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역사신문2004.05.04.화 사회복지 역사신문<특집호>정 치1314년 6월 [브레이브 하트]“월레스”자유를 외치며 別歲13세기 말엽,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가는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잉글랜드는 왕권을 요구하며 스코틀랜드에 포악한 정치의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폭정으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잇달아 죽음을 당하게 되고, 윌리엄 월레스(William Wallace: 멜 깁슨 분)는 폭정을 피하여 고향으로 멀리보내어져 양육되었다. 그가 성장하여 고향에 돌아왔을때 월레스의 조국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잉글랜드의 전제 군주 롱생크의 핍박과 탄압 시달리고 있었다. 이때 윌리엄 월레스에게는 그에게 운명적인 사랑의 여인인 머론 을 만나게 되고 그와 결혼하나, 잉글랜드의 폭정에 머론은 잔인하게 처형되었다. 월레스는 머론의 죽음을 복수하게되고 그 과정에서 하나 둘씩 모여드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모아 용맹과 투지로 무장한 저항군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다. 잉글랜드는 월등한 군사력을 앞세워 스코틀랜드를 침략해오고 역사적인 스털링 전투에서 월레스의 군대는 잉글랜드에 큰 승리를 거둔다. 월레스 군대의 용맹함에 당황한 롱섕크는 휴전을 제의하게되고, 롱섕크는 왕자 에드워드의 무기력함에 공주 이사벨을 화해의 사절로 보내게 된다. 비록 정략적인 만남이었지만 이사벨은 월레스의 애국심과 용맹함에 매혹되고, 그녀는 잉글랜드의 침공 사실을 월레스에게 알려주기에 이른다. 폴커크 전투에서 두 왕조는 다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기사들의 충성심은 이미 잉글랜드에 돈으로 매수된 빛바랜 충성심으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게 되고, 목숨만 건진 월레스는 다시 군대를 정비하려하나 롱섕크의 계략에 월레스는 잉글랜드에 포로로 잡히게 된다. 결국 월레스는 런던으로 보내지고, 잔인하게 공개처형의 운명을 맞는다. 이사벨 공주 조차도 월레스를 구할 수 없었으며, 위대한 영웅은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외치며 의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마음과 힘을 뭉치게 만들어 역사의 빛나는 순간을 장식하게 된다. 윌리엄 월레스(William Wallace)는 스코틀랜드의 영웅 중 하나이다. 그가 죽은 지 556년이 지난 1861년 6월 24일 스털링에 그의 업적을 기념하는 90미터 높이의 기념비 완성 행사에 10만 여명이 모여서 그를 기릴 정도로 월레스의 전설적 생애는 아직도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1267년에 윌리엄 월레슨는 중류층 지주였던 말콤 월레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월레스는 친 삼촌에 의해서 패이슬리 수도원에서 공부를 했으며 교육을 제대로 받았고, 세가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일상 생활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으나, 그는 교황을 찾아가서 스코틀랜드의 해방을 도와달라는 호소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자기중심적인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잉글랜드 왕으로부터 땅과 작위를 얻기에 급급했을때, 물질적 재산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던 월레스는 스코틀랜드의 자유와 명예를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 월레스의 전설은 '봉사 해리'라는 문맹인 시인이 읊었던 300쪽에 달하는 운문시로 널리 알려졌 한다. 