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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 문학사
    < 1970년대의 한국 문학 >>< 목차 >Ⅰ. 시대적 배경- 변화와 저항의 시대Ⅱ. 시1. 현실과 마주한 한국시1) 산업화시대의 시적대응2) 참여시에서 민중시로2. 새로운 가능성의 한국시1) 모더니즘의 언어실험2) 전통적 서정시의 육성3. 문학적 위기의식과 그 대응- 동인지 운동의 출발Ⅲ. 소설1. 사회계층 갈등양상과 우리 소설1) 사회구조의 변화와 농어민 소설2) 도시화의 어두운 그늘3) 노동현실의 민중적 자각4) 분단현실의 소설적 인식5) 여성적 시각과 여성주의의 확대2. 소설 양식의 확대- 연작형식과 대하장편소설Ⅰ. 시대적 배경- 변화와 저항의 시대1960년대 이래 군사 정부가 채택한 개발 독재 전략의 결과로 상당한 수준의 산업화가 달성되었고, 경제적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경제 제일주의, 혹은 '근대화' 지상주의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이와 함께 정권을 영구화하려는 음모가 진전되면서 이른바 '10월 유신'이 단행되었다. 이로써 정치적 억압이 날로 가중되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심화되고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었다.산업화로 인해 일정 부분 생활수준이 향상되자 자연히 민주적 권리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급격히 고조되었고 이에 따라 억압적인 체제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이와 함께 노사 간의 대립과 갈등이 본격화되고, 산업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농촌과 농민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급등하였으며, 1960년대 이후 개화된 민족주의적인 의식이 점차 고조되었다.이 시기의 문학도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결과 1960년대에 이미 그 싹을 보여 주었던 참여 문학이 점차 민중적인 성격을 띤 것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대두된 민족주의적 경향과 맞물리면서 '민족 문학'의 이념에 발전적으로 통합된 것이다. 아울러 산업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농촌과 농민, 그리고 도시 빈민의 삶에 대한 문학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이른바 '민중 문학'이 표면화되기 시작하였다.1970년대에는 그 동안 문산업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모순과 부조리에 대하여 인간적인 평등과 소외에 관심을 기울였고,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평등의 문제에 더 큰 열정을 보였다. 따라서 이들의 시는 성격으로 보면 참여시요, 사조적으로 보면 리얼리즘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당대 이러한 비판적인 시를 스스로 민중시로 불렀다.김수영이 지식인의 자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와 만났고, 신동엽이 유토피아적 시원의 세계에 대한 향수 위에 있었다면, 70년대 김지하와 신경림은 사회현실과 보다 직접적으로 만난다. 김지하의 시적 출발은 『황토』(1970)에서 드러나듯이 원초적 생명성의 저해와 그것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었다.황톳길에 선연한핏자울 핏자국 따라나는 간다 애비야네가 죽었고두손엔 철사줄뜨거운 해가땀과 눈물과 메밀 밭을 태우는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나는 간다 애비야- 김지하의 「황톳길」에서이 작품에서 황토는 단순히 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땅이 상징하는 조국의 현실을 함께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죽음, 자유의 죽음, 농민의 죽음일 수 있다. 황토는 죽었고, 그 위에는 핏자국, 철사줄, 총부리, 칼날이 있다. 이는 이처럼 척박한 현실을 간다는 것이다.한편 신경림은 시집『농무』(1973)에서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민들의 삶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쇄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우리는 점점 신명이난다.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고갯질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신경림의 「농무」에서그는 숙명적으로 농촌에서 살 수 밖에 없는 농민들의 가난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담고 있다. 그는 농촌을 하나의 풍물적인 자연으로 다루거나 전원적인 것으로 그리지 않고, 투박하고 거칠지만 그 소박함이 솟아나는 삶의 현장으로서의 농촌을 즐겨 다룬다. 특히 성공적인 것은 현적 작업은 때로는 순수주의로 비판되기도 하고 때로는 관념적 현학취향으로 지적되기도 하였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인간 존재와 그 본질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의 시에서는 왜곡된 인간의 모습이 왜곡된 언어에 의해 그려지기도 하며, 현실을 초월하고 있는 고양된 정서가 드러나기도 한다. 때로는 시적 의미의 모호성 때문에 독자들을 당혹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산문적인 논리에서 해장된 언어의 또 다른 질서를 세우기 위한 다양한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맞추며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며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가지의 생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정현종의「사물의 꿈 1-나무의 꿈」에서실험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정현종의 시에서는 시적 대상이라는 것이 서정적 자아와 상대적인 거리에 놓여있지 않다. 시적 대상은 자아의 의식 내면에 자리하고 있으며, 상상력을 통해 구체적인 이미지로 구현된다. 시의 언어가 일상의 논리를 벗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사물과 하나 되는 절대적 친화성을 강조하고 있다.1960년대에 등단하여 모더니즘의 언어 실험에 참여하여 순수를 추구했던 오세영, 이건청, 김종해, 정진규, 박재천 등은 사물에 대한 지적인 통찰력을 구비하고 있으면서도 언어적 실험보다는 시적 서정성의 확립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자신들의 개성을 다양하게 가꾸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시적 정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도시적 감각을 살려내고, 체험에 바탕을 둔 삶의 진실을 시의 세계에 포괄하고자 노력한 지성적인 서정의 세계를 구축하였다.이 해안에 서면모래알이 더욱 작아보인다내 육신이 문득 작아여조개껍질 위에 높인다그리운 것들이 많아진다멀리 순양함 마스트가 사라진다하연 갈매기 하나끼룩끼룩 울면서동해, 어느 먼지길을 달리고 있다- 이건청의「황인종의 개 13」에서이건청의 연작시 「황인종의 개」는 시적 자아를 동물적 이미지와 연결시켜 표출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지만, 일종의 문명 비판적 시각이 그의 시워가는 과정이었다. 이는 ‘죽어 가는 사람의 목소리’를 담담하게 들을 수 있는. 허무를 응시할 수 있는 용기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허무 속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허무한 삶을 소멸 속에 그대로 맡기는 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강은교와 김형영 등 『70년대』동인들은 이러한 소멸의 순간순간을 피하지 않고 응시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러한 응시 속에서 허무의 심연과 대응하는 힘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이 주체가 환멸에 몸을 맡긴 채 언어유희에 빠지고 말았던 1960년대의 대표적인 동인지 『현대시』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자유시』는 1976년 봄 박정남, 박해수, 이경록, 이기철, 이동순, 이태수, 이하석, 정호승을 중심으로 대구에서 출발한 동인이다. 