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rankenstein을 통해 Mary Shelley가 언급하는 근대과학과 지식추구의 문제점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 과학이 나아가야할 방향.공상과학소설의 시초로 널리 알려진 Frankenstein은 현대 과학의 딜레마를 정확히 꼬집어 보여주고 있다. 과학의 발달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 때문에 연구자체를 중단할 것인가? 과학의 영역은 도덕적, 윤리적인 영역과 별개로 보아야 할 것인가? 20세기 후반부터 이슈화된 이러한 주제에 대해 Mary Shelley는 이미 19세기 초반에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도 크고 작은 실험실에서는 과학적 발견을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애쓰고 있을 것이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Frankenstein이 단순한 괴기소설에서 벗어나 세계명작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Shelley가 근대 과학을 바라보는 예리한 통찰력에서 기인한다. 정도를 넘어서는 인간의 무분별한 지식에의 갈망이 그 자신들과 타인을 지옥으로 빠뜨릴 수 도 있다는 무서운 메시지와 함께 현대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Shelly는 현대과학이 독자적인 오만함을 버리고 다른 학문과 조화롭게 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중용 의 미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과학의 발전은 그에 의해 희생되는 가치보다 우월하게 평가되기 때문에, 그 누구든지 선뜻 나서서 저지할 수 없었다. 과학의 발전은 곧 힘이었고 권력이었기 때문에 과학에의 도전은 권력에의 도전과 같이 무모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과학이 모든 인류의 번영을 위해 조화롭게 나아가기 위해서 문학이나 철학을 수용하고, 과학적 연구업적이 뛰어나더라도 도덕적 책임으로 완전히 놓여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21세기 벌어지고 있는 많은 과학적인 논란들에 대해서 정확한 잣대를 제시해주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인간이 생명을 창조하는 영역에는 절대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놀랍게도 과학적 발전이 미미했던 19세기 초반에 Shelley가 걱정하고 있던 로써 Frankenstein이 저지른 끔찍한 사건이 한 개인의 과오를 넘어서는 과학의 전반적인 문제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Frankenstein은 우연히 발견한 Cornelius Agrippa의 신비철학에 몰두하게 된다. 지금은 폐기처분된 쓸데없는 과학으로 평가되는데 Frankenstein은 그것도 모르고 그의 스승의 책을 열심히 공부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전기의 원리를 알고 나서 그는 고대과학의 가치 없음에 환멸을 느껴서 이렇게 말한다. "This last stroke completed the overthrow of Cornelius Agrippa, Albertus Magnus, and Paracelsus, who had so long reigned the lords of my imagination." 이 생각은 Frankenstein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근대의 과학자들은 대부분 고대과학을 덧없고 터무니없고 케케묵은 지식쯤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Frankenstein이 Ingolstadt 대학에 갔을 때 만난 M. Krempe교수도 마찬가지로 Agrippa와 같은 고대과학자들의 이론을 경멸하고 무시했다. "every instant that you have wasted on those books is utterly and entirely lost. you have burdened your memory with exploded systems, and useless names." M. Krempe 교수는 약간 오만방자한 성격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충분히 이럴 수 있다. 하지만 비교적 겸손하고 교양 있는 M. Waldman 교수도 역시 고대과학과 근대과학을 비교하며 근대과학의 위대함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모습을 보인다. " 'The ancient teachers of this science,' said he, 'promised impossibilities, and performed nothing. The modern masters promise 점차 폐기처분되고 가치 없게 판단된다. 하지만 고대 과학에서도 나름대로의 진리가 있고 배울 것이 남아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학에서는 새로 나온 것이 제일 우선이다. 과거를 답습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독단적이고 오만해 질 위험이 있다. 새로운 이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자신의 이론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실패로 배우는 과정을 거쳐야 겸손함과 절제력을 갖추어 옳은 방향으로 발전할 텐데 과학은 그런 과정을 지나치기 때문에 똑같은 실수를 답습한다. 