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uden 시 ‘Musee des Beaux Arts’ 해석과 해설1. 우리말 번역About suffering they were never wrong,고난에 관해 그들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The Old Masters: how well they understood그 옛날 대가들은: 어떻게 그들은 그리 잘 이해했을까Its human position: how it takes place고난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어떻게 그 고난이 발행하는지While someone else is eating or opening a window or just walking dully along;다른 이들이 먹거나, 창문을 열거나 단지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다니는 동안에도;How, when the aged are reverently, passionately waiting어떻게, 나이든 이들이 경건하고 열정적으로 기다릴 때For the miraculous birth, there always must be기적적 탄생을. 항상 얼음 위를 지치고 있음에 틀림없다Children who did not specially want it to happen, skating특별히 기적적 탄생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았던 아이들이,On a pond at the edge of the wood:숲 가장자리 연못에서:They never forgot그들은 결코 잊지 않았다That even the dreadful martyrdom must run its course심지어 끔찍한 순교가 정해진 일정을 따라 제 갈 길을 달려야만 함을Anyhow in a corner, some untidy spot어느 한구석, 약간 지저분한 구석에서Where the dogs go on with their doggy life and the torturer's horse그리고 그곳에서 개들이 개의 삶을 살아가고 고문관들의 말은Scratches its innocent behind on a tree.그 순진한 엉덩이를 나무에 비비고 있음을실패가 아니었다; 태양은 빛났다As it had to on the white legs disappearing into the green마치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파란색 물 안으로 사라지고 있는 하얀색 두 다리 위에서,Water, and the expensive delicate ship that must have seen그리고 호사롭게 치장한 그 값비싼 배는 보았음이 틀림없었다Something amazing, a boy falling out of the sky,놀라운 어떤 것, 즉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한 소년을,Had somewhere to get to and sailed calmly on.(하지만) 그 배는 가야 할 어딘가가 있고 조용히 제 갈 길을 갔다.2. 짧은 분석 및 해설2-1. W. H. Auden은 이 시를 1938년 12월, the Musees royaux des Beaux-Arts de Belgique(the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를 방문한 후 썼다. 시의 화자는 미술관의 회랑을 따라 걸어가면서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는 가운데, 고통에 대한 인간의 태도? 무관심 ?를 그려낸 작가들의 역량을 칭송한다. 이 시는 시각적인 예술 작품의 상세한 설명을 문학적 기제로 사용하는 ekphrasis의 전형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냉정하게 그림을 설명하고, 극단적인 고통 앞에서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에 관심을 집중한다. 1938년 Brussels를 방문하기 전에 Auden은 제2차 중일 전쟁 기간에 잠시 중국에 있었고, 스페인 내전의 전선에서 몇 주 있었는데, 이 시는 이에 ? 한쪽에서는 피 흘리고 전쟁하는데도, 또 다른 쪽에서는 무관심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2-2. 이 시는 Brussels의 the Musees Royaux des Beaux Arts에 있는 옛날 미술 작품들, 특히 그 중에 유명한 작품인 ‘The Fall of Icarus’ith Skaters and a Bird Trap,” “Massacre of the Innocents,” “The Census at Bethlehem”을 관람한다. 이 회화작품들은 삶이라는 직조물이 갖는 대조적인 인간 경험의 양태? 어떤 사람은 극단적으로 고통을 당하는데 다른 이는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이 본인의 일을 한다. -를 강조한다. 이는 “왜 사람들은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도와달라는 요청을 무시하는가?”라는 철학적 문제를 독자에게 제기하는 것이며, 이 시는 이 문제에 대한 부분적인 답을 제공한다.2-3. 이 시의 첫번째 주제 : 고난에 대한 인간의 무관심이 시의 화자는 미술관 회랑을 걸어가면서 과거 시대의 위대했던 미술가들의 작품에 대해 관조한다. 화자는, 여러 미술 작품 중에서 특히 두 개의 이야기를 취급하는 작품에 주목하는데, 그 하나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그린 작품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카로스의 추락을 그린 작품이다. 이 두 개의 작품을 통해 화자는 독자들에게 그 장면 속의 구경꾼, 혹은 방관자들의 무관심과 부주의함에 주목하게 한다. 화자는, 그림 속 방관자의 타자의 비극에 대한 무관심을 노정함으로써 인간 고난의 일상화가 그 고통에 대한 개인적 감수성마저 무뎌지게 했음을 암시한다.Breughel 부자의 그림들을 살펴보면서 화자는 자신들 주위에 고통이 산재해 있음에도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방관자들을 묘사한다. 화자가 처음 이야기하는 작품은 “The Census at Bethlehem”인데, 이 작품은 그들이 베들레헴으로의 먼 여정을 마친 마리아와 요셉을 묘사한다. 