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김병연의 삶과 사상 살피기1. 김병연(金炳淵)의 삶. 1807~1863.세도가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나 다섯 살 때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고 선천 방어사로 있던 조부 김익순이 반군에 투항함으로써 그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역적의 집안으로 전락되어 멸족을 우려한 부친이 형과 함께 그를 곡산으로 보내 노비의 집에서 숨어 산다. 여덟 살에 조정의 사면으로 집으로 돌아오나 그 가족들이 온전히 터 잡고 살 곳이 없어서 여주, 가평, 평창을 거쳐 영월에 정착을 해서 집안을 다시 일으켜보려는 모친의 후원에 힘입어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글공부에 힘 쓴다. 나이 스물, 결혼한 그 해, 운명을 다시 바뀌게한 시골에서의 백일장을 보게 된다. 과제는 "가산군수 정시의 충성을 찬양하고 역적 김익순의 죄를 한탄하라" 그는 조부를 규탄하는 명문으로 장원에 급제하나 할아버지를 팔아 입신양명하려고 한 자신에 부끄러움을 느껴 글공부를 포기하고 농사를 지으며 은둔 생활을 한다. 그러나 신분 상승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 가지만 부패한 과거 제도에 실망을 하고 어느 세도가의 집에서 식객으로 지내던 중 그의 출신 성분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제도권 진입을 포기하고 스물 다섯에 기나긴 방랑의 길에 들어선다. 방랑 초기에는 지방 토호나 사대부 사람들과 교유하면서 나름대로의 품위를 유지하나 세상 인심이 한결 같을 수는 없는 것. 그는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고 서민들 속에 섞여서 날카로운 풍자로 상류 사회를 희롱하고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을 읊으며 일생을 보낸다. 그의 나이 쉰 일곱, 전라도 땅에서 눈을 감음으로써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일생을 마감하고 아들 익균이 유해를 영월로 옮겨 장사 지낸다.2. 김병연의 사상김병연의 방랑 생활은 출발 동기부터 불평객과 반항아의 색채를 띠고 있다. 그것은 그가 가명(假名)을 김란(金란)이라 하고 난고(蘭皐) 외에 이명(而鳴)이라는 호(號)로 불리고 머리에 삿갓을 쓴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이명(而鳴)은 중국 서적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있우선 방랑 생활 자체가 불평과 반항의 한 표현이었다. 그 이전의 많은 반항아들 역시 이 방법을 취했으니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이 일생을 방랑객으로 지냈고 봉건 체제에 반항했던 허균(許筠)도 강원도, 경기도 등을 방랑하다가 발각되어 사형을 당하였다. 기이하고 광적(狂的)인 행동도 반항적 태도의 한 표현이었다. 황오(黃五)의 녹차집(綠此集)에는 '하루는 정현덕이 내게 편지를 보내 오기를 천하 기남자(奇男子)가 여기 있는데 한번 가 보지 않겠는가 하기에 같이 가 보니 과연 김삿갓이더라. 사람됨이 술을 좋아하고 광분하여 익살을 즐기며 시를 잘 짓고 취하면 가끔 통곡하면서도 평생 벼슬을 하지 않으니 과연 기인이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석우는 해장집(海藏集)에서 '과거장에 들어가되 어떤 때는 수십 편을 짓고 나오고 어떤 때는 한편도 안 짓고 나오니 그 광태가 이와 같더라....과거장 밖의 술집에서도 그의 이름을 사랑하나 그 광태를 무서워하여 술을 모조리 먹어도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라고 그의 기행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또 상대방을 공격할 때는 큰소리로 웃어주기도 하고 풍자와 재담으로 비꼬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취하였다. 이것은 일반 대중이 그와 그의 예술을 사랑하는 요인이 되었으며 일부 양반들도 그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한편 즐겨 쓴 삿갓 역시 변형된 투쟁 무기였으니 보기 싫은 당시 사회와 세상에 대한 불평 불만의 사상적 표현이었다. 김삿갓은 조부를 탄핵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죄인이라기 보다는 봉건적인 지배 계급에 대한 반항아라는 사회 정치적 각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3. 김병연(金炳淵)이 삿갓을 쓰고 방랑시인이 된 내력조선 순조 11년(1811년) 신미년에 홍경래(1780-1812)는 서북인(西北人)을 관직에 등용하지 않는 조정의 정책에 대한 반감과 탐관오리들의 행악에 분개가 폭발하여 평안도 용강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홍경래는 교묘한 수단으로 동지들을 규합하였고, 민심의 불평 불만을 잘 선동해서 조직한 그의 반란군은 순식간에 가산, 박천문에서 태어났다. 네가 오늘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 세워 욕을 퍼부은, 익자(益字) 순자(淳字)를 쓰셨던 선천 방어사는 네 할아버지였다. 너의 할아버지는 사형을 당하셨고 너희들에게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느라고 제사 때 신주를 모시기는커녕 지방과 축문에 관직이 없었던 것처럼 처사(處士)로 써서 너희들을 속여 왔다...병연은 너무나 기막힌 사실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반란군의 괴수 홍경래에게 비겁하게 항복한 김익순이 나의 할아버지라니...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이 조부를 다시 죽인 천륜을 어긴 죄인이라고 스스로 단죄하고, 뛰어난 학식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과장에서 김병연이 지어낸 시가 다음과 같다.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대대로 임금을 섬겨온 김익순은 듣거라.정공(鄭公)은 경대부에 불과했으나농서의 장군 이능처럼 항복하지 않아충신 열사들 가운데 공과 이름이 서열 중에 으뜸이로다.시인도 이에 대하여 비분강개하노니칼을 어루만지며 이 가을 날 강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선천은 예로부터 대장이 맡아보던 고을이라가산 땅에 비하면 먼저 충의로써 지킬 땅이로되청명한 조정에 모두 한 임금의 신하로서죽을 때는 어찌 두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태평세월이던 신미년에관서 지방에 비바람 몰아치니 이 무슨 변고인가.주(周)나라를 받드는 데는 노중련 같은 충신이 없었고한(漢)나라를 보좌하는 데는 제갈량 같은 자 많았노라.우리 조정에도 또한 정충신(鄭忠臣)이 있어서맨손으로 병란 막아 절개 지키고 죽었도다.늙은 관리로서 구국의 기치를 든 가산 군수의 명성은맑은 가을 하늘에 빛나는 태양 같았노라.혼은 남쪽 밭이랑으로 돌아가 악비와 벗하고뼈는 서산에 묻혔어도 백이의 곁이라.서쪽에서는 매우 슬픈 소식이 들려오니묻노니 너는 누구의 녹을 먹는 신하이더냐?가문은 으뜸가는 장동(壯洞) 김씨요이름은 장안에서도 떨치는 순(淳)자 항렬이구나.너희 가문이 이처럼 성은을 두터이 입었으니백만 대군 앞이라도 의를 저버려 사이에 널리 유행함으로써 하나의 시풍을 형성하는 데까지 이르렀던 것이다.