같은 해에 정호승이 『반시』로 이적 탈퇴하고, 2집부터는 이경록이 타개하고 강현국이 합세하고, 3집부터는 서원동이 새 동인으로 함께 하게 된다. 이들이 이 세계의 모순 속에 가장 문제 삼는 것은 훼손된 개인성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시에서는 삶과 세계에 대립되는 개별절 삶의 고통이 주조를 이룬다.『반시』는 1976년 김창완, 김명인, 정호승, 김성영, 이동순이 동인이 되어 창간한 동인지이다. 연혁을 살펴보면 1977년 이동순이 나가고 권지숙이 새 동인으로, 1978년에는 이종욱이, 79년에는 김성영이 탈퇴, 1980년부터는 하종오가 새 동인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들 시의 궁극적 지향점은 훼손된 공동체적 사랑의 회복이다. 이를 위해서 이들은 ‘삶과의 동일성’을 지향하는 시 창작을 수행한다고 한다. ‘삶과의 동일성’을 지닌 문학의 구체적인 내용은 『반시』라는 동인 명칭에서부터 드러난다. 이는 그간의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념적 인식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1970년대 전반의 동인지 『70년대』에서 후반의『자유시』,『반시』로 가는 70년대 시의 시적 도정은 형이상학적인 추상적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삶의 구체성을 획득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제 막 문학적 열) 등으로 이어지는 이문구의 소설적 작업은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삶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조명하고 비판하는 일로 이어진다.「관촌수필」은 연작소설의 형태로 발표된 것인데, 농촌의 급작스런 변모와 그 전통적인 질서와 와해 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새로운 현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농촌의 변화를 회상적인 진술로 그려내고 있는 「관촌수필」은 그 문체의 탄력성에 의해 더욱 주목되고 있다.2) 도시화의 어두운 그늘산업화 과정의 농촌의 현실과 가장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도시 변두리의 하층민들의 삶이다. 이들은 대부분 농촌을 떠나 도시로 나온 이농민들이다. 도시의 일용 노동자로 전락한 이들의 삶의 문제는 1970년대 이후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사회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박태순의 「외촌동 이야기」, 최일남의 「타령」, 등과 1980년대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도시 변두리의 삶의 현장을 그려낸 작품들이다.최일남의 소설 세계는 작품집 『서울 사람들』(1975), 『타령』(1977)에서 볼 ;;수 있는 세태 묘사와 현실 풍자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의 소설에는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서민층의 삶의 애환, 근대화의 물결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궁핍한 현실 등이 풍자적인 언어와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려진다.우리는 밤늦게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그 길로 다방에 들러서 커피를 마시고 다시 무교동으로 나가 오백 시시짜리 생맥주를 단 한 번에 꺾어 단숨에 들이켰다.“인제 살 것 같군.”우리는 동시에 이런 말을 뇌까리고 그전에 그랬던 것처럼 떠들고 웃곤 하였다. 초가을, 이 서울 동네에서 풍기는 술 냄새, 고기 냄새, 하수도 냄새에 자기를 휩쓸어 넣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이 헤헤거리며 지껄여 댔다.“우린 이제 별 수없이 서울 사람 다 됐는갑다.”한참 만에 윤경수가 퍽 힘없이 얘기하자 김성달이나 최진철도 그래, 그런 모양이야 하고 동의를 했다. 술집을 나오자 우리는 아이들에게 줄 요량으로 각기 과자다.
    인문/어학| 2009.01.04| 8페이지| 무료| 조회(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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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년대 한국 문학사
    목차1. 1960년대 시대개관1) 4.19와 5.16 군사 쿠테타2)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산업화2. 1960년대의 시1) 1960년대 시문학의 양상2) 1960년대 시문학의 특징적 분류3) 1960년대 시문학의 의의3. 1960년대의 소설1) 1960년대 소설문학의 양상2) 1960년대 소설문학의 특징적 분류3) 1960년대 소설문학의 의의1. 1960년대 시대개관1) 4.19와 5.16 군사 쿠테타1960년대는 4.19혁명과 함께 시작된다. 4.19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로 인한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은 1950년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는 1960년대 한국 사회의 과제에 대한 민중적 저항이었다. 그것은 자유의 쟁취와 수호라는 점에서 시민적 민주주의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자주적 통일 민족국가의 수립을 향한 낭만적 열정 위에서 민족주의를 지향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4.19혁명의 이념적 핵심은 민족ㆍ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하지만 4.19로 인해 강렬하게 인식되었던 자유의 문제는 5.16군사 쿠데타에 의해 다시 멀어지게 되었다.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면서 국가 독점 자본주의 체제가 시작되었고, 강력한 군부 독재에 의해 획일화된 군사문화가 이 땅에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4.19혁명을 계기로 민중의 의식이 성장했고,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옹호와 통일을 향한 민족적 각성은 참된 의미에서 근대성을 획득하려는 방향에서 민족ㆍ민주운동의 주된 내용을 형성하게 된다.2)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산업화60년대는 경제개발정책에 따른 산업화가 추진되던 때이다. ‘증산’, ‘수출’ ‘건설’이라는 구호 아래 강력하게 추진된 이 정책은 궁핍의 청산을 내세우면서 다른 한편 독재정치를 합리화해 나간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열악한 자본과 부족한 부존자원은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해 가는데 걸림돌이었다. 이에 군사정권은 외자 도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1965년 베트남전 파병을 실시한다. 이 전쟁을 통해 얻게 된 경제적 이익은 군사정권의 취약한 물적 기반상징이다. 그래서 그는 미성숙한 우리 사회를 정신사적으로, 그러니까 문화적으로 극복하려는 혁명의 의미로 4ㆍ19를 본다.푸른 하늘을 제압하는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부러워하던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자유를 위해서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노고지리가무엇을 보고노래하는가를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혁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혁명은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김수영, 그에게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우리 사회의 미성숙을 절감하고 변화를 겨냥한다. 