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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교문학]미국에서의 한국문학 수용에 관한 조사 발표자료
    미국에서의 한국 문학 수용Ⅰ. 서론현대 사회의 기틀의 대부분은 서구의 영향을 받아서 성장해 왔다. 이러한 성장은 문화뿐만이 아니라 문학에서 또한 일어났으며 개화 이래 우리의 신문학은 끊임없는 서구문학의 영향으로 형성?발전되어 왔다. 셰익스피어, 괴테, 위고,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는 마치 우리 문학의 대가인들 우리에게 친숙 하게 여겨지고 있다. 다르게 해석하자면 우리의 문학은 주지 못한 채 서양의 문학을 받아들이기만 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이러한 비교문학의 받아들임 현상에 대해 바이쉬타인은 경고의 형식으로 말해두는 것이라 하면서 “비교문학자는 원칙적으로 영향의 능동적 요인과 수동적 요인간의 질적 구별은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받는다고 해서 불명예가 아니듯이 준다고 해서 명예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인즉슨 문화의 수용은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영향을 일방적으로 주는 것에 요점이 있는 것이 아닌 어떤 결과로 성취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이것은 동서양의 비교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동양을 잘 모르고 있는 서양보다는 서양을 잘 알면서도 동양적 지혜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들이야말로 서구보다 더 깊고 풍부한 문학을 산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문학 속의 한국문학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것이다.그렇다면 세계 속의 한국문학으로서 자리매김을 하기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의 문제점을 극복해야 한다.첫째는 언어적 벽을 허물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유능한 번역자를 맞아 원전의 가치를 거의 그대로 살려 잴 수 있어야 할 것이다.두 번째는 문화적인 벽을 허물어야 한다. 문학은 문화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저쪽의 문화를 우리가 이해하듯이 우리의 문화가 저쪽에 충분히 이해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셋째는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간에 평가의 벽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의 작품 이 단지 이색적인 작품으로서만이 아니라, 고가의 문학작품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이다.이앞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문학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한국학이 시작된 곳은 북미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북미장로교 소속의 선교사 James Scorth Gale 박사의 업적을 한국학의 효시로 들 수 있다. 그는 캐나다 인으로 1888년에 한국에 도착하여 1937년, 그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선교활동을 하는 일방 한국문화와 문학을 소개하는 저술을 출간하였다. 또한 1897년에는 이미 영한사전을 출간하여 한국에 대하여 혹은 한국어를 알고자 하는 서양인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이외에 Allen Horace N, Hulbert Homer B. Hall Basil, Leonard Underwood, Horace G. Underwood, A.j. Nelson, George Meccenne 등의 다른 선교사들도 한국에 관한 저서를 출간하였다. 이들은 대체로 북미주에서 파견된 선교사들로서 한국을 깊이 있게 연구했다기보다 문화와 풍습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목표로 관찰한 저술들은 출간한 것이지만, 때로는 한국인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고찰한 경우도 적지 않다.미국의 한국학은 6.25 한국동란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선교사들 활동 외에는 아주 미미한 상태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국동란으로 인해 수십만의 미군이 참전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기 시작했다. 미 국방성 내 한국어를 교습하는 기관이 설치되기도 했고, 동아시아 학과에 한국어 및 한국문화 혹은 한국문학을 강의하는 대학이 생기기도 했던 것이다.미국에서 한국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52년 카네기재단의 기금으로 하버드 대학 내 설립된 한국연구소에 의해서 이다. 이후 1960년대에는 columbia University, Univer -sity of Washington, University of california(Berkeley), University of Hawaii 등이 한국어 및 한국 관련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현재에도 이들 대학이 미국 내 주는 2000년에 출간된 [하버드 한국학 자료목록])은 1597년에서 1997년까지 이르는 기간 동안 출간된 해외 한국학 자료를 모은 것이다. 영어로 출간된 저술은 학위논문의 경우 총 7,011편 가운데 5,698편이었으며, 서적은 26,388편 가운데 23,206편이었고, 학술지에 발표된 논문은 총 49,744편 가운데 45,409편으로, 전 세계의 한국학 업적 대부분이 영문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실증적으로 알 수 있다.) 