때 가더라도 한번 한 약속은 꼭 지키고 가라고 말한다. 그날 도법스님은 방장스님을 찾아가 망령에 대해 이야기한다. 방장스님은 거지와 진주목걸이 이야기를 해주며 자기의 의지처는 자기인 것이라며, 삼라만상이 다 내 것인데 그 무엇이 부족하냐고 도법스님에게 말한다. 천둥과 번개가 치는 날 밤, 작업실에서 망령은 도법스님에게 그가 불상을 만들고 공덕을 쌓고 그 공덕으로 죄를 탕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도법스님의 아내가 강간당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하며 인생이 순간이면 영원한 건 없고 인생이 영원하면 순간이란 없다며 그를 괴롭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도법스님은 조각칼로 망령을 찌르지만 찌르고 난후 자신의 두 눈이 피투성이가 된 채 그가 깨달은 것은 바로 그 망령이 자기 자신의 추악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망령은 아름답고 추함이란 한낱 꿈속의 허깨비에 불과한 것이고 이 세상 모든 것은 묘하게 있을 뿐 아름답고 추한 것은 없다며 그것을 자꾸만 추하다고 보는 도법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는 자기 자신에게 석고를 입히라며 처음에 등장했던 엉거주춤한 이상한 불상의 자세로 변한다.
‘안보’란 위협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안보’를 굳건히 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런 위협이 없이 편안한 상태를 계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안보의 대상을 흔히 대한민국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국가안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안보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사용하는 이 개념은 군사적 관점에서 정의된 국가안보를 말하는 것이므로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가적 위협을 격퇴할 수 있는 군사력을 확보해야만 할 것이다. 어원적으로 보면 안전보장(Security)이라는 말은 ‘위험이라든가 위협으로부터 자기의 안전을 지키고, 공포, 불안, 근심걱정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국가적 차원에 적용해보면 국가안전보장(National Security)이란 국가가 외부의 침략이나 위협 또는 그로 인한 공포, 불안 및 근심걱정에서 벗어나 평온한 상태를 유지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국가안보 개념은 대내외 위협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떤 국가든 다양한 형태의 안보 위협이 존재하며, 그러한 위협들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국가적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데, 국가안보 위협의 종류와 내용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변화된다. 특히, 탈 냉전기 안보환경의 획기적인 변화와 함께 새로운 종류의 안보위협이 부각되기에 이르렀으며, 이에 따라 안보의 개념 및 목표의 변화를 수반하고 있다. 예컨대 냉전기의 안보개념은 군사방위(National defense)와 유사한 의미로서 군사적 차원에서의 외부적 위협에 대응한 국가적 노력을 국가안보로 총칭했다. 그러나 탈 냉전기에 들어서서 국가안보 개념은 군사전략적 측면에서의 안보 개념에 추가하여 경제, 자원, 환경, 사회 문제 등 비군사적인 요소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변화했다. 이를 포괄적 안보라고 한다.포괄적 안보는 안보 고려 영역을 군사적 차원에 한정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안보, 에너지 안보, 환경 안보 등을 포함한 거시적 차원의 다양한 분야로 확대하여 이들과 안보와의 불가분성을 강조하며 국내외로부터 기인하는 각종각양의 위협으로부터 국가가 보유하고 추구하는 제 가치를 보전하는 것이라 정의 할 수 있다. 또한 전통적인 정치, 군사 위주의 안보개념을 비정치적, 비군사적 개념까지 포함시키는 다변적인 개념으로 재정립함을 의미한다. 포괄적 안보개념은 아시아, 특히 일본과 아세안에 의해서 개발된 것으로 동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지지를 받고 있으며, 1975년 창설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Conference on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가 군사, 경제, 인권을 안보 협력의 3대 테두리로 설정한 것은 포괄적 안보개념이 지향하는 바를 잘 나타내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다음으로 위기관리에 대해 살펴보면 먼저 ‘위기’란 어떤 사건의 과정에서의 중요한 시점 또는 상황이나 어떠한 전환점, 불안정한 조건이나 대립의 긴장상태라 정의할 수 있다. 흔히 위기는 사람의 실수에서 비롯된다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람의 실수는 위기의 발생 시기를 앞당긴다거나, 발생의 강도를 높이는 요인은 될 수 있지만 위기발생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위기는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한 사건이며, 물리적인 균열이 체제 전체의 수준에 이르거나 구성원 등의 공유된 주관적 세계와 세계관에 혼란을 줄 때 발생한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위기 원인은 인플레이션이나 실업, 경기침체 등이 있다. 이러한 위기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위기관리의 정의는 위기상황의 효과적 극복, 손실 최소화를 위해 영향을 주는 모든 대상들에 대해 총체적으로 행해지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의미한다. 위기관리는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여 위기로 인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고안된 일련의 요소들로 구성된다. 