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유난히도 재현 적 미술에 매력을 느끼고, 그 기술에만 집착했던 고등학생시절의 미술사시간, 나는 매너리즘 미술을 처음 접했다. 책의 하단에 실린 엘 그레코의 『요한 묵시록의 다섯 번째 봉인의 개봉』을 본 나의 충격은 너무나 컸다. 그 기괴한 형태와 어두운 색채는 이전의 미술들과 너무나 달랐으며, 미대에 진학하기 위하여 내가 지금까지 계속 그려왔던 그림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색조와 형태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내가 그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미학적 관점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었다. 내가 싫어하는 탁한 색들의 조합, 음울한 분위기 제멋대로 늘어진 형태들, 이러한 것들이 혼합되어 어지러움이 밀려왔으며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이 작품의 이미지가 머릿속을 맴돌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또한 그 때 어렴풋이 이런 고민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작품이 과연 미술사 책에 실릴만한 작품일까?’ 라고... 그리고 이제는 미대생이 되어 가끔씩 미술사 책에서 다시금 접하게 된 여러 매너리즘의 작품들은 여전히 불쾌하기는 하나, 묘한 매력으로 나에게 다시 다가온다. 그리고 이제는 점차 매너리즘 미술의 의의가 무엇인지, 어떤 것이 그렇게 나에게 매력으로 다가왔는지 이제는 조금씩 깨달아 가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기회에 매너리즘작품에 대하여 수업시간에 배운 전 도상학적기술과 도상학을 이용하여 분석해 보고, 르네상스회화와 비교해보며, 내 개인적인 의견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2. 매너리즘과 ‘엘 그레코’르네상스에서의 예술은 너무나 완벽하고 조화로워 보인다. 그 중 회화는 그 완성의 정점에 달했다. 색조나 분위기들도 모두 잘 맞아 떨어지고 보는 이의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 그 화려한 색을 다루는 기술이나 신체의 비례, 역동적인 동세의 표현, 표정의 처리 등 이미 기술적인 면은 극에 다달아 보인다. 그러나 너무 아름답고 완벽한 것은 그만큼 질리기 십상이다. 색이나 조형적으로 흠 잡을 곳 없이 완벽한 중국의 도자기보다, 우리나라의 백자나 엉성한 질그릇이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정감이 가는 것처럼 말이다. 르네상스의 회화의 경향이 너무나 익숙해져 예술적 감흥을 일이키지 못하게 되자, 일부 작가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다. 조화와 이성, 현실성을 대신하여 부조화와 감성, 상상력을 발휘하여 독창적 작품을 만들고, 자연관찰에 기초한 사실주의 양식을 버렸다. 자신의 감정을 담아 색조를 표현하고 형태를 어그러트린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작가 중 한명이 ‘엘 그레코’ 이다. 여느 화가들 보다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그는, 전문적인 훈련이나 회화의 중심지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에 중세시대 영향과 틴토렌토 회화에서 받은 깊은 감동을 자신의 작품 속으로 흡수 시킬 수 있었다.) 엘 그레코는 르네상스의 형식주의를 파괴하고, 충격과 극적 효과를 쫓아 무형식, 무정형, 불균형, 부조화를 하나의 양식으로 추구한 매너리즘 작가이다. 나는 매너리즘의 그림들을 다수 접하다보면 서로 비슷비슷해 보인다고 느끼는데, 강약의 대비와 무너지는 비례, 많은 곡선의 사용 ,아름다운 색채의 포기 등의 일정한 규범의 양식을 가지고 그려졌기 때문인 것 같다.그림 1 엘 그레코 「Baptism of Christ」‘엘 그레코’의 작품『Baptism of Christ』 을 감상해 보면, 혼란스럽고 번잡해 보이는 그 그림이 전체적으로 세로로 길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해 낼 수가 있다. 그 하단은 인간의 세상, 상단은 천상의 세계, 그 중간에는 천사들이 인간의 세상과 천상세계를 연결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세로로 긴 작품을 제작한 것은 이런 종교화에서 극적인 장면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구도라고 생각한다. 왼쪽 하단에 있는 사람이 예수이며 그 오른쪽은 세례자 요한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위쪽 하늘에는 하나님이 편안한 웃음을 띠우며, 설교를 한다는 상징인 한손을 든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위에 있는 여러 천사들에게 예수가 앞으로 할 일과, 그의 중요성에대한 설명을 하는 것 같다. 그의 표정은 르네상스에 비하여 훨씬 인간적으로 표현되어 친근함을 느껴지며, 인자한 옆집 할아버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그의 주위의 후광이 주변의 어두운 색과는 대조되어 유난히 그가 온화하고 따뜻하게 보이게 한다. 또한 예수의 뒤쪽에는 빨간색 천이 둘러져 있어 주변의 어두운색과 비교하여 예수가 강조되도록 만든다. 전체적인 형태들이 세로로 배치되어 있으며, 그 근육과 형태들이 곡선을 띄고 있어 위를 향해 달려 올라가는 듯 한 느낌을 주며 율동감을 느끼게 한다. 예수의 앞에는 메모지 같은 것이 떨어져 있는데, 하나님이 예수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추측된다. 이 그림과 관련된 성경의 구절을 찾아보자면,[요한복음1: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마르코복음1:10]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 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구절로 보아 예수 위의 비둘기는 하나님이 내려 보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마태오복음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라는 구절을 미루어 생각해 볼 때 예수가 서있는 바위 아래가 물인 것을 알 수 있으며, 이 극적인 장면을 설명해주기에 충분하다. 르네상스 그림과 비교해 볼 때 훨씬 격정적이며 강약의 대비가 극적인 것을 볼 수 있다. 거친 강약의 대비와 거친 터치들은 그림의 공간이 살아 움직이는 듯 보이며 훨씬 보는 이에게 그 느낌을 강렬하게 전달해 준다. 마치 내 앞에서 예수가 실제로 세례를 받고 있는 양, 영화의 한 장면처럼 격정적이고 감동적으로 이 장면은 내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매너리즘 작품은 대칭이 무너져 있으나, 이 작품은 비교적 좌우대칭 구도를 보여준다. 전체적 색채는 매우 어두우며, 녹색? 밝은 노랑 ? 빨간색등 원색이 많이 사용되었고, 근원을 알 수 없는 빛이 여러 부분에서 나타난다. 이는 어두운 부분이 더 어둡게 보이게 하며, 색 대비효과를 증진시키고, 전체적 분위기를 음산하게 보이는데 한몫을 하는 것 같다. 또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중요한 부분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도 지녔다. 전체적으로 음산한 빛과 불안정한 색조가 나를 긴장시키고 흥분된 감정을 고무시킨다. 자연적인 형태나 색채를 대담하게 무시하면서, 감동적이고 극적인 상황을 창조하고 있고, 또한 가시적이고 감정적인세계가 혼합되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을 보고 있자면 약간 숨이 가빠지기도 하면서, 거친 느낌을 나에게 주지만, 이 작품 나름대로의 묘한 매력이 있어 마음이 혼란스러운 때에 자꾸만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