적어도 현재의 해외 한국학 연구는 영어권에 극도로 편중되어 있으며 구조적으로 영미 학계의 영향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1925년 이전의 시기는 개항과 더불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주로 간단한 논문과 기사가 주종(3,506편)을 이루었으며 서적의 경우에도 584편이 출간되어 총 4,105편을 보여 주었다. 놀랍게도 1926년 이후 1970년까지 5년의 기간별로 볼 때, 1925년 이전의 시기보다 더 많은 저술을 쏟아 놓은 시기가 없다. 1925년 이전 시기의 저술에 의한 한국과 한국인이 특정 이미지로 고착되어 별다른 변화 없이 답습되어 왔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식민지시대의 이미지가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유지되거나 확대, 재생산 되면서 한국학 전체가 침체되어 있었던 시대였다. 1970년까지 주목할 만한 사항은 1946년~1955년 기간에 잠시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미국의 세계전략의 변화와 한국전쟁의 발발로 외국학계에서도 한국에 대한 이해의 요구가 높아졌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간의 연구는 연속효과를 갖지 못한 일시적 관심의 결과였으며,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피상적인 인상을 주었을 뿐이며 기준 연구에 의한 정형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1970년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한국학 연구가 축적되었다. 특히,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가장 괄목할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한국 경제력의 향상과 이에 대한 관심의 결과였다. 이 기간에 연구된 내용의 상당수가 경제에 치중되어 있다는 사실과도 일치한다.그러나 1990년데 후반에는 90년대 전반과 달리 연구가 부진하거나 축소되었다. 이것은 다름 아닌 한국경제의 약화와 “IMF의 위기” 영향의 결과로 보인다. 실제로 1996년과 1997년에 출간된 한국학 연구는 7,194편으로, 이전 시기와 동일한 성장률(23%)을 그대로 유지하였다면 약 9,500편의 연구가 나왔을 것이다. 혹은 단순히, 1996년 이후의 한국학 연구업적이 줄어든 이유는 『자료목록』의 조사진이 해당 연도의 연구업적들을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은 결과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196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근대화 작업과 성장이 세계의 관심대상이 되기 시작하면서 관심의 표현과 결과의 일환으로서 한국학 연구 성과가 누적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포드재단, 록펠러재단, 미국 인문학기금 등의 지원이 동아시아 연구와 한국학 연구에 이루어졌다.물론 1980년대 후반의 비약적인 발전 이면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하였다. 1970년대에 주요 대학에서 한국학 관련 연구소가 개설되고 여러 연구조직체들이 결성되어 각종 세미나가 지속적으로 열렸다) 그리고 포드재단의 지원을 받아 1974년에는 『한국에 관한 비정기 논문집』이 발행되기 시작하였고 1979년에는 이 저널이 정기간행물로서 『한국학논집』으로 전환되어 발간되었다. 또한 1981년에 평화봉사단 프로그램이 종료되었지만, 1960년대 이후 계속 진행된 평화봉사단 중 데이비드 스타인벅, 로렐 켄달, 브루스 커밍스, 카터에커트 등 여러 참가자들이 이 시기에 한국학 연구자로 등장하였다.198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 한국학 지원이 시작되어 1991년 초에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설립되었으며, 한국학 지원 사업에 대한 외국인의 관심 또한 크게 늘어났다. 그리고 미국내 한국계 미국인 공동체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는 한편, 유학생들이 학위논문을 통해 미국학계에 서서히 역사(6,866편), 예술(4,664편)이 많으며, 종교(1,547편)와 철학(779편)이 가장 적었다.예술 분야는 1970년대 전반에 들어와 성장을 하기 시작하였고 문화 분야는 이보다 늦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이처럼 미국내에서 한국 문학은 점차적으로 그 질과 양을 늘리고 있다. 그렇다면 범위를 조금 더 세밀하게 좁혀서 한국문학의 강좌가 설치되어 있는 중요한 대학을 살펴보자.(1) BRIGHAM YOUNG UNIVERSITY.한국어 강좌는 20년간 유지되어 왔으며, 전임교수는 3명, 1989년에는 수강인원이 280여 명이었다. 그중 한국문학 강좌로는 문학과 작문, 번역된 문학, 한국문학, 한국현대문학 등이 개설되어 있다.(2)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CALIFORNIA.한국학으로 20여 개 과목이 개설되어 있으며, 한국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의 취득이 가능하다. 5명의 전임교수를 확보하고 있으며 300명 이상의 수강인원을 가지고 있다.한국문학 과목에는 한국 현대문학 강독, 번역한국문학, 한국고전소설, 한국고전시가, 아시아문학사논제, 한국작품번역, 한국학해제와 연구방법과 등이 있다.(3) HARVARD UNIVERSITY, COMBRIDG, MASSACHUSETTS.미국 내에서 본격적인 한국학을 최초로 시작한 대학이다. 1952년 한국문학 전공이었던 서두수 박사가 한국어와 역사 강의를 개시함으로써 한국학의 씨를 뿌린 곳이다. 20개 정도의 한국학 과목이 개설되어 있으며, 한국어와 한국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한국어와 한국사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한국문학 강의도 가끔 설강되고 있다.(4) UNIVERSITY OF WASHINHATON, SEATTLE, WASHINHATON.한국학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 하버드 대학 다음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학으로서 그간에 한국학 전공자들을 많이 배출하기도 했다. 현재는 수시로 한국에서 문학과 역사교수를 초빙하여 강의를 맡기기도 한다.)대학에서 한국문학 강좌가 설강되어 있다는
