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문화에 대한 비판적 논의-정치외교 4학년 이석호1999020354대중문화는 일반적으로 방대한 수에 달하는 대중을 대상으로 생산·소비되는 문화를 말하는데,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의 모든 사람들은 많든 적든 간에 대중으로서의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대문화는 대중문화의 성격을 나타낸다. 이 대중문화를 좀 더 세분화 시켜 정의해보자.첫 번째 정의로 대중문화는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폭넓게 좋아하는 문화라고 말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여기서 나타나는 어려움은 이것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말한다는데 있다.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것은 대중문화에 관한 어떤 정의라 할지라도 양적으로 큰 범위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문화란 말에서‘대중’이란 용어가 이를 요구한다. 그러나 동시에 양적인 크기 그 자체만으로는 대중문화에 대한 정의를 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 또한 명백하다. 공인된 ‘고급문화’, 즉 ‘고전’과 관련된 책이나 음반 판매, 또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 같은 것도 이런 의미에서는 ‘대중적’이라는 판단을 받게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두 번째로 고급문화라고 결정된 것 이외의 문화를 모아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분은 대중문화가 대량 상업적 문화임에 반해 고급문화는 개별적인 창조활동의 결과라는 주장으로 뒷받침된다. 그러므로 후자는 도덕적이고 심미적, 미학적인 반응을 받을 자격이 있으나 전자는 그나마 별로 내용도 없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피상적인 사회학적 조사 정도만 요구된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던 간에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은 둘 사이의 구분이 절대적으로 명확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의 확실성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는 그 구분이 지속되는 이면에는 엘리트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명백한 외관상의 구분이 더 이상 확실하지 않은 듯이 보인다. 현대적인 상황에서는 문화적인 개념이 경제적인 것으로 대체되어 ‘부유층’과 ‘수천의 보통사람들’간의 구분으로 바뀐 듯하다. 홀에 의하면 여기서지며, 대중 조작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비된 정신으로 또는 무감각한 상태 아래서 수동적으로 소비되는 문화다.네 번째 정의로는 대중문화가 ‘민중 the people'으로부터 발생되는 문화란 것이다. 대중문화는 민중의 진정에서 우러난 문화이다. 이는 민속 문화로서의 대중문화이며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의 문화이다.다섯 번째, 대중문화는 사회 피지배계층과 지배계층의 통합력 사이의 투쟁의 장으로 본다. 대중문화는 이 둘 사이의 교환이 일어나는 영역이며, 이 영역은 저항과 통합으로 표현된다.마지막으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고급/대중문화 그리고 대중/대량문화의 근본적 구분에 반대하며 모든 문화는 상업문화라고 단언한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화의 특색인 상업과 문화의 상호침투의 예로 꼽히는 것은 텔레비전 광고와 팝 음악의 관계이다.이 모든 정의들이 공통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것은 대중문화가 무엇이든 간에 이는 산업화와 도시화에 뒤따라 일어나 문화라는 것이다. 이는 곧 문화와 대중문화와 관한 정의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있는 곳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역사적으로 이렇게 제한된 정의의 대중문화를 처음 만들어낸 나라가 영국임을 밝히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 이전에 영국에는 두 개의 문화가 존재하였다. 이들은 모든 계층에 의해 어느 정도 공유된 일반문화와, 사회의 지배계층에 의해 만들어지고 소비된 엘리트문화이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세 가지 현상이 나타났으며 이는 모두 문화지도를 다시 그리는 원인이 되었다. 지금쯤 명백해진 사실은, 아마도 대중문화라는 용어가 우리가 애초 생각한 것과 달리 분명한 용어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대중문화는 역사적으로 변화하며 또한 이론적인 작업 그 자체에 의해서도 부분적으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구분의 대중문화의 성립 배경과 관련해 산업화와 도시화, 교통과 통신의 발달, 교육의 대중화에 따른 읽고 쓰기 능력수준의 상승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대중매체의 발달은 대중문화의 형성과 확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매스미디어는 사회주목받고 있는 요즘 정보화 사회에서는 대중이 모두 같은 메시지를 받는 일이 없어지고 대신에 소규모의 그룹으로 더 세분화된 사람들이 만들어낸 엄청난 양의 정보나 의견 등이 교환되어지고 있다.