그러나 그는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이 한국문학사」 등에서 소시민을 야유하는 자기풍자적 세계를 보였다. 이것은 한 평자의 지적처럼 혁명의 좌절 이후 소시민을 좌절의 주범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자유는 그의 삶의 원리이면서 동시에 시의 형성원리다. 그의 유명한 ‘반시’선언은 하위모방의 선언이다. 온갖 비속어ㆍ악담ㆍ야유ㆍ요설ㆍ선언ㆍ비시적 일상언어 등을 자유롭게 구사한 그의 해사체는 현대시사에서 주목되는 시문체의 변화다. 그의 비속어와 산문적 진술은 조선조 양반시조의 반장르인 평민시조의 사설체에 등가된다. 그는 비속어와 요설이 현대시사에서 공식문체가 되게 한 한 장본인이다. 그의 참여시엔 세계와 사물을 융해하는 전통의 서정적 부드러움도 고도의 조직성과 압축성을 생명으로 한 통사체도 찾아볼 수 없다. 산문의 시대에 그는 과감하게 산문정신을 시에 도입했다. 이것이 시(예술성)와 산문(현실성)을 결합한 그의 ‘온몸’의 시학이다.만년의 작품 「풀」은 그러나 가장 그답지 않은 작품이다. 왜냐하면 조롱ㆍ욕설ㆍ악담의 자기학대적 어조가 가셔졌을 뿐만 아니라 감춤의 상징적 수법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하게 벗기려하는 시인, 심지어 벗기려는 사실마저 벗기려 하는 시인이다.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한 「풀」은 그래서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신동엽 : 「껍데기는 가라」, 「금강」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도 참여시의 전형이다. 명령의 어조로 일관된 이 청자 지향적 시는 에 대한 일체의 판단(선입관)을 중지하는 현상학을 시의 방법으로 채용한 것은 의미해체의 작업에 필연적인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무의미작업이 고대설화적 인물인 처용의 탐구와 병행되고 있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무의미시는 처용의 탐구에서 그 시상이 촉발되고 또 형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개인 시사에서 60년대는 이렇게 처용의 탐구, 그러니까 무의미의 탐구 시기다. 그는 「처용」, 「처용삼장」을 거쳐 69년 『현대시학』) 창간호부터 연작시 「처용단장」1부를 발표하기 시작한다.눈보다도 먼저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바다는 가라앉고바다가 있던 자리에군함이 한 척 닻을 내리고 있었다.여름에 본 물새는죽어 있었다.물새는 죽은 다음에도 울고 있었다.한결 어른이 된 소리로 울고 있었다.눈보다도 먼저겨울에 비가 오고 있었다.바다는 가라앉고바다가 없는 해안선을한 사나이가 이리로 오고 있었다.한쪽 손에 죽은 바다를 들고 있었다.- 김춘수, 「처용단장」1의 Ⅳ무의미시에서 이미지는 외부의 대상을 갖지 않는 절대적 심상이다. 이것은 이미지들의 비논리적 결합으로 구체화되어 현실과는 무관한 ‘즉자적인’ 시가 된다. 실상 그의 무의미시의 이미지들은 내면세계를 표현한 개인적 상징들이다. 따라서 무의미시는 우리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은밀한 것이다. 이것은 김춘수가 모더니즘의 이데올로기인 ‘혼자 있음’의 태도에 근거한다.62년 범시단적 성격으로 출발했지만 3집부터 재정비한 『현대시』동인들은 김춘수를 전범으로 한다. 허만하ㆍ주문돈ㆍ김규태ㆍ마종기ㆍ김영태ㆍ이승훈ㆍ박의상ㆍ이수익ㆍ오세영 등은 때로 수수께끼, 가짜의 모호성, 부정직함의 비난과 좌시를 받으면서 70년대에 극복의 주된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언어에 대한 성실한 천착과 개성적 실험으로 시의 방법의식을 심화ㆍ확대시키고 순수시를 60년대의 주류가 되게 한 점에서 그 활동은 시사적으로 매우 주목된다. 그들의 시는 감미로운 서정이나 파토스가 아니라 인식이었고 그만큼 지적이었다. 그들의 시는 내면의 시, 내면의식의 시로 기술될 만큼 내면탐구였고 연습을 집요하게 해왔다.청마와 고은과는 달리 68년 『견고한 고독』의 김현승과 김남조는 기독교적 신앙의 정서와 종교적 사유의 깊이로 우리 현대시사에서 드문 종교시의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의 동인이었던 박이도도 기독교신앙을 바탕으로 「회상의 숲」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따스한 인간애와 긍정적 세계를 노래했다. 그의 낙관주의 태도는 김현에 의해 현대시사에서 로 지목되기도 했다.▶ 황동규 : 「기항지」58년에 등장한 황동규는 4.19세대 또는 한글세대로서 60년대 시단에서 중요한 몫을 했다. 그는 「기항지」1ㆍ2에서처럼 일종의 여로시 형태로 정신적 방황의 내면적 고뇌를 형상화하는 비관주의 서정을 노래했다. 그러나 60년대 그의 시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전봉준」, 「삼남에 내리는 눈」, 「허균」처럼 역사적 인물이나 고전을 당대 삶의 의미로 재해석하여 80년대 유행적 시방법의 한 전범이 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시각은 때로는 존재론적이면서도 민족사적이고 문화사적인 폭넓은 안목이 되고 있다. 그는 50년대 송욱ㆍ전영경처럼 풍자적 지성미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개성적이고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이밖에 시론을 겸하면서 문명비판적 휴머니즘의 서정세계를 그린 김종길과 정한모, 그리고 진한 성묘사의 관능적 정서를 4행시로 표현한 강우식, 60년대 말에 등장하여 인간실존의 허무를 강렬한 서정으로 노래한 강은교 등도 60년대 시의 중요한 추억들이 된다.④ 시조60년대 시조문학이 전에 없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은 우선 60년 이태극이 중심이 된 시조 전문지 『시조문학』)의 창간과 64년 한국시조작가협회가 결성되고 65년 그 기관지 『정형시』가 나온 것, 그리고 50년대 중반부터 지속되어온 일간지 신춘문예의 신인발굴제도와 시조백일장 등 문학 외적 여건에 그 원인을 돌릴 수 있다.그러나 60년대 시조문학의 부흥은 자유시에 대한 깊은 반성과 자유시와의 관계정립에 대한 강렬한 욕구에 보다 근원적으로 기인한다. 따라서 60년대 시조문학은 당대의 자황이 가지는 전쟁과 분단,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한국인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는가에 주목하여 세계에 대한 성찰을 표현해 내는 시민적 리얼리즘 경향의 소설들은 최인훈의 「광장」, 남정현의 「분지」, 이호철의 「소시민」등으로 대표된다.ⅰ) 정치적 모순 비판4.19혁명의 역사적 개안과 5.16군사 쿠데타에서 오는 좌절로 인해 남북 분단 및 어두운 정치의 내면 등 정치적 문제를 다각도로 조명한 소설이 등장하였다. 대표적으로는 최인훈의 「광장」과 이호철의「판문점」, 박경수의 「애국자」와 선우휘의「아버지」가 있다.▶ 최인훈 : 「광장」새로운 세대의 문학과 관련하여 문단이 낳은 가장 충격적인 작품으로 뭐니뭐니해도 최인훈의 「광장」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어떤 평자는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60년대 벽두 4.19혁명으로 탈바꿈한 사회가 변화의 몸살을 앓던 시기에 60년 11월부터 『새벽』지에 발표된 「광장」은 다른 무엇보다도 48년 이후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소재를 정면에서 다룬 점에서 주목되는데, 분단과 전쟁과 후진국이라는 비참한 역사 앞에 선 한 지식인의 오뇌가 깊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그러나 그의 위치가 우리 문학사에서 분단 문학을 최초로 시도한 작가이기 때문에만 주목하는 것은 아니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폭넓은 비전을 제시하여 그 자신의 소외를 보편화시킨 전후 최대의 작가라는 점, 그리고 분단민족의 비극적 상황을 가장 탁월한 언어로 형상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문학이 탈냉전 시대, 즉 포스트모던 시대에 우리가 논의해야만 하는 가장 적합한 담론의 장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있다.남북분단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선택의 강요라는 상황, 즉 ‘밀실만 충만하고 광장은 죽어버린’ 남한에 구토를 느끼고 또한 ‘끝없이 복창만 강요하는’ 잿빛 지옥 북한 어느 곳에서도 안식처를 발견하지 못한 이명준이란 지식인의 삶의 궤적에서 그의 도피가 었다.