아마도 Frankenstein이 고대과학을 좀더 유심히 공부하고 과학적 성과뿐만 아니라 연금술이 실패하게 된 과정 따위를 좀더 세밀하게 연구했더라면 무모하게 생명을 창조하는 짓거리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배웠다. Agrippa의 책에서도 그랬고 Ingolstadt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한하게 질주하는 그를 모두 우러러보고 칭찬하기만 했지 나무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과학적 발견에 골몰한 나머지 다른 가치들은 까맣게 잊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경솔함과 자만의 산물인 괴물을 세상에 내놓고 말았다. 결국 재앙이 벌어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수습하려는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은 기존의 과학탐구과정을 되짚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대과학 없이는 근대과학도 없었을 것이고 이는 최첨단의 현대과학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보면 과거의 진리는 허무맹랑한 소리 같지만 이러한 기반위에서 과학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한편, 지식의 추구는 항상 행복한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식의 갈구는 알면 알수록 새운 것을 알고자하는 중독성이 있다. Frankenstein은 자신이 경험한 중독성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but then resistless, and almost frantic impulse, urged me forward; I seemed to have lost all soul or sensation but for th 배우고 나니 이제는 문자를 배우고 싶어 했다. "I discovered that he uttered many of the same sounds when he read as when he talked. I conjectured, therefore, that he found on the paper signs for speech which he understood, and I ardently longed to comprehend there also;" 그런 다음 그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Felix가족의 사연에 대해서 알고자 노력했다. 혹시나 자신의 그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면서."My thoughts now became more active, and I longed to discover the motives and feelings of there lovely creatures; I was inquisitive to know why Felix appeared so miserable, and Agatha so sad. I thought (foolish wretch!) that it might be in my power to restore happiness to there deserving people." 하지만, Frankenstein이 끊임없는 생명창조의 지식을 갈망하다가 결국 재앙을 불러온 것처럼 괴물도 세상에 대해 알면 알수록 기쁨은 줄어들었다. 오히려 세상에 대해 배우게 되면서 자신의 비참한 존재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그 결과 자신을 창조한 사람에 대한 증오를 키워갔다. 이처럼 괴물의 지적능력이 발달할수록 그의 평화로운 생활은 점차 사라지게 되고 그의 작은 행복도 사그라졌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 대해 알게 된 것을 한탄하기도 했다. "I cannot describe to you the agony that these reflections inflicted upon me; I tried to dispel them, but sorrow발견을 완전히 가로막을 수 없다. 적당한 선에서 인간의 지식추구에 대한 열망을 멈추는 것이 중요한데 이러한 경계를 그 누가 안단 말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 곧 현대 과학과 지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이다. 과학자들은 과학적 성과에만 사로잡혀 주변의 중요한 모든 것들을 다 잊어버리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Frankenstein은 재앙을 겪고 나서야 이 소중한 교훈을 깨닫는다. 진정한 지식인은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것을 거부해야한다는 진리를 비로소 깨닫고 후회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살려 Walton으로 대변되는 후손들에게 이 교훈을 각인시켜준다. "Learn from me, if not by my precepts, at least by my example, how dangerous is the acquirement of knowledge, and how much happier that man is who believes his native town to be the world, than he who aspired to become greater than his nature will allow." 또한 자신의 비밀을 자꾸 물어보는 Walton에게 다음과 같이 꾸짖는다. "Are you mad, my friend? or whither does your senseless curiosity lead you? Would you also create for yourself and the world a demoniacal enemy? Or to what do your questions tend?" 즉 Frankenstein이 자신의 불행을 통해 얻은 교훈을 살펴보면 인간의 본성에 맞게 소박하게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식 그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능력을 넘어선 제어할 수 없는 지식은 상당히 위험해 질 우려가 있다. 소박한 행복이 과학적 포부보다 가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과학자들도 과학적 .
