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병(컨투어 병) 에 관한 궁금증 몇 가지..-콜라병 모양, 디자인에 대한 유래(유래1)빨간 바탕에 하얀색 글씨로 쓴 코카콜라(coca-cola)라는 로고는 프랜크 로빈슨(Frank-Robinson)이라는 최초의 동업자가 코코아 나뭇잎과 콜라나무 열매에서추출해낸 원료를 써서 만들었다고 해서 두 단어를 합성해서 이름을 만들어 내었다.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로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가 움푹 파인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디자인의 독창성에 있다.영국의 디자이너 스티븐 베일리는 그 독창성을 ''시간을 뛰어 넘는 산업 디자인의 명품'' 이라며 소비상품의 역사상 가장 친숙한 디자인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가장 뚜렷이 박힌 코카콜라병은 어떻게 해서 디자인 되었는지 보자.초창기 콜라병은 맥주병과 같은 형태였다.당시 코카콜라는 다른 소다음료수와별 차이 없이 판매됐기 때문에 진짜 코카콜라 맛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캄캄한 곳에서 만져만 보아도 구별할 수 있는 차별성이 있는 병 모양이 필요하다는 병 공급업자의 요청을 받아들여 기존 병입 시설을 그대로 쓸 수 있는 조건과 함께 병 모양을 공모하였다.지금까지 나와 있는 코카콜라병디자인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첫째는 루드라는 루트 유리병 공장의 공원이 자기 애인의 몸매를 보고 그렸다는 설이다.둘째는 루트 유리병 공장의 디자인 담당자인 사무엘슨이 코코아 열매를 보고 디자인 했다는 설이다. 두 이야기 중 여자 몸매를 보고 그렸다는 설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아마도 병 모양이 여자의 몸매와 비슷하기 때문에 쉽게 어필될 수 있고 신분이 공원이었던 사람이 디자인을 해서 600만 불을 받았다는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꿈을 줄 수 있어서 잘 알려져 있는 것 같다.그런데 미국 특허청에 디자인 특허로 등록 되어있는 서류를 보면 다음에 보는 그림에서처럼 사무엘슨이 1915년 8월 18일 출원하여 1915년 11월 16일 등록된 것으로 되어있다. 사무엘슨이 코코아 열매를 보고 그렸다면 가사람이 여성의 몸매를 닮은 병 모양을 제안했는데 디자인 담당자인 사무엘슨이 코코아열매를 합성 완성하여 등록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제안 제도는 1880년대 영국에서 제도화되었기 때문에 1915년에 미국에서 성행되었던 제도이다. 제안 제도는 사내안의 아이디어 공모 제도이지 이것을 특허청에 등록하여 권리를 받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잘 알고 있었던 디자인 담당자인 사무엘슨이 제안된 아이디어를 참조하여 병을 완성하였기 때문에 자기 이름만 발명자로 올렸는데 후세 사람들이 사무엘슨 단독 발명이 아니기 때문에 루드라는 회사 이름과 비슷한 사람을 만들어내어 이야기를 확산 시켰지 않았을까 심증은 가지만 90년 전의 일이라 정확한 증거를 찾을 수 없어 공동 발명자를 찾을 수 없다.이렇게 등록된 콜라병은 당시 유행이었던 밑이 좁은 주름치마 ''허블 스커트''를 닮았다고 하여 ''허블 스커트 병''으로 불렸는데 이러한 대중적인 인기와 콜라 맛과 손으로 잡았을 때 감각적인 느낌과 병 모양이 주는 특별한 모양의 상징성이 사회적 명성을 만들어 내어 오늘날 까지 최고의 브랜드로 남게 되었다.최초의 디자인 특허는 권리 기간이 14년 이였기 때문에 14년 후 권리가 소멸 되었는데 1960년 입체상표가 도입되면서 병 모양이 상표로 등록 되어서 반영구적으로 코카콜라사가 병 모양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유래2)지난 100년 동안 세계 최대의 의장 발명품으로 인정된 코카콜라 병은 1905년 미국 조지아 근교의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루드'라는 소년에 의해 발명되었다. 