    인문/어학| 2009.01.04| 24페이지| 무료| 조회(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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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대 한국 문학사
    1950년대 한국문학 연구- 목 차 -Ⅰ. 서 론Ⅱ. 본 론1. 소설 문학 시대개관 및 전개양상1) 시대적 배경2) 50년대 소설문학의 전개양상2. 소설의 특징3. 시(詩) 문학 시대개관 및 전개양상4. 시(詩) 문학의 특징1) 전쟁시2) 모더니즘시3) 전통주의적 경향시Ⅲ. 결 론Ⅰ 서 론1950년대는 전쟁과 혼란의 시대였다. 해방은 곧 민족분단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다시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의 문학은 전쟁 후의 혼란을 극복하고 황폐화된 사회를 재건하는 일에 중점을 두었다. 이것을 중심으로 1950년대 문학을 과거를 단절된 것으로 인식하며 전쟁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 모더니즘과 전통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기준으로 삼았던 전통주의로 나눌 수 있다. 1950년대 문학은 이 두 가지를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모든 예술 갈래 중에서도 특히 문학은 작품의 생산 배경이 당대의 모습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문학은 사회 변천에 가장 예민한 촉수를 갖고 있다. 또한 문학은 언어를 표현 수단으로 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사상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본론에서는 전쟁의 격동과 격변 속에서 1950년대 시와 소설의 특징 및 문학의 전개양상을 살펴보겠다.Ⅱ. 본 론1. 시대개관 및 소설문학의 전개양상1)시대적 배경우리나라는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이한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남북한 각각의 단독 정부 수립에 이어 한국전쟁이 휘몰아친다. 이처럼 1950년대는 한국전쟁으로부터 출발하여 1960년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혼란의 연대였다. 해방 공간의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현실적이고 이상적 갈등에 시달리던 한국인은 또다시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에 맞닥뜨린다. 이로 인해 50년대 우리의 역사를 관통하는 시대사적 명제는 전쟁에 의한 참혹한 파괴와 이것의 복구로 규정지어진다. 전쟁이 끝나자, 일제로부터 막 해방된 조국은 38선을 경계로 하여 남쪽에는 미국이 북쪽에는 소련군이 분할 점령한다. 이것은 한반도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 대 현실을 꼼꼼하게 탐구하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본질을 파악하고 드러내는 차원에까지 나아가기 어려웠다. 그 구체적 양상은 어떠했던가를 검토하고 50년대 소설의 경향을 대변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몇 작품들을 분석해 보기로 하겠다.(1) 전쟁 체험의 형상화전쟁의 비극적 체험은 인간 실존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가져 왔고, 인생의 무의미성 이라는 인식을 낳았으며 뿌리 깊은 허무와 절망을 안겨 주었다.(2)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보편의 세계 추구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황폐감을 지적 유희나 관념으로 위무할 수밖에 없었던 당대 사회 의 문학사회학적인 조건을 반영하여 관념적이고 추상적 세계를 다루는 소설들이 나타났 다. 후에 관념소설과 지식인소설의 초석이 된다. 황순원「카인의 후예」「곡예사」「학」, 오상원「모반」「유예」, 선우휘「불 꽃」「단독 강화」, 김성한「바비도」등.(3) 전후의 비참상과 부조리한 현실 고발전쟁의 상흔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민족 분단의 비극도 극복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으 며, 전후에 겪게 된 가치관의 혼란 상태도 치유해야 했다. 이 시기에 발표된 대부분의 소설들이 전후의 부조리한 현실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자세를 보인 것도 바로 이 런 이유 때문이다.손창섭「비오는날」,「혈서」,「잉여인간」,하근찬「수난이대」,「흰종이수염」,이 범선「학마을사람들」,「오발탄」, 안수길「제 3인간형」, 최인훈「광장」, 박경리「불 신시대」등.(4) 전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다수등장비극적인 전쟁 체험은 전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많이 낳았다. 전쟁의 비인간성을 주제로 한 휴머니즘 소설이 주류를 이룬다.황순원「학」등.(5) 현실 참여 문학과 전통지향의 순수 문학의 두 가지 흐름 조성-부조리한 사회현실을 고발하고 적극적인 참여의식을 보인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김성한 「바비도」, 오상원 「모반」, 선우휘 「테러리스트」「불꽃」, 서기원 「암사지도」, 송병수 「쇼리킴」, 김광석 「213호 주택」, 이호철 「파열구」 등-인간의 본질적인 삶의 문제를 서정적 필치로 다룬 순수소설들이 있었다록이다.갑작스럽게 발발한 전쟁은 이 땅은 물론 우리의 정신까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하게 만들었으며 1950년대의 『후반기』동인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들은 기성의 문학?질서?권위 등에 대해 철저히 부정하는 데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1) 전쟁시1950년대의 시는 전쟁시로부터 시작한다. 1950년대가 한국전쟁으로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의 시대를 함께 살았던 시인들은 다양한 행동을 보여준다. 전장에서 총을 잡고 참전하거나 문총의 구상, 모윤숙 등과 같이 승전의식을 고취시키는 종군작가로 활동하는 등 의식의 첨단을 살아가는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였으나 이에 반해 지하로 숨거나, 남으로 피난하기도 했다. 시인들의 전장의 직접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전장시들은 직설적인 상황 묘사와 인위적인 절규 및 감탄사의 나열로 이루어진 것이 많다. 일제 36년의 체험에서 막 벗어나 혼란한 해방 공간의 와중에서 갑자기 터진 전쟁은 이 땅의 시인들로 하여금 전쟁을 직접 수용할 수 있는 예술적 응집력을 획득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오히려 기존의 시인들보다는 전쟁에 직접 참전한 무명의 용사들이 이러한 현장체험을 생생하게 절규하는 시인이 될 수 있었다.㉠ 이영순전쟁시의 특징은 전투하는 병사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됐다는 것이다. 