위기관리의 4가지 기본요소는 위기에 대한 예방(위기를 피하기 위한 단계), 대비(위기관리계획수립, 조직의 위기 관련 취약점 진단, 위기관리팀과 대변인의 선정 및 교육, 위기 포트폴리오의 구성, 위기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정비), 실행(위기에 대비해서 준비한 요소들을 실제로 점검), 학습(가상 또는 실제 위기 동안 수행된 조직의 실행에 대한 평가)의 순환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20세기는 세계적으로 영광과 비참, 희망과 절망, 그리고 비전과 위기가 함께 교차한 ‘혼돈의 세기’였다. 우리민족에게도 20세기는 고난과 영광, 도전과 응전의 숨 가쁜 역사였다. 일제 식민지화의 어려운 과정을 거쳐 오면서, 1996년 OECD가입, 국민소득 1만 불 달성 등 ‘세계 속의 한국’으로 부상했지만 1997년 IMF구제금융체제로의 위기상황에 직면했다. 이와 같은 조직 환경 속에서 위기관리란 위기의 대가를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으로서 위기로 인한 손실과 그 손실을 줄이는 데 드는 비용을 비교해 본다면 위기에 대비하여 미리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경제적인지는 논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위기관리는 위기가 발생한 후의 조치는 물론, 발생 가능한 위기상황을 예측하여 실제상황에 대비하고 훈련하며, 실제 위기를 겪고 난 다음에 앞날을 위해 철저한 평가를 내리는 일련의 과정을 포함한다. 이처럼 유비무환적인 위기관리는 발생 가능한 위기를 예측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측은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고, 예측한다면 주먹구구식보다는 다듬어진 예측방법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논의는 위기를 예방하기 위한 통합적인 위기관리전략의 필요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최근 변화된 사회 환경은 개인 및 조직에게 있어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미트로프(Mitroff)나 애나그너스(Anagnos)는 위기와 관련된 현대 사회의 특징을 복잡성, 연결성, 범위와 크기, 속도, 가시성 등 5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즉 현대의 사회 환경에 관련된 각종 문제 및 사건들은 해결하기에 단순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어 감추기가 쉽지 않고, 한번 시작되면 그 파급효과가 속도와 크기 면에서 엄청나다는 것이다.영화 D-day13은 워싱턴의 백악관을 무대로 한 20세기 최악의 위기상황이라고도 전해지는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를 소재로 미국과 소련의 냉전 분위기가 극에 달했던 당시의 워싱턴 정가를 그대로 재현한 로저 도날드슨 감독의 실사 정치 영화이다. 당시 대통령 특별 보좌관이었던 케네스 오도넬의 시각으로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동생이었던 로버트 케네디,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라마 등 당시 주요 정치인, 군인, 외교관들의 숨 가쁜 상황들이 펼쳐진다. 영화에서는 직접적으로 전쟁이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정치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기존의 전쟁영화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 영화의 주제인 ‘쿠바 사태’(쿠바 미사일 위기: Cuban missile crisis)는 1962년 10월 22일부터 11월 2일까지 11일간 소련의 핵탄도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하려는 시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대치하여 핵전쟁 발발 직전까지 갔던 국제적 위기를 말한다. 쿠바를 위성국가 삼아 쿠바 내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던 당시 흐루시초프(Nikita Sergeevich Khrushchyov) 정권의 소련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하나로 꼽히는 케네디 정권이 집권한 미국의 13일간의 일촉즉발의 패권다툼을 그린 영화로써 쿠바침공을 주장하는 강경파와 봉쇄를 주장하는 온건파의 첨예한 내부적 갈등과 대립 및 소련의 외교적인 계략에 대한 미국의 대응전략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사실 영화의 주제인 쿠바 봉쇄령도 프랑스 나폴레옹 시대의 오만했기에 실패하고 말았던 러시아 봉쇄령을 생각나게 만드는 전략이었다. 패권국가로서 단지 미국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결국 침공이 아닌 봉쇄하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평화적인 선택을 한 것이지만 한 나라 전체를 봉쇄한다는 전략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주권침해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생존 원리와 더불어 미국에 이익에 반하는 나라는 어떠한 결과를 맞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점도 미국의 세계 평화주의의 숨겨진 얼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 그동안 동서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세계 평화를 위해 애써온 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쿠바를 비롯한 많은 중남미 국가에 독재자들을 지원하며 그 나라들을 미국의 영향권아래 두려고 힘써왔던 것은 공공연한 비밀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영화는 미국이 당시 선택했던 쿠바 봉쇄령의 당위성과 그러한 평화적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케네디와 그의 숨겨진 조력자 덕분이었음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해왔던 주권침해와 세력 팽창에 대한 미국의 숨겨진 얼굴은 평화유지를 위한 미국과 케네디라는 걸출한 영웅의 활동으로 가려져 버린 영화이다. 영화의 냉전시대 소련과 미국의 모습을 통해 미국의 역할 없이는 세계의 평화는 없었을지 모른다는 미국의 세계평화유지에 대한 미화적인 모습은 동서냉전이 무너져버린 지금의 상황에서도 미국의 자존심이자 오만이고 자국만을 위하는 국가이기주의라고 말 할 수 있다.