대중이 교육에 의해서 사회화되는 기회가 증대되고, 매스 미디어와의 접촉기회가 많아졌다는 사실은 확실히 문화의 대중화를 상징한다 하겠으나, 이를 역으로 보면 교육이 산업화되고 확대되며, 매스컴 기업체가 거대화하여 문화의 향유자인 대중은 교육산업이나 매스컴 산업의 이윤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주의하여야 할 일은 문화적 기업이 계열화됨에 따라 문화의 질적 저하가 초래된다는 점이다. 교육의 확대가 오히려 학력의 저하를 초래하고 매스컴 기업이 이윤추구만을 경영목적으로 하는 한 저속한 프로그램이 횡행하리라는 우려도 예견할 수 있다. 또한 문화의 창조자가 대중에 영합해서 저속한 작품을 양산 ?상품화하여, 대중사회의 저속화 퇴폐 화를 돕는다는 우려는 근래 문단에 대두한 대중문학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예에서도 볼 수 있다.대중문화는 대중매체를 통해 다수의 대중에게 전달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소수가 창조한 문화가 다수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된다는 점이다. 또한 대중문화는 그 수량과 성격이 한정되어 있어 대중의 의식과 취향을 획일화한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영화 한편이 수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가수의 음반 하나가 수백만 장 팔리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렇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동일한 문화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 성원들의 취향과 선호도가 유사하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 문화기업에 의해 획일화 양산화 되어 공급되는 문화내용은 필연적으로 정형화된 사고와 행동을 낳게 되어, 본래 창조적이어야 할 문화는 대중의 생활 속에서는 나오지 않게 된다. 따라서 전통문화는 더욱 쇠퇴하고, 새로운 문화의 창조와 향수는 이윤과 영합을 축으로 해서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또한 대중문화는 사회의 부정적 가치를 전파할 위험도 지닌다. 영화뿐 아니라 가요와 TV드라 발전 시켜 온 것이며, 그들의 생산 활동과 생활 감정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그들의 집단 성원들에게 생활의 질서와 정서를 잡아 주고 생활에 안정감을 주는 것이었다. 민족 문화는 생활 공동체에 대한 귀속감을 심어주고, 그 속에서 자아가 정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다.??미국의 인류학자 사피어는 문화를 '진정한 문화'와 '가짜 문화'로 구분한다. 가령,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는 경제, 교육, 예술, 정치 등의 생활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고, 그들은 소속 성원들 각 개인이 가치 있는 생생한 존재라는 실감을 지니고 그러한 문화 전반에 참가하고 있다. 그들은 문화의 창조자인 동시에 향유자로서 주체적인 자아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비해서 현대의 대중 사회적 상황 속에 놓인 인간들은 정신적인 실망이나 환멸, 그리고 무관심한 수동 속에서 생활하고, 여러 가지 문화의 영역 사이나 자기와 그들 영역과의 틈바구니에서 생생한 유기적 통일을 느낄 수가 없게 된다. 이와 같은 사회의 문화는 '가짜 문화'라고 사피어는 지적하고 있다.???가짜 문화로서의 대중 문화가 만연되어 있는 사회는 허위 의식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인간들은 평소에는 자기 환경 속의 심연(深淵)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눈에 띈다 하더라도 하도 어마어마한 덩어리여서 자기의 힘으로는 회복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 상실감에 빠지기 일쑤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안일을 평화로 착각하고 저속한 오락을 문화로 받아들인다. 이와 같은 현실 도피적 경향은 사회 전체를 불합리와 혼란으로 몰아넣고, 그 속의 인간들도 불안과 초조 속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벽에 부딪힌 인간들은 다시 한 번 이성적이고 창조적인 존재로서의 자기 회복을 꾀하게 된다. 외래적인 대중 문화가 만연해 있는 후진 사회는 상대적으로 불합리와 혼란, 불안과 초조, 그리고 긴장 상태가 팽배해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소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고 있는 대중 문화의 모습 뒤에는 욕망의 왜곡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대중 문 표출의 욕망까지 포함하는 '욕망의 그물망'을 이루고 있다. 이 그물망은 단순히 시장만이 아니라 광고를 포함한 각종 문화적 장치에 의해 조작되는 체계이다. 오늘날 대중 문화를 주도하는 대기업들은 이윤 증식을 위해 광고나 포장에서도 사용 가치보다는 미적 가치를 강조하여 심미적 삶에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욕망 생산 메커니즘에 엄청난 투자를 하여 대중들의 욕망을 새로 빚어내고 대중들의 감성에 틀을 잡아 간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는 공동체와의 결합을 통해 가능했던 개인의 자아실현도 이제는 상품 소비의 심미적 삶 속에서 상상적으로 실현된다.??심미적 삶을 사는 개인은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에만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에 개인 상호간의 조화를 이루어 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개인은 사적으로 자아를 드러내고 상상 속에서 타인의 인정을 획득하고자 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면서 공동체와의 진정한 결합은 회피하게 된다. 