화자는 그림 속에 재현된 매일의 일상 중 몇개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것이 그리스도의 탄생의 배경막(‘someone … eating or opening a window or just walking dully along.’)이다. 화자는 방관자의 세속적이면서 하찮은 행동을 표현하면서 ‘dully’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것은 사람들의 일상사가 무료하고 따분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작품 속에는 최초의 그리스도교의 순교자들, 즉 2살 이하의 베들레헴 소년들의 고난에 주목한다. 유대왕 헤롯 예수의 탄생을 자신의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베들레헴의 2세 이하의 소년들을 살해했다. 그러함에도 개들은 여전히 개의 생활을 유지하고, 헤롯 병사의 말은 나무에 그의 엉덩이를 비비고 있다. 이런 고통과 일상성의 이미지를 병치시킴으로써 화자는 비록 믿을 수 없는 고난과 폭력에 직면할 때조차도 삶은 살아내야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이어서 화자는 “the Fall of Icarus”에 주목한다. 이 그림 속에서 방관자들은 그들 앞에 벌어진 고난에 대해 인식하고 있지만, 여전히 외면한다. 그리스 신화 속의 이카로스는 그의 등에 깃털로 만든 날개를 왁스로 붙였다. 그는 이 날개로 탈출을 결행했지만,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감으로 인해 날개가 녹아내리고 결국 바다에 떨어져 익사했다. 시의 화자는 이런 모습을 맨 먼저 접한 농부의 반응을 먼저 이야기한다. 화자의 설명에 따르면 농부는 이카로스가 물어 떨어지는 소리도, 그가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고함소리도 들었을 수도 있었지만(‘may / Have heard the splash, the forsaken cry’), 그것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자신의 밭을 가는 일을 계속했다. 이어서 화자는, 추락의 원인을 제공했으면서도 여전히 본인의 일을 하는 것이나 되는 것처럼 물속에 거꾸로 빠져 두 발만 내밀고 있는 이카로스의 두 발을 비추는 태양을 묘사한다. 사노라면 종종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이, 자신의 그 고통의 원인임을 알지 못하고 계속 그 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삶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은 ‘ship’이라는 또 다른 매개체로 표현된다. 화자는 그 배가 이카로스의 추락을 틀림없이 보았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그 배는 자신의 여행을 계속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화자의 ‘may,’ ‘must,’ ‘had to’와 같은 단어의 사용은 이카로스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의 불가항력을 표현a corner, some untidy spot.’)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화자는 이카로스의 죽음을 재앙(‘the disaster’), 하찮은 실패(‘not an important failure’), 놀랄만한 어떤 것(‘something amazing’)으로 묘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화자는 인간의 고난이 마치 평범한, 일상적인 것인 양 만들어 버린다. 이 점에서 화자는 그림 속 방관자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이런 화자의 모습을 통해 시인은 고난에 대한 인간의 무관심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그런 무관심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이런 인간의 조건은 어른에서 아이에 이르기까지, 동물에서 무생물체까지, 고대 그리스와 베들레헴에서 브뤼겔이 살았던 독일까지 시공간을 초월하여 동일하다.2-4. 이 시의 두번째 주제 : 예술과 진실화자는 미술관 회랑의 그림들이라는 배경을 철학적 성찰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고, 특정한 그림들이 근본적인 인간성에 대한 진실을 보여준다고 찬탄한다. 따라서 이 시는 미술관 회랑의 세팅과 특정한 그림들, 그리고 시적 기교를 사용하여, 다른 방식으로는 인식하기 힘든 보편적이고 영속적인 진리를 미술 작품이 보여줄 수 있음을 긍정한다.시 속의 미술관이라는 세팅은 화자의 인간 고난에 대한 분석 뒤에서 동기를 부여하는 힘으로써 작동하는 독보적인 미술의 역할을 보여준다. 화자는 시의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고통에 대한 인간의 무관심을 전달하는 특정 예술 작품의 능력을 칭송한다. 이를 위해 화자는 그림의 세세한 부분까지 묘사하면서, 어떻게 미술 작품이 스스로 인간성에 대한 보편적 진리를 드러내는지를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화자는 ‘The Census at Bethlehem’에서 창문을 열고 있는 사람을 지적하기도 하고, 바로 독자들의 시야를 숲 가장자리의 연못에서 스케이트 타고 있는 아이들(‘children … skating / On a pond at the edge of the wood’)에게로 인도한다. 심지어 “The다.