유명 작가의 활동이 극히 적었던 19세기 중엽에 구전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 평민 풍자 시인의 문학은 문학사에서 특색있는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그의 문학에도 부족함과 결함은 있었으니 비록 그가 평민 사상을 가지고 빈부의 차가 없는 사회를 바랐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막연한 생각에 불과했다. 따라서 인도주의 사상도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불행한 처지에 대한 동정에 그쳤고 연암(燕岩) 박지원이나 다산(茶山) 정약용 같이 전체 농민에 대한 해방 사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으며 당시 민중들의 적극적인 반항 투쟁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였다. 마찬가지로 왕조와 양반 귀족들에 대한 강한 반항심도 막연한 반항에 그쳤고 적극적인 투쟁으로 전환되지는 못했다. 그의 풍자시는 개별적 사실과 개인적인 반감에 결부되어 있을 뿐 사회적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으며 일반 대중의 전반적 문제로서 제기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는 당시 사회에 대해서 어떤 대책이나 개혁안도 제시하지 못했고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또한 주로 한문시를 쓰고 국어 시가를 많이 창작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좀더 많이 얻을 수 있는 대중 독자를 잃어 버린 요인이 되었다.이와 같은 결함들이 그의 문학이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들을 손상하지는 않는다. 그의 반항과 불평이 개인적인 요소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 역시 당시 억압받던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였으며 중년과 말년으로 가면서 점점 더 양반 제도와 봉건 정치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그의 세계관은 훨씬 사회적으로 확대되어 갔던 것이다. 단편적이고 통속적이긴 하나 그의 풍자와 웃음은 봉건 지배층을 겨누는 예리한 칼날이었다.2. 김병연의 시 감상김병연의 시를 제재에 따라 구분하자면 방랑(放浪)편, 인물(人物)편, 영물(詠物) 및 동물(動物)편, 산천누대(山川樓臺)편, 일화(逸話)편의 다섯 가지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이에 이 구분에 따른 대표적인 작품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한다.1) 방랑(放浪)편비를 만나 시골집에서 이백(李白)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에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이라고 하여 달, 자신, 자신의 그림자가 모여 셋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술을 좋아하는 시객(詩客)이 아름다운 기녀와 대작을 하며 시로 화답하고 봄밤의 취흥을 즐기는 풍류시이다.훈장을 훈계하다두메산골 완고한 백성이 괴팍한 버릇 있어문장대가들에게 온갖 불평을 떠벌리네.종지 그릇으로 바닷물을 담으면 물이라 할 수 없으니소 귀에 경 읽기인데 어찌 글을 깨달으랴.너는 산골 쥐새끼라서 기장이나 먹지만나는 날아 오르는 용이라서 붓끝으로 구름을 일으키네.네 잘못이 매 맞아 죽을 죄이지만 잠시 용서하노니다시는 어른 앞에서 버릇없이 말장난 말라.김삿갓이 강원도 어느 서당을 찾아가니 마침 훈장은 학동들에게 고대의 문장을 강의하고 있는데 주제넘게도 그 문장을 천시하는 말을 하고 김삿갓을 보자 멸시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훈장의 허세를 꼬집는 시를 지었다.기생 가련에게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든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 없는 나그네길을 떠난다.어느 여인에게나그네 잠자리가 너무 쓸쓸해 꿈자리도 좋지 못한데하늘에선 차가운 달이 우리 이웃을 비추네.푸른 대와 푸른 솔은 천고의 절개를 자랑하고붉은 복사꽃 흰 오얏꽃은 한 해 봄을 즐기네.왕소군의 고운 모습도 오랑케 땅에 묻히고양귀비의 꽃 같은 얼굴도 마외파의 티끌이 되었네.사람의 성품이 본래부터 무정치는 않으니오늘 밤 그대 옷자락 풀기를 아까워하지 말게나.왕소군은 한나라 원제(元帝)의 궁녀로서 흉노 땅에서 죽었다. 마외파는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을때 양귀비가 피난 갔다가 죽은 곳이다. 이 시에 담긴 일화는 김삿갓이.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1. 소쉬르의 언어이론과 구조주의소쉬르는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언어는 기호들의 체계이며 각각의 기호는 씨니피앙(signifiant, 기표)과 씨니피에(signifie, 기의)로 되어있음을 밝히며, 더불어 씨니피앙과 씨니피에가 맺고 있는 관계는 자의적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자의적이라는 말의 뜻은 씨니피에와 씨니피앙의 결합관계에는 아무런 필연적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이러한 언어이론을 확대하다보면 어떤 체계의 개별단위든간에 그것은 다른 것들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는 이론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문학작품을 대하는 구조주의자들은 이러한 언어이론을 기초로 하여, 문학작품의 내용이 의미하는 바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이야기의 각 요소가 갖고 있는 공통적 역학 관계를 찾아내어 그것으로 작품을 통일해버리고 그것들의 움직임에 주의를 집중한다.2. 구조주의적 연구방법의 특징1) 작품이 위대한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구조주의적 방법은 작품이 지닌 문화적 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즉 이 방법은 분석적 기술에 관심을 두며 가치 평가적인 데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2) 구조주의는 이야기가 갖고 있는 명백한 의미를 거부하고 그 대신에 이야기 속에 있는 심층구조를 찾아내려고 애쓴다. 구조주의자는 텍스트를 전혀 다른 종류의 텍스트로 치환한다.3) 텍스트의 특정 내용들이 치환 가능하다면, 그 작품의 진정한 내용 은 그 구조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즉 작품의 주제는 그 작품의 각 요소들이 갖고 있는 내적 관계들 자체인 것이다.3. 장 피아제(Jean Piaget)가 말하는 구조의 특성1) 전체성의 관념전체성이란 내부적인 통일성을 의미한다. 즉 하나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각 요소들은 완전한 배합상태 속에서 통일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인데, 그 상태는 과거 배합되지 않은 상황에서 각각 독립성을 유지하던 요소들이 단순히 모인 복합물과 같은 것이 아니어야한다. 곧 하나의 구조는 부분들의 단순한 총합과는 다르며 구조의 구성부분들은 그 구조 내부에서 가지고 있던 형태를 그대.4. 