대중 문화의 특징인 유행은 바로 소비 이데올로기와 욕망의 왜곡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현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재교육, 재충전이 일반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식이나 기술의 재교육과 유행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둘 다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그 원인이 전혀 다르다. 앞의 경우는 지식과 기술이 진보하고 발전하기 때문에 재교육이 필수적인 것이지만, 유행의 경우에는 진보와는 관계가 없다. 유행은 제멋대로이고 불안정하면서도 주기적이다. 그리고 개인의 내적 자질에 덧붙여 주는 것이 없으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강제력을 가진다. 유행이라는 현상은 일정한 시간 안에 새로운 물건들이 생산되어 나와야 하는 시장의 본질적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용 가치의 측면에서만 소비 생활을 영위할 경우 시장은 일정 기간 정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가들이 지속적으로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아직 사용 가치가 남아 있는 물건들을 새 상품을 위해 폐기 처분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한데 유행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 유행은 상품의 사용 가치보다는 미적 가치의 재충전을 .
Schiavo gate 의 모순과 미국 정치미국 사회와 정계를 뜨겁게 달궈온 안락사 논쟁의 주인공 시아보가 튜브 제거 13일 만인 31일 오전 9시 사망하자, 지난해 대통령 선거운동기간에 극단적으로 양분됐던 미국 사회가 또다시 깊은 갈등의 골을 드러내고 있다. 시아보 사건은 의식이 살아 있는 환자가 고통을 덜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음을 맞게 하려는 안락사와는 달리 뇌사 판정을 받은 식물인간의 생명 연장 문제로, 미국 내 보수단체와 조지 W 부시 대통령 형제, 플로리다 주의회, 연방의회가 개입하고 교황청까지 가세하면서 세계적인 쟁점이 됐다.안락사에 찬성하는 것과 반대하는 것 중 어떠한 것이 사회적으로 더 도덕적이며, 합리적인 일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논쟁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어느 것이 옳다고는 분명하게 반대를 굴복 시 킬 수 없다고 본다. 이번 과제에서는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쟁보다는 이 사회적 이슈(시아보 게이트)가 주는 몇 가지 모순들(1)을 제시해 보며, 이를 통해 미국정치의 단편(2), 그리고 종합적인 나의 시각(3)을 말해보겠다.1. 모순시아보 사건의 진행을 살펴보면 주목할 점이 있는데 바로 부시 형제의 적극적인 공방 개입이다. 왜? 부시는 시아보 사건을 연방 법원에서 다루는 법안에 서명하기 위해 휴가 일정까지 앞당겨 급히 귀국했으며, 왜? 젭 부시는 보수적인 의회와 기독교단체 등을 등에 업고 강경 행보를 계속해 왔는가 이다. 미국의 안락사에 대한 공방의 역사 중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의회와 행정부가 시아보 사건처럼 강경한 대응을 한 적은 없다. 더욱더 의혹을 사는 것이 미국 최초로 연쇄살인을 저지른 여성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기로 결정한 사람인 젭 부시가 낙태 반대 등 '생명 우선(pro-life)' 운동의 지지자라는 사실이다.의문에 대한 답은 하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정치적 의도 인 것이다. 미국 법정은 지난 7년간 시아보 사건을 두고 무려 29차례의 판결을 내렸다. 판결 내용은 모두 시아보의 죽을 권리를 옹호하는 쪽으로 결론지어졌고 한 번도 번복된 적이 없다. 최종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게다가 이라크 전쟁에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학교 총기 난동으로 어린 학생들이 죽어가도 총기소유 규제에는 반대하는 것이 부시 정권이다. 그런데도 이미 지난 15년간을 식물인간으로 지낸 사람이 죽게 내버려두자는 데 대해서는 이 시점에서 모든 수단을 써서 막아보겠다는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뉴스의 초점이 되기에는 너무 싱거운 사건인 것이다.부시 대통령이 전통적으로 낙태나 안락사 등의 허용에 반대의사를 표시해온 공화당의 당론을 홍보하며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종교적 보수주의자들과 유대를 돈독히 하면서 차기 선거에서도 공화당 지지로 연결시켜 2006년 상 하원 의원 선거와 2008년 대선을 대비한 정치적인 목적이라고 분석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21일 발표된 ABC방송의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70%가 연방의회의 개입이 온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또 63%는 튜브제거에 찬성했으며, 특히 67%는 의회와 대통령의 움직임을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USA투데이-CNN-갤럽이 지난 21~23일 미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45%에 그쳐 부시 집권 1~2기를 통틀어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특정인에 대한 특례법은 곧 사적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싫어하는 미국인들의 성향을 자극했고 역효과가 일어난 것이다.