W.H.Auden 시 ‘The Unknown Citizen’ 해석과 해설1. 우리말 번역(To JS/07 M 378JS/07 M 378 에게This Marble Monument이 대리석 기념비는Is Erected by the State)정부에서 세웠다)He was found by the Bureau of Statistics to be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그는One against whom there was no official complaint,누구에게도 공적인 불평을 들은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고,And all the reports on his conduct agree그의 행동에 관한 모든 보고서들이 동의한다That, in the modern sense of an old-fashioned word, he was a saint,현대적 감각에는 고답적인 단어를 빌어 표현하면, 그가 성인이었음을.For in everything he did he served the Greater Community.그 이유는 그가 매사에 있어서 더 큰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였기 때문이다.Except for the War till the day he retired전쟁 때를 제외하고 그는 은퇴하는 날까지He worked in a factory and never got fired,한 공장에서 일했고, 한 번도 해고당한 적이 없었다,But satisfied his employers, Fudge Motors Inc.오히려 그는 고용주인 퍼지 자동차 회사를 만족하게 했다.Yet he wasn't a scab or odd in his views,그러나, 그가 노조원의 의무를 저버리거나, 괴상한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For his Union reports that he paid his dues,노조의 보고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노조비는 부담했기 때문이다.(Our report on his Union shows it was sound)(우리 기록에 따르면 그의 노조는 정상적인 노조였다)And our Soc in every way.광고들에 대한 그의 반응들 또한 모든 면에서 정상적이었다.Policies taken out in his name prove that he was fully insured,그의 명의로 가입된 보험증권은 그가 종합보험을 들었음을 증명하며,And his Health-card shows he was once in hospital but left it cured.그의 건강기록은 그가 한번 입원한 적이 있지만 완쾌하여 퇴원했음을 보여준다.Both Producers Research and High-Grade Living declare생산자 연구기관과 고급수준 생활 연구기관은 선언한다.He was fully sensible to the advantages of the Instalment Plan그는 할부의 혜택들에 대해 완전히 누렸으며And had everything necessary to the Modern Man,현대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A phonograph, a radio, a car and a frigidaire.즉 축음기, 라디오, 자동차, 냉장고를 갖추고 있었다고.Our researchers into Public Opinion are content우리의 여론 조사원들은 만족했다.That he held the proper opinions for the time of year;그가 시기에 맞는 적절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에.When there was peace, he was for peace: when there was war, he went.평시에는 평화를 지지하였고, 전시에는 (전장에) 나갔다.He was married and added five children to the population,그는 결혼해서 인구에 다섯 아이를 더하였는데Which our Eugenist says was the right number for a parent of his generation.우리의 우생학자의 말에 따르면 다섯은 동시대 부모에게는 올바른 숫자 우리가 분명히 알아차렸을 게 아닌가.2. 짧은 분석 및 해설2-1. 이 시는 W. H. Auden의 1939년 작품이고, 그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쓴 것이다. 1940년 1월 6일 The New Yorker에 발표되었고, Another Time이란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묘비명의 형식으로 되어 있고, 사자의 이름은 미국의 사회보장번호와 같이 단지 문자와 숫자로만 구성되어 있다("JS/07/M/378"). 이 시에서 그는, 전적으로 ‘Bureau of Statistics’라는 가상의 정부 기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외적 조건들로만 묘사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죽은 이가 완전히 평균적인, 그래서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다고 결론 짓는다. 하지만, 시인은, ‘Was he free? Was he happy? The question is absurd:’와 같은 다분히 문제적인 발언을 던짐으로써 개인주의를 희생하는 대가로 얻게 되는 표준화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시인은 관료화된 정부기관에 의해서 시민들의 개인적인 이름이 아닌 임의적인 숫자와 문자로 치환될 수 있는 사회가 도래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2-2. 이 시는 일종의 풍자적 만가(elegy)이다. 표면적으로는 최근에 사망했고, 정부에 의해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고 인정받은 한 사람을 칭송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는 일종의 디스토피아적인 사회에 대한 보고서라고 볼 수 있다. 시인은 다양한 정부 기관들의 시야를 통해 다양한 형태로 ‘표준화된, 혹은 보통의’ 시민상을 묘사함으로써 표준화와 국가와 시민과의 관계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특히 이 시의 마지막 2행(‘Was he free? Was he happy? The question is absurd:/Had anything been wrong, we should certainly have heard.’)은 개인의 자유, 혹은 행복과 같은 가치를 묻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고, 정부 기인의 영역까지 전권을 행사하는 현대사회에 대해 풍자한다. 이 불운한 남자는 죽어서도 정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특히 이 시는 이와 같은 억압이 감시 ? 