    인문/어학| 2006.05.27| 6페이지| 1,000원| 조회(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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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외문학] 랭보의 일생과 작품
    목차1. 서론2. 본론가.랭보의 생애나.랭보의 작품세계3. 결론1. 서론교재를 한참이나 보는중에 작게 랭보라는 작가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내가 랭보라는 작가를 알게된 계기는 우연히 좋아하는 배우의 영화를 봤는데 주인공이 랭보와 베를렌이였다.그 영화에서 난 랭보의 광기어린 열정을 엿볼 수 있었고,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단적인 사랑을 했는 사람이였다.내가 보았을때 랭보는 다른이의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이였다. 사랑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그 욕구를 표출해 내는 도구가 바로 자신의 작품이였다.따라서 그의시는 감수성이 풍푸하고 소년기에 씌여진 시의 특성상 독특한 시 세계를 가지고 있다.내가 랭보를 조사하려는 이유는 그에 대해 더욱더 알고 싶기도 하였고, 이런 독특한 작품을 쓴 사람을 좀더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기에 이번 과제의 작가를 ‘아르튀르 랭보’로 정하였다.2. 본론가. 랭보의 생애랭보는 ]854년 10월20일, 프랑스 북서, 벨기에 국경 근처 아르덴현 샤르빌) 출생하였다.그는 보병대위 출신 아버지 프레데릭 랭보와 독실한 가톨릭 신자며 소지주의 딸인 어머니 비탈리 퀴이프 사이에서 태어났다.그의 아버지 프레데릭 랭보는 일찍이 가정과 다섯아이, 아내를 버리고 집을 나가버렸고, 랭보는 억세고 잔소리가 심한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아래 자랐다.그는 조숙한 천재로 ‘로사학원’에 진학하여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그밖의 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몇 달만에 월반하기도 하였다. 랭보는 특히 문학면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지만, 그의 어머니는 이러한 랭보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였고, 결국 랭보는 스스로 16세때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다.-Les Po tes de ans 中- ☞“...어머니는 필서(성경)을 덮으면서, 추함을 쫓는 아들의 영혼은 못본채, 자랑스럽고 만족한 듯 자리를 떴다. 매일 같이 그는(랭보) 명령에 복종하느라 애썼다. 아주 총명스럽게, 그렇지만 얼굴을 찡그리는 나쁜 습관은, 그 자신속에 내재하는 신랄한 위선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이처럼 위에서 볼 수 있듯이 그의 어머니는 조금도 랭보를 이해하려 하거나, 그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면은 없었다.1870년과 1871년 사이에 랭보는 3번의 가출을 하였는데, 프랑스와 러시아가 전쟁하는 시기였다. 1870년 7월19일 학업을 중단한 랭보는 책을 팔아버리고는 첫 번째 가출을 한다. 그러나 교통비 부족과 스파이로 몰리게 되면서 마자스 감옥에 투옥된다.친구인 이장바르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온 랭보는 27일에 샤르빌로 돌아오지만 10후에 다시 두 번째 가출을 한다. 하지만 10월경에 어머니의 부탁을 받은 이장바르를 통해 다시 샤샤빌로 돌아오게 된다.1871년 2월 25일 그의 나이 17세때 혁명적 열정과 방랑벽에 의해서 세 번째 가출을 하게된다. 하지만 그는 3월10일까지 파리를 방랑하다가 다시 걸어서 샤르빌로 돌아오게 된다.이 처럼 열정과 경험하고 싶은 방랑벽으로 가득찬 그에게 집이란 족쇠처럼 죄여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때 바로 폴 베를렌과 랭보는 알게 되어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파리, 베를렌, 영국 등을 같이 다니며 생활하지만 랭보는 곧 실증을 내어버려 홀로 다시 고향인 샤르빌로 돌아오지만 베를렌의 입원 소식을 알고 다시 랭보는 베를렌을 찾는다. 하지만 이내곧 19세에는 둘 사이가 급격히 악화되어 말다툼 끝내 베를렌이 총을 쏘아 랭보의 왼쪽 손목을 다치게 한뒤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베를렌과 랭보는 헤어지게 된다.그후 랭보는 네덜란드 식민지의 용병이 되기도 하였으나 곧 탈주하여 샤르빌로 돌아오게 된다. 그 에게 군 생활은 랭보처럼 방랑벽이 다분한 사람에게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리라 짐작된다.이처럼 랭보는 떠돌아다니기를 밥먹듯이 하였는데, 그는 평소‘바람구두를 신은 사람’이라고 불릴 정도로 방랑하는걸 즐겨하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고향인 샤르빌을 그리워 하기도 하였다.그후 랭보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여러나라를 전전하다가 아라비아의 아덴의 회사에 취직되어 정착하게 되고 그의 사업능력을 인정받아 회사의 신임을 받고 넉넉한 수입을 얻어서 자립하게 된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하였는지 그는 류마티즘에 시달리게 되고 방치해둔 결과 마르세유에 있는 콩세프숑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류마티즘은 악성종양으로 번져서 한쪽 다리를 잃게되었다.그후 랭보는 퇴원을 하여 로셰로 돌아가지만 또다시 병세가 악화되어 마르세유의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여동생 이자벨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그는 37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나. 랭보의 작품세계랭보는 어렸을때부터 단기간에 걸쳐 작품 활동을 하였는데, 15세부터 20세까지 쓴 작품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짧은 기간동안 많은 시를 써내었다.그는 이장바르의 지도로 많은 시적능력이 향상되었다.