두번째로, 이해 당사자들간의 모순이다.연방정부 개입 반대론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이 낙태와 동성 간 결혼 과 같은 문제들을 주정부 권한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 연방법원의 재심을 요구하는 것은 위선 이라고 비난하며 헌법 제10 수정조항에 따라 문제를 주정부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러나 그들의 위선 이라는 비난은 그들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40여 년 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흑인)의 시민권이 문제로 제기되었을 때 진보주의자들은 그것을 주정부의 권한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또 화장실과 대학의 흑백차별 철폐 문제를 연방정부 사건으로 만들지 않았는가.또한 안락사를 허가케 하는 서면의 유언장을 부시가 보유하고 있다는 점, 미국 국민 10명중 4명이 시아보 튜브 제거에 반대하지만 그 중 54%는 서면 유언장을 보유하고 있는, 타인의 안락사에는 보수적이지만 자신의 안락사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점이 아이러니 하다.마지막으로, 존재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인권이다.인권 즉, 살 권리라는 것은 애초에 개인의 라는 뜻이 전제되어 있다. 내가 생명을 유지 할 권리 ,내가 죽음을 맞이할 권리, 내가 행복을 영위 할 권리. 여기서 개인이란 사유하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을 때 존재가 된다. 사유하고 느끼고 경험할 수 없는 시아보는 이미 개인이 아니며 인권도 상실된다.남편으로서의 권리와 부모로서의 권리 싸움이 되어버리고 정치가의 개입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시아보는 정치적 이슈의 대상물이었을 뿐이었던 것이다.의학의 발달은 인간을 식물인간 상태에서도 생명 활동을 가능하게 하지만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뇌를 안겨주었다. 나의 인권이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이며 국가의 개입과 법과 제도의 능력이 과연 인간을 얼마만큼 정의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법원의 최종 판결을 의회와 행정부가 급작 법안을 만들어 뒤집는 것이 삼권분립 위헌이라는 것과 의회가 특정인을 대상으로 법률을 만드는 것이 법의 일반성에 어긋난다는 생각을 하며 한국의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국민의 촛불 시위가 떠오른다.국민의 권리를 이양했다는 계약론적 측면과 대표는 국민의 선을 반영해야 한다는 명제 사이에서 오는 모순 또한 치열한 공방의 소지다 다분히 있다고 본다.2. 대통령의 인기도란이번 시아보 사건이 종결에 이르면서 한 가지 특이한 것이 각종 여론조사 보도이다. 물론 안락사에 관한 국민들의 판단을 시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는 점 의미가 있으나 안락사에 대한 찬반 결과만이 아닌 대통령과 의회의 태도에 대한 입장의 여론조사가 활발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대통령과 의회가 적극적 개입을 펼치면서 대통령과 의회의 지지도가 하락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정치에서 과연 대통령의 인기도는 무엇이며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겠다.미국에서 제도적인 규정 이외에 대통령의 권력에 영향을 주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대중적 인기도 이다. 높은 지지가 더 설득력을 가지며 대통령은 자신의 인기를 교섭과정에서 자원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재선을 기본 목표로 하고 있는 의원들은 대통령의 대중적 인기도를 고려하여 대통령의 지지 여부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우선 선거와 관련된 자기 이익이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이 재선 가능성을 높여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기 있는 대통령과의 갈등은 대통령을 지지하는 지역구민들의 분노를 유발하게 되고 자신의 재선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대통령의 권력은 평판과 명성에 의해 결정된다. 평판이란 대통령이 정치인으로 가지고 있는 기술적 능력에 대한 다른 정책 수립가들의 평가를 의미한다. 명성이란 여론과 대중의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의미한다. 이는 말 그대로 인기도 이고, 다른 정책 수립가들의 평가 또한 명성에 기초 할 수 밖에 없다.미국 대통령의 권력의 경우 고정적인 것이 아닌 임기 동안에 권력의 정도가 변화하는데 위에서 말한 대통령의 인기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트루먼, 존슨, 포드, 카터 대통령은 재선되지 못한 대통령들이다. 이들에게 있어 공통점은 당선되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그 이후로 급격하게 인기가 떨어져 갔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대통령들의 인기도의 추세도 하락의 경향을 보이지만, 이들에게 그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미국 대통령의 당선 1년간은 언론이나 국민들과 소위 밀월관계(honeymoon period)를 갖게 된다. 