봉사 해리의 운문시가 기리는 월레스의 업적은 월레스의 곁에 항상 같이 있었던 Mr. Blair, 군종 신부의 일기에서 발췌 했다고 전해진다. 에 의하면, 월레스의 전설은 사실보다는 그의 스토리에 대한 감동적이고 과장된 면이 부각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바로 그런 극적이고, 손에 땀을 쥐게하는 전설적 이야기가 자신을 감동시켜 브레이브 하트의 대본을 쓰게 만들었다고 랜달 월레스는 전했다. 자손대대로 내려온 윌리엄 월레스에 대한 기록과 일기장을 소유하고 있는 윌리엄 기사의 후손들은 현재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우에서 살고 있으며, 각본을 집필한 랜달 월레스에게 그들의 자랑스러운 선조가 겪은 여러가지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씨오라스 월레스의 지휘 아래 월레스의 후손들은 1월 중순에 글라스고우를 떠나서 영화 제작팀과 동행, 어떤때는 텐는 곳으로 6주 동안의 스코틀랜드 로케이션 일정 동안거의 내내 비가 내렸고, 그 중 햇빛이 비친 사흘 동안에는 결혼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중세기 시대 유적인 '트림 캐쓸'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영화 제작을 허락받기도 했는데, 지금은 황폐해진 이 성은 목조 건축물에서 1210년 스코틀랜드의 죤 국왕에 의해서 재건되기도 했다. 이곳은 롱섕크를 비롯한 영국 왕족이 기거하는 잉글랜드의 성으로 재현되었다. 또한 제작진은 주12주에 걸친 페인트및 회반죽을 갖다 발라서 붙이는 작업을 통해이 트림 캐쓸성의 외벽을 잉글랜드의 요새였던 요크성으로 변신시켰고, 이 성의 육중한 외벽은 윌리엄월레스가 마지막으로 자유를 부르짖는 잉글랜드의 잔혹한 처형장으로 선보여진다. 15세기 중순경에 지어져서 이젠는 외로운 돌구조로 남아있던 던솔리 캐쓸 성은 톰 샌더스와 그의 미술팀이 8주에 걸린 작업으로 활기찬 에딘버러성으로 재현해냈다. 아일랜드로케이션에서는 벡티브 수도원의 옛터가 롱섕크 왕의 성 안뜰과 윌리엄이 갇힌 감옥으로 나온다. 또한 12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있는 던세니 캐쓸 성도 웨스트 민스터 수도원으로 변신되었고, 그외에 에딘버러의 의회장과 아드모어 스튜디오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1420년 잔다르크“잔다르크” 魔女 로 지목1420년 프랑스의 열악한 국내·외적 상황으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영국과 백년전쟁 중인 데다 나라의 절반 이상은 잃은 상태. 선왕은 죽고 샤를 7세가 즉위해야 하지만 랭스의 대성당으로 가는 길목을 확보하기 전에는 왕위계승도 보류상태.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한 프랑스 왕실에 '로렌의 처녀'로 신의 사자를 자처하는 잔이 나타난다. 10살 때 영국군의 침입으로 언니가 살해, 강간되는 장면을 목격한 후 영국군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오른 잔. 그녀에게 신의 증표가 현현하는 것이다.위기에 처한 샤를 7세와 왕실은 그녀에게 군대를 내주어 승승장구 승리를 거둔다. 광란의 전쟁씬은 무척 리얼하게 보여진다. 전장에서의 잔은 저돌적인 카리스마, 신의 사명을 입은 자의 확를 파멸로 이끈다. 대담하게 전쟁을 이끌 만큼 그녀는 용감했지만, 비호되는 최소한의 변명의 여지를 걷어 버리면 그녀는 다만 순진한 신앙심에 매달리는 시골 소녀였다."저는 살인을 하지 않았어요!"라고 울부짖는 잔의 모습에서 애처로움을 느낀다. 전쟁이란 상황은 실제 별개의 것이어서, 그것을 살인이라 부르진 않는다. 인류가 인정하는 무언의 용인. 그러나 그녀의 의식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그녀는 간청한다. "나를 자유롭게 해줘요."라고. 최후의 최후까지 자신의 신과 그 정당성을 옹호하던 잔은 고해성사를 할 수 있다는 지극히 사소한 유혹에 넘어가고 마는데, 뱀(정확하게 뭐라 규정해야 좋을지 모르겠으므로 이렇게 부르겠다)은 이때 그녀에게 속삭인다. 너는 이로써 너의 신을 저버렸다고.뱀이 보장한 자유란 죽음이었다. 