랭보는 본디 당돌한 성격의 소유자로 자신의 작품외에 다른 시인의 작품은 풋내기 시로밖에 보지 않았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문단에서 환영받지는 못하였고 적응할 만한 성격이 아니였다.랭보는 자신 특유의 시작법을 터득 했는데, 한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도약하며 중간 경로를 과감히 생략하는 식의 이해가 잘 안되는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방식이였다.랭보의 시는 전체적으로 ‘오르페우스)적 시인들’의 계열에 속한다.작품으로는 『마지막 운문시들』, 『일루미네이션』, 『새벽』,『지옥에서 보낸 한 철』,취한배』 등 그 외에도 수많은 작품이 있다.그 중『마지막 운문시들』과 『일루미네이션』에서는 순수성이 잘 드러나며,『일루미네이션』에서는 현실을 미로써 비현실화 하고자 하는 야성적 욕구가 성취되는 곳으로써 표현되고 사물을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이 작품 에서는 언어를 통하여 세계를 와해시키고자 하는 노력과 세계의 실제성을 말소하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 있으며 전체적인 서체는 변화와 다급함이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일루미 네이션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다소간 자의적인 세계의 변형이 아닌 세계의 깊은 독서일 것이다. 랭보는 그 속에서 현실을 다르게 해석독해 하고있다.그의 상징적이고 묘사가 잘된 작품중의 하나인 『새벽』을 보겠다.-새벽-나는 여름 아침을 껴안았다.궁전 앞에는 아직까지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물은 죽었다. 망령들의 부대는 숲길을 떠나지 않았다.생생하나 미지근한 숨결을 깨워 나는 걸어갔다.보석들이 바라다보고 있었다. 날개들이 소리 없이 일어났다.신선하고도 흐릿한 빛으로 벌써 가득 찬 샛길에서의 첫번째 모험은 자기 이름을 나에게 말해 주는 꽃이었다.나는 전나무 사이에서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있는 금발의 폭포를 보고 웃었다.은빛 꼭대기에서 나는 여신을 알아보았다.그리고 나는 하나하나 베일을 걷어 올렸다.길에서는 팔을 흔들어서, 평원에서는 수탉에게 그녀를 알려 주었다.대도시에서 그녀는 종탑과 궁중 사이로 도망갔다.거지처럼 대리석 부두를 달려가며, 나는 그녀를 쫓아갔다.월계수 숲 가까이, 길 위에서 나는 그녀의 진한 베일로 그녀를 감싸 안았다.그리고 나는 그녀의 거대한 육체를 조금 맛보았다.새벽과 아이는 숲 아래로 떨어졌다.다시 일어나자 정오(正午)였다.이 시에서 '나'라고 지칭되어 있는 시적 화자는 '아이'이다. 이 점은 6연에서 '새벽과 아이는 숲 아래로 떨어졌다.'라는 구절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시의 제목인 '새벽'은 원초적인 순수 상태의 세상을 의미하며, 따라서 '나는 여름 아침을 껴안았다.'라는 구절은 '아이'가 그 원초적 순수 상태의 세상과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이후 시의 진행은 '아이'가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과 시선으로 원초적 순수 상태의 세상과 교감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궁전', '보석', '날개', '꽃' 등의 시어들은 모두 '아이'가 이 세상의 사물을 동화적이고 신비한 모습으로 느끼고 있음을 표상한다.그 동화적이고 신비한 세상의 모습을 4연에 이르러 다시 '여신'의모습으로 바뀌면서, 신비감과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킨다.그리고 6연에 이르러서는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인 '아이'가 원초적 순수 상태의 '세상'과 온전한 합일을 이루는 경지를 보여 준다. 특히 '아이'와 '세상'과의 합일의 순간을 남녀 간의 사랑으로 묘사함으로써, 순수한 세계와의 합일을 원초적 감각의 순수함에 비유하고 있다.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다시 일어나자 정오였다.'라고 끝맺음으로써, 순수한 자아와 원초적 순수 세계와의 교감과 합일이 상상 속의 세계나 추억 속 어린 아이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이시는 1873년에 발표된 랭보의 유명한 시집인 '착색 판화집'에 실린 작품으로서, 순수한 마음을 가진 아이가 원초적 순수함을 지닌 세상과 교감해 나가는 과정을 감각적인 언어로 표출하고 있으며, 정신의 진행과정과 시적 모험 속에서 동일한 믿음과 깨어남에 대한 신선함을 발견 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인문/어학| 2004.10.29| 6페이지| 1,000원| 조회(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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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학] 근대문학의 성격과 시대문학의 사명 평가A좋아요
    10. 1. 근대문학의 방향과 시련10. 1. 1. 근대문학의 성격근대문학은 1919년 이후 오늘날까지의 문학을 지칭하는 것이며, 중세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의 이행기 문학이라고도 한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5」, 지식산업사, 2002, p7이하 주석을 달지 않은 것은 이 책 pp.7-12을 인용한 것임.이 시기에는 사상의 저술은 활기를 못 띄는 시기였고, 문학은 국문문학이 넓게 자리 잡아 있었으며, 사회구조나 문화양상은 아직까지 근대화 되지 않은 상태였다.우리의 근대문학은 이전의 문학과 다른 양상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봉건적 불평등 사상에서 평등사상으로의 문학의 정신이 전환되고 있다는 것과, 전대 문학과는 다른 형식으로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만 보아서는 서구 지향적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근대문학이 공동문어문학과 민족어문학의 이중구조가 청산되며 민족어의 통합과 정리가 이루어져 단일 민족어문학이 될 수 있었고, 이러한 사실을 같이 볼 때는 근대문학은 무조건 적인 서구지향이 아닌 서구충격에 대한 정신의 대응적 변화의 문학적 변모현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윤명구, 「한국근대문학연구」, 인하대학교출판부, 2000, pp.20-23을 참고함.