이 기간 동안에 언론은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기대 속에서 긍정적인 보도를 주로 한다. 따라서 집권 초 대통령의 인기는 자신이 선거에서 득표한 비율보다 10% 이상 높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언론이나 국민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정치적 결과가 나타남에 따라 인기도가 하락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대통령들은 첫 일 년 동안에 자신의 정책목표 중 중요한 것을 이루려 노력하게 된다. 대통령의 그 이후 권력의 정도는 첫 일 년 동안에 얼마나 많은 업적을 이루었는지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또한 이 인기도는 국내 정치, 외교, 개인적 영역의 사안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외교 분야를 보면 이 분야의 문제가 심각한 관심거리로 떠올랐을 때에는 대통령의 인기도는 상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교 문제는 아군과 적국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의해 지배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우리 편인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애국적이지 못한 것으로 비치게 된다. 특히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경우에는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급속하게 상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외교 문제의 등장은 대통령의 지지도를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는 국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낮추는 역할을 하므로 대통령의 인기도 상승에 도움을 준다.
시아보 게이트 의 모순미국 사회와 정계를 뜨겁게 달궈온 안락사 논쟁의 주인공 시아보가 튜브 제거 13일 만인 31일 오전 9시 사망하자, 지난해 대통령 선거운동기간에 극단적으로 양분됐던 미국 사회가 또다시 깊은 갈등의 골을 드러내고 있다. 시아보 사건은 의식이 살아 있는 환자가 고통을 덜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음을 맞게 하려는 안락사와는 달리 뇌사 판정을 받은 식물인간의 생명 연장 문제로, 미국 내 보수단체와 조지 W 부시 대통령 형제, 플로리다 주의회, 연방의회가 개입하고 교황청까지 가세하면서 세계적인 쟁점이 됐다.안락사에 찬성하는 것과 반대하는 것 중 어떠한 것이 사회적으로 더 도덕적이며, 합리적인 일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논쟁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어느 것이 옳다고는 분명하게 반대를 굴복 시 킬 수 없다고 본다. 이번 과제에서는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쟁보다는 이 사회적 이슈(시아보 게이트)가 주는 몇 가지 모순들을 제시해 보겠다.시아보 사건의 진행을 살펴보면 주목할 점이 있는데 바로 부시 형제의 적극적인 공방 개입이다. 왜? 부시는 시아보 사건을 연방 법원에서 다루는 법안에 서명하기 위해 휴가 일정까지 앞당겨 급히 귀국했으며, 왜? 젭 부시는 보수적인 의회와 기독교단체 등을 등에 업고 강경 행보를 계속해 왔는가 이다. 미국의 안락사에 대한 공방의 역사 중 어느 부분을 보더라도 의회와 행정부가 시아보 사건처럼 강경한 대응을 한 적은 없다. 더욱더 의혹을 사는 것이 미국 최초로 연쇄살인을 저지른 여성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기로 결정한 사람인 젭 부시가 낙태 반대 등 '생명 우선(pro-life)' 운동의 지지자라는 사실이다.의문에 대한 답은 하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정치적 의도 인 것이다. 미국 법정은 지난 7년간 시아보 사건을 두고 무려 29차례의 판결을 내렸다. 판결 내용은 모두 시아보의 죽을 권리를 옹호하는 쪽으로 결론지어졌고 한 번도 번복된 적이 없다. 최종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게다가 이라크 전쟁에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학교 총기 난동으로 어린 학생들이 죽어가도 총기소유 규제에는 반대하는 것이 부시 정권이다. 그런데도 이미 지난 15년간을 식물인간으로 지낸 사람이 죽게 내버려두자는 데 대해서는 모든 수단을 써서 막아보겠다는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뉴스의 초점이 되기에는 너무 한가한 사건인 것이다.부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해준 종교적 보수주의자들과 유대를 돈독히 하면서 차기 선거에서도 공화당 지지로 연결시켜 2006년 상 하원 의원 선거와 2008년 대선을 대비한 정치적인 목적이라고 분석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21일 발표된 ABC방송의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70%가 연방의회의 개입이 온당치 않다고 지적했다. 또 63%는 튜브제거에 찬성했으며, 특히 67%는 의회와 대통령의 움직임을 정치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USA투데이-CNN-갤럽이 지난 21~23일 미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45%에 그쳐 부시 집권 1~2기를 통틀어 가장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특정인에 대한 특례법은 곧 사적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싫어하는 미국인들의 성향을 자극했고 역효과가 일어난 것이다.