페미니즘이란 개념이 확립되기 오래전부터 많은 여성작가들은 여성의 가치를 높이고 권리를 되찾고자 힘겹게 노력해왔다. 여성들이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소외되었던 시절 그들의 생각과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효과적이며 유일했던 방법은 저작활동이 전부였다. 그래서 여성 작가들은 지면을 통해서나마 자신들이 주장을, 때로는 금기시 되는 이야기까지 속 시원하게 펼치곤 했다.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도 힘든 시대에 남성이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남성 작가들은 그들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주장하기 보다는, 그들의 캐릭터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여성의 정당한 권리와 가치를 내세웠다. 따라서 그들이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는 항상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특히 Chaucer와 Milton의 작품을 보면 겉으로 보이는 내용으로는 그들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Chaucer는 안티페미니스트에 가깝고 Milton은 페미니스트의 선구자라고 생각한다. 주로 반대되는 의견이 많지만 읽는 독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는 것이 고전의 묘미 아니겠는가? 굳이 남성작가들을 앞세워 페미니즘과의 연관성을 연구한 까닭은 남성작가들이 그들의 사회적인 우월함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편에 서서 그녀들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써 여성들의 주장에 큰 힘을 실어주고 그들의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작품을 살펴보며 Chaucer는 안티페미니스트 이고 Milton은 초기페미니스트인 근거를 찾아보도록 하자.* * * * *여성혐오주의자들은 뱀의 꾐에 넘어가 신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은 이브나, 트로이 전쟁의 원이 된 헤라와 같은 인물을 인용하여 여성이 본성적으로 사악하고 나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초기페미니스트가 여성의 정당한 가치를 바로 확립하기위해 사용하는 소재도 또한 이러한 고전들이었다. 서양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잘못된 가치관과 사상부터 뿌리 뽑아야 여성의 인권과 가치가 올바르게 확립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 여성의 재혼을 부당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결혼하고 자식을 낳는 것은 정당한 것이기에 자신의 재혼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다고 주장한다. 결혼뿐만 아니라 여성은 순결을 지켜야 하고 여성의 성욕을 부정한 것으로 보는 세간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강력하게 반박한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을 들어보면 결혼의 목적의 대부분이 성생활에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The genitals were made, that I defend,And for what benefit was man first wrought?Trust you right well, they were not made for naught.…Experience knows well it is not so:And, so the clerics be not with me wroth,I say now that they have been made for both,That is to say, for duty and for ease'그녀는 강력하게 성적 순결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가부장 사회를 비난하면서 여성의 성욕을 정당화 하고 있다. 생식기는 무의미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성생활을 즐기라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Bath부인은 여성에게 불리한 기존사회체계의 부당함을 강력히 거부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페미니스트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주장은 점점 이상하게 흐른다. 5명의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얘기하는데 있어서 자신을 포함한 여성들을 남성의 성적인 상대로만 간주하는가 하면, 결혼을 마치 여성의 성과 남성의 재산을 교환하는 일종의 계약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남편을 닦달하고, 남편 몰래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행동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하나님까지 운운하면서 결혼의 신성함과 정당성을 강조했던 기존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런 행위는 남자든 여자든 간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이다.'But t몸을 교환가치로 여기는 부분은 다른 부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Sparingly offer we our goods, when fair;Great crowds at market for dearer ware,And what's too common brings but little price:All this knows every woman who is wise.'이렇게 여성들의 몸을 남성을 유혹하기 위한 교환의 대상쯤으로 치부하는 것은 앞에서 여성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한 Bath부인의 페미니스트적인 요소에 먹칠을 한다. 이것뿐만 아니라 여성의 진정한 가치는 남성을 유혹하고 그들을 통제하는데 있으며, 남성을 속이고 제멋대로 주무르는 것은 여성의 천성적인 기질임을 이야기하고 있다.'Now hearken how I bore me properly,All you wise wives that well can understand."Thus shall you speak and wrongfully demand;For half so brazenfacedly can no manSwear to his lying as a woman can.'그녀의 말을 빌자면 여성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거짓말쟁이이다.'To women, naturally, the while they live.And thus of one thing I speak boastfully,I got the best of each one, finally,By trick, or force, or by some kind of thing,As by continual growls or murmuring;'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남을 속이고, 수다스러운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것들도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이런 것도 여성에게는 하나의 놀라운 능력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 같은데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롱거리만 될게 뻔하다. 그녀의 어리석은 자랑은 여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I made him think he gad 적인 폭탄선언과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논리로 Bath부인의 주장은 정당성을 잃어버린다. 