전쟁은 생사가 갈리는 가장 극한적인 상황이다. 이것을 초극한다는 것은 가장 예술적인 것이다. 삶에 대한 애착과 죽음의 공포를 초월하여 전쟁체험을 시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예술적이다. 당시 현역 군인들에 의해 쓰여진 대표적인 시는 이영순의 「연희고지」가 있다. 이 시는 1951년 여름에 발표됐는데, 당시 이영순은 육군 대령으로 전쟁에 최전방에 위치해 있었다. 더구나 이영순은 전장에서 동생을 잃고, 자신도 총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했었다. 이런 참혹한 전쟁의 경험으로 인한 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시에 고스란히 녹아있다.105고지를 점령한우군이 적 소굴을 소탕하는화염방사기의 줄기찬 광채그리고 불똥이 만무하여휜히 비치 노래한다. 시인은 전쟁의 비극적 상황을 '초토'라는 상징성으로 해석해 낸다. '초토'는 까맣게 탄 흙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전쟁이 이 땅을 황무지화하고, 인간의 정신마저 황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과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비판이다. 적군과 나는 살아서는 '적이었지만 죽어서는 한민족으로 '통일'을 염원한다. 여기서 '적군'과 '나'의 화해와 용서가 시작된다.전쟁의 비극성과 허무성을 강조하면서 적대감보다는 화해의식을 앞세우고, 남북의 대립성보다는 동질성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바로 전쟁을 반대하며, 민족의 동질성을 추구하는 휴머니즘의 형상화하고 할 수 있다. 투쟁적 전투의욕을 앞세우기 보다는 화해적 사랑을 강조한 이 시는 봄이라는 분위기와도 조화를 이룬다. 대부분의 전쟁시들이 그러하듯이 상투적으로 조국애를 강조하고 전투의식을 고취시키는 시와는 달리, 전쟁의 본질을 심도 있게 인식하고 적과 동지의 개념을 초월하여 종교적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화자가 적의 시체를 묻어주고 사랑으로 포용하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구상은 사회의 부조리, 불의에서 소재를 취하여 그것을 고발하는 시를 많이 썼다. 특징적인 것은 그것을 질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항상 자기 자신의 반성으로 귀결되는 종교성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 역시 종교적 사랑에 입각해 적군 병사의 죽음을 애도하고 죽은 자와 더불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슬퍼하며, 민족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2) 모더니즘 시 - ‘후반기’ 동인들한국 문학에서 모더니즘은 30년대 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50년대와 80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50년대의 모더니즘은 30년대의 모더니즘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30년대 모더니즘이 지녔던 한계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30년대 모더니즘이 구인회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면 50년대 모더니즘은 과 동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물론 50년대 모더니즘 운동이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동인들의 활동이 전개되던 때부터이지만, 이들의는 비판적이고 직설적인 시선으로 문명 비판의 논리를 형상화하려 했지만 다분히 언어유희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현기증 나는 활주로의최후의 절정에서 흰나비는돌진의 방향을 잊어버리고피 묻은 육체의 파편들을 굽어본다.기계처럼 작열한 작은 심장을 축일한 모금 샘물도 없는 허망한 광장에서어린 나비의 안막을 차단하는 건투명한 광선의 바다뿐이었기에진공의 해안에서처럼 과묵(寡?)한 묘지 사이사이숨가쁜 Z기의 백선과 이동하는 계절 속불길처럼 일어나는 인광(燐光)의 조수에 밀려이제 흰나비는 말없이 이즈러진 날개를 파닥거린다.하얀 미래의 어느 지점에아름다운 영토는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푸르른 활주로의 어느 지표에화려한 희망은 피고 있는 것일까.신도 기적도 이미승천하여 버린 지 오랜 유역그 어느 마지막 종점을 향하여 흰나비는또 한 번 스스로의 신화와 더불어 대결하여 본다.- 김규동, 「나비와 광장」전문, 시집 『나비와 광장』(1955)전후 대부분의 모더니즘 시에는 현대 문명을 비판하려는 시적 의도가 담겨있고, 이는 주로현대 도시 문명적인 언어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시에서도 Z기의 백선, 허망한 광장, 현기증 나는 활주로 등이 가엾게 퍼덕이는 나비의 날개짓과 대립되면서 문명 비판의 시적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활주로, 광장, 현기증 등은 현대문명을 비판하는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시어로 현대의 속도감, 질주감, 공포감을 상징한다. 현대 문명의 상징과 대립되는 것은 ‘순결성’, ‘순수성’을 뜻하는 ‘나비’의 존재다. 나비가 현대 문명에 부딪혀 피투성이가 되는 모습은 암시적이다. ‘피묻은 육체’, ‘샘물도 없는 허망한 광장’은 현대 문명에 노출된 나비의 존재성을 상징한다. ‘허망한 광장’, ‘투명한 광선’ 등이 주는 건조성과 삭막함이 나비와 대비되고 있다. ‘아름다운 영토’는 나비에게 안정과 휴식을 주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공간은 “승천하여 버린 지 오랜 유역”의 시구를 통해서 구원에 대한 절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흰나비 또 한번 스스로의 신화와 대결하여 본다..
    인문/어학| 2009.01.04| 19페이지| 무료| 조회(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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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0년대 문학사 평가A+최고예요