그는 7살 때 토끼 한 마리를 잡으려고 15시간이나 쫓아다닐 정도의 놀라운 집념을 가진 소년이었다.하지만 루드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하여 중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도시로 상경하여 신문 배달이나 심부름꾼 등을 거쳐 유리병 공장의 정식 공원으로 일하게 되었다.그 무렵 루드에게는 주디라는 여자 친구도 있었다.어느 날, 주디가 오려 온 신문 광고에는 새로운 음료인 코카콜라의 병 모양을 현상 공모한다는 찾아왔지만 그는 주디를 볼 면목이 없었다."루드! 나야, 주디" 루드는 못들은 척하다가 하는 수 없이 용기를 내어 주디를 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이 햇살처럼 빛났다."잠깐! 주디 그대로 서 있어!" "왜 그래, 루디?"영문을 몰라 하는 주디의 모습을 빠른 속도로 스케치해 가는 루드. 그날 주디가 입고 있었던 옷은 그 당시 유행하던 통이 좁고 엉덩이의 선이 아름답게 나타나는 긴 주름 치마였다.루드는 바로 그 주름치마의 주름을 강조한 새로운 병을 고안해 낸 것이다.다음 날 루드는 이 병을 미국 특허청에 의장(모양)출원했다.그리고 병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직접 견본을 만들었다.마침내 루드는 완성된 병을 가지고 코카콜라 회사의 사장을 찾아갔다."사장님! 이 병은 모양도 예쁘고 물에 젖어도 미끄러지지 않습니다. 이병의 권리를 채택해 주십시오"예 참 좋은 병입니다. 그러나 가운데 볼록한 부분이 있어 콜라의 양이 많이 들어갈 것이 틀림없소, 유감스럽지만 이 병은 안 되겠습니다."그러나 루드는 사장 앞으로 바싹 다가갔다."사장님! 제발 한 가지만 더 보아주십시오."루드는 사장님의 물 컵을 들고 말했다."제 병과 사장님의 물 컵 중 어느 것에 더 많은 양이 들어갈까요?""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당연히 당신의 병에 많이 들어가지 않겠소?"루드는 아무 말 없이 병에 물을 가득 채운 뒤 이를 물 컵에 따랐다. 그런데 물 컵의 겨우 80% 정도만 채워졌을 뿐이 아닌가."루드 내가 너무 경솔했구려. 당장 당신의 권리를 채택하겠소."계약은 즉석에서 이루어졌다. 무려 600만 달러의 거금이었다.하루아침에 600만 달러의 사나이가 된 루드는 훗날 주디와 결혼하여 고향에서 유리제품 공장을 운영하면서 일생을 행복하게 보내게 되었다.(유래3)코카콜라 병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시의 코카콜라 박물관인 ‘월드 오브 코카콜라’에는 지금까지 코가콜라의 전세계 판매량이 찍혀 나온다. 분 단위로 바뀌는 그 숫자는 10월말 현재 5조9000억병을넘어서고 있다.영화 ‘혹성탈출’에서 콜라병은 원숭이들의 디자인”이라고 극찬했다.반면 팝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은 그 반복성에서 대량생산과 대량복제라는 20세기 산업사회의 구조를 예리하게 포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세계 190여개국에서 하루에만 대략 5억6000만개씩 소비되는 코카콜라병의 탄생에는 작은 오해가 숨겨져 있다. 오늘날 코카콜라 병의 원형은 1915년 인디애나주 테르 호트의 루트 유리회사 병디자인팀 이었던 알렉산더 새뮤얼슨과 얼 알 딘에 의해 고안됐다. 하지만 일반에게 알려졌듯이 당시 미국에서 한창 유행했던 밑이 좁은 주름치마 ‘허블스커트’를 닮았다고 ‘허블스커트병 ’으로 불렸던 코카콜라병의 아이디어는 스커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당시 코카콜라는 다른 소다음료수들과 별 차이 없이 판매됐기 때문에 진짜 코카콜라 맛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테네시주 채터누가 지역의 코카콜라 보틀러(병공급업자) 였던 벤 토머스는 이런 현실을 타파할 묘책으로 ‘캄캄한 곳에서 만져만 봐도 구별할 수 있는 병 모양을 개발할 것’을 요청한다.