롤랑 바르뜨언어와 기호가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관습이라는 전제 하에 언어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이데올로기 성으로 불건강한 언어 와 건강한 언어 를 제시한다. 불건강한 언어란 언어중 자신의 존재가 자연적 인 것이며 자신이 세계를 올바로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제시하는 기호, 즉 현실이 기호의 매개 없이 자신의 모습을 곧바로 드러낸다는 환상을 강요하는 언어를, 건강한 언어는 자신이 자의적 존재라는 사실에 독자들의 주의를 집중시켜 자신이 자연적 인 존재라고 속이지 않으며 의미를 전달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상대적이고 인위적인 위치를 스스로 알리는 언어를 각각 지칭하는 것으로 규정한다.롤랑 바르뜨는 『S/Z』에서 모든 문학작품은 완결된 존재가 아니며 개별 문학 작품에 앞서서 존재했거나 혹은 주변에 존재했던 모든 다른 글들을 재편해 놓은 것이라는 점에서, 모든 문학 작품은 간(間)텍스트적 이라고 밝히고 있다. 모든 문학이 간텍스트적이라는 의식 하에 비평가는 텍스트를 대하는 비평의 관점자체를 변화시키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작품을 분해하고 다른 담화로 옮기면서 작품 자체와 다른 새로운 의미 생산을 하는 역할을 해야함을 밝히고 있다.5. 자끄 라깡자끄 라깡은 아동발달단계를 상상적 단계 와 상징적 단계 로 나눠 설명한다. 상상적 단계란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는 자아가 형성되어 있지 않는 단계를 뜻하는 용어로서 이 시기의 아동은 자신이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어떤 자아적 요소 이든 간에 대상에 투여하고 또 거꾸로 대상이 자신 속으로 투여되는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상징적 단계는 자신의 정체성이 자기 주위에 있는 다른 주체들과의 차이와 유사성이 이루는 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단계를 말하며 이시기에 아동은 언어를 습득하게 되어, 하나의 기호는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과 한 기호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이 부재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라깡은 이 상상적 단계에서 상징적 단계로 전이해 가는 과정에서 언어의 세계가 공허함과 더불어, 이 공허함으관해 언급하면서 라깡은 이들이 언어가 갖고 있는 성질과 동일한 속성을 갖고 있다는 점, 즉 모두 차이 와 부재 라는 기본 속성을 지닌 채 무수한 연쇄 고리를 따라 끝없이 표류하고 이동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6. 쟈끄 데리다쟈끄 데리다는 기호란 기호들 상호간의 관계에 의해 그 존재의 힘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있음에도, 이 기호의 전체 수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 기호들의 상호 관계라는 것은 무한에 가깝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복잡한 양상을 가지고 있으므로 씨니피앙과 씨니피에가 산뜻한 대칭적 쌍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우리가 씨니피에에 다가가는 것은 불가능함을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씨니피앙들의 사슬 전체 사이에 흩뿌려져 있는 의미라는 것은, 쉽게 고정될 수 없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기호 속에서 완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존재와 부재 사이에 계속 명멸하는 존재인 것이다. 언어가 가지고 있는 시간적 불안정성과 더불어 이러한 논제는 고전적인 구조주의자들의 언어관에 상당한 타격을 입힌다. 이러한 생각을 확대하다 보면 의미란 기호들에 자신을 의탁하고 있는 한, 그 자체를 어떤 방식으로든 확정하거나 표현할 수가 없으며,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글을 쓰든 간에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도, 전달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양에서는 로고스 중심적(logocentric) 사고관으로 이를 해결하려 하나 육성 또한 글의 한 형식에 불과할 뿐이라는 점에서 그 한계에 다다른다. 또 로고스 중심주의는 로고스 자체가 의미 작용의 끝없이 혼란스러운 활동 속에 포함되니 않으면서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일수 없다는 점에서도 그 전제에 문제를 갖는다.데리다는 이러한 제 1의 원리, 즉 의미의 모든 위계 질서의 기초를 이루는 존재에 의존하는 모든 사상체계를 형이상학적 이라고 명명하고 이러한 제 1 원리에 대한 인간의 집착이 어느 정도까지는 필연적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정이 비평가가 해야할 일임으로 세운다.7. 구조주의와 탈 구조주의 비평의 장단점1) 구조주의의 장점문학에 대한 주관주의적 비평의 전통을 응징하였다.2) 구조주의의 단점삶의 주인을 인간이 아닌 구조 자체로 보아 신비화를 도모하고, 인간의 의지나 체험을 무화하는 반 휴머니즘적 의도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작품의 가치평가를 피하고 구조를 분석해내고 구조전체의 모습을 기술하는데 그친다.구조 자체의 존재가 가능할 수 있는가의 의문을 안고 있다.3) 탈 구조주의의 장점인간의 모든 언어행위와 인식행위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의미와 진리의 존재에 대한 애착이 사실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하였다4) 탈 구조주의의 단점자기 존재를 주장하면서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정하면서 권위를 인정받는다.현실 속에 복귀하였다던가 이 현실 속에 생생하게 또한 반복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아픔과 고통의 치유를 위해 실제적으로 무엇을 제공하거나 하지 못한다.※첨부1. 윤동주 『서시』를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비평한 경우.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이 序詩 는 시제 개념에 의한 구조적 특성말고도 시행 자체를 중심으로 독특한 구조를 보여준다. 이 시의 경우 시행들 사이에는 어떤 체계성이 드러나며, 그것들은 또한 어떤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을까.첫째는 시행들 사이에는 일정한 규칙, 곧 체계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홀수 행은 모두가 물질세계를 노래하며, 짝수 행은 모두가 정신 세계를 노래하고 있다. 문장구조를 염두에 둘 때, 이 시가 다섯 문장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면, 각 문장은 마지막 문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가 대응되는 양식을 띠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물질 세계보다 정신세계가 강조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둘째로, 또 하나의 특성은 마지막 문장이 한 시행으로 되어 있으며, 그것도 3단락은 별도의 연으로 처리했다고 본다. 