겉으로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여성을 제시하여 뭔가 사회의 변하를 꾀한 것 같기도 하나 당시 사회분위기를 보더라도 이것은 난잡한 Bath부인의 사생활을 비난하여 여성을 깎아내리기에 딱 좋은 소재이다. Bath부인 그 자신도 남성과의 평등한 대우를 원했다기보다는 그들을 자신의 성적인 무기로 정복하고 자기 마음대로 부리고 싶어 했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페미니즘의 이념과 동떨어진 행동이다. Bath부인이나 이 캐릭터를 만든 Chaucer나 여성의 진정한 가지를 성적인 부분에 한정시킨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그렇다면 Milton의 Paradise lost에서 찾을 수 있는 초기페미니즘 요소는 무엇인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보자. 성경의 창세기에는 아담과 이브의 창조와 뱀에게 유혹되어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Milton의 시에 비하면 매우 짧게 서술되어있다. 객관적인 사실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 될 수 있다. 따라서 안티페미니스트들은 이브의 잘못에 초점을 맞춰 모든 인류의 죄를 이브 탓으로 돌리고 여성에 대한 편견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Milton의 시는 이브의 행동을 다른 시각에서 평가했으며, 원죄에 대한 변명의 여지를 만들어 놓았다는 점에서 눈여겨볼만하다.Milton은 나약하게만 보이는 이브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이브의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외모이다. 그녀는 세상에서 처음 눈을 뜨고 물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there I had fixtMine eyes till now, and pin'd with vain desire,Had not a voice thus warnd me,'그녀자신의 모습에 반할정도로 이브는 너무 아름다웠다. 하지만 아담의 모습을 처음 보고는 'Under a Platan, yet methought less faire,less winning soft, lhristina Rossetti의 "Goblin Market"에서 요괴들은 그들의 하는 끔찍한 짓만큼이나 흉측한 외모를 갖고 있다. 쥐새끼인지 고양이인지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는 잡종동물과 같은 그들의 모습에서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Paradise lost에 나오는 사탄도 마음이 사악해질 때마다 외모도 끔찍하게 변화하는 과정을 거쳐서 결국 징그러운 뱀으로 모습이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이브의 아름답고 찬란한 외모가 아담의 미덥지 않은 지적능력보다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Milton은 이렇게 이브에게 아담과 견줄만한 외면적인 가치를 부여하였다. 여성과 남성은 분명 다르지만 누가 더 가치 있고 누가 더 가치 없고를 따질만한 근거는 전혀 없다.물론 Paradise lost에서는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언급하는 부분도 역시 찾아볼 수 있다.'…though bothBut equal, as thir sex not equal seemd ;…Hee for God only, shee for God in him'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으로 똑같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것은 아담이고 이브는 아담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신의 말씀을 전해 듣는다. 심지어 이브 스스로도 자신은 아담에게 복종해야 하는 존재이며 아담을 곧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my GuideAnd Head…My Author and Disposer, what thou bidstUnargu'd I obey; so God ordains,God is thy Law, thou mine: to know no moreIs womans happiest knowledge and her praise.'하지만 이 부분에서 그 표현이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나 근본적인 의도는 이브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기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듣는 사람은 아담뿐이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율을 아담은 직접 하나님 에게 들었을 것이고 있다.
ShakespeareThe Merchant of Venice2003130456 김민희Consider the ways in which Shakespeare explores the theme of racism in The Merchant of Venice.이 극은 국제적인 무역도시 베니스를 배경으로 한다. 16세기 유럽은 반유대주의가 널리 퍼져있었지만, 베니스는 국제적인 무역도시였기 때문에 그러한 차별이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베니스의 상인』에서는 인종차별적 요소를 상당히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유대인인 Shylock은 아주 추악한 악역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희곡을 읽으면서 스스로 유대인들에 대한 적대적 감정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Shylock의 사악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기독교중심의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남고자 하는 모습을 동시에 찾아볼 수 있다. 즉, Shakespeare는 Shylock에 대해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의 사악한 면모가 때때로 등장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모두 다 중화되지는 않지만, 이러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그를 바라보는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인종차별적인 기독교사회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에세이 에서는 인종차별주의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기독교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탐구해 보았다.첫째로, 유대인 악역 Shylock을 통해서 기독교사회가 가지는 배타성의 문제를 드러낸다. Shylock은 매우 못되고 사악한 역할로 설정되었고, 등장인물 대부분이 Shylock을 싫어한다. 하지만, 여기에 모순이 있다. 사람들은 Shylock을 왜 싫어하는가? 그가 돈을 밝혀서? 표면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그나마 타민족에게 관대한 무역도시 베니스에서 조차 기독교인들은 이방인을 배척하고 사회로부터 고립시킨다. 제 1막 3장에서 안토니오가 “And say there is much kindness in the Jew" 라고 한다. 이 대사에서는 유대인 대부분은 본성적으로 원래 친절하지 않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는 뚜렷한 근거 없이 기독교인이 유대인에게 갖고 있는 편견이다. 제2막 3장에서 Lancelot이 Jessica에게 "Most Beautiful pagan, most sweet Jew, if a Christian do not play the knave and get thee, I am much deceive." 라고 하는 대사에는 유대인이 아름답고 착하다는 사실은 굉장히 드물고 신기한 일이라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있다. 제3막 1장에서는 Shylock이 직접 기독교 사회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배척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표현한다. “He hath disgraced me, and hindered me half a million, laughed at my losses, mocked at my gains, scorned my nation, thwarted my bargain, cooled my friend, heated mine enemies - and what's his reason? I am a Jew." Shylock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기독교사회로부터 인종차별과 같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만들어진 사회 부적응자이다.