근대문학은 그 발생은, 원만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되었다. 국권 상실이라는 민족의 불행을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조의 성리학적 윤리관에 근거한 봉건주의와 일제식민 통치에서의 제국주의의 비정상적인 이데올로기에서는 제대로 된 이념의 구현이 어려웠기에 우리의 근대문학은 파행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행기 동안에 추구한 근대문학의 전환으로 인하여 지배이념에 타격을 준 한문단편이나 풍속묘사와 풍자가 기발한 가사 또는 사설시조, 해설을 배제해 표현효과를 높인 탈춤의 갈등 구조와 같은 것이 근대문학으로의 전환 중에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기만 한 것은 아니고 성과 또한 있었다. 문학에 대한 논의보다는 창작에 전념하여 의식의 파탄이 깊이 침투하지 못하였고, 전통계승 또한 잠재적으로 이루어 졌으며, 작품을 창작하고 즐기는 층들은 그대로 이어져 단절이 생기지 않아 서양 근대문학의 주체적 수용을 가능하게 하고 갈래개념의 혼란이 없어서 근대소설을 마련할 때에 차질이 생기지 않기도 하는 성과를 낳기도 하였다.그렇다면 근대문학이 시작된 기점은 언제쯤인가. 한국문학사에서 근대문학의 기점을 명확히 나누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첫째는, 일본의 침략으로 인하여 식민지와 바로 연결되어 구분이 복잡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1876년 외세에 대한 강제적 개항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일제에 의해 개항과 함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우리 역사속의 근대는 그 기점문제를 다루는데 많은 논의와 고민거리가 되고 있으며, 또한 아직도 학자들 간의 여러 가지 설로 인해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은 1905년에서 1910년 사이로 보는 애국 계몽기설이다.{ 갑오경장설, 3 1운동설, 이행기설, 18C설, 애국 계몽기설 등으로,갑오경장설은 1894년 갑오경장 때에 행정과 정치 체제를 근대적으로 바꾸었기에 근대문학의 기점이라고 주장하는 학설. 이를 주장하는 학자는 안학, 김태준, 임하, 백철, 조연현 선생 등이 있다.3 1운동설은 백낙천 선생이 주장하였는데, 3 1운동이야 말로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 근대적 시민의식 다운 시민의식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3 1운동 이전 구한말 이후의 우리 문학은 이미 중세문학 에 귀속 시킬 수는 없기에 3 1운동설은 우리나라 근대문학이 결정적 단계로 들어섰음을 알리는 선언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조동일 선생의 이행기설은 임진왜란인 1592년에서 1818년간을 중세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 넘어가는 이행기로 본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17C는 중세적인 것이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던 시기였고 이러한 긴 이행기의 설정은 근대의 기점을 오히려 흐려놓는 결과를 낳는다.18c설을 주장한 사람은 김일근 선생이다. 「민족문학사의 시대구분」이라는 글에서 한국문화의 식민지성을 인정하자고 하는 주장을 펼쳤지만, 우리의 한국문화와 문학은 모방한 것이 아닌 독창적인 문화이기에 이 가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마지막으로 애국 계몽기설은 이중 가장 설득력이 높은 설이다. 그 주장은 기점을 신채시, 개화가사, 창가 등이 나타난 1905년에서 1910년 사이로 보고 있으며, 최원식 선생이 주장하였다.이러한 근대문학의 전개와 아직도 논란이 되는 기점문제, 그리고 시민의 한계는 근대문학의 문학적 기능인 민족의 미래의 비전이나 이념을 제시하고 구현하게 하는 기능을 완수하지 못하게 하였다.따라서 현대인들은 이행기문학에서 근대문학을 모색한 성과 가운데 활용한 것과 버려둔 것은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문학사를 정확히 이해한 다음 좀더 많은 문학사의 발전을 위해 오늘날 다시 할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10. 1. 2. 시민문학의 사명시민문학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동안에 이룩된 사대부문학 시민문학 민중문학의 전통을 계승한 문학이다.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동안의 시민은 국문문학을 흥미롭게 만들고 상품화해 근대문학으로 자라나게 하는 주역이었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5」, 지식산업사, 2002, p12이하 주석을 달지 않은 것은 이 책 pp.12-19을 인용한 것임.하지만 초기에는, 실학파의 문학은 한문학이어서 광범위한 독자확보를 할 수 없었고, 시민이나 민중의 구비문학은 기록하기 어려웠으며, 개인작가가 재창조를 할 수 있는 원천으로 활용되지 못하면서 각자 주체들 통합의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또한 시민문학은 있었지만 그 성장과 시민들의 교양이 부족하여 사상을 독자적으로 구출할 기반이 모자라는 시민문학의 한계로 인해 자취를 뚜렷이 드러내지는 못하였다.이러한 시민이 주도적 구실을 하며 시민문학이 뚜렷이 드러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 3 1 운동이었다. 이 3 1운동에서 시민들은 투쟁을 확대해 나가며 민족을 이끄는 책무를 맡게 된다. 하지만 이는 아직도 준비되지 못한 시민 지도자들의 폐혜가 너무나도 절실히 들어나는 계기가 되고야 만다.아직 설익은 과일같은 시민 지도자들의 뒤를 이은 것이 바로 천도교와 대종교였다. 이 종교들은 당분간 선도적인 구실을 하였다. 하지만 천도교는 그 전단계의 혁신적인 사상을 약화시켰고, 당대사회의 문제의 분석과 해결방법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그저 일제가 인정해주는 종교로 물러앉게 되었다. 대종교는 항일의지를 누그러뜨리지는 않았으나, 투쟁의 노선과 방법을 구체화하기는 어려운 한계에 부딪혀 물러나게 되었다.