문장 구조를 전제로 1·2단락이 이웃해 있고, 3단락이 고립되어 있는 이러한 구조적 특성은 이 시에서 화자가 과거, 미래보다 현재의 삶을 한결 고립된 것으로, 바꿔 말하면 과거, 미래의 삶에서 소외된 것으로 느낌을 암시한다.넷째로 1·2단락은 심리적 현실을, 3단락은 객관적 현실을 노래한다. 그런데 1단락은 2단락의 내용은 다르다. 1·2단락은 같은 내면 세계를 노래하고 있지만, 1단락에서는 동경과 갈등, 2단락에서는 사랑과 의지의 대응적 양상으로 제시된다. 결국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고 노래하는 화자의 현재의 삶은, 별 이 단락의 의미를, 바람 이 3단락의 의미를 함축하는, 그러한 내면 세계를 보여준다. 3단락은 그 속에 과거·미래의 삶의 내용들이 내포된 그러한 객관적 현실을 노래한다.序詩의 어휘론적인 측면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시의 어휘론적 측면을 고찰하는 손쉬운 방법은 시속의 어휘의 빈도를 조사하는 것이다. 이 시에는 바람 과 별 이 있다.1단락은 바람 , 2단락은 별 , 그리고 3단락에서는 별과 바람 이라는 분포형식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 시는 바람과 별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하나의 구조를 형성한다. 1단락의 문맥에서 하늘과 바람은, 시각과 청각, 상승과 하강, 천상과 지상, 행복과 고뇌, 부끄럼의 유무 등에서 의미의 대립이 이루어진다. 구조주의 시각에서는 다른 사물과의 대립성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바람의 의미는 하늘의 의미와 대립될 때 드러난다. 즉 그것은 지상의 괴로운 삶을 표상 하는 것이다.두번째 단락에서도 별의 의미는 죽어 가는 것과 여러 가지 면에서 대립을 이루고 있다.이상의 두단락에서 하늘과 바람의 대립은 별과 죽음의 대립에 대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1단락에서는 {하늘 → 우러르다 → 부끄럼이 없다}라는 등가관계로 결합되어 있다. 즉 1단락의 전반부는 등가성의 원리에 의해 낱말들이 결합되어 있다. 왜냐하면 하늘 , 우러르다 , 부끄럼이 없다 는 동의어 적인 관계를려준다.
대학(大學)과 중용에 대한 주자와 다산의 견해 차이1. 대학(大學)에 대한 주자와 다산의 견해 차이주자와 다산은 교육기관인 태학(太學)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부터 대학에 대한 입장을 달리한다. 주자는 대학(大學)은 태학(太學)에서 교육하는 법(法)으로서 천자로부터 서민의 우수한 자제에 이르기까지 받아들여 교육하였던 곳이 태학(太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이에 다산은 태학(太學)은 귀족의 맏아들만을 받아들여 교육하던 곳으로서 평민은 입학할 수 없으므로 대학(大學)의 도(道)는 일반 백성을 대상으로 하였던 것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산이 이야기하는 대학(大學)의 도(道)는 위자(胃子)의 도(道)로서 다음세대를 이어받을 왕공 귀족들의 맏아들에게 치국평천하의 길을 가르치는 특수교육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주자와 다산의 견해의 차이로부터 대학경의를 심성론적으로 보느냐 실천윤리학적으로 보느냐의 둘 사이의 입장의 차이가 발생하며, 이는 곧 성리학적 경학과 실학적 경학의 입장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주자는 대학을 경(經)1장과 전(傳)10장으로 나누고, 경(經)1장은 증자가 공자의 뜻을 전수하여 밝힌 것이며, 전(傳)10장은 증자의 문인들이 경(經)1장의 뜻을 서술한 것이라 보았다. 그리고 그는 경(經)1장을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으로 나누어 이를 대학(大學)의 뼈대가 되는 총론(總論)이라 하였다. 삼강령(三綱領)은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을 말하고, 팔조목(八條目)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라고 각각 이야기한다.먼저 명명덕(明明德)에 대하여 주자는 사람이 하늘에서 타고난 마음속의 광명정대한 본성이 명덕(明德)이며, 마음이 발동할 때 기질이나 인욕에 구애됨이 없이 천리(天理) 그대로 인간의 본성을 발현하게 하는 것이 명덕(明德)을 밝힘이라 하고, 명명덕(明明德)은 마음의 본체에 깃들어 있는 보편존재자로서의 천하를 실행하기 전에 마음속에 덕이 있는 것이 아니며, 도 대학의 도는 인륜을 밝힘에 있는 것이므로 경에서 명덕을 밝힌다고 한 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허령불매(虛靈不昧)한 본성을 밝히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친민에 대하여 주자는 정이천의 설에 따라 친(親)자를 마땅히 신(新)자로 보아야한다고 하고 신민(新民)이란 명명덕(明明德)을 이룬 이후에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만인공유의 명덕(明德)을 밝혀 옛날에 물든 더러움을 제거하도록 하여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 한다. 이에 대해 다산은 왕양명의 설에 따라 경문의 친민(親民)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하며, 친민(親民)이란 위정자가 효제자(孝悌慈)의 덕을 실천함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효제자(孝悌慈)의 도리를 일으켜 서로 친애(親愛)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지어지선(止於至善)에 대하여 주자는 명명덕(明明德)과 신민(新民)을 이루고 이 둘이 천하의 극치인 지선(至善)의 경지에 머물도록 하는 것을 지어지선(止於至善)이라 말한다. 이에 대해 다산은 위정자가 효제자(孝悌慈)의 덕을 실천하여 백성들이 저절로 그를 따라 효제자(孝悌慈)를 실천하여 지극한 선에 이르는 것을 지어지선(止於至善)이라 한다.명명덕(明明德)과,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을 주자는 삼강령(三綱領)으로 하였으나 다산은 위와 같은 주장을 바탕으로 하여 주자의 삼강령(三綱領)에 대해 명덕을 강(綱)으로 하고 효제자(孝悌慈)를 삼목(三目)으로 하는 일강삼목설(一綱三目說)을 주장하기에 이른다.주자는 팔조목(八條目)으로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든다. 주자의 성리학적 논리체계는 격물치지(格物致知補傳)에 잘 드러나 있다. 격물치지보전(格物致知補傳)에 의하면 물(勿)이란 인사(人事)와 자연(自然)을 포함하는 천하만물을 말하며, 격물(格物)이란 사물이 당연히 그렇게 있어야할 법칙 내지 조리와 사물이 왜 그렇게 있지 않으면 안 되는가의 이유 내지 근거를 궁구하는 것당연의 조리 내지 법칙을 발견하는 일이며, 그로부터 지선(至善)의 원리를 추구하는데 이르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다산은 팔조목(八條目)에 대하여 의(意), 심(心), 신(身), 가(家), 국(國), 천하(天下)를 물(勿)로 성(誠), 정(正), 수(修), 제(齊), 치(治), 평(平)을 사(事)로 보았으며, 이 육물(六物)의 본말(本末)과 육사(六事)의 종시(終始)를 도량(度量)하는 것을 격물(格物)이라 하고, 본(本)과 시(始)를 먼저 하고 말(末)과 종(終)을 뒤에 할 줄 아는 것을 치지(致知)라고 하였다. 또한 이 격물치지(格物致知)는 명명덕(明明德)이나 친민(親民)의 조목이 될 수 없으며 성의(誠意)이하의 육조목(八條目)을 총괄한다고 하여 결론적으로 육조목(八條目)을 주장한다.