개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정부 기관-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런 점에서 이 시의 제목은 아이러니컬 하다. 정부는 죽은 이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정부가 그 시민들을 너무 밀착 감시하여서, 이런 사회에서는 정부의 의도가 시민들이 올바른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 같은 외연을 취하고 있을지라도, 개인의 자유는 불가능하다.이 시가 비록 사망한 무명의 시민의 삶에 대한 칭송하는 외견을 취하고 있어도 그 칭송이라는 것이 순종적이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삶이라는 교과서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을 칭송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시에서 말하는 좋은 시민은, 외부의 감시 기구들이 규정하기에 그가 마땅히 해야 할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 시의 무명 시민은 정부 기관에 의해 어떤 공적인 불평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정부 기관이 이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었다. 시인은, 이 무명 시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함으로써 정부가 개인의 삶을 얼마나 세밀하게 감시하고 있는지, 그리고 규율하고 있는지를 독자에게 말하고 있다. 정부는 사람을 인격적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데이터 뭉치로 이해한다. 이 시에서 정부는 죽은 이의 모든 삶을 데이터로 계량화하고 감시한다. 이는 시민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더 나가서 정부는 개인의 언어까지도 제멋대로 취사선택한다. 인간의 개인적 자유와 행복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와 달리 감시사회는 교과서적인 도덕적 가치와 촘촘하게 짜여진 공동체를 우선시한다. 이 시는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을 축성 받은 성자(‘saint’)에 비견한다(축성된 성자는 이름을 갖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삶을 살았던 무명 시인은 이름이 없다.). 개인적 행복뿐 아니라 종교적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것조차도 정부가 규정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가, 인간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요소를 실제로 잠식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 주제는 첫번째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표준화와 획일화는 현대적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증가하는 대량 생산과 산업화에 대해 비판하기 위해 이 시는, 죽어서 사회보장번호로 인식되는 무명 시민을 ‘현대인’의 전형(the Modern Man)으로 묘사한다.이 시는 현대사회가 생산성과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람들을 표준화하고, 일차적인 의미에서 삶을 삶답게 만드는 개인성을 말살한다고 본다. 표면적으로는 개인이 자유롭게 본인의 삶의 양태를 결정하는 것 같지만, 그 자체가 정부가 만들어 놓은 표준화된 삶을 자신이 선택한 삶인 양 오해하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개인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양한 사회적 기관들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그 틈바귀에서 개인은 스스로 생각할 여지가 없다. 현대사회에는 옳고 그름만 있고, 그것조차 정부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른다. 그러므로 개인은 사회가 원하는 적절한 반응을 보일 때만이 성인(‘a saint’)로 축성된다. 물론 이런 획일화는 정부 기관에 의해서만 강요되는 것이 아니다. 그 외의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기구들에 의해서 강화된다. 특히 이 시에는 광고시장에 대한 비판이 있다. 현대의 광고는, 그 결과 획일화를 야기할, 개인의 행복에 대한 거짓된 믿음을 판다. 죽은 이의 광고에 대한 반응들이 정상적이었다는 언급(‘reactions to advertisements were normal’)은 획일화된 구매패턴? 축음기, 라디오, 자동차, 냉장고?으로 나타난다. 광고가, 표면적으로는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물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획일화된 개성을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다.이 시는 이런 광고의 기능을 정부 기관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시에는 반복적으로 이상한 정부 기관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정부 기관들을 보면 거의 사회의 모든 부있다.