    인문/어학| 2004.10.29| 3페이지| 1,000원| 조회(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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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예사조론] 한국의 포스트 모더니즘 평가B괜찮아요
    1.서론1)포스트모더니즘의 발생포스트모더니즘은 자연주의와 모더니즘을 거쳐서 발생한 사조이다.20세기 후반부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났으며 용어도 미국의 것이지만 그 현상은 영국,프랑스, 남미 등 모더니즘보다 오히려 주변국가들과 관계를 맺고 있고 제3세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한계에서 비롯되었다.언어, 본질, 총체성에 대한 회의에서 개인의 의식과 자율성을 강조했던 모던문학은 난해성과 추상성으로 대중과 유리된다. 따라서 모더니즘은 구체성을 잃고 추상에 함몰되어 일상과 유리되고야 만다. 반세기 동안 의식의 단련과 억제를 강조한 모더니즘은 의식의 자율성을 고집하는 인상을 주게 되었고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게 의식에 억눌려온 무의식을 부활시키게 만들게 되었다.그에 따라 1950년대에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이 일어나게 되어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초가 등장하게 되었다.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자본주의, 즉 자본의 독점하가 고도로 진행되고 자본의 세계화와 국제적인 이동이 자유로와진 상태 그리고 다국적 자본이 세계적인 규모로 확장하고 소비사회가 전지구적인 규모에서 전개되고 있는 단계에서 등장한 문화양식이며, 후기자본주의 사회와 소비사회의 요구에 따라 등장했다고 본다.2)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비교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를 논의하는데서 이론가들의 입장은 크게 두유형으로 나누어진다.그 중의 하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가깝게는 모더니즘, 넓게는 낭만주의의 계승이나 논리적 발전으로 파악하려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을 펴는 이론가들의 관점에서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후기현상이나 그것보다 한결 더 극단적으로 발전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흔히 '후기 모더니즘'이라는 관점에서 논의되어 온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그래서 포스트모더니즘을 가깝게는 모더니즘, 멀게는 낭만주의의 전통에서 파악하고자 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이 견지하는 입장과의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이 두 운동의 기있다. 흘러내리며 드러낸 윗몸은 알몸그대로인 인간의 더러움이란 찾아볼 수 없이 말쑥히 빠진 선을, 고민하느라 말랐는지 군더더기 살이라곤 한 점도 찾아볼 수가 없다. 흘러내리며 다리에 걸친 가사는 무릎 밑으로 물결치는 치마주름의 현묘한 아지랑이를 그리고 있다. 연꽃잎 페달을 굳건히 짚은 왼발 밑으로 고인 기(氣)의 응집은 전신의 포즈를 사뿐히 날아갈 듯이 편하게 해주고 있다생은 늦게도 이르게도 온다. 그 생은 다른 무엇으로는 재어질 수 없는 것이다.나의 원망으로도 그 외의 어떤 잣대로도 재어질 수 없는 것이 '그의 생'이다.생이 주인이고 우리가 그를 살아가는 손님이라면, 우리 모두는 그의 생을 손님의 예(禮)로 살아가는 존재들일 뿐이다. 그것을 알 때 '그애의 백제 미륵반가사유'가 된다.박상배-[잠언집8]인생은 비어 있는 몇 페이지의 책이라고 누가 말을 했던가 가을에 읽었던 몇 줄의 짧은 글들이 한겨울 나목처럼 우리 얼어붙은 영혼의 어느 구석에서 점점이 떨어져 내릴 때 사상이란 비어 있는 하늘, 구름 몇 조각, 그뿐이라고 말한 자 누구였던가 책은 읽되 모름지기 미련없이 버려야 한다 다 읽고 다 던져 내버려야 한다 마알갛게 푸름으로 오는 비움의 알알함, 혹은 비집어 봄, 바로 그것이다 오늘 뒷산을 몇 번 쳐다본다풀이-시의 언어는 잠언의 문구와 닮아 있다. 얼핏 보기에 짧은 표현이라는 점에서 그러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의미 안에 또 다른 의미공간이 있다는 점이 흥미 있는 유사성을 보여준다.예를 들자면 시의 언어에 있어서 명사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쓰이는 법이 없다. 사전적 의미 이외에도 이미지나 문맥적 뜻이 첨가되어 뜻이 한층 깊고 풍부해진다. 잠언에 사용되는 언어 역시 사전적인 의미 외의 상징적인 뜻을 거느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른 점도 많다. 하나는 문학이고 다른 하나는 실용문의 범주에 속한다는 점이다. 시는 감동과 즐거움을 주지만 잠언은 교훈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박상배의 「잠언집」 연작시는 잠언적 언명의 형태를 빌린 시이다. 이러한 형식은 서정시의 고유한 지는 겨우 그의 모가지를문 밖으로 밀쳐냈다 나는 보고만 있었다 그는 신발 신은 채마루로 다시 기어 올라 술병을 치켜들고 아버지를 내리찍으려 할 때 어머니와 큰누나와 작은누나의 비명,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땀 냄새와 술 냄새를 맡으며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 테야법(法)도 모르는 놈 나는 개처럼 울부짖었다 죽여 버릴 테야별은 안 보이고 갸웃이 열린 문 틈으로 사람들의 얼굴이라일락꽃처럼 반짝였다 나는 또 한번 소리 질렀다이 동네는 법(法)도 없는 동네냐 법(法)도 없어 법(法)도 그러나나의 팔은 죄(罪) 짓기 싫어 가볍게 떨었다 근처 시장(市場)에서바람이 비린내를 몰아왔다 문(門) 열어 두어라 되돌아올때까지 톡, 톡 물 듣는 소리를 지우며 아버지는 말했다풀이-이 시는 매우 역동적이다. 매 행을 가득 채운 역동적인 언어들은 하나의 서사적 장면을 선연히 부각하기 위해 전력투구되고 있다. 이 시에 들어 있는 짤막한 사건은 매우 충격적인데, 사태의 전말을 차근차근 훑어볼 필요가 있다.어떤 사람이 집에 들어와 아버지와 싸우고 있다. 