    1. 1940년대 전반기 (해방 전)1) 시대개관 및 문학의 전개양상2) 시(詩) 문학의 특징 및 양상3) 소설(小說) 문학의 특징 및 양상2. 1940년대 후반기 (해방 후)1) 시대개관 및 문학의 전개양상2) 시(詩) 문학의 특징 및 양상3) 소설(小說) 문학의 특징 및 양상1. 1940년대 전반기 (해방 전)1)시대개관 및 문학의 전개양상10년 이상 계속된 일본의 만주침략이 1937년에 중일전쟁으로 확산되고, 다시 태평양 전쟁으로까지 진전된 일제말기의 전반기에 일본은 강력한 전시체제를 갖추는 것과 아울러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식민지정책인 민족말살정책을 감행하게 된다. 내선일체라는 명분으로 한국어 사용을 금지시키고, 일본식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뿐만 아니라 징병령을 내려 한국의 청년과 학생들을 강제로 일본군에 편입시켜 전쟁터로 내몰았다. 신사참배를 강요하여 정신적인 자유마저 박탈하는 야만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1941년에 이르기까지에는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양대 일간지와 《문장》《인문평론》등 몇 가지 우리말 언론 ?출판기구가 잔존해 있었다. 그러나 1941년에 이으러 일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강제 정간시키고, 《문장》과 《인문평론》도 자진폐간이라는 명목으로 그 발간을 정지시켰다.1941년 이후 한국문학은 한국어를 빼앗기고, 그 발표기관마저 빼앗겨 가사상태에 돌입했다. 완전한 문학사적 공백기와 암흑기가 도래하게 된 것이다.아울러 작가들에게는 일제의 국책에 순응하고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문학 작품의 생산을 강요하였다. 그 결과 변절의 붓으로 이른바 '부일 문화(附日文學)‘ 의 길로 나서는 부류와 붓을 아예 꺾거나 옥에서 생을 마감하는 문인들로 나뉘게 되며 그 외의 작가들 역시 살아남음과 소멸의 기로에서 고통 받아야만 했다.이 시기를 우리 문학사에서 ‘공백기’또는 ‘암흑기’라 부른다.2) 1940년대 전반기 시(詩) 문학의 특징 및 양상① 허무와 절망의 형상화 : 폐쇄된 현실 상황으로 인해, 인생에 대한 회의, 절망, 허무를 주조로 한 작품들이 국한되지 않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조국의 미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육사의 , , 등이 있다.⑤ 자연 친화적인 시 : 《문장》을 통해 비슷한 시기에 추천된 ‘청록파’ 시인인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과 율격으로 한국적 자연을 그리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1930년대의 전원시파에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경향은, 정조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국어 말살 정책이 자행된 극단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 우리말을 지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나 해방 이후에야 작품이 발표되었다.위는 ‘암흑기 시대’ 시의 전반적인 특징이다. 40년대 전반기와 같은 극악한 상황 아래서도 일제에 항거하는 시를 쓰며 민족사의 내일을 위해서 헌신한 시인들도 있었지만, 일제에 의한 강압적인 전향과 친일의 강요에 따라 식민지 조선의 문인들은 생존을 위하여 어떤 형태로든 일제에 영합하고 일제의 식민지 정책과 전쟁 수행에 이익이 되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방향을 왜곡하는 작품을 쓰기도 한다.그러므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친일시와 저항시로 구분지어 보자.- 친일시일제 말 친일문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1960년대의 한일국교 정상화와 함께 일제의 문물이 여과 없이 들어오게 된 상황에서 일제의 정치, 경제, 문화적 재침의 우려와 함께 시작된다. 이 시기에 발표된 친일시는 전쟁 수행 중이라는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여 승전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목적적인 시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일정한 경향성을 지닌 그 주제적 속성을 고려하여 작품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내선일체와 황국 신민화를 정당화하고 대동아 공영권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친일문학작품선집 1, 2’ 에 실린 작품 중에서 김안서의 , 이광수의 , ,주요한의 , , 양명문의 , 김종한의 등이 이러한 경향의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정지용의 와 이용악의 도 아주 약하기는 하나 이런 성향을 지닌 작품이다.-김안서꼭교 꼭교홰를 치며 청을 높여 닭이 우네어둔밤. 이때 서양이 차지했던 어둠의 공간에 놓여있던 아시아제국(諸國)을 서양의 어둠에서 해방 시킨다며 침략했던 대동아전쟁은‘문명화의 사명’이란 논리로 미화된다.-저항시암흑기에 일제에 대한 저항의지를 승화한 시를 지칭하는 시로 현실에 대한 철저한 내면적 인식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구도자 내지 예언자적인 자세로 표현하여 정신적인 시의 영역을 구축한다.이러한 저항시는 이육사, 윤동주 ,심연수로 대변된다. 특히 이육사와 윤동주는 암흑기로 불리는 이 시기에 있어서 가히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라 할 만하다.이육사는 본래 ‘자오선’ 동인 출신이었다. 그 후 그는 ?시학? ?비판?, ?문장? 등에 작품을 발표했다. 동시에 그는 당당한 전력을 가진 민족 운동가이기도 했다. 일찍이 그는 의열단이 주관한 간부 양성소를 나왔고 이어 국내에 잠입하여 항일운동에 투신했다. 그가 품은 민족의식의 강도는 전후 10여 차례에 걸쳐 구금, 투옥된 경력을 가졌음에도 끝내 그가 민족 해방 투쟁의 전열을 이탈하지 않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넉넉히 입증된다.윤동주는 이육사의 후배 시인이었다. 그의 시작(詩作)활동은 우리말과 글의 사용이 전면 금지되기 직전에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많은 작품들은 미처 활자화되지 못한 채 노트에 적혀져 남겨졌다. 그것이 햇볕을 본 것은 8.15 가 있고 나서의 일이다.물론 이육사와 윤동주가 처음부터 그 체질에 있어서 완전히 합치하는 시를 쓴 것은 아니었다. 이육사는 그 작품 여러 부분에서 일종의 정신적 준엄성 같은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때로 어눌하다고 생각되는 말씨와 함께 이육사의 교양 가운데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유학적 배경을 연상케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윤동주는 그의 몇 개 작품에서 상당히 맵시 있는 언어를 보여준다. 또는 의 어떤 구절은 그 구체적인 보기로 손꼽혀질 수 있는 것들이다. 동시에 그의 시는 이육사의 경우보다 한결 내정(內政)적인 의식의 단면을 드러내며 거기에는 또한 청교도적 순결주의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그러나 그 차례 구속되기도 한 그가 시인 윤동주와 어깨를 나란히 한 걸출한 민족작가인 사실이 알려지기까지 역사는 반세기를 넘게 기다려야 했다. 고인이 영면한지 55년이 지난 2000년에야 유족들은 항아리 속에 숨겨온 고인의 유작을 공개하게 되어 그의 작품이 비로소 연변 사회과학원의 ‘문학과 예술’ 잡지에 실리자 학계는 흥분했다.남성적이며 거창한 문체, 일제 강점기 정신적 빈곤을 파헤친 거침없는 그의 글들은 가히 ‘저항문학’의 역사를 새로 쓰게 하는 사건이었던 것이다.학계는 그를 동시대를 호흡한 윤동주와 같은 반열에 올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심연수의 유작은 시를 비롯해 소설, 수필, 평론 등 312편에 이른다. 을지문덕을 찬양하면서 구국의 영웅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대목이나 만주국이 문약(文弱)해 독립투쟁에 나서지 않는 점을 비판한 대목 등에서 그의 저항정신이 배어나며 남다르다고 할 만큼 강렬한 저항성을 띤 심연수의 문학성은 시편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대표적 저항시 에서 좌절과 어둠 속에서도 봄(광복)을 기다리는 의지가 강렬하게 피어났으며, 에선 굽실거리는 친일파들의 아부에 메스를 가한다. 