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ossover[krsouv | krs-]n.1 (입체) 교차로, 육교; 【생물】 = crossING-over2 《영》 【철도】 전철선로(轉轍線路)3 【음악】 크로스오버 ((재즈에 록라틴음악이 섞인 형태))4 《미》 【정치】 지지자를 바꾼 투표자5 (연관공사에서) U자관(管)a. 위기의, 분기점의, 교차점의 < 처음에 cross-over 라는 의미가 어느 정도 짐작은 같지만 확실한 의미를 알기 위해 사전을 들추었다. 재즈에 록 라틴 음악이 섞인 형태. 하지만 이번엔 국악과 Jazz의 만남이었다. >국악에 있어 나의 생소함이란 클래식보다 더한 것이었다. 그나마 클래식이야 있는 사람들 또는 많이 배운 사람들의 공유물이라 그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감이나 있었지만 국악이란 음악장르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것을 위해 할여할 공간조차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내 나이 25살. TV에서 국악공연이라도 한다고 싶으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리모콘을 누르며 채널을 바꾸기 일쑤였다. 그런 의미에 있어 이번 공연은 나 같은 사람들. 국악을 끔찍하리만치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 아닐 수가 없었다.처음 신촌에 있는 문 글로우 (Moonglow)라는 Jazz Bar에 들어섰을 때 나이 많이 드신 분들이 많이 계셨다. 여기서 나이 많으신 분 이라함은 우리 부모님세대들이셨다. 물론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저 나이에 Jazz Bar를.......... 우리는 무대가 한눈에 보이는 자리에 앉아 Jazz Bar에 어울릴법한 칵테일을 시키려고 했지만 웨이터의 적극적인 만류로 생맥주와 모둠 소시지를 시켰다. 공연이 시작된 후 우리는 맥주잔에 맥주를 부어보지도 못한 채 음악에 심취되고 말았다. Piano, 콘트라베이스, 소금... 물론 피아노 빼고는 나에게 있어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악기였다. 소금 또한 그러했다. 대금이란 것은 초등학교 시절 얼핏 들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소금이란 게 대금보다 작은 악기, 음률이 대금보다 덜 둔탁하다고 해야 하나? 참 표현하기 어려운 악기임에는 틀림없다.잘 알지도 모르는 이 세 개의 악기가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 것은 “Over The Rainbow"와 함께 시작되면서부터였다. Jazz 라는 음악 장르에서 이 음악을 빼면 국악에서 아리랑이 없는 것 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소금 이 세 개의 악기가 조화를 이룸을 지켜볼 때의 그 마음이란 가슴한구석에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흥 그 자체였다. 처음 음악이 시작될 때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가 주를 이루는 듯 했지만 소금의 연주가 들어가자 사람들은 탄성을 자아냈다.다음 곡은 "Summer time" 앞에 연주되었던 ”Over The Rainbow " 보다는 음악적 색깔이 한숨 섞인 울부짖음 같았다. 여기서는 음악 전반에 깔리는 암울함, 지침, 회의는 평소에 "Summer time" 이란 곡을 들어보지는 못했고 물론 원곡의 가사도 모르지만, 귀와 가슴으로 느낀 "Summer time" 곡은 두 글자로 암울 그 자체였다. 여기서는 소금에서 나왔던 산뜻하고 희망적인 음률이 아닌 둔탁하고 칼칼한 소리가 큰대나무에서 질러 나왔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턱에 손을 괴고 멍하니 무대를 응시할 뿐 이었다. 나 또한 그때까지 술잔에 술을 따를 겨를이 없을 정도로 심취되어 있었다. 그때까지는 이것은 Jazz처럼 흑인 빈민가 사람들이 애환을 담은 노래도 아니었고, 국악처럼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은 음악도 아니었다. 국악기로 인해 서양음악의 Jazz라는 장르도 우리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설 수 있고 국악 또한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은 음악 장르이지만 우리에게 다가설 수 있고, Jazz처럼 외국에도 소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주옥같은 두곡이 연주되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중압감을 감출 수 가 없었다. 명색이 “국악의 이해” 리포트인데. 국악은커녕 외국곡만 연주 되는 게 아닌가? 연주가 끝난 후 20분 동안 쉬는 시간동안 우리는 술잔에 술을 가득 담을 수 있었다. 술잔이 기울여지는 동안 우리는 음악평론가인 양, “연주 죽이지 않았냐????” 이 말만 연발하고 있었다. 우리가 술에 목구멍을 적셨을 때 중압감이 사라짐을 느낄 수 가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았지만, 국악임에는 틀림없지만 곡명은 집에 와서 “뱃노래”임을 알 수 있었다. 뱃노래가 뱃사람들이 고기를 잡으며 흥에 겨워 장단에 맞춰 부르듯, 그 장단은 피아노가 대신했다. 여기서는 소금과 대금이 고음 일 땐 소금, 둔탁하고 걸걸한 음을 표현할 땐 대금이 쓰였다. “뱃노래”를 들으면서 느낀 점은 전혀 국악 같지 않은 국악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다가가기 쉬웠고 더 벽이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