그는 아버지에게 쌍소리를 하며 시비를 걸고 아버지의 팔을 꺾는다. 아버지는 그를 밀쳐낸다. 그는 다시 마루로 올라와 아버지를 병으로 찍으려 하고, 어머니와 누나들은 비명을 지른다. 나는 그때 나서서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죽여 버리겠다고 소리친다. 동네 사람들은 구경만 하고 있다. 그리고 잠시 묘사의 비약이 있고 아버지는 `톡, 톡, 물 듣는 소리를 지우며' `문 열어 두어라 되돌아올 때까지'라고 말한다.이상이 이 시가 담고 있는 사태의 전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톡, 톡, 물 듣는 소리'와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그의 정체에 대해 중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 소리는 아버지의 눈물 떨어지는 소리이고, 아버지의 마지막 말은 그가 한 가족임을 암시한다. 이와 같은 의미심장한 생략은 그가 삼촌 또는 친척 아저씨일 가능성을 오히려 막아준다. 그는 바로 아버지의 아들이자 나의 형인 것이다. 이러한 독법은 이성복의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집채만해진 삼중당 문고공룡같이 기괴한 삼중당 문고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 문고그러나 나 죽으면시커먼 배때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 나가고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붉은 흙 뒤집어 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풀이-값싸고 작은, 그러나 새롭고 많은 정보를 담아 전해 주었던 `삼중당 문고'를 읽으며 청소년기를 지내온 시인의 고백이 시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 독서 체험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께 채색되어 있다. 우선은 당연하게도 우리가 흔히 책을 통해 양식과 교양을 쌓는다고 할 때의 그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제도적 교육에서 얻는 지식 정보의 차원과는 다르게 `삼중당 문고'로 대표되는 그 시절의 대중 출판물들을 통해 손쉽게 인간의 다양한 생각과 모습을 읽고 이해할 수 있었던 것처럼 시인도 역시 제도 교육의 보완이라는 차원에서의 독서를 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이 시는 제도의 보완이 아닌 제도로부터의 도피, 또는 제도에 대한 반항이라는 의미로 그 독서의 질적 변화를 시도한 모습을 보여준다. 가령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교장실에 불리어 가, 퇴학시키겠다는 엄포를 듣고 와서 펼친 삼중당 문고'라는 대목에서 보듯이 제도적 억압, 불우한 환경이 몰고 오는 공포와 폭력 등에서의 도피처를 `책'으로 삼고 있음을 보게 된다. 더 나아가 이 시는 그 지독한 독서가 시인 자신을 결코 구원해 주지 않는다는 일종의 지식 해체주의를 드러내는 결과에까지 도달하고 있다. 지식과 이성의 총합으로 여겨지는 책이 `공룡같이 기괴'하기도 하고 `우주같이 신비'롭기도 하다는 진술은 책이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거대한 욕망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함이다. 욕망은 끝없이 새로운(실제로는 새로운 것처럼 보일 뿐인) 기호를 만들어 간다는 것, 그리하여 책이란 겉모양만 다를 뿐인 낯선 기호일 뿐이며, 독서 역시 그런 욕망을 실현하는(그러니까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행위일 뿐이다. 그 때문에 그 엄청난 책(지식, 이바른 곳이 아닐 것이다. 일종의 강제 동원 체제라는 인식이 저변에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자유롭게 보아야 하는 영화관에서조차 애국가를 울려 대며 나라를 사랑하라 외쳐 대는 그런 엄숙주의 속에서 시인은 갑갑하다. 그래서 시인은 '낄낄대면서 / 깔죽대면서' 날아가고 싶은 것이다.이 세상을 뜨고 싶었던 시인은, 애국가 후반부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의 시구에 다시 가로막힌다. 이 나라를 길이 보전하리라는 말은 시인에겐 아무런 탈출구도 없는 상황 인식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시인은 자기 자리에 앉는다. 이 주저앉음은 시인을 극도로 괴롭히는 것일 텐데, 왜냐 하면 이 세상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극도의 절망을 안겨 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빠져나갈 수 없으며 여기에 주저앉아야 한다는 생각은 시인으로 하여금 이곳 이 나라에서의 시적 저항의 길을 터놓는다. 그것이 황지우 시인이 계속적으로 시를 써나가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황지우(黃芝雨 1952- ) 시인.전남 해남 출생.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의 입선과 문학과 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1983년에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간행하고 그 해 제3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후 제2 시집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제3 시집 나는 너다 제4 시집 게눈 속의 연꽃을 냈다. 황지우의 작품들은 대체로 회화적이면서도 감각적 이미지들이 현실의 상황을 아파하는 시인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② 소설이인성-[낯선 시간 속으로]-내용 중(中):미구시(市)의 어느 바닷가에 서 있다가 우리는 쫓겨난다.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두 남녀의 이야기가 들렸다. 견디지 못한 나는 밖으로 나온다.시내로 가서 건너편의 두 남녀를 본다.나는 편지를 부치기 위해 우체통으로 가고 우체통 주위의 사람들에게 중압감을 느낀다.편지를 우체통에 재빨리 넣고 돌아오는데 사람들이 미쳤다고 한다.어제는 우리가 법한사에 갔었다. 내려오는 길을 잃고 헤매었다.모든 것이 꿈같이다.