두번째로, 이해 당사자들간의 모순이다.연방정부 개입 반대론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이 낙태와 동성 간 결혼 과 같은 문제들을 주정부 권한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 연방법원의 재심을 요구하는 것은 위선 이라고 비난하며 헌법 제10 수정조항에 따라 문제를 주정부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러나 그들의 위선 이라는 비난은 그들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40여 년 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흑인)의 시민권이 문제로 제기되었을 때 진보주의자들은 그것을 주정부의 권한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또 화장실과 대학의 흑백차별 철폐 문제를 연방정부 사건으로 만들지 않았는가.또한 안락사를 허가케 하는 서면의 유언장을 부시가 보유하고 있다는 점, 미국 국민 10명중 4명이 시아보 튜브 제거에 반대하지만 그 중 54%는 서면 유언장을 보유하고 있는, 타인의 안락사에는 보수적이지만 자신의 안락사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점이 아이러니 하다.
정당과 선거해방 이래 한국의 선거제도는 지속적인 변천의 역사를 지녀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관성 있게 한국의 선거제도를 특징지은 것은 집권당의 다수의석 확보를 위한 편법적 노력이었다는 점이다. 집권당이 평균 35%라는 득표율을 가지고 다수의 의석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편법적인 선거제도의 운영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48.5.1 미군정에 의해 실시된 소선구제 국회의원 선거이후 한국은 71.5.25 8대 까지 소선구제를 치르고 9대 박정권의 1구 2인 선출의 중선거구를 시작으로 12대 85.2.12 까지 중선거구를 치른다. 그리고 2002년의 6.13 지방 선거 때부터 시작 된 소선거구. 비례대표제를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몇 가지 선거제도의 논의를 통해 한국의 선거제도의 개선 방향에 대해서 논해 보겠다.소선거구 다수대표제는 사표로 인하여 유권자의 균등한 대표성에 문제가 있음은 익히 알고 있다. 지역적 분할구도라고 특징지을 수 있는 우리의 정당대립 양상을 고려할 때 소선거구제는 이 같은 구도를 가속화 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소선거구제 하에서는 1인의 당선자 이외의 모든 후보자들이 사실상의 선거 패배자로 귀결되기 때문에 각 정당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총력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이는 각 정당이 전국적 정당이 되기보다는 자신의 지역에서 완승을 거둠으로써 의석을 극대화하는 데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전국구 의석수의 배분이 각 정당의 승리지역구 의석수에 따르는 과거 방식 하에서 더욱 현저하게 나타난 바 있다.전국구 의석수를 각 당의 전국득표율에 의하여 배분시키는 개정 선거법 하에서 치러진 96년 총선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목격되고 있다. 일부 당들이 가능한 한 많은 지역에 후보자를 등록시키고 또한 후보자 당락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상대지역에서 최선을 다함으로써 전국득표율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보이기도 하였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의 지역에서 유권자들에게 몰표를 호소하는 지역주의적 전략이 여전히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선거구제의 논의에서 주의할 점은 소선거구제가 마치 정당 간 지역대립 구도의 원흉이고 따라서 소선거구제의 폐지는 지역대립 구도의 타파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사고이다. 그렇다면 대안으로 제시하는 중선거구 다수대표제는 어떤 효과를 가질 것인가? 혹자는 중선거구제로의 이행이 지역 선거구수를 감축시킴으로써 국가적으로 볼 때 기존의 엄청난 선거비용을 과감히 절감하는 효과를 산출하고 또한 다수의 당선자를 만들어내는 선거이니 만큼 소선거구제처럼 유권자들의 지역 편향적 투표가 일당에 몰리는 현상은 제어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전개한다.중선거구제가 지역선거구의 수를 줄이는 효과는 인정한다 할지라도 이는 후보자간의 과열된 득표경쟁의 상황을 유발시킴으로서 선거 비용면에 있어서 국가적 절약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일본의 중선거구제 하에서 나타나는 비용적 측면의 비효율성은 익히 알려진 바 있다. 사실 선거비용 규모를 결정하는 핵심요인의 하나는 후보자간의 경쟁의 정도이다. 치열한 경쟁이 후보자의 선거비용 지출을 촉진시킨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견될 수가 있다. 소선거구제에서보다 중선거구제에서 후보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리라는 추론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또한 지역정당에 의한 지역구 의석독점의 문제가 중선거구제의 도입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사고는 성급한 측면이 있다. 1당 1인 입후보의 규정이 없는 한 현재와 같은 지역분할 구도 하에서는 단일정당에 의한 해당 지역 내 전 의석장악이라는 현상이 표출될 가능성이 있다. 