당시 민족적인 경향이 드러나는 한글작품을 발행하기 어려운 시대였는데도 그가 발간을 염두에 두고 시집형식으로 묶은 유작 노트집은 그의 문학적 열정과 민족정신을 그대로 전해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 이육사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 윤동주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소학교 때 위에도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은 일제의 학정에 의한 민족수난을 주제로 한 시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는 시인의 민족적 저항정신과 순수시의 바탕 아래 융합되어 나타난 것이다.'매운 계절'로 표상된 시간적 배경과,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으로 표현된 시적 공간은 공간적 광활성을 나타낸다. 그러면서도 더 갈 수 없는 단애의 강박관념으로 '서릿발 칼날진'과 같은 위급한 곳을 표상하기도 한다. 한 발 비껴 디딜 곳조차 없이 위급한 극한상황에 처한 화자는 눈을 감고 환상의 무지개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핵심내용이다.윤동주의 은 멀리 북간도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조용히 고백하는 형식을 띤 작품으로 중간에 산문형태가 끼어들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자유시의 일반적인 운율이 사용되고 있다. 흔히 시에서는 시인과 시적 화자가 별개의 존재로 다루어지지만, 이 시에서는 자기 성찰을 보이는 시적 화자가 시인의 직접적인 투영이라는 점이 주목을 끈다. 윤동주의 고향이 '북간도'이고, 이 시에서 '북간도'에 대한 회상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시적 화자와 시인이 분리되지 않는다. 그만큼 시적 진실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름다운 이상에의 동경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난해하지 않은 표현 기법으로 친근감과 설득력을 더해 주고 있다. 가을 하늘과 별과 시인의 고향, 북간도의 이국적인 정조가 망국의 설움과 어울려 민족의 비애가 애잔하게 표현되어 있다.-심연수봄은 가까이에 왔다말랐던 풀에 새움이 돋으리니 너의 조상은 농부였다너의 아버지도 농부였다전지(田地)는 남의 것이 되었으나씨앗은 너의 집에 있을 게다가산(家山)은 팔렸으나나무는 그대로 자라더라재밑의 대장간집 멀리 떠나갔지만끌 풍구는 그대로 놓여있더구나화덕에 숯 놓고 불씨 붙여옛소리를 다시 내여봐라너의 집이 가난해도그만한 불은 있을 게다서투른 대장쟁이의 땀방울이무딘 연장을 들게 한다더라너는 농부의 아들대장의 아들은 아니래도...겨울은 가고야만다계절은 순차(順次)를 명심하자봄이 오면 해마다 생명의 환희가생기로운 신비의의
    인문/어학| 2009.01.04| 22페이지| 무료| 조회(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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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자가 알려진 교훈가사
    작자가 알려진 교훈가사교 훈 가 사- 조선조 대표적 작품을 중심으로 -- 목 차 -Ⅰ. 교훈가사 개관Ⅱ. 교훈가사의 대표적 작품1. (1) 작가 소개(2) 내용연구(3) 문학사적 의의2. 와 (1) 작가 소개(2) 내용연구(3) 문학사적 의의3. (1) 작가 소개(2) 내용연구(3) 문학사적 의의Ⅲ. 정리하며Ⅰ. 교훈가사 개관교훈가사는 말 그대로 교훈이 담긴 가사인데, 사회 전반을 유교 이념이 지배한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이념의 가르침을 주제로 한 가사가 많이 다루어졌다. 노랫말에서 의도적이고 목적적인 것이 크게 드러나 있는 점은 조선 왕조 초 시가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시가문학사에서 교훈이라는 주제가 조선전기에는 주로 시조를 통해 제시되다가, 후기로 갈수록 가사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이번 발표를 통해서 앞서 살펴본 선행연구의 경과를 판단하는 데 있어 알아보아야 할 도덕교훈가사의 전형적인 조선전기 작품을 우선 다루고자 하며 이에서 나아가 임란직후의 조선중기 작품, 그리고 조선후기 농민들에게 권농하기 위해 농가의 풍속을 토대로 한 서사적 작품에 이르는 선에서 드러나는 특징과 그 의의를 파악하고자 한다.순번작품이름지은연대지은이출전 및 참고문헌참조1금보가1570년 전이황(李滉)속기아2도덕가〃〃잡가(라손장)3상저가〃〃교주가곡. 잡가고금가곡4효우가〃〃〃5권선지로가1572년 전조식(曹植)잡가(라손장)∨6자경별곡1576년경이이(李珥)〃7고공가1592년 후허전(許?)〃∨8고공답주인가〃이원익(李元翼)〃∨7권선징악가1708년곽시징(郭始徵)(필)8오륜가1713년 전〃〃9명분설가1747년안창후(安昌後)한설당유고10길몽가1759년한석지(韓錫地)명선록온고록(筆)11경몽가1764년 전정치업(丁致業)경몽가(筆)12농가월령가1843년정학유(丁學游)악부(下)(筆)∨Ⅱ. 교훈가사의 대표적 작품1. 권선지로가(勸善指路歌)(1) 작가조식(曺植, 1501년 ~ 1572년)은 조선 전기의 성리학자이고 영남학파의 거두이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건중(楗仲), 호는전념하였다. 여러 차례 조정에서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그의 제자로 김효원·김우옹 등 저명한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일반적으로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우도 지역(오늘날의 경상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학맥을 형성하였다. 유명한 글로는 '단성소'와 '을묘사직소'가 있다. 선조 때 대사간, 광해군 때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저서로 《남명집》《남명학기》《파한잡기》등이 있으며, 작품으로《남명가》 《권선지로가》 등이 있다.(2) 내용연구는 모두 145행 292귀의 장편가사이므로 많은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크게 3문단으로 나눌 수 있다. 서사에서는 짓게 된 까닭을 밝히고 본사에서는 훈계의 사를 노래하고 결사에서는 의로운 삶을 꾸준히 실행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이 보쇼 사?드라 이 내 말 드러보쇼한 길) 란 어디 두고 小路(소로)로 드러시며)낫즈란 어디두고 밤으로 단니?다堯舜(요순)) 적 닥근 길이 녜부터 닐러거?너희? 무? 닐노) 小路(소로)로 드러시며仲尼(중니)) 적 놉픈 날리 이졔?지 ) ??거?너희? 무? 닐노 밤으로 단니?다仁義(인의)로 길흘 ?고 五倫(오륜)으로 집을 ?아이 길흘 닐치 말고 져 집으로 니거시라)그려도 모로거든 낱?려 무러스라大槪란 내 닐너든 ?기? 네 ?여라권선지로가의 서사부분이다. 