W.H.Auden 시 ‘Look, Stranger’ 해석과 해설1. 우리말 번역Look, stranger, on this island now낯선 이여, 보시게, 지금 이 섬에서The leaping light for your delight discovers,이리저리 노니는 빛이 그대를 기쁘게 하네.Stand stable here여기 가만히 서서And silent be,말없이 있어 보시게That through the channels of the ear그럼 귓구멍을 통해May wander like a river강물처럼 흘러들어 올 걸세The swaying sound of the sea.흔들리는 파도 소리가.Here at a small field's ending pause이곳 작은 벌판의 끝자락에 서 있게.Where the chalk wall falls to the foam and its tall ledges흰색 벽이 포말로 떨어지고 앞으로 튀어나온 절벽 끄트머리가Oppose the pluck조류의 쿵쿵거림과And knock of the tide,부딪힘을 맞아서는 곳에,And the shingle scrambles after the sucking surf,조약돌들이 빨아대는 파도 따라 왔다갔다 노닐고And a gull lodges갈매기 한 마리가 잠시A moment on its sheer side.깎아지는 듯한 측면에 머무는 곳에.Far off like floating seeds the ships저 멀리 부유하는 씨앗들처럼 배들이Diverge on urgent voluntary errands,다급한 자발적 일들로 각기 떠다니네And this full view그리고 이 온전한 전경이Indeed may enter참으로 들어와서And move in memory as now these clouds do,움직이리라 기억 속에서, 마치 지금That pass the harbour mirror항구의 거울을 지나서And all the summer through the water saunter.여름 내내 물 위를 거니는 이 구름들이 그러하듯이.2. 짧은 분석 및 해설2-1. 이 시는 W. H. Auden의 1936년 시집(“Look, Stranger”)에 실려 있다. 이 시집은 여러 가지 면에서 Auden 초기 시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동시대인들의 시와 달리 간결하고 명료하며 감정적이다. 또한, 섬세한 음률과 주제의 일관적 응집성을 보여준다. 이 시도 예외는 아니다.2-2. 이 시는 Arnold의 “Dover Beach”와 함께 읽으면 좋다. 도버 해안의 풍광이 선명한 이미지의 정교한 결합을 통하여 그림같이 묘사되고 있는 점과 주제의 유사성이 있어서이다. 시 속의 화자는 도버 해변으로 보이는 절벽 위에 서서 상상 속 청자에게 도버 해변의 아름다움과 파도 소리를 들어보라고 부탁을 한다. 그는 낯선 이인 청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백색의 절벽을 감상하고 가만히 서서 해변에서 들리는 파도 소리를 듣는 것을 기대한다. 파도의 포말이 부서지는 절벽 밑의 모습과 파도의 들어오고 나감이 다양한 이미지를 통하여 감각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멀리 바다 위에는 배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 해변의 절벽 바위 위에는 갈매기 한 마리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시의 화자처럼 그 갈매기는 곧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 분주하게 오가는 배들처럼 바다를 헤치고 나가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2-3. 이 시는 서정시로써 자유시(free verse)의 전범을 보여준다. 이 시는 형식적 요소를 주제와 잘 조화시킨 작품이다. 먼저 음운의 사용에 있어서 탁월하다. ‘l’음의 반복(‘leaping’, ‘light’, ‘delight’)과 ‘s’음의 반복(‘swaying sound’, 'sea', ‘shingles’, ‘scrambles’, ‘sucking’, ‘surf’)은 이 시를 음악적으로 만들 뿐 아니라 햇빛에 반짝이는 파도의 모양을 적절하게 묘사함으로써 시의 분위기를 경쾌하게 한다. 또한, 다양한 시의 이미지를 시의 주제와 섬세하게 연결하고 있다. ‘the pluck’과 ‘the knock’과 같은 의성어의 사용은 독자가 해변의 자갈 위로 왔다 갔다 하면서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사실감 있게 느끼게 하고, ‘channels of the ear’와 ‘sucking surf’와 같은 공감각적 이미지의 사용은 감정을 고조시키기의 충분하다. 바다 위에 멀리 떠 있는 배들을 묘사하는 ‘like floating seeds the ships’와 같은 직유와 ‘harbour mirror’와 같은 은유의 사용은 갈매기 한 마리로 표현된 시인의 두 가지 마음 상태 ? 머물고 싶지만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 ?를 표현하기에 적합하다.1) 직접적으로는 영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동시의 은유적으로는 작가의 시적 세계이기도 하다.2) 파도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모양을 나타내는 시적 표현3) “노출하다, 드러내다.” 정도의 뜻. 연속되는 ‘l’ sound의 반복 - ‘leaping’, ‘light’, ‘delight’ -은 파도의 경쾌한 리듬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 동시에 이 파도를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도 나타낸다.4) 이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물고가 탁 트인 운하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과 같이 파도 소리가 밀려 들어옴을 나타낸다.5) 들판이 끝나고 절벽이 시작되는 곳6) 절벽을 나타내는 말. 절벽의 색깔이 “흰색”이어서 chalk라는 표현함.7) 파도의 포말이 흩어지는 곳까지 뚝 떨어지는 절벽의 모습.8) 절벽 위로 울퉁불퉁 튀어나온 바위들.
Christina Rossetti의 시 ‘Remember’ 해석과 해설1. 우리말 번역Remember me when I am gone away,기억해 주오 나를. 나 떠날 때Gone far away into the silent land;침묵의 땅으로 멀리멀리:When you can no more hold me by the hand,더 이상 그대 내 손을 잡을 수 없고Nor I half turn to go yet turning stay.나 또한 반쯤 돌아서 가지도, 머물러 있지도 못하는 그 때.Remember me when no more day by day기억해 주오 나를. 매일매일 더 이상You tell me of our future that you plann’d:그대가 계획했던 미래를 나에게 이야기해 줄 수 없을 때:Only remember me; you understand단지 나를 기억해 주오: 그대는 알고 있소It will be late to counsel then or pray.