주자는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6개 조목에 대하여 단계적으로 서술하는데, 그에 의하면 성의(誠意)는 스스로 속임이 없음이요, 이로 격물치지(格物致知)에 의하여 지선(至善)의 원리를 알고 선악(善惡)을 변별하여 호선오악(好善惡惡)하는 신독공부(愼獨工夫)라 한다. 또 성의(誠意)는 정심(正心)하는 기본이 되며 정심(正心)함으로써 수신(修身)의 사(事)가 이루어진다고 하고, 이 수신(修身)의 일은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서, 즉 자기의 명덕(明德)을 밝히는 수신(修身)에 의하여 제가(齊家)할 수 있고, 자기의 진심을 미루어 남에게 비푸는 계구지도(契矩之道)를 행함으로써 치국(治國)하고, 이와 같이 하여 치국(治國)하는 일이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기틀이 된다는 것이다.다산은 대학(大學)의 조목은 효제자(孝悌慈)일 뿐이며 성의(誠意)나 정심(正心)은 성의(誠意)에서 전해 내려오는 비결이지 교육의 조목은 아니라고 말하며, 육물(六物)에는 본말(本末)이 육사(六事)에는 종시(終始)가 있을 뿐이니 육물(六物)의 본말(本末)과 육사(六事)의 종시(終始)를 가려 오륜(五倫)을 실쳔하는 것이 성평천하(平天下), 명명덕(明明德),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에 이르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성의(誠意)과 정심(正心)은 일상생활에서의 인륜의 실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천윤리학적 입장을 뚜렷이 한다. 결론적으로 대학(大學)에 대한 이 둘간의 차이는 사뭇 다른 상황과 입장에서 성리학적 경학과 실학적 경학의 차이라고 압축하여 말할 수 있다.2. 중용(中庸)에 대한 주자와 다산의 견해차이주자에 있어서 우주만유의 근원인 태극은 곧 이(理)로 대치된다. 그러므로 그에 있어서 천명은 곧 궁극덕인 태극의 이(理)로 파악되고, 천(天)이 화생만물(化生萬物)한다는 것은 곧 천리(天理)의 유행(流行)을 가리킨다. 따라서 주자에 있어서 천명(天命)의 명(命)은 명령하는 것과 같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곧 이법(理法)으로서의 천(天), 즉 형이상학적 존재자로서의 천리의 유행(流行)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이 천리의 체득은 주자의 소위 생생지리(生生之理)의 직각적 체득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산은 천(天)이 사람에게 생명을 점지해 준 당초부터 이 천명이 있고, 또 살아가는 날에 시시각각으로 끊임없이 이 천명이 있다고 한다. 다산에 있어 천명(天命)은 상제(上帝)가 나에게 타일러 주는 계명(誡命)이요 그것은 도심에 깃들어 있는 것으로서 상제(上帝)가 타이르는 소리를 듣는 것 곧 도심이 일러주는 것을 들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산에 있어서 천(天)은 명령자로서 항상 우리 곁에 우리를 굽어 살펴보고 있고, 그러한 천명(天命)은 곧 도심이 나에게 일러주는 소리이므로 그것은 우리들의 윤리적 행위의 감시자요 심판자로서 있게 된다.주자는 태극 본연의 이(理)에서 보면 인간과 만물의 성(性)은 천부(天賦)의 동일한 이(理)이며, 인간과 만물에 다름이 있는 것은 형체를 이루는 기(氣)의 정편(正偏)과 통새(通塞)에 의한 것이요, 또 기의 청탁(淸濁)에 따라 범인과 성인의 구별이 있다고 하였다. 또 인성에는 순수한 이(理)의 측면만을 의미하는 본연지성과 기질의 청탁에 따라 차이가 생시 말하면 그는 인간을 동물성과 도의성의 양면을 지닌 존재로 파악하고, 인간의 존재조건은 다른 동물과 달리 영지(靈知)의 기호(嗜好)인 도의성을 갖는 데 있다고 본 것이다. 이 도의성의 기호(嗜好)야말로 다산이 말한 인간의 착한 본성을 이룬다.이와 같은 주자와 다산의 성명관(性命觀)에 있어서 차이는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에 대한 두 구절에 대해 각기 다른 해석을 하게 한다.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에 대하여 주자는 인간과 만물이 천부된 본성의 자연에 따르는 것이 솔성(率性)이요, 본성의 자연 그대로에 따르는 것이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길(道)로서 만물이 각기 그에게 주어진 이(理)인 본성 그대로에 따르는 것, 그것이 곧 만물의 도(道)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산은 천명(天命)의 소위를 의심치 않고 영명무형(靈明無形)한 도심의 경고에 따라 일생동안 쉼이 없이 가야 할 길이 곧 인간의 갈 길이라고 한다.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에 대하여 주자는 인간과 만물이 타고난 각기 다른 기질(氣質)의 차이를 천리(天理)에 의해 조절 또는 제재하여 본성의 자연에 따르도록 하는 것을 교(敎)라고 한다. 그러나 다산은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에 대하여, 수(修)란 천리 본연의 성에 맞추어 품절(品節)하거나 제재함이 아니라 도로를 관장한 한 벼슬아치가 도로를 닦아주어 행인으로 하여금 행방을 잃지 않고 갈 수 있게 해주는 일과 같은 것으로, 다산에 있어서 그와 같은 교(敎)란 인간으로 하여금 상제(上帝)의 계명(誡命)의 도심의 소리에 따른 인륜을 실천케 하는 인간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다산에 있어서는 인륜 도덕의 실천을 떠난 교(敎)란 성립될 수 없다.주자는 군자중용절주(君子中庸節住)에서, 중용(中庸)이란 치우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으며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일상적인 도리라고 말한다. 다산은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옳지만 용(庸)을 평상(平常)으로 풀이함으로서 중용(中庸)을 통속적인 일상의 도리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자산에 있어 중용(中.
생활의 때가 묻어나는 곳, 광주민속박물관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불과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광주민속박물관을 찾아가는 길은 생각처럼 쉽지 아니하였다. 만일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서 출발하긴 하였으나, 가까운 길도 자주 다녀보던 길을 잘 아는 법, 박물관에 이르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매게 된 것은 평소 이 방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였던 게으름을 탓할 일이다. 겨우 찾아간 광주민속박물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나를 압도해 온 것은 입구 전편에 2층 높이에 이르는 크기로 설치된 고싸움놀이 동판이었다. 실제 칠석동 고싸움놀이축제에도 가보았으며 영상물을 통해 접해보기도 하였지만 광주민속박물관 중앙에 이러한 조형물이 기세등등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고싸움놀이가 이 지방 민속문화에 있어 얼마나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전시실은 2층으로 되어있으며 1층은 물질문화전시실, 2층은 정신문화전시실로, 1층 우편에 입구로 입장하여 2층 좌편에 출구로 퇴장하게 되어있다. 