    인문/어학| 2004.05.18| 17페이지| 1,000원| 조회(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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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 국문학] 노인과 바다, 감자의 작품세계와 작가와의 관계 평가A+최고예요
    우린 고등학교 시절에 프로스트의 시「가보지 못한 길」을 읽어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이처럼 두갈래 길의 기로에 선 경우가 종종 있을것이다. 그랬을 때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할까?’ 그의 시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숲 속에 두갈래 길이 있어 나는 사람이 덜 다닌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을 이처럼 바꿔 놓은 것입니다.”이 시의 구절에서 보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굉장히 많은 선택을 하여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이번에 본 작품은 이런 선택과 무관하지 않은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김동인의 ‘감자’라는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은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서 초?중?고등 과정을 거치면서 한번씩은 읽어본 작품일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이다.우선 첫 번째 작품인 ‘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를 살펴보자.헤밍웨이의 가족관계는 그와 부모간의 갈등구조, 애증이 엇갈린 부자간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된 정신적인 문제점들은 헤밍웨이 그 자신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성인이 된 후의 헤밍웨이는 항상 자기주장과 지배의식이 강하였다. 그는 아무리 가까운 친구사이일지라도 남이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태도를 보이면 굉장히 노여워 했을 정도이다.그의 이런 성격과 의식은 그의 작품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늙은 어부 샨차고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샨차고 노인은 84일 간이나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였으나 언젠가는 큰 물고기를 낚을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야유어린 목소리와 안타까움을 뒤로한채 매일매일 바다에 나간다. 그를 믿고 따르는 것은 어린 소년 마뇰로만 있을 뿐이다.결국 샨차고 노인은 85일째 되는날, 홀로 고요한 바다에서 거대한 마알린을 만나게 되고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마알린을 잡기로 결심한다. 샨차고 노인은 그 자신의 내면과 거대한 마알린과 몇일간의 사투를 벌이며 그 대어에게 인격화된 동지 의식을 느끼며 그의 일생일대의 내기같은 경쟁심에서 시작된 전쟁에서 이기게 된다. 그러나 그의 전쟁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마알린을 가지고 오는 중에 상어때를 만난다. 샨차고 노인의 필사적 저항에도 상어때들은 마알린의 살점을 다 뜯어먹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샨차고 노인이 해안에 당도 했을때 남은 것은 마알린의 뼈 뿐이었다. 노인은 허탈함을 느끼며 돛을 어깨에 짊어지고 언덕을 비틀거리며 올라가서 자신의 오두막 집으로 들어가 잠이 들어버린다.비록 노인은 상어와의 사투에서 지지만 노인은 끝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쪽으로 선택을 하였다. 이런 장면에서 우리는 인간의 숭고한 존엄성까지 느낄 수 있다.소설 속 헤밍웨이의 작품은 형용사가 거의 사용되지 않은 짧은 문장으로만 구성되고있다. 즉 그는 쓸데없는 수식어 보다는 속도감 있는 서술로 비정서적인 묘사방법을 쓰고 있으며 이러한 것은 배경의 비정한 분위기를 표현하는데 알맞다고 할 수 있다.소설속에서 주인공 샨차고 노인은 사투속에서 몇차례 하느님을 찾으며 기도하며, 고통받고 고뇌하고, 다시 회의하는 모습은 바로 헤밍웨이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이처럼 우리들은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을 통하여 작품내의 삶의 대한 존엄함과 함께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샨차고 노인을 만날 수 있으며, 더 깊이 들어가 헤밍웨이의 삶과 그의 생각까지 엿볼 수 있었다.두 번째 작품으로는 ‘감자’를 보겠다.‘감자’의 작가는 김동인 으로써 최초의 문예동인지 『창조』를 주관한 문인이다. 김동인은 언문일치 운동, 순문예운동 등 집단적으로 시도된 근대화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김동인의 작품은 물질주의적 인간관과 예술지상의 예술관 이 두가지의 축이 작용한다. 또한 반전통적인 문인으로 미를 지고의 가치로 숭앙한 것이 아니라 생활 자체를 예술화 하려 노력했다. 그로인해 그는 재산을 탕진하여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김동인의 고향은 평양으로 그의 작품속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의 작품이 그 당시 사상과는 달리 이탈적이었던것은 이조의 유교문화에서 소외된 지역인 평양에서 나고 자랐던 것이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그가 항상 새로운 사조의 선두에서 돌진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반 유교적인 남성인물들을 작품속에 등장시킨 것들은 이 지역의 비 유교적인 정신적 풍토와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이런 김동인의 작품사상에서 ‘감자’는 씌여 졌다.‘감자’는 인간의 윤리의식이 박탈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관찰과 분석의 기록이며, 김동인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소설이다.
    인문/어학| 2004.04.20| 3페이지| 1,000원| 조회(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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