조언하거나 기도하기에는 너무 늦을 것임을.Yet if you should forget me for a while하지만 잠시 그대 나를 잊었다가And afterwards remember, do not grieve:그 후에 기억한다 해도, 슬퍼하지는 마오.For if the darkness and corruption leave암흑과 부패가 지우지 못한다면A vestige of the thoughts that once I had,한 때 내가 가졌던 생각의 일말의 흔적을,Better by far you should forget and smile그대가 잊고 미소 짓는 것이 좋기 때문이오Than that you should remember and be sad.기억하고 슬퍼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2. 짧은 분석 및 해설2-1. 이 시는 Christina Rossetti (1830-1894)가 10대 시절(19세)에 쓴 시이다. 1849년 작시 되었으나,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1862년이다. 1862년 Rossetti의 최초의 시집 Goblin Market and Other Poems가 출간되었는데, 이 시는 여기에 실려 있다. 이 시는 Rossetti의 또 다른 초기시 “Song” (‘When I am dead, my dearest’)와 같은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2-2. 이 시는 the Petrarchan sonnet이라는 장르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시는, 전통적인 the Petrarchan sonnet처럼, ‘abba abba’의 형태의 각운을 가진 octave와 ‘cdd ece’의 형태의 각운을 가진 sestet(이 부분은 전통적 the Petrarchan sonnet의 각운 구조의 변형)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주제도 사랑(물론 죽음의 주제도 포함되어 있다. 죽음, 혹은 이별은 항상 사랑의 감정을 반추해보게 하는 좋은 모티프이다)이다. 또한, 전통적인 형태의 ‘volta’도 첫 8행의 마지막 부분과 9행 첫 줄 사이에 ‘Yet’이라는 시어로 존재한다.2-3. 이 시는 화자의 감정의 흐름을 소네트라는 형식 틀 속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각운의 닫힌 구조, 즉 abba 형태의 반복적 사용은, 자신이 죽은 후 혼자 남겨질 연인에 대해 가지는 화자의 이율배반적인 마음 ? 잊지 말라고 하고 싶기도 하고 잊어버리고 하고 싶기도 한 마음 ? 을 극대화하기에 충분하다.Remember me when I am gone away,Gone far away into the silent land;When you can no more hold me by the hand,Nor I half turn to go yet turning stay.첫 3행은 죽음과 삶의 세계를 대비시킨다. 삶은 ‘기억하라’고 말할 수 있는 세계요, 죽음은 말이 잊혀진 세계(silent land)이다. 말을 잊은 세계는 죽음의 세계요, 망각의 세계이다. 그 세계는 육체적 감각이 없는 세계(‘you can no more hold me by the hand’)이고, 종국적으로 가야만 하는 세계(아무리 머물고 싶어도 한번 떠난 길을 되돌릴 수 없다)이다. 이 시의 1행의 ‘away’와 4행의 ‘stay’는 죽음을 앞둔 화자의 떠남과 남음 사이에, 망각함과 기억함 사이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효과적인 기제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4행은 화자가 이 세상에, 또한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더 이상 머물 수는 없고, 떠나야 함을 알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화자의 마음은 닫힌 구조 속에 있다.Remember me when no more day by dayYou tell me of our future that you plann’d:Only remember me; you understandIt will be late to counsel then or pray.이어지는 sestet에서 화자는 octave에서 표현했던 자신의 마음을 놓아주기로 결심한다. 죽음은 같이 계획했던 계획들을 무산시킨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꾸었던 미래의 꿈도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것이 된다. 심지어 사랑했던 이의 기억까지도 잊게 만든다. 시의 화자는 자신이 죽고 나면 남겨진 연인이 비록 순간적일지라도 자신을 잊을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임을 안다. 또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슬퍼할 연인의 모습을 안다. 죽음의 은유인 ‘암흑/어둠’은 이생의 모든 것을 지우고, 사체의 부패는 이 땅 위에서의 존재의 기억을 지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생각의 한 흔적이라도 남는다면, 그리고 그것 때문에 연인이 슬퍼하게 된다면, 차라리 잊혀지는 것이 더 낫다. 그러니 이제 화자는 남겨질 연인이 자신을 잊고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Yet if you should forget me for a while
House Made of Dawn 읽기1. 제목에 대하여Floyd Watins에 따르면 이 작품의 제목과 이미지는 나바호 인디언들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의식(ritual)의 일부로 사용했던 ‘밤의 송가(the Navajo Night Chant)’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168). 이 송가는 100행에 이르는 긴 기도문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사제가 긴 기도를 하고 나면 환자가 한 문장씩 한 문장씩 따라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 편의 기도문이 있으며, 각각의 기도문은 신들의 특성에 관한 언급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하다. 