입당을 하려는데 전시실 입구 옆에 예전에는 금남로 4가에 있었다던 실버들나무 밑둥 부분이 잠시 시선을 끌었다. 비록 개발에 밀리어 지금은 줄기는 잘리어나간 채 밑둥 부분만이 가공되어 옮기어 왔지만, 그 크기나 기세에 있어 한때는 큰 마을의 당산나무로서의 역할을 든든히 하였으리라. 안정되고 둔중한 자세로 앉아있는 이 실버들나무 밑둥은 개발과 편의 논리에 젖어있는 현대 사람들에게 민속문화에 대해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뭇 재촉과 경각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 하였다.걸음을 옮기어 물질문화전시실에 들어서자 마을 어귀를 재현한 모형에 어린 아이와 어머니, 그리고 개 한 마리가 장승, 당산나무, 솟대와 함께 우리를 맞이하여 주었다. 물질문화전시실은 의식주관련 생업관련 전시실로 되어있다.먼저 의식주 관련 전시실중 주생활 편에는 일단, 집의 종류로 어촌지역의 어촌 4간집으로부터 산촌의 너와집, 농가의 초가 3간·4간집, 양반가의 기와 4간·5간집, 그리고 사대부가의 운조루에 이르배쌈지, 부시, 양반가에서만 드물게 볼 수 있었다는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자리인 인모보름, 여름에 동이나 팔목에 땀이 차지 않게 통풍이 되도록 하는 등거리와 토시, 조명구로 등잔걸이, 등잔대, 사방등, 초롱, 촛대, 청화백자, 등잔, 계등, 청사초롱, 기타전시물로 요강, 가마타면서 쓰던 작은 요강, 화로, 풍안집(안경집) 등이 있었다.※ 참고사진{{{{{(담배함) (너와집) (반닫이) (풍안집) (뒤주)식생활 편에 이르자 갖가지 밥, 죽, 국, 나물, 김치, 떡, 고기구이, 찜, 탕, 젓갈의 모형을 통해 우리네 전통음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인스턴트 식품에 익숙해져있는 현대인들의 영양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이렇게도 푸짐한 전통 상차림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식생활 도구로는 싸리나무로 짜서 만든 듯한 도시락과 도시락집, 유기주발, 백자발, 백자대접, 청자대접, 청동합과대접 등의 그릇, 백동·청동제 수저, 술병, 찬합, 표주박, 솥, 신선로, 찬합, 냄비, 다기, 떡의 문양을 낼 때 쓰는 떡살, 과자의 문양을 낼 때 쓰는 다식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식생활 도구를 살펴볼 수 있었다. 전통적인 부엌의 모습을 재연한 모형에서는 장독대와 절구, 멧돌, 국수틀, 기름틀을 볼 수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귀한 물품들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찾아보기가 그리 수월하지 아니한 절구가 수십만원에 이른다던 이야기가 언뜻 머리를 스쳤다.※ 참고사진{{{{{(찜) (신선로) (절구) (표주박) (다기)의생활 편에서는 먼저 배짜는 모습을 재현하고 있었는데 안내문을 보니 길쌈하는 모습이라고 적혀있었다. 길쌈이라는 용어는 적지 않게 들어왔으나, 그동안 길쌈이란 새끼꼬기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일순간 깨어버리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이 틀린 말뜻으로 알고있거나 우리 것임에도 생소한 어휘들이 박물관을 돌면서 적지 아니하였던 것은 국어국문학도로써 마땅히 반성의 자세를 가져야만할 일이다. 길쌈을 하는 모형 옆으로는 삼베와 무명, 모시, 명주의 네 갖가지 신발로는 짚신, 미투리, 나막신, 갖신, 꽃신, 운혜, 진신, 가죽신, 태사혜가 있었다. 어느 하나도 전에 쓰던 물품이 아닌 것이 없었음에, 세월에 낡은 모습들이 이를 쓰던 사람들의 검소함에서 베어나는 손때를 찾아볼 수 있게 하였다. 의생활편에 추가적인 전시물로 화장구와 장신구가 전시되어있었는데 갖가지 빗과 거울, 비녀, 가락지, 장도, 유병, 주머니, 폐물함, 경대, 빗집, 동경 등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주목을 끈 것은 정조라는 전통 여성관을 전하는 듯한 장도였다.※ 참고사진{{{{{(초립) (태사혜) (족두리) (골무) (마고자)물질문화 전시실에 생업관은 크게 농업, 어업(염전), 사냥과 채집, 공예(나무·자리공예, 죽세공예, 옹기공예, 자수공예, 도자공예)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먼저 농업관은 헛간을 재현한 모형을 통해 농업관련 도구를 보여준다. 헛간에 있었던 농업관련 도구들로 새끼를 말아두는 새끼틀, 짚으로 만든 낫걸이, 벌통, 덕석, 덕석걸이 등이 있었다. 현대로 말하자면 창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 헛간이라고 할 수 있으나, 몇몇 도구들의 배치가 창고의 역할을 넘어서서 작업까지도 가능하게 한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또 농업관에는 음력에 따른 월별로 해야하는 농사일을 보여주는 농사달력이 있었으며, 이의 실례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철에 하는 농삿일 모형과 관련 도구를 전시하고 있었다. 먼저 봄철에 하는 농사일로 소를 몰며 밭을 가는 모형이 있었으며, 관련 도구들로 화가래, 때비, 가래, 뒤웅박, 씨앗통, 씨앗망태, 소쿠리, 곰방메, 밭고무레, 괭이, 쇠스랑, 써래, 뜰잠 등이 있었다. 여름철에 하는 농사일로 논에 물을 퍼올리는 용두레질을 하는 모형이 있었으며, 관련도구들로 소매장군, 맞두레, 귀때동이, 똥바가지, 새갓통, 홈통(가운데 홈이 파인 수로의 역할을 하는 통나무), 용두레, 가레, 제초기, 지게, 모틀, 멸구약뿌리게, 살포(살보) 등이 있었다. 가을철에 하는 농사일로 개상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벼의 낫알을 려면 이제는 민속이 생활이 아닌 학문의 지식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참고사진{{{{{(쇠스랑) (홈통) (용두레) (써래질) (지게)다음으로 어업관에서 눈에 띄인 것은 뜰망배의 모형이었는데, 이 배는 맨 앞에 대나무를 십자형으로 매어 이 대나무의 끝부분에 뜰망을 연결하여 물고기를 채취하는 것이었다. 어업달력에는 음력별로 잡히는 어류와 해초류, 폐류와 또 그에 사용되는 어구(漁具)를 제시하고 있었다. 어업에 사용된 도구로서 전시물로는 쭈꾸미단지, 문어단지, 문어낚시, 웅뎅이, 김을 만드는 도구(김칼, 김도마, 김틀), 낙지주낚, 게두갈퀴, 석화집게, 낙지가래, 조새, 서게, 장어갈퀴, 장어주낚바퀴, 고막갈퀴, 피조개갈퀴 등이 있었다. 어업관에는 추가로 염전이 있었는데 이 곳에는 기증자료로 물레, 비중계, 소금칼, 물고망치, 물고, 물바가지, 다구, 대패 등이 있었다.사냥과 채집관에는 거도(나무를 베는 큰 톱), 심마니곡괭이, 꿩치(꿩잡는 덫), 벽체, 뱅집게, 복령꼬챙이, 썰매, 갈구시창, 창, 쌍발창, 족제비덫, 찰코, 강천어구(대벽수, 피리통, 작살, 가리, 쪽대, 새우조리, 투망) 등이 동물을 사냥하는 모형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공예관중에서 나무·자리공예편에는 먼저 나무공예품으로 이릉농, 밥상(변상, 나루반), 벼루집, 목칠병, 그리고 자리공예품으로 용문석(왕골껍질로 만든 자리)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죽세공예편에는 죽세공예품으로 문발, 죽부인, 피죽상자, 대고리, 낙죽, 대나무에 인두를 지져서 만든 그림, 채상(혼수나 옷을 담는 상자), 참빗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옹기공예편에는 목욕탕, 큰독, 옹베기, 시루, 널벅지(쌀을 담그거나 배추 등을 간할 때 사용하는 도구), 장군, 앵병, 술병, 지사독, 소라, 물동이, 거불물병, 식혜단지, 연가 등이 전시되어있었다. 