기실 그보다 더 큰 자유가 어딨겠는가. 수많은 구경꾼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화형당한다. 치솟아오르는 불꽃이 그녀의 발을 태우고, 입고 있는 옷을 태우고, 얼굴을 녹여간다. 그 뒤로 교회의 십자가가 보인다. 1431년 잔다르크는 19세의 나이로 죽어간다.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을 고수하는 영화였다. 잔다르크에 대한 새로운 해석. 신의 계시라는 신비적인 측면이 아닌 오로지 잔다르크의 정신의 추이를, 그녀의 정신이 창조해 낸 신과 세계를 생생하게 재구성해 보여준다. 히스테릭한 광신도, 선동자, 민중의 희망. 신은 왜 그녀를 버렸는가? 어느 날 그녀 안에서 신은 죽었다. 피를 흘리며. 그리고 신의 얼굴을 한 뱀이 등장하여 그녀를 일깨운다. 더 이상 운명이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않음이다. 역사의 단면들은 어쩌면 이렇게도 냉혹할까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정말 치밀하고 환상적인 영화였다. 방대한 스케일의 역사 심리극이랄까. 수작이다.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이 아닐까.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 그 점이 감동적이었다.1534년 [천일의 앤]“엘리자베스1세” 出生悲話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1564~1616)는 모두 37편의 희곡을 남겼다. 그의 마지. 하지만 앤의 언니도 이미 헨리 8세의 눈에 띄어 왕의 아이를 가진 상태였고 앤에게는 혼인을 약속한 남자가 있다. 또 왕비 캐서린이 있기에 자신이 헨리8세와 사랑을 하여 아이를 낳아봤자 그 아이는 사생아이고, 영국왕위 계승과는 인연이 멀다는 것을 앤은 계산한 상태. 그래서, 영국 왕실역사에서는 한번도 없었던 괴상망측한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앤을 차지하기 위해선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기 위해선 지금 마누라 캐서린을 버려야했다. 하지만 당시엔 로마 교황청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었고 헨리8세의 이러한 행동에 스페인은 캐서린을 구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하여 바티칸을 접수하고 로마 교황청에서는 황급히 영국에 재판관을 보낸다. 그리곤 이혼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이에 헨리 8세는 의회를 소집하여 1534년 ‘국왕지상법(國王至上法)’을 발표한 데 이어, 1536년 로마의 감독권을 폐지하는 법령을 발표한다. 그때까지 신봉하던 카톨릭을 하루아침에 금지시킨것이다.(이때 새로 만들어진 것이 영국 국교회=聖公會=The Anglican Domain=정교회이다) 헨리 8세는 캐서린과 이혼하기 위해 캐서린은 자신과 결혼하기 전에 이미 형과 관계를 가졌으니 더럽혀진 몸이었고 자신과의 결혼은 사기결혼이었으며 신에 대한 죄악이었다는 명목으로 캐서린과 이혼을 하며 이를 반대하는 신하들을 모두 단두대로 보내버린다.어쨌든 갖은 무리수를 둬 가며 캐서린을 쫓아내고 앤을 선택하지만 앤도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한다. 헨리 8세의 절망감. 종교까지 바꿔가며, 그리고 그에 반대하는 수많은 신하들을 처형해 가며 여자를 얻었건만, 아들을 못 낳다니... 헨리 8세가 할 수 있는 일은 또다시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여자와 결혼 하는 길뿐이었다. 그래서 앤이 오빠와 근친상간했다는 죄목으로 처형을 한다.앤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왕은 또다시 이혼하여 새 여자를 얻는다.(그뒤 헨리 8세는 이혼과 결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처형을 거듭하며 6번 결혼한다).....이 내용이 바로 영화 줄거리이다.앤 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