이 소설에서 Momaday가 사용한 기도문은 ‘꽃가루의 지배자(the chief of pollen)’인 ‘검은 새(the dark bird)’에게 드리는 기도문으로, 이 새는 다른 초자연적인 것들과 마찬가지로 Tse’gihi에 살고 있다. Momaday는 이 기도문을 45행으로 줄여서 Benally의 입을 통해 말하고 있다(Momaday, 146-7). House Made of Dawn은 대지를 뜻한다(Watkins 169).많은 문학작품이 그렇듯 이 작품의 제목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식에 사용되었던 기도문의 한 구절을 제목으로 가져옴으로써 작가는 이미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디언들이 정신적으로 병든 상태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이를 치유하려는 주술적 의미를 작품에 부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Abel이라는 주인공을 치유함으로써 이 주술은 본래 목적을 달성했다. 또한 ‘House Made of Dawn’의 문자적인 의미 ‘대지’는 작품의 등장인물들인 인디언들이 고향인데, 이 작품은 Abel, Tosamah, Benally 등 인물이 각각 그들의 땅을 떠나 백인들의 도시로 떠나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병든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그들에게 대지는 삶의 터전일 뿐 아니라 전통과 역사의 무대이며, 자신들의 뿌리이다. 이를 떠난다는 것은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과의 단절을 뜻한다. 자신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하고 있고, 2장과 3장은 1952년의 Los Angeles라는 공통의 배경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2장은 태양의 사제라 불리는 Kiowa족 출신의 인디언 Tosamah의 설교를 중심으로 Abel을 비롯한 주변인물들이 그려지고, 3장은 Benally라는 Navajo 인디언이 화자로 등장하여 그의 눈에 비치는 Abel의 외적인 모양과 내적 갈등을 묘사한다. 4장은 Walatowa를 배경으로 고향에 돌아온 Abel이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본 후 인디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아가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 소설은 결국 종족이 다른 인디언들이 각기 자신들의 전통과 단절하고 도회지로 나옴으로 겪게 되는 정체성의 위기를 이야기하며, 그것에 대한 구원은 인디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함에 있음을 이야기한다.이런 이야기 구조는 순환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달리기의 이미지와 구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서언부에서 Abel이 달리는 모습으로 이 소설은 시작되고,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Abel이 맨 몸으로 노래를 부르며 달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소설은 이런 달리기의 순환구조 속에서 모든 사건이 발생, 변화, 발전, 변용한다. 서언부에서 홀로 평원을 달리던 Abel이 2차 세계 대전을 참전한 후 귀향하지만 자신의 고향에 적응하지 못하고 술집에서 다툼 끝에 Albino를 살해하게 된다. 이로 인해 교도소에 수감되어 7년을 복역한 후 LA로 간다. 하지만, 자신의 토양을 떠난 그는 백인들에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자리를 잃고 술로 허송세월하다가 Marinez에게 구타를 당하고 Tosamah에게 정신적 학대를 당한 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다. 고향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죽음과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런 그의 마지막 모습이 달리기이다. 이 마지막 장면은 Abel의 인디언 전통으로의 복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전장에서 돌아온 그가 자신을 돌보아주던 할아버지를 못 알아본 채 쓰러졌던 모습과 LA에서 방황했던 모습과는 대비되는 것으로, 혼의 상징이자 영혼의 표현‘이라고까지 언급하고 있지 않은가!(Watkins 145-6 재인용)3. 주변인으로서의 존재 방식1) Martinez : 끊임없이 백인 주류사회로부터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타자화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그에게 있어 타자인 백인 주류 사회는 선망의 대상이며 동일시하고자 하는 대상이다. 그런 그의 욕망이 일정부분 충족된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굴절되고 왜곡된 욕망의 형태로 난다. 즉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인디언들을 통제하고 억압하고 폭행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권리를 타자(의 세계)로부터 부여받는다. 그는 그 권리를 자신의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인디언들에게 행사함으로써 나름대로의 American dream을 이루려 한 것이지만,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이런 그에게 같은 인디언인 Abel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Abel이 그의 의도에 순응하지 않자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손을 들라는 자신의 명령을 마지못해 따르는 Abel의 모습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불경스러운 일이다. 이는 자신을 타자화하고자 하는 Martinez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존재 자체의 위협 요소인 것이다. 