설령 그러한 규정이 있다고 할지라도 편법적 분당에 의한 해당 지역 내 의석독점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도리어 중선거구제의 도입이 지역주의 타파라는 목적과는 상관없이 의석확보를 위한 선거 전략의 일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어질 수 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여당이 손쉬운 과반수 의석점유를 위해 2인 선거구제를 편의적으로 차용한 선례는 이 같은 비판을 공고히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아직도 분단의 상황을 이용하여 반보수를 친북세력 정도로 일치화 시키는 논리가 통용되는 한국정치의 성숙도를 고려할 때 뼈대 있는 정강을 가지고 자신의 이념적 위치를 고수하는 정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더군다나 유권자들의 지역 편향적 투표행태는 다양한 기호의 정강을 제시하는 정책정당의 출현을 저지하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정강 없는 정당들 사이에서 정치인들간의 빈번한 이합집산만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바람직한 선거제도는 대표성과 책임성이라는 두 요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대표성의 문제는 소수유권자의 의견이 간과됨이 없이 올바르게 반영되는지에 집중된다. 다시 말해 다수유권자가 과대 대표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다수대표제에 대한 비례대표제의 상대적 우월성은 이 같은 대표성의 충족에 있어서 보다 효율적이라는 점이다.비례대표제하의 정당명부가 직능에 따른 고른 배분을 꾀할 때, 비례대표제는 의원들의 분야별 전문성 확보와 다양한 사회세력들의 균등한 의사 대변이라는 이중적 효과를 기대 할 수도 있다. 비례대표제를 주창하는 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서 비례대표제가 새로운 정치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용이하게 하며 정강정책에 근거한 정당의 발전을 촉진시킴으로서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적 정당정치의 실현을 위한 바탕을 마련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과연 비례대표제가 그 원래의 의도만큼 경험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만을 파생시키는가이다.
내가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어떠한 의견이나 사실도 비판적으로 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신문, 방송과 같은 미디어뿐만 아니라 강의 시간 중에 교수님의 의견에 이르기 까지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계절학기 강의 가운데 가장 크게 나의 생각에 영향을 준 것은 박정희대통령에 관한 수업이었다. 나는 그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대통령으로 보았지만 수업 중에 시청한 비디오에 의해서 다른 시각에서 그를 판단할 수 있었다. 박정희대통령도 한 사람의 정치인이었으며 그가 이루어낸 성과들 뒤에 많은 잘못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한 개인의 원한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 1970년대 대한민국의 사회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이렇게 수업 시간을 통하여 역사를 인식하는 자세가 수동적인 입장에서 조금은 능동적으로 변하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부터 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우선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은 영화의 구성으로 봤을 때 조금 산만하였다. 주요 인사들과의 인터뷰 장면을 시간 순서에 상관없이 연출자가 생각하는 내용의 흐름에 맞게 인터뷰의 단면 단면을 잘라내어서 구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연출의 효과가 영화를 보는 시청자의 집중력을 자극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내가 영화를 보면서 지루하다는 생각은 없었고, 오히려 그러한 구성에 의하여서 ‘반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을 정도였다.영화의 이해영화는 시작, 중간과 끝에 ‘굿’을 넣어서 영화의 전체적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 점쟁이를 찾아가는 시작은 현재도 진행 중인 친일문제가 다루어져서 역사적인 민족주의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중간 부분의 닭목(화면이 흐려 다리인지 목인지 확인하기 어려웠다)을 이용한 ‘굿’ 장면은 박정희대통령과 군사독재 시절의 경제개발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민족주의를 강요하고 교육하였던 사실과 아직도 그의 성과를 신봉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계층(1970년대 중년층)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굿’은 ‘굿’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나는 그 장면이 정리를 하는 느낌과 계속적으로 굿이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와 연결해 보았을 때 후반부에 주로 다루어진 ‘안티조선’과 노동운동가들을 다루면서 지금 현재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사실들을 다루었다. 이렇게 영화는 한국의 근현대사 흐름을 쫓는 형식으로 한국의 민족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다.