성인이 닦아 놓은 길로 가지 않는 세상 사람에 대한 개탄으로 시작해서, 仁義와 五倫으로 살아갈 것을 당부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즉 백성들이 유학을 배우면서 큰 길을 두고 작은 길로 가며, 낮에 길을 가야 하는데 밤에 길을 가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길’은 학문을 수양하는 방법을 말한다. 또한 여기서는 堯舜이 닦아 놓은 길을 공자가 밝혀주었으니 인의(仁義)로 길을 살고 오륜(五輪)으로 집을 삼아야할 것이라고 하며, 이를 말하겠다고 하였다.天地 ㅣ 天地 아녀 五行)이 天地오사?이 사? 아녀 五輪)(오륜)이 사?이라하?을 모로거든 머리? ?져 보고먼 ?을 못보거든 눈 ?흘 ?펴스라天地 萬物(만물)도 이 몸의 ?자거든)堯舜(요순)과 孔孟(공맹) 萬駟(만사))도 이 ?? 옴길러가趙孟(조맹))의 貴(귀)로도 혜거든 헤일리라)진실노 어들션뎡) 가진 거시 내야 만코진실노 닷글션뎡) 귀? 거시 내야 놉다)부와 귀함과 같은 현세적 욕망보다 유가적 가치를 우위에 두어 강조하고 있다.虛靈)(허령)한 이 ??은 사? 마다 두어?니至誠(지성)으로 직희여셔 恭敬(공경)으를 가져셔라하늘? 타? 性(성)을 穿鑿(천착)치 마라스라어버의게 바든 몸을 毁傷(훼상)치 마라스라一日 三省?야 急務(급무))을 삼아스라奴婢(노비)? 田地(전지) ?토리)나 잇거니와仁義(인의) 禮智(예지)? 뉘라셔 말리더니???) ?? 내여 ) 힘?장 ?져스라一身(일신) 潤德(윤덕)이 남의게도 밋?려니平生(평생) 餘澤(여택) 子孫(자손)에도 흐?리라여기서는 마음을 지성(至誠)으로 지켜 공경(恭敬)으로 행하면 평생여택(平生餘澤)이 자손에게도 미칠 것이라 하고, 가장 존귀한 것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마음이라고 하였다. 이는 곧 맹자의 사단(四端))을 말하니, 孔孟學(유가)의 큰뜻이다.나도 첫 길히라 仔細(자세)히 모로면서남조차 ??치기 서??) ?거니와平生의 다닐 길흘 몰 ?라 ?로손가가다가 아? 이 만나거든 다시 무러 니거스라의 결사부분으로 “나도 첫길이라 자세히 모르면서 남까지 가르치기 교만한 듯 하지만, 평생의 다닌 길을 모른다 하겠는가” 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자로서 겸손함과 자부심을 함께 드러내고 있다. 또한 평생을 가야할 길이니 다시 물어가면서 꾸준히 가라고 하며 끝맺었다.(3) 문학적 특징 및 문학사적 의의①특징첫째, 유가적 윤리 규범을 후학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의 도덕적 교훈가사이다.둘째, 인륜도덕을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욕구로만 점철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안타까운 심정을 함께 실어 나타냈다.셋째, 의문형식으로 말하려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셋째, 진리를 전달하는 방편으로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넷째, 작중화자가 때로는 자상하게 권유하고 때로는 억압적으로 명령하는 방식으로 유교 이념을 반복하여 제시하고 있다.②의의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전주, 자는 공려(公勵), 호는 오리(悟里). 시호 문충(文忠)이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임진왜란 때는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에 봉해지고, 인조 때는 우의정, 영의정이 되었으며, 이때 일본과 화의를 주장한 죄로 삭직된 유성룡을 변호하다가 사직하고 은퇴했다. 후에 좌의정이 되어 전후의 질서 회복에 공헌이 컸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남인에 속했으나 성격이 원만하여 정적들에게도 호감을 샀다. 인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고, 여주의 기천서원(沂川書院) 등 여러 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오리문집(梧里文集)》 《속 오리집(續梧里集)》 《오리일기(梧里日記)》 등이 있다.(2) 내용 연구《고공가》는 허전이 선조 말엽에 지은 총 52구의 머슴 노래이다. 농사에 나라의 일을 비겨서 많은 관리들의 탐욕과 무능함을 개탄하고 근검할 것을 교훈하는 내용을 은유적으로 노래한 작품이다.집의옷 밥을언고) 들먹?) 져雇工(고공))아우리집 긔별을 아?다 모로?다)비오?? 일업?? ?)?면서 니?리라처음의 한어버이) 사롬?리) ?려??仁心(인심)을 만히쓰니 사?이 절로모다)풀?고) 터을닷가 큰집을 지어내고셔리)보십) 장기)쇼)로 田畓(전답)을 긔경?니)오려논 터밧치 여드레 ?리)로다子孫(자손)에 傳繼(전계)?야 代代(대대)로 나려오니논밧도 죠커니와 雇工도 근검터라여기까지 기승전결의 ‘기’에 해당하는 단락으로 조부모의 어진 마음으로 큰 집을 짓고 살아 올 때 머슴들도 근검하였다는 우리 집의 내력을 머슴에게 말하고 있다. 이 때의 ‘한어버이’는 태조를, ‘우리집 긔별’은 조선의 역사를. ‘머슴’은 신하들을 이른다. 주목할 부분은 여기서 머슴이 주인의 말을 잘 듣고 일을 잘 하는 상식적인 머슴이 아니라 집의 일을 제쳐두고 밖으로 나다니며 빌어먹는 머슴이라는 점이다. 또한 과거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저희마다 여름지어 가?여리) 사던 것슬요?이 雇工들은 혬이어이 아조업서밥사발 큰나쟈그나 동옷시) 죠코즈나??을 ?호?? 호슈을) ?오?듯)무?일 걈드러) 흘긧할긧 는 머슴들이 근검하고 부지런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의 근검한 머슴과 현재의 시대상과 일하지 않는 머슴을 한탄하고 타이르고 있는 것이다.조부모께서 살림을 시작하였을 때, 여드레 갈이나 되는 텃밭을 가지고도 모든 머슴들이 부지런하고 검소하더니, 요새 머슴들은 사려 분별(思慮分別) 없이 밥그릇 크고 작음이나, 동옷의 좋고 나쁨만을 다투어 화강도(火强盜)에게 가산을 탕진하였다는 것으로, 이는 태조 건국 이후 당파 싸움에만 열을 올리다 왜적의 침입을 받게 되었음을 은유한 것이다.七夕(칠석)의 호?씻고 기음을 다?후의??기 뉘잘?며 셤으란) 뉘엿그랴너희?조 셰아려 자라자라) 맛스라?을 거둔후면 成造(성조))를 아니?랴집으란 내지으게 움으란 네무더라너희 ?조을 내斟酌(짐작) ?엿노라너희도 머글일을 分別을 ?려므나멍셕의 벼?넌들 됴흔? 구름?여볏뉘)을 언?보랴 방하을 못?거든거츠나 거츤오려) 옥?? 白米될쥴뉘아라 오리스니)‘전’에 해당하는 단락의 일부분으로, 머슴들의 근검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머슴들이 할 일을 서술하면서 머슴들이 일을 잘 한다면 화자가 그것을 잘 알아 각자의 재주를 짐작해 대우하겠다고 한다.혬혜?) 새들이리) 어?제 어더이셔집일을 맛치고 시름을 니즈려뇨너희일 ??라?며셔) ???리) 다?괘라.‘결’ 부분에서는, 왜적의 재침을 막기 위해 항상 화살을 준비하고 근검하라고 한다. 이 단락은 각 행이 4음보이고 마지막 행이 3?6?4?4로 이루어져 평시조의 형식과 일치하고 있다. 이는 화자의 독백으로 현실의 일이 자신의 뜻대로 잘 풀리지 않자 체념하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를 보이며 새 머슴 출현을 기원하며 마치고 있다.왜적의 침입을 받고도 뉘우칠 줄 모르고, 사리사욕(私利私慾)과 당파 싸움에만 정신을 팔고 있는 벼슬아치들에게 협동과 근검 정신을 일깨우며, 참신하고 청빈한 벼슬아치의 출현을 바라고 있다.《고공답주인가》는 이원익이 에 대하여 지은 답가로서, 총 42구로 된 작품이다. 이는 임진왜란 직후 황폐한 이 땅에서 국사는 돌보지 않고 당쟁만 일삼는 상황을 이
    인문/어학| 2009.01.04| 14페이지| 무료| 조회(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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