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을 핍박하고 차별하면, 그들은 본성이 아무리 착하더라도 사회에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은 그들을 더욱더 매도시키고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된다. 기독교인이 타민족에게 가지는 배타적인 감정은 더욱 심화되고, 이러한 사회가 악당 Shylock을 탄생시킨 것이다.둘째, 제 4막의 재판장면에서까지 벌어지는 인종차별문제를 통해서 기독교사회의 위선과 부조리를 지적한다. 이러한 차별대우는 사회적인 흐름일 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고착화된 심각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베니스의 법은 내국인이나 외국인 모두에게 공평하고 정의롭다는 점이 강조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Balthazar로 분한 Portia는 샤일록 에게 자비로운 용서를 권한다. 4막 1장 “Jew, Though Justice be thy plea, consider this. That in the course of Justice, none of us should see salvation. We do pray for mercy, and that same prayer doth teach us all to render the deeds of mercy" Portia의 이 대사를 보면 기독교인들은 근본적으로 자비와 구원을 가르치며 이 덕목들을 아주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자비와 구원은 오직 기독교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덕목인가? 자비를 강조했던 Portia가 재판의 후반 Shylock에게 법을 집행할 때에는 오직 정의만을 강조한다. “He shall have merely Justice and his bond." 또한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해놓고서 이방인에게 불리한 베니스의 법률을 적용시켜 Shylock을 파멸시킨다. “The law hath vet another hold on you: It is enacted in the law of venice, if it be proved against an alien that by direct or indirect attempts He seek the life of any citizen, the party 'gainst the which he doth contrive shall seize one half his goods, the other half comes to the privy coffer of the state, and the offender's life lies in the mercy of the Duke only" 이는 법 자체에 인종차별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베니스의 법령은 겉으로 자비로움과 평등함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아주 교묘하게 이방인들에게 불리하게 구성되어있다. Portia의 판결에서도, 처음에는 Shylock에게 자비의 덕목을 강조하며 설득하지만 나중에 Shylock에게 처벌을 내릴 때에는 인정사정없이 정의만을 강조하며 그를 파멸시킨다. 기독교사회의 위선과 양면성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Duke도 선심을 쓰며 Shylock의 생명을 구해주는 자비를 베풀지만, 돈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Shylock에게서 전 재산을 몰수하고 목숨만은 살려준다면 과연 자비라고 할 수 있을까.마지막으로 Jessica와 Lorenzo의 사랑은 인종을 초월한 화해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 Jessica는 Shylock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아주착하고 예쁜 유대인으로 등장한다. 기독교인 Lorenzo와 인종을 초월한 사랑을 나누고, 유대인의 신분임에도 기독교사회에서 조화롭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화해라기보다 유대인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킴으로서 유대인을 기독교 세계에 흡수시킨 것에 불과하다. 제5막에서 Belmont의 평화롭고 고요한 밤, Jessica와 Lorenzo의 대화를 들어보면 무언가 부족하고 허전해하는 Jessica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In such a night did young Lorenzo swear he loved her well, stealing her soul with many vows of faith and ne'er a true one" " I am never marry when I hear sweet music." Jessica는 표면적으로는 기독교 사회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이나, 기독교 사회로의 무조건적인 흡수는 유대인인 제시카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기독교 사회는 화합을 강조하지만 그러한 허울 좋은 덕목은 이방인을 위함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화합임을 Jessica의 경우를 통해 엿볼 수 있다.
Contrast among Korean, Japanese, and ChineseWhen I traveled abroad in China, I was often questioned, "Are you Korean or Japanese?" When you watch the Olympics, can you recognize whether the player is from Korea or Japan or China? It is very difficult to recognize them because they present a personal resemblance. However, there are clear differences among them, such as personality, preference, style, culture, and so on. I will introduce several kinds of general differences among them. First of all, they share similar personality with each other. Generally speaking, it is said that Koreans are frank, emotional, and integrated, on the other hand, the Japanese are kind, polite, hypocritical, and adaptable. In contrast, the Chinese are wild, harsh, full of self-confidence and active.
1.The secret of soapFirst of all, the most important material is soap in the movie. Tyler has a side job as a soap maker. The soap is a very popular item at the department store. By the way, Tyler uses body fat stolen from the liposuction clinic as a main stuff of soap. After all, the noble clients who use the Tyler's soap purchase the fat that was extirpatedfrom their body. What a silly! Although the shape changed, the essence is same. The soap made by the dirty fat let the person wash off the dirt. That is also irony. What is the boundary between dirt and clean? Dirt changes to clean and clean changes to dirt and It seems hard to search for their bound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