은 William Butler Yeats이후에 최고의 시인이라 일컬어지는 시인인 Seamus Heaney의 제1시집인『한 자연아의 죽음』에 수록되어 있는 시이다. 시간이 갈수록 중요한 시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Heaney는 제1시집이후 더 유명해졌고 199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은 첫 페이지에 나와 있는 시로 처음 접했음에도 시의 분위기상 주제를 찾아내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을 처음 읽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단어는 ‘강한 의지’였다.“I'll dig with it"이라는 마지막 표현이 머리에 남아서 일까 바로 그런 느낌이 왔다. 이 생각은 처음 부분에서도 느낄 수 있었는데 "pen"이 ”snug as a gun"처럼 누워있다는 표현에서였다. 펜을 총과 비교하였다는 것, 그리고 총을 무언가 파괴하는 것의 의미가 아닌 좋은 의미로 묘사했다는 것에서 총으로 지키고자 하는 무엇인가를 자신은 펜으로 지키겠다는 뜻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혹은 지금까지는 총으로 지켜왔지만 자신은 앞으로 시인으로서 글을 써서 그것을 지키겠다는 시인의 의지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는 마지막 행에서 ‘it'을 펜으로 파겠다는 직접적인 의지의 표현과 이어져 더 강한 느낌으로 다가왔다.그렇다면 과연 시인이 그토록 지키고자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데 그 답은 이어지는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 연부터 시인은 아버지가 땅을 일구는 모습, 삽으로 햇감자를 파내는 모습, 그 감자를 보며 만족하는 아버지의 모습, 또 할아버지가 좋은 토탄을 찾기 위해 땅을 파는 모습들을 길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서는 자신은 그들의 뒤를 따라 땅을 팔 삽이 없기 때문에 손에 쥐어져있는 펜을 이용하여 땅을 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볼 때 시인이 이 시를 쓰는 목적은 계속해서 땅을 파기 위함임을 알 수 있으므로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같은 선조들이 땀으로 일구어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어떤 ‘땅’이 바로 시인이 지키고자하는 대상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을 지은 Seamus Heaney는 북아일랜드의 농촌 지역 출신이다. 그러니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농부로서 열심히 땅을 일구는 모습을 항상 보아왔을 것이고 그만큼 그들의 땅인 아일랜드에 대한 애정도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예전과 같이 ‘삽’만으로는 진정한 아일랜드를 지키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삽으로 땅을 팠듯이 자신은 대신 펜을 들고 시를 통하여 아일랜드의 과거와 전통, 흔적, 그리고 지켜내야 할 가치들을 기억하고 되새기며, 그 정체성을 찾아갈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삽질을 하여 햇감자를 캐내듯이, 좋은 토탄을 찾기 위하여 구슬땀을 흘리며 끊임없이 땅을 파듯이.....꼭 아일랜드가 아니더라고 이 시에서처럼 시골에서의 생활만큼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조국의 과거와 전통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기에 좋은 소재는 없는 듯하다. 현대사회에서도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도시보다는 좀 더 정적인 시골이 과거의 전통과 문화의 흔적을 훨씬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인도 농촌에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농부였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삶을 통해 그의 조국 아일랜드의 전통과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그것을 지킬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이러한 시인의 현재와 과거와의 연관성은 자칫 육체로 농사일을 하던 아버지 세대와 펜으로 농사일을 하는 자식 세대 간의 단절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시에 연속성을 더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펜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를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일랜드의 과거와 연결되는 시를 쓰겠다는 시인의 의지가 더 확연히 드러나니 말이다.
현대보다 더 앞서 살았던 조상이든, 앞으로 살게 될 우리 후손이든 인간은 항상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이다. 누군가와 친밀한 대화를 할 때, 무언가를 가르칠 때, 혼잣말을 할 때도 우리는 언어를 통한다. 또한 말 뿐만 아니라 글도 언어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언어가 없었다면, 책이나 신문, 잡지 등도 없었을 것이고, 학교, 회사에 제출할 보고서를 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가르칠 학교도 존재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언어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당연한 듯 누려왔던 우리 인간의 사회적, 문화적인 생활은 꿈도 못 꾸었을 환상에 불과했을 것이다.