옹기공예편에 추가로 와당편에는 수(壽), 수부다남(壽夫多男), 천순오년(天順五年) 등의 글자를 새긴 와당과 명와가 전시되어 있었다. 자수공예관에는 베겟수, 흉배(관복의 배부분에 대이는 수는 볏짚과 태항아리(태를 담는 항아리), 쌀, 실, 미역을 차린 삼신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린시절 편에는 3·7일 즉 21일을 지낸 기념으로 세는 새이레상을 전시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쌀과 팥떡, 미역국을 차린 비교적 간소한 차림임을 살펴볼 수 있었다. 돌상에는 여기에 나물이나 과일 대추 등이 추가되어 더욱 푸짐한 상차림을 보이는 것과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후기할 바이지만 혼례나 환갑잔치의 의례에 차리는 상은 이보다 더욱 푸짐하였던 것에 시간관에 따른 상차림의 내용을 염두에 둘만한 듯하다. 어린 시절의 옷차림으로 아기 색동 저고리, 아기 두루마기, 두롱치마, 배자, 배내옷, 기저귀, 타래버선, 풍차바지, 아기남바위, 굴레 등을, 놀이도구로 제기, 팽이, 도롱태(굴렁쇠), 눈썰매, 얼음썰매, 고누(호박고누, 강고누, 자전차고누), 대차, 동차, 제비연과 연자세 등을 놀이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놀이 모습을 담은 사진은 도롱태굴리기, 죽마타기, 짱치기, 연날리기, 제기차기, 공기놀이, 팽이치기, 소꼽장난을 하는 모습을 담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에 몇몇 즐거이 즐긴 추억이 있음에 향수를 자아내게 하였다. 또한 풀각시놀이를 재연하는 모형에서는 말로만 듣던 풀각시를 대할수 있었는데 생각보다도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음을 직접대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교육과 벼슬 편에서는 서당에서 교육을 받는 모습을 모형으로 재연하고 있었으며, 교육자의 엄중함과 피교육자의 진지함이 느껴져왔다. 문방구 또한 전시하고 있었는데, 전시물로는 연상, 벼루, 벼루집, 휴대용 벼루, 먹물통(자기나 쇠), 연적, 죽침, 경서통, 필통, 지통, 필가, 서류집, 서류함, 책함, 분판 등이 그것이다. 특히 문방구 위로는 조선시대에 퇴계 이황선생이 성리학의 원리를 도표화하여 선조대왕께 바쳤던 진성학십차병도(進聖學十箚幷圖)가 걸려 있는데, 유심히 살펴본 바 성리학의 일반원리와 의식을 어린 선조임금이 이해하기 쉽도록 도식화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였다. 또한 과거제도에 관련 물품으로 과거 답었다.
안락사 허용 반대의 입장에서 논거와 자료서론 (논지 제기와 전개 방향 제시)30여년 동안 X-ray에 관해서 연구해 온 어떤 물리학자가 피부암으로 심하게 고통을 받고 있다. 그는 이미 코와 입술 그리고 왼손을 잃어버렸고 오른 손가락 두 개를 절단했다. 그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담당의사에 의하면 몇 년 밖에 더 살지 못할 환자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단지 끊임없는 고통과 수술뿐이라고 한다. 그 환자는 자신의 동생에게 생명을 끊어달라고 애원했다. 결국 그의 동생이 술을 마신 후 권총으로 자기 형을 쏘아 죽였다. 이 환자와 그 동생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있는가, 아니면 정당화될 수 없는가? 정당화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또 정당화될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이러한 문제는 언뜻 우리에게는 요원한 일로 사려될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나에게 또는 나의 주위의 사람들에게 닥칠 수 있는 문제이다. 설혹 그에까지 다다르지 아니하더라도 낙태나 인간복제의 허용여부 문제와도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생명존엄성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음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임에 틀림없다.본고에서는 안락사의 개념에 관하여는 익히 알려져 있는 바 생략하면서, 오히려 안락사의 종류를 들어가며 범주로서의 개념에 접근하고, 또한 각각의 안락사의 종류에 따른 문제점을 짚어본 후, 안락사의 허용에 찬성하는 견해의 근거를 들고 각각에 대한 나의 반론을 들어가면서 안락사의 허용에 반대하는 나의 주장을 펼쳐보고자 한다.본론Ⅰ (안락사의 종류에 따른 의견)안락사의 종류에는 일반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기준에 의하면, 생명체의 의사에 따라 자의적 안락사와 임의적 안락사, 타의적 안락사로, 시행자의 행위에 따라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 간접적 안락사로, 생명의 윤리성에 따라 자비적 안락사와 존엄적 안락사, 도태적 안락사로 구분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먼저 자의적 안락사는 생명주체의 자발적 의사에 따르는 안락사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 다시 두 경우로 구분할 수 잇다. 즉 어떤 생명주체의 명령, 의뢰 또는 신청 등의 적극적 요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의뢰적 안락사라고 하며,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나 안락사를 승낙하여 이루어지는 경우, 즉 적극적인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 의사에 의한 경우를 승인적 안락사라고 한다. 이 두 가지의 경우에 대해 먼저 의뢰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경우는 마치 자살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는 생명경시와 직결되어 누구든 자신의 목숨이나 나아가 타인의 목숨을 경시하는 태도를 몰고 오게 될 소지가 있음에 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승인적 안락사의 경우 대부분 안락사 직전에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 식물인간이나 그와 비슷한 수준의, 즉 자신의 의사를 바르게 판단 내리거나 제대로 표현하여 전달할 수 없음에 안락사를 시행하는 자의 의사에 따른 협박이나 강요의 차원에까지 이를 수 있는 소지를 지녔음에 또한 크나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임의적 안락사란 위의 승인적 안락사에서 거론된 바와 같이 생명주체가 의사를 표시할 수 없거나 그 표현이 불가능한 경우, 또는 가능하다 할지라도 외부에서 이를 이해할 수 없을 때, 즉 표현되고 있으나 시행자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을 때 이러한 상황에서 시행되는 것을 말하며, 이 경우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생명주체의 의사를 확인하자 않고 시행한다는 점에서 살인행위다.그리고 타의적 안락사의 경우 임의적 안락사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한 것이 생명주체가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에 반대하여 시행자가 실시하는 것임에 이미 살인행위를 넘어서서 특수살인이라고 표현할 만도 하겠다.