그리고 민족주의의 문제가 현재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하여 현재 학생들의 국가 인식의 변화와 ‘태극기를 휘날리며’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청년들을 대조시켜 보여주고 있다. 한편의 학생들은 국가와 민족의 개념보다는 현실에 필요한 돈과 명예 등의 자신 생활의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보여주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탈선 청소년들은 단지 광복절이라는 이유로 태극기를 휘날리며 도로를 질주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을 마무리하면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도로를 달리던 소녀가 오토바이에서 떨어져서 다치는 사고를 보여주고 마지막 노숙자의 한마디로 영화는 끝을 맺고 있었다. “국민이 고분고분하면 국가가 버릇없어 진다.”[내가 생각하는 우리사회의 민족주의]영화를 보면서 나는 연출자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고자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민족주의에 대한 생각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민족주의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특히, 저번학기 신용하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자본주의 맹아론과 항일운동에 관한 수업을 들으면서 나는 민족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로 가득 차 있었다. 사회학을 공부를 하면서도 비판적으로 강의를 이해하는 눈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번 계절학기 강의를 통해서 오히려 사회학에 대하여 더 큰 것을 얻은 것 같다. 그리고 전공을 수업을 듣는 것처럼 많이 흥미로웠다. “애국을 이용하여 게임을 즐기는 자가 있다.”영화의 제목에서부터 민족주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민족주의를 조선시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려 이후 한반도에서 통일 국가를 이루었고 임진왜란과 같은 큰 전쟁을 겪으면서 일반 백성에서부터 양반들까지 민족이라는 개념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이후 조선말기와 일제치하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민족주의가 발달하고 넓고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그래서 나는 우리 민족주의에는 방어적이고 공격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방어적인 면에서는 20세기 초에 외세의 압력 속에서 민족주의를 내세워서 이들에게서 우리를 지키고자 하였던 위정척사 운동처럼 사람들을 민족이라는 실제 하지 않는 개념으로 단단하게 하는 방어적인 면이다. 공격적인 면은 민족주의가 국가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데 2000년도 이전까지의 대북관계에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과 이후의 대북관계속에서 국가를 지키기 위하여 민족주의를 내세운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정권을 단단히 할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다.이런 민족주의의 양면을 이용하여 국민을 가지고 게임을 해온 사람들과 아직도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 영화의 제목이 ‘애국바이러스’가 아니라 “애국자 게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축구 말고 다른 것에 투자하면 세계1등 할 것이 너무 많다.”축구를 좋아하고 2002월드켑에서 너무나도 기뻐했던 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 아테네 올림픽을 보면서 나는 축구와 핸드볼을 비교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축구는 8강에 들었다. 이것이 한국 올림픽 축구팀의 최고성적이다. 하지만 한국 여자 핸드볼팀은 결승전에서 아깝게 패배하면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우리나라 온 국민의 지지와 축구협회의 무한한(금전적인) 지원 속에서 이루어낸 8강과 소수의 실업팁에서 선발되어지고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여 은메달을 목에 걸은 여자 핸드볼팀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이 이들을 올림픽 기간 동안 열성적으로 응원하였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핸드볼에 대한 관심은 어떠한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민족주의에서 찾아보고자 한다.우선 축구와 핸드볼이라는 스포츠를 비교하여 보자. 축구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전 유럽, 남미,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가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다. 반면 핸드볼의 경우는 유럽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는 프로리그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소수의 실업팀만이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 국민은 축구를 더 좋아하는 것일까?