그러니,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나타나면 모두가 침묵한다. Benally는 그를 “a cop and a bad one”(141)라고 평가한다.2) Tosamah : Kiowa 인디언으로 타자의 도시 LA에 일종의 사이비 교회 같은 자신의 ‘영토’를 소유한 인물이다. 그는 스스로를 태양의 사제라고 부른다. 상상력도 풍부하고 감수성이 있으며 이해력까지 겸비한 인물이다. Martinez처럼 자신의 인디언으로서의 정체성(Indianness)도 부정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그의 교회에 찾아오는 다른 인디언들처럼 자신의 인디언으로서의 정체성을 사랑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는 할머니로 상징되는 인디언들에게 하는 것과 동일한 선상에 있음을 뜻한다. 그 언어를 행사하는 대상이 자신의 인디언 형제들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Martinez가 타자화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과 공포를 이용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Hirsch 310-1).그는 자신의 종족 문화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고 있다. 현대 미국의 도시 생활이 ‘대지’를 떠나온 많은 인디언들에게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음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인디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괴롭다. 그에게 Abel은 ‘인디언 다움의 화신’이다. 그를 볼 때 그는 수치와 경외심을 동시에 느낀다(Hirsch 311). 그러나 결국 그도 Martinez처럼 ‘대지’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인물이니 자신에게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Abel을 정신적으로 괴롭힌다(Momaday 160-1). 어찌 보면 그는 Abel을 괴롭힘으로써 스스로의 영혼에 고통을 가하는 타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도 타자가 될 수는 없는 주변인일 뿐이다.3) Benally : 백인들의 도시에서 자신의 삶의 재단하려 했던 인물이지만, Martinez와 Tosamah와는 달리 Abel에게 호의적이다. 그는 백인들의 도시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으며, 그 자신도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Momaday 145). ‘House made of dawn’이라는 노래를 불러주는 것도 Benally이다. 그는 Abel에게만 이 노래를 들려주기를 원했는데, 이는 Abel이 이 노래가 가지고 있는 함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대도시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또 다른 욕망이 있다. 그는 백인들의 도시에서의 삶이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서의 삶보다 낫고 보다 만족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It’s a good place to live. There’s always a lot going on, a lot of things to do...(there where you came from) Thouse. And you want those things. (Momaday 180-1)하지만, 허상이다. 이미 1일 10시간 노동이 정착된 도시에서 그는 12시간을 일해야 하는 이방인일 뿐이다. LA의 많은 것들은 단지 ‘거기’(타자의 세계)에 있을 뿐이지 인디언 Benally의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그들’이 가진 것을 ‘원할 뿐’이다. 그의 비극은 이런 원함이 동력이 되어 스스로 자신의 전통에서 자신을 격리한 것이다.You have to change. That’s the only way you can live in a place like this(LA). You have to forget about the way it was, how you grew up and all. (Momaday 148)4) Francisco : 인디언 고향을 지키며 그 전통을 사랑하는 인물이다. 인디언으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하다. 도시에서 방황하던 Abel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대지와 같은 인물이다. 인디언 고유의 자연 친화력 및 사냥의 전통을 체화한 인물이고, 도시로 떠난 그의 후손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의사와 같은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죽음 이후에 Abel이 인디언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했다는 것은 인디언 전통의 성공적 계승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Abel을 바로 세우는 역할을 감당한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Abel을 맞이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Abel stepped heavily to the ground and reeled. He was drunk, and he fell against his grandfather and did not know him... Tears came to his eyes, and he knew only that he must laugh and turn away from the faces in the windows of the bus. He held Abel upright and led him to t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