시행자의 행위에 따라 분류되는 안락사의 종류 중, 소극적 안락사란 생명체가 어떤 원인으로 죽음의 과정에 들어선 것이 확실할 때, 시행자가 그 진행을 일시적으로나마 저지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하는 것으로 일명 부작위적 안락사라고도 한다. 이 경우는 현재 안락사의 허용이 법적으로도 인정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병원에서 죽게 할 수는 없다. 는 식으로 퇴원시키는 방법으로 암암리에 시행되고 잇는 방식인데, 이러한 경우에 과연 의사는 최선을 다했던가, 진정 죽음에 이르고 잇다는 판명이 가능한 객관적인 기준은 설립되어 있는가, 그리고 퇴원을 방관하는 의사의 직업윤리에도 주장의 한계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간접적 안락사란 어떤 일정한 현실적 변화를 목표로 한 자기의 의도적 행위가 결과적으로 죽음을 초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행하여 죽음이 야기되는 것으로 일명 결과적 안락사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잇다. 이 간접적 안락사의 경우 뒤따라 언급하게 될 적극적 안락사와 다를 바라 없다고 본다. 말하자면, 살인자가 칼을 손에 쥐고 직접 찌르는 것과 칼을 던져서 살인이 이루어지는 경우와도 같이, 행위는 분명 이루어 졌을 뿐, 그 결과가 나타나는 시간상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여진다.적극적 안락사란 행위자가 어떤 생명 주체의 죽음을 단축시킬 것을 처음부터 목적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며 작위적 안락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적극적 안락사와 간접적 안락사를 묶어서 이야기하자면, 의학이란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발전하여 왔음에 오히려 그 한계를 인정하고 죽임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는, 스스로 도태하는 행위가 아닌가 한다.생존의 윤리성에 따라 나뉘어지는 안락사의 종류 중, 자비적 안락사란, 인내하기 힘든 고통이 진정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 이러한 육체적 고통을 지닌 인간생명은 무의미한 존재이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반(反)고통사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자비적 안락사의 경우, 과연 인간 생존의 가치를 고통의 유무에 둘 수 있느냐는 근원적인 물음에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즉, 고통이 있든 없든 살아있음에, 보거나 숨쉴 수 있음에 그 즐거움과 가치를 느끼는 생명은 많고도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안락사를 인정하게 되는 경우 병으로의 고통만이 아닌 생활에서 실연이나 가난 따위의 고통도 충분히 죽음에 이르는 원인으로 인정되어 버리게 되는 오류가 발생한다.존엄적 안락사란 비이성적인 인간생명은 무의미한 생존이기 때문에 이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의식이 없어 정신적인 활동이 전혀 불가능한 산송장 으로서의 인간은 그 생존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인격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단축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과연 뇌사된 인간을 산 사람으로 볼 것이냐 죽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 즉 인간 죽음의 경계를 어디까지를 기준으로 할 것이냐는 문제의식과도 결부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관한 나의 견해를 들자면, 비록 인간의 상상력에서 태어난 것이기는 하나 인간에게 실체로는 증명할 수 없으나 신(神)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듯이, 그 누구도 뇌가 죽어 의식이 없음에 혼(魂)또한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과학으로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 아직 많음에도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양 섣불리 못 박아버리어 혼을 죽이게 되는 경우는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언제나 발전이 있기에는 열린 가능성이 뒷받침 되어왔음을 잊어서는 아니 될 일이다.마지막으로 도태적 안락사란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과 일정한 연대성을 지니고 생활하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다. 어떤 생명체가 때로는 질병이나 사고로 심신이 상태가 극도로 약화되어 공동체가 많은 부담이 되며, 그 희생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즉 이렇게 공동체에 큰 부담이 되는 생명주체는 생존의 의미가 없다고 거부되는 것이다. 쓸모 없는 존재로서의 생명주체의 배제는 공동체의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강화의 방향에서 나오게 된 이론으로 도태사라고 하기도 하고 일명 포기적 안락사라고 하기도 한다. 도태적 안락사의 경우, 과연 개인이 사회에 우선하느냐 아니면 사회의 이익에 개인이 우선하느냐의 문제의식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본인의 경우 전적으로 전자에 손을 들게 되는 것이, 사회는 무엇으로부터 근원하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보면 단연 그 답은 하나일 수밖에 없음이다. 사회가 개인의 생존을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는 못할 망정 되려 죽음을 강제하는 것은 사회 개념 자체의 뿌리를 흔들리게 한다고 할 수 있다.본론Ⅱ(안락사 허용 찬성주장에 따른 의견)일반적으로 안락사는 의료비관론자들에 의해서 지지되고 있다. 생이 치명적인 불치병으로 양질의 삶을 영위할 수 없을 때는 고통 없이 죽도록 해주는 것이 합리적이고 자비로운 행위라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생명의 본질적 가치를 부정하면서 인간생명은 그 자체를 위해서 마땅히 보존되어야 할 절대가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생명은 인간적 실존을 위한, 그리고 안락하고 행복한 인간적인 양질의 삶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에만 보존될 가치가 있는 상대적 가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결함이나, 치유한다 해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한 생명은 더 이상 보존될 가치가 없는 생명이다. 이러한 생명은 인간생명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무가치한 생명이요, 생존자격을 상실한 무의미한 생존이기 때문에 그의 생명과 생존은 더 이상 보존되거나 연장되어서는 안되고 마땅히 중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무가치한 생명, 무의미한 생존개념을 통해서 인간의 안락사를 정당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