코카콜라사는 이 건의를 받아들여 1915년 새로운 병 디자인 공모에 들어가면서 다른 제품과 뚜렷한 차별성을 지닐 것과 기존 병입 시설에 맞을 것이라는 두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루트유리사의 사장이었던 채프먼 루트는 그해 6월 ‘코카콜라는 무엇으로 만드나’라는 질문과 함께 그 재료를 소재로 아이디어를 얻어볼 것을 제안했다.코카콜라의 주된 재료는 남미에서 나는 코카(Coca)잎과 아프리카에서 나는 콜라(Kola)씨앗. 당시 루트유리공장의 검사관이었던 클라이드 에드워드는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가 1913년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서 코카와 콜라 항목을 찾았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콜라의 첫머리 철자를 상표 그대로 K가 아닌 C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콜라항목을 찾지 못했다. 때문에 코카 항목 다음에 나오는 코코아 열매 그림을 콜라 열매로 착각하고 기술자인 딘에게 넘겨 새 제품 디자인에 참조하도록 했다.그래서 딘과 새뮤얼슨이 꼬박 밤을 새가며 만든 첫 디자인은 코카콜라의 재료와는 전혀 상관없이 배 부위른 병과 같은 5센트로 낮추어서 계약을 했다.코카콜라 보틀러들이 구형병을 신형으로 바꿀 때 추가부담을 주지 않음으로써 궁극적으로 신형병 사용량을 대폭 늘리겠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해 코카 콜라사는 새로운 병 디자인을 알리며 ‘해적 품을 봉쇄했습니다. 라는 공격적 광고로 포문을 연 뒤 병 디자인의 차별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코카콜라 맛의 차별성을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마법의 병 속에는 세계 곳곳을 미국적 생활방식으로 바꿔놓은 '지니'도 숨겨져 있었다.‘코카콜로니즘’(코카콜라식민주의)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이후 코카콜라는 항상 미국식 자본주의 진출의 전초병이었으며 미국적 가치관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파하는 선교사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때 아시아 전선에 참가했던 로버스 스콧 미 공군 대령은 “민주주의코카콜라 햄버거. 한마디로 우리는 미국적 생활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50년대 햄버거와 함께 세계 여러 나라에 전파된 코카콜라는 지구인들의 입맛까지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로 바꿔놓았다. 콜라와 햄버거 등 언제 어디서나 3분 안에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는 각 나라의 풍토와 농산물에 기반을 둔 고유 식단을 대신해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식생활 문화로 자리 잡았다. 미국식으로 표준화된 패스트푸드 문화에서 ‘코크’는 항상 중심 ‘키워드’였다.이 때문에 코카콜라병은 20세기 최고의 상품 패키지였던 동시에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이념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낸 패키지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콜라병은 왜 초록색이며, 왜 두께가 없는 것처럼 보이나?음식과 색은 상당히 중요한 연관을 띠고 있습니다.과자의 포장들을 보면 색과 원료에 따라 같은 색깔들을 띄고 있다는걸잘 보면 아실 텐데요.콜라병의 녹색은 시각적 이미지로 콜라의 맛을 부각시키려는 것으로이해하실 수 있습니다.칠성 사이다도 탄산음료로서 시원하고 톡 쏘는 맛을 부각 시키려고같은 녹색의 컨셉을 유지하고 있죠.또한, 숲이 많고 푸르른 코카콜라의 고향 조지아 주를 이미지화 한 것으로 ‘조지아 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