그러나 언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나 연구는 인간의 삶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하면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은 언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사용할 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다만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울 때 언어를 배우는 것은 어렵다거나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답답하다거나 한 것을 느낄 뿐이다. 또한 먼 옛날 고대의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온 수많은 언어학자들의 연구도 결코 완전하지는 않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지금의 인간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 언어에 대해 아는 것 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이렇게 언어학자들조차 언어 연구가 쉽지 않은 것은 모든 인간의 언어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한 이유이다. 세계에는 무수히 많은 언어가 존재한다. ‘학자들은 대체로 4천여 개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으로 짐작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짐작일 뿐 확실한 숫자는 아니다. 아직 표면에 떠오르지 않은 나라들의 언어에 대한 연구도 확실하지 않고, 한 나라 안에 여러 언어가 존재하기도 하며 여러 나라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는 등 서로 다른 언어로 나뉘는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활성화되어 있는 영어를 중심으로 언어 연구가 이루어지다보니 그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또, 언어 연구를 어렵게 하는 다른 이유는 언어 자단어 하나하나부터 새로 배워야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심지어 의성어에서 조차도 자의적인데, 한 예로 영어에서의 ‘bow-wow'라는 개의 짖는 소리가 한국어의 ’멍멍‘과는 확연히 다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두 번째로, 언어는 창조성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흘러 사회가 변함에 따라 언어의 표현도 무한히 창조된다는 특성이다. 특히 인터넷이 널리 퍼진 현대는 우리가 지금껏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말들이 하루가 다르게 끊임없이 생성되어 무서운 속도로 유통되어 단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또 제한된 단어들의 결합으로 많은 문장을 생성해내는 것도 언어의 창조성, 생산성이라 할 수 있겠다.다음 세 번째로 들 수 있는 특징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가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지 않는 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의사전달을 할 때 바로 지금 맞이하고 있는 상황, 즉 현재의 위협, 먹이의 위치 등에 대해서만 신호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는 시간상의 과거, 현재, 미래도 모두 표현할뿐더러 공간적으로도 현재 있는 위치든 먼 과거든 미래든, 심지어 현실이 아닌 세계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이처럼 인간의 언어는 눈에 보이는 것과 의미하는 바가 다르고,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며, 모든 시간과 공간과 상상을 다 표현해내는 복잡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학자들의 언어에 대한 연구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거나 명확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가 복잡한 만큼 언어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언어의 정의 문제 -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부터 많은 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그럼, 언어라는 것이 어떻게 정의되고 있는지 몇몇 학자의 이론을 통해 알아보겠다.언어의 정의를 내린 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미국의 언어학자인 Charles F. Hockett가 있다. 그는 구조주의 언어학자로 겉으로 드러난 양상으로 언어를 기술하였다. Hockett는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상호작용적인 체계라고 했는데 이는 꿀벌이 다른 꿀벌들에게 먹이 소재의 방기도 하고 기존의 단어가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쓰이는 등의 인간 언어의 생산성과 연결된다고 볼 수도 있다.그러나 사람이 아닌 꿀벌들의 의사소통 움직임은 언어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인 문화적 전이에의 기준은 되지 못한다. 문화적 전이라는 것은 인간이 모국어를 배울 때 부모의 유전자가 아닌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 문화의 영향을 받아 생성된 언어를 습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배워서 이루어지는 행동이 아닌 본능적으로 타고난 꿀벌의 춤으로 이루어진 신호는 인간의 언어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Hockett는 문화적 전이를 포함한 창의성, 자의성, 이원성 등의 특징을 모두 구비한 것만이 인간의 언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 특성들 모두를 설명해줄 수 없는 꿀벌과 같은 동물의 신호는 언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 문화와 언어와의 관계는 ’Sapir와 Whorf의 가설‘과도 관련이 있다.좀 더 이른 시기의 미국 언어학자인 Edward Sapir는 언어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의 의사소통을 이루게 하는 것이라는 이론을 세웠다. 그리고 인간 언어를 문화적 전이와 연관시켰던 Hockett처럼, 꿀벌의 의사소통처럼 본능적이고 천성적인 형식은 언어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는 언어란 ‘자발적으로 생성된 상징들의 체계’를 통해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비본능적인 의사소통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상징’은 어떤 단어와 그것이 나타내는 사물이나 개념사이에 필연적인 연관성이 없다는 것은 반영한다. 이는 언어의 특징 중 하나인 자의성과 관계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각각 다른 언어마다 눈에 보이는 한 사물에 대한 단어가 다르고 들리는 소리와 의미가 다르기도 한 성질이다. 그리고 ‘체계’란 요소는 언어가 우리에게 준비되어있는 말들을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말을 우리 스스로 생성해 낼 수 있게끔 그 틀만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틀 안에서라면 얼마든지 새로운 단어와 문장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체계는 무수히 많은 어학자로 영국의 현대 영국의 학자인 David Crystal은 언어를 의사소통을 위해 인간의 성대를 통해 소리로 나오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물론 그도 역시 언어의 주요 기능을 의사소통이라는데 두고 있긴 하지만, 세부적인 몇 가지 면에 있어서 또 다른 영국의 언어학자인 John Lyon에 의해 지적을 받는다.Lyon이 지적한 점 중에 하나는 Crystal의 의사소통에 대한 정의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의사소통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이해하는 것인데, 사람이 항상 소리로 나오는 언어로만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났다 헤어질 때 서로 악수를 하고 멀리서 손을 좌우로 흔들어 인사를 하며, 두 손가락으로 V를 만들어 내는 행동들은 모두 나름의 언어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표현들로서 음성 없이도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비언어적 전달’이라고 할 수 있다. Crystal의 의사소통에 대한 정의는 이런 점은 설명해주지 못한다.그리고 이어서, 인간이 의사소통을 하는데 사용하는 언어라는 것이 소리로만 이루어진 것이라는 의견은 너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언어가 말로써 표현할 수 있는 소리로 이루어져있기는 하지만, 서로 대화를 할 때 모든 의사를 항상 소리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도 눈짓, 손짓 등의 행동으로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기호나 그림을 이용해서도 할 수 있다. 나라에 따라 동작이나 그림이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통용되는 것들로는 언어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또한, Lyon에 의하면 Crystal의 정의는 인간 언어의 비본능적인면도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 동물들의 신호의 경우 그들이 순간 실제 행하는 행위는 본능적으로 즉시의 상황에 맞춰진 행위의 원래 의미만을 나타내 주는 것이지만, 사람의 경우는 주어진 상황에 따라서 실제로 음성으로 나오는 말이 원래의 뜻과 그 의존재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과 다르게 이성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한 언어 표현을 의도한 바대로 그때그때 변화를 주어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Crystal의 이론에는 음성으로 나오는 말만을 언어로 봄으로써 언어에서 표출되는 소리와 말한 사람이 의도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는 것에 근거를 제시해주지 못한다.지금까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언어의 정의에 대해서 비교적 한 의견으로 정리가 가능하게끔 시도한 언어학자들과 다르게 R. H . Robins라는 학자는 언어는 매우 복잡한 것이기 때문에 언어를 단순화해서 정의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각 정의들의 핵심을 추출해낸다면 언어 연구의 초점에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하는데, 그 정의를 말해보자면, ‘언어는 주로 음성에 의해 전달된 상징의 체계에 의한 인간 의사소통의 형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이렇게 다양한 언어에 대한 정의 중에서 나에게 가장 설득력 있게 보이는 언어의 정의는 Hockett와 Sapir가 언급했던 문화와 언어와의 관계에 대한 이론이다. 한 사회의 문화가 그 속의 언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 이론의 근거로는 어떤 문화에서는 존재하는 단어가 다른 문화에는 존재하지 않고, 같은 사물,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 서로 다르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 설명해보도록 하겠다.첫 번째로, 한국에는 ‘김치’라는 단어가 있고, 아프리카에는 ‘얼음’이나 ‘눈’을 의미하는 단어가 없다. 이것은 단어가 문화의 영향을 받아 생성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데, 먼저 ‘김치’라는 음식은 고대부터 한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에서 먹어오던 음식이기 때문에 이것을 나타내 줄 단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치’를 먹지 않던 다른 나라에서는 이 음식을 나타내 줄 단어가 필요하지 않았고, 지금도 한국의 ‘